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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현실주의자
2007/07/29   네오콘은 현실주의인가 이상주의인가? (3) [11]
2007/07/28   네오콘은 현실주의인가 이상주의인가? (2) [10]
네오콘은 현실주의인가 이상주의인가? (3)
네오콘은 현실주의인가 이상주의인가? (2)에서 셀프트랙백

이글은 원래 앞선 글에 첨부할 보론으로 작성되었던 것인데, 원문이 좀 길어진 관계로 제외했던 것이다. 사실 독자들도 내 관점을 자명하다고 받아들인다면 사족에 불과한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다음과 같은 반론이 제기되기에 그에 맞추어 수정해서 공개하기로 한다.

님이 현실주의라고 하는 것이 그럼 린드블룸의 점진주의를 말하는 것이었습니까? 이름이야 붙이기 나름이지만 린드블룸류의 점진주의는 주로 행정학, 정책학에서 논의하는 것이고 국제정치학에서의 현실주의와는 큰 관련이 없지요. 저는 지금까지 님이 국제정치학에서의 이상주의/현실주의 논의를 가지고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님이 말하는 이상주의란 저로서는 모험주의로 이해하면 되겠군요.

그렇다면 네오콘은 결코 점진주의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국제정치학에서의 현실주의 논의에 입각해서는 현실주의자입니다. 왜냐하면 국제정치에서의 현실주의는 국제관계를 국가의 이기적 국익추구행위와 그 상호관계로 이해하는 것이고, 네오콘이 추구하는 것은 미국의 권력을 증대하고자하는 것이니까요. (인형사)


앞선 글에서 나는 주로 이상주의를 먼저 특징짓고, 이에 현실주의를 이에 대조되는 개념으로 가볍게 위치지은 후 이야기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주요한 현실주의자와 네오콘 정객의 사례를 들어 실제로 이들을 분석할 때 이러한 특징에 따른 구분이 적절함을 보였다.

여기서 나는 일부러 「정의」라는 개념을 피하고 있으며, 기존에 널리 사용되는 「현실주의자」같은 용어들을 새로 정의하지 않고도 내가 지적한 특징들이 호환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취급하였다. 그러나 위 반론처럼 실은 내가 개념을 다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것과 상당히 다르게 「재정의」하고있기 때문에 설명력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해볼 수도 있다.
과연 그런지는 이제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내가 외부의 권위를 이용하는 편한 방법을 쓰지 않고 이런 식의 접근방법을 취하게 된 한 가지 이유는 이상주의의 실체에 대해서는 이상주의자 본인들에 의한 정교한 논의가 없기 때문이다.

현실주의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은 20세기의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역사학자이자 외교관인 케난(George Kennan), 정치학자 모겐소(Hans Morgenthau) 등이 그때까지의 국제정치이론에 “이상주의(Idealism)”, “법률주의(Legalism)”, “이상향주의(Utopianism)”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에 대한 대안이론으로 현실주의를 주창한 것이다. 그 이래 이 이론적 입장은 학자들뿐만 아니라 정책결정자들 사이에서도 오랫동안 지배적인 위치를 점해왔다. 이들은 미국인들에겐 순진한 낙관주의적 성향이 있다고 보고 인간본성의 악마적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그와 같은 성향을 제어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에 따르면 인간이 타인을 지배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본성의 하나다. 따라서 정치란 곧 권력투쟁이며, 이상이 아닌 현실에 기초한 정책(realpolitik policies)이야말로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Allison, Graham T., Zelikow, Philip D., Essence of Decision: Explaining the Cuban Missile Crisis (2nd Ed.), New York:Longman, 1999
(김태현 역, 『결정의 엣센스』, 모음북스, 2005, p.69)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이상주의란 것은 초창기 현실주의자들이 물리치고자 했던 경쟁이념을 규정한 말이라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스스로를 이상주의 학파라고 주장하는 학자나 관료는 찾아보기 힘들고, 이에 따라 이러저러한 사람들에 적용해봐서 잘 들어맞으면 맞는 정의라는 식의 검증을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런 식의 경쟁자 성격 규정하기는 대개 대중적 동조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인 만큼, 일반적인 어의가 상징하는 것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는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즉 내가 앞선 글 서두에 제시한 이상주의의 특징들은 이런 이상/이상향의 어의(목표지향성)나 낙관주의 성향 등을 반영한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러한 구분들은 어느 정도 상대적이다. 여기서부터 이상주의가 시작된다는 것 같은 명확한 경계선은 없다. 그것보다 현실세계에서는 위에서 본 용법처럼 보다 현실주의적인 그룹이 보다 이상주의적인 성향을 보이는 그룹을 지칭해 "저자들은 이상주의자요"라고 공격하며 쓰이는 일이 더 많다.


반면 현실주의자들은 우리가 왜 현실주의자라고 불리며 그것이 왜 옳은가에 대한 논의를 많이 했기 때문에 기존 논의를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

자유주의와는 반대로, 현실주의자들은 국제정치에 대해서는 비관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다. 현실주의자들은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일이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다만 그들은 국가들간의 안보경쟁(security competition)과 전쟁이라는 처절한 모습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쉬운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평화적 세상을 창조하는 일은 정말 매력적인 일이지만 현실적인 일은 아니다. 카가 말하듯 현실주의는 국제정치를 움직이는 기존의 힘, 기왕의 국제질서가 나가는 방향에 대한 필연성, 그리고 이와 같은 힘과 경향을 받아들이고 이에 적응하려는 것이다.

Mearsheimer, John J., The Tragedy of Great Power Politics, New York:W. W. Norton, 2001
(이춘근 역,『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나남출판, 2004, p.58)

이렇게 현실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을 바꾸기 어렵다고 본다. 그러니 주어진 세계와 그 동작 방식을 가능한 잘 이해해서 적응하자는 것이다. 즉 옷은 이거밖에 없으니까 옷에 몸을 맞춰 살자는 체제순응적 태도야 말로 현실주의자의 가장 기본적인 마인드이다.

내가 앞서 지적한 현실주의자의 특징인 "목표(이상)의 존재, 그 도달 가능성이나 도달 방법에 대한 확신부족"은 이런 설명과 잘 맞아들어간다. 위 설명의 경우 이상의 존재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지만, 그 점은 사실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어짜피 이상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칭 3세대 현실주의자인 미어셰이머는 1세대에 해당하는 카의 『20년 간의 위기』를 인용해 이러한 견해가 현실주의자 전반에 공통된 입장임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이런 세대 마다 좀 입장이 다를 텐데 내가 묘사하고 있는 현실주의자의 특징이란 그 모두에게 잘 들어맞는가?

우선 1세대 현실주의자의 대표격인 조지 케난을 보자. 그의 명성은 주로 냉전 초기 냉전의 설계사로서의 통찰력과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냉전은 동유럽에서 소련이 이미 차지한 세력권을 인정하고 세월의 힘을 빌려 점진적 변화를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현상유지적이고 점진적이며 온건했다.

미국이 도움 없이 혼자서 공산주의 운동의 생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으며, 러시아에서 소련의 권력을 빨리 멸망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특정한 상황에서 소련의 정책 실행에 엄청난 긴장을 더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고, 최근에 크렘린이 보여준 행동보다 훨씬 많은 절제와 신중함을 강요할 수 있으며, 이런 방법으로 미국은 소련이 결국 권력의 붕괴로 나아가는 경향 또는 소련이 점진적인 성숙 쪽으로 그 배출구를 찾게 하는 경향을 촉진할 수 있다.

George Kennan, "The Sources of Soviet Conduct", Foreign Affairs, 1947년 7월

실제로도 그랬다.

그 시점에 국무성으로 다시 돌아온 조지 케넌은, 그(봉쇄) 정책이 너무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미국을 문제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에 외교정책을 이데올로기적으로 공식화하는데 반대했다. … 봉쇄에 대한 케넌의 생각은 전통적인 외교의 사고와 유사했다. 그의 봉쇄정책은 더 적은 군사적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었고 좀더 선별적이었다. 그 좋은 예가 티토(Joseph Tito)하의 공산주의 전제정부를 갖고 있던 유고슬라비아였다. 1948년에 티토는 그리스 공산주의에 대한 소련의 지원을 포함하여 소련이 유고슬라비아의 외교정책을 지배하려는 노력에 반대하면서 스탈린과 결별했다. 봉쇄정책의 이데올로기적 면에서 보면 미국은 공산주의 국가인 유고슬라비아를 도울 수 없었다. 반면 세력균형의 관점에서 보면 미국은 소련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방법으로 유고슬라비아를 도와야만 했다. 후자가 실제 미국이 취한 정책이었다. 트루먼 독트린이 세계의 모든 자유 국민을 방어한다는 목표를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전제주의적 공산정부에 군사적 지원을 제공했다. 미국은 세력균형을 이유로 원조를 했으며, 그 정책은 유럽에서의 소련 패권에 큰 상처를 남겼다.

Nye, Joseph S., Understanding International Conflicts: An Introduction to Theory and History, 3rd Ed., Longman, 2000
(양준희 역, 『국제분쟁의 이해: 이론과 역사』, 서울:한울 아카데미, 2001, p.180, 189)

케난의 견해를 막강한 소련을 상대로 한 냉전 초기라는 특수한 상황에 돌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케난은 100년 넘게 살았고, 냉전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도 역시 이러한 신중한 현상유지에 대한 관점은 일관된다.

1996년 케난은 애이브럴 해리먼의 미망인이자 당시 주프랑스 대사였던 파멜라 해리먼의 연설을 들으러 콜럼비아 대학에 갔다.

행사가 끝나고 케난의 열렬한 추종자 중 하나이자 국무부 부장관이던 스트로브 탈보트를 포함한 일군의 저명인사들이 콜럼비아대 총장의 저택에서 만찬을 가졌다. 디저트를 끝낸 후 사전 예고 없이 우리는 케난에게 연설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92세의 전설적 인물은 천천히 일어나 약하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폴란드, 헝가리, 체크를 받아들여 NATO를 확장한다는 탈보트와 내가 무엇보다도 깊게 관여하고 있던 클린턴 행정부의 외교정책의 기둥 중 하나를 잘 짜여졌지만 거칠게 공격했다.
케난은 그 달변과 역사인식을 이용해 NATO를 확장한다는 것은 유럽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으며 "엄청난 역사적 전략적 과오" 임을 그 만찬에 모였던 인사에게 경고했다.
……
그는 냉전의 끝과 유고슬라비아 인종분쟁의 발발을 정확히 예측했다. 하지만 그는 미국이 그 문제에 개입해야 한다는 것과 발칸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혼자서라도 무력을 써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우리가 오래묵은 인종적 증오를 멈추려고 시도해야 하나?" 내가 설명하려고 하자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는 유고슬라비아 대사를 지낸 적이 있었고, 나는 그가 내 말을 이해하고 내게 동의해 줌으로서 발칸문제를 다루던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승인 도장을 찍어줄 것을 원했었다.

Richard Holbrooke, The Paradox of George F. Kennan, 워싱턴포스트, 2005년 3월 21일

클린턴 행정부의 국무부의 실세들, 스트로브 탈보트나 리처드 홀브룩 같은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도 존경하고, 명성도 드높은 케난에게서 자신들의 동유럽/발칸 정책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려고 힘썼다. 전대의 절정 고수가 동의만 해 주면 국내적으로 반대가 적지 않았던 그들의 개입주의적 외교정책을 뒷받침하는데 큰 힘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케난은 그들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묵사발냈고, 결국 홀브룩은 노선배의 죽음을 맞은 순간조차도 케난이 틀리고 자기가 맞았다며 그 섭섭함을 감추지 않은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 결과적으로 홀브룩의 말이 맞은 셈이다. 현실주의자도 늘 맞는 게 아니라 틀릴 때도 있다. 아주 완고한 현실주의자라면 장기적으로 봐서 러시아가 힘을 회복하면 NATO의 동유럽 확장은 결국 재앙으로 판명될 것이라고 여전히 주장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현실주의자라면 누구나 케난이 무엇을 걱정했는지에 대해 공감할 것이다. 그는 내가 현실주의자들의 특징 중 하나라고 지적해온 개입에 뒤따르는 의도치 않았던 귀결을 걱정하는 것이다.
유고 내전을 가리켜 "왜 우리가 오래묵은 인종적 증오를 멈추려고 시도해야 하나?"라고 했던 케난과 레바논 파병을 가리켜 "천년 묵은 말벌의 소굴에 손을 집어넣은 것"으로 규정한 콜린 파월의 생각의 유사성을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이번엔 2세대 격인 신현실주의(neorealism) 혹은 구조적 현실주의(structural realism)의 대부인 케네스 월츠를 보자. 월츠는 자기 이전의 국제정치학엔 (체계적) 이론이랄 게 없다고 선언하면서, 국제사회의 무정부적 구조가 현실주의가 득세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이론을 내놓았다.

그러나 월츠는 국제체제가 강대국이 힘을 얻기 위해 공격적 행동을 하도록 했다는 사실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반대의 주장을 전개한다. 국제정치적 무정부 상태는 국가들이 세력균형을 깨는 일을 하도록 하기보다는 오히려 세력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방어적으로 행동하도록 권장한다는 것이다. 월츠는 “국가들의 첫 번째 관심은 국제체제 속에서의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일이다”고 쓰고 있다. 국제정치 이론가 랜달 슈벨러(Randall Schweller)가 말하는 것처럼 월츠의 이론에는 “현상유지적 편향성”(status quo)이 있는 것 같다.
월츠는 국가들은 상대의 희생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힘을 증가시키려는 동기가 있으며 상황이 좋을 경우 이런 동기에 의한 행동은 훌륭한 전략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월츠는 이 주장을 더 이상 정교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역으로 그는 강대국이 공격적으로 행동할 경우 잠재적 피해국들은 공격자들에 대항하여 균형을 유지하려는 태도를 취하게 되며 그럼으로써 힘을 증대하려는 노력을 좌절시키게 된다고 말한다. 월츠는 균형을 위한 다른 나라들의 노력은 공격자를 좌절시킬 것이라고 본다.
더 나아가 월츠는 강대국은 너무 많은 힘을 가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힘이 너무 강해지는 것은 다른 나라들이 이에 대항하는 연합을 형성하도록 하며, 그 결과 어느 정도 힘을 보유한 후 더 이상 힘을 추구하지 않고 자제하는 것보다 더 못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말한다.

Mearsheimer,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pp.65-66

이는 비판자에 의한 요약이지만 월츠 이론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월츠의 이론은 강대국이라고 너무 망나니 짓을 하다간 다굴을 맞을 위험이 있으니 가끔 기회주의적 행동을 할 수도 있지만 전반적인 기조는 방어적인 게 좋다는 것이다. 월츠가 방어적 내지는 현상유지를 선호한다는 것은 본인이나 비판자들 모두 인정하는 것이니 더 설명이 필요없으리라 본다.

이와 거의 비슷한 논리구조를 갖는데 단 한가지, 가끔씩 선택의 기회가 찾아올 때 공격적으로 구는게 좋은가 방어적으로 구는게 좋은가를 놓고 의견이 갈리는 것이 미어셰이머이다.

나의 공격적 현실주의 이론도 국제정치학의 구조주의 이론이다. 방어적 현실주의의 입장과 마찬가지로 나의 이론도 ‘강대국이란 자신들의 안전을 다른 나라들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 상부기관이 없는 세상에서 자신의 생존여부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라고 본다. 강대국들은 힘이야말로 그들의 생존을 보장하는 핵심요인이라는 사실을 곧 알아차린다. 공격적 현실주의 이론은 국가들이 얼마나 큰 힘을 요구하는가에 관해 방어적 현실주의와 의견을 달리한다. 방어적 현실주의자에게 국제정치구조는 국가들에게 어느 정도 이상 힘을 증가시키겠다는 자극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의 세력균형상태를 유지하는 데 힘쓰도록 국가들을 몰아간다. 국가들의 중요한 목표는 힘을 증강시키는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기왕의 힘을 유지하는 것이다.

반면 공격적 현실주의 이론은 실제의 세계정치에서 현상유지를 목표로 하는 나라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국제체제는 국가들에게 남을 희생시키더라도 힘을 증가시킬 계기를 찾으라고 유혹하기 때문이며, 희생과 이득이 더 크다고 생각할 경우 국가들은 상황에서 오는 이익을 포착하는 것이다. 국가의 궁극적 목표는 국제체제에서의 패권국이 되는 일이다.

Mearsheimer,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p.68

앞서와 비슷한 식으로 요약하자면 미어셰이머의 이론은 이 세상에 다굴맞을까 두려워 조신하게 사는 강대국은 드물다. 강대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남의 등을 치는 공격적 행동에 나서기 마련이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인형사 씨의 해석은 이렇다.

국가는 결코 현재의 권력에 만족하지 않으며 항상 패권을 추구한다고 주장하며, 현상유지세력의 존재를 부정하는 입장이더군요

제가 보기에는 네온콘이 취하고 있는 입장과 상당히 유사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요.

미셰이머의 주장은 국가의 안전보장에 국가간의 합의나 양해가 기여할 수 있는 바를 부정하고 전적으로 자신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므로 모든 국가가 무한권력을 추구한다는 이야기로 보이는군요. (인형사)

내가 볼 때 미어셰이머와 네오콘의 입장이 유사하다는 것은 미어셰이머의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거나 모종의 요약만 보았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분명히 미어셰이머는 "국가의 궁극적 목표는 국제체제에서의 패권국이 되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결론은 어떻게 나온 것인가? 그는 자기 이론이 구조주의 이론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국제정치구조는… 국가들을 몰아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제정치 상황은 누가 의식적으로 고안한 것도 아니고 의도한 것도 아니지만 본질적으로 비극적 상황이다. 서로 싸워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강대국이라 해도 -즉, 오직 자신의 생존에만 관심을 가지는 강대국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자신의 국력을 증강시키거나, 국제체제에 있는 다른 나라를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을 추구해야 한다는 대안 이외의 다른 것을 택할 수 없다.

Mearsheimer,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pp.34-35

이는 결국 상황의 논리, 즉 선한 사람도 악한 상황에 빠지면 악당이 된다는 식의 이야기이다. 그러니 책제목부터가 비극인 게다. 네오콘이 정말 미어셰이머 같은 입장을 갖고 있다면, "너희들도 우리를 욕하지만, 우리가 앉은 자리에 앉게 되면 우리와 똑같이 굴 수 밖에 없을걸"이라고 생각해야 된다.

정말 네오콘이 그렇게 생각할까? 지난번 글에서도 지적했지만 네오콘의 특징은 당위의 논리이지 상황의 논리는 절대 아니다.


사실 이들 중 케난이나 키신저 같은 고전적 현실주의자 그룹과 케네스 월츠, 로버트 저비스, 잭 스나이더, 스티븐 반 에베라 같은 구조적 현실주의자 그룹은 모두 현상유지와 세력균형 내지는 점진주의를 지지한다.
구조적 현실주의자의 방계로 공격적 현실주의를 표방하는 미어셰이머는 현상유지와 세력균형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그도 역시 변화는 점진적일 것으로 본다. (공격적 성향이 나타나는 이유가 기회있을 때마다 세력확장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기회주의의 유혹과 관계가 있으므로)
이렇게 보면 현실주의자 그룹은 전반적으로 봐서 내가 묘사한 특성들을 잘 가지고 있는 편이다. 이들 중 네오콘과 유사한 그룹은 하나도 없다.



님이 현실주의라고 하는 것이 그럼 린드블룸의 점진주의를 말하는 것이었습니까? 이름이야 붙이기 나름이지만 린드블룸류의 점진주의는 주로 행정학, 정책학에서 논의하는 것이고 국제정치학에서의 현실주의와는 큰 관련이 없지요. 저는 지금까지 님이 국제정치학에서의 이상주의/현실주의 논의를 가지고 하는 줄 알았습니다.

상당히 답답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국제문제를 다루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미국은 결정했다", "중국은 침공에 나섰다"처럼 국가를 의인화하여 그 나라의 목적과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행위를 이야기한다. 국제정치학에서도 열에 아홉은 이런 식으로 국가나 그 정부의 행위를 설명한다.

즉 인간의 행동을 묘사할 때 뇌와 심장, 심장과 폐가 밀고 당기는 협상을 해 그 결과 인간의 행동이 결정되는 식으로 다루지는 않듯이, 대부분의 국제정치학 이론들도 뇌가 판단해 지시하면 몸이 그에 따라 움직이는 식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부 내부에 네오콘이라는 분파와 현실주의자라는 분파가 있어서, 서로 미국이 이렇게 행동하는게 옳다며 상반된 의견을 내놓고 주도권을 잡기 위해 싸우는 현상을 다루고 있다. 이들이 다투는 주제는 대외정책이라는 전형적인 국제정치학의 주제이다. 그러나 이들이 다투는 현상 자체는 국제정치가 아니라 국내정치 내지는 (정부 내) 정책결정과정이다.

국제정치이론 그 자체는 이런 문제를 직접은 잘 다루지 않는다. 다음을 보기 바란다.

현실주의자들은 강대국들의 행동은 주로 그들의 내적 속성보다는 그들이 처한 국제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고 믿는다. 모든 국가들이 대처해야만 하는 국제체제의 구조는 강대국 외교정책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현실주의자들은 나라들을 좋은 나라, 나쁜 나라로 분명히 구분하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강대국들은 그들의 문화, 정치체제, 지도자가 누구냐의 여부와 관계없이 똑같은 논리에 따라 행동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들은 힘의 세기라는 상대적 요인 이외의 다른 요인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다. 본질적으로 강대국들은 크기만 다를 뿐인 당구공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Mearsheimer,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pp.58-59

미국과 한국이 크기만 다른 당구공으로 내부구조가 똑같다면 미국 정부 내부에 네오콘이라는 특수한 집단이 뿌리박고 있는게 무슨 이론적 의미가 있으며, 무슨 설명을 줄 수 있겠는가? 즉 국제정치이론으로는 이런 문제를 다룰 수 없다.

Charles Lindblom을 안다면 이야기가 간단하다. 내가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보이려 했던 것은 외교안보정책에 대해 현실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사람들, 즉 현실주의자는 정책의 적용에 대해서도 린드불룸이 말한 점진주의, 즉 속이 보이지 않는 진흙 속을 조심스럽게 헤쳐나가는 듯한 과정(Muddling Through)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즉 국제정치학 상의 현실주의자는 정책적으로 점진주의적 경향을 보이며, 그것은 경험적으로 볼 때 현실주의자의 속성이라고 할 만하다는 게 내 입장이다.

이는 꼭 점진주의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 내가 이상주의 대 현실주의라고 말한 것은, 보다 광범위한 관점에서 보면 정치적 스펙트럼 상에서 진보주의 대 보수주의라는 식으로 환원해 설명할 수도 있다.

급진주의자(radical), 진보주의자(liberal), 온건주의자(moderate), 보수주의자(conservative), 반동주의자(reactionary) 등의 용어는 정치적 담론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단어들에 속한다. 이러한 단어들이 무엇을 나타내고 있는가를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다섯 가지 용어와 정치적 변화 및 정치적 가치의 개념을 연관하여 논의를 진전해야 한다. 가장 좌측으로 치우친 급진주의자들은 현상(status quo)에 대해 극단적으로 불만스러운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현존하는 질서의 즉각적이고도 근본적인 변화를 원하며, 무엇인가 새롭고 다른 것을 요구한다.

급진주의자들보다는 훨씬 덜 불만스러워 하지만 여전히 상당한 정도로 체제를 변화시키기를 원하고 있는 이들이 진보주의자들이다. 진보주의의 철학적 기반은 전통적인 시기의 것과 현대의 것으로 나눠진다. 전통적 진보주의자들이 개인과 재산권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었던 데 반해, 현대의 진보주의자들은 사회를 공동의 것으로서 이해하며 인권을 강조한다. 그러나 두 집단 모두 평등, 지성, 경쟁과 사람들의 선량함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고 있다.

온건주의자들은 현 사회에서 나쁜 점을 별로 발견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들보다 더 변화를 내켜하지 않는 것은 오직 보수주의자들뿐이다. 그들이 변화를 싫어하는 정도는 오직 보수주의자들에 의해서만 초과될 뿐이다. 진보주의자들과는 거의 모든 점에서 다른 보수주의자들은 인간의 도덕이나 지성에 대한 확신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비록 세상이 보수주의자들의 희망하는 만큼 유쾌한 것이 못된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부적절한 참견이 실로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에 대하여 회의적이다.

위에서 말한 스펙트럼 상의 각 입장들이 변화의 속도와 깊이, 그리고 방법에 있어 다르지만 그들 모두는 사회의 진보적인 변화를 옹호하고 있다. 오직 반동주의자들만이 이전 시대의 제도로 복귀할 것을 제안한다. 반동주의자들은 현대적 가치를 거부함으로써 사회가 걸어온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 이전의 정치 체제를 채택하려 한다.

Baradat, Leon P., Political Ideologies: their origins and impact, Prentice Hall
(신복룡 외 역, 『현대정치사상(제5판)』, 평민사, 1995, pp.38-39)

by sonnet | 2007/07/29 10:27 | flame! | 트랙백 | 덧글(11)
네오콘은 현실주의인가 이상주의인가? (2)
네오콘은 현실주의인가 이상주의인가?의 코멘트에 대한 답변

한 10일 전부터 방문해 주고 계신 인형사 씨께서 무려 도전자를 자처하시면서 답변을 촉구하고 계시는지라 이어서 얼마간 의견을 적어보기로 한다.

그런데 내 짐작으로 이 분은 다음 글의 필자가 아닐까 한다.
이라크 점령과 한국모델 (dcinside)
이 글의 코멘트에 내 글에 대한 링크가 달려 있고, 이곳의 리퍼러가 기록된 직후부터 이 분의 방문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논조도 비슷한 것 같고 말이다.

어쨌든 이번 글에서는 약간의 개념 정리를 하고 나서 네오콘의 활동을 경쟁자들과 비교해 이상주의적 속성을 보인다고 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도록 하겠다.


행위자의 의도는 일정하게 정의된 국가이익의 추구이며, ...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희생으로 그 희생을 훨씬 초과하는 이익을 달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현상을 변화 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할 때, 그런 현상변화를 추구하는 것을 현실주의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인형사)

이 질문은 합리적행동자모델(RAM) 상에서 국익 추구란 조건을 달아 현상변화 추구도 현실주의일 수 있다는 답을 유도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숨겨진 조건들이 있다.

이 문제를 다루기 전에 이상주의자란 어떤 특징을 보이는 사람들일까 하는 점을 검토해 보자.

1) 목표
먼저 이상은 현재 완성된 형태로 구현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 더 추구할 것이 없고 지키기만 하면 끝이므로)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없는 이상, 이상을 성취할 시점을 미래의 언젠가에 두는 것도 당연하다. 완전한 이상에 도달할 수 없는 경우에도 미래에는 이상에 보다 다가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 행동
의미있는 이상주의자이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이상추구를 향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상을 꿈꾸지만 실천이나 이념 전파의 노력은 없는 몽상적/칩거형 이상주의자도 있을 수 있겠지만 현실정치/정책 측면에서는 무의미하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3) 긍정적 편향
이상주의자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상추구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편향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또한 이상실현에 대한 긍정적 편향과 이상추구행위는 서로 positive feedback하는 관계이다. 이상실현의 가능성을 크게 볼 수록 이상추구행위를 할 동기가 커지는 것이고, 이상추구행위에 열심인 사람은 자신이 이상실현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고 믿을 것이다.
만약 반대로 믿는다면 어떻게 될까? 미래로 갈수록 현실이 날이 갈수록 이상실현에서 멀어진다고 믿으면 현실변혁적 이상추구행위는 의미가 없으며, 현상유지가 최선의 전략이 될 터이다. 이 말은 첫번째 가정인 '이상은 미래시점에 있다'는 것과 공존하기 힘든 개념이다.

요약
1) 목표: 미래 시점에 목표로서의 이상 설정.
2) 행동: 구체적인 이상 추구의 경향성과 노력
3) 긍정적 편향: 이상추구 가능성에 대한 긍정적 평가

즉 이상주의자는 이상이 실현되길 희망하고, 이를 추구할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실현이 가능하며 반대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쉽다고 믿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주의와 현실주의가 정반대는 아닐지라도 주로 상호대립적인 개념으로 쓰이지 상호병립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다. 이상주의자일수록 덜 현실주의자라는 식의 용법이 자연스럽지, 이상주의자이며 동시에 현실주의자라는 용법은 부자연스럽다는 말이다.

즉 현실주의자는 이상주의자의 여집합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1) 목표
앞서 이상주의자는 어떤 것이든 분명한 목표(이상)가 미래시점에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했었다. 그럼 현실주의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목표가 과거 어느 시점에 있어서 과거를 재현하려는 복고주의자일까? 아니면 현재가 최고라고 생각해서 현상유지를 지상명제로 삼는 사람들일까? 이런 개념들은 실제로 현실주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잘 맞지 않는다.
이상주의자와 확연히 구분되면서 실제의 현실주의자에게 잘 맞는 설명은 미래 시점에 존재하는 목표(이상)의 존재, 그 도달 가능성이나 도달 방법에 대해 상대적으로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란 것이다.

2) 행동
목표(이상)의 존재, 그 도달 가능성이나 도달 방법에 대한 확신부족은 현실주의자의 행동을 이상주의자에 비해 더 조심스럽고 보다 시행착오적 탐색에 의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산 꼭대기에 보물이 묻혀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상주의자)은 가능한 빠른 방법으로 산을 오르려 하겠지만, 이 산 어딘가에 보물이 묻혀있는 것까지는 들었지만 그게 어딘지 모르는 사람(현실주의자)이라면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보물을 묻어놓을 만한 곳이 없나 관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3) 부정적 편향
목표(이상)의 존재, 그 도달 가능성이나 도달 방법에 대한 확신부족은 자동적으로 부정적 편향을 낳는다. 이상은 허상일 수도 있고, 이상추구의 길이 험난할지도 모르며, 그 와중에 예기치않게 뭔가 긁어부스럼을 만들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상에 대한 신념의 부족은 자동적으로 리스크회피 성향을 증대시키게 된다.
즉 현실주의자가 현상유지를 선호한다 하더라도, 그 이유는 현재가 쏙 마음에 들어서라기 보다 미래가 더 나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약
1) 목표: 미래 시점에 존재하는 목표(이상)의 존재, 그 도달 가능성이나 도달 방법에 대한 확신부족
2) 행동: 조심스럽고 시행착오에 의존하는 탐색
3) 부정적 편향: 이상추구에 따른 리스크를 이상주의자보다 중시


이번에는 우리가 묵시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분석틀인 합리적행동자모델을 살펴보자.

토마스 셸링은 자신의 합리적 행위란 (감정적 행위에 대비되는) "이성적 행위라는 의미만이 아니다. 의식적으로 득실을 따지는 계산과 그 계산의 기초가 되는 명시적이고 내부적 일관성이 있는 가치체계에 근거하는 행위라는 의미"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이때 정책결정자들이 모든 상황과 그에 대응하는 모든 대안, 각 대안으로부터 초래될 모든 결과를 정확히 평가해서 최선의 정책을 정한다면, 사람이 다르더라도 동일한 결론을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능력에 한계가 있어 제한된 시간 내에 부분적인 정보만 갖고 자신의 주관적 판단기준 -가치관, 신념, 이미지- 등을 반영해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정책을 정한다면, 결론은 매우 다양해질 것이다.
전자를 포괄적 합리성, 후자를 제한된 합리성이라고 하는데, 현실세계의 정책결정은 물론 제한적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에 따라 이루어진다.

앞서 지적한 편향들은 그러한 제한적 합리성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편향의 발생원인은 미래의 불확실함과 평가의 여러가지 주관적 요소에서 찾을 수 있다.

"컵에 물이 반 잔이나 남았다/반 잔 밖에 남지 않았다."

이와 같이 현재에 대한 평가도 사람마다 어느 정도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내일 저 컵의 물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서는 훨씬 큰 불확실성이 있다. 이는 미래가 갖는 본질적인 특성이고, 이 불확실성에 대한 평가는 합리적 판단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갈리기 마련이다.

"내일 비가 와서 컵에 물이 가득 찰 것이다"
"내일 햇볓이 쨍쨍 내리쬐어 대부분 말라버릴 것이다."

두번째로 확률의 객관적 측면에 대해 동의한다 하더라도 그 확률의 의미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이다. 같은 승률의 도박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평가는 같을 수가 없다. 위험회피적인 사람도 있는가 하면 위험선호형도 있는 법이다.

세번째로 이러한 평가는 서로 다른 가치들에 대한 주관적인 가치부여와 결부되어 있다. 예를 들어 90%의 유인로켓발사성공율과 (나머지) 10%의 인명손실가능성은 질적으로 다른 것이기 때문에, 과연 이 로켓을 발사할 것인지를 놓고 둘을 저울질하려면 주관적인 가중치와 공분모가 적용되어야 한다.


자 이제 앞서 받았던 질문으로 돌아와 보자.

행위자의 의도는 일정하게 정의된 국가이익의 추구이며, ...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희생으로 그 희생을 훨씬 초과하는 이익을 달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현상을 변화 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할 때, 그런 현상변화를 추구하는 것을 현실주의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인형사)

미래의 희생, 이익, 가능성은 모두 앞서 이야기한 불확실성에 대한 평가나 주관적인 가중치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는 부분이다. 희생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이익은 "훨씬 초과", 가능성은 "존재". 이러한 전제들은 이미 긍정적 편향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즉 이 질문 안에는 행위자의 강한 낙관적 판단 경향이 이미 들어 있다. 저런 경향을 강하게 보이는 행위자라면 이미 이상주의자일 가능성도 높은 것이다.
물론 논리적으로만 보면 낙관론이 곧 이상주의는 아니라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낙관적 현실주의자와 비관적 이상주의자가 맞붙는 정책논쟁이 있는지를 직접 찾아보면 그것은 실제로는 무척 드문 일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추상적인 이야기를 길게 했기 때문에 현실에서 이것이 얼마나 맞아들어가는지 한번 살펴보자.

미국의 대외정책을 놓고 키신저/스코우크로프트 대 체니/럼스펠드/월포위츠 진영 간의 노선투쟁에는 이러한 현상과 전망에 대한 대립되는 편향이 잘 드러난다.

포드 행정부 기간 논쟁의 핵심은 … 미국의 힘에 대한 평가, 즉 베트남 전쟁이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점이었다. 베트남전 패배 이후 미국은 과연 쇠퇴하고 있는가? 미국은 해외개입을 축소해야만 하는가? 미국민들은 공산주의에 맞서 싸워온 노력들을 포기하고 부득이 소련과의 새로운 관계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키신저의 대외정책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일련의 답변에 기초한 것이었다. 키신저는 베트남전 패배 이후 모스크바와의 타협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프레드 이클레는 “키신저는 미국이 베트남전으로 인해 약화됐으며, 국가적인 분위기가 군비 통제와 데탕트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키신저가 미국과 미국의 미래에 대해 너무 암울한 견해를 갖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일부는 키신저를 독일 염세주의 철학자인 오스왈드 슈펭글러(Oswald Spengler)와 비교하기도 했다. 카터 행정부 시절 국가안보 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는 “키신저는 슈펭글러리안이었다. 그는 미국이 쇠퇴하고 소련이 우위에 서기 시작했으며,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정책은 이들과 거래를 함으로써 이들의 힘을 견제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고 말했다.
[인용자 주: 슈펭글러는 "서구의 몰락"의 저자이다.]

키신저는 비록 이런 비난들을 거부했지만 어떤 의미에서 비판은 정당한 것이었다. 그는 소련이 실제 우위를 점해가고 있다고 믿지 않았을지는 모르지만 미국 쇠퇴의 불가피성을 수용한 것처럼 보였다. 키신저의 최측근 중 한 명인 윈스턴 로드(Winston Lord)는 1977년 한 인터뷰에서 “키신저는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측근인 브렌트 스코우크로프트에 따르면, 키신저는 미국이 독자적으로 국제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미국의 능력을 과대평가해 왔다고 생각했다. 키신저 자신은 미국민들이 베트남전과 워터게이트 이후 소련과의 대결 정책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키신저의 이런 견해들은 1970년대 중반의 정치적인 분위기에 잘 맞는 것처럼 보였다. … 그러나 럼스펠드, 체니, 월포위츠, 그리고 공화당의 보수주의 우파들과 민주당의 신보수주의자들은 키신저의 암울한 비전을 거부했다. 이들은 점차 키신저나 민주당의 맥거번 추종자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해 나갔다. 이들의 시각에서 볼 때 미국은 결코 쇠퇴기에 있지 않았으며, 따라서 이에 근거한 비전을 채택하거나 소련과 새로운 타협에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포드 행정부 시절에 출현한 이 같은 철학적 분열상은 20세기 말을 지나 21세기 초까지 지속됐다. 2002년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에 대한 공격 여부를 결정하려고 했을 때, 일단의 공화당 내 비판론자들은 미국이 힘의 한계를 깨닫고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 같은 비판을 주도한 대표적인 인사는 키신저의 직계였던 스코우크로프트였다. 반면 군사행동을 지지한 대표적인 인사들은 체니와 럼스펠드, 그리고 월포위츠였다.

Mann, James., Rise Of The Vulcans: The History of Bush's War Cabinet, New York:Viking Adult, 2004
(정인석 권택기 역, 『불칸집단의 패권형성사』, 박영률출판사, 2005, p.99~100)

즉 오늘날에 와서는 일방주의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 미국이 독자적 행동으로 국제문제를 요리할 수 있으며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는 네오콘 진영의 생각은 베트남전의 패배와 달러의 금태환 폐지, 오일 쇼크, 스태그플레이션 등 전반적으로 어두웠던 70년대에도 포기된 적이 없으며, 어떤 한 시대에 주어진 현황에 대한 판단에서 도출된 전략이라기 보다는 이들의 신념과 이상, 세계관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독자적 행동으로 국제문제를 다룰 미국의 능력은 과대평가되어 있다는 키신저의 70년대 관점은 네오콘 그룹을 열받게 만들고 치열한 정치투쟁을 벌이게 했던 것이다.
물론 키신저도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의 증대된 역할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키신저의 논리는 상황이 변화했으니 나도 따라 변한다는 상황의 논리이지 네오콘과 같은 당위의 논리는 아니라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다른 차이점도 있다.

허버트 사이먼의 표현을 빌리자면 합리적 행위자는 그 의도에 있어 합리적(intendedly rational)이라고 한다. 즉 결과까지 합리적이라고 보장되는 것은 아닌 셈이다. 실제로 제한적 합리성(현실) 하에서는 계획이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나 의도치 않은 귀결(unintended consequence)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구체적인 사안별로 이 의도치 않은 귀결의 규모와 파급력이 어느 정도일지를 예측하는 것이다. 그 규모와 파급력이 너무 클 것으로 예상되면 계획을 변경하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으며, 작을 경우에는 예비비 등을 미리 배당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등으로 대응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현실주의자들의 업무처리방식과 이상주의자들의 업무처리방식은 이러한 의도치 않은 귀결에 대한 대비가 아주 대조적이다.

우선 걸프전에서 보여준 스코우크로프트의 입장을 살펴보자.

(아버지) 부시는 백악관 상황실에서 베이커, 체니, 스카우크로프트 및 파월과 회동했다.
“우리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라고 스카우크로프트가 운을 떼었다. “방어-억지 전략을 계속하느냐, 아니면 공격 전략으로 넘어가야 하느냐가 문제의 핵심입니다.”
부시와 스카우크로프트가 가장 강경하게 공격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베이커는 훨씬 느긋하고 신중한 까닭에 의회 및 대중의 태도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등 비판은 했으나, 그도 더 이상 소극적인 태도는 보이지 못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체니는 부시측이 대통령이 공언한 쿠웨이트 해방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안중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체니는 성공이 확실하지 않은 한 어떠한 군사행동도 권고하지 않으려 했다. 그는 공격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간다고만 말했다. 국제적인 제휴는 무한정 계속되기에는 너무나 약하고, 그 협정도 미묘한 것이다.
파월은 인내한다는 것이 대세가 아님을 알았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그는 제재전략을 옹호하지는 않았다. 파월은 다른 사람들이 이전에 자신의 폭넓은 정치적 조언을 묵인했던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이미 대통령에게 제재전략을 옹호했던 적이 있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는 편이 더낫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실제로 아무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파월에게 전반적인 정치적 조언을 요구하지 않고 있었다.

Woodward, Bob., The Commanders, Simon & Schuster, 1991
(이광식 역, 『사령관들』, 중앙출판사, 1991, p.353-354)

아들 부시의 이라크전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데서 연상되는 것과는 달리, 걸프전에 관한 한 스코우크로프트는 확고한 매파였다. 그러나 잘못되어 수렁에 빠질 가능성을 우려해 처음부터 강력히 한계선을 긋고 이긴 것이 확실해진 뒤에도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았다. 사실 2003년의 이라크전 반대는 이때의 한계선을 재천명한 것이나 다름없었고, 결국 그의 우려는 정확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시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의 운명은 이라크 민중에게 달렸다고 여러 차례 선언했었다. 종종 그는 사담의 제거가 환영받을 것임을 시사했지만 아주 실질적인 이유에서 봉기를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민중 반란이나 쿠데타가 사담 정권을 전복시키길 기대했지만, 미국이나 현지 국가들은 모두 이라크란 국가가 쪼개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우리는 페르시아 만 지역 한복판의 장기적 세력균형에 대해 우려했던 것이다.
사담 제거를 시도하려고 지상전을 이라크 점령으로 확대하면, 일을 진행하는 도중에 목표를 변경하지 않는다는 스스로의 정책지침을 어기고, 욕심을 부리다 수렁에 빠져들게 되어(mission creep), 예측 불가능한 인적 정치적 비용을 유발하게 될 것이었다.
그를 체포하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파나마에서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던 노리에가도 찾아낼 수 없었다. 우리는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실질적으로 이라크를 통치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연합군은 즉시 붕괴되고, 분노한 아랍 국가들이 전열에서 이탈하며 다른 동맹국들 또한 철군하게 될 것이었다.
게다가 그러한 상황 하에서 우리는 냉전 이후 세계에서 침략행위를 다루는 패턴을 정착시키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 오던 중이었다. 그대로 밀고 들어가 이라크를 점령함으로서 일방적으로 UN 결의를 뛰어넘게 되면, 우리가 정착시키기를 희망했던 침략행위에 대한 국제적 대응 관례를 파괴하게 될 것이었다.
우리가 그러한 침공 코스를 밟는다면, 생각건대 미국은 아직도 극도로 적대적인 땅에서 점령세력으로 남아있을 것이며, 이는 극적으로 다른 -그리고 아마도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부시&스코우크로프트, 왜 우리는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지 않았는가, Time, 1998년 3월 2일


이어서 콜린 파월을 살펴보자. 파월은 레바논에 섣불리 파병했다가 폭탄 테러로 수백 명의 해병대원을 잃고 황황히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회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국은 그저 우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말벌들을 진정시킬 수 있다는 기대를 해서 천년 묵은 말벌의 소굴에 손을 집어넣은 것이다. … 적어도 부모나 부인, 혹은 자손들이 왜 자기 가족이 죽어야 했느냐고 물을 때 그들을 쳐다보고 분명한 대답을 줄 수 있을 때까지는 인명을 담보로 삼아서는 안된다.

Powell, Colin L., My American Journey, 1995
(류진 역, 『콜린 파월 자서전』, 샘터, 2001, pp.468)

레바논에서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후 당시 국방장관 와인버거는 새로운 군사정책 가이드라인을 밝히게 되는데, 이는 그의 군사보좌관 파월에게 전수되어 후에 파월 독트린으로 더 잘 알려지게 된다.

레이건이 재당선된 후 와인버거는 11월 28일,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연설했다. 나는 '언제 미국 전투 병력을 해외에서 활용할지를 고려할지'에 관해 그가 제안한 기준들을 직접 듣기 위해 동행했다.
(1) 우리[미국]나 우리[미국]의 동맹국의 중대한 이해가 위태로울 때 투입한다.
(2) 투입하게 될 경우 이기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3) 뚜렷한 정치적, 군사적 목표가 있을 때에만 투입한다
(4) 전쟁이란 가만히 있는 경우가 거의 없으므로, 목표가 바뀌면 병력 투입에도 변화를 줄 수 있어야 한다.
(5) 미국 국민과 의회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경우에만 투입한다.
(6) 최후의 방편으로서만 미국 병력을 투입한다.
간단히 말해, 국가의 이해가 위태로운 지경인가 물어서 대답이 예라면 들어가서 이기고, 그렇지 않으면 바깥에 머문다는 것이다.

Powell, 『콜린 파월 자서전』, pp.412-413)

한번만 살펴보년 이 독트린이 별 국익이 걸리지도 않았는데 말려들어서 피를 본 레바논 파병이나,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도 장기전으로 치달은, 그러면서도 결국 승리하지 못한 베트남전 같은 전례를 극력 피하기 위해 설계된 원칙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슈워츠코프는 공격작전에는 자신의 휘하 병력의 대략 두 배 수준은 필요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두 배의 공군기의 출격, 해군 항공모함은 3척에서 6척으로 두 배, 해병과 육군 지상군도 두 배,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제7군을 원한다.”고 그는 말했다.
제7군은 가장 훈련이 잘 되고 좋은 장비를 갖춘 3개 사단, 즉 2개의 최신 탱크사단과 1개의 기계화사단으로 구성된 미국의 유럽 지상방위의 중핵이었다. 제7군의 증파는 바르샤바 조약의 위협이 유럽에서 실질적으로 사라지기 전인 1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아찔한 요구였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와 바르샤바 조약의 붕괴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만약에 대통령이 공격 작전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제7군을 보내줘야 할 것이라고 슈워츠코프는 말했다.
파월은 자신이 그 요구를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 술 더 떠서, 병력 증강을 가능한 한 대규모로 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에는 제7군과 더불어 훈련된 1개 육군사단이 주둔하고 있다. 제1 기계화 보병사단을 보내주면 어떻겠냐고 파월은 제안했다. 슈워츠코프는 동의했다.

Woodward, 『사령관들』, p.344

여기서 합참의장 파월은 현지사령관이 좀 과도하게 병력을 요구하는 듯 싶은데도, 거기에 한층 더 넉넉하게 얹어주는 행동을 보여준다. 압도적인 병력으로 깨끗하게 처리하고 성공적으로 빠져나온다는 구호로 유명해진 파월 독트린의 적용인 셈이었다.

합참의장 파월은 부시 행정부 내에서 조속한 종전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닉슨과 레이건 행정부에서 일했던 대외정책 전문가 프레드 이클레가 쓴 『모든 전쟁은 반드시 끝나야만 한다(Every War Must End)』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있었다. 이클레는 장군들이 군사책략이나 전술뿐 아니라 어떻게 전투를 종결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일본군은 진주만 공격을 위한 훌륭한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어떻게 미국과의 전쟁을 끝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이 책을 너무나 좋아했던 파월은 ‘사막의 폭풍(Desert Storm)’ 작전을 전후해 이 책의 일부분을 스코우크로프트와 체니, 합동참모들에게 복사해 돌렸다. 파월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우리는 곧 달성될 제한된 목적을 위해, 제한된 권한으로, 제한된 전쟁을 치르고 있다. 나는 책임 있는 사람들은 전쟁을 어떻게 끝낼 것인지를 생각하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걸프전 당시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Mann, 『불칸집단의 패권형성사』, p.243

이런 행동 또한 성공적으로 빠져나오기에 대한 파월의 엄청난 집착을 잘 보여준다.



이번에는 네오콘 진영의 이라크전 대응을 살펴보자.

1998년, 이들은 「미국의 신세기 프로젝트」(Project for the New American Century; PNAC)란 단체를 통해 클린턴 정부에 공개서한을 내어 후세인 정권 붕괴를 촉구한 바 있다. 즉 집권 전부터 이라크를 표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견해가 강력했던 것이다.

이후 집권은 하였으나 9.11 테러가 발생하기 전의 미국 정치 지형에서 미군의 대규모 직접 침공 계획은 역시 지지를 받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그런 정치적 상황에 맞추어 이라크 공격을 후원하는 움직임은 존재했다.

2001년 초여름, 펜타곤의 기획부에 부임한 한 직업 관료에게 INC가 사담 후세인을 축출하는 쿠데타에서 중대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가설을 평가하는 작업이 맡겨졌다. 울포위츠와 페이스를 중심으로 한 매파가 이미 승인한 가설이었다. 그 직업 관료는 쿠데타가 있은 후 찰라비가 이라크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환영받을 것이란 그들의 가설도 아울러 분석했다. 이 평가에 정통한 한 관리는 … “이런 분석은 ‘잘못될 수 있는 것’에 대한 연구였다. 만약 아흐마드 찰라비가 이라크 국민에게 예상처럼 환영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찰라비와 그 동료들이 사담을 전복시킬만한 역량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어떤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인가? 등에 대한 연구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책결정자들은 그다지 걱정하는 듯하지 않았다. 그 관리가 분석결과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한 동료를 통해 펜타곤의 새 지도부는 잘못될 가능성보다 긍정적인 방향에서 생각한다는 대답을 들었다. 또한 그 연구에 따른 대안의 모색은 실패를 전제로 한 계획이라며 무시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Hersh, Seymour M., Chain of Command: The Road from 9/11 to Abu Ghraib, New York: HarperCollins, 2004
(강주헌 역, 『지휘계통: 9.11테러에서 아부그라이브까지』, 세종연구원, 2004, pp.240-241)

그리고 9/11 테러 직후, 이들은 반사적으로 이라크를 겨냥했다.

(테러 다음날인) 9월 12일 아침, 국방부의 관심은 이미 알 카에다에서 멀어지기시작했다. CIA는 이번 테러가 알 카에다의 소행이라고 의사를 분명히 표명했지만, 럼즈펠드의 심복인 폴 울포위츠는 이 주장에 쉽게 동의하지 않았다. … 9월 12일 오후가 되자 럼즈펠드 장관은 우리의 대응 조치 범위를 확대해 ‘이라크’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파월 국무 장관은 알 카에다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지원세력이 생기자 나는 조금 안심이 되며 콜린 파월과 차관인 리치 아미티지에게 감사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 논의에서 뭔가 잘못된 점이 있습니다. 알 카에다의 공격을 받고 그 대응으로 이라크를 공격한다면 이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에 대응하려고 멕시코를 침공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나는 강력히 의견을 개진했다.
파월은 고개를 흔들며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고 말했다.
정말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회의가 끝난 후 럼즈펠드 장관은 아프가니스탄에는 근사한 폭격 목표가 없고, 더 좋은 목표가 있는 이라크를 폭격해야 한다며 불평을 늘어 놓았다. 처음에 나는 럼즈펠드가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Clarke, Richard A., Against All Enermies: Inside the White House's War, Free Press, 2004
(황해선 역, 『모든 적들에 맞서: 이라크 전쟁의 숨겨진 진실 』, 휴먼앤북스, 2004, pp.63-64)

이들이 아무리 대단한 음모가라 하더라도 그 혼란 속에서 여러 네오콘 멤버들 간에 조율된 활동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즉 이 시기 이들의 행동은 평소 소신을 반영한 반사적인 행동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들) 부시 대통령 본인이 이런 흐름의 일원이었다.

12일 저녁에 비디오 회의 센터를 떠나 상황실에 오니 대통령이 와 있었다. 그는 무엇인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 듯했다. 그는 우리 중 몇 명을 붙잡고 회의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대통령은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능한 한 빨리 모든 상황이 정상으로 되돌아오도록 노력해주길 바랍니다. 모든 것을... 사담이 이 짓을 했는지 알아봐주십시오. 어떤 방식이로든 그가 이 일과 연관되었다는 점을 밝히십시오"라고 말했다.

나는 다시 앞선 회의가 생각났다. 믿어지지 않지만 이라크를 공격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대통령 각하, 이번 공격은 알 카에다의 소행입니다."

"알아요. 알고 있지만 사담이 연관되었는지 밝혀보세요. 한번 찾아보세요. 사소한 단서라도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다시 찾아보겠습니다." 나는 대통령의 견해를 존중해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그동안 알 카에다를 후원하는 국가가 있는지 여러 차례 조사를 했지만 알 카에다는 이라크와 아무런 실질적 연계가 없었습니다. 이라크의 역할은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예멘처럼 미미합니다."

"그래도 다시 한번 이라크와 후세인을 조사해보세요." 대통령은 화난 듯 퉁명스럽게 말하고 자리를 떠났다. 리사 고든 해거티가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벌린 채 대통령이 나가는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Clarke, 『모든 적들에 맞서 』, p.65

조직에서 보스가 먼지가 나올 때까지 계속 털게 시키면, 없는 먼지라도 누가 만들어 오는 법이다. 물론 사담 후사인은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털어서 먼지 안 나올 부류는 아니었다.

2001년 12월, 찰라비는 부시 행정부에 새로운 전쟁계획안을 제시했다. 공중폭격만이 아니라 수천 명의 미군 특수부대원까지 동원되는 계획안이었다. 그 밖에도 이 계획안에는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었다. 1980년대에 이라크와 지루한 전쟁을 벌였던 이란의 참여를 가정한 것이었다. …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INC는 이라크에 침투하는 즉시 중포(重砲) 기지를 확보하고 이라크 임시정부의 창설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이때 부시 행정부가 곧바로 임시정부를 인정하기로 약속되었다. 이라크 국민의 거의 3분의 2가 시아파다. 따라서 미국과 INC는 시아파를 잠재적 동맹자라 생각했다. 그 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랬던 것처럼 강력한 공습을 시작하고, 수천 명의 특수부대원을 이라크 남부에 공수시킨다. 그와 동시에 쿠르드족의 지배 하에 있는 지역들, 즉 북부의 INC 지지자들도 사담 후세인을 공격할 태세를 갖춘다. 그리고 반군은 이라크 군부를 신속히 공격한다. 그럼 사담 후세인은 정예군을 남부로 보내 미군을 상대해야 하는지, 아니면 모든 세력을 바그다드 인근에 집결시켜 북쪽에 내려오는 반군을 상대해야 할 것인지 진퇴양난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공격계획은 퇴역 육군 4성 장군인 웨인 다우닝(Wayne Downing)과 전(前) CIA 관리로 무보수로 INC의 고문역을 맡았던 두안(‘듀이’) 클래리지의 도움을 받아 작성된 것이었다.
……
찰라비의 새로운 전쟁계획안은 펜타곤 특별기획국의 조언에 따라 덧붙여지고 수정된 후 폴 울포위츠의 승인을 받아 연합참모본부에 평가를 의뢰했다. 일각에서 냉담한 반응을 보이면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배운 교훈과 그 교훈을 사담 후세인에게 적용하는 방법을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Hersh, 『지휘계통』, p.244-246

아프간 전쟁이 급박히 진행되고 있던 바로 그 때, 펜타곤 한 켠에서는 새로운 이라크 작전안이 연구되고 있었다. 9/11 이전의 쿠데타 유발 계획과는 달리 이번 계획은 아프간 전쟁계획을 거의 그대로 이라크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장기간의 투쟁으로 전투력이 입증된 약 1만 명 이상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었던 아프간과는 달리 찰라비의 망명자 단체 이라크 국민회의(INC)는 기껏해야 수백 명 정도의 병사 밖에 동원할 수 없다는 것이 치명적인 문제였다. 미국의 공군력이 지렛대가 되어 주려 하더라도 기본 자본이 하나도 없으면 이야기가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폴 울포위츠와 리처드 펄을 필두로 부시 행정부 안팎의 매파들은 미국이 무력시위를 벌이면 이라크 내에서 사담 후세인에 반대하는 반란이 즉각 일어나 불길처럼 확대될 것이라 주장했다. 2002년 초 내가 펄에게 이런 주장에 대한 의견을 묻자, 펄은 이라크군이 저항하며 항전하면 내전과 혼돈이 장기화될 것이란 이라크 주변국의 우려를 일축하면서 “아랍인이라도 다른 민족과 다르지 않다. 그들도 승리자를 좋아하며 승리자와 기쁨을 함께 나누려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걸프전에서 특수부대를 지휘했던 다우닝 장군은 펜타곤의 중화기를 동원한 복잡한 전쟁계획을 비난하면서, INC의 동료들에게 5천명이면 해낼 수 있는 일에 펜타곤이 5배나 많은 병력을 동원하려 한다고 투덜거렸다.

Hersh, 『지휘계통』, p.244-258

그러나 이미 결론을 내린 사람들에겐 별 의미가 없었다. 이런 확신 앞에 옛 동료들도 당혹해 했다.

하지만 행정부 내에서 펄을 지지하는 관리들도 장기적인 전략을 찾아볼 수 없다고 불평했다. 예컨대 조프리 캠프(Geoffrey Kemp)는 2002년 초의 인터뷰에서 “이라크를 처리하면 다른 것은 저절로 해결된다! 이것이 미국 전략의 전부다”라고 투덜거렸다. … “이라크는 자부심이 강한 나라다. 그런데 패전의 굴욕을 뒤집어썼다. 이라크 국민이 사담을 증오하긴 하지만 미국을 사랑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잠재된 민족주의가 발호할 것이다. 감춰두었던 무기를 다시 꺼내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가능성이 아랍 세계의 다른 곳에서, 즉 소규모 군대로 치안을 유지하는 라들에서 돌출될 위험이 없지 않다”라고 말했다.

Hersh, 『지휘계통』, p.263-264


대통령 또한 마음이 기울어져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2002년 1월 3일 (CIA의) 사울은 테닛과 근동과 부과장 그리고 이라크 프로그램을 수행해온 두 명의 공작요원과 부통령에게 보고하러 갔다.

사울은 어조를 부드럽게 조절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비밀작전으로는 후세인을 제거할 수 없다'고 체니에게 말했다.

테닛과 사울 일행은 그 뒤 대통령에게도 동일한 브리핑을 했다. 부시가 물었다.
"우리는 은밀한 방법으로 그것을 할 수 있소?"
"없습니다."
부시는 그때 "젠장(darn)!"이란 말이 얼핏 떠오르더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Woodward, Bob., Plan of Attack, New York: Simon & Schuster, 2004
(김창영 역, 『공격 시나리오』, 따뜻한손, 2004, pp.108-111)

국방장관도 열심히 움직였다. 아프간 전쟁에서는 CIA에 주도권을 내주었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었다.

성격이 조급한 럼스펠드는 이라크 전쟁계획과 관련한 프랭크스의 첫 번째 공식 보고를 (2001년) 12월 4일 펜타곤에서 받으려고 했다.
……
프랭크스는 리뉴어트와 함께 펜타곤으로 가서 ‘짧은 시간동안 할 수 있었던 것은 작계 1003호를 땜질한 수준’이라는 말로 보고를 시작했다. 6개월에 걸쳐 40만 명을 동원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기존의 기본계획보다 병력은 10만, 기간은 1개월 단축된 것이다.
……
“나는 이 계획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요점을 벗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여기 있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프랭크스와 럼스펠드의 눈이 공중에서 마주쳤다. 그들은 이미 이 계획은 그들이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그것은 장시간이 소요될 거요.”
“장관님,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을 수정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것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의 경우를 보면 그렇게 많은 병력이 소요될 것 같지는 않아.”
럼스펠드는 레이저 유도장치를 갖춘 첨단 정밀무기와 첩보·감시·정찰(ISR)의 향상에 따라 실제 파병 병력은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
“병력을 그렇게 많이 동원해야 된다고는 보지 않네.”
“이의는 달지 않겠습니다. 내 생각에도 우리가 그렇게까지 해야 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만, 실정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Woodward, 『공격 시나리오』, pp.68-70

중부군사령부가 오랫동안 갖고 있던 이라크 전쟁계획 OPLAN 1003-98은 원래 40만명의 병력을 투입하는 것을 전제로 짜여져 있었다. 2003년 이라크전을 지휘했던 중부군 사령관 프랭크스 장군이 처음 제시한 작전계획도 여기에 준한 것으로 그 계획에 필요한 병력은 38만5천명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들은 럼스펠드가 최종적으로 승인한 병력보다 무려 24만명이나 많은 것이었다.

(2003년) 1월 24일 금요일, 프랭크스 사령관은 최종 전쟁계획인 5-11-16-125 하이브리드 플랜을 럼스펠드 장관과 마이어스 합참의장에게 제출했다.
“이것이 바로 그 계획안입니다.”
앞으로 약간의 수정은 있을 수 있겠지만, 더 이상 계획을 짜는 일은 없을 것이다. … 2월 중순에 접어들면 총 14만 명 수준의 미군이 그 지역에 주둔하게 될 것이다. 이 가운데 7만 8천 명은 육군·해군·특수작전군으로 이루어진 지상군 병력이다.

Woodward, 『공격 시나리오』, pp.370

럼스펠드는 기술혁신이 방만한 규모의 구식 군대를 대체한다는 자신이 신봉하는 이론에 몰두해 있었다. 현지 사령관을 계속 압박하고 쥐어짜면 군살이 빠진 훌륭한 계획이 나올 것이라고 확신한 것이었다. 덤을 얹어주는 파월의 방식과는 정반대의 노선인 셈이다.


이렇게 보면 차이가 잘 드러난다.
키신저의 일화를 살펴보면서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네오콘에게 있어 이라크를 타도한다거나 기술혁신 군대가 온갖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든가 하는 목표는 이미 정해져 있고 손댈 수 없는 것이었다. 상황에 따라 목표를 추구하는 전술은 바뀔 수 있었지만, 상황이 바뀌었다고 목표를 버리는 법은 결코 없었다.
반면 현실주의자들에게 있어서는 결과가 중요했다. 높은 목표를 잡았다가 프로젝트가 망하느니 목표를 낮추고 투입을 늘려서라도 성공을 담보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차이는 의도치 않았던 귀결을 다루는 방법에 심각한 차이를 만들었다. 현실주의자들은 의도치 않은 귀결이야말로 실패의 제일 큰 원인이라고 보고 이를 최소화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반면 네오콘은 의도치 않았던 귀결에 대한 지적을 목표의 정당성에 대한 신념 부족이나 불충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니 이 문제를 덮어버리고 외면하려 들었다. 이는 이상주의자들에게 보이는 전형적 자기강화의 과정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상주의나 도덕주의에 대한 네오콘의 발언을 좀 더 검토해 보자.

위의 월포위치의 언명들도 그런 당파적 정치적 수사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가능성을 충분히 부정하지 못한다면 저 언명들은 네오콘이 이상주의자라라는 것을 보이기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인형사)

일단 30여년 전에 했던 말과 그 이후의 행동에 상당한 일관성이 있다면 그것은 무시하기 힘든 이야기다.
그리고 해당 발언은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전하는 것인데, 월포위츠가 자기 밑의 인턴 대학원생들과 가진 사적 토론, 즉 자기 편끼리 모인 자리에서 당파적 정치적 수사를 구사했다고 보기는 무리가 아닐까? 꼭 그렇게 해야 한다면 당파적 정치적 수사일 가능성을 제기한 사람이 입증해야 할 것이다.

사실 후쿠야마 또한 오랫동안 네오콘으로 분류된 인물로 PNAC의 멤버이기도 하다. 그의 대표작인 "역사의 종말" 또한 이상주의 냄새가 물씬 나는 책으로, 전형적인 네오콘식 이념서 중 하나로 간주되었다. 공개적으로 네오콘을 비판하며 전향하지만 않았다면 그는 지금도 틀림없이 네오콘으로 인정받고 있을 것이다.

이런 네오콘의 이상주의적 선호를 드러내는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자.

Natan Sharansky is now allied with the neoconservative camp, and he cites the Chicken Kiev speech as a typical instance of realist policymaking. A book that he wrote last year, “The Case for Democracy,” came to national attention when George W. Bush told the Washington Times, “If you want a glimpse of how I think about foreign policy, read Natan Sharansky’s book ‘The Case for Democracy.’ . . . It’s a great book.”

Sharansky argues that the United States would best serve its own interests by choosing as allies only countries that grant their citizens broad freedoms, because only democracies are capable of living peacefully in the world. In Kiev, “America had missed a golden opportunity,” Sharansky wrote in a chapter criticizing the President’s father. George H. W. Bush’s Administration, he said, “was not the first nor will it be the last to try to stifle democracy for the sake of ‘stability.’ Stability is perhaps the most important word in the diplomat’s dictionary. In its name, autocrats are embraced, dictators are coddled and tyrants are courted.”

In September, Sharansky was in Washington at the invitation of Condoleezza Rice; he gave the closing speech at a State Department conference on democratization. “Can you believe it?” he said to me just before the session. “Rice gave the opening speech and I give the closing?” Of his complicated relations with the Bush family, he said, “A few days after my book comes out, I get a call from the White House. ‘The President wants to see you.’ So I go to the White House and I see my book on his desk. It is open to page 210. He is really reading it. And we talk about democracy. This President is very great on democracy. At the end of the conversation, I say, ‘Say hello to your mother and father.’ And he said, ‘My father?’ He looked very surprised I would say this.” Sharansky went on, “So I say to the President, ‘I like your father. He is very good to my wife when I am in prison.’ And President Bush says, ‘But what about Chicken Kiev?’ ” Sharansky smiled as he recounted this story. “The President looked around the room and said, ‘Who is responsible for that Chicken Kiev speech? Find out who wrote it. Who is responsible?’ Everyone laughed.” Sharansky paused, and looked at me intently. He had a broad grin. “I know who wrote Chicken Kiev speech,” he said. “It was Scowcroft!”

Jeffrey Goldberg, Breaking Ranks, New Yorker, 2005년 10월 31일호

부시의 아버지는 소련 붕괴 당시에 우크라이나 수도 키에프에 가서 과도한 민족주의 열기를 앞세워 안정을 파괴하지 말 것을 주문한 바 있다. 샤란스키는 아버지 부시와 같은 사람을 안정을 위해 민주주의를 희생시킨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아들 부시는 그런 샤란스키의 책을 나오자마자 읽고, 극찬하고, 콘돌리자 라이스를 보내 상대하고, 백악관에 불러 직접 만났다. 아들 부시는 샤란스키가 자기 아버지를 강하게 비판할거라고 예상하면서도 그를 불렀던 것이다. 그리고 부시와 그 자리에 있던 측근들은 그런 현실주의적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던 (부시의 아버지와) 스코우크로프트를 다같이 비웃은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접대성 멘트라고 할 수는 없다. 이것은 그들의 평소 생각을 반영하는 것일 뿐이다.
by sonnet | 2007/07/28 00:21 | flame! | 트랙백 | 핑백(2)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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