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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하이먼민스키
2009/06/05   하이먼 민스키의 금융위기론 [29]
하이먼 민스키의 금융위기론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재조명되는 인물들이 몇 있는데 누가 뭐래도 그중 No.1은 케인스일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칼 폴라니를 밀고 있는 모양이다. 이런 식으로 해외에서 재조명받는 인물 중 하나가 금융의 취약성을 강조했던 하이먼 민스키다. 민스키도 만년에 유행에 뒤떨어진 구식 케인지언으로 간주되어 큰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

예를 들어 폴 크루그먼은 최근 강연차 서울에 오면서 민스키의 Stabilizing an Unstable Economy를 들고와서 읽었다(1, 2)고 한다. 내가 알기로 민스키의 단행본은 번역된 적이 없는데, 킨들버거의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의 2장에 금융위기에 대한 그의 생각이 요약 소개되어 있기 때문에 조금 옮겨 볼까 한다.


경기확장 국면에는 투자자들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 태도가 증폭되고, 이들은 다양한 영역에서 투자에 대한 수익성 추정치를 상향 조정한다. 따라서 이들이 자금을 차입하려는 의욕이 늘어난다. 동시에 대여자들은 개별적인 투자에 대한 위험 평가를 낮추고, 이들의 위험 회피 성향도 줄어들어 자연히 돈을 빌려주려는 의욕이 증가하고, 이전에는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했던 투자가 긍정적인 여신 대상으로 바뀌는 경우도 생겨난다.

제반 경제 여건이 둔화될 때는 투자자들의 낙관론은 줄어들고 신중론이 고개를 든다. 동시에 대출손실이 늘어나게 되므로 대여자들은 훨씬 더 조심스러워진다.

민스키는 이처럼 호경기 때 늘어나고 경제의 탄력이 약화될 때 줄어들면서 경기순환에 동조하는 신용 공급의 확대와 축소가 금융 질서의 취약성을 초래하고 금융위기의 가능성을 증폭시킨다고 믿었다.

이 모델은 신용 공급의 불안정성에 주목한 존 스튜어트 밀, 알프레드 마샬, 크누트 빅셀, 어빙 피셔 등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다. 민스키는 피셔의 노선에 따라 과도한 채무를 진 차입자들, 특히 경기 확장기에 단기적인 자본이득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부동산이나 주식, 상품의 매수 자금을 차입금으로 조달하는 사람들의 행태에 주목했다. 이들이 이런 거래를 하는 이유는 해당 자산가격의 상승률이 매수 자금으로 조달한 차입금의 금리를 능가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가 둔화하면 이들이 매수한 자산가격의 상승률이 차입금의 금리보다 낮아지게 된다. 그러면 이들 차입자 가운데 일부는 실망하게 되고, 이들 중 다수는 투매자로 돌변한다. (pp.58-59)


민스키는 이런 상황에서 차입자들의 유형을 세 가지로 구분해서 접근할 것을 권한다.

민스키는 개별 차입자들의 영업이익과 채무 원리금 상환 사이의 관계를 기준으로 세 가지 자금조달 유형을 구분했는데, 헤지금융, 투기금융, 폰지금융이다. 어느 기업의 예상 영업이익이 이자와 채무 원금의 분할 상환액을 지불하고도 남을 만큼 충분할 경우, 이 기업은 헤지금융(hedge finance) 집단에 속한다. 예상 영업이익이 이자를 지불할 수 있을 만큼은 충분하지만, 만기 시점까지 잔여 채무 원리금의 일부 혹은 전부를 상환하려면 신규 차입을 해야 하는 경우, 투기금융(speculative finance) 집단에 속한다. 예상 영업이익이 약정된 지급 일정에 따른 이자를 지불하기에도 부족할 개연성이 크다면 이 기업은 폰지금융(Ponzi finance) 집단에 속한다. 폰지금융 집단에 속하는 기업은(채무 원금은 차치하고) 이자 상환을 위한 현금을 마련하려면, 추가 차입으로 채무 원금을 늘리거나 아니면 보유 자산을 매각해야 한다.

민스키의 가설은 경제가 둔화하면, 헤지금융으로 운영되던 기업들 가운데 일부가 이 그룹에서 탈락해 투기금융 집단으로 떨어지고, 이전에 투기금융으로 운영되던 기업들 가운데 일부가 폰지금융 집단으로 선로를 바꾸게 된다는 것이다.(p.62)

이번 금융위기에서 민스키가 각광받은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이것은 주택대출을 끌어 쓴 차입자들의 상황을 설명하는데 아주 간명한 틀을 제공해 준다.


그리고 신용공급의 확대가 문제를 증폭시키는 측면도 적절히 지적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을 요하는 점은 현대적 금융이 도입되기 전에도 이런 문제는 늘 있었다는 것이다.

민스키 모델에서 호황 국면에 연료를 공급하는 것은 신용의 팽창이다. 은행 산업이 자리 잡기 이전인 17세기와 18세기에는 개인 신용과 판매자 금융이 투기적 확장 국면에 연료를 공급했다. 은행이 만들어지자 이들이 신용의 공급과 함께 그들 자신의 부채를 확대했다 … 민스키는 은행 여신의 성장이 매우 불안정한 양상을 띠며 이어져 왔다고 지적했다; 은행들은 자금 대여자로서 어떤 때는 무척이나 강한 풍요감에 젖어 제한 없이 자금을 빌려주었다가, 어떤 때는 신중함이 극에 달해 차입자들이 “바람에 휘둘리도록” 내버려뒀다. (pp.60-61)

이 같은 과정이 이어질 경우 나타나는 결과는 아담 스미스와 그의 동시대인들이 ‘과잉거래’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 용어는 그 정확성이 다소 떨어져서, 자산가격이나 상품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투기적 판단, 장래수익의 과대 추정, 혹은 ‘과도한 차입금 의존(excessive leverage)’ 거래라는 의미를 포괄한다. (p.63)

이런 청산 과정은 패닉으로 악화되기도 했다. 19세기에는 이 같은 행태를 ‘급반전’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상품 또는 유가증권을 담보로 대출하는 은행의 조심스러움이 확연히 커진다. 19세기 초 이런 상황은 ‘신용경색’으로 일컬어졌다. ‘과잉거래’, ‘급반전’, ‘신용경색’이라는 용어들은 골동품 같은 냄새를 풍기지만, 투자자들의 낙관론이 퇴색하는 과정을 시각적 도표처럼 잘 전달해준다.(p.69)

"하이먼 민스키"로 웹 검색을 해보면 해외 언론들이 그를 재조명하는 것을 받아쓴 국내 언론 보도들이 여럿 보이긴 하는데, 그를 진지하게 재발굴하려는 시도는 적어도 국내에서는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긴 적어도 그의(혹은 그를 소개하는) 책이 몇 권 나와야 독자들을 확보해 논의가 시작될 수 있긴 하겠다만...


記. 민스키는 1919년생으로 로버트 솔로우보다 다섯 살 위다. 그도 대공황을 경험한 세대인 셈.
by sonnet | 2009/06/05 08:47 | 경제 | 트랙백 | 덧글(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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