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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Euromaidan
2014/03/02   러시아의 입장과 '치킨 키에프' 연설 [23]
러시아의 입장과 '치킨 키에프' 연설

3월 1일, 오바마가 푸틴과 90분간 통화를 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오바마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계와 소수민족을 우려(러시아의 표면적 명분)한다면 적절한 대응은 우크라이나 정부와 직접 접촉해 평화적 해법을 찾는 것"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하는 것이 '우크라이나 정부와 직접 접촉'이다. 러시아는 이미 Euromaidan시위대 세력이 장악한 현 키에프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이런 주장에는 응하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러시아의 주장은 현재 우크라이나는 적법한 정부가 없는 혼란 상태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군을 출동시켜 현지의 치안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이유가 있다는 것이며, 이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현지 지방정부(크림 자치공화국)와 협력하고, 또 현지 지방정부는 러시아에 망명가 있는 야누코비치 대통령에게 충성을 표한다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다.

그럼 러시아가 주장하는 해법은 무엇인가? 사실 우크라이나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러시아가 명백히 제시하는 해법은 없다. "큰 몽둥이를 들고 말은 조용히 하라"는 격언도 있지만, 이번 사태에서 푸틴은 몽둥이를 뽑아들되 말은 아끼는 식으로 처신하고 있다. 이것은 어느 정도 계산된 행동으로 보이며,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방법으로 제시하기 위해 말을 아끼는 한편, "푸틴은 입을 놀리지 않는다. 주먹으로 설득한다" 같은 두려움을 주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 문제에 대해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것을 걸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러시아가 정작 원하는 해법을 분명히 내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이번 사태가 어떻게 흘러갈지를 예측하기 힘들게 만드는 제일 큰 요인이다.

다만 러시아 외교부 성명을 살펴보면, 2월 21일 합의(140221-UKR_Erklaerung.pdf)의 파기를 강력히 추궁함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주장은 다소 기이하게 들릴 수도 있다. 정작 러시아는 2월 21일 합의 과정에 대표를 파견했으나 서명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러시아 특사 루킨은 서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적어도 러시아가 무엇에 불만을 품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기 때문에 꼼꼼히 검토해볼 가치가 있다.

2월 21일 합의는 유럽 3개국 -프랑스, 독일, 폴란드- 가 파견한 외무장관 3명이, 야누코비치 대통령과 Euromaidan 시위대를 이끌던 야권의 세 정치인 클리츠코, 티야니복, 야체뉵 사이의 합의를 주선하고 참관인으로서 서명한 것이다. 그 주요내용은

1. 48시간 이내에 2004년 헌법으로 복귀하고, 10일 안에 여야가 모두 참여하는 거국일치 정부를 세운다.
2. 2014년 9월까지 헌법개정을 완료해 새로운 권력구조를 정립한다.
3. 새 헌법이 준비되는대로 2014년 12월 이전에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4. 그간의 폭력사태에 대해, 여야, 그리고 국제사회의 참여 하에 합동 조사를 한다.
5. 정부는 계엄을 선포하지 않으며, 정부와 시위대는 모두 폭력을 자제한다.
승자와 패자. 비탈리 클리츠코와 야누코비치


이 협의에 따르면 야누코비치는 새 대통령이 취임하게 될 2015년 초까지는 대통령 직을 유지할 수 있으며, 거국일치정부의 운영과 새 헌법 입법과정을 통해 여당인 '지역당'의 지분이 상당부분 보장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합의는 채 하루를 가지 못했다. 시위대 측에서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즉각 사임을 요구하며 밀어붙였고, 야누코비치는 수도를 탈출해 잠적했다. 그리고 합의를 중재했던 유럽 3국과, 나머지 유럽 국가들, 그리고 미국은 합의 준수를 요구하는 시늉도 하지 않은 채 당연한 듯이 승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러시아는 이를 쿠데타로 간주하고 비난했으나 서구 정부는 이를 가볍게 무시했고, 서구 언론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2월 27일자,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러시아 외교부 성명을 살펴보자.

"프랑스, 독일, 폴란드 외무장관이 중재한 2월 21일 합의는 여전히 실현되지 않고 있다. … 폭도들이 무장한 채 정부청사를 점거하고 있으며 전 우크라이나 지역들에게 명령을 내리겠다는 의도를 비추고 있다. … 거국일치 정부를 세우겠다는 약속이며 폭력사태를 공동조사하겠다던 약속은 잊혀졌다. … Maidan 세력들은 "승자들의 정부"를 세우려 한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모든 지역과 모든 정치세력의 이해관계가 빠지지 않고 대변되는 헌정체제만이 이 나라의 평화와 안정을 장기적으로 보장해준다고 확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 … 2월 21일 합의에 따른 의무의 실현은 (사태해결을 위한) 중요한 일보가 될 것이다."


여기까지 살펴보면 분명해지는 것은, 러시아는 현 키에프의 임시정부와 쉽게 협상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힘으로 러시아의 기를 꺾어놓을 것이 아니라면, 사태를 신속히 봉합할 수 있는 서구의 남은 대안은 키에프 임시정부를 압박해 그들이 쟁취했다고 생각하는 전리품 대부분을 토해 내게 하는 정도가 아닐까 한다. (제3의 선택은 소극적으로 키에프 임시정부를 지원하며, 불안정한 대결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그간의 전개를 되짚어보고 나면, 서구가 취했어야 하는 적절한 태도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생각컨대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민감성을 가장 잘 포착했던 이는 G.H.W. 부시 대통령의 'Chicken Kiev' 연설이었던 것 같다. 소련의 해체가 임박했던 1991년 여름, 부시는 키에프의 우크라이나 의회를 방문하여, 매우 조심스런 연설을 하였다.

그는 고르바초프의 개혁 노력을 추켜세운 후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멀리 있는 폭군을 가까이 있는 독재자로 대체하려는 식의 독립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종족적 증오에 기반한 자살적인 민족주의를 후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 연설은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자들의 반발을 샀을 뿐 아니라, 미국 국내에서도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 후에 대통령에 오른 그의 아들과 측근들도 이 연설을 비웃었다. 부시는 한참 뒤인 2004년의 연설에서 "당신네 지도자들이 현명하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모스크바로부터의 진압이 있었을 것"이라며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였다.

오늘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확실히 부시는 러시아에게 있어 우크라이나의 사활적 중요성을 정확히 이해했던 것 같다. 그리고 국내적으로 인기가 없을 게 뻔한 행동에 따른 불이익을 감수하는 용기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반 년 후, 우크라이나는 큰 충돌 없이 소련으로부터 독립하기도 하였다.

오바마나 이번 사태에 개입했던 유럽의 지도자들은 이런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서구는 제3세계의 반정부 시위를 종종 선이 악을 물리치는 이야기 쯤으로 읽는 경향이 있었고, 또 안일하게 대응하곤 했다. 선악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맞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이 건에는 러시아라는 강대국의 사활적 이익이 걸려 있었다. 러시아는 '중재자'들이 전혀 약속을 지키게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자구책을 꺼내들었다. 또 다른 안일함의 증거는 "행동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위협을 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전혀 지키지 않은 것이다. 푸틴이 몽둥이를 뽑아 들고 패를 같이 까보자고 하자, 서구의 허세는 여지없이 폭로되고 말았다.


2월 21일 합의가 뒤늦게라도 준수되는 것이 지금도 러시아의 목표인지는 불확실하다. 사실 푸틴의 입이 아니라 외무성에서 나오는 정도로는 그냥 명분을 위한 명분일 가능성이 상당하다. 하지만 적어도 고위급 접촉을 통해 확인해볼 가치는 있다. 오바마의 전화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그냥 'maidan 정부를 승인해라'는 입장을 고수하면 확인도 안 된다고 보아야 한다.
by sonnet | 2014/03/02 23:00 | 정치 | 트랙백(1) | 핑백(1) | 덧글(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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