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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CDC
2009/08/28   돼지 독감 사태: 허깨비 전염병에 대한 의사결정과정(5) [20]
2009/05/14   돼지 독감 사태: 허깨비 전염병에 대한 의사결정과정(4) [5]
2009/05/11   돼지 독감 사태: 허깨비 전염병에 대한 의사결정과정(3) [6]
2009/05/06   돼지 독감 사태: 허깨비 전염병에 대한 의사결정과정(2) [10]
돼지 독감 사태: 허깨비 전염병에 대한 의사결정과정(5)
다음은 1976년의 미국 돼지독감 사태에 대한 미 보건복지교육부 보고서인 『돼지 독감 사태: 허깨비 전염병에 대한 의사결정과정』, (Neustadt, Richard E., Fineberg Harvey V., The Swine Flu Affair: Decision-Making on a Slippery Disease, U.S. Department of Health, Education, and Welfare, 1978)을 발췌 번역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총 13장 약 100쪽 분량으로 되어 있는데 원서의 구성에 맞추어 총 13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여기 나오는 의학적/기술적 지식들은 30년 전인 1970년대 후반의 것으로 그 이후 벌어진 많은 발전과 발견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아울러 번역자는 의학/미생물학 분야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으므로 번역의 신뢰성을 보증할 수 없다. 여기 등장한 기술적 사항들을 참조할 경우 반드시 최신의 학계 의견을 다시 확인하기 바란다.
이러한 부적절함에도 불구하고 이 보고서를 요약하게 된 것은 이 보고서가 주제의 특정 측면에 대해서는 그간 나온 다른 어떤 연구들보다도 상세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의료 정책 결정 과정(decision making) 측면이다. 이 사건에서 잘 훈련된 전문가 집단과 그들이 추천한 정책을 전폭적으로 밀어주었던 정치인들은 큰 낭패를 보았다. 전형적으로 선의로 출발해 당혹스러운 결과로 끝난 사례였다.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 보고서는 돼지독감이란 소재를 다루지만 사실은 미지의 위협에 맞서 싸웠던 조직과 조직원, 의사결정자, 그리고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드라마이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사태를 보기 위해서는 당시 가용하던 지식의 관점에서 사건을 묘사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목차
  1. 신종 독감
  2. 센서의 결정
  3. 장관의 반응
  4. 쿠퍼의 지지
  5. 포드의 발표 (이 글)



5. 포드의 발표

포드 대통령은 다른 프로젝트 관련으로 [백악관 참모들인 예산실장] 린, [예산차장] 오닐, [국내정책위원회 부실장] 캐버너와 함께 한 자리에서, 보건복지교육부의 추가 예산 및 각종 부대사항 요청에 대해 처음 들었다. 3월 15일 월요일 오후의 일이었다. 3일 후, 포드는 매튜스 장관으로부터 더 자세한 보고를 받고 다음 주에 본격적인 정책검토를 하기로 약속하였다.

당시는 포드뿐 아니라 모든 관련자들에게 바쁜 시기였으며, 어떤 관점에서 보건 간에 돼지독감이 그의 의제 중에서 제일 중요한 항목은 결코 아니었다. 다른 여러 가지 사안들과 함께 대통령 후보 경선이 진행 중이었다. 포드는 뉴햄프셔에서 로널드 레이건을 근소한 차로 꺾고 다음 네 예비선거, 특히 레이건이 역전을 꿈꾸고 있던 3월 9일 플로리다에서의 일전에서도 승리하며 세를 불렸다. 같은 날, 포드는 흐리멍덩한 선거운동 책임자 보 캘러웨이를 체니로 교체함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했다. 하지만 포드의 자신감은 3월 23일 화요일에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레이건이 거둔 예기치 않은 승리로 흔들리고 말았다.

노스캐롤라이나 예비선거 전날, 린, 오닐, 매튜스, 쿠퍼, 체니, 캐논, 캐버너, 존슨은 대통령과 함께 보건복지교육부의 권고안을 검토했다. 포드는 린으로부터 사전에 자료뭉치를 받았는데, 거기에는 매튜스와 쿠퍼에게 질문을 던질 “발언 요점”이 딸린 관례적인 요약보고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센서의 실행 각서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리고 “대규모의 연방 돼지 독감 면역 프로그램을 둘러싼 불확실성들”이란 제목의 OMB 첨부자료도 들어 있었다. 린의 부하들은 여기다가 단기간 내에 그들이 생각해 낼 수 있는(또는 다른 경로로부터 얻은) 제일 곤란한 질문들을 모아놓았다. 이는 크게 주목할 만한 목록은 아니었다. 이것이 필요한 분들을 위해, 우리는 이를 부록 D에 수록하였다. 쿠퍼는 재빨리 그것을 받아넘겼다. 매튜스 혹은 쿠퍼의 참모들 중 누군가가 돼지 독감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다. 포드는 그것을 재빨리 훑어보았다. 그 자리에 동석했던 한 참석자는 포드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며 “그것을 … 팔랑팔랑 넘겨 나갔다”고 회고했다.

어떤 면에서 보든, 이날 토론은 어떤 정책을 취해야 하는 논거들을 든 후 예상되는 단점의 긴 목록을 나열하는 식으로 폭넓게 이루어졌다. 대유행은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으며 그렇게 되면 대통령은 낭비꾼, 얼간이, 공연히 민심만 흉흉케 하는 자로 비칠 것이었다. 반면 실제로 대유행이 덮치면 주 정부와 민간 부문은 사태에 압도되어 버리거나 혹은 “그들이 얼마나 잘 해내든지 간에 그것은 불충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터였다. 그러면 또다시 포드는 비난받고 얼간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백신이 빨리 준비되지 않을 수 있었다. 계란 공급의 불확실성은 궁극적으로 닭들이 하기에 달려 있었다. 농무장관은 이렇게 장담했다. “미국의 닭들은 자신들의 의무를 다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계란에서 얻어지는 백신의 수율이 기대하던 것보다 낮을 수 있었다. 그런 일들이 끝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참석자는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이건 정치적으로 이길 방도가 없는 포지션이라고 대통령께 말씀드렸다. 선거가 문제인 이상 여기서 좋은 일이 나올 수가 없었다. … 대유행이 찾아들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10월에 주먹을 흔들어댈 것이다. 그렇다고 대유행이 찾아들면 우리가 아무리 준비를 열심히 한다 한들 그게 충분할 리가 없으며 따라서 대통령은 가차 없이 두들겨 맞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자신들이 거의 비슷한 이야길 했다고 우리에게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 중 한 명은 당시 이런 생각을 했다고(그리고 아마 자기 기억에는 그 말을 한 것 같다고) 회고했다.

[CDC 소장] 센서의 각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우리가 그렇게 하려고 시도했더라면 그것은 (언론에) 유출되어 버렸을 것이다. 그 각서는 우리 뒤통수에 겨눠진 권총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와중에 포드 대통령은 다음 여섯 가지 문제 -백신의 부작용, 아동 투여량 문제, 보험회사 책임 문제, 전문가들의 견해, 공중보건총국(PHS)의 대민관계, 그 자신의 신뢰성- 에 대한 경고를 받지 못했다. 그렇기는커녕 그 백신은 안전하고 효과적일 것이라고 간주되었고, 보험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알려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위원회를 통해 확고한 견해를 표명했으며, 쿠퍼와 센서는 언론에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으로서 포드가 지게 될 위험 부담에 대해서는 지적이 있었고 아무도 여기에 대해 반대를 표명하지 않았지만,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을 받기 위한 불확실한 선거전이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이런 프로그램에 포드가 총대를 메고 나서는데 따르는 정치적 부담에 대해서도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 여섯 가지 문제들은 실제로 오늘날 관심을 가진 대중들 사이에서 이 예방접종 사업이 악명을 떨치게 만든 한 문제점들이었다. 포드의 측근들 대부분이 이제 와서 토로하듯이, 그 중 일부는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말도 일리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거기 동의하지 않는다. 참모들이 깊이 파고들어갔더라면, 적어도 그 각각의 징후는 어딘가에서 발견되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 자신이 추구하는 의제 때문에, 한 걸음 물러나 방관하고 있어서 또는 다른 업무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보고를 받으며, 포드는 이 문제를 단순하게 받아들였다. 정치는 여기 끼어들 틈이 없었다. 우리가 그를 면담했을 때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도박을 해야만 한다면, 우리는 신중함 쪽에 걸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골치 아픈 문제를 뒤치다꺼리하기보다는 미리 대비하는 쪽을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나는 [보건차관] 테드 쿠퍼와 [보건복지교육부 장관] 데이브 메튜스를 깊이 신뢰하고 있었는데, 당시 그들이 이런 문제가 밝혀졌다고 알려왔습니다. 이제, 테드 쿠퍼가 예방접종을 조기에 시행해야 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빠른 시일 안에, 특히 노약자 계층부터 말이지요. 그러니 그것은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적어도 주요한 기술적 문제가 없는 이상 말입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의 회고와 일치한다. 그중 몇몇은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은 또한 정치적이라는 점에 만족했다. ‘여기 국민의 이익을 위해 결단을 내릴 줄 아는 대통령이 있다’는 것은 레이건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길게 보아 포드가 지게 될 대중적 리스크에 대해 우려했다. 매튜스는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대통령께 이것은 결과가 어느 쪽으로 나오건 대통령 각하에게 있어 좋은 일이 될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안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대통령께서 꼭 직접 나서서 발표를 하실 필요는 없다고 진언했다. 원하신다면 제가 각하 대신 발표를 하겠습니다라고.


포드의 보좌관 두 명은 이 방안에 대해 말하길, 하지만 그들이 보기에 매튜스는 약한 인물이었으며 “우리는 그가 그릇이 작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대통령 본인이 확신이 있는 것처럼 보였으며, 몇몇 이들은 심지어 대통령이 돼지독감 프로그램을 자신이 직접 발표하여 대중들의 지지를 촉구하기를 원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당시에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두말할 필요가 없는 대통령 자신의 의무라는 것이다. “당신이 2억1천6백만 대중이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백악관의 선언이 필요한 사안이다.” 매튜스, 쿠퍼, 센서와 마찬가지로 포드 또한 직접적이고, 번잡한 고려사항에 좌우되지 않으며 고상한 영웅적 행위를 추진하는 데 따른 상쾌한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하여 매튜스의 제안은 추진되지 않았다. 쿠퍼는 그 발표를 그보고 하라고 했다면 자신은 아주 기쁘게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이 점은 센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윗사람들이 그냥 자신이 그 추가예산안을 하원 세출위원회에 가져가서 거기서 발표하게 해주길 바랐다. 이렇게 보면 쿠퍼든 다른 누구든 포드가 직접 발표해야 한다고 부추긴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3월 22일 회의는 최종 결정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대신 대통령은 자신이 과학 공동체를 대표하는 정부 외부의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을 때까지 결정을 연기하기로 하였다. 오닐은 우리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 점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저는 대통령께서 사전에 “과학자들”을 대표하는 인사들을 만나 보셔야 한다고 강하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사적인 대화에서 우리는 눈에 띄게 이의를 주장하는 사람을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 대통령께서는 당연히 그들의 과학적 판단에 깊게 의존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 나는 그들이 공개적으로 자기 견해를 표명하고 싶어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포드 그 자신이 자신의 신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순수하게 조언을 얻기 위해서, 이런 방안을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 매튜스가 그랬듯이, 포드도 1918년의 참사를 방불케 하는 돼지 독감 대유행이 “가능하다”라는 보고를 받았다. 하지만 그 확률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보건차관] 쿠퍼는 그 문제에 대해 그 어떤 숫자도 제시하는 것을 거부했다. 어쩌다 한 번은 1에서 99사이라고 말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만약 그 이야기들이 포드가 이해한 것과 같은 뜻이라면, 전례 없는 연방정부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그는 전문가들도 자신과 동일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 전문가가 있다면 그 사실을 알고 왜 그런지를, 또한 그들로부터 그 이야기를 직접 듣기를 원했다. 과학보좌관이 없는 상태에서(그 직위는 당시 공석이었음), 그는 (백신 제조 같은 일에 관한 전문가를 포함해) “최고의” 과학자들을 이틀 후에 직접 대면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고 요구했다고 회고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가 모든 과학적 관점을 망라할(a full spectrum) 것을 지시했다고 기억했다. 어느 쪽이든 간에 그는 첫 번째 회의를 그러한 언급으로 끝맺었다.

캐버너는 쿠퍼와 상의해 가며 요구받은 전문가들을 선정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리고 쿠퍼는 다시 센서와 메이어 그 밖의 다른 사람들과 상의를 했다. 그들이 뽑은 초청받은 전문가들의 명단에는 킬본, 스탤론스, 프레드릭 데이븐포트 박사(저명한 바이러스 학자), 모리스 힐레만(저명한 머크 사의 바이러스 연구소 소장), 그리고 최고의 권위자로서 세이빈, 소크 두 사람이 모두 포함되었다. 이들 두 명은 ACIP 위원회 밖에서 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 점은 캐버너가 보기에 ‘모든 관점을 망라’했다는 증거가 되었다. 또한 세이빈과 소크는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으로나 오랫동안 반목해 왔는데, 캐버너에게 있어 이 점은 만약 센서의 프로그램에 허점이 있다면 소크가 그것을 밝혀 줄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세이빈은 이미 지지 입장을 밝힌 바 있었다). 만약 서로 반목하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동의한다면, 이는 대통령에게 “가능한 최고의 지지”를 보장해 줄 것이었다. 그들은 어쨌든 간에 언론과 대중에게 최고로 잘 알려진 인물들이었다.

[ACIP 회의에서 보류의견을 냈던] 알렉산더 박사는 이 명단에 들어있지 않았다. 캐버너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몰랐고, 다른 이들은 그를 추천하지 않았다.

의회 의원들 또한 여기 포함되지 않았다. 여러 의원들에게 전화로 정보를 알리긴 했지만, 그 누구도 의원들을 그 회의에 초청하자고 제안하지 않았다. 가장 큰 관심을 보인 상원 분과위원회 위원장 에드워드 케네디는 건강보험 문제를 후퇴시켰다고 포드를 혹독히 비판한 바 있었다. 아무도 케네디를 추천하지 않았으며, 그를 빼놓는다면 달리 부를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사후적인 시각인지는 모르나 적어도 우리가 대화를 나눠 본 보좌관들은 그렇게 했더라면 “정치적”으로 보였든지 대통령이 자신의 결단에 따른 부담을 공유하기 위해 야당을 불러들였다고 해서 포드가 “약하게” 보였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3월 24일 오후 3시 30분, 포드는 캐비닛 룸에서 각 주, 미국의학협회(AMA) 등에서 불려온 과학자들과 다른 사람들을 만났다. 포드는 다수의 보좌관들과 보건복지교육부 관리들을 대동했다. 대통령은 제일 먼저 소크 박사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는 대량 예방접종을 강하게 촉구해 온 인물이었다. 뒷줄에 앉아 있던 보좌관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소크는 이렇게 회고했다.

대통령이 논평을 요청했을 때, 나는 인플루엔자가 정말 중요한 질병이며, 이 프로그램은 대중들을 교육하고 향후의 연구를 정당화할 기회라는 점을 지적했다. … 내가 그때 그렇게 이야기했던 것 같지는 않지만, 나는 분명히 그것을 [우리 주변의 항원들과 항체를 갖고 있지 않은 시민들 사이에 존재하는] “면역 간극”을 좁힐 중대한 기회라고 보았다. 우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간격을 좁혀야만 한다. 지금이 바로 기회이다 … 그것이 내가 이 프로그램을 본 관점이었으며 그러므로 나는 물론 그 프로그램을 지지했다.


세이빈이 소크의 뒤를 이었으며, 다음은 힐레만이었다. 그리고 대통령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동의하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는 테이블을 한 바퀴 돌면서 그가 정말로 그들의 견해를 원하는 듯이 의견을 물었다. 정말로 대통령은 그것을 원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초청을 받은 참석자들은 그 광경을 보았고, 대통령이 그들의 조언을 구했다는 사실이 그들을 흐뭇하게 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그들의 의견을 구했다는 사실이 또한 그들을 어리둥절케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평생 처음으로, 백악관으로부터 급작스런 호출을 받고 오자마자 대규모 공식 회의로 안내되어 대통령이 한 명씩 호명하며 의견을 묻게 되자, 우리가 인터뷰해 본 참석자 대부분은 그것이 “짜여진” “하나의 무대”였으며, 그들은 “배우”이고 … “의사결정은 이미 내려졌으며” … “우리들은 이용당했다”고 받아들였다.

실로 그것은 프로그램된 것이었으며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두 번이나 프로그램된 것이었다. 스탤론스가 우리에게 회고한 바에 따르면 그 전날 밤에 센서가 전화를 해서 언제 발언하면 좋을지, 그리고 대통령이 무엇을 질문할지에 대해 그에게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포드가 존슨으로부터 받은 “발언요지”는 비록 세부적인 사항에서는 달랐을지 모르나, 센서는 분명히 국내정책위원회가 짠 프로그램에 맞서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회의 진행 도중, 포드는 이 사업을 진행해야 할지 말지를 놓고 찬성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전원이 손을 들었다. 그는 그렇다면 반대 입장에서 어떤 이의나 반대 근거랄 만한 것이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긴 침묵이 이어졌다. 거기 참석했던 그 전문가들 중 한 명은 이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중에 나는 발언기회를 받아 “대통령 각하,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옳지 않을지도 모릅니다만, 우리가 이것이 진정한 위협임을 확신하게 될 때까지는 예방접종을 진행해서는 안 된다고 저는 믿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가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나, 그 말을 입밖에 꺼내지는 않았다.

그 자리의 참석자들에게는 그게 형식적인 것이었을지 몰라도, 대통령의 마음속에서는 그게 진심이었다. 회의가 끝날 때가 되자 대통령은 자신은 의구심을 느끼는 사람과 이야기를 해보고 싶으며 누구든 독대의 기회를 주겠다고 선언했다. 회의를 잠시 중단시키고 집무실에서 잠시 기다릴 테니 자신을 찾아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기다리면서 포드는 캐버너 및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가 할 발표문 내용과, 언제 그것을 발표할지를 검토했다. 바로 해치운다면 그 발표는 “기획된” 회의(맞다, 실제로 기획된 것이었다)의 인상을 강화시킬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만약 연기한다면 그날 밤 텔레비전 뉴스와 다음 날 아침 신문이 입이 싼 과학자들로부터 흘러나온 개별적 인터뷰들로 꽉 차버릴 가능성이 높았다. 돌이켜보면서 포드의 보좌관 중 한 명은 이렇게 회고했다.

… 결과적으로 추론에 바탕을 둔 새 기사와 사설이 범람하며 국민들을 겁먹게 만들거나 사람들에게 국가적 비상상황이 임박했다는 인상을 주고, 마치 대통령이 그런 상황에서도 결심을 내리지 못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었다.


또는 언론은 극적인 언론 이벤트를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끈다는 혐의를 대통령에게 씌울 수도 있었다. 그리고 포드 그 자신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만약 만장일치를 얻었다면 그대로 추진하는 것이 최선이오…”

그래서 그는 그렇게 했다. 그는 캐비닛 룸에 들러 세이빈과 소크를 동반하고 나머지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한 후, 그대로 옛 수영장 자리를 지나 브리핑 시설이 갖춰진 기자회견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좌우에 세이빈과 소크를 세운 채, 포드 대통령은 그의 결정사항을 발표했다.

저는 우리가 효과적인 대응책을 취하지 않을 경우, 돌아오는 가을에서 겨울에 걸쳐 바로 이곳 미국에서 이 위험한 질병이 유행하게 될, 매우 현실적인 가능성이 있다는 조언을 받았습니다.
현 시점에서 저는 분명히 지적하고자 합니다. 이 위협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나라의 건강을 지킬 기회를 그대로 지나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오늘 다음과 같은 대책을 발표하는 바입니다.
… 저는 4월 휴회 전에 의회에게 미국의 남녀노소 전원이 예방접종을 받기에 충분한 백신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1억3500만 달러의 예산을 승인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세이빈도 발언했다. 이어서 매튜스와 쿠퍼가 질문을 받았다.

기자들은 비교적 잘 준비되어 있었다. 캐버너에겐 분한 일이겠지만, 포드가 캐비닛 룸에서 조언을 받는 동안, 브리핑을 위해 “fact sheet”가 배포되었다. 아울러 일단의 백악관 보좌관들은 의회의 상임위원회 의장들과 다른 의원들에게 연락을 취해 사전 통보를 주었다. 이 내용들이 누설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틀 전에 NBC 뉴스의 존 코크란이 동업자들을 앞질러 월요일 회의에 대한 특종을 따냈었다. 기자들은 그날부터 돼지 독감에 대한 것을 맹렬히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는 중이었다.

알라바마에 취재원을 갖고 있던 코크란은 다음날 매튜스가 백악관에서 회의를 갖는다는 소문을 발판으로 보건복지교육부 장관실에 있는 취재원들로부터 회의 목적을 캐냈다. 그리고 그는 훨씬 더 마지못해 하긴 했지만 백악관 보좌관들로부터도 그 사실을 확인받았다. 백악관 관리들은 이 소식이 포드의 발표를 앞지르거나 대중에게 겁먹게 만드는 “선정적인” 방향으로 이용될 것을 우려했다. NBC가 솔직하고 신중한 보도를 내놓자 그들은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코크란과 CBS의 로버트 피어포인트,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그리고 곧 백악관 출입기자들처럼 그들이 던져야 할 질문으로 넘어갔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결정된 사안인가? 이들 두 사람은 그 답을 찾아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취재라는 관점에서 보면 두 방법은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코크란은 포드의 정치고문들의 목록을 훑어나가며 우리 생각에는 그들을 철저히 취재했다. 꼭대기서부터 바닥까지 훑어도 그들 중 이 문제에 열의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는 오래 지속된 인상을 만들었다. 그는 그 이후로도 정치인들은 전문가들의 요구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느꼈다는 견해를 견지했다.

피어포인트는 아틀란타 지국이 다소의 정보를 바탕으로 취재를 진행해 놀랄만한 소식을 얻어냈다는 말을 들었다. 현지 CBS 직원이 이 이야기를 추적하는 중이었다. NBC가 특종을 터트리자 그의 관심은 높아졌다. 그는 CDC 내부 직원, 전문직 취재원들, 관련 전문가들에게 연락을 취한 끝에 이 건의 깊은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이야기인즉, 현재까지 얻어진 증거에 따르면 전국적인 예방접종은 정당화될 수 없는 “미친 프로그램” 혹은 그 비슷한 것이라고 했다.

센서의 옹호를 보면서, 그들은 그것이 위에서 센서에게 가해지는 보이지 않는 압력 탓이라고, 알 수 없는 이유에서 출발한 모종의 “정치적인” 동기 때문에 그가 저항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의사들은 “과학적”이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해 “정치적”이란 용어를 쓰는 경향이 있었다. CBS 기자들에게, 그리고 특히 피어포인트에게 있어 그것은 이 사건에 대해 유일하게 말이 되는 설명이었다. 그는 그 점을 깊이 우려해 3월 24일 포드의 발표와 같은 기사에 자신이 취재한 내용을 함께 실어야 한다고 윗사람들을 설득했다. 그날 밤 크롱카이트 쇼에서 피어포인트는 이렇게 보도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돌아오는 가을까지 2억 명의 미국인들에게 예방접종을 실시하는 것이 실무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표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CBS 뉴스가 취재한 일부 의사들과 공중보건 관리들은 그러한 대규모 프로그램은 그게 필요한 지에 대한 충분한 증거도 없이 진행되는 조급하고도 무분별한 사업이며 그것은 더 흔한 유형의 독감을 예방하지도 못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포드 대통령과 다른 이들이 이 프로그램을 옹호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이 사업에 반대하는 이들은 공개적으로 그런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루가 지나자 3대 방송사는 모두 공개적으로 표명된 반론, 주로 공중보건 기득권층에 대해 상습적으로 비판해 온 시드니 울프 박사의 반론을 언급하였다. 하지만 피어포인트가 언급한 비판자들이야말로 CBS 내부에 깊은 인상을 남긴 사람들이었다. 피어포인트와, CBS 워싱턴 지국장, 그리고 적어도 몇몇 크롱카이트 쇼 프로듀서들에게 있어 포드의 예방접종 프로그램은 영원한 의혹의 대상이었다. 전문가들 눈에 의심스러운 것이니까 따라서 그것은 아마 정치적인 것일 게다. 그들 중 한 명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부패한, 뼈 속까지 썩은 사업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정치적 의사를 따라 출발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그것은 확실히 기술적인 관점에서 끝장이었습니다. 정당화될 수도 없고 … 불필요한. 그러한 인상은 바로 CDC에서 나왔습니다. 우리는 나중에도 울프에게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대통령 자신부터가 속은 것인지도 모른다. 피어포인트는 캐버너를 좋게 보았고, 그가 선량한 시민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 모두 기억하듯이, 피어포인트는 전화로 캐버너에게 (취재원은 밝히지 않은 채) 정부 내부에 의학적 이견이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캐버너는 깜짝 놀랐다.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쿠퍼[차관]도 들어본 적이 없고, 매튜스[장관]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질병통제센터 소장] 센서는 ACIP로부터 만장일치를 얻었다고 보고했고, 전화로 일일이 확인했으며, [식품의약청 생약제국장] 메이어도 자신의 자문위원회로부터 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했다. 센서의 투표는 다소 각색된 것일 수도 있었다. 한 위원이 우리에게 말하길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은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다고 했으며, 다른 위원은 백악관이 예방접종 프로그램을 밀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캐버너는 그런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다. 어찌되었든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일은 이미 저질러버렸으니까.
by sonnet | 2009/08/28 10:18 | 정치 | 트랙백 | 핑백(4) | 덧글(20)
돼지 독감 사태: 허깨비 전염병에 대한 의사결정과정(4)
다음은 1976년의 미국 돼지독감 사태에 대한 미 보건복지교육부 보고서인 『돼지 독감 사태: 허깨비 전염병에 대한 의사결정과정』, (Neustadt, Richard E., Fineberg Harvey V., The Swine Flu Affair: Decision-Making on a Slippery Disease, U.S. Department of Health, Education, and Welfare, 1978)을 발췌 번역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총 13장 약 100쪽 분량으로 되어 있는데 원서의 구성에 맞추어 총 13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여기 나오는 의학적/기술적 지식들은 30년 전인 1970년대 후반의 것으로 그 이후 벌어진 많은 발전과 발견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아울러 번역자는 의학/미생물학 분야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으므로 번역의 신뢰성을 보증할 수 없다. 여기 등장한 기술적 사항들을 참조할 경우 반드시 최신의 학계 의견을 다시 확인하기 바란다.
이러한 부적절함에도 불구하고 이 보고서를 요약하게 된 것은 이 보고서가 주제의 특정 측면에 대해서는 그간 나온 다른 어떤 연구들보다도 상세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의료 정책 결정 과정(decision making) 측면이다. 이 사건에서 잘 훈련된 전문가 집단과 그들이 추천한 정책을 전폭적으로 밀어주었던 정치인들은 큰 낭패를 보았다. 전형적으로 선의로 출발해 당혹스러운 결과로 끝난 사례였다.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 보고서는 돼지독감이란 소재를 다루지만 사실은 미지의 위협에 맞서 싸웠던 조직과 조직원, 의사결정자, 그리고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드라마이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사태를 보기 위해서는 당시 가용하던 지식의 관점에서 사건을 묘사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목차
  1. 신종 독감
  2. 센서의 결정
  3. 장관의 반응
  4. 쿠퍼의 지지 (이 글)
  5. 포드의 발표



4. 쿠퍼의 지지

(백악관 예산실장) 린은 이 문제에 대해 이미 좀 들은 바가 있었다. 그의 부실장인 폴 오닐도 그랬다. 오닐은 존슨 대통령 시절 백악관 예산실에서 촉망받던 젊은이로 (보건 프로그램 조사관으로 출발해) 고속 출세를 거듭했던 인물이었다. 오닐은 백악관의 “부책임자(deputy) 클럽”의 동료이자, 곧 비서실장 리처드 체니의 부실장이 될 제임스 캐버너와 이 문제를 상담했다.

캐버너는 그때까지 국내정책위원회의 부실장을 맡고 있으면서, “일상업무”(매일매일 처리해야 할 일들)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는 전에 이 위원회에서 보건담당을 맡고 있었고 직접 개입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의 후임자인 스펜서 존슨은 완전 신인이었다. 특출난 생존자인 캐버너는 (존슨 행정부의) 존 가드너 장관 시절에 보건복지교육부에 들어왔다. 그는 로버트 핀치 하에서 스태프로 계속 일했고, 보건담당 차관보 대행을 잠깐 맡은 후 국내정책위원회가 처음 설립되었을 때, 엘리옷 리처드슨이 존 에릭만에게 “빌려준” 인력이었다. 놀랍게도 거기서 캐버너는 살아남았고, 부통령 록펠러가 선택한 이 위원회의 실장 제임스 캐논이 장기적인 정책 문제에 집중하는 동안 포드 행정부 하에서 더 잘 나갔다.

캐버너는 좋든 싫든 이미 공을 받아든 상태였다. 쿠퍼는 출장을 떠나면서 그에게 사전 경고를 주었고, 딕슨은 센서 각서의 사본을 보내주었다. 캐버너는 그 사실 확인 작업에 착수했다. 확인을 위해 그가 선택한 인물은 옛 상사인 찰스 에드워즈 박사였다. 그는 쿠퍼의 전임자로 현재는 정부를 떠나 있었다. 캐버너에 따르면, 에드워즈는 캐버너의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은 센서와 입장을 같이 하며 그것이 “유일하게 가능한 방안”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쿠퍼도 3월 21일에 돌아와 이를 단호하게 지지했다. 캐버너에게 있어 이정도면 충분했다. 보건복지교육부 내의 2,3선 실무진들을 탐색하는 임무는 존슨이 이어받았다. 하지만 그가 아는 사람들은 로크빌에 조금, 그리고 애틀란타에는 거의 없었다. 캐버너는 그를 활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한편 신규지출이 관련된 일의 최종 결정을 맡고 있던 오닐은 자신의 보건 조사관들로부터 불평을 듣고 있었다. 이 부서의 과장이던 빅터 자프라는 2월 20일자 뉴욕타임스를 읽고는 그때부터 CDC가 파국을 외치며 들이닥칠 때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와 그의 부하들은 이게 과장된 이야기가 아닌지 깊이 의심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알렉산더의 우려사항 같은 것을 감지해내기에는(적어도 당시 가용했던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는), 그들이 공중보건총국 내부의 실무자들과 맺고 있던 관계가 너무 소원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의구심을 추정비용에 의문을 제기하는 고전적인 예산심의의 형태로 포장했다. 그들의 내부 보고서를 인용해 보면 이랬다.

공중보건총국은 조정가능기금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 우리는 1억 3천4백만 달러라는 추정액이 탄탄한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 우리는 대안적인 가정을 사용하고 연방과 주 정부 그리고 민간 부문이 책임을 나눠 맡음으로서 이 수치가 상당히 조정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술적인 관점에서 보면, 센서가 제기한 긴급성에 비추어 볼 때 이런 대응은 밀릴 수밖에 없었다. 오닐과 린은 이 보고서를 보았고, 그들 또한 이를 -특히 센서를- 미심쩍어 했지만, 그 점을 추궁하는 것은 삼갔다. 그들은 예산을 지원받기 위해 새 입법이 필요한지 여부를 물었다. 쿠퍼의 보좌관들과 예산심의관들은 아니라고 답했다(대답 치고는 너무 딱 부러진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하여간 받아들여졌다). 예산 이외에는 다른 것이 필요치 않다고 한다면 반대는 점차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캐버너는 다른 논점들을 알아보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 중에는 백신 생산은 즉각 진행하지만 그 배포에 관해서는 선택지를 가질 수 있도록 다소 기다려 보는 방안이 있었다. 그는 그 생각을 “보건복지교육부의 누군가”와 이야기해 보았는데 “폭발적 확산(jet spread)”을 이유로 안 된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는 반론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은 그 주위의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도 제기되었었다. 결정이 내려지기 전 주의 어떤 시점을 회고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회의 후나 뭐 그런 때였을 겁니다. 대통령과 부통령이 이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어요. 록펠러 부통령은 누가 펜타곤에 가서 병참 장교를 데려다가 “폭발적 확산(jet spread)”을 꺾기 위해 2~4주 사이에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예방접종을 완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을 세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건 우리에게 제시된 시간제한이었고, 그 시간은 전 국민 예방접종을 관리하기엔 너무 빡빡하다는 말도 들어왔었지요. 록펠러의 태도는 “보건복지교육부는 그걸 어떻게 해낼지 모를 거야, 하지만 내 생각엔 군대는 해낼 수 있을 지도 몰라.”라는 것이었지요. 그 생각은 후속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포드 행정부 내에서 록펠러 같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캐버너가 백신 생산과 예방접종을 분리하는 데 대해 진지했다 치더라도, 그는 그 사안을 밀어붙이지 않았다. 우리가 인터뷰해 본 바에 따르면 포드 주위의 다른 사람들 중에는 그 이야길 들어본 사람도 없었고,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해낸 사람도 없었으며, 그런 생각을 해냈다손 치더라도 좋아했을 것 같지 않다는 의견들이었다. 오닐은 이렇게 증언했다.

보건복지교육부가 논점을 제기한 것처럼 이 문제는 시간이 핵심이었다. 백신 생산 -계란 수급- 뿐만 아니라 겨울이 오기 전에 대중에게 보호를 제공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도 그랬다. 11월까지 전 국민에게 말이다. 그게 바로 센서가 말한 것이었다. 그런데 왜 두 번 결정을 해야 하는가? 지금 결정을 내리고 그대로 하자. 그가 내린 결정을 재확인하기 위해 백악관이 가외의 의사결정을 할 시간이 없다. 그렇게 주장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게다가 센서는 자기 안건을 밀어붙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리가 그 계획의 일부를 보류했다면 대통령이 어떻게 보였겠는가? 구두쇠? 돈 때문에 생명을 맞바꾸는? 우유부단한? 결심도 못한단 말인가?


게다가 이 사안은 이제 단순히 센서의 안건이 아니었다. 쿠퍼는 해외에서 돌아와 독자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쿠퍼는 센서가 의심을 받던 측면 -“장난질을 치는 게 아닌가”(manipulative)- 에 있어 신뢰를 받고 있었으며, 적어도 국내 위원회와 백악관에서는 그러하였다. 쿠퍼는 그의 부하들이 보고해오던 것과 마찬가지로 빈번히 센서를 신용하지 않았다. 센서는 800마일 떨어진 곳에서 자기 자신의 게임을 진행하고 있었으며 그렇게 해 나가는데 필요한 수단도 갖고 있었다. 이는 강력한 차관이라면 불화를 일으키게 만들 만한 족보였다. 쿠퍼는 확실히 그럴 의지를 갖고 있었으며 우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종종 불화가 있었다. 변덕스러운 사내인 그는 가끔씩 화를 터트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그는 스스로 센서의 명분을 향해 일시적인 전향을 보여주었다.

어떻게 이 둘이 이 순간 이 안건에 대해서는 같은 입장에 설 수 있었던 것일까? 이 질문은 흥미로우며 또한 중요하기도 하다. 그런 답은 알기 어려우며, 우리는 그 내막을 제대로 캐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찾아낸 바는 간단했다. 첫째, 쿠퍼는 센서의 전문적인 판단을 존중했다. 그리고 자신의 전공분야(심장외과) 이외에 대해서는 더 그랬다. 둘째, 쿠퍼는 센서의 제안과 잘 합치되는 개인적인 의제를 갖고 있었다. 보건 분야를 책임진 연방 기관의 지도자이자 그 책임의 수탁자(이는 우리 생각에 쿠퍼가 자기 자신을 보는 시각이었다)로서, 쿠퍼는 면역 사업과 다른 수단을 통해 질병을 예방하는 데 있어 민간인들 -부모들이나 의사들로 구성된 자발적 기관들- 의 의식을 고양할 방안을 모색해 왔다. 오늘날 이미 많은 전염병에 대한 백신이 존재하며, 앞으로는 아마도 신경질환에 대해서, 그리고 끝내는 암에 대해서도 예방책이 나올 수 있을 것이었다. 한 관련자는 이렇게 논평하였다.

쿠퍼는 자발적 조직들과 그들에 대한 우리의 의존성, 우리 앞에 놓여진 과제에 대비해 그들을 변화시키고 개선시킬 필요성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 그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자발적 단체들과 부모들로부터 지속적인 지원을 받으며, 예측할 수 없는 정부정책의 우선권 변화의 제물이 되는 것을 피해, 다음 발판을 향해 나가기를 원했다. 그는 예방의학의 수비범위를 확대하는데 열심이었고, 정부의 오락가락이며 … 닉슨의 경제정책 드라이브로부터 그것이 지켜질 수 있도록 민간 부문에서 그에 대한 지지가 나오기를 열망하고 있었다.


셋째, 의사였던 쿠퍼의 부친은 그에게 1918년에 대한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을 전해주었다. 그의 부차관보이던 딕슨의 아버지 또한 의사로 이 사건에 대한 음울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준 바 있었고, 그와 딕슨은 그 사건에 대한 이런저런 일화들을 주고받았다. 보건담당 차관보의 마음속에 “최악의 사태”의 가능성은 생생하기 짝이 없었다.

딕슨은 우리에게 이렇게 전했다.

쿠퍼는 진정으로 1918년을 우려하고 있었다. 펜실베니아 허쉬에서 벌어졌던 사건이 쿠퍼의 마음에 뿌리박고 있었다. 사람들이 너무나 빨리 죽어간 탓에, 그들은 군대를 동원해서 사망자들을 한데 파묻어야 했다.


따라서 쿠퍼는 “과학 공동체”, 즉 관련 전문가들의 견해로 뒷받침된다는 조건 하에, 센서가 그에게 처음 이야길 꺼냈던 2월부터 적극적인 행동을 취할 태세가 되어 있었다. 그는 CDC로부터 제기되는 모든 사안이 ACIP에 의해 검토되고, NIAID, BoB 및 그들의 자문역들로부터 지지받는다는 것을 확실히 하고자 했다. 모든 일을 남들에게만 맡겨 놓는 대신, 쿠퍼는 직접 (백신의 권위자인) 알버트 세이빈 박사의 견해를 물어보기도 했다. 세이빈의 소아마비 생백신(이는 미국에서 조나스 소크 박사의 죽은 바이러스 백신을 대체하였다)은 두 철에 걸쳐 1억 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최근의 전국적인 대규모 면역사업에서 사용된 바 있었다. 이는 센서가 이번에 추진하고 있는 사업에 비해 “두 번에 걸쳐 절반의 규모”였다. 센서가 ACIP 회의가 긍정적인 결론을 내렸다고 보고하기 위해 전화를 했을 때, 쿠퍼는 이미 세이빈도 이 사업을 지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쿠퍼는 센서가 갖고 온 안건을 자신이 지지해도 되겠다는 확신을 품은 채 카이로로 떠날 수 있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바로 그렇게 했다.

그러는 동안 그의 동료들은 대통령을 찾아갔다.

by sonnet | 2009/05/14 12:42 | 정치 | 트랙백 | 핑백(5) | 덧글(5)
돼지 독감 사태: 허깨비 전염병에 대한 의사결정과정(3)
다음은 1976년의 미국 돼지독감 사태에 대한 미 보건복지교육부 보고서인 『돼지 독감 사태: 허깨비 전염병에 대한 의사결정과정』, (Neustadt, Richard E., Fineberg Harvey V., The Swine Flu Affair: Decision-Making on a Slippery Disease, U.S. Department of Health, Education, and Welfare, 1978)을 발췌 번역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총 13장 약 100쪽 분량으로 되어 있는데 원서의 구성에 맞추어 총 13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여기 나오는 의학적/기술적 지식들은 30년 전인 1970년대 후반의 것으로 그 이후 벌어진 많은 발전과 발견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아울러 번역자는 의학/미생물학 분야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으므로 번역의 신뢰성을 보증할 수 없다. 여기 등장한 기술적 사항들을 참조할 경우 반드시 최신의 학계 의견을 다시 확인하기 바란다.
이러한 부적절함에도 불구하고 이 보고서를 요약하게 된 것은 이 보고서가 주제의 특정 측면에 대해서는 그간 나온 다른 어떤 연구들보다도 상세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의료 정책 결정 과정(decision making) 측면이다. 이 사건에서 잘 훈련된 전문가 집단과 그들이 추천한 정책을 전폭적으로 밀어주었던 정치인들은 큰 낭패를 보았다. 전형적으로 선의로 출발해 당혹스러운 결과로 끝난 사례였다.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 보고서는 돼지독감이란 소재를 다루지만 사실은 미지의 위협에 맞서 싸웠던 조직과 조직원, 의사결정자, 그리고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드라마이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사태를 보기 위해서는 당시 가용하던 지식의 관점에서 사건을 묘사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목차
  1. 신종 독감
  2. 센서의 결정
  3. 장관의 반응 (이 글)
  4. 쿠퍼의 지지
  5. 포드의 발표


3. 장관의 반응

센서의 각서는 3월 13일에 완성되었고 그는 그걸 갖고 워싱턴으로 갔다. 3월 15일 월요일 아침, 그는 긴급회의에서 매튜스 장관을 면담했다. 이 회의는 보건 차관 쿠퍼의 차관보 제임스 딕슨 박사가 준비한 것으로 그 자신과 메이어도 참석했다. 쿠퍼는 오래 전에 정해진 해외 일정을 지키기 위해 카이로에 가 있었다. 하지만 딕슨이 그의 대리였으며, 쿠퍼와 센서는 한 주 전에 전화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또한 쿠퍼는 필요하다면 바로 연락될 수 있도록 백악관 통신 시설을 섭외해 놓았다)

매튜스는 작년 8월부터 장관직을 맡고 있었다. 정중하고 기품 있는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일해 왔던 앨러배마 대학 총장직을 떠나 (그리고 일이 끝나면 돌아갈 예정으로) 그가 거의 알지 못하는 부처를 맡기 위해 왔다. 그리고 7개월은 이런 상황을 거의 바꿔놓지 못했다. 그는 쿠퍼의 부하들에게 대부분의 일을 맡긴 채 명목상의 책임자로 남아 있었다. 게다가 매튜스는 예방 의학에 대해 깊은 공감(deep feeling)을 품어왔다고 우리에게 털어놓았지만, 그의 부하들은 그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매튜스는 그와 자신의 부하들이 철학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편 아랫사람들과 이야기해 본 바에 따르면, 그런 생각을 알았더라면 깜짝 놀랐을 거라는 게 부하직원들 대부분의 의견이었다.

센서를 만나기 전에 매튜스 장관은 그의 평소 참모 회의를 가졌다. 쿠퍼를 대신해서는 딕슨이 참석했다. 매튜스의 업무방식은 그의 부서 책임자들과 핵심 참모들을 돌아가며며 확인하는 것이었다. 딕슨의 차례가 돌아오자 그는 돼지 독감 문제를 센서의 각서가 묘사한 대로 “강한 가능성”으로 묘사했다. 이 회의가 끝나자 그 뒤에는 1918년의 이야기가 남았다. 그 회의의 한 참석자가 우리에게 설명한 대로 “우리는 그것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이해했다 … 하지만 우리들 중 많은 이들이 터진다면 그게 어떠한 일이 될 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갖고 있었다…”

센서와의 회의가 이어졌다. 센서는 매튜스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는 자신의 각서에 의존하지 않았다(누가 그러겠는가?). 그는 그 내용을 확대 부연했다. 그는 이 회의를 위해 단단히 준비를 하고 왔고 분명히 이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 보건위생총국(PHS) 안에서 매튜스는 종종 “허깨비(phantom)”라고 불렸다. 내용도 잘 모르고, 관심도 없으며, 게다가 더 심각한 것은 백악관 예산실(OMB) 같은 핵심 부처에 대한 영향력도 없어서 너무 쉽게 퇴짜를 맞는다는 것이었다. 센서는 예산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었으며, 이미 여러 해 동안 그랬다. 포드의 예산실장이던 제임스 린을 위시해, 닉슨 대통령이 데려온 신 연방주의자들은 각 주가 재량껏 쓸 수 있는 자금을 배정하고 민간 의료계에 최대한으로 의존하는 방법을 선호했다. CDC는 결과를 보장하려면 재량자금을 제한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또한 CDC는 항목별 교부금으로 꾸려가고 있었고, 그것을 더 많이 바랬다. 공화당 행정부 하에서 백악관 예산실과 공중위생총국의 기획 참모들은 모두 새로운 지출을 보류하고 기존 예산을 삭감하려고 생각해왔다. 그들 생각에는 CDC를 통한 프로젝트 예산이 아니라, 주와 메디케어, 메디케이드와의 비용 분담이 가야 할 방향이었다.

센서의 각서는 그의 우려사항을 표현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우리가 중복예산, 제3자 변상, 연방-주 혹은 공공-민간 관계나 책임에 대한 평소의 고려사항들에 따른 통상적인 고려의 결과로 발생하는 관료적이고 프로그램에 입각한 경직성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이 과제의 어려움은 우리 보건복지교육부가 이 문제에 대해 성공 가능성이 없는 길을 받아들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비상한 대책을 추진하는 방안 중에서 택일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해준 것에 따르면 센서는 매튜스를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는 자기 자신의 메시지가 띄고 있는 진정한 위력을 과소평가 했든지 매튜스를 과대평가했든지 혹은 양쪽 모두였던 것이 분명했다. 딕슨은 이렇게 기억한다.

나는 그 문제를 매튜스에게 가져갔다. … 그가 내게 물었다. “확률이 얼마나 되오?” 나는 “미지수”라고 답했다. 내가 그 이야기를 하면서 매튜스의 얼굴을 보았더니 이 결정이 승인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매튜스 자신도 이에 동의하면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내가 센서와 딕슨으로부터 보고를 받았을 때, 나는 ‘정치적 시스템’은 모종의 대응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과학계의 컨센서스와는 동떨어진 게(인플루엔자 분야의 소수파) 아닌 이상, 다른 방안이 있을 리 없었다.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 설령 그들 중 일부가 나중에 말을 돌렸을지는 몰라도. 그러므로 그것은 불가피했다….
1918년이 재래할 가능성이 제기되자 … 누구나 가능성은 제로보다는 크다고 가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미지수”라고 말했다면, 그건 적어도 그들이 말을 해야 될 정도는 된다는 소리였다. 게다가 이번에는 적시에 알게 되었다면 행동을 취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여러분도 나중에 유권자들 앞에 서서 음 그러니까 확률이 너무 낮아서 우리는 행동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겨우 2~5 퍼센트 정도였거든요. 다들 아시겠지만 왜 그런데 공금을 써야 하겠습니까 라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우리의 ‘정치 시스템’은 그렇게 동작할 수도 없고 아마 동작할 수도 없을 것이다. … 그러니 다시 한 번 말해서, 이는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게다가 매튜스는 위험성을 젖혀 놓고서라도 그 취지를 지지했다고 회고한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센서는 틀릴 수도 있었지만, 주와 민간 의료계에게 의존하는 것을 선호하는 행정부의 견해는 예방접종 프로그램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이는 매튜스가 선호하는 바였으며, 그는 그 위험이 훨씬 멀리 있다손 치더라도 그러한 독감 프로그램을 추가로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딕슨은 매튜스의 반응에 대해 그 이상의 것이 있었다고 회고한다.

… 정치적으로도 안 된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 이상의 무엇이 있었다. 그 “미지수”란 것은 [매튜스에게] 인본적인 관점에서의 위험 … 생명 …을 전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에게 허술하게 다룰 수 있는 것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메이어는 보고 듣기만 하면서 끝까지 별다른 역할을 맡지 않았다. 이는 소극성이 아니라 신중함이었다. 그는 센서가 “반강매(hard sell)”에 나서는 것을 보면서 다소 불편함을 느꼈지만, 전에 장관을 만난 적이 없었기에 이런 경우에 나서야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문제와 결론을 장관에게 밀어붙이는 센서의 그 단호함과 확고함에 불편함을 느꼈다. 하지만 장관과 면식이 없는 상태에서, 논조를 놓고 센서와 논쟁을 벌이는 것은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다.


메이어는 두 가지 점을 지적했다고 회상했다.

첫째는 대유행 도래의 불확실성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경우 일어남직한 반응에 대한 것이었다. “모든 사람이 … 그 일에 말려들게 됩니다” 둘째는 합당한 기준에 비추어 충분한 백신을 확실히 제조할 수 있겠는지를 우려한 장관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서 “엄청난 과업”이지만 가능은 하다는 답변이었다.

이 회의는 그런 분위기로 끝났다.

그 직후, 혹은 조금 후에 매튜스는 우연히 갓 나온 어떤 신간에 대한 이야길 듣게 되었다. 알프레드 크로스비가 쓴 『독감의 유행과 평화, 1918』(Epidemic and Peace, 1918)란 책이었다. 매튜스는 즉각 여러 부를 사서 그걸 보건복지교육부, 예산부처, 백악관의 간부들에게 돌렸다. 장관은 포드 대통령에게도 한 부 보냈다.

3월 15일 오전 좀 늦게, 매튜스 장관은 (백악관) 예산실장 린에게 각서를 보냈다.

이번 가을에 대규모 독감 유행이 벌어질 것이라는 근거가 있습니다. 징후에 따르면, 가장 위험했던 유형의 독감이었던 1918년 독감 바이러스가 돌아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1918년에 50만 명이 죽었습니다. 이를 오늘날에 대입해보면 이 바이러스는 1976년에 1백만 명을 죽게 만들 것입니다.
이에 대해 적절한 보호를 제공하려면, 전 국민 예방접종을 위해 요구되는 약 2억 명 분의 백신을 준비할 시간을 갖기 위해, 업계는 지금 지침을 받아야만 합니다. 이 결정은 다음 주 쯤에는 이루어져야 합니다. (의회로부터) 추가적인 예산 승인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한 제안을 준비해야 합니다.


닷새 전에 열렸던 ACIP 회의 이후에 벌어진 이런 강화과정에 주목하기 바란다. 사태 발생을 예견하던 킬본을 예외로 하면, 다른 위원들은 자신들이 머릿속에 2~20 퍼센트 정도의 유행 확률을 예상했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이는 49:1에서 4:1 정도의 비율이다. 1918년과 맞먹는 강도로 유행할 것이라고 명시적으로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킬본은 상대적으로 약한(mild) 어떤 것을 예상했다. 다른 사람들은 전염성과 위중도를 각각 별도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2%의 2%가 되면 대단히 작은 숫자가 나오기 마련이다. 센서의 각서는 (거의 알아채지 못한 채) 이런 낮은 확률을 1918년과 “항원적으로 관련이 있는” 대유행의 “강한 가능성”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는 유행(spread)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위중도(severity)를 암시했지만, 정작 그 어디서도 직접 그렇게 말한 곳은 없었다. 월요일 회의를 마친 다음, 매튜스 장관은 이제 유행가능성과 위중도를 한데 묶어 가능성에서 확실성으로 바꾸어놓았다. “…벌어질 것”이며 인구가 두 배가 되었으니까 50년 전의 사망자 수도 두 배가 될 것으로 추산했다. 센서의 보고가 그를 그렇게 몰아갔는가? 아니면 그가 그냥 그 문제를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그가 자신의 상대역인 예산실장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 그랬는가? 아마도 모두 어느 정도씩은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by sonnet | 2009/05/11 11:22 | 정치 | 트랙백 | 핑백(4) | 덧글(6)
돼지 독감 사태: 허깨비 전염병에 대한 의사결정과정(2)
다음은 1976년의 미국 돼지독감 사태에 대한 미 보건복지교육부 보고서인 『돼지 독감 사태: 허깨비 전염병에 대한 의사결정과정』, (Neustadt, Richard E., Fineberg Harvey V., The Swine Flu Affair: Decision-Making on a Slippery Disease, U.S. Department of Health, Education, and Welfare, 1978)을 발췌 번역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총 13장 약 100쪽 분량으로 되어 있는데 원서의 구성에 맞추어 총 13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여기 나오는 의학적/기술적 지식들은 30년 전인 1970년대 후반의 것으로 그 이후 벌어진 많은 발전과 발견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아울러 번역자는 의학/미생물학 분야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으므로 번역의 신뢰성을 보증할 수 없다. 여기 등장한 기술적 사항들을 참조할 경우 반드시 최신의 학계 의견을 다시 확인하기 바란다.
이러한 부적절함에도 불구하고 이 보고서를 요약하게 된 것은 이 보고서가 주제의 특정 측면에 대해서는 그간 나온 다른 어떤 연구들보다도 상세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의료 정책 결정 과정(decision making) 측면이다. 이 사건에서 잘 훈련된 전문가 집단과 그들이 추천한 정책을 전폭적으로 밀어주었던 정치인들은 큰 낭패를 보았다. 전형적으로 선의로 출발해 당혹스러운 결과로 끝난 사례였다.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 보고서는 돼지독감이란 소재를 다루지만 사실은 미지의 위협에 맞서 싸웠던 조직과 조직원, 의사결정자, 그리고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드라마이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사태를 보기 위해서는 당시 가용하던 지식의 관점에서 사건을 묘사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목차
  1. 신종 독감
  2. 센서의 결정 (이 글)
  3. 장관의 반응
  4. 쿠퍼의 지지
  5. 포드의 발표



2. 센서의 결정

질병통제센터(CDC) 소장 센서는 유능하고 헌신적인 직원들을 거느린 영리한 관료였다. CDC는 전적으로 그의 것이었다. 그는 이 조직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모든 사람을 알며, 정책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돼지독감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3월 9일, 그는 다른 고위 관리들과 자기 연구소 직원들을 불러 모아 ACIP 회의를 준비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다우들을 인터뷰했을 때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이 바이러스가 퍼질 것이라고 우리가 말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했습니다. 하지만 포트 딕스에서 인간-인간 전파가 발생했다는 것도 분명했습니다. 또한 50세(혹은 아마 62세) 이하라면 대중들이 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전혀 없다는 것도 분명했습니다. 통상적인 ‘고위험군’ 범주가 적용될 수가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험했고, 특히 젊은 성인들이 그랬습니다. 독감이 대유행으로까지 번지는 것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예상해야만 했습니다.
… 육군 신병들은 독특한 인구집단이었습니다. … 그들은 유일하게 감염된 집단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가 현재 종적을 감추었다는 것이 그걸 증명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독감 바이러스는 이상한 행동을 벌일 수 있습니다. 6주는 짧은 시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대유행이 분명 가능성이 있다는 우리의 기본적 믿음을 보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과학자의 어법이었다. 오류를 입증할 수 없다면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우들은 또한 데이터의 결여에 대한 그의 당혹감을 회고하면서, 그렇게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의 행동이 CDC를 망쳐놓고 “그 사람들 모두의 삶을 바꿔놓았던” 것을 생각하며 안타까움을 떠올렸다. 인플루엔자는 미끈거리는 뱀장어 같은 현상이었다. 대유행의 전파 속도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별로 없었다. 1918, 1957, 1968년의 세 해를 제외하면 과거 사례는 거의 추측이었다. 그리고 이 세 해의 전파에 대한 기록은 이제 무엇이 벌어질지에 대해 정반대의 주장을 지지해 줄 수 있을 정도로 다양했다. 2월까지 돼지 독감은 돼지에게로 돌아가 버린 것일 수 있었다. 아니면 놈들이 다음 독감철이 돌아왔을 때 폭발적으로 분출하기 위해 “씨앗을 뿌리며”,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채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나가고 있는 것일까? 포트 딕스 같은 사건은 더 이상 없었고 그곳을 넘어 전파되지 않는 것 또한 과거 접해본 적이 없는 현상이었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추측을 해 볼 수 있었지만 알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추측이 난무했다. 다우들은 포트 딕스에서 금방 빅토리아 바이러스에게 밀려났던 돼지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퍼져 전 세계를 휩쓸 수 있다고 주장할 정도로 냉정했다고 한다. 그런 조건 하에서 그는 증상 없는 확산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다음 날 그들과 함께할 킬본이 그런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우리에게 말해 준 것처럼, 당시 바이러스 학자들의 위계서열에서 다우들은 떠오르는 소장파였던 반면 킬본은 존경받는 거물이었으며, 센서는 충분한 지식을 갖춘 관찰자라고 할 수 있었다. 킬본 정도로 ‘거물’임을 널리 인정받는 극소수의 인물들 중 그 누구도 위원회의 위원이 아니었으며, 그는 이해관계나 직위에 별 관계없이 그 자리에 왔던 것으로 보인다(그는 최근 한 회기 동안 일하도록 위촉받았을 뿐이며 그 회기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그의 참석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것은 그가 그랬던 것보다도 다른 사람들이 그 일을 회상할 때 더 비중 있게 간주되었다.

일부 역학자들의 명예를 위해 언급해 두자면 그들의 눈은 당시의 흥분을 기억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명철하게 반짝였다. 많은 CDC 사람들은 적어도 3월 9일의 다우들만큼은 냉정했다. 더 정확히 말해서 그들은 불안해하면서도 운명에 따랐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센서의 스태프 회의를 지켜보았던 그들 중 한 사람은 우리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이 사건은 CDC에게 골칫거리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CDC의 우리들은 한 독감철의 끝을 맞이해 다음 독감철이 돌아오기 전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려 하고 있었다. 시도해야 될 분명한 일은 모든 사람에게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일을 시도하고, 지도하고, 도움을 주어야 한다면 우리는 다른 질병들에 대한 수많은 업무들을 젖혀 놓아야 했다 … 이곳 CDC에서 각 주에서, 사방팔방에서 수많은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약 대유행이 온다면 수많은 사람들 -아마 수백만 명- 이 분노할 것이다. … 그들이 원할 때 예방접종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 혹은 그들이 독감이라고 잘못 생각한 다른 무엇 때문에 아프게 되면 우리의 예방주사가 효과가 없었다고 생각해서. 이 나라 사람들 대부분(의사들 중 절반을 포함해)은 독감이 아닌 오만가지 것들을 독감이라고 부른다. “1918년의 재래”에 대해서 말하자면 나는 그런 것을 예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누가 확신할 수 있는가? … 그건 우리를 파멸로 이끌 수 있었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 만약 대유행이 찾아오지 않으면 우리는 공금을 낭비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쓰게 될 것이다. … 울부짖는 늑대들 … 아무 것도 아닌 일을 위해 온갖 불편함을 무릅쓰게 하고 … 예방접종을 받은 사람들 뿐 아니라 … 예방접종을 감독했던 사람들 … 각 주에 흩어져 있는 우리 동료들 … 그들 모두가 우리를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이건 어느 쪽이든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 우리는 그런 상황을 보면서 … 그에 대해 이야기하고 …


하지만 조직 보호는 예방 의학의 윤리를 꺾지 못했다. 질병 예방은 CDC를 무엇보다도 아끼는 사람들을 포함해 그들 모두의 직업적 사명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함정에 빠진 상황이라고 느꼈다. 대유행의 가능성이 있고 뭔가 행동해야 할 시점에 서서, 그리고 그 오류를 입증할 수 없다면 그럼 뭔가를 하긴 해야 했다. 그리하여 센서가 자기 스태프들로부터 듣게 된 논리가 나오게 된다.

다음날인 3월 10일, ACIP 회의에서 CDC 스태프들은 현 상황을 상세히 보고했다(이는 물론 다우들의 기준에 따른 것이며, 조직 보호의 욕망에 따른 것은 아니었다). 기자들은 거의 참석하지 않았지만, 이는 공개 회의였다. 여러 시간에 걸친 토의 끝에 컨센서스가 형성되었다:

첫째, 대유행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 누구도 이것을 무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킬본은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그 가능성을 2~20% 쯤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 의견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그 자신만의 것이었다. 이런 가능성들은 결국 개인적 판단에 기초한 것이지 과학적 사실에 입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이제 와서 그런 자기 생각들을 우리에게 이야기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걸 갖고 논쟁하지 않았다.

둘째, 심각성은 추정할 수 없었지만, 열두 명 중 한 명이 죽었다는 것은 우려되는 사태였다. 게다가 모든 사람의 마음 속 어딘가에는 1918년의 망령이 맴돌고 있었다. 누구도 문자 그대로 똑같은 일이 재현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항생제가 사망률을 떨어뜨려 줄 것이었다. 사망자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이 바이러스가 그 정도로 심각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1920년대에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녀석은 가벼운 편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경미함이 보장된다고 나와서 주장할 수는 없었다. 그건 그럴 수가 없었다.

셋째, 전통적 의미에서의 고위험 그룹은 적용될 수 없었다. 50세 이하의 사람들은 자연 면역이 없었으며 젊은 성인들은 1918년의 대유행에서 비정상적으로 높은 사망률을 겪어야 했다. 이는 다음 독감철이 오기 전에 그들 모두에게 예방 접종을 하는데 충분한 백신을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모두란 ‘모두 혹은 가능한 많이’를 의미했는데, 이는 독감 전파를 꺾어놓을 정도로 “충분한 수의” 면역성이 몇 명인지를 추정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인플루엔자에 대해서 이런 규모의 사업은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었다. 1957년 이후로는 발견 시점이 그런 대책을 허용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당시에 우리는 그 후에 개발된 것만큼 안전하거나 혹은 효과적인 백신을 갖고 있지도 못했다. 빠른 접종을 위한 접종기도 없었다. 이제 어떤 결정이 내려진다면 제조업체들은 계란을 사들여 신속히 백신을 제조할 수 있으며, 예방접종은 여름, 즉 독감의 위험이 가장 적고 공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낮은 계절부터 시작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라면 대량 예방접종을 위한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었다.

모종의 성향이 이러한 컨센서스를 강화했다. 그 성향이란 여러 ACIP 위원들이 그들의 본업의 다른 측면으로부터 갖고 온 의제들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킬본의 경우 자신의 이론을 옹호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이 나라가 예방 의학의 가치를 깨닫게 하고자 열심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공중보건사업의 가치를 입증할 기회라고 느꼈다. 텍사스 대학 보건대학원 학장 라우엘 스탤론스 박사는 우리에게 이렇게 회상했다.

내가 보건전문의로서 살아온 훌륭한 삶에 대해 우리 사회에게 뭔가 보답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우리 사회는 내게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호의(do-goodism)에 따른 것이었지요. 이는 또한 인류의 이익의 편에 서서 역학이 쾌거를 거둘 기회였습니다. 압도적으로 많은 보상이 그간 인류에게 그다지 공헌하지 못했던 분자생물학에 쏠렸습니다. 역학은 보상이 주어지는 위계질서, 즉 밥그릇서열(pecking order)의 저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는 많은 인명손실을 줄이는데 열쇠를 쥐고 있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지지받은 컨센서스는 이 회의에서 결코 합의되지 않은 어떤 쟁점과 관련해서는 산산이 흩어져버릴 수도 있었다. 우리는 백신을 주문한 다음에는 자동적으로 그 사용을 준비하고 그 다음에는 사용해야 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이 질병의 확산에 대한 어떤 증거가 우리로 하여금 행동을 중단하고 대신 백신을 비축하게 만들 수 있는가? 반대로 어떤 증거가 우리로 하여금 비축해 놓은 백신을 대중에게 접종하게 만드는 기준이 될 수 있는가?

워싱턴 대학 보건대학원의 러셀 알렉산더 박사는 추가 증거가 확보될 때까지 멈춰 기다릴 것을 지지하는 주된 인물이었다. 그의 우려는 관리보다는 의학적 측면에 맞춰져 있었다. 당시를 회고하며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로는:

나의 기본 관점은 인체에 외래 물질을 집어넣는 데 대해서는 보수적으로 행동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언제나 옳은 방안이며 … 여러분이 2억 명의 인체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더 그렇다. 그런 필요는 보수적으로 추정해야만 한다.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없을 때는 하면 안 된다.


그는 또한 관리 및 대중의 이해와 수용에 관한 어떤 측면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관찰되는 많은 사례와 함께 진행되는 전염을 상대하고 있다면, 인근 공동체들도 진짜 행동에 나설 것이며 대중들도 독감이 새 장소에서 보고될 때마다 진정으로 협력할 것이다. 덴버에서 독감이 발생할 경우 시애틀에서 예방접종을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사람이 신속히 행동하기 때문인 것이다.


알렉산더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speech) 하지는 않았다. 그는 질문을 던지거나 가능할 때 논평을 하는 정도였다. 주장이 강하지 않은 사람답게, 그는 너무 온건했기 때문에 우리가 면담한 다른 위원들은 어렴풋하게 “비축”에 대해서 들었던 것을 기억할 뿐이었다. 그는 스스로 그것을 논쟁거리가 되지 않도록 다루었다. 과거 회의에서부터 신중함을 중시하는 목소리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이번에도 쉽게 평가절하되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방청객으로 가 있었던 뉴욕타임스의 쉬멕 기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증언했다.

알렉산더는 비축에 대해 진지한 입장인 것 같았다. 그는 어떤 시점이 되면 우리가 전 국민에 대한 예방접종 실시 준비를 중단하고 대신 비축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우리의 준비상황 진척도와 질병의 진행이라는 양 측면에서 어떤 시점이냐는 말이다. 그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물었다. 하지만 이 질문은 답변되지 않았다.


만약 그렇다면 “비축”이란 방법을 중요치 않은 것으로 치부해버리고 넘어간 것은, 기다려 보는 전략을 옹호한 알렉산더의 제안뿐만 아니라, 예방접종을 실시하기 위한 기준도 일축한 셈이다. 그리고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하는 데 실패한 것, 특히 기준을 그렇게 다룬 것은 돌이켜 보면 우울한 결과를 낳았으며 그로 인해 기회를 잃어버린 셈이 되었다. 이 점으로부터 우리는 다음번을 위한 교훈을 도출할 수 있다.

그들이 ACIP 회의에서 그 점을 캐묻지 않았던 것은 의장인 센서의 선택이었다. 제조로부터 예방접종을 분리시키려고 하는 다소 색다른 견해는 그를 피해갈 수 없었다. 특히 골드필드와 그 동료들은 뉴저지에 있는 그들의 관점에서 분명히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쏟아 내놓았을 것이다. 발언을 요청받았다면. 센서는 그 어떤 것도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전날, 센서는 자신의 스태프들과 비축에 관해 토론했고 그들은 그 안을 기각하기로 결정했다. 예방접종은 면역성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데 2주가 필요했다 하지만 감염에서 발병하는 데는 며칠이면 충분했다. 그 2주일 사이에 독감은 한 도시 전체를 충분히 휩쓸 수 있었다. 비행기 여행이 있는 현재, 모든 사람을 사전에 면역시키지 않고 어떻게 독감이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대응 시간의 문제가 있었다. 주 의료기관, 민간 개업의들, 자원봉사자, 일반 대중들, 그 모든 것이 문제였다. 심지어 작은 지연도 너무 긴 것이 될 수 있었다. “제트 속도의 전파”와 느린 대응이 결부되자 비축이라는 선택을 허황된 생각으로 만들었다. 바로 그렇게 스태프들이 말했다.

스태프들뿐만이 아니었다. 실은 어떤 시점에서 자신과 메이어가 센서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누구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들 중 하나가 센서를 위해 자기 견해를 언급하길(경험 많은 행정가가 다른 행정가에게 말해 주듯이):

사망자가 속출하는 대유행이 덮쳤다고 해 봅시다. 그럼 일은 이렇게 흘러갈 겁니다. “그들은 인명을 구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백신을 만들어 놓고는 그것을 냉장고에 넣어버렸다…” 이건 “그들이 아무 일도 안했다”라고 받아들여지지요. 그리고 더 끔찍하게도 “그들은 심지어 장관에게 예방접종 계획을 권하지도 않았다”라고 할지도.


이 문제가 ACIP로 넘어왔을 때 그들의 첫 번째 임무는 제조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었으며, 센서는 알렉산더의 의견을 더 들어보려고 시도하지도 않았고 골드필드에게 의견을 내어 보도록 권하지는 더욱 않았다. 3월 10일 회의는 백신을 제조한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호한 채로 끝나 버렸다. 회의 폐막 선언은 다음과 같았다: “이리하여 백신을 반드시 제조해야 하며, 백신 관련 계획(plan for vaccine administration)을 입안해야 한다는 합의가 내려졌습니다.” 우리가 면담해 본 모든 참석자들이 동일한 이야기를 했다. 그것이 그들이 합의한 다였다. 센서 자신도 그 점을 우리에게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ACIP] 회의에 열린 마음으로 참석했다. … 우리는 오전 내내 회의를 했고 … 오후 2:00 혹은 2:30 쯤에 컨센서스가 도출되었다. … 스탤론스가 결론을 잘 요약했다. 첫째, 인간-인간 전염이 되는 새 변종이 있다는 증거가 있다. 둘째, 과거 새로운 변종이 발견되었을 때는 언제나 그에 뒤이은 대유행이 있었다. 셋째, 사상 처음으로 대량 예방접종을 제공하는데 필요한 지식과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니 그는 말했다. “만약 우리가 예방 의학을 믿는다면 우리에겐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나는 위원들에게 하루 잘 생각해 보시고, 우리가 그들에게 내일 다시 전화를 할 테니 그들이 여전히 똑같이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달라고 했다. 우리는 전화를 했고, 그들도 동의했다.


센서와 그의 스태프들은 이 컨센서스의 실질적인 효과 측면으로 신속히 넘어갔다. 실무는 ACIP의 임무로 간주된 적이 없었다. 정부에 대한 정책제언, 입법, 예산확보, 계약 등등의 일은 그들의 소관이 아니었다. 실행은 센서의 업무였다. 하루를 넘겨 몇몇 CDC 간부들에게 전화를 했던 한 ACIP 위원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들 모두가 계획을 세우는 데 너무 바빠서 저와 거의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센서는 스스로 한 보좌관과 함께 모두에게 센서의 실행 각서(action-memorandum)라고 알려진 아홉 페이지짜리 페이퍼를 썼다. 그 과정을 통해 그는 연방 정부가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굳혔다고 회고했다. 그의 페이퍼는 그것을 알리고 그것을 홍보하기 위해 쓰인 것이었다.

이 각서는 센서의 상관이자 보건담당 차관인 시어도어 쿠퍼 박사가 보건복지교육부 장관인 데이비드 매튜스에게 보내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사실 이 문서는 매튜스 장관에게서 백악관 예산국(OMB)으로, 내정 각료회의로, 백악관으로, 포드 대통령에게로 이 사안에 대한 결정 문서인 것처럼 넘어 다녔다. 이 문서는 그럴 목적으로 쓰여 졌고 그렇게 기능했다. 따라서 이 문서는 우리의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이야기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센서는 그의 각서를 “사실들”로부터 출발한다.

1. 1976년 2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새로운 변종이 …
2. 이 바이러스는 45만 명 -10만 명당 400명 이상-을 죽게 만들었던 1918-19년의 대유행의 원인으로 간주되는 것과 항원상 관련되어 있다.
3. 아마도 50세 이하의 미국 국민 전원이 이 새 변종에 취약할 것이다.


6. 심각한 독감 유행 혹은 대유행은 대략 10년 주기로 벌어졌으며 … 1968-69년 사이에도 …
7. 다음 독감 철 이전에 … 백신을 개발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대량으로 생산하려면 제약업체들에게 비상한 노력이 요구된다.

센서를 포함해 CDC 관리들은 예나 지금이나 장관급이나 백악관 차원에서 1918년을 너무 강조했다고 우리에게 불평해 왔다. 그것은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다.

센서는 이어 “가정”으로 넘어간다.

1. 그런 독감 창궐은 단 한 번뿐이었지만 … 1976-77년 사이에 [돼지] 인플루엔자의 만연을 경험할 것이라는 강한 가능성이 존재한다. … 항원대변이 … 50세 이하의 인구 거의 전부가 취약하다는 것은 … 대유행의 소재가 된다.
2. … 일상적인 예방접종은 반드시 보완되어야 한다.
3. 현 상황은 “가느냐 마느냐”의 상황이다. … 현재 시간이 거의 없다 … 어떤 결정이 지금 내려져야 한다.
4. 인구의 어떤 부분집단이 제외되어야 한다는 의료-역학적 근거가 없다. … 예를 들어 누구나 이 병에 걸릴 수 있으며, 집단 면역(herd effect)에 의지할 수 없다. … 100%를 커버하지 않는 계획은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따라서 … 행동을 위한 어떤 권고안도 2억 1천 3백만 명을 3개월 안에 예방 접종시키는 것을 목표로 추구해야 한다고 … 가정해야 한다.

센서는 여전히 전 국민을 위한 백신에 대한 보증을 과장한 포드 대통령과 쿠퍼 차관에 대해 분노를 표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문건을 초안한 사람들은 그가 제시한 방향을 따라갔던 것이다.


센서 각서는 이어 권고사항으로 넘어가서 정부가 일반적으로 취할 수 있는 네 가지 선택지를 제시하는데, 그 중 세 가지는 독자가 자연스럽게 기각할 수밖에 없도록 짜여져 있으며 작성자가 희망하는 네 번째 보기에 도달하도록 되어 있다. 첫 번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 ‘장점’과 ‘단점’이 열거되어 있다. 단점을 볼 것 같으면,

- 행정부는 불필요한 사망자와 환자보다는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을 더 잘 감내할 수 있다.
- 의회가 독자적인 행동에 나설 게 거의 틀림없다.


두 번째는 “최소 대응”이다. 이는 CDC 내 일부 스태프들의 지지를 받았음에 틀림없다. 이 안은 전 국민에게 돌아갈 만큼의 백신을 만들고, 정부가 쓰이던 안 쓰이던 간에 그 중 일부를 보장(메디케어, 메디케이드, 보훈처, 국방부와 관련된 연방 급부 수취자들을 위해)하며, 다른 일부는 상업적으로 가용하게 하며 일반적인 경로를 통해 예방접종을 받도록 전 국민에게 권장하는 것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행정적인 관점에서도 쉬우며, 무엇 하나 새로울 게 없었다(백신의 양과 비용의 크기를 제외하고는). 하지만 ‘단점’ 중에는,

- 백신 제조업체들이 … 요구되는 … 대량 생산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 빈곤층, 준 빈곤층 및 노령층이 흔히 보호를 받지 못하며 …
- 아마도 대략 절반의 인구만이 예방접종을 받게 될 것이다.


세 번째 안은 민간 의료계를 제외한 연방과 주에 의한 “정부 프로그램”이며, 네 번째 안이 “복합적 접근법”으로 여기에 민간 부문의 역할을 더한 것이다.

네 번째 안이 추천되었다. 이 안이 그리는 바에 따르면, 전 국민을 위한 백신을 연방정부가 구매하며, 민간 업체들이 제조하고, NIAID가 임상시험을 맡고, BoB가 승인하며, 주를 통해 계획을 진행하고, 민관 합동으로 예방접종을 실시하며 CDC가 감시 책임을 맡도록 되어 있었다. 예상 비용은 1억 3천 4백만 달러로, 백신에 1억 달러, 나머지는 운영, 감시, 연구 비용이었다. 센서가 경고한 것처럼, “전례도 없고, 기존 메커니즘도 없다”는 점에서 행정적으로 이것은 어둠 속으로 뛰어드는 행동이었으며, 어떤 무시무시한 가능성에 대한 영웅적 대응이었다.

센서는 그런 권고를 하면서 자신의 마음속에 그 영웅을 그리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그가 그랬다면 그는 그렇게 한 첫 번째 인물이었다. 매튜스, 쿠퍼, 포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 뒤를 따를 것이었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이 행동 각서는 마치 궁지에 처한 행정부에게 마음에 드는 결론을 강요하도록 의도적으로 디자인된 것처럼 읽혀진다. 행정부는 이 보고서를 깔아뭉갤 수 없으며, 만약 그러면 언론에 유출되어 버렸을 것이다. 이 각서는 분명히 그런 효과를 갖고 있었지만 CDC 관련자들은 센서가 의도적으로 그랬다는 데 회의적이었다. 그들은 그가 “분별 있는 한 명의 의사”라고 생각했으며, 단순히 가능한 제일 강한 주장을 한 데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센서는 “뭔가”를 해야 한다는 막연한 느낌을 제조, 기획, 예방접종, 감시를 다함께 진행한다는 한 가지 결정사항으로 몰고 갔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을 백신 제조업자들과 그들의 계란 공급을 위해 정해진 메이어의 마감시한에 맞춰 묶어 버렸다. 그들의 계산에 따르면 데드라인은 2주 후였다. “갈까요, 말까요?”
by sonnet | 2009/05/06 07:25 | 정치 | 트랙백(1) | 핑백(5)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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