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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TheFugitiveKind
2013/01/21   직업인의 자존심 [29]
직업인의 자존심
간만이니까 가볍게 시작하죠.
시드니 루멧 감독의 회고록에 나오는 일화들인데, 업종을 불문하고 여러 유형의 전문가들이 팀을 이루어 작업하는 경우엔 충분히 있음직한 일들이라고 생각되고 또 그 자체로 재미있게 읽었던 지라 옮겨 봅니다.




작가의 고집

나오미는 훌륭하고 재주 많은 진짜배기 작가이다. 내가 볼 때는 장면에 집착하는 것이 그녀의 유일한 단점이다. 리버 피닉스가 연기한 어린 소년은 낯선 집에 들어가 피아노 앞에 앉아 베토벤의 소나타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같은 또래의 어린 소녀가 바라보고 있는 걸 의식한다. 각본에는 계속해서 부기우기 피아노곡을 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나는 나오미에게 좋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관객이 사기 같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봐라. 그애는 진짜 먹물이 아니다. 그 녀석은 우리처럼 재즈를 좋아한다. 오래 전 글로리아 진 영화에서 호세 이투르비가 상아로 간지럼을 피우는 장면이나 지넷 맥도널드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몸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도 그랬다. 나오미는 고집불통이었다. 할 수 없이 그대로 집어넣고 리허설에서 어떤지 보기로 하였다. 그 장면을 올리자 리버가 그 부분을 빼자고 말했다. 연기를 하는 데 허위라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나오미는 창백해졌다. 이야기가 오고갔다. 리버가 나오미에게 자기 배역에 대해 어떻게 절충했는지 정말 단순하고 솔직하게 설명했다. (열일곱 살짜리가 자기보다 두 배나 나이 많은 작가와 논쟁하는 놀라운 광경이었다.) 결국 내가 그렇게 할 만한지 며칠 후에 다시 검토하자고 제안했다. 리허설이 끝날 즈음 나오미가 찾아왔다. 내가 그 장면을 수정해야만 한다면 괘념치 않겠지만 리버가 뒤집는 것은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 장면이 아깝긴 하지만 ‘자르자’고 했다.

배우와 작가 간에는 쉽게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가 있다. 감독으로서 나는 이를 매우 조심한다. 작가들은 대부분 배우를 싫어한다. 그렇지만 스타는 스튜디오의 인정을 받는 관건이다. 감독이 큰 힘을 갖는 경우도 있지만 톱스타만큼의 힘은 없다. 스타가 요구하면 스튜디오는 30초 이내에 작가를 던져 버린다. 그 점은 감독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항상 이런 위기가 생기지 않도록 사전에 충분히 준비를 해둔다. 배우와 만나기 전에 작가와 합의를 구해 두고, 보통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스타와 충분히 논의를 한다. (pp.53-54)



배우의 감독 테스트

나는 〈도망자〉(The Fugitive Kind)에서 말론 브랜도와 함께 작업했었다. 그는 의심이 많은 친구다. 나는 브랜도가 심술부리고 있는 것도 몰랐지만, 그는 촬영 하루 이틀 동안 감독을 시험한 모양이다. 감독에게 언뜻 같아 보이는 테이크 두 개를 안겨 주는 것이다. 하나는 진정으로 내면에서 연기한 것, 다른 하나는 그와 유사하게 감정 표현을 한 것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러고는 감독이 어떤 것을 프린트하는지 살펴본다. 감독이 잘못된 것을 인화 지시하면 마음속으로 결정한다. 말론은 다른 연기를 설렁설렁하거나 감독을 시궁창 속으로 밀어버리거나 둘 다 할 수도 있다. 누구도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할 권리는 없다. 하지만 그가 왜 그러는지는 이해한다. 볼 줄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내적 삶을 쏟아 붓고 싶지 않은 것이다. (p.82)



음악과 음향, 하나는 버려져야 한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에서 음향 편집 기사는 열차 음향에 관한 한 ‘세계 최고 권위자’를 고용했다. 그는 나에게 오리엔트 특급부터 ‘플라잉 스코트맨’, ‘20세기 철도회사’에 이르기까지 이름난 열차의 진짜 소리를 모두 들려주었다. 그는 기차 소리만 갖고 6주일 동안 일을 했다. 그의 진가는 영화가 시작되면서 기차가 이스탄불을 떠나는 순간 나타났다. 증기와 벨, 바퀴, 심지어 기차의 전조등이 켜질 때의 희미한 딸깍 소리까지 집어넣었다. 그는 맹세코 모든 음향이 진짜라고 했다. 믹스(사운드 트랙을 모두 합치는 과정)에 들어가자 그는 기대에 충만해 있었다. 그가 만든 소리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데 리처드 로드니 베넷이 같은 장면에 넣으려고 만든 음악 역시 멋졌다. 누군가 양보를 해야 했다. 양자가 같이 들어갈 수는 없었다. 사이먼을 돌아보았다. 그도 알고 있었다. 내가 말을 꺼냈다. “사이먼, 정말 대단해요. 그렇지만 결국 듣게 되는 건 역을 떠나는 기차 소리이잖소. 4분의 3박자로 떠나는 기차 소리를 가려듣기는 힘들죠.” 사이먼은 걸어 나갔다. 그 후 다시 그를 만나지 못했다. 나는 음향과 음악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 주는 사례로 이 이야기를 하곤 한다. (pp.21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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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는 모두

Lumet, Sidney. Making Movies. 1st ed. Knopf, 1995.
(부수영 역, 『영화 만들기』 1판. 서울: 이론과실천, 1998.)
by sonnet | 2013/01/21 01:56 | 문화 | 트랙백 | 덧글(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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