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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핵전력
2007/11/24   G-8 정상회담, 푸틴의 계교 [30]
G-8 정상회담, 푸틴의 계교
필자 주: 이 글은 예전에 포스팅했던 푸틴의 계교를 가필하여, 월간 Platoon 2007년 6월, pp.86-91에 기고했던 것이다. 전재를 허락해 주신 월간 Platoon 편집부께 감사드린다.
업데이트: 상황이 크게 바뀐 것이 없어, 본문의 업데이트는 하지 않았다. 이 포스팅을 하는 11월 하순 시점에서 폴란드-체크의 MD 기지와 관련한 미-러간의 줄다리기는 여전히 진행중이며, Bulava SLBM의 시험발사는 최근 또 한번 실패(11월 10일)하였다.
이와 관련한 다른 글로는 폴란드 배치 MD는 러시아 ICBM을 요격할 수 있어(Ted Postol)도 참고가 될 듯 싶다.



G-8 정상회담, 푸틴의 계교


미국은 러시아와 서유럽 사이인 폴란드와 체크에 미사일 방어(MD) 기지를 설치하려는 중이다. 한편 러시아는 이를 자국 핵전력을 무력화하려는 음모로 간주하고 폴란드와 체크에게 MD 기지를 받아들일 경우 그 나라들에게 핵미사일을 겨누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또한 87년에 체결한 중거리핵전력협정(INF)의 파기 가능성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러시아의 미사일을 요격할 생각이 없으며, MD는 불량국가들(이란)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맞서면서 근래 양국 관계는 냉전 종식 이래 최저점을 갱신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던 올해 6월 7일 G8정상회담에서 부시와 만난 푸틴은 기묘한 제안을 내 놓았다. 이란 바로 북쪽인 구소련 공화국 아제르바이잔에 소련 시절부터 내려오던 레이더 기지가 있는데, 이 기지를 MD용으로 대신 쓰라는 것이다. 아제르바이잔 대통령과도 이미 이야길 다 해놓았으며, 그렇게 하면 양국간의 모든 갈등은 없어진다는 것이다. 당황한 미국은 일단 그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해 보겠다고 얼버무렸다.

<그림 1> 미국의 MD 계획과 푸틴의 대안적 제안

러시아는 이런 식으로 요격하게 된다고 판단


지도를 보면 기지의 위치에 따른 차이가 분명히 드러난다. 미국이 이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적어도 러시아는 미국이 내세운 명분에 어긋나지 않는 그럴싸한 역제안을 함으로서 평화공세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입장에서는 러시아의 입김을 피할 수 없는 아제르바이잔에 MD기지를 두느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이라크에 두는 게 차라리 나을 것이다. 그리고 아제르바이잔에 MD 기지가 생길 경우, 이란의 격렬한 반발이 예상된다. 러시아는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UN 등에서 은근히 이란의 입장을 옹호하는 입장을 보여 왔는데,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이란을 희생시켜 떡을 나눌 준비가 되어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현재 미러간 갈등의 양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갈등은 어떤 배경을 갖고 있을까


러시아 핵전력의 실태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은 각기 육상발사, 수중발사, 공중발사로 구성되는 거대한 삼각핵전력을 건설해 공포의 균형을 이루었다. 냉전종식 후 20년이 가까워오는 현재, 러시아에는 무엇이 남아 있는가?


육상

소련 시절부터 내려오는 낡은 미사일 재고들을 대신해 러시아 전략로켓군의 미래를 짊어질 유일한 신병기는 Topol-M 대륙간탄도탄(ICBM)이다.


세르게이 이바노프 국방장관은 2006년 11월 열린 방위산업관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2015년까지 Topol-M ICBM 69기를 추가로 구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 중 약 1/3은 사일로 기반 모델이고, 나머지는 생존성이 더 높은 도로기동형 모델이다.

향후 9년간 69기, 이중 매년 1기 정도의 시험발사용을 제외할 경우, 러시아는 기껏해야 연간 7기의 ICBM을 배치하는 데 불과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는 1990년대 후반에 계획했던 연간 16~20기 보다 훨씬 적고, 소련 시절 보여주었던 연간 45기와는 비교가 안 된다. 그러니 퇴역해야 하는 미사일의 수는 엄청난데, 이를 대체할 새 미사일의 공급은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사실 전략로켓군은 설계수명을 오래 전에 넘긴 구소련제 ICBM을 퇴역시키지 않고 서류상 사용연한을 계속 늘려가면서 버티고 있는 중이다.
우선 러시아 경제가 바닥을 찍고 있던 1995년, 전략로켓군은 설계수명이 10년인 RS-18(NATO명: SS-19) ICBM의 사용연한을 25년으로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2001년에는 26년 묵은 이 미사일 한 발을 쏴보고는 아직 거뜬하다며 다시 수명을 연장했다. 이 미사일을 사용한 가장 최근의 시험은 2006년 11월 18일, 카자흐스탄의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성공리에 이루어졌는데, 그 결과 이 미사일의 사용연한은 공식적으로 30년까지 늘어났다. 다른 미사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전략로켓군은 2006년 12월, 19년 묵은 RS-20(NATO명: SS-18) ICBM을 시험해 본 다음 이 미사일의 사용연한도 20년으로 늘렸다.
이렇게 해서 전략로켓군은 2015년까지는 어떻게든 현재 가진 구소련제 ICBM들을 갖고 버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 시점에서 러시아 전략로켓군은 약 500기의 ICBM을 갖고 있는데, 현재의 사용연한을 더 늘리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2015년에 약 300기는 퇴역해야 한다. 신규조달분이 Topol-M 70기에 불과하다면 전략로켓군의 ICBM 수는 반 토막이 날 것이다.

수중

그러나 이는 해군의 골칫덩이에 비하면 약과이다. Topol-M 설계를 응용한 러시아 해군의 신형 잠수함발사탄도탄(SLBM)인 Bulava는 작년 하반기에 세 차례(9월 7일, 10월 25일, 12월 24일) 시험발사를 했으나 모조리 실패하는 기염을 토했다. 2005년 9월의 첫 번째 시험발사 이래, 총 5번의 발사에서 3번 실패한 셈이다. (일부 러시아 언론은 성공이라고 발표된 첫 번째 시험도 실패였다고 주장한다.)

각각 16기의 불라바를 탑재할 신형 Borei급 핵추진 탄도탄잠수함(SSBN) 세 척이 건조되고 있는 중에 벌어진 이런 사태는 재앙 그 자체이다. 잘못하면 값비싼 SSBN이 할 일 없이 빈 배로 놀게 될 판인 것이다.

공중

삼각핵전력 중 공중발사 핵전력은 냉전 시대에도 가장 천대받는 축이었다. 생존성이 잠수함 만큼 뛰어나지도 못하거니와, 탄도탄처럼 빠른 속도를 갖지 못해 선제공격에도 부적합했기 때문이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계란을 여러 바구니에 나눠 담는다는 보험의 의미,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했던 핵전력이라는 밥그릇을 뺏기지 않으려는 육해공 3군의 치열한 항쟁, 그리고 적국이 가진 것은 우리도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맹목적인 경쟁심리가 없었다면 냉전 말기의 공중핵전력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러시아 공중핵전력은 구소련 시절과 변함없이 향후 수십 년 동안 Tu-95MS 베어와 Tu-160 블랙잭 중폭격기, 그리고 이들이 탑재하는 공중발사 순항미사일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그 말은 미국처럼 스텔스 기능에 의존할 수도 없는 이상 이들의 전략적 가치는 더 떨어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이들은 탄도탄 세력의 쇠퇴로 인해 배치 가능한 전략핵탄두의 수가 급감하는 상황에서도 공중발사 순항미사일에 핵탄두 대신 통상탄두를 장착할 수 있게 개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러시아의 핵전력은 미국을 향해 날려 보낼 수 있는 핵탄두의 양과 질 모두에 있어 구소련 시절에 비해 크게 쇠퇴한 상태이며, 향후 수십 년에 걸쳐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음을 잘 알 수 있다.

이런 결론을 뒷받침하는 다른 근거가 있다.
부시와 푸틴이 체결한 모스크바 조약(2002년 5월)에 따르면 미러 양국은 전략핵탄두의 수를 1,700~2,200개 수준으로 감축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런데 이 조약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러시아는 보다 과감한 감축을 주장하며 1,500개 선을 제의하였다. 뒤집어 말하면 러시아는 현행 조약의 하한선인 전략핵탄두 1,700개 배치조차 유지하기 힘에 겨워한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유가 급등을 배경으로 막대한 오일달러를 손에 쥔 러시아가 다시 한번 옛 제국의 영광을 노리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세간의 평가와 잘 맞지 않는다.
사실 소련이 15개의 국가로 분해되면서 러시아는 많은 인구와 영토, 자원을 잃었다. 무한한 인명손실을 감내할 수 있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러시안 스팀롤러는 이제 파키스탄보다도 인구가 작다. 게다가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지난 15년간 군비에 거의 투자를 하지 못해 군대가 엉망진창이 된 상태이다. 러시아는 최소한 20년 정도는 그런 팽창주의적 모험에 나설 입장이 못 된다.


러시아의 대응

우선 러시아는 적극적인 군축에 나서 군비 부담을 줄이는 한편, 조약의 의무로 미국을 얽어매어 미러 간의 핵전력 균형 차이를 넓히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 앞서 설명한 모스크바 조약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반면 이미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은 그런 의무에 얽매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미 세계에 대등한 적수가 없어진 만큼 미국의 행동을 규제할 조약상의 의무를 줄여 최대한의 행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발상이다.
특히 부시 행정부의 경우는 그러한 생각이 대외정책의 근간에 자리 잡고 있다. 탄도탄요격미사일(ABM)금지협정을 탈퇴해 MD 추진의 길을 연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지만,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교토의정서의 거부 등은 이러한 구상이 안보분야 이외로도 연결되는 보다 폭넓은 이념의 소산임을 잘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모스크바 조약은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I)에 비해 조약상의 검증 의무가 없고 감축된 핵탄두도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일선에서 철수해 보관해 둘 수 있는 자율규제 수준의 약정이 되고 말았다. 즉 미국이 북한에 요구하는 것 같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CVID) 유형의 본격적인 군축이 아닌 것이다.

러시아인들은 미국이 ABM협정을 탈퇴하는 것을 보면서도 손가락을 빨 수밖에 없게 되자 스스로의 입장을 재검토했다. 미국과 러시아가 맺은 협정이 여럿 있는 만큼 그중 어딘가는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탈퇴해도 더 유리한 게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해서 찾아낸 것이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이었다.

러시아는 이미 2005년 1월의 럼스펠드-이바노프 국방장관 회담에서 INF 탈퇴를 타진한 데 이어, 2007년 2월에는 뮌헨 안보정책 회의에서 푸틴 자신이 INF가 러시아의 안보 이익을 더 이상 대변하지 않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러시아에게 있어 INF의 의의

그런데 INF가 무슨 의미가 있기에 러시아는 이 조약을 자꾸 들먹이는 것일까?
레이건과 고르바초프가 1987년 체결한 INF는 냉전 말기의 가장 중요한 군축조약 중 하나였다. 이 조약의 결과 사정거리 500~5,500km의 탄도탄과 지상발사 순항유도탄이 금지되었고, 소련의 SS-20과 SS-23, 미국의 퍼싱2와 지상발사 토마호크 미사일(GLCM)이 폐기되었다.
INF 분야에서 러시아는 미국이 결코 따라올 수 있는 커다란 장점을 갖고 있다. 그것은 자금도 아니고 기술도 아니다. 바로 지정학적 이점이다.

<그림 2> 러시아 INF의 사정권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러시아는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부에 넓게 포진한 나라인지라, 자국영토 내에 INF를 배치할 경우 유럽, 아프리카 북부, 중동, 인도, 동아시아 전체가 사정거리에 들어온다. 여기서 벗어나는 것은 미국이 속한 남북아메리카, 남아프리카,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정도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은 자국 영토에 INF를 배치해 봐야 캐나다와 멕시코 같이 핵공격할 필요가 전혀 없는 나라들을 겨냥할 수 있을 뿐이다. 알래스카에 INF를 배치해서 러시아를 겨냥할 수도 있지만 그 지역은 시베리아여서 인구밀도도 낮고 산업 중심지도 없어 큰 가치가 없다. 그 정도 일은 미국처럼 해공군력의 우위를 누리는 나라 입장에서는 굳이 INF를 개발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는 일에 불과하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ICBM을 만들 기술적 능력이 없던 냉전 초 이후를 제외하고는 SS-20같은 중거리탄도탄(MRBM/IRBM) 개발에 별 관심이 없었던 진정한 이유다.

따라서 미국의 입장에서 퍼싱-2와 GLCM 같은 중거리 핵미사일은 러시아나 중국 같은 미국의 가상적국 근처에 있는 동맹국이 미사일 기지를 제공해야만 의미가 있다. 그런데 그런 기지를 제공한다는 것은 핵전쟁이 발생하는 날 누구보다도 먼저 핵 세례를 받는 보증수표와도 마찬가지이다.

동유럽에 소련이 엄청난 지상군을 집결해 놓고 살던 냉전 시절, 미국의 서유럽 동맹국들은 다들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도 소련이 너무 위협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울며겨자먹기로 그런 기지를 제공하였다. 이 시절조차 NATO 국가들은 서로 기지 제공 임무를 다른 나라에게 떠넘기기 위해 혈안이었고, 최전방에 위치해 이판사판이나 다름없던 서독은 나 혼자 죽을 순 없다고 버틴 끝에 핵벼락 맞을 자리에 이탈리아를 끌어들이는 물귀신 솜씨를 과시했다.

SS-20(蘇)과 퍼싱2(美)


이제 불쌍할 정도로 찌그러든 러시아의 군사력을 감안할 때, NATO 동맹국들이 러시아를 견제할 목적으로 미국을 위해 핵미사일 기지를 제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러시아는 INF 조약을 깨도 잃을 것이 없는 것이다.

INF, 즉 중거리 핵미사일들은 ICBM에 비해 훨씬 싸고, 기술적으로도 간단하다. 그리고 러시아는 미국과 달리 INF로도 (미국 본토를 제외한) 전 세계 대부분의 표적을 융통성 있게 타격할 수 있다. 미국과 전략적 균형을 이룰 만큼 많은 ICBM을 배치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인 만큼, 러시아는 부족한 탄두 수를 INF로 메운다는 대안으로 끌릴 수밖에 없다.

즉 이 게임의 구도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ICBM의 수가 줄어든 만큼 러시아는 MD에 대해 취약해진다.
(2) INF는 싼 값에 줄어든 미사일의 숫자를 벌충할 수 있다.
(3) 미국은 MD 기지를 제공한 나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MD를 사용해야 한다.
(4) INF는 미국은 공격하지 못해도 MD 기지를 제공한 나라들은 공격할 수 있다.


결론: 평화 공세의 표적

사실 서유럽 강대국들의 입장에서 볼 때, 국제세계에서 독주하는 미국에 대한 경계와 불만은 예전보다 훨씬 크다. 이라크 전쟁 당시 서유럽 강대국인 프랑스-독일이 러시아와 손잡고 미국에 반대하는 연대를 형성했던 것은 그런 현상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여전히 러시아를 두려워하는 나라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바로 동유럽에 위치한 소련의 옛 위성국들이다. 폴란드를 필두로 한 이들이 바로 현재 미국의 새 동맹국으로 MD 기지를 제공할 의향이 있는 나라들이다. 이들은 러시아의 부활에 대비해 미국의 군사기지를 끌어들여 보험을 들어 두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단순히 서유럽 대신 동유럽으로 동맹국을 갈아타면 되지 않을까? 사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내뱉어 물의를 빚은 “늙은 (서)유럽 대 젊은 (동)유럽”이란 발언은 바로 이런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

동유럽 국가들의 진정한 문제는 서유럽 국가들처럼 부유하지도 군사적으로 강력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이들은 군사적으로는 미국에 의지해야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인접국들, 특히 서유럽이 주도하는 EU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푸틴이 이번 외교적 공세에서 겨냥한 것은 서유럽과 동유럽의 입장 차이를 이용하여, 서유럽이 동유럽 국가들에게 양보를 종용하도록 압력을 가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미국이 동유럽에 MD 배치를 강행하고 이에 맞서 러시아가 INF를 깔기 시작하면 원치 않으면서도 INF 사정권에 들어가게 된 서유럽은 당연히 동유럽에게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반대로 미국이 동유럽에 MD 기지를 포기하고 물러선다면, 동유럽 국가들은 미국에 의존했다 버림받을 위험성을 깨닫고 러시아에게 대놓고 도전하는 대신 자세를 낮추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외교 공세의 표적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이란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러시아의 군사적 상황이나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틴이 전보다 외교적으로 대담한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말할 나위 없이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이 수렁에 빠져 정신이 없고, 국내적으로도 부시 행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급등하여 효율적인 대외정책 수행이 방해받고 있기 때문이다. 푸틴이 강해진 것이 아니라 부시가 약해진 것이다.

부시는 이라크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이란과의 빅딜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열어놓고 있다. 최근 27년 만에 처음으로 양국 외교관이 공식적으로 회담한 것이 좋은 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2005년에 이란은 아제르바이잔과 불가침조약을 맺었다. 불가침조약은 공수동맹이나 방위조약과는 다르다. 동맹 혹은 방위조약은 우방국들끼리 맺는 것이다. 그러나 불가침조약은 저 유명한 독소불가침조약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대개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그러나 그곳으로부터 커다란 위협이 닥칠 가능성이 있는 나라를 상대로 임시변통으로 위험을 피하기 위해 맺어진다.

즉 이란은 아제르바이잔 방향에서 긴박한 위협이 닥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아제르바이잔은 이란보다 훨씬 작고 약하다. 그렇다면 이란의 적국이 아제르바이잔을 이용해 이란의 목을 조를 경우를 두려워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푸틴은 전 세계의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제르바이잔에다가 미국이 이란을 겨냥한 MD 기지를 만들겠다면 돕겠다고 제안했다. 이란이 그 이야기에 주목했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러시아는 미국이 이라크에 발목을 오래오래 잡혀 있기를 원한다. 그래야 견제를 덜 받고 국제사회에서 실지회복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란의 물밑 협상이 수면 위로 올라올 정도가 되자, 푸틴이 이들의 얼굴에 모래를 한 움큼 뿌리고 싶어진 것은 그리 이상하지도 않다.
by sonnet | 2007/11/24 07:38 | 정치 | 트랙백 | 핑백(1) | 덧글(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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