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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1984
2009/04/13   『1984』(2) [73]
『1984』(2)
철벽이 말을 걸 때 (초록불) 에서 트랙백


조지 오웰의 <1984>에는 오세아니아(나라 이름)가 유라시아(역시 나라 이름)와 전쟁을 하고 있다가 그 대상이 이스트아시아(물론 나라 이름)로 바뀌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순간 강단에 서 있던 연사는 유라시아의 잔학성을 성토하다가 그 메시지를 받는 순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합니다. 오세아니아는 이스트아시아와 싸우고 있다! 유라시아와 싸운다는 말은 적들의 음모다! 첩자들이 날뛰고 있다! 증오에 길들어 있는(1984의 세계에는 매일 "2분간 증오"라는 시간이 있고, 증오주간이라는 주간도 존재한다.) 사람들은 그 말에 열광적으로 반응합니다. 잘못된 포스터들을 찢어발깁니다. 합리성이란 존재하지가 않습니다. (초록불)


이 단락을 읽다가 음?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야기인데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것은 이런 이야기이다.


북한의 회담대표가 회담장 밖에서 오는 메모지시에 철저히 의존하고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1984년 4월 그해 7월 로스엔젤레스에서 개최될 제23회 올림픽 경기대회와 그 후에 개최될 아시아 및 세계선수권대회에 단일팀을 구성, 출전하는 문제를 토의하기 위하여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개최된 체육회담에서 북한측 대표들이 보인 행태는 그들이 회담장 밖에서 오는 메모의 지시에 따라 행동함을 보여준 유명한 일화이다. 남측 대표단이 아웅산 폭파사건에 대한 북한측의 책임을 묻자 북측 대표단은 성냥갑을 던지고 욕설을 퍼부으며 퇴장하는 순간이었는데, 판문각으로부터 메모가 급히 들어오자 북측 단장의 신호로 모든 대표들이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식으로 회담 테이블로 돌아와 “회담을 성과적으로 진행하자”는 식으로 태도를 표변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회담 현장에 나와 있는 북한 대표는 회담 진행 중에 CCTV나 VTR로 세세히 관찰되고 세세한 사항에 이르기까지 지시를 받는다. 따라서 북한측 대표는 회의에서 발언을 할 때 개인 의사를 한 마디도 첨가할 수 없으며 다수의 메모 쪽지에 의하거나 동석한 감시요원(통상 명목상의 제2인자)에 의하여 철저히 통제된다. 또한 그들은 중앙으로부터 지시가 내려오지 않을 경우 이미 한 발언을 다시 반복하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2001년 11월 금강산에서 개최된 제6차 남북장관급회담에 참가한 한국측 대표도 북한측 대표가 철두철미하게 회담장 밖에서 오는 메모지시에 따라 발언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자신이 앞에 앉아있는 대표와 회담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하였다.


그것은 중간관리들 뿐 아니라 고위층도 마찬가지.

1991년 10월 22일부터 10월 25일까지 평양에서 개최된 제4차 고위급 회담부터 한국측 수석대표직을 맡은 정원식 전 국무총리도 북한측 대표단장인 연(형묵) 총리가 다른 요원에 의하여 통제를 받고 있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회담 기간 어느 날 한국측 대표단과 북측 대표단이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정 총리는 편안하게 식사를 하기 위하여 상의를 벗으면서 연 총리 비롯한 북한 대표단원도 그렇게 하기를 권하였으나 연 총리 이하 북측 대표단원들은 주저하였다. 조금 지나서 멀리 떨어져 앉아 있던 수행원 림춘길(림동옥)이 ‘그러면 벗읍시다’라고 하자 그제서야 모두 상의를 벗었는데 이 장면도 북한 대표단의 일사분란한 체제와 북측 단장인 총리까지 다른 요원에 의하여 철저히 통제를 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라고 할 수 있다.


북한과 갖는 모든 종류의 회담은 기대를 바닥까지 낮추어야 하는 이유도 이런 데 있다. 상대는 좀비 아니면 고장난 테이프레코더라서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어떤 말을 해도 의미가 없다. 상황이 한계에 부딪혔다(더 이상 양보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좀비의 주인이 인정해야 다음 메모가 들어온다.


출처: 송종환, 『북한 협상행태의 이해』(개정판) , 오름, 2007, pp.143-145
by sonnet | 2009/04/13 08:24 | 정치 | 트랙백 | 핑백(2) | 덧글(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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