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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폰멜렌틴
2014/05/28   일상에서 비상으로 [22]
일상에서 비상으로

전 세계의 강대국이 모두 뛰어들어 싸웠던 제2차 세계대전, 이 전쟁에서 가장 탁월한 전투력을 발휘했던 것이 독일군이었다는 데는 광범위한 동의가 이루어져 있다.

잘 알려진 군 사가(軍 史家)인 판 크레펠트 또한 이를 지지하는 저서를 남긴 바 있다. 그는 독일군 신화의 허상을 깨겠다고 연구에 뛰어들었다가 독일군의 저력을 확인하고 전향한 사람도 있을 정도라면서, 독일군의 전투력에는 장비의 질적 우수성이나, 뛰어난 전략 같은 것 이상의 그 무엇인가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T.N.두푸이의 다음과 같은 논평을 인용한다.

결국 연합군이 최후의 승자가 되었지만 독일군이 일관하여 숫자가 훨씬 많은 연합군과 싸워 이겼음을 기록은 보여주고 있다. 개인 대 개인을 비교하면 독일 육군 병사들은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영국군이나 미군을 상대하여 그들이 당했던 것보다 50% 더 높은 손실을 계속 가하였다. 이것은 독일군이 공격하든 방어를 하든 항상 마찬가지였으며 숫적으로 적거나 부분적으로 우세하였을 때, 공중 우세를 달성하였거나 그렇지 못하였을 때, 이겼거나 패하였을 때에도 항상 그러하였다.

크레펠트는 그 비밀을 독일'군'을 구성하고 있는 일련의 독특한 조직문화에서 찾는다. 지휘원칙, 교리, 상벌, 군행정 등 모든 것이 전투효율의 극대화를 중심으로 잘 짜여져 있어서 놀라운 조직의 응집력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유리한 상황에서 탁월하게 싸울 뿐 아니라, 반대로 압도적으로 강한 적에게 둘러싸여 모든 희망이 사라진 상태에 몰려도 무너지는 대신 끝까지 적에게 큰 피해를 주며 버티는 저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이 정도면 조직으로서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대단한 독일군의 첫 작전에 대해, 당시 독일군 3군단 정보참모였던 폰 멜렌틴은 흥미로운 일화를 남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전은 독일 병사들에게 “피를 흘리는 전쟁을 맛보게 했고”, 그들에게 실탄을 가지고 하는 실전과 평화시 기동훈련과의 차이점을 일깨워 주는데 상당한 가치가 있었다. 개전 초기에 아무리 잘 훈련된 부대라 할지라도 전투 상황 하에서 얼마나 “두려움을 갖게 되고 흥분하기 쉬운가”를 나는 알았다. 저공을 나는 항공기 한 대가 군단 전투 사령부 상공을 선회할 때 모든 독일 병사들은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 들고서 사격을 가했다. 한 공군 연락장교는 모든 사격을 중지시킨 후, 흥분된 병사들에게 이것은 독일의 지휘용 항공기인, Fieseler Storch라고 소리치며 뛰어 다녔다. 잠시 후 항공기가 착륙하고 독일군 근접항공지원담당 공군 장군이 내렸다. 그는 이 우스꽝스러운 일에 대해서는 언급을 안 했다.

객관적이고 거시적으로 보면 훈련 및 장비가 모두 부적절했던 폴란드군은 쉬운 상대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독일은 2차대전의 첫 교전국이었던 폴란드를 아주 가볍게 제압했다. 하지만 지금 살펴본 것처럼 당사자들 개개인도 꼭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일상에서 비상으로의 전환, 특히 갑작스런 전환은 매우 어렵다. 훈련만 하다가 전쟁에 투입된다거나, 일상적인 생활을 하다 갑자기 사고를 맞이한다든가 하는 일들이 그런 부류에 속한다. 이렇게 갑작스런 전환과 신속히 해내야 할 과제가 함께 주어지면, 그 문제에 직면한 개인이나 조직은 대단한 어려움을 겪게 되고 객관적으로 보면 매우 쉬워보이는 일조차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보통이 된다.

어떤 일에 대해 사후적으로 이렇게 혹은 저렇게 했어야 한다고 말하기는 쉽다. 그리고 그런 것을 지적하는 것도 평가와 반성을 위해 중요한 과정이긴 하다. 하지만, 그러한 지적사항 하나하나가 비상사태 때 실제로 다 지켜질 수 있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상당히 가혹한 판단이다. 종합적인 평가에는 일상에서 비상으로의 전환이 가져오는 엄청난 충격이 충분히 고려될 필요가 있다.


참고
Von Mellenthin, F. W. Panzer battles, 1939-1945. University of Oklahoma Press, 1956. (민평식 역. 『機甲戰鬪』. 서울: 병학사, 1986. pp.20-21)
Creveld, Martin van. Fighting Power: German and U.S. Army Performance, 1939-1945. Greenwood Press, 1982. (주은식 역, 『전투력과 전투수행』. 서울: 연경문화사, 1994. p.15)
by sonnet | 2014/05/28 15:05 | 정치 | 트랙백 | 덧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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