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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프랭클린루스벨트
2009/02/18   알파벳 수프 [12]
2008/10/03   뉴딜 정책에서 배우는 이 혼란을 벗어날 방법 [18]
2008/09/10   정치적 지뢰 [79]
2007/01/09   영국의 협상력 [15]
알파벳 수프

새 행정부는 (뉴딜을 추진하면서) 알파벳이 모자라 쩔쩔매었다.
다음과 같이 …
AAA, CAB, CCC, CWA, FCA, FCC, FDIC, FERA, FHA, FSA, HOLC, NLRB, NRA, NYA, PWA, REA, SEC, TVA, WPA…


-Lee, Bradford A., The New Deal Reconsidered," Wilson Quarterly, 1982년 봄(뉴딜 50주년 기념) 중-


약어해설
AAA : 농업조정법(Agricultural Adjustment Act)
CAB: 민간항공 위원회(Civil Aeronautics Board) → 오늘날의 연방항공청(FAA)
CCC : 상품신용공사(Commodity Credit Corporation)
CWA : 토목사업청(Civil Works Administration)
FCA : 농업신용청(Farm Credit Administration)
FCC : 연방통신위원회(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
FDIC : 연방예금보험공사(Federal Deposit Insurance Corporation)
FERA : 연방긴급구호청(Federal Emergency Relief Administration)
FHA: 연방주택청(Federal Housing Administration)
FSA : 농업안정청(Farm Security Administration)
HOLC: 주택소유자대출공사(Home Owners' Loan Corporation)
NLRB : 국가노사관계위원회(National Labor Relations Board)
NRA : 국가재건청(National Recovery Administration)
NYA : 국가청소년청(National Youth Administration) ← WPA의 일부
PWA : 공공사업청(Public Works Administration)
REA : 전력보급청(Rural Electrification Administration)
SEC : 증권거래위원회(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TVA : 테네시 강 유역 개발 공사(Tennessee Valley Authority)
WPA : 공공사업 진흥청(Works Progress Administration)
(물론 이게 다가 아님. 좀 더 자세한 목록은 여기. 그런데 이것도 다가 아니라는...)

여기서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뉴딜은 전혀 체계적이지 않은 수많은 땜질 대책의 집합체인데(굳이 분류하자면 몇 가지, 공공근로, 사회복지, 농업지원, 농업대출, 기타대출, 보험, 구호 등으로 나눌 수도 있지만 사후적인 해석이라 하겠다), 돌이켜 보면 삽질도 많고 그 효과에 대해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하여간 4선이나 시켜준 것에도 보이지만, 국민은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주는 '청산주의자 테제'보다는 그래도 뭔가 열심히 하는 척이라도 하기를 바랬다고나 할까.

by sonnet | 2009/02/18 10:28 | 한마디 | 트랙백 | 덧글(12)
뉴딜 정책에서 배우는 이 혼란을 벗어날 방법
주택가격 하락->모기지 대출의 부실화->주택 압류/경매->주택가격의 추가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좌우에 관계없이 많은 경제학자들이 우려하는 사안입니다. 이에 프린스턴의 앨런 블라인더는 대공황 시대에 사용했던 주택소유자대출공사(HOLC)란 것을 다시 만들어 이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합니다. 앞서 소개했던 마틴 펠스타인의 제안과 비교해 보면 동일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면서도 양 당의 정책적 접근방법이라던가 선호의 차이가 잘 드러난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언제나처럼 불법날림번역이니, 필요하신 분은 링크의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강조는 필자가 덧붙인 것입니다.


뉴딜 정책에서 배우는 이 혼란을 벗어날 방법
* 필자: Alan S. Blinder
* 출처: New York Times
* 일자: 2008년 2월 24일

오늘날 제기되는 의문은 이런 것 같다. 우리는 경기후퇴에 진입했거나 경기후퇴로 가는 중인가? 그러나 이 질문에 너무 많은 주의가 기울여지다 보니 우리는 더 큰 위험, 즉 어떤 경기후퇴로부터의 강한 회복도 막아버릴 수 있는 거센 맞바람에 직면할 가능성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잠재적인 맞바람의 대부분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시작된,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직 끝나지 않은 집값 하락과 그와 연관된 금융 위기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상처 입은 금융시장은 스스로 치유될 것이라고 가정된다. 자산 가격이 떨어지고 떨이 사냥꾼들이 뛰어들면 시장은 정상으로 돌아갈 거라고. 하지만 여태까지는 그런 일이 별로 일어나는 것 같지 않다. 대신 집값은 계속 떨어지고, 모기지-압류 문제는 늘어나고, 금융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압박거리가 그다지 재미없는 두더지잡기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이 문제가 여러 측면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이 난장판의 단 한 측면에 집중해야만 한다고 볼 여러 가지 근거를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 주택 압류의 해일이 몰려올 가능성이다. 첫째, 이 문제는 문자 그대로 집을 강타한다. 압류는 가족 -그들 중 일부는 속임수의 희생양이다- 을 길거리에 나앉게 한다. 압류는 주택 가치를 좀먹고 동네를 황폐하게 하며 다른 자산들의 가치를 하락시켜, 우리가 직면한 많은 문제의 기저에 깔려 있는 주택가격의 하락을 재촉한다. 그리고 압류는 소비지출도 줄이게 만들 가능성이 있으며, 그 결과 우리는 진짜로 경기후퇴에 내몰리게 될지도 모른다.

두 번째 이유는 주택 압류의 해일을 줄일 수 있다면, 이와 밀접히 연관된 주택 모기지와 MBS, SIV, CDO 등, 금융시장이 만들어낸 오만가지 알파벳 약자들의 금융위기를 완화시킬 거라는 점이다. 이들 시장이 기운을 되찾을 수 있다면, 다른 고통 받는 신용 시장 또한 아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주택 압류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우리는 이런 일을 이미 영화에서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대공황 당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과 의회는 주택소유자대출공사(Home Owner's Loan Corporation; HOLC)를 설립해 임박한 주택압류의 대홍수를 처리하였다. 현재, 코네티컷의 민주당 상원의원 크리스토퍼 J. 도드를 비롯해 아직 적지만 점차 늘어나고 있는 학자와 공인들이 연방정부에게 HOLC와 비슷한 것을 다시 만들자고 요청하고 있다. 나도 거기 동참할 생각이다.

HOLC는 부도가 났거나 임박한 모기지 대출을 주택소유자들이 감당할 수 있는 새로운 모기지로 바꿔 줌으로서 곤궁에 빠진 가정들이 주택압류를 피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1933년 6월에 설립되었다. HOLC는 은행으로부터 옛 모기지 대출을 사들인 다음 주택소유자들에게 새로운 대출로 바꿔 주었다. 대부분의 은행들은 자신들의 부실 모기지를 안전한 국채와 맞바꾸는데 만족했다. HOLC는 자체적으로 자본시장에서 차입을 하거나 재무성에서 자금을 끌어왔다.

이 사업의 규모는 엄청났다. 2년 안에, HOLC는 곤경에 빠진 주택소유자들로부터 190만 건의 신청을 받아 그중 약 1백만 건에 대해 새 모기지를 발급하였다. (인구성장을 감안하면 이에 상당하는 오늘날의 모기지 대출자는 약 250만 명이 된다) 그 결과 HOLC는 전체 모기지 대출의 1/5을 소유하기에 이르렀다. 그 존속기간동안 총 대출액은 35억 달러에 이르렀는데, 이는 당시 GDP의 5%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이는 오늘날 7,500억 달러에 상응한다)

공익을 위해 설립된 공기업으로서 HOLC는 참을성 있고 관대한 대부자였다. 이들은 부채상담, 지급조정, 심지어는 가족면담까지 가지면서 연체자들이 탈선하는 것을 막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1930년대 같은 힘든 시기였던 만큼, 그래도 끝내 20%의 대출자들은 부도가 나고 말았다. 그 결과 공사는 결국 20만 채의 주택을 소유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결국 1944년까지 거의 다 매각할 수 있었다. HOLC는 1936년 마지막 모기지를 대출해주고 15년이 지난 후인 1951년에 약간의 이익을 남긴 채 공식적으로 문을 닫았다. 이는 엄청난 과업이었지만 HOLC는 훌륭히 과업을 완수하였다.

오늘날 해야 할 일은 이보다 훨씬 가벼울 것이다. 그리고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한 것이, 우리 정부는 루스벨트 시절보다 훨씬 소심하고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모기지 금융은 또한 훨씬 복잡하다. 1930년대의 경우, 은행은 자신들의 고객을 잘 알고 있었으며 대출자들 또한 거래하는 은행을 알고 있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모기지는 증권화되어 원래의 대출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이들에게 팔려나간다. 그러면서 여러 모기지들은 한데 모여 쪼개고 섞고 순서를 매겨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파생상품으로 만들어진 후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은행과 펀드들에 의해 소유된다.

그러나 이러한 복잡성은 정부의 개입을 방해한다기보다는 정부가 개입해야만 할 필요성을 더 크게 만들어주고 있다. 모기지 대출자와 대부자가 서로의 이름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모기지의 지불조건을 재협상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지금까지 연체된 모기지 대출이 거의 재협상되지 않은 한 이유이다.

세부사항은 중요하다. 그러니 여기서 몇 가지를 거론하겠다. 첫째, 새로 만들어질 HOLC는 실거주자에게만 혜택을 주어야 한다. 투기꾼들은 자기가 알아서 막든지 부도가 나야 한다. 마찬가지로 1가구 2주택이나 비어 있는 집도 해당이 되어선 안 되며, 초고가 주택도 포함되면 안 될 것이다. (정확한 가격 상한은 지역별로 상당히 달라져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 허위서류를 꾸며 모기지를 받았던 대출자들은 HOLC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대부자가 대출자를 기망한 경우는 관대히 처리되어야 할 것이다. 네 번째로 옛 HOLC도 그랬지만, 모든 부실 모기지를 건전 모기지로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냥 돈을 낼 사정이 못되는 가정이라면 HOLC에게 모기지 연금술을 부릴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 어느 정도 규모가 필요한가? 현 추정에 기초해 본다면, 그러한 기관은 1백만에서 2백만 건의 모기지를 대환대출해줄 것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상대적으로 보면 옛 HOLC가 맡았던 부담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며, 1/4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평균적인 모기지 대출액을 20만 달러 정도라고 본다면, 새 HOLC는 최대 2천억 달러에서 4천억 달러 정도를 끌어와 대출해 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중간치인 3천억 달러는 시티그룹의 1/7 크기에 불과하며 새로운 기관은 미국에서 여섯 번째로 큰 은행이 될 것이다.

현재의 낮은 이자율에 기초해 볼 때, HOLC는 저렴하게 차입해 올 수 있을 것이며, 차입이자와 대출이자 사이에 손쉽게 2퍼센트 포인트 정도의 차익을 부과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총이익은 연간 40억~80억 달러가 될 것이다.

대출에 따른 손실은 어느 정도인가? 이 기관의 존속기간에 걸쳐 10퍼센트, 혹은 200억~400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고 보면 상당히 비관적인 예측일 것이다. (대공황 기간 동안 운영되었던 옛 HOLC의 손실율은 9.6%였다) 그러니 새 HOLC는 옛 기관이 그랬던 것처럼 아마 이익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설령 몇 십억 달러 정도 손실을 본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 기관이 공익, 즉 경제의 회복을 돕기 위해 설립되었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이번에 나온 경제 활성화 대책에는 액면가 1,680억 달러가 붙어있다는 것과 비교해 보라.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때때로 유사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는 법이다. 지금은 이 놀라운 HOLC를 다시 설립할 때이다.

Alan S. Blinder는 프린스턴 대학의 경제-공공정책 교수이며 미국 연방준비은행의 부총재를 지낸 바 있다. 그는 여러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정책자문을 해주고 있다.


블라인더는 How to Cast a Mortgage Lifeline? (NYT)이란 컬럼에서 이 제안의 상세를 부연하고 있으니, 관심있는 분은 이 쪽도 참고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by sonnet | 2008/10/03 10:18 | 경제 | 트랙백 | 핑백(5) | 덧글(18)
정치적 지뢰
혹은 한국에서는 "대못박기"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이야기.

얼마 안 있어 대통령은 관리담당 고문인 루터 귤릭(Luther Gulick)의 방문을 받았다. 귤릭은 볼티모어에 있는 사회보장처의 노령보험국이 돈 낭비라고 말했다. 각 개인에게 평생 동안의 번호를 부여하는 사회보장카드를 발급하는 관할(district) 사무소의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볼티모어인들은 [컴퓨터도 없던 시절에] 개인적 사항을 숫자로 파일화하고 매년 카드보유자의 해당되는 수입이 얼마인지 써넣고 합산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어떤 납입자도 그의 수입 총액과 최종 수혜액의 추계에 대하여 써 보낼 수 있었다. 수천 명의 사람이 그렇게 했는데 정중한 회답을 받았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수익이 이미 정해진 제도는 아니었다. 납입자들은 실제 은퇴와 함께 여러 납입액의 합으로부터 지급받는 것이지 개인의 사적인 벌이로부터 지급받는 것이 아니다. 공간과 사무집기 그리고 감독은 그만두고라도 단지 답장을 위한 구좌들의 유지를 위해 일하는 직원들의 급여에 소요되는 비용만 매년 최소한 100만 달러 이상이었다. 이 돈을 아끼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구좌는 실제적일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귤릭은 주장하였다.
자상한 아버지처럼 루스벨트는 설명했다.

루터 군, 자네의 논리는 정확하고 자네의 사실들도 정확하네. 하지만 자네의 결론은 잘못이야. 이제 내가 왜 그런지 이유를 말하겠네. 그 구좌는 쓸모없는 것이 아니야. 그 구좌는 얼마나 많이 지급되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게 아니고 무엇이 지급되어야 하는지를 통제하는 것이네. 그 구좌가 거기 있기에 의회에 있는 개새끼들이 내가 떠났을 때 이 제도를 포기할 수 없게 하네.

맥기어리(Michael McGeary)의 귤릭과의 인터뷰, 공공정책연구소, 뉴욕. 1980년 2월 28일, 귤릭의 허락에 의해 인용함.

Neustadt, Richard E., May, Ernest R., Thinking in Time: The Uses of History for Decision-Makers, Free Press, 1988 (이호령,오영달,이웅현 역, 『역사활용의 기술』, 리북, 2006, p.195)

이러한 구상은 돈을 낸 모든 사람들 머리 속에 거기 내 돈 얼마가 있다는 무의식적인 인식을 수십 년간 심어줌으로서, 이 제도를 뜯어고치려는 사람은 그게 누구든 자동적으로 내돈을 털어가는 강도로 느끼게 하려는 교묘한 권모술수의 일환이였다.

그 후 약 반 세기가 흘러 이런 맥락을 모두가 잊어버렸을 때쯤, 어떤 불운한 대통령이 이 지뢰를 밟고 말았다. 그는 당대의 진정 인기있는 대통령이었으며, 임기 초에 의회와 확고한 밀월관계를 갖고 있었으나, 그 모든 것은 소용이 없었다. 그의 연금지급금 즉시삭감 제안은 상원에서 96:0으로 참혹하게 부결되고 말았다. 희생자의 이름은 바로 로널드 레이건이다.
by sonnet | 2008/09/10 22:48 | 정치 | 트랙백 | 덧글(79)
영국의 협상력
링크한 若羊師의 글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1943년 1월 카사블랑카 회담에서 미국측은 영국과 전쟁 수행 방침을 놓고 토론을 벌였는데 준비가 덜 된 미국에 비해 영국이 시종일관 우세를 보였고 그 결과 이탈리아 공격이 결정됐다고 합니다. 미국, 특히 육군은 프랑스 상륙을 통한 제 2전선 조기구축을 강력히 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측 안이 채택된데 대해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회담 결과 웨드마이어는 이렇게 빈정거렸다는군요.

"왔노라, 들었노라, 정복당했노라.(We came, We listened and We were conquered)"


그런데 저는 이와 아주 유사한 이야기를 Kindleberger가 쓴 『대공황의 세계』(The World in Depression 1929-1939)에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공황의 충격이 바닥을 찍고 있던 1933년, 세계 각국은 런던에 모여 1)관세전쟁의 휴전, 2)환율의 안정, 3)무역 장벽의 철폐 등에 대해 공조하여 이 난국을 헤쳐나가 보자는 뜻애서 세계경제회의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을 이끄는 루즈벨트의 민주당 행정부는 세계 경제에 관해 관심도 지식도 거의 없었으며, 세계 경제에 맞설 배짱도 없었다. 특히 영국과 협상만 하면 교활한 영국인에게 말려들어 홀랑 털리고 만다는 恐英症이 극심했다. 당시의 회고록들은 영국과 교섭하는데 망설이는 장면으로 가득 차 있었다.

* "우리가 영국인들과 밀담을 나눌 때면 매번 그들은 그럴 듯한 말만 늘어놓을 뿐이다." (Blum, Morgenthau Diaries),
* "문제는 우리가 영국인과 마주 앉아 한판 벌이면 판돈의 80%를 매번 그가 따 가고 나머지가 우리 차지라는 거요" (같은 책, 루즈벨트의 발언)
* (세계경제회의에 나간 미국 대표단은)"미숙하고 요령부득이면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외국인들과 겨루었다." (Moley, The First New Deal)


루즈벨트는 늘 파운드화보다 더 낮은 달러화를 원했다. 달러 화의 대 파운드 환율이 3.75달러이던 4월에 대통령은 3.85 달러를 원하였다. 대 파운드 환율이 3.85달러이던 5월에는 4.00달러라면 만족하겠다고 하였다. 4.00달러를 제시받은 6월 17일에는 4.25달러를 바랬다. 파운드화가 4.50달러이던 8월에는 5.00달러를 원했다. 이 같은 과정은 끝없이 계속될 수 있는 것이었다. (Warburg, The Long Road Home)

전 세계 금 재고의 1/3를 틀어쥔 나라가 이러니 국제합의를 통해 환율을 안정시킬 방법이 없었다.

루스벨트는 6월 17일과 7월 1일 두 개의 타협안을 거부하고는 다음과 같은 교서를 발표해 관에 못질을 했다.
이 대규모의 국제 회의가 극소수 국가들만의 통화 거래에 영향을 미칠 뿐인 ... 순전히 인위적이고 일시적인 실험용 제안에 맞장구를 쳐 주어야 한다면, 본인은 이를 세계의 비극이라고 할 만한 일대 파국이라고 규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인은 그 같은 조치를 계속 고집하는 것은 당면한 전세계적 불황의 대부분의 바탕이 되고 있는 기본적인 경제적 실책이 지속되고 있는 데 대한 구실이 되고 있다는 생각에 불쾌할 따름입니다.

일부 강대국들만의 외환을 일시적으로 그리고 거의 인위적으로 안정시킬 뿐인 겉만 번지르르한 이 같은 오류에 의거해서는 세계가 진정되는 것도 잠시일 것입니다.

일국의 건전한 국내 경제 상황이야말로 일국의 통화 가격보다 국민 복지에 더욱 중차대한 요소입니다...

소위 국제적 은행가란 낡은 우상은 일국의 통화에 영속적인 구매력을 부여할 목적의 국가 통화 계획을 세우는 노력으로 대체되어 가고 있으며 ... 미국은 우리가 가까운 장래에 획득하고자 희망하는 달러 가치만큼의 구매력 및 채무 지불 능력을 향후 한 세대에 걸쳐 유지할 종류의 달러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

우리의 솔직한 목적은 각국 통화의 안정입니다. ...... 세계의 대다수 국가들이 균형 예산을 유지하고 수입 범위내에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협조적인 정책을 유지할 때, 우리는 세계의 금/은 배분의 개선 방안에 관해 적절하게 논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경제의 실력자 미국이 이렇게 나오자, 협상은 더 진행될 수가 없었다. 영연방 국가들은 자기들끼리 뭉쳐 파운드 블록의 독자생존을 선언하였다. 금블록도 금블록대로 뭉쳐 방어선을 쳤다.

그리고 루즈벨트는 혼자 국내경제를 구출하기 위한 경제실험에 돌입했다. 유럽의 반응은 다음과 같은 식이었다.
* "유럽으로서는 미국의 국내 정책에 간섭할 생각이 전혀 없으나 미국이 자국의 성공의 대가로서 유럽에 혼란을 초래하지 않는 어떤 조정 방안을 찾기를 기대하고 있다." (맥도날드, 영국)
* "유럽으로서는 검증되지 않은 이론 때문에 수백 년 동안 축적해 온 경험을 방기할 수는 없으며, 그러한 실험은 그것을 행할 만한 충분한 자원이 있는 나라에게 맡기고자 한다." (중, 이탈리아)

피에르몬트 모펫은 대통령이 7월 3일의 교서가 너무 강한 것은 아니었나 하고 궁금해 하긴 하였으나 후회하지는 않았다고 기록하였다. "그 교서는 회의가 열릴 때마다 우리는 항상 패자가 된다고 하는 나라 안에 널리 퍼져 있는 인상을 불식시켜 버린 것이다." (Characters in Crisis)

즉 恐英症에 시달리던 미국 정부는 세계경제회의를 수수방관하다가 결국 영국에게 또 놀아나느니 판을 깨버리는 장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리 하여 세계 각국의 정부가 협력해 대공황을 벗어나 보자던 세계경제회의는 끝내 침몰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두 이야기는 1차대전 이후 미국이 세계 경제나 정치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지만, 그에 걸맞는 리더십이나 협상력을 갖추고 있지는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by sonnet | 2007/01/09 15:22 | 정치 | 트랙백 | 덧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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