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т Ильича до Ильича
by sonnet 2006 이글루스 TOP 100 2007 이글루스 TOP 100 2008 이글루스 TOP 100 2009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 100 2011 이글루스 TOP 100
rss

skin by 이글루스
태그 : FAD
2009/10/15   북한 기근이 FED라면 [248]
북한 기근이 FED라면
가능하면 이 글 단독으로 읽어도 이해에 무리가 없게 쓰려고 하긴 했는데, 원래는 앞의 글에서 이어지는 것입니다.


적하효과를 둘러싼 인식의 틀

적하효과를 둘러싼 양 진영의 현 입장은 경험적 증거에 대한 면밀한 평가를 통해 내려진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그런 경험적 증거를 적절히 제시하면 설득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지만, 현재 주어진 그 주된 판단 근거는 공정함(혹은 공정한 분배)에 대해 그가 적용하는 인식의 틀과 관계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우선 다음과 같은 상황을 떠올려 보지요.

두 사람 A, B가 파이 한 개를 나눠 먹기로 합니다. 공정한 분배를 위해 A는 다음과 같은 절차를 제안합니다. "내가 파이를 반으로 자를 테니, 어느 쪽을 먹을지는 네가 먼저 고르도록 해라."
B는 A가 파이를 어떻게 자르든지 관계없이 자신이 큰 쪽을 고를 수 있다고 생각해 흔쾌히 동의합니다. A 또한 B가 먼저 고르고 남은 조각을 집더라도 손해가 되지 않도록 자신이 잘 자르면 되는 문제라고 생각해 만족합니다.

이는 공정한 분배 결과가 보장되는 분배 절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있어 적하효과의 비유는 체계적으로 불공정한 분배 절차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A가 파이를 먼저 들어서 먹고 싶은 만큼 먹고 남은 것을 B에게 주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상당히 다른 상황을 떠올려 봅시다.

A는 음반을 판매해 수입을 얻는 가수입니다. 새 음반이 인기를 끌게 되자, A는 곧 자신의 신보가 파일로 복제되어 여기 저기 퍼져나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단속과 고발도 시도해 보았지만, 복제를 완전히 근절할 수는 없었습니다. 세상에는 A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정식 음반을 산 사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A의 노래를 즐기는 효용을 누립니다.

이 경우에는 사적 복제가 전혀 없을 때에도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복제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효용을 누리지만 그것이 없다고 해서 불공정한 것은 아닙니다. 바꿔 말하면 문제를 이런 식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있어서 적하효과는 예측 불가능하게 발생하는 일종의 덤입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외로 발생한 것이기에, 그것이 있건 없건 많건 적건 적절한 초기조건에서 출발했다면 결과의 공정성을 따질 거리는 못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아 물론 이 글을 읽으며 저작권 침해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할 분들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 상황과 비슷한 예를 하나 더 들기로 합니다. 이것은 실제 사례입니다.

방글라데시의 의류 산업은 후진국 경제성장의 놀라운 성공사례입니다. 1979년 이전에 전무하다 싶던 방글라데시의 기성복 수출은 방글라데시 총수출의 0.5%(1980/81년)에서 28.3%(1986/7년)로 급등합니다. 이 6년 동안 연평균 성장은 106%에 달했으며 25만 명의 고용을 낳는 주요산업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방글라데시는 저임금인데다 선진국들의 섬유 수출 쿼터 규제를 받지 않아 의류산업 발전의 잠재력은 상당했습니다. 하지만 방글라데시는 의류 제조, 해외 마케팅 등에 대해 아무런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이 나라 기업가들은 아무도 이 분야에 뛰어들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일은 꽤 우연하게 시작되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전직 관리였던 누르 카디르가 해외에 우회수출기지를 찾던 대우라는 회사를 만난 것입니다. 대우는 1967년부터 의류 수출을 해 왔고 이 분야에 충분한 경험을 갖고 있었습니다. 대우는 5년 간 제조된 의류에 공장도가 3%의 로열티를, 그리고 해외판매에 5%의 커미션을 받기로 하고, 카디르의 회사 '데시'를 위해 공장의 제조 설비 공급과 라인 구축을 책임지는 한편, '데시' 노동자들을 부산 공장에서 8개월간 OJT 훈련시켜 투입하기로 합니다.

대우의 OJT는 그때까지 개도국에서 유래를 볼 수 없이 철저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다수의 간부직원을 양성한 것입니다. 총 130명의 연수생이 관리자(4명)와 생산감독(97명), 생산직(29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점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또한 이들은 국제 시장에서 경쟁이 가능한 공장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현업에서 투입되어 충분히 보고 배웠습니다. 또한 공장이 완공되고 130명의 연수생들에 더해 370명의 국내 미숙련 인력이 투입되기 시작하자 대우는 15명의 선임 엔지니어를 투입해 품질관리를 지도합니다.

또한 대우는 가격경쟁력을 위해 한국에서 확립된 보세가공 제도를 소개하고, '데시'의 창업자는 전직 고위 관료로서의 영향력을 발휘해 방글라데시 정부가 이 제도를 도입하도록 합니다. 또한 대우는 견질신용장을 이용하는 금융기법을 전수하고 '데시'는 이를 방글라데시 국내에 도입시킵니다. 이리하여 데시는 성공적으로 국제시장에 진출하게 됩니다.

데시는 1년 반이 지나 국제경쟁력을 갖췄다고 판단되자, 대우와의 5년 계약을 파기해 버립니다. 배울 건 다 배웠다는 거지요. 데시는 기술협력의 중단에도 불구하고 이후 6년 동안 매년 90%의 성장률을 보이는 기엄을 토합니다. 하지만 배신 또한 데시의 전유물은 아니었습니다. 그 후 몇 년 사이에 한국 연수를 갔다왔던 간부 대부분(130명 중 115명)은 독립하거나 데쉬를 모방하려는 신생기업으로 전직했고, 1985년이 되자 방글라데시에는 700개의 의류제조업체가 융성하게 됩니다.

이 업체들의 급속한 성장은 직간접적으로 유출된 데시의 기술을 습득했을 뿐 아니라, 대우가 전수하고 데시가 국내에 정착시킨 각종 관세환급이나 금융제도를 대가 없이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이처럼 경제성장에 성공한 과거의 많은 후진국들은 경제개발 과정에서 자신보다 앞서 있는 나라로부터 지식 혹은 기술을 흡수함으로서 커다란 적하효과를 누리곤 했습니다. 물론 이런 현상은 국제적뿐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동일하게 일어납니다. 대우로부터 지식을 흡수했던 '데시'에서 퇴직자들을 통해 지식이 다시 유출되어 방글라데시의 섬유산업계가 형성된 것은 그 점을 잘 보여줍니다.

만약 대우가 방글라데시에 퍼져나간 지식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었다면 저 수익의 대부분을 독점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성공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요. 기술, 지식, 정보 같은 것은 본질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우니 말입니다.

CD 복제와 의류산업의 전파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긴 합니다. 그건 정보의 자유로운 전파를 규제하는 법적 권리, 즉 잘 정의된 재산권이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재산권이 있건 없건 완벽하게 지키게 만들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규범적 논쟁이 되면 법적 권리가 있고 없는 것의 차이는 작지 않은 것이죠.

현실에는 이 두 가지 상황이 다양한 비율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첫 번째 상황에 가까울 수도 두 번째 상황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는 애매한 경우들도 많이 있지요. 이런 식으로 규범적 성격이 강한 인식틀의 충돌이 문제가 되면, 대개 상대의 개종(?)을 노리는 치열한 투쟁이 전개되곤 하는데, 저는 그런 피곤한 일은 열정이 넘치는 다른 사람들이 하도록 내버려두려고 합니다.

제가 관심이 있는 것은 대북원조/경협이라는 구체적인 사안으로 범위를 한정했을 때, 양 진영의 입장에서 공통된 부분을 얼마나 끌어낼 수 있는지입니다. 만약 정권이 교체되어도 지속될 수 있는 최소한의 정책으로 수렴될 수 있다면 아주 좋겠지요. 그리고 그것은 양 진영이 자신들의 규범적 인식틀을 굳이 바꾸지 않더라도 적절한 실증적 근거를 제공하기만 해도 가능하지 않나 하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이제 오늘의 본론으로 넘어가 보지요.


FAD 기근과 FED 기근

기근에 대한 현대적 분석이론은 기근을 크게 두 가지 상황, 식량총공급량감소(Food Availability Decline: FAD)와 식량확보역량감소(Food Entitlement Decline: FED)으로 설명합니다. 그 중 (자연재해 등) 모종의 이유로 식량생산이 급감해서 기근이 발생한다는 FAD는 별 다른 설명이 필요없겠지요.

FED는 꼭 식량이 부족하지는 않은데도 불구하고, 식량을 구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있어 굶주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직관적으로 잘 와닿지 않기 때문에 사례를 좀 들겠습니다.

아마티아 센은 1974년의 방글라데시 기근은 전후 5년 중 가장 식량가용량이 많았던 해에 일어났다고 지적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이 해 홍수로 논이 쓸려나가자 농촌에서는 모내기 일감이 없어져서 실업이 발생합니다. 이 실업자들은 그날 벌어 그날 먹는 한계선상에 있던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한편 곡물부족을 예상한 시장에서는 가격이 폭등합니다. 수입은 끊어지고 가격은 폭등하니 이들은 굶어죽지 않을 도리가 없지요. 아이러니한 것은 추수 때가 다가오자 생각보다 홍수 피해로 인한 손실이 많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식량가격은 떨어지고, 기근은 끝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쯤에는 굶어죽을 사람들은 이미 다 굶어 죽은 후였습니다. 그 해 추수가 시작되기 전에 기근이 끝이 났다는 것은 그 홍수로 인한 식량 총공급의 감소는 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1840년대의 아일랜드 기근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이 기근은 감자마름병으로 인해 식량산출이 줄어들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감자마름병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가 포함된) 영국 전체의 식량은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식량산출이 줄어들면서 식료품 가격이 오르자 가난한 아일랜드인들은 대금을 치를 수 없었고, 아사자가 나오는 중에도 꾸준히 아일랜드에서 구매력이 더 앞서는 잉글랜드 등으로 식료품이 수출되었던 것입니다.

1943년의 벵갈 기근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식료품 구입에 우선권을 두어 불요불급한 지출, 좀 미뤄도 되는 지출을 줄이기 시작하고 이발사들이 큰 타격을 입습니다. 이 해 이발비와 곡물의 상대가격은 70~80%나 하락합니다. 이발사들이 다른 직종에 비해 훨씬 더 큰 타격을 입었을 거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자 이제 FED 기근으로 돌아가지요.

FED의 E(entitlement)는 번역이 좀 애매한 단어인데 각 개인의 종합적인 식량획득능력을 말합니다. 안정적인 수입을 주는 직장이 있거나, 집에 재산이 많은 것도 인타이틀먼트이고, 연금이나 배급수급권을 갖고 있는 것도 인타이틀먼트입니다. 좀 과격하게 말하면 매춘을 해서라도 입에 풀칠을 할 수 있다면 그것도 하나의 인타이틀먼트가 됩니다.

정리하자면 FED 기근은 적절한 분배가 보장된다면 모두가 굶어죽지 않게 분배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강한 인타이틀먼트를 가진 경쟁자들에게 밀려 약한 인타이틀먼트를 가진 주민들만 집중적으로 굶어죽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북한의 FED 기근 가능성

그럼 이제 북한의 기근이 FAD인지 FED인지가 문제가 되겠군요.

학계의 논의는 FAD 주도설과 FED 주도설이 모두 있습니다. FAD론의 대표격으로는 『1994-2000년 북한기근 발생, 충격 그리고 특징』(이석)을 꼽을 수 있고, FED론으로는 『북한기근의 정치경제학』(정광민)이나 『북한의 선택』(Stephan Haggard, Marcus Noland)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어느 쪽이 보다 지배적인 요소냐 하는 식의 차이이고, 공식통계를 중심으로 FAD 설을 강력히 주장하는 이석도 실제로 읽어보면 정광민이 주장하는 것 같은 인위적 FED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음(pp.169-173)을 발견하게 됩니다. 실제로 앞서 소개한 해외의 FED 사례들을 보면 시작은 식량생산 감소(또는 그런 예상) 같은 공급충격으로 출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FAD와 FED가 맞물려 있거나 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북한의 기근 문제에 대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자료가 적어 의견이 백출합니다만, 대부분의 연구자가 동의하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북한 기근은 전국적인 현상이지만 지역적으로는 함경도가, 유형별로는 농촌보다는 중소도시가, 직군별로는 노동자(와 그 가족)가 제일 큰 타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탈북자들도 이 지역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이 특징을 해명하는 것이 북한 기근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1) 배급제의 붕괴

북한은 지난 반 세기 동안 기본적으로 주민들이 배급제를 통해 식량을 얻는 사회였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식량 배급은 꾸준히 나빠져 왔습니다. 홍수 피해를 이유로 공식적으로 기근이 선언된 것은 1995년의 일입니다만, 실제로는 1987년부터는 식량수입이 급등하고 1991년부터는 전 주민을 대상으로 '두 끼 먹기 운동'을 진행하는 등, 90년대 초반 들어 이미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북한 기근 동안 WFP등 유엔 구호기관이 최소 칼로리 섭취를 위해 457g/1일을 목표로 구호활동을 펼쳤다는 것을 감안해 보면, 이 배급량은 이미 한계선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북한은 노동자 농민 위에 여러 층의 특권층이 자리잡고 있는 전형적인 계급사회입니다. 당간부, 관료, 군간부 등을 위해서는 각각 별도의 공급소가 있어 훨씬 풍족한 식료, 생필품, 주택 등이 공급됩니다. 그리고 지역적으로도 배급의 편차가 있는데 특권층이 사는 평양 등 대도시가 다른 곳보다 더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북한의 노동자에게 있어 배급은 사회보장제도가 아니라 급여의 대부분이었습니다. 어지간한 노동자의 급여가 먹고 살 만큼은 되는데, 혹시 그중의 저소득층이 굶을까봐 배급을 준다면 그건 사회보장제도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실질급여가 같은 사회주의권 대비로도 지독하게 낮아, 배급이 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이니까요.
배급이 실질급여의 약 85%에 해당

위 표를 보면 바로 알 수 있지만, 배급이 끊어질 경우 한 달 월급으로 살 수 있는 식량은 기껏 5일치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기근이 시작되었는데 식량 가격이 그대로 있을 리 없겠지요. 기근 중에 식량 가격은 적어도 다섯 배(또 다른 자료에 따르면 10~12배) 정도로 폭등합니다. 결국 한 달 월급으로 살 수 있는 식량은 단 1일분입니다.

이제 함경북도 북부탄전 지역의 탈북자 이야기를 하나 소개해 보지요.

여기 사람들도 식량난 이후에 어디 다른 지방으로 도망도 못가고 거의 다 죽었다. 농촌을 끼고 있지만 탄광 노동자는 노임에 매달려 살아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까 농촌에서 식량이 나오더라도 못 사먹고, 이 식량이 외지로 빠진다. 식량가격이 10원을 하든 20원을 하든 돈이 없으면 못 사먹는 것이고 100원을 해도 돈이 있으면 사 먹는 것이다. 돈이 있어야 사먹지? 그렇게 되어 있다(좋은벗들, 2000:347)

이는 전형적인 FED 기근 상황의 묘사입니다. 나치오스는 "기근으로 죽거나 가장 심한 타격을 받은 사람들은 스스로 식량을 재배하든, 식량으로 바꾸기 위해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 상품, 노동, 서비스를 갖춰 이러한 신흥 시장의 경제적 현실에 적응할 수 없었던 이들"(pp.4-5)이었다고 말합니다. 배급제가 붕괴되고 무슨 수를 써서든 각자 알아서 식량을 구해야 상황이 펼쳐지자, 이런 식으로 원초적인 적자생존의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2) 선별: 살릴 놈과 죽일 놈 고르기

앞서 북한 기근은 함경도, 노동자, 중소도시가 집중적으로 타격을 받았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제 그 문제를 한 번 살펴보지요.

농민-노동자
소련이나 중공도 대기근을 겪은 적이 있지만 그들은 늘 농촌에서 떼죽음이 일어나는 농촌 기근이었습니다. 북한처럼 도시 노동자들이 집중적인 피해를 입은 경우는 유례가 없습니다. 과거 소련이나 중공은 빠른 공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식량공급의 우선권을 도시 노동자들에게 주는 한편, 농촌을 쥐어짜 긁어들인 농산물을 수출해 공업화에 필수적인 기계류 같은 자본재를 수입하곤 했습니다. 따라서 조금만 상황이 안 좋아지면 가장 약자인(인타이틀먼트가 밀리는) 농민이 떼죽음을 당하는 FED 기근이 일어나는 건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농민이 살아남고 노동자가 집중적으로 희생된 것으로 보아, 기본적으로 소련/중공과는 인타이틀먼트의 우선권이 반대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가 농민을 조직적으로 수탈하지 않을 경우, 농민은 노동자에 비해 몇 가지 유리한 점을 갖고 있습니다. 우선 농민은 곡물을 빼돌리기에 좋은 입장에 있습니다. 실제로 수확 전에 들판에서 곡식이 도난당했다든가 하는 증언이 많이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텃밭 등 자급자족을 위한 부업 식량생산도 농민이 유리하기 마련입니다. 마지막으로 농민은 협동농장에서 1년치 곡물을 몰아서 받기 때문에, 주어진 식량을 장기계획에 맞춰 계획적으로 소비해 나갈 수 있지만, 노동자는 그럴 수 없습니다.

또한 노동자들은 그들 고유의 약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북한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의 연속이었고, 산업 붕괴로 공장 가동률은 20~30%를 맴돌았습니다. 많은 노동자들이 실제로는 반실업 상태에 있었고, 임금통장(돈을 찾을 수 없는 통장에 미지불급여액만 적어주는 것) 과 같은 형태로 급여를 지불받지 못하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게다가 북한 경제의 특성상 북한인들은 팔아먹을 수 있는 재산도 거의 없었습니다.


함경남북도
일반적으로 북한 기근의 시작은 1994년으로 봅니다. 그런데 다음 표를 보면 함경남북도 지역에서는 그보다 훨씬 일찍 배급이 줄어들었고, 기간도 길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언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지역은 도시화율이 높고, 농업에 부적합한, 즉 노동자들이 많은 곳입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이런 지역에서 배급의 중단은 거의 모든 소득의 상실을 뜻합니다.

여러 연구자들은 이런 현상을 궁지에 몰린 북한 정권이 정권 생존에 비교적 덜 중요한 지역을 전략적으로 버렸다고 봅니다.

그 증거로 ①동북부에 식량을 할당하는 WFP의 계획에 정부당국이 완강히 반대했다는 점, ②최초로 홍수가 발생하였던 1995년 8월부터 WFP 간부가 동북부를 방문한 1997년 5월까지, 외국 혹은 WFP의 인도적 식량지원, 상업 수입품이 동북부의 도나 동안의 항구에는 전혀 배급되지 않았다는 것, ③동북부 출신 난민의 다수가 무상원조 식량을 받은 적도 본 적도 없다고 하는 보고를 들고 있다.
대조적으로 북한의 특권층은 이 선별전략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우선적으로 배급을 받았다. 수해가 있었던 1995년도의 수확이 있은 뒤 조선노동당은 전국민의 약 4분의 1에 상당하는 조선인민군, 사회안전부, 군수공장, 각급 당기관원 등에게 과거의 지배, 결배 분을 포함하여 1년분의 식량을 배급하였다. 잔여 식량은 주로 에너지 전략부문의 탄광노동자를 중심으로 분배되었다. (정광민, p.190)


(3) 약탈적 중간 관리

마지막으로 생각해 봐야 할 점은 김정일(및 최고지도부)와 별도로, 북한의 중간관리들의 역할입니다. 전 세계 어디서든 난세에 가렴주구를 일삼는 탐관오리들의 학정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지요.

일단 구호식량이 빼돌려져 장마당에 매각되는 현상은 이들 중간관리들의 착복일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북한의 최고지도부는 한동안 장마당을 폐쇄하려는 헛된 시도를 계속한 것으로 보아, 이것이 김정일의 의사였을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배급제가 붕괴하고 원시적인 시장(장마당)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당,군,보안기관의 간부들이 자신들의 기존 권력을 이용해 축재를 꾀했다는 많은 증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식량을 입수하기 위해서 혹은 행상 목적으로 원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단속의 대상입니다. 이를 피하기 위해 권력기관에 뇌물을 써야 합니다. 또 탈북자들은 고리대의 등장을 보고하고 있는데, 이 또한 원활한 회수를 위해 당,군, 보안기관 등 권력기관을 끼고 하는 것이 상례라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북한에 등장한 비공식적 시장경제는 참여자를 보호할 법은 없고 주먹은 가까운, 빽있는 자가 체계적으로 승승장구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속성을 강하게 띄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과거 러시아의 민영화 사례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 경우에는 대기업 관리자들과 관료들이 자신의 기존 지위나 권력을 바탕으로 경쟁자들을 몰아내고 대거 과두재벌로 변신할 수 있었지요. 이런 식으로 규칙이 잘 작동할 수가 없는 혼란 혹은 전환의 시기에는 권력, 특히 중간이나 하급 관리들의 권력이 강력한 인타이틀먼트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리

글 서두에서 결과적인 분배의 공정에 높은 점수를 주는 규범적 인식틀을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길 했었습니다. 그런데 FED 기근은 전자의 규범적 인식틀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들은 평소에 시장이 만드는 결과가 늘 사회적으로 최적은 아니며, 특히 약자에게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주장하곤 합니다. 그런데 FED 기근은 그런 결과 중에서도 최악의 사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FED 기근은 한 마디로 식량확보능력을 놓고 우승열패, 약육강식의 투쟁이 벌어져 패배자들이 단체로 굶어죽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엔 각도를 좀 바꾸어 생각해 보지요. 이상적인 배급제, 즉 모든 주민에게 공평하고 효율적으로 동작하는 배급제가 동작한다면 그것은 FED 기근을 막는데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그런 배급제가 동작한다면 식량의 절대량이 부족해 FAD 기근이 일어날 수는 있어도 FED가 발생하기는 힘들 테니까요. 이런 의미에서 (기근의 가능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이상적인 배급제는 곧 이상적인 사회안전망의 한 가지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이것은 이상적인 이야기이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실의 배급제가 계급차별의 도구로서 작용하는 상황이라면 배급제 자체가 FED 기근을 만들 가능성은 여전히 남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측면에서 구호식량 분배를 적절히 모니터링한다는 것은 FED 기근을 방지하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반면 만약 식량이 전용되더라도 돌고 돌면서 간접적으로 시장 가격의 인하 압력으로 작용할테니 괜찮다는 생각은 FED 기근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는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모두 구매력을 유지하는 동안은 시장이 아주 강력하고 효율적인 기근대책이 될 수 있고 이 점은 활용되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구매력(인타이틀먼트)을 상실한 집단에게 이건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결국 제가 보기에 이런 입장을 견고히 지지하려면 우선 북한의 FED 기근 가능성을 강하게 반박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원래는 개발원조에 얽힌 이야기도 같이 하려고 했는데, 글이 길어져서 일단 여기까지만 합니다.


참고

방글라데시 의류산업
Rhee, Yung Whee, and Therese Belot. Export catalysts in low-income countries : a review of eleven success stories. World Bank, 1990. pp.3-19

기근론
Sen, Amartya. Development as Freedom. 1st ed. Knopf, 1999.
(박우희 역, 『자유로서의 발전』, 세종연구원, 2001, 7장)

북한 기근
이석, 『1994-2000년 북한기근 발생, 충격 그리고 특징』, 통일연구원, 2004
정광민, 『북한기근의 정치경제학』, 시대정신, 2005
Haggard, Stephan, and Marcus Noland. Famine in North Korea: Markets, Aid, and Reform. 1st ed.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7. (이형욱 역,『북한의 선택』, 매일경제신문사, 2007)
Natsios, Andrew S, and United States Institute of Peace. The Politics of Famine in North Korea. Washington, DC: U.S. Institute of Peace, 1999.
by sonnet | 2009/10/15 23:47 | 정치 | 트랙백(1) | 핑백(7) | 덧글(248)
<< 이전 다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