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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IMF
2008/12/15   시즌2 [73]
2008/10/24   시장원리주의의 종말 [43]
2008/07/07   괴담: IMF는 한 번뿐? [69]
2008/03/28   오늘의 한마디(James Tobin) [28]
시즌2
올 여름 쯤에 "IMF 시즌1과 시즌2 비교"라는 괴담 짤방이 돌아다닌 적이 있다. 97년과 08년은 강만수부터 시작해서 스타크래프트, 박찬호, 서태지, 허정무, 롯데 야구팀 성적 등등의 공통점이 즐비하다는 등의 내용이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보았으리라고 생각하지만 다시 보실 분은 예를 들어 여기 참조) 여기서 나머지들은 그냥 집어넣은 것이지만, 강만수가 1차 표적이고 그것을 지렛대로 해서 이명박이 2차 표적인 것은 다들 아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런 건 어떨까?

민주당 정권: 클린턴(97)→오바마(09)
로렌스 서머스: 부장관(97)→국가경제위원회 의장(09)
티머시 가이스너: 부차관보(97)→재무장관(09)

오바마 경제팀은 기본적으로 클린턴 팀의 업그레이드이고, 그 팀이 바로 97년 당시에 한국에는 tough love가 필요하다며, 이번엔 멕시코처럼 개별로 도와주지 않고, IMF로 가서 정식으로 구조조정 특훈을 받아야 한다고 결정한 팀이고, 그 실무를 맡은 가이스너가 97년에 IMF의 수석부총재 피셔와 함께 한국에 와서 임창렬을 상대로 IMF행 협상을 마무리지은 당사자라는 건 모두 사실이다.

이런 식이라면 역시 민주당 집권은 재앙이라며 맥케인이 떨어진 것을 안타까와 해야 하나 이거... 킥킥.
by sonnet | 2008/12/15 09:56 | 만담 | 트랙백(1) | 덧글(73)
시장원리주의의 종말
7~8년 전에 번역해 두었던 "Mr. Yen" 사카키바라의 글입니다. 저는 속칭 '신자유주의'라는 용어가 매우 모호하다고 느껴서 보통 시장 원리주의(market fundamentalism)이란 용어를 선호하는데, 사카키바라의 글은 그 개념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장원리주의의 종말(The End of Market Fundamentalism)
* 필자: 사카키바라 에이스케(榊原英資)
* 출처: Asiaweek
* 일자: 1999년 2월 5일

이 문건은 1999년 1월 22일, 일본 대장성 재무관(차관) 사카키바라씨가 도쿄 외신기자클럽에서 연설한 내용이다. 여기 드러난 관점은 개인의 것이며 일본 정부의 공식입장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그 유명한 “자유방임주의의 종말”이란 글을 발표했던 것은 1926년의 일이었습니다. 그 이래 역사는 대공황, “뜨거운” 전쟁과 냉전, 브레튼우즈 체제의 성립, 미국 달러의 금태환 정지, 오일 쇼크, 정보통신기술의 혁명 등을 거쳐 왔습니다. 20세기 말에 맞이한 현 상황은 한바퀴를 완전히 돌아 1920년대 말의 상황과 무척 유사한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대영제국의 패권(Pax Britannica) 아래서 1870년부터 1913년 사이에 자리를 굳혔던 고전적인 금본위체제는 적어도 GDP에 대한 국경을 넘은 상품과 서비스, 자본의 유통 비율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현 시대의 그것을 능가하기까지 하는 상당한 수준의 경제적 통합을 달성했습니다.

1919년에 발표한 새로운 시대를 연 소논문 “평화의 경제적 귀결”에서, 케인스는 당시의 보통 영국 사람들에게 있어 글로벌리제이션 혹은 세계 경제의 통합이란 “그것을 더욱 강화시키는 방향을 제외한다면, 정상적이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불변의 것으로 이런 방향으로부터의 이탈이란 몰상식하고 끔찍하며 피해야만 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기록했습니다. 1910년대에 유행했던 이와 같은 글로벌리제이션과 자유방임에 대한 뿌리 깊은 믿음은 1990년대의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한 나날이 커져만 가는 강력한 신념으로 재현된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정보통신혁명이 국제거래, 특히 국제금융거래를 완전히 바꿔놓았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글로벌리제이션은 금본위시대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르기는 합니다. 이러한 가상거래의 속도와 복잡성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이 큰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13년 이전에 존재했던 국경을 넘나드는 국가들 간의 강력한 상호의존성과 결부된 자유방임 이데올로기의 횡행은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전 세계를 빨아들여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글로벌리제이션과 결합된 대처-레이건 시대 이후의 시장 원리주의(market fundamentalism)의 우세와 매우 흡사함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지난 20여 년간에 걸친 시장원리주의의 물결이 금본위시대의 자유방임주의처럼 지탱불가능한 것으로 입증될 것인지 아닌지의 여부입니다. 예를 들어 조지 소로스는 시장원리주의는 1913년 이전에 보여주었던 사회 정치적 제도들에 대한 시장의 승리처럼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던 것으로 드러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소로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불건전하며, 계속 굴러갈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금융시장이란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것이며, (세상에는) 시장 세력들의 고삐를 풀어놓는다고 해서 충족될 수 없는 사회적 요구사항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국제자본체제를 불건전하고 지탱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시장원리주의입니다. 이는 비교적 최근에 벌어지기 시작한 사태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 국제자본의 이동은 제한되었고 브레튼우즈 체제는 자본이동이 부재한 상태에서 무역을 촉진하기 위해 설치되었습니다. 각종 규제는 점진적으로 축소되어 왔으며, 1980년 무렵에 마가렛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이 권력을 잡고 나서야 시장원리주의는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된 것입니다.”

“자유방임의 종말”이란 케인스의 선언이 이루어진 후 반세기가 넘도록 민간국제자본의 이동은 매우 제한적이었으며, 국제적 자본 중개의 부흥은 1970년대 발생한 두 차례의 오일 쇼크 후에야 벌어지기 시작한 (새로운) 현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소로스의 말은 옳습니다. 자유방임 이데올로기의 최신판인 「시장원리주의」는 대처, 레이건, 콜 같은 신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실현되었고, 이는 런던이나 뉴욕 같은 금융시장이 글로벌 자본주의의 핵이 되도록 새로운 힘을 불어넣었습니다.

금융자본 중심의 시장원리주의의 점진적인 침식은 1994~95년의 멕시코 위기와 1995년의 아르헨티나 위기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1982년의 멕시코 위기와는 달리, 이들 위기에서는 미국 이자율과 달러 가치의 급등 같은 외부 요소들이 위기를 촉발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1994~95년 위기 당시 다른 명백한 외부 요인은 없었습니다. 미국 시장을 포함한 제반 국제상황은 안정되어 있었으며, 멕시코와 아르헨티나의 경제개혁은 국제사회에 의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습니다.

일부 경제학자들, 예를 들면 루디거 돈부시 같은 이들은 1997년의 아시아 (외환)위기처럼 과대평가된 통화가 직접적인 요인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1994년에서 1998년에 걸친 위기를 통해 실질환율의 과대평가는 공황을 촉발시킨 요소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또한 1994년 멕시코와 아르헨티나의 단기부채는 그들의 외환보유고를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특히 1995년 초의 수개월 안에 갚기로 되어 있던 약 280억 달러 가량의 미 달러화 표시 단기 공공부채(tesobonos)는 당시 60억 달러밖에 없던 외환보유고 수준을 훨씬 넘는 것이었습니다.

1997년 중반 태국, 인도네시아, 남한의 민간 단기부채와 외환보유고 사이에도 비슷한 상황이 존재했습니다.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이는 민간의 단기 부채로 누적되어온 공공부채가 아니었습니다.

몇 가지 취약성의 징후가 증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사건, 정치적 불확실성, 혹은 대기업의 파산 등이 공황을 촉발시킬 때까지, 멕시코에서 남한에 이르는 이들 위기는 시장참여자들과 분석가들에 의해 예측되지 못하였습니다. 대출에 대한 리스크 프리미엄은 낮게 유지되었으며, S&P와 무디스 같은 신용평가기관들은 위기가 시작될 때까지도 국채에 대한 높은 평가를 유지했습니다. 많은 분석가들과 자본가들은 위기가 터져 나올 때마다 고도의 투명성이나 적절한 정보공개의 부재가 리스크를 적절히 평가할 수 없도록 방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객관적 증거와 자료들은 실질환율, 민간부문의 단기대외부채, 경상수지, 금융부문 대차대조표 같은 관련 정보가 대부분 가용했음을 보여줍니다.

문제는 이러한 정보들이 시장의 리스크 평가에 적절히 반영되지 않았다는데 있습니다. 특히 헤지펀드나 연금펀드 같은 비은행권 금융기관들의 행태를 본다면, 누구나 (제3세계) 신흥시장 리스크에 대한 합리적이고 상세한 계산이 이루어지기 보다는 군중심리가 지배적이라는 결론으로 기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소위 “합리적”인 계산이라던 LTCM 같은 사례에서는 어떤 안정된 균형이 당연히 존재한다고 가정했던 그들의 모델이 엉터리였던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들 위기의 세부사항들을 보다 객관적으로 살펴본다면, 사람들은 시장의 신뢰가 갑자기 뒤집어질 때마다 다양한 강도와 기간에 걸친 주기적인 공황이 발생하는 것은 자유화된 국제자본시장의 본질적인 불안정성이 보내오는 청구서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한 멕시코와 남한 위기는 이들 국가들이 OECD에 가입하여 그 기구의 자본자유화의 규칙에 따르기 시작한 직후에 벌어졌다는 것을 적시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1993년 이후에 이루어진 다섯 아시아 국가들 -남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의 자본계정의 상당한 자유화 조치 후, 1994년에서 1996년 사이의 3년간 대략 2,200억 달러에 달하는 민간자본이 이 지역으로 유입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시장 신뢰의 갑작스런 변심에 따라 1997년에 벌어진 자본의 역류는 대략 1,00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어떠한 나라나 지역도 장밋빛 환상에서 공황으로 급락한 시장 정서가 일으킨 민간자본흐름의 거대한 역류를 견뎌낼 수는 없습니다.

시장원리주의의 중심에는 왈라스의 일반균형모델 내지는 신고전파 패러다임을 널리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범위의 경제, 제한적 합리성, 비대칭 정보, 그 외 각종 시장의 불완전성 같은 관점에서 그런 모델들의 포괄적 적실성에 의심을 표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자화된 개인 그리고 이들 원자화된 개인과 기업들 사이에 어떤 안정된 균형이 달성될 수 있도록 거래를 중재하는 시장에 어떤 종류의 합리성을 가정하는 학설이 여전히 정통교리로 남아 있습니다.

조지 소로스는 최근 그가 내놓은 책에서 합리성과 원자성을 그가 정의한 “실패가능성”(fallibility)과 “반사성”(reflexivity)이라는 개념과 대조시킵니다. 이러한 개념들에 대한 소로스의 정식화는 사회와 역사에 대해 우리가 가진 상식적인 이해와 더 잘 들어맞습니다. 일단 우리가 개인들의 합리성과 원자성을 가정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즉각 어떠한 사회적 상호작용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 정지된 세계로 뛰어들게 됩니다. 우리는 자료들을 그저 조잡하고 간단한 수학적 모델로 분석할 수 있는, 움직일 수 없고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 객체로만 관찰하게 됩니다. 따라서 경제학은 역사와 사회가 결여된 채 자연과학의 고전적인 형태를 모방한 조잡한 과학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어떤 사람이 인류의 지식은 극도로 제약되어 있으며, 우리가 그 어떠한 데이터나 분석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미래는 그것이 개인적인 것이건 사회적인 것이건 예측불가능하다는 것을 용인한다면 우리는 케인스가 자신의 글에서 지적했던 대로 “우리 시대의 가장 큰 경제적 악은 리스크와 불확실성과 무지의 소산”이라고 손쉽게 결론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경제적 주체들의 한정된 지식과 제한된 합리성, 그리고 시장에 관여하는 주체들의 기간 간 상호의존성과 동시성을 고려한다면, 시장이 언제나 경제주체들로 하여금 안정된 균형으로 향하도록 인도한다고 결론짓기는 지극히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왈라스의 일반균형이론의 설정 아래서 고전파 혹은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경매관리인이 있어 시장에서 다양한 경제적 거래들을 성사시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공공 인프라스트럭처가 순조롭고 적절하게 동작하게 해준다고 상상함으로서 이들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가정합니다. 이때 비대칭 정보, 독점, 기만과 사기 같은 문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경매관리인은 “시장”을 운영하는데 있어 전지전능하다고 가정되기 때문입니다. 제도, 정치, 사회, 시장 사이에서 벌어지는 근본적인 문제들은 여기서 단순히 사라진 것처럼 치부됩니다.

1940년대 칼 폴라니가 적절히 지적했던 것처럼, 19세기의 자유방임체제는 시장 메커니즘의 필요에 사회가 몸을 맞추도록 강요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자유방임체제에서는 “경제가 사회적 관계들 속에 포함되는 대신, 사회적 관계가 경제체제 안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자유방임체제는 20세기 초부터 점차 해체되어 경제적 사회적 혼돈으로 빠져들었습니다. 폴라니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시장 메커니즘의 필요에 사회가 몸을 맞추어야 했기에, 시장 메커니즘이 가진 기능의 불완전성이 사회적 본체에 무거운 부담이 누적되도록 만들었다”고.

20세기 말인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상황은 이와 매우 흡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19세기 자유방임주의의 최신판인, 시장원리주의는 많은 나라의 사회에 시장 메커니즘을 강요하고 있으며, 잘못 동작하는 시장들이 다양한 사회 정치적 문제들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체제전환중이거나 신흥 경제권에서 그럼 문제가 현저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1998년 8월 17일 발생한 러시아 위기는 매우 상징적입니다. 러시아 사회와 통치체제를 시장 메커니즘에 적합하도록 개조하려던 7년간의 소위 “개혁”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충분히 발달된 시장경제로 변신하는 대신, 러시아는 사실상 경제거래의 상당 부분이 물물교환을 통해 이루어지는 제2경제를 만들어낸 것처럼 보입니다. 인도네시아 또한, 1997~98년 사이 IMF 프로그램 하에서 시장 메커니즘을 신속히 도입할 것을 강요당한 후, 현재 그 사회정치체제를 시장체제에 맞추기 위한 매우 괴로운 과정을 겪고 있는 중입니다.

1997~98년의 [아시아 외환] 위기들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 모두가 배운 한 가지 교훈은 그것이 환율이든 이자율이든 간에, 가격의 자유로운 움직임이 반드시 시장에서 균형을 회복시켜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많은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만약 환율 -예를 들자면 인도네시아의 루피 화- 이 충분히 평가절하된다면, 수요공급은 그 지점에서 균형을 이룰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기는커녕, 많은 경우 시장은 그대로 붕괴되고, 환율은 끝없이 떨어졌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다수의 균형점이 존재하는 경우라고 부르면서, 일단 우리가 한 균형점 근처를 벗어나버리면, 우리는 대혼돈 혹은 대폭발 상황으로 내던져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 체제는 균형점 근처를 제외하면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는 것이지요.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자유변동환율제는 위기상황에서 상황을 안정시키기는커녕, 외환거래만 붕괴시키게 될 것입니다. 똑같은 현상이 몇몇 위기상황에서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이자율을 끌어올릴 경우에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 높은 이자율은 국내외 자금의 수요와 공급의 안정적인 균형점을 이끌어내는 대신, 그저 광범위한 금융거래의 붕괴만 불러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것이 바로 1997년 말에서 1998년 초에 걸쳐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복수의 균형점의 존재와, 균형점 근처를 벗어날 경우에 발생하는 불안정성은 일반적으로 시장의 근본적인 특성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현상은 금융시장에서 특히 심합니다. 따라서 소위 과열-붕괴 순환이란 어떠한 금융 시장에서도 본질적인 속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이나 아시아의 금융 버블은 꼭 거시경제정책 단독의 실책에 의해 만들어졌던 것이라고 볼 수 없으며, 실패가능성을 지닌 시장참여자들이 다른 참여자들과 불완전한 통찰력을 갖고 상호작용하는 곳인 시장이 만들어내는 자연적 귀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양호한 거시경제정책과 함께 적절한 정보공개와 투명성을 확보한다고 해서 이런 유형의 위기를 반드시 예방할 수 있게 된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 지난 수년간 우리가 배운 점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1990년 4월, 존 윌리엄슨은 1980년대의 부채 위기 당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게 부과된 조건들을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이름으로 규정했습니다. 이 컨센서스는 그 이래 G-7 국가들과 국제 금융기구들이 1990년대에 글로벌 경제를 관리하기 위한 작업원칙으로서 사용되었습니다. 그는 이 컨센서스를 열 가지 정책 지침으로 정리하고 논의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 컨센서스란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시장과 건전한 통화”라는 구호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해두면 충분할 것 같군요.

우리가 지금까지 이 컨센서스의 자유로운 시장이라는 측면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해왔기 때문에, 이제 건전한 통화에 대해 간단히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1980년대와 그 이전에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몇 차례 경험했기 때문에, 정책 당국에게는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것이 절대적으로 요구되었습니다. 그리고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다루기 위한 이론으로서 통화주의는 가장 적절한 거시경제적 틀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따라서 1980년대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대한 정책논의를 할 때, 통화주의적 사고방식이 그 중심을 차지하게 된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IMF의 금융 프로그램들은 그 이론적 기원에서 상당히 통화주의적이었거니와 IMF의 사고방식의 주춧돌이기도 했습니다. 이 프로그램들은 1960년대부터 IMF의 서반구 담당부서로부터 기원한 것으로, 이 부서가 미주대륙, 주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을 담당했던 것(과 IMF의 정책이 통화주의적인 성향을 띄게 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습니다.

통화주의적 사고방식을 확산시킨 견인차로 작용한 또 다른 사태전개는 유럽 통합, 특히 유럽 화폐들의 통합이었습니다. 이들 국가들 간의 인플레이션율과 이자율의 수렴은 화폐통합의 핵심이었습니다. 따라서 재정적자의 축소와 견실한 통화정책을 통한 반 인플레이션 정책은 유럽 통합 정책의 열 가지 핵심 요소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통합과정의 핵심국가는 바로 독일이었는데, 이 나라는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처럼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악몽을 유산으로 갖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다고 칩시다. 하지만 통화주의가 하이퍼인플레이션이나 잠재적 하이퍼인플레이션에 맞서기 위한 기본 틀이라는 수준을 벗어나 거시정책관리의 만능 이론으로까지 숭배되면, 문제는 재발할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내 사무실을 방문했던, 국제통화기금의 한 국장은, IMF에서 그가 벌였던 어떤 실험에 대해 우스갯소리처럼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한 컨설팅 보고서에서 해당 국가의 이름을 지워버린 다음 그 문서를 자기 부서의 전문가들에게 회람시키고, 그들에게 그 나라의 이름을 맞춰보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나라는 비교적 작은 아시아의 한 개발도상국이었습니다. 그 보고서는 통화 공급, 국내 신용, 예산적자, 부채-서비스 비율 같은 워싱턴식 전문용어들로만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걸 보고 그 나라의 이름을 맞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신고전주의든 통화주의든 간에, 만능 이론을 개발도상국 경제에 맹목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국제기구나 정부 또는 민간 채권자들의 지배적인 관습이 되어버렸습니다. 사실 개발도상국들은 그런 처방을 거부할 경우 시장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을 우려해, 교조적인 규칙들이 일방적으로 부과되는 것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였던 면도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워싱턴” 컨센서스란 워싱턴에만 있는 컨센서스가 아니라, G-7 및 다른 IMF-세계은행 회원국들, 채권자뿐 아니라 채무자, 그리고 시장참가자들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완벽한 공조는 문제의 국가에 대한 과도하게 낙관적이었다가 비관적으로 돌변하는 기대를 상호 강화하였습니다.

아시아 위기는 이러한 워싱턴이 만들어낸 과도한 낙관주의가 공황으로 돌변한 좋은 사례인 것 같습니다. 아시아, 특히 동남아시아는 어떤 면에서 글로벌 자유방임 유형의 금융과 상업 거래에 잘 어울리는 지역이었습니다. 동남아는 워싱턴이 주도하는 글로벌리제이션을 전통적인 그들 자신의 글로벌 상업주의 구조와 접목시켜 왔습니다. 8세기에서 18세기 사이에, 아시아는 이슬람, 인도, 중국 상인들이 펼치는 세계 상업 활동의 중심지였고, 나중에는 베네치아, 네덜란드, 영국 상인들도 뛰어들었습니다. 따라서 그곳에는 금융 및 상업 양 면에서 국제 거래를 위한 인적 네트워크가 이미 갖춰져 있었으며 중국과 인도 같은 역외 국가들도 새롭게 떠오르는 국제시장에 신속히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시아 외환 위기 이후 우리는 워싱턴 컨센서스와 공명한 아시아적 전통이 몇 가지 심각한 문제를 품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시장은 아시아에 워싱턴 컨센서스를 실현함에 따른 이익이 클 것이라고 믿었으며, 아시아에 대한 낙관론은 계속되어 그 결과 1993년부터 1996년 사이에 거대한 자본의 유입이 일어났습니다.

아시아 상업주의와 금융과 통신기술의 글로벌리제이션의 결합이 가져온 주요한 측면 하나는 그것이 경제 구조의 겉면만 건드리면서 제조업 기반을 약화시켰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인 인프라나 제조업 보다는 금융센터 건설과 같은 서비스업과 부동산 산업에 프로젝트들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교육과 근로자들의 현장교육훈련, 기업의 조직 개선 등이 뒤처지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노동생산성과 효율 향상은 실질실효환율의 상승에 영향을 받는 수출산업에서조차 신통치 않다는 점을 폴 크루그먼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지적했습니다. 한때 갖고 있던 낮은 임금에 따른 경쟁력은 빠르게 소멸되었고 급등하는 사무실 비용 또한 상대적인 경쟁력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아시아 외환 위기는 워싱턴에 있는 국제기구들이 워싱턴 컨센서스를 일방적으로 부과해서 발생한 것만은 아니며, 이 지역의 거품을 만들고 결국 그 지역의 거품을 터지게 한 아시아 국가들을 포함한 전세계가 시장 메커니즘에 대해 과도한 낙관론을 품은 결과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러나 1997년 7월 이후 아시아에서 진행된 G-7국가와 국제기구들에 의한 위기관리에 심각한 오류가 있었으며, 적어도 초기단계에서는 그랬다는 주장은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전세계의 기성 관리들은 여전히 통화주의적 경향을 가진 신고전파 패러다임을 믿고 있었으며 그것이 초기 단계에 재정 통화 정책에 대한 처방이 너무 엄격했던 것과 국제기구들로 하여금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단시간 내에 이루기 힘든 비현실적인 구조개혁을 요구하도록 한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저 자신이 국제기구들의 의사결정과정에 직접 참여했었고 내켜서 한 것은 아니라도 결과적으로 [국제기구들이] 권고한 것에 대해 동의했었기 때문에, 저는 그런 일이 일어난 데 대해서 남들을 비판할 입장이 못 됩니다. 다만 저는 제가 앞으로 이와 비슷한 상황에 다시 직면하게 된다면, 일을 다르게 처리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뿐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일본의 입장은 새로운 국제 금융 체제에 대한 미야자와 대장상의 1998년 12월 15일 연설에서 명백히 공표된 바 있기 때문에, 여기서 저는 오늘날 새로운 국제 체제와 개발 전략 모두를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립이 강력히 요구된다고만 말씀드려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새로운 국제 금융 체제에 대한 문제들을 다루는데 있어서, 우리가 직면한 마지막이자 아마도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세계화에 대한 것일 겁니다. 지난 10여 년간 세계화는 빠르게 진행되었고, 앞서 제가 지적했던 것처럼 1990년대의 세계화의 원동력이 된 정보통신기술의 혁명은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다수파라고 생각되는 많은 사람들이 세계화 또는 세계화의 궁극적 목표는 즉 진정 글로벌한 자본주의를 수립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에 따르면 글로벌 자본주의란 실질적인(virtual)인 수준에 머무를 수도 있겠지만 바람직한 것이거나 적어도 컴퓨터와 통신기술의 혁명적인 발전 때문에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현재의 세계금융시장이 더 긴밀히 통합되었고, 24시간 내내 실시간 가상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혹자는 우리가 이미 글로벌 자본주의 하에 있다고, 적어도 선진국들 사이에서는 그렇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권국가들은 여전히 존재하며, 지난 1,20여 년 사이에 시장에 대한 주권국가의 직접 개입 수단은 상당히 쇠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정책과 포고는 어떤 근본적인 형태로 시장에 영향을 줍니다.

다니엘 예르긴과 조셉 스타니올라우 같은 필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후의 프로세스를 정부와 시장 간의 싸움으로 묘사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사실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정부와 시장을 대체관계라기보다는 보완적인 관계라고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한 것처럼 생각됩니다. 맞습니다. 어떤 사람이 시장 원리주의자의 관점과 공산주의자들의 시각에서 본다면 둘은 대체물로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1945년 이래의 전개는 그런 관점에서 분석될 수도 있습니다.

최소한 한 세기를 단위로 삼는 더 긴 역사적 시각에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페르낭 브로델에 따르면 역사에는 크고 작은 사건들, 장기지속이나 순환주기들, 그리고 구조라는 세 가지 시간단위가 있다고 합니다. 1945년 이래 50년 정도의 기간은 구조라는 단위를 갖고 분석하기에는 너무 짧으며, 순환주기나 순환주기의 일부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저의 잠정적인 관점은 1930년대에서 1990년대 후반까지의 시기는 대공황 이후의 강한 정부개입의 시기에서 시장 원리주의의 시기로 가는 장기순환주기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앞서 주장한 것처럼, 미국의 강한 영향 하에서 있던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시장 원리주의의 시기는 영국의 패권 하에 있던 1870년에서 1913년 사이의 시기와 유사한 것처럼 보입니다. 1870~1913년 사이의 금본위제 대신, 우리는 지난 20여 년 동안 실질적으로 미국 달러 본위 하에 있었습니다. 이제 문제는 이러한 새로운 버전의 자유방임체제, 즉 팍스 아메리카나가 컴퓨터 통신 혁명의 뒷받침을 받아 21세기에도 계속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저의 답은 여러분도 짐작하시듯이 부정적인 쪽입니다.

첫째, 사회주의의 사망 이후 한동안 보장된 것처럼 보이던 미국의 지배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기반이 쇠퇴하기 시작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는 얼마간은 유럽 통합 때문이고, 다른 얼마간은 근래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잠재적 반미 감정 때문입니다. 둘째, 가장 중요한 점인데, 글로벌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세계는 중대한 규모의 소동을 오랫동안 견뎌낼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기본 딜레마는 자유롭게 굴러가는 글로벌 시장과 주권국민국가 사이에 가로놓여 있습니다. 대니 로드릭은 칼 폴라니를 인용해 이 점을 아주 간결하게 지적한 바 있습니다.

“폴라니의 불후의 통찰력은 시장이란 사회적, 정치적 제도들 안에 포함되어 있는 한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의 결과를 규제하고, 안정화하고 정당화하는, 세 가지 기능을 제공하는 제도들이 없다면 시장은 살아남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제대로 굴러가는 사회라면 어디든 불공정 경쟁이나 사기를 규제하는 기구, 호황-불황의 경기순환을 완화해주는 통화와 재정 기관, 그리고 시장이 만들어낸 결과가 위험과 보상의 분배에 관한 한 사회의 선호와 합치되도록 도와주는 사회보험체제를 갖고 있는 이유이다.”

사회 정치적 기관이나 정부는 시장을 보완하고 지원하는 것이지, 시장과 경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부 대 시장의 문제를 규제 대 경쟁이라는 식으로 바꿔놓아선 안됩니다. 정부는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하며, 금융시장은 적절한 감독이 있을 때만 잘 동작하며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시장의 산출물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글로벌한 차원에서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는 우리가 단순히 이러한 글로벌한 기관들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책 독립성을 가진 주권정부들을 가진 이상, IMF나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들은 완전히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글로벌 자본주의를 보완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논리적으로 수행할 수 없습니다. 정책공조란 것은 어느 정도는 글로벌리제이션을 지원할 수 있습니다만, 주권이 존재하는 이상 글로벌 자본주의를 완전히 보완하기엔 역부족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쇠퇴하는 미국의 헤게모니는 오늘날 존재하는 공조의 수준을 떨어트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세계 정부나 미국 혹은 다른 단일 국가가 지배하는 세계 제국을 갖지 못하는 이상 글로벌 자본주의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논리적 결론일 수밖에 없습니다. 1990년대 초반에는 미국이 금융 제국에 근접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만, 20세기 말에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분명히 그렇지가 못합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는 어떤 형태로건 국민국가나 국민국가들의 연방이 남아있을 거라고 간주해야만 하며, 글로벌 자본주의의 해외거래는 구속될 필요가 있고 정보공개, 감독, 신중한 규제와 완전한 통제를 통해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시장의 원활한 작동을 해치는 일방적인 주권행동을 제약하기 위해 금융과 무역 양 분야에서 공통의 국제규칙이 수립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점은 효과적인 경쟁을 유지하는데 주의가 기울여져야 하는 것이지, 시장 참여자들의 무제한적인 자유를 보장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정책공조는 국내외의 전문가들로부터 나오는 실질적이고 전문적인 조언 못지않게 정치적인 레벨에서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주권국가의 정치적 의지는 글로벌한 정책 결정이 필요할 때도 존중되어야만 합니다. 이는 정책공조가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와는 반대로 정보혁명 이후의 시대에 공조의 필요성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만, 공조는 공조로 남아있어야지 강압이 되면 안 됩니다.

넷째는 셋째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만, 유효한 공조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각 국가들의 자본주의 구조 간의 상이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장은 그 국민국가의 사회 정치적 제도 속에 효과적으로 포함될 필요가 있으며, 그런 제도들은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여러 자본주의 형태들 사이의 상이점은 남게 됩니다. 각국의 자본주의는 합의된 국제적 규칙과 규제에 따를 필요가 있습니다만, 다른 나라의 국내적 규칙이나 규제에 동화될 필요는 없습니다. 세계 전체는 그 참가국들이 공통의 국제적 규칙을 받아들이는 한 참가국들의 체제적 다양성으로부터 이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21세기에 갈망하는 것은 각자의 고유한 문화와 사회경제적 체제를 지닌 각 지역과 국가를 상호 연결하는 글로벌 세계체제입니다. 다양성 속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은 다음 세기를 향한 저의 이상이며, 저는 이러한 글로벌 네트워크로 연결된 다양한 문명들의 공조가 시장 원리주의 같은 단일 이데올로기를 일방적으로 부과하는 것보다 더 나은 세계를 만들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by sonnet | 2008/10/24 11:09 | 정치 | 트랙백(2) | 핑백(4) | 덧글(43)
괴담: IMF는 한 번뿐?
잘못된 이야기가 여러 사람의 입을 타고 확산되는 게 보여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간단히 적는다.

이번에 외채로 문제 생기면 IMF는 없다. 국가외채 상환 보증은 한 번 뿐이니 말이다. (맨날 망하는 기업체 누가 보증 다시 서주겠는가.) (링크삭제)



IMF는 어떤 나라의 국제수지(balance of payment)에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 해결을 돕기 위해 설립되었다. 어떤 나라가 과거에 한 번 지원을 받은 적 있다고 더이상 도와주지 않는다는 바보같은 규칙은 없다. 예를 들어 영국(1956, 1976)이나 멕시코(1982, 1986, 1995) 같은 나라들이 국제수지 문제로 두 번 이상 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적 있다.

사실 채무국이 장기적으로 외채를 갚을 희망이 거의 없다 싶지만 않으면, IMF나 다른 채권국이 그 나라에게 도움을 줄 이유가 여럿 있다. 그것이 국제경제를 혼란스럽게 하는 공황심리의 확산을 차단함으로서 모두의 이익이 된다는 점도 그렇거니와, 문제의 나라에 돈을 빌려주었다가 물려버린 자기나라 금융기관을 구제한다는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위기에 빠져 거기 돈 빌리러 가는 것은 결코 즐거운 경험은 아니겠지만, 그건 또 딴 문제일 뿐이다.

좀 더 상세한 기록이 궁금한 사람은 wp0508.pdf 35-9쪽에 있는 table.7을 참조하라.
by sonnet | 2008/07/07 14:56 | 정치 | 트랙백 | 핑백(1) | 덧글(69)
오늘의 한마디(James Tobin)
IMF 양해각서에 서명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과 이를 감독하고지켜보고 있는 미셸 캉드쉬 IMF 총재. 이 사진이 물의를 빚자 캉드쉬는 "사진을 찍는지 몰랐다"고 해명했고 사람들은 이에 모두 크게 탄복하였다. (1998년 1월 15일)



나는 오늘날의 근본적인 문제는 그게 고정이건 변동이건 환율시스템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환율체제에 대한 논쟁은 핵심적인 문제를 회피하거나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 근본문제란 이렇다. 초과공급이나 수요에 반응할 때, 상품이나 노동시장의 가격은 환율 같은 금융자산의 가격보다 훨씬 둔하게 움직인다. … 그러니 여기에는 두 가지 방안이 있다. 첫째는 공통의 통화와 공동의 통화 재정정책, 경제적 통합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다른 대안은 국가와 통화지대 사이의 금융적 단절을 더 크게 만들어, 각국 중앙은행과 정부에게 더 큰 자율성을 허용하는 것이다 … (Tobin, 1978)


결론적으로 말해 Euro같은 통합화폐를 만들거나, 그렇지 않을 거라면 예를 들어…

국제금융의 바퀴에 모래를 좀 뿌리면 어때?
put some sand in the wheels of international finance

- 노벨경제학상(1981) 수상자, James Tobin -
by sonnet | 2008/03/28 15:06 | 한마디 | 트랙백 | 덧글(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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