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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5   21세기 초 국제정세의 흐름 [18]
21세기 초 국제정세의 흐름
필자 주: 이 글은 월간 Platoon 2008년 1월, pp.99-104에 게재되었던 것이다. 전재를 허락해 주신 월간 Platoon 편집부께 감사드린다.

매 년 새해를 맞이하면 주요 언론에서 세계의 석학들을 찾아 새 해의 전망을 묻는 칼럼이나 대담을 싣곤 한다. 해외 주요 언론의 경우, 대개 이러한 기사를 통해 국제정세의 판도를 점검, 전망하는 데 힘을 기울인 반면, 한국의 경우 지난 수 년 동안 줄곧 북핵문제나 한미관계 같은 한국을 중심으로 한 비교적 좁은 시야의 지역적 문제들을 다루는 데 몰두하는 경향을 보이며, 세계정세를 따라잡는데 소홀했던 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2008년 새 해를 맞이하면서 21세기 초를 돌이켜 볼 것 같으면, 가장 의외였던 점은 강대국 관계, 특히 미중관계에 있다고 생각된다.


국제사회의 주체: 강대국

국제정치 내지는 국제관계 교과서를 한 번이라도 읽어 본 사람들은 누구나 공통적인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아도 도대체 한국 같은 나라 입장에서 직접 참고할만한 이야기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국제정치 교과서는 언제나 강대국의 역사, 특징, 정책만을 다룬다. 왜 그럴까?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객관적인 지표로 비교해 보자면 한국군이 아마 말레이시아군보다는 강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억지로 기를 쓰고 말레이시아를 공격하겠다고 나서면 어떻게 될까? 한국의 능력을 갖고 태평양을 건너 억지로 말레이시아에 한 줌의 군대를 보낸다 하더라도 그 군대는 순식간에 전멸당하고 말 것이다.
이는 대부분의 약소국이 공통적으로 갖는 한계이다. 전 세계의 국가들 중 한 줌의 강대국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자국의 영토 바깥에 나가 싸워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능력을 가진 나라는 없다.

그렇다면 만약 몇몇 소설에서 묘사하듯이 한 줌의 한국군이 기기묘묘한 재주를 부려 기적적인 연전연승을 거둔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경우 예상되는 결과를 잘 보여주는 전쟁이 있으니 바로 청일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국으로부터 상당한 이권을 뜯어내는데 성공했지만, 기성 강대국들인 러시아, 프랑스, 독일이 연대해 개입하자 이들의 간섭을 막아낼 힘이 없었던 일본은 울며겨자먹기로 빼앗았던 요동반도를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일본은 러일전쟁을 통해 기성 강대국인 러시아를 꺾어 스스로의 실력을 입증하고서야 강대국 클럽에 진입하게 된다.
태평양의 패권에 관심을 갖는 강대국은 많다. 한국이 불가능에 가까운 싸움에 승리해 말레이시아에게 쓸만한 이권을 따낸다 하더라도 강대국이 아닌 이상 그 이권을 지키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또한 이는 꼭 직접적 군사력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미국이나 중국이 어떤 나라에게 경제보복을 가하면 그 타격은 상당할 것이다. 하지만 필리핀이나 아이티 같은 나라들이 어떤 나라에게 경제보복을 선언한다고 했을 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렇게 보면 오직 한 줌에 불과한 강대국만이 국제무대에서 자기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 능동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주체이며, 나머지 수많은 약소국들은 강대국이 움직이는 것을 봐가며 주로 제 한 몸 지키기 위해 피동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존재에 불과함이 자명해진다. 따라서 모든 국제정치 교과서들은 국제사회의 능동적 주체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강대국을 중심으로 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학자들은 강대국의 정의에 대해 어떤 식으로 이야기할까?
영국의 역사가 A.J.P 테일러는 강대국을 [대외]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국가라고 정의한 바 있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J.J. 미어셰이머는 이를 좀 더 자세하게 풀어 국제정치판에서 가장 힘이 센 나라에 대항해 궁극적으로 이기진 못하더라도 최강국을 심각하게 약화시키고 전쟁을 소모전으로 끌고 갈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은 있어야 강대국이라 칭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즉 전반적인 국력 면에서 최강국을 충분히 견제할만한 역량이 있는 나라들이 강대국인 것이다. 이러한 기준을 갖고 1차대전 직전을 살핀다면 유럽의 여섯 강대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이탈리아, 그리고 유럽 외의 강대국으로 미국과 일본을 합쳐 여덟 나라 정도를 강대국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현 시점에서는 핵무장국이자 UN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기도 한 다섯 나라,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그리고 여기에 핵무장하지는 않았지만 군사, 경제, 기술, 인구를 종합했을 때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가진 일본과 독일을 더해 일곱 나라 정도를 강대국으로 꼽을 수 있다.

앞선 정의에서도 암시했듯이 강대국 반열에 올라있다 하더라도 실력이 비등한 것은 아니다. 1차대전 이전의 경우 영국과 독일이 다른 나라보다 더 강했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이탈리아, 일본이 약체였다는데 대부분의 역사가가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마찬가지로 현 시점에서 본다면 단극체제란 말이 상징하듯이 압도적으로 강한 미국이 다른 모든 강대국을 압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한 프랑스 각료는 미국의 부상이 슈퍼파워를 넘어 하이퍼파워에 도달했다고 볼멘 목청을 높이기도 하였다.


미국을 어떻게 관찰/해석할 것인가?

이처럼 미국이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국인 것은 자명하므로, 미국의 행보를 읽는 것은 국제정세를 이해하는 첩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일본의 전 태국 주재 대사 오카자키 히사히코(岡崎久彦)는 외무성 자료과장, 분석과장, 방위청 참사관(정보 담당)을 거쳐 외무성 기획조사부장, 정보조사국장을 역임한 정보통 외무 관료이다. 그는 지난 30여 년간 미국의 동향을 관찰하고 분석해 온 자신의 경험을 설명한 적이 있는데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전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 정보를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이야말로, 일본의 정보기관에 있어서는 완전히 미지의 분야였다. 공산권 분석과 달라 선인의 연구가 있는 것이 아니다. 공산권 분석의 수법을 적용시켜 봐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공산권 분석은, 제한된 정보 속에서, 숨겨진 진실을 읽어내는 기술이다.그러나 미국의 경우는 정보는 범람하는데 전부 대충 훑어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의 양이어서, 그 중에서 진정한 정보를 추출하는 작업이다. 공산권의 경우와 완전히 다른 방법론이 필요하다.

1968년 이후 내가 해 온 것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행 착오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좋다. 시행 착오라기 보다도, 미국에 대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능력이 닿는 한 읽고 아직 그 밖에도 음미해야 할 정보가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불안감에 항상 사로잡히면서, 겨우 그때그때의 정세 판단을 결과적으로 큰 잘못 없이 해 왔다는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하면서 내가 배워 온 것을 말씀드리자면, 우선 미국이라는 것은 없다란 것이다.

지금도 미국을 알고 있다고 칭하는 사람들의 입으로부터, 「미국은 진심으로 대만을 지킬 생각은 없다」라든가「미국은 일본이 강대하게 되는 것을 내심 무서워하고 있다」와 같은 발언을 듣게 된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만 봐도 그 사람은 미국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런 소리를 하는 미국인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도 많이 있다. 의회, 행정부, 매스컴, 여론, 각각 다르거니와, 그 각각 속에서도 다종다양한 생각이 있다. 그것이 서로간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서 이윽고 정부의 정책에 반영되게 되지만, 그것이 또 언제 바뀔지 모른다.「미국」의 의사 같은 것 등은 어디에도 없다. 단지 그 다종 다양한 흐름을 늘 쫓으며 그 귀추를 확인할 수 밖에 없다. 「미국의 정보에만 의존하면 정보 조작당할 우려가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것도 「미국이라는 것」이 있고 뒤에서 일본을 조종하려 하고 있다고 하는 오해로부터 온다. 미국 발의 정보원은 결코 하나가 아닌 데다가 백인백색의 해석을 통해 전해져 온다.

그렇다고 한다면 어떻게 그 흐름을 쫓는가 하는 문제가 된다. 최종적으로는 정부의 입장으로서 공표된 문서, 즉 대통령, 국무장관의 연설, 혹은 국방백서 등이 중요하다.「염불」만 늘어 놓고 있는 일본의 시정 방침 연설 따위에 익숙해져 있으면 무심코 그 중요성을 놓치기 십상이지만, 그러한 공식 문서를 정독해 그 속에 담긴 뜻을 깊이있게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전단계로서 의회에서의 대일 정책, 대극동 정책에 관한 공청회의 기록을 정독해야 한다.

그 전 단계로 가면 「뉴욕 타임즈」 「워싱턴 포스트」의 사설, 거기에 게재된 각종 논설, 「포린 어피어즈」등의 각종 논문을 읽고, 전문가, 지식층 사이의 생각의 흐름을 파악해둘 필요가 있다.

이와 병행해 중요한 것은 이렇게 해 얻은 소견을 부딪쳐 보고 반응을 알게 해 줄 대화 상대를 미국의 요인, 식자 중에서 구하는 것이다. 더욱 욕심을 내자면 대통령의 연설에 관여한 사람들로부터 연설의 핵심이 어디인지를 배우는 것이다. 키신저의 극비 방중 등, 몇 년간 만나지 않았던 홀드릿지가 그만큼 가르쳐 줄 정도였으니까, 만약 옛 교분을 살려 몇 달이 지난 뒤였다라면 더 힌트를 주었을 것이다.

이 것은 나의 실력의 함수이기도 하다. 나의 견식이 성장하면 할수록 상대의 응답도 내용이 있는 것이 된다. 그리고 나에 대한 미국의 유식자의 평가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진정한 실력자와도 만날 수 있고 이야기의 내용도 고도의 것이 된다. 미국에 대한 정세 판단의 능력은 분석자의 대외적 평가와 비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카자키 히사히코岡崎久彦, 국가정보관 설치를 제안한다,「Voice」2001년 10월호

우리는 흔히 미국은 이렇게 행동했다든가 중국은 참전을 결정했다는 식으로 어떤 나라를 한 개인처럼 의인화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국가가 객관적인 국익을 추구하는 일관성 있고 합리적인 개인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 가정은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분석의 틀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많은 분석가들이 채용하는 기본적인 도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국가는 한 사람이 조종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조직에 소속된 채 일면 협조하고 일면 항쟁하면서 운영해 가는 것이기 때문에 때때로 과거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집권하거나 정책논쟁에서 승리해 정책의 향방이 바뀔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러한 현상은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 잘 동작하는 민주적이고 개방된 사회일 경우 더 현저해진다.

이에 대한 오카자키의 입장은 단호하다. 어떤 전형적인 미국의 이미지에 따라 미국은 이러저러하게 생각하고 행동한다와 같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만 봐도 그 사람은 미국을 모른다는 것이 잘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음모론에 가까운 관점이고, 미국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미국 정치권에서 흘러나오는 풍부한 정보들을 지속적으로 추적하면서 그 최신 추이를 계속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미국 정계의 실력자들과 폭넓은 접촉을 가지며 내가 수집한 정보들을 갖고 그들의 견해를 타진해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외로 조용했던 미중관계

냉전의 종식과 뒤이은 소련의 붕괴로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떠오르고 나자 세인들의 관심은 다음 번 미국의 적수는 누구인가에 모아졌다.
영원한 적수 소련은 이미 15개의 국가로 산산조각이 나 버렸고, 80년대 「떠오르는 태양」으로 간주되어 동맹국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때리기(japan bashing)의 집중 견제를 받았던 일본도 버블경제의 붕괴와 함께 장기경기침체의 늪으로 빠져들어 더 이상 위협으로 간주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볼 때 21세기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누구나 그 부상을 점쳤고, 실제로도 그 예상을 충족시킨 국제무대의 떠오르는 스타가 있었으니 그 나라는 누구나 다 아는 중국이었다.

과거 소련을 견제한다는 목적으로 중국에 군수기술을 제공하기도 하였던 미국이지만, 냉전이 끝나자 곧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하여 중국과의 군수기술 협력을 단절하고 중국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킴으로서 양국간의 관계는 협력에서 견제로 전환되었다.
이후 10여 년간 미국의 많은 논객들과 정치가들이 중국을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를 놓고 많은 논쟁을 벌였지만, 만약 미국의 우월적 지위를 위협할 국가가 나타난다면 그것은 중국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데 모두의 의견이 일치했다.

그렇기에 21세기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세계최강국의 대통령 자리를 거머쥔 조지 W. 부시는 일반적으로 중국에 대해 보다 강경하고 대결적인 입장을 펼 것으로 관측되었었다. 우선 그 자신이 대중 강경파 진영의 지지를 받고 있었고 선거기간 중 중국을 전략적 동반자(partner)가 아니라 경쟁자(competitor)로 지목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부시 행정부는 집권 초반 중국과 상당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우선 2001년 4월 1일, 중국 해안에서 정찰활동을 하던 EP-3 정찰기가 중국 전투기와 충돌해 중국 전투기는 바다에 추락하고 미국 정찰기는 하이난 섬에 불시착해 승무원 24명이 억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 측은 이 사건에 대해 사과를 요구했고 미국 측은 이를 거부하면서 11일간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결국 이 사건은 미국이 불시착해 매우 미안하다(very sorry)는 서한을 써서 주었고, 중국은 이를 번역하면서 사죄한다(apology)로 해석하는 식으로 각자 체면을 세우는 형태로 물러났다.
이 사건이 일단락된 지 2주일도 지나지 않아 부시 행정부는 타이완에게 잠수함과 패트리어트 미사일, P-3C 대잠초계기 등을 포함하는 사상최대(180억 달러)규모의 무기판매사업을 허가해 중국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연이어 취임 100일 기념 인터뷰에서 부시는 미국이 타이완을 방어할 의무가 있는지를 질문 받고 “타이완이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대답했다. 이는 미국이 지난 50년 동안 견지해 왔던 「전략적 모호성」 정책을 변경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이유 때문에 21세기 미국의 최대 적수는 떠오르는 중국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부시 행정부가 그 선봉에 설 것으로 예측하였다.

그러나 6년이 더 흐른 현재, 그와 같은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음이 확실해졌다. 부시행정부 내내 중국과의 더 이상의 충돌은 없었고, 중국이 사상최대의 대미무역흑자를 갱신해도, 해외시장을 돌며 자원을 매점매석해도 미국의 압력은 미온적이기만 했다. 그리고 부시 대통령의 임기가 1년 남은 현 시점에서 미국이 중국과 정면대결 코스로 접어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대한 손쉬운 한 가지 설명은 9.11 테러와 그에 의해 촉발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일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예기치 못한 위협에 직면했음을 알아차린 미국 정부가 당면한 문제 해결에 집중하기 위해 중국과의 대결을 잠시 뒤로 미루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장기화되는 게릴라전에 발이 묶이게 되자 점차 중국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졌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에 반하는 증거도 적지 않다.
파월과 럼스펠드가 사라진 후에도 최후까지 살아남아 부시행정부의 실세임을 입증해 낸 콘돌리자 라이스는 2001년 새 행정부 출범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새 행정부는 중국과 약간의 충돌을 빚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문제가 엉뚱하게 진행되지 않도록 취임 첫 해 조기에 일을 처리하려고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인터뷰에서 라이스는 중국의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제16차 전대)가 2002년에 있음을 지적하면서, 일을 조기에 매듭지어 16차 전대가 개최될 무렵에는 양국관계가 조용하기를 희망했다. 이후 벌어진 사건들은 부시 행정부가 미리 일정표를 만들어 놓고 그 시한에 맞추어 중국관련 문제를 매듭짓는 중국정책에 대한 접근법을 추진했을 가능성을 강하게 뒷받침한다.
부시행정부의 다른 실력자였던 월포위츠는 선거 기간 동안 행한 연설에서 “중국은 향후 수십 년 간 미국 대외정책의 가장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는 나라”이지만 “냉전시대 옛 소련처럼 중국을 다루는 것은 실수”이며 “(중국은) 말 그대로 그 폭과 범위가 확대되고 있는 견실한 민간 부문”을 갖고 있는 나라라고 부연했다. 라이스 또한 “중국에는 자신들의 생계를 국가에 위탁하지 않는 기업가 계급이 출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공화당은 기업들로부터 강한 후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대중 무역과 투자와 관련된 현안을 함부로 건드리려고 들지 않았던 것이다.

이 때문에 부시 행정부의 대중정책은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던 전망과는 달리 중국에 대해서는 지극히 온건하고 조용한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냉전기간 동안 이들은 소련과 타협하느니 대결해야 한다고 목청 높여 외쳤지만, 중국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이러한 온건함은 러시아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었다.


러시아의 숨통을 조이다

본 칼럼을 통해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듯이 현재의 러시아연방은 과거 소비에트연방과는 크게 다른 국가이다. 우선 러시아는 인구가 1억 4천만 명으로 소련 시절(2억 9천만 명)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이래서는 국민소득이 훨씬 높은데도 불구하고 이미 3억에 도달한 미국과 경쟁하기란 요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발트, 중앙아시아, 코카서스, 우크라이나 등 인구와 자원, 산업이 풍부하고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지역들을 상당수 상실해 영토적으로 크게 찌그러든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한 시절 러시아 지도자들은 러시아가 서구적 민주주의 대열에 합류하고, 과거의 소련 같은 위압을 가하지 않는 온건한 국가가 된다면 서방 사회는 러시아를 동료로 따뜻이 맞아 전통적으로 러시아의 것이었던 「정당한 몫」 정도는 보장해 줄 것이라는 환상을 품었다. 그러나 미국은 과거 영국이나 프랑스, 일본 등과 같은 서구진영의 다른 국가들과 패권을 나눌 생각이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와 패권을 나눌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미국은 90년대 러시아의 무력한 반대를 무시하고 옛 소련 영향권에 속하던 동유럽 국가들을 차례차례 NATO 산하로 받아들여 보호를 제공하였고, 이들의 유럽연합 가입도 지지하였다.

여기까지는 러시아도 불쾌하지만 어쩔 수 없는 변화된 현실을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문제가 자신들이 생각하는 최소한의 「정당한 몫」, 특히 제정 시절부터 보유하고 있던 핵심지역에까지 미국의 입김이 침투하기에 이르자 러시아는 시끄러운 불만의 목소리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가장 예민하게 반응한 것은 구소련 공화국 내부에서 연이어 벌어진 소위 민주주의 전파를 명분으로 한 색깔 혁명, 그중에서도 바로 우크라이나 오렌지 혁명이었다.

카터 행정부에서 국가안전보좌관을 지낸 지정학자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일찍이 러시아의 절박함을 다음과 같이 잘 묘사하였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우크라이나의 상실이다. 우크라이나가 취하는 독립 국가적 모습은 러시아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정치적·인종적 정체성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만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가 겪고 있는 엄청난 지정학적 후퇴를 나타내 준다. 300여 년에 걸친 러시아 제국의 역사로부터 우크라이나의 결별은 잠재적으로 풍부한 농공업 기반의 상실과 인종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러시아인과 매우 유사한 5천 2백만 인구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러시아를 진정으로 크고 자신감 넘치는 제국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 만큼의 자원인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독립하면서 흑해에 대한 러시아의 지배권도 끝나고 말았다. 흑해 연안 우크라이나의 오데사 항구는 러시아가 지중해 방면과 교역을 벌이는 데서 출구 역할을 담당했었다.
우크라이나는 지정학적 주축이다. 발트해 연안 국가들과 폴란드를 상실했다고 하더라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향력만이라도 유지한다고 하면, 러시아는 남쪽의 비슬라브 지역과 남동쪽의 구소련 지역을 지배함으로써 계속 유라시아의 리더 자리를 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와 그곳의 5천 2백만 슬라브인 없이 러시아가 유라시아 제국을 재건하려는 시도는 러시아로 하여금 비슬라브인과의 지리한 민족적·종교적 분규에 휩싸이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Z. 브레진스키, 『거대한 체스판』, pp.127-128

즉 우크라이나를 합병할 정도의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우크라이나를 친러 국가로 묶어둘 수 있느냐 아니면 다시 되찾아오기 힘든 NATO 같은 미국의 세력권에 넘기느냐 하는 점은 언젠가 상황이 호전되었을 때 러시아가 다시 한번 대제국으로 도약할 수 있느냐, 영원히 그저 그런 준 강대국으로 주저앉느냐를 판가름하는 사활이 걸린 문제인 것이다.

[그림] 러시아의 눈에 비친 서구세력의 동진은 나치 독일의 동진을 방불케 한다.


실제로 미사일방어(MD) 계획만 해도 당초 충분한 수의 고성능 탄도탄을 보유한 러시아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를 충분히 돌파할 수 있으며, 주로 미국의 MD로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은 대륙간탄도탄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중국일 것이라는 것이 주류 학계의 인식이었다. 그러나 MD 문제와 관련해 폴란드와 체코에 핵미사일을 조준하네 마네까지 들먹이면서 요란을 떨고 있는 것은 러시아지 중국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유럽재래식무기감축협정(CFE), 중거리핵전력협정(INF), 전략무기감축협정-I(START-I) 같은 러시아가 당사국인 주요한 군축조약의 이행 혹은 연장과 관련해 일제히 먹구름이 드리워지는 것 또한 우연한 일이 아니다.

지도자 개인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부시와 푸틴의 관계는 부시가 장쩌민이나 후진타오와 가졌던 관계보다 훨씬 좋았다는 게 일반적인 평이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가장 시끄럽게 부시의 대외 정책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며 대응책을 강구한다고 요란을 떨었던 나라는 미국의 다음 표적일 것이라던 떠오르는 스타 중국이 아니라 이빨 빠진 곰 러시아였다.
이는 미국의 주먹이 어디를 향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실질적으로 말해 미국은 떠오르는 강호 중국과 정면으로 맞붙어 싸우는 대신 쓰러진 전 챔피언 러시아를 두들겨 재기불능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상하이협력기구(SCO)

한편 21세기 들어 미국이 반공개적으로 구소련 지역에서 색깔 혁명을 지원하여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자, 예상치 못한 반동이 등장하였다. 그것은 친미진영에 서 있던 중앙아시아 구소련 계승국가들의 이탈이었다.
원래 소련 해체 후 중앙아시아의 구소련 계승국가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크스탄 - 은 대부분 적극적으로 친미노선을 경주하였다. 이들 국가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구소련에서 지역공화국 서기장을 하다가 얼떨결에 소련이 해체되자 자신이 맡고 있던 나라를 꿀꺽 삼킨 인물들로 사실 미국과는 이념이나 노선 면에서 별로 일치하는 점이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소련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만큼 권력의 속성에도 정통해, 러시아의 영향권 근처에서 ‘내’ 정권을 지키려면 외부의 믿을만한 후원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깃발 색깔만 바꾼 옛 공산주의자들과 미국의 기묘한 동맹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은근한 후원 하에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키르기스스탄 등에서 연달아 친서방 시민혁명이 발생하자, 이들은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영향력에 굴복하는 것보다도 시민혁명으로 모든 권력을 잃어버리는 것이 훨씬 두려웠던 것이다. 구소련 계승국가 지도자들은 우즈베키스탄이 한 것처럼 미군 기지를 강제로 퇴거시키고, 미국과 친서방 야당세력에 맞서 그들의 권력을 지켜줄 든든한 외부의 후원자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인접국가로 그러한 대외원조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강대국으로는 중국과 러시아가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중국이나 러시아 역시 뱃속이 시커멓기로는 어디 빠지지 않는 나라들인지라 함부로 의존하다가는 잡아먹힐 위험이 컸다. 이들은 안전장치를 필요로 했고, 그것이 바로 상하이협력기구(SCO)였다.

SCO는 언론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반미동맹을 맺었다느니, 동방의 NATO라느니 여러 가지로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그 실체는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우선 러시아와 중국은 모두 자국이 정면승부로는 아직 미국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국력을 회복할 시간을 벌어야 하며 또한 자국의 후방지역인 중앙아시아에 친미국가가 들어서면 곤란하다는데 대해 공통의 이익을 갖고 있다.
한편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SCO라는 틀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끌어들여 서로 견제하게 함으로서 어느 한 쪽이 너무 큰 영향력을 갖는 것을 막으며, 자기 정권의 안전을 보장받고 싶어 한다.
이 두 가지 요소가 결합해 의미를 갖게 된 것이 바로 SCO이다.

이는 SCO가 자랑하는 소위 ‘반테러 연합 훈련’이란 것의 시나리오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그 시나리오란 소위 「테러리스트」들이 장악한 도시를 포위한 반테러 부대가 152mm 중포의 맹렬한 공격준비 사격과 항공기를 동원한 맹폭격 후 중화기와 전차의 지원을 받아 도시를 한 블록씩 소탕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소규모 테러리스트를 제압하는 특수부대 작전이 아니라, 반정부군을 분쇄하기 위한 훈련이다.
즉 SCO 회원국인 중앙아시아 모 국에서 반정부군이 도시를 점령하고 정권을 무너트리려고 들면, 중국과 러시아가 신속배치군을 동원해 이들을 묵사발내고 정권을 지켜 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연합훈련을 통해 전달하고 과시하려는 것이다.


유럽

유럽의 강대국, 영국, 프랑스, 독일은 지금까지 살펴본 전통적 강대국인 미국, 러시아, 중국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국제사회에서의 요란하게 힘자랑을 해 가며 국익을 다투기보다는 주로 미국에게 힘들고 더러운 일을 떠맡기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무임승차를 원하는 듯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분위기를 잘 전하는 일화가 있다. 2006년 5월, 미 하원 군사위원회 위원장 덩컨 헌터 의원은 예산 사정으로 조기 퇴역하는 미국 항공모함 John F. Kennedy를 NATO에 팔자고 제안했다.

“(일이 생기면) 미국은 T본 스테이크를 가져오는데, 우리 동맹국이란 친구들은 일회용 포크만 들고 온다. JFK 항공모함을 주면, 우리 동맹국이란 친구들이 국방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미국은 어떻게 하면 이들 부유하지만 전쟁을 거들 의욕은 별로 없으며 생색만 내는 동맹국들로 하여금 미국이 벌이는 전쟁에 좀 더 기여하게 만들까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냉전시대 적대 진영의 강대국들은 파멸적인 핵전쟁으로 귀결될 정면승부를 회피하는 한편 제3세계에서 대리전을 통해 적대국의 국력을 소모시키고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냉전은 끝났지만 오늘날 미국과 중국, 러시아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암투는 이러한 제3세계 투쟁의 패턴을 크게 벗어나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듯 하다.
by sonnet | 2008/02/15 16:51 | 정치 | 트랙백 | 핑백(3)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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