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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한미동맹
2010/07/30   한미관계에 관한 두 편의 칼럼 [79]
2009/08/03   핵우산에 대해서 (1) [77]
한미관계에 관한 두 편의 칼럼
관련된 이야기 전개에 참고용으로.

두 명의 저자는 모두 워싱턴의 아시아통인데, 이런 이들은 자신들이 전문분야로 삼는 상대국에 대해 호의적으로 발언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미국의 정책을 좌우하는 주류 정치가나 관료 집단은 유럽이나 러시아에 대해서는 잘 알아도 아시아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잘 모른다(문화적 언어적 장벽이 크기 때문임). 그렇기 때문에 워싱턴의 아시아 전문가들이란 우리의 입장을 미국 주류에게 번역해서 전달하는 통역관 같은 존재이고, 일단 그들조차 납득시킬 수 없다면, 주류를 설득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라고 봐도 좋다.


사족은 이 정도로 하고, 우선 첫번째 칼럼은 노무현 대통령이 동북아 균형자론을 밝혔을 당시의 것이다.

미국이 보는 '균형자론'
* 필자: 마이클 아머코스트 (전 브루킹스연구소장)
* 출처: 중앙일보
* 일자: 2005년 6월 1일

노무현 대통령이 '균형자론'을 밝혔다. 미국인은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역사적으로 한국은 세계를 상대로 세 가지 전략을 구사했다. 고립.대륙정책.해양전략이다.

수십 년 동안 한국은 해양전략을 추구했다. 멀리 떨어져 있고 또 '사욕이 없는' 미국에 의존해 인접한 호전적 세력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왔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많은 지도층 인사는 이 전략의 필요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렇다면 '균형자론'은 대륙정책으로의 전환을 예고하는 것인가. 분명히 한국의 현재 정책엔 이에 대한 암시가 있다. 서울이 우선시하는 것은 평양과의 화해다. 이를 위해 정책의 무게를 워싱턴보다는 베이징(北京)에 둔다. 노 대통령은 초(超)태평양 라인보다는 범(汎)아시아 위주로 지역을 재조정해 한국을 동북아의 경제 '허브'로 만든다는 비전을 추구한다. 여기서 미국의 존재는 부각되지 않는다. 서울은 워싱턴과의 방위 사슬이 마찰을 빚고 있는 동안 베이징과는 새로운 군사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에 대한 한국 국민의 점증하는 적의, 그리고 중국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점증하는 경의는 대륙과 해양 세력에 대한 한국의 태도가 비대칭적일 것임을 시사한다.

한국은 중국에 반대해 균형을 취하기보다는 중국에 편승함으로써 균형을 취한 전례가 있다. 이 때문에 일부 미국인은 노 대통령의 '균형자론'이 생각보다 깊은 뜻을 담고 있다고 믿는다. 보통 중간 크기의 세력은 세계적 또는 지역적 세력균형 과정에서 그 조정을 반영하는 잣대가 되곤 한다.

동북아의 균형은 분명히 변하고 있다. 중국은 강대국으로 부상 중이다. 일본은 역외 안보 책임을 떠맡기 위해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북한의 핵활동은 지역 내에 더 광범위한 핵 도미노를 촉발시킬 수 있다. 민족주의는 아시아의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됐다. 아시아의 새 지도자들은 국내 지지가 약할 때일수록 민족주의 감정에 몰입한다. 무엇보다 미국의 정책이 테러와 핵 확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급격하게 변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한국이 새로운 불확실성에 대비해 자신의 위상을 새롭게 조정하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북한과의 화해는 북한의 위협을 제거하고 미국에 대한 한국의 의존도를 낮춰준다. 중국과의 관계 강화는 북한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하고 북한에 제재를 가하려는 미국의 압력을 막아준다.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고 또 한반도에 미군을 유지시키는 것은 북한과 중국의 의도에 대한 판단이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던 것으로 나타날 때를 대비한 '위험 방지책'이다.

그러나 양다리 걸치기엔 신중함이 요구된다. 모든 전략을 선택 가능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 국가는 거의 없다. 상대도 각기 다른 선택을 갖고 있다. 지배도 선택의 하나다.

나는 미국인으로서 한국의 '균형자론'이 동맹의 미래에 미칠 충격을 걱정한다.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동맹에 많은 투자를 했다. 또 동맹의 실질 성과를 인정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동맹은 불확실성에 대한 방지책이다.

'균형자론'은 오랫동안 동맹의 기초를 제공해 왔던 안보 이익에 대한 공감대가 점차 부식하는 배경에서 나왔다. 그리고 워싱턴은 이제 전통적인 동맹에 대해 주의를 덜 기울인다. 반면 '연합할 뜻이 있는' 나라에 관심을 보인다.

한국의 외교전술이 대륙정책 전환으로의 결정적 전조가 될 것인가, 아니면 미래의 전략적 선택을 극대화하는 계기가 될까. 한.미의 동맹관계에 대한 엄격한 검증은 다음 사항으로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한.미가 공조를 통해 평양에 대한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면 우리의 동맹은 속 빈 조개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리고 두 번째 칼럼은 '동북아 균형자'론이 충격을 가져온지 몇 년 후인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하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시점의 것이다.

한·미 동맹 개념 재정립해야
* 필자: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
* 출처: 중앙일보
* 일자: 2008년 9월 12일

지금 한·미 동맹 관계는 2003년 중반 많은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튼튼하다. 당시 수만 명의 시위대가 서울 길거리에서 반미 시위에 나서고 미 국방장관이 시위가 계속될 경우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는 암시적 언급을 하면서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 동맹이 많은 사람이 주장했던 것처럼 그렇게 위기에 처한 적은 없다. 다만 동맹의 바탕에 깔린 전략적 논리가 변함없이 튼튼한지는 다시 검토해 봐야 한다.

이런 생각은 아시아 전문가가 아닌 미국의 고위급 전략가들이 미국과 일본·호주 간의 동맹을 강조하면서 가끔 한국을 빠뜨리는 경우를 보면서 더욱 강해진다. 대다수 인사들은 한·미 동맹이 필수적이라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그들의 무의식적 발언에서 자주 한국이 빠지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저명한 냉전 학자 존 루이스 개디스는 미·일 동맹을 ‘근본적 냉전’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묘사했다. 미국의 전략가들은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미국은 일본과 단단한 유대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사실을 제2차 세계대전 개전 때부터 깨달았다는 것이다. 반면 한·미 동맹은 ‘전술의 냉전’이라고 묘사했다. 세계 공산주의와 맞서는 최전선에서 위기가 한창일 때 만들어진 동맹이라는 의미다. 이 같은 두 동맹의 태생적 성격 차이는 지금도 미국의 대아시아 전략 구상에 미묘하지만 큰 영향을 지속적으로 미치고 있다. 이제 한·미 동맹의 개념은 새로운 시대에 맞게 재정립돼야 한다.

우선 한국이 ‘전술의 냉전’ 개념을 넘어 미국에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확실히 북한의 위협은 한·미 동맹이 동북아의 평화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은 전술적 측면뿐 아니라 근본적 측면에서 전략적 중요성을 갖고 있다. 한국은 세계 13위 경제대국이자 미국의 가장 큰 교역 상대국 가운데 하나며, 공통의 가치와 가족적 유대관계로 묶인 국가다.

한·미 동맹은 전술적 측면에서도 필수적이다. 한국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여 아시아와 국제사회를 연결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나라다. 중국의 부상과 관련해서도 한국의 역할은 중요하다. 아시아 미래 안보와 관련된 최악의 시나리오는 중국이 통제되지 않는 패권을 장악하는 것과, 이 지역이 대륙과 해양 세력이라는 두 개의 대립하는 블록으로 나뉘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모호하긴 하지만 이 같은 위험을 인식하고 ‘균형자’ 개념을 제안한 바 있다. 노 행정부는 스스로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좀 더 중립적으로 되기 위해 미국을 압박하면서 균형자란 개념을 사용했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한·미 동맹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미국으로 하여금 동맹에 대한 믿음에 회의를 갖게 할 뿐 아니라 중국에는 독자적 운신으로 한국을 고립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할 것이다. 아시아의 안정적 질서 유지를 위해 바람직한 방향은 중국이 한·미 동맹을 역내 질서의 불변 요소로 여기게 하는 것이다.

한·미 동맹은 아시아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체제 경쟁에서도 중요하다. 민주주의 이행의 역사적 경험과 아시아 전 지역과의 긴밀한 관계를 가진 한국은 아시아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향한 지속적 행진을 계속해야 한다는 합의를 강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국제적 핵 확산 문제에서도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북한이 핵 협상에서 철저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확고한 입장은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해선 안 된다는 국제사회의 결의를 굳게 하고 있다. 미국의 정권교체는 새 시대에 걸맞은 한·미 동맹의 새로운 개념을 재정립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by sonnet | 2010/07/30 13:34 | 정치 | 트랙백 | 덧글(79)
핵우산에 대해서 (1)


1. 북한의 핵실험과 남한 정부의 대응

북한은 2006년 10월 9일 제1차 핵실험을 실시하였다. 핵보유국가임을 대외적으로 과시한 것이다.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기본적인 대응은 북한의 핵위협은 한미동맹을 통한 미국의 핵우산 보장으로 맞선다는 것이었다.

같은 달 20일 개최된 장관급 정기 회담인 제38차 한미안보협의회(SCM)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노무현 정부의 윤광웅 국방장관은 "북한 핵 문제에 대한 후속조치가 이번 SCM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단언했으며, 권안도 국방부 정책홍보본부장도 이날 SCM 사전 브리핑에서 "국민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북한 핵실험에 대한 한미공조 문제가 이번 SCM의 가장 핵심의제"라면서 "핵우산 제공 문제가 양국 장관 선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부연[1]하였다.

이 회담 결과, 공동성명에는 "럼스펠드 장관은 미국의 핵우산 제공을 통한 확장억제의 지속을 포함하여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미국의 한국에 대한 굳건한 공약과 신속한 지원을 보장하였다."[2]란 표현이 포함되었다.

3년 후인 2009년 5월 29일, 북한은 제2차 핵실험을 실시하였다.

그 다음달 16일, 이명박-오바마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한미동맹 미래비전'을 선언하였다. 여기에는 "핵우산을 포함한 확장 억지에 대한 미국의 지속적인 공약은 이와 같은 보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3]란 표현이 포함되어 있다.

언뜻 보면 똑같은 이야기 같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다. 그러나 여기에는 꽤 구질구질한 진영논쟁의 역사가 있다.



2. 핵우산을 둘러싼 진영논쟁의 역사

제1막. 2009년 이명박-오바마 한미정상회담 - 워싱턴

이명박-오바마 정상회담에 등장한 핵우산 언급을 놓고 보수 진영에서는 이를 미국의 핵우산 재보장을 정상 차원으로 격상시킨 것이라고 반겼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양국 정상간 확장억지력을 약속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안보와 관련해 '확장억지력'을 약속받은 게 가장 중요한 것"[4]이라고 평가했다. 박희태는 확장억지력을 "적의 공격을 받았을 경우 미국 본토가 공격받은 것과 똑같은 억지력을 취하는 것"[5]이라고 풀이한다. 홍관희 박사 또한 "핵우산 정도로는 부족하고, ‘확장된 핵억제력’ 곧 ‘美 본토가 공격당할 경우와 같은 정도로 북핵에 대응할 것’이라는 다짐"[6]이라며 이 정상회담은 "한마디로, 대성과다"라고 추켜올린다.

'남한이 공격받았을 때 미국 본토가 공격당한 것과 같을 정도로 대응'한다는 주장은 대단한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미국이 유사시에 정말 그렇게까지 해주겠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 문제는 나중에 다시 살펴볼 예정이니 여기서는 일단 넘어가기로 하자.

반면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는 "이 개념[핵우산을 포함한 확장억지] 속에는 북핵을 기정사실로 인정해 준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 그렇게 되면 가장 중요한 목표로 추구했던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사실상 포기된 것인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7]고 주장했으며, 민주당 박지원 의원 또한 "정부의 주장대로 우리가 미국의 핵우산으로 안보가 강화됐다면 그것은 곧 북한의 핵 보유를 공인하는 우를 범하는 것"[8]이라고 논평했다. 노무현 정부의 주요 브레인 중 하나였던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한미 정상들이 핵우산을 명문화하면 안보 재앙이 온다"고까지 극언한다. "북측은 핵군축협상을 하자는 입장인데 이번에 핵우산을 정상회담에 명시함으로써 북한이 원하는 것을 해줘버린 것"[9]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앞서 우리가 살펴 보았듯이 북한의 1차 핵실험 직후에도 한미 양 국은 동일한 내용으로 확장억지(=핵우산)를 명문화했었고, 그 이후로도 매년 그랬다는 것이다. 유일하게 다른 점은 그것이 장관급이었냐 국가정상급이었냐 정도일 뿐이다. 그렇다면 장관급 공동성명은 북한이 꼬투리잡을 건수가 못 되는데, 정상급 공동선언은 북한에게 좋은 먹이를 준 것일까? …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는가.

사실 1978년 제11차 SCM의 공동성명에 "한국이 미국의 핵우산 하에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있게 될 것임을 재확인한다"고 명기된 이후 매년 SCM에 핵우산 제공 약속은 빠지지 않고 있다.[10] 이는 지난 30년 동안 계속된 아주 진부한 레퍼토리인 것이다.

정상회담, 한미안보협의회(SCM), 군사위원회(MCM) 간의 위계


제2막. 2006년 한미안보연례협의회(SCM) - 워싱턴

그럼 2006년도 지난 30여년과 똑같은 아무런 차이가 없는 평이한 SCM이었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그 해의 SCM은 특히 잡음이 많았기 때문에 좀 더 살펴볼 가치가 있다. 그리고 공동성명에도 약간의 차이가 생겨났다. 핵우산(nuclear umbrella)에 더해 확장억지(extended deterrence)란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취재기자의 회고를 들어보자.

"양국 국방장관의 기자회견 도중 핵우산 제공 표현 문제를 놓고 이견이 그대로 노출되고, 미 국방부 고위 관계자가 한국군 고위 관계자의 핵우산 구체화 전략지시 발표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등 유례 없는 사태가 빚어졌다. 공동성명 발표도 당초 예정보다 7시간30분이나 늦게 이뤄졌다. … 지난 10여년간 10여 차례의 SCM 중 처음 보는 난맥상이었다."[11]

조선, 연합, 한겨레, 경향 등 성향을 달리하는 여러 언론들이 이 상황을 비슷하게 그려냈다.

"[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럼즈펠드 장관은 ’한국측이 핵우산 구체화를 요구했는데 왜 예년수준으로 표현되느냐’는 질문에 “그 같은 변화를 위한 어떤 제안을 들었다는 기억이 없다”고 답변했다. 그는 “(기존과) 다른 언어 표현을 보지 못했다”며 통역과 취재진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에 대해 윤 장관은 “오늘 SCM과 이틀전 열린 MCM에서 핵우산에 대해 여러 얘기를 나눴기 때문에 공동성명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예년보다 좀 다를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부연설명을 했다. 그러자 럼즈펠드 장관은 윤 장관을 쳐다보고 웃으며 “oh, really?”(오, 정말)라며 농담인지 진담인지 헷갈리는 반응을 보였다. 주는 사람은 모르고 있는 데 받는 사람은 이미 받았다고 하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12]

"최종적으로 공동성명에 이 내용[확장억지]이 포함될 때까지 정부는 미국에 ‘읍소’하다시피 끌려가는 모습을 되풀이했다. 협상과정에서 미국측은 공동성명 지연 이유에 대해 “한국측이 공동성명 표현에 또 다른 토픽(주제)을 부가하려는 욕심 때문”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확장 억제’도 우리 측이 내놓은 것이 아니라 미국측이 제시한 표현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우리 측은 핵우산과 관련한 보다 구체적인 문장을 추가하려다 성사시키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13]

한국이 넣으려다 성사시키지 못한 그 구체적인 문장이란 무엇이었을까? 한겨레는 "한국은 문안 조정 과정에서 “한국에 대한 핵공격을 미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문구를 넣어야 한다고 주장"[14]했다고 보도했다. 정말 재미있지 않은가, 이 말대로라면 노무현 정부가 넣으려다가 미국에게 거부당한 표현은, 한나라당 박희태가 이명박-오바마 정상회담에 대해 내린 해몽해석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게 행동한 동기는 이해할만하다. 북한은 핵실험을 강행했고, 그 어떤 나라보다도 북한의 위협을 직접적으로 받는 것이 남한인 만큼, 정부는 국민에게 안심감을 줄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을 테니까 말이다.

하여간 '확장 억지'라는 말은 이렇게 해서 고위급 성명에 들어왔다. 한국 측은 이 확장억제를 "미국의 핵우산 제공 의지를 더욱 구체화한 개념"이라고 설명[15]하며 뭔가 새로운 것을 얻어낸 것처럼 묘사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SCM에 앞서 열린 군사위원회 회의(MCM)가 끝났을 때 안기석 합참 전략기획부장은 ’핵우산 제공 구체화 방안이 논의됐느냐’는 질문에 “오늘(18일.현지시간) MCM에서 연합사령관에게 지침을 주고 연합사령관이 이를 구체화해 나가기로 했다”고 발표[16]하는 등 뭔가 내용에도 상응하는 변화가 있음을 전했다. 하지만 미국 측이 이를 즉각 전혀 사실이 아니라며 반박함에 따라 앞서 본 것 같은 혼란스러운 상황이 초래되었다.

이 여진은 1주일을 이어졌다. 결국 10월 30일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 겸 한미연합사 사령관이 내외긴 기자회견을 갖고 이 문제를 최종적으로 재확인하게 되었다. 벨 사령관은 "확장된 억제력은 핵우산으로 1978년 이후 모든 SCM 공동성명에 명시되어 왔다"며 이는 “군사조치 패키지(package)가 아니며 미국의 핵우산 공약에 대한 변화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 “MCM에서 핵과 관련된 전략지침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MCM에서 작전 계획과 관련된 어떤 지침도 받지 않았다”고 밝혔고, 이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MCM에서 핵무기를 핵무기로 보복하는 계획, 핵우산 보장을 시행하거나 핵우산 보장을 구체화하는 작전 계획과 연관해 논의한 적은 없다”고 확인[17]했다. 즉 합참의장급(MCM) 혹은 장관급(SCM) 회의 이후 핵우산의 실제 집행계획을 세우라는 지시가 군에 내려갔다는 설명은 사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버시바우 주한미국대사도 이를 재확인했다.

Q)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합의된 ‘확장된 억지력(extended deterrence)’에 대해 우리 국방부는 기존 핵우산에서 진일보된 것이라고 했다. 확장된 억지력은 ‘핵우산’과는 다른 것인가.
A) “기존의 핵우산을 강조한 것이지 강화한 것이 아니다. ‘확장 억지력’은 … 기존의 한국안보에 대한 공약을 재확인한 것일 뿐 달라진 내용은 없다.”[18]

한 핵전략 연구자는 이 사건을 가리켜 (한국이 끈질기게 매달리자) "미국이 동의어를 활용해 동어반복을 해 준 것"[19]이라고 촌평한 바 있다. 결국 이 사건은 북한의 핵실험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한국 측이 미국으로부터 더 강화된 핵 안전보장을 받아냈다고 주장하고 싶어했으나, 미국 측은 끝내 예년과 동일한 수준의 보장을 제공하는 데 그친 해프닝이었던 것이다.

여기까지만이라면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을 상대로 국력이 딸리는 한국이 겪은 전형적인 약소국의 좌절 정도로 정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제3막에 해당하는 반전이 있다.


제3막. 2005년 한미안보연례협의회(SCM) - 서울

앞선 사건에서 다시 1년을 거슬러 올라간, 2005년도 한미안보연례협의회(SCM) 당시의 일이다. 서울신문은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중심으로 한 일부 핵심 인사들이 정부 출범 이후 핵우산 조항 삭제안을 주장, 기존의 외교·국방 관료들과 갈등을 빚었다.”면서 “지난해 9·19 공동성명이 나온 직후인 10월 서울에서 열린 37차 SCM 때는 미측에 조항 폐기를 건의했다.”[20]고 보도했다. 이들은 “미국의 대한 핵우산 공약은 냉전시대의 안보 개념으로,SCM 문건에 핵우산이 포함돼 있는 상황에서 북한에 대해 핵의 완전한 폐기를 주장하기 어렵다.”[21]는 논리를 제기했다고 한다.

정부 당국자들은 처음에 이 보도를 강력 부인했지만, 미국 측은 이 사실을 확인[22]했다. 한국 NSC 측에서 “핵우산 제공 조항과 상관 없이 미국은 유사시 핵우산을 제공할 것이니, 일단 핵우산 제공 조항을 삭제해 북한을 설득하자”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미 국방부 관계자들은 “이번 SCM에선 공동합의문을 내지 말자”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23]는 것이다.

그러자 정부 당국자는 다음 날 말을 바꾸어 “표현의 문제였지, 정책을 갖고 얘기하진 않았다.”면서 “문서에 조항이 없어진다고 해서 정책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24]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우리는 2006년에 바로 그 표현을 놓고 얼마나 요란한 불협화음이 일어났는지를 익히 살펴본 바 있다.

다른 보도에 따르면 한국 정부 내에서 이런 주장은 2003년 말 제35차 SCM 전부터 있었고, 후에 북한이 이 문제를 걸고 넘어지면서부터 논쟁이 본격화 되었다고 한다. 외교통상부나 국방부 등 실무 부서들이 “북핵 폐기가 확인되기 전 핵우산 제공 조항을 삭제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강하게 반발하는 가운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에서 “SCM 공동합의문에 핵우산 제공 조항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북한에 핵 폐기를 요구할 수 있느냐”는 주장을 폈다는 것[25]이다. 찬성론자들은 “조항이 있으나 없으나 미국은 여전히 핵우산을 제공할 테니 문제가 없다. 북한이 9·19공동성명을 이행하도록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고 밀어붙였고, 일부는 “북한이 핵 폐기를 한 뒤 필요하면 핵우산 조항을 다시 집어넣으면 된다”는 주장을 펴기도[26] 했다. 결국 이들이 논쟁에 승리했고, 협상 실무진에서는 이 같은 요구를 하는 것에 반대 의견을 냈으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핵심 관계자가 확고한 의지를 보여 마지못해 제의[27]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사실 2005년에는 한미동맹과 관련된 갈등이 적지 않았었다. 기억나는 것만 몇 개 꼽아 봐도 헨리 하이드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이 북핵과 6자회담 관련 청문회에서 한국 정부에 대해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적이 누구인지 분명히 말해야 한다"고 지적[28]했었고, 리처드 롤리스 국방부 부차관보는 동북아 균형자론은 한미동맹과 양립될 수 없는 개념이라면서 “만일 동맹을 바꾸고 싶다면 언제든지 말하라. 하고 싶은대로 다 해주겠다.”[29]라는 말을 남겨 언론을 타기도 했었다. 9월에는 맥아더 동상 훼손 사건으로 미 하원 국제관계 위원회 위원들이 연명으로 "맥아더 장군이 주도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한국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 … 철거를 위한 훼손행위가 계속될 것이라면 차라리 미국인들에게 동상을 양도해줄 것을 정중하게 제안한다"[30]한다는 서한을 노 대통령에게 보낸 바 있었다.

이 때 진짜로 핵우산 조항을 삭제했더라면 아마 2006년 SCM에는 앞서 살펴본 것을 몇 배 상회하는 진풍경이 벌어졌을 것이다. 전시작전통제권 문제에서 잘 볼 수 있듯이, 미국은 이런 문제를 한 번 결정하면 쉽사리 뒤집지 않기 때문이다. 2006년 SCM 당시엔 미국 측이 다소 퉁명스럽다는 느낌도 없잖아 있었지만, 이런 사정을 알게 되면 핵우산 같은 중대한 안보 공약을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 한국 측의 단견에 얼굴이 붉어질 따름이다.


핵우산 표현이 명기되기 시작한 이유

이건 여담이지만, 앞서 미국이 핵우산 보장을 공언하기 시작한 것은 1978년 제11차 SCM부터였다고 설명했었다. 왜 1978년에 핵우산 제공이 공식화되기 시작했던 것일까?

그 전 해인 1977년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전면 철수 시도로 한미관계는 사상 최악의 상황에 빠져든 바 있었다. 1978년에는 사방에서 반대에 직면한 카터가 철군 일정을 늦추고 그 해의 철군 규모도 1개 여단에서 1개 대대로 줄였지만, 상황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컸다. 그러한 철군에 따른 한국의 불안감을 줄여주기 위해 증강된 군사원조, 한미연합사 창설 등이 이어졌으며 핵우산 보장을 공식화한 것도 그러한 배경 하에서의 일이었다. 핵우산에 대한 공약은 처음에 일종의 꿩대신 닭으로 제공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정리

예측가능한 미래의 범위 안에서 한국에 집권 가능한 정치세력은 단 둘 - 한나라당 계열과 민주당 계열 - 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둘 모두 북한의 핵위협이 가시화되는 시기에는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전의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따라서 핵우산 재보장을 북한과의 협상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행위인 셈이다. 2005, 2006년 SCM에서의 해프닝은 그런 접근이 갖는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

설명이 길어졌는데, 어쨌든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고 현재 상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다.

1) 언론에 등장하는 '확장 억지'와 '핵우산'은 동일한 것이다.
2) 핵우산을 제공한다는 미국의 공약은 1978년 이래 재확인되고 있지만, 북한의 1차 핵실험이 있었던 2006년(노무현 정부) 혹은 2차 핵실험이 2009년(이명박 정부)이건 간에 별 차이 없이 보장 선언만 있고 실질적인 내용의 보장은 없다.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부록: 표현 비교해 보기

제11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1978)의 핵우산 관련 표현
contiuned provision of nuclear umbrella
(공약이 시작되기 전부터 전술핵이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contiuned임)

제38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2006)의 핵우산 관련 표현
including continuation of the extended deterrence offered by the U.S. nuclear umbrella
(즉 한국 측이 extended deterrence이 새로 들어왔다고 하자, 미국 측은 그것은 continuation한 것이라고 지적)

'한미동맹 미래비전' 상의 핵우산 관련 표현
the continuing commitment of extended deterrence, including the U.S. nuclear umbrella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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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38차 SCM 공동성명 제3조. 동 공동성명 한글본은 제38차 SCM 공동성명 전문, 연합뉴스, 2006년 10월 21일; 영문본은 38th Security Consultative Meeting Joint Communique, US / South Korea,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2006년 10월 20일
[3] 한미 동맹을 위한 공동비전 전문, 조선닷컴, 2009년 6월 17일; 영문본은 청와대 참조.
[4] 박희태 '美 '확장억지력' 약속 중요', 연합뉴스, 2009년 6월 18일
[5] 같은 글
[6] 권재찬, "韓.美 정상, '自由통일·核저지·北인권' 공조 구축했다", 코나스넷, 2009년 6월 18일
[7] 이강래, 한미정상회담 결과에 '쓴 소리', 뉴시스 2009년 6월 18일
[8] 박지원 "한미정상회담 북한핵 폐기 논의했어야", 연합뉴스, 2009년 6월 18일
[9] 김당, 황방열, "북한은 핵무기와 미국의 '핵우산'을 맞바꾸려 할 것", 오마이뉴스, 2009년 6월 26일
[10] 김귀근, 이귀원, SCM 앞두고 미묘한 긴장감..회의 난항 예상, 연합뉴스, 2006년 10월 20일
[11] 유용원, 핵우산·전작권 연쇄충돌… 동맹 무색한 최악의 SCM, 조선일보, 2006년 10월 23일
[12] SCM 관련 5대 논란..여진 증폭, 연합뉴스, 2006년 10월 23일
[13] 박성진, 김광호, 한미 핵우산 강화해서 ‘핵시계’ 돌리나, 경향신문, 2006년 10월 22일
[14] 손원제, 한국 핵불안 달래기 ‘립서비스’, 한겨레, 2006년 10월 22일
[15] 김정곤, 벨 사령관 "작전권 전환 시기 내년 상반기 결정", 한국일보, 2006년 10월 30일
[16] SCM 관련 5대 논란..여진 증폭, 연합뉴스, 2006년 10월 23일
[17] 벨사령관 회견 논란거리 또 제공, 서울=연합, 2006년 10월 30일; 유용원, “전작권 전환의 정확한 시기 내년 상반기까지 결정 희망”, 조선일보, 2006년 10월 31일
[18] 강인선, “북 돈줄 차단 필요… 금강산·개성 심각히 고려해야”, 2006년 10월 31일
[19] 해양전략연구소 조찬 포럼에서 강연했던 국방연구원 김태우 박사의 표현이다.
[20] 김수정 김상연, ‘핵우산’포기 추진했었다, 서울신문, 2006년 10월 17일
[21] 같은 글
[22] 오남석, “한국정부 작년 한·미연례안보協때 ‘핵우산 조항’삭제 요구 사실”, 문화일보, 2006년 10월 17일
[23] 같은 글
[24] 김수정, “핵우산 포기 언급은 했었다”, 서울신문, 2006년 10월 18일
[25] 이명건, “북한 변화유도” 명분 盧정부 무리한 시도, 동아일보, 2006년 10월 17일; 2003년 기원설에 대한 정부 측 부인은 [22] 참조.
[26] 윤상호, 이명건, 청와대-NSC “조항 없애도 핵우산 가능” 삭제 고집, 동아일보, 2006년 10월 18일
[27] 이상언, 김성탁, 한국 정부, 2005년 10월 SCM서 `핵우산 표현` 삭제 요구했었다, 중앙일보, 2006년 10월 18일; 사건이 벌어진 시점에 대한 다른 주장으로는 강인선, 한국정부 ‘핵우산’ 갖고 말장난, 조선일보, 2006년 10월 18일
[28] 윤동영, 하이드위원장 對韓 강경발언 안팎, 연합뉴스, 2005년 3월 11일
[29] 이도운, 조승진, “균형자론·한미동맹 양립 불가”, 서울신문, 2005년 6월 9일
[30] 조복래, 美 "맥아더동상 철거하려면 차라리 넘겨달라", 연합뉴스 2005년 9월 16일

by sonnet | 2009/08/03 08:00 | 정치 | 트랙백(2) | 핑백(1) | 덧글(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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