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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해난사고
2014/09/21   '트랜스휴론'호 침몰 사건 [18]
'트랜스휴론'호 침몰 사건
페로의 책에서 흥미롭게 읽은 해난 사고 사례를 옮겨와 봅니다.
아울러 이 요약과 맞춰볼 수 있게 공식 사고조사 보고서도 첨부해 둡니다.

[참고] 미 해안경비대 사고조사 보고서 : transhuron.pdf

이런 사례들을 읽을 때 유의해야 할 점은, 우리는 결과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전지적 시점으로 사건을 보지만, 사건의 당사자들은 위기 중에 한 치 앞을 예상하기 힘든 엄청난 불확실성 속에서 극단적으로 좁은 시야를 갖고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전지적 시점에서 잘못된 것을 먼지 털듯이 털면 결과적으로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가혹하고 불공정한 평가가 나오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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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교통안전위원회의 조사 보고서와 운용사와의 전화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1974년에 인도양에서 발생한 유조선 ‘트랜스휴론Transhuron’호의 침몰 사고를 재구성해보자.

‘트랜스휴론’호의 수리 과정에서 추력 조절 배전반 바로 밑에 공조장치가 설치되었다. 해안경비대 검사관은 배전반 근처에 배관을 설치하면 안 되는데도 강철판으로 분리되었다는 이유로 아무런 지적을 하지 않았다.

기관사들은 구리 소재인 응축기 상부에 철로 된 니플nipple을 달아서 계기를 고정시켰다. 이처럼 다른 소재의 금속이 접촉하면서 서서히 부식이 진행되었다. 불행하게도 몇 년 후에 진행된 청소 작업에서도 부식이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바다 한복판에서 니플이 부서지면서 배선이 지나가는 틈을 통해 1.8미터 위에 있는 추력 조절 배전반으로 물이 튀었다. 그 결과 배전반이 완전히 단락되고 말았다. 2,300볼트에 1,000암페어의 전류가 흐르는 배전반이 단락되면서 거대한 불길이 일었다. 이 화재로 기관사들이 미처 차단하지 못한 다른 시스템도 완전히 고장나버렸다. 그들은 주 시스템을 차단하기 위해 2가지 수단을 동원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사고조사위원회는 그들이 다른 방법을 썼어야 했다고 비판했다(이러한 비판은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가 일어난 후 사고 원인을 운용자의 실수로 돌린 친업계 성향의 조사위원들을 상기시킨다). 소방 장치까지 모두 고장 나는 바람에 선원들은 소화기로 불을 꺼야 했다.

선장은 힘겹게 불을 끈 후 맨해튼에 있는 회사에 예인선을 요청하는 긴급 메시지를 송신했다. 예인선이 올 때까지 ‘트랜스휴론’호는 동력을 잃은 채 인도양을 떠다닐 수밖에 없었다. 긴급 메시지는 가장 가까운 인도의 중계소를 거쳐 타전되었다. 그러나 아무런 답신이 없었다. 그래서 선장은 6시간 후, 9시간 후, 16시간 후, 세 차례에 걸쳐 메시지를 재송신했다. 최초 송신을 한 지 30시간이 지난 다음 날 아침, 선장은 다시 소나기가 퍼붓는 가운데 한 섬에서 37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표류하고 있다는 무전을 날렸다. 그제야 중계소의 운용자가 긴급 메시지를 별도로 취급하지 않는다고 알려왔다. 결국 선장의 메시지는 다른 메시지들과 함께 선착순으로 처리되었다. 모든 메시지에 붙인 ‘긴급’ 표시는 운용자에 의해 삭제되었다.

처음 긴급 메시지를 송신한 지 거의 하루 반이 지난 시점에 마침내 회사의 답신이 도착했다. 선장이 보낸 두 번째 메시지는 공조 장치의 응축기 마개가 부서졌다는 구체적인 사고 원인과 파손된 장비의 목록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운용사인 허드슨 워터웨이Hudson Waterway는 그다지 동요하지 않았다. 담당자는 계속 위치를 알릴 것을 지시하고, 비상 수리 가능성과 화재 발생 여부, 그리고 구체적인 파손 부품 내역에 대해 질문하면서 메시지 서두에 긴급 표시를 달고 즉시 답신할 것을 요청했다. 예인선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었다. 예인선을 구하기 힘들다는 내용이 있었다면 선장이 근처에 있는 배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다.

폭우 속에 동력을 잃고 표류하는 가움데 선장이 이러한 답신을 받고 어떤 기분이 들었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그는 중계소에서 긴급 메시지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사정을 설명하고 위치를 알리면서 지원을 요청했다. 그동안 지나가는 배들이 도움을 주겠다고 제의했지만 선장은 회사에서 보낼 예인선을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상황을 고려할 때 불운한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자 선장은 즉각적인 답신이 없으면 개인적으로 조치하겠다는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다. 이처럼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회사의 승인을 기다렸다. 대부분의 해운사와 마찬가지로 허드슨 워터웨이의 정책에 따르면 선장은 배와 선원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마지막 메시지가 발신된 시각은 9월 26일 오전 8시였다. 선장은 오전 11시가 되어서야 구조 요청 신호를 내보냈다.

열다섯 척의 선박이 구조 요청 신호를 접수했다. 그러나 가장 가까이 있는 선박이 177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다. 선장은 다시 회사에 연락하여 배가 밀려가는 섬 근처의 적절한 지점에 닻을 내릴 수 있도록 암초와 모래톱에 대한 정보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주위 수백 킬로미터 안에는 2개의 섬밖에 없었다. 이미 체틀랏Chetlat 섬은 지나쳤기 때문에 킬탄Kiltan 섬 근처에 닻을 내려야 했다. 나중에 회사는 선장이 체틀랏 섬 근처의 정박지에서 닻을 제대로 내리지 못했다고 탓했다. ‘트랜스휴론’호는 재차 구조 요청 신호를 내보내서 약 7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토시마 마루Toshima Maru’ 호와 접촉했다. ‘토시마 마루’호는 급히 ‘트랜스휴론’호를 향해 달렸다.

그러나 바다에서 확실한 것은 없었다. ‘토시마 마루’호는 예인 준비를 마치고 ‘트랜스휴론’호에 접근하여 로프 발사 총을 쐈지만 로프가 닿지 않았다. 게다가 로프를 발사하는 과정에서 3등 항해사가 큰 부상을 입어서 급히 병원으로 후송해야 했다. ‘트랜스휴론’호의 선장은 냉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언제 암초에 걸릴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는 섬에서 떨어질 수 있게 1.6킬로미터만 예인해 달라고 간청했다. 처음에 ‘토시마 마루’호는 거절했다. 선장은 다시 35명의 목숨이 걸려 있으니 0.8킬로미터만 예인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사이에 15분의 시간이 허비되었다. 할 수 없이 ‘토시마 마루’호는 한 차례 더 시도에 나섰다. 그러나 로프 발사 총이 고장났기 때문에 ‘트랜스휴론’호에서 로프를 쏴야 했다. 선원들이 총을 선미로 옮기는 사이에 결국 배가 암초에 걸리고 말았다. 그들은 좌현 닻을 내리고 ‘토시마 마루’호에게 더 가까이 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거대한 너울 속에서 발이 묶인 ‘트랜스휴론’호는 언제 파괴될지 모르는 지경이었다. 게다가 배에 실린 연료유도 유출되고 있었다.

선장은 선원들에게 해안으로 갈지 ‘토시마 마루’호로 갈지 선택하라고 말했다. 선원들은 높은 파도 때문에 해안으로 탈출하는 쪽을 선택했다. ‘토시마 마루’호는 현장을 떠났다. 1시간 20분 후 선장과 4명의 간부를 제외한 선원 모두가 2대의 구명선을 타고 무인도로 보이는 섬으로 향했다. 선장이 다시 회사에 구조 요청을 했지만 아무 답신이 없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재차 구조 요청을 했다. 선원들이 대피한 섬은 무인도가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들은 무사히 섬에 도착했지만 모두 체포되어 인도 군함에 의해 육지로 이송되었다.

화재가 난 지 3일 반이 지나서야 회사로부터 두 번째 메시지가 도착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금요일 아침 일찍 봄베이 항에서 예인선이 출발하여 48시간 안에 현장에 도착할 예정임. 매 12시간마다 위치를 송신할 것. 싱가포르에서 페르시아만까지 가용한 다른 예인선이 없음. 예인 지원을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이었다. 회사에서 기울인 최대한의 노력은 3일 반이 지난 후 예인선을 보낸 것이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회사는 ‘트랜스휴론’호가 좌초되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사이 현장에 나타난 인도 군함이 물밑 상황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배 바닥 대부분에 걸쳐 커다란 균열이 생긴 것으로 드러났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선장과 4명의 간부는 상황을 파악하고도 계속 배에 남았다(어쩌면 보험이나 인양 혹은 다른 법적 문제 때문일 수도 있었다). 선장은 회사에 예인선을 돌려보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다음 날 예인선이 뒤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비상 발전기의 연료마저 떨어진 가운데 ‘트랜스휴론’호는 높은 파도에 떠밀리기 시작했다. 선장과 간부들은 배를 버릴 준비를 했다. 좌초 전에 미리 구명선의 시동을 걸어보다가 펌프의 실 링seal ring이 터져 버렸기 때문에 노를 저어서 탈출해야 했다.

많은 사고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3.5미터에서 4.5미터 높이의 파도가 치는 바다에서 구명선을 띄우는 일은 대단히 어려웠다. 해상 시추선에서 사용하는 온갖 안전장치를 갖춘 밀폐형 구명정도 험한 파도에 뒤집어지면 안에 갇힌 사람들이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18명이 사망한 비극적인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또한 팽창식 구명정은 공기가 다 채워지지 않거나 터지거나 조난자들 머리 위로 떨어져서 부상을 입히는 일이 있었다. 1969년에는 군함에서 900킬로그램이 넘는 폭탄이 화물 갑판에 떨어진 사고가 발생했다. 승선원들은 급히 구명선을 바다에 띄웠지만 군함의 옆구리를 뚫고 나온 폭탄에 의해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트랜스휴론’호는 일정한 속도로 구명선의 양쪽을 함께 내려주는 장치를 갖추고 있었다. 바다에 내려진 후에는 구명선 중간에 설치된 레버로 동시에 양쪽 끝을 해제해야 했다. 이 일은 심하게 요동치는 바다에서 하기는 어려웠지만 분명히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구명선에 탄 사람들은 양쪽에서 따로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그 바람에 통신사가 맡은 선미 부분은 해제되었지만 다른 사람이 맡은 선수 부분은 해제되지 않았다. 거대한 파도 속에서 거의 수직으로 하강 장치에 매달린 구명선은 선체에 거세게 부딪쳤다. 다행히 배에 남은 2등 기관사가 소방용 도끼로 선수 부분의 잠금장치를 부순 덕택에 구명선이 풀려났다. 잠시 후 예인선에서 보낸 모터보트가 선장과 간부들을 구조했다.

구명선을 내리는 작업을 하느라 배에 남은 2등 기관사는 팽창식 구명정이 있는 상층 갑판으로 달려갔다. 그는 구명정이 담긴 상자를 바다에 띄운 후 공기를 불어넣는 실린더를 작동시켰다. 그러나 거센 바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구명정을 멀리 날려버렸다. 원래 구명정을 고정시키는 밧줄은 1.3톤의 하중을 견딜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연방교통안전위원회는 단지 밧줄이 끊어졌다는 사실만 언급하고 넘어갔다.

2등 기관사는 기름이 비교적 적게 덮인 선수 부분으로 달려갔다. 그는 모터보트가 약 9미터까지 접근한 상태에서 바다로 뛰어 들어가 구조되었다. 선장과 선원들은 3주 동안 억류되어 있다가 미국으로 송환되었다. 인도 정부는 추가 오염을 막기 위해 배에 남은 연료유를 제거했다.

이 사고는 설계 미숙(계기의 위치, 사용된 소재), 관리부실(보수하지 않은 계기와 니플), 운용자의 실수(조기 차단 실패), 설비 장애(소방 장치 미작동), 운용자의 실수(진작 지나가는 선박에게 예인을 요청하지 않은 선장의 잘못, 예인선을 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신속하게 알리지 않은 회사 담당자의 잘못)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악화되었다. 구조 과정에서도 복수의 장애가 발생했다. ‘토시마 마루’호의 간부가 부상을 입었고, 로프 발사 총이 고장 났고, ‘트랜스휴론’호의 로프 발사 총을 옮기는 일이 지연되었고, 구명정과 구명선을 띄우는 과정에서 계속 문제가 생겼다. 이 사고는 맨해튼에 있는 회사의 담당자, 인도의 정부와 무선통신 중계소, 예인선 지원 문제, 지나가는 배들, 좋지 않은 위치에 자리 잡은 섬들을 비롯하여 ‘트랜스휴론’호와 상호작용을 일으킨 다양한 시스템들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대개 이러한 문제들은 개별적으로는 심각하지 않지만 특별한 상황에서 결합될 때 사고로 이어진다. 다행히 ‘트랜스휴론’호의 침몰 사고는 참사가 아니었다. 인명 피해가 없었고, 소유주인 상무부의 예산에 비하면 배를 잃은 데 따른 재산 피해는 미미한 수준에 불과했다.

Perrow, Charles. Normal Accidents: Living With High-Risk Technologies. 2nd Ed.,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9.
(김태훈 역,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 서울: 알에이치코리아. 2013, pp.326-332)
by sonnet | 2014/09/21 19:29 | 정치 | 트랙백(1) | 핑백(1)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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