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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페리클레스
2008/10/08   고대그리스의 공공봉사 문화 [31]
2007/05/29   포퍼의 민주주의론 [17]
고대그리스의 공공봉사 문화
앞에서 로마식 온돌 "하이퍼코스트"에 대한 글을 쓰면서 지나가듯이 그리스의 공공봉사 관행에 대한 이야길 했더니 거기 관심을 보이시는 분들이 많군요. 모제스 핀레이의 책에 그에 관한 이야기가 좀 다루어지는데 간단히 옮겨 보도록 하겠습니다.


페리클레스가 배심원들에 대한 정무 수당 지급제를 도입한 것에 관해 언급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페리클레스는 키몬의 재산을 공격하는 선동을 일으키기 위해 이 조치를 취하였다. 제후에 견줄 만한 재산을 소유한 키몬은 공공 봉사로서의 자선을 관대히 베풀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동료 구역민들에게 식량을 제공하였다. 구역민들은 매일 그에게 와서 적절한 공급품(ta metria)을 받았다. 더욱이 그의 영지에는 울타리가 없어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과일을 얻을 수 있었다. 현재 페리클레스의 재산은 이런 지출을 하기에 충분치 못했으며, 그는 다이모니데스의 충고를 들어 그들에게 속한 보통 사람들에게 분배해 주고자 하였고, 그런 까닭에 배심원단에게 정무 수당을 제공하는 제도를 도입하였다.

Finley, Moses I., Politics in the Ancient World,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3
(최생열 역, 『고대 세계의 정치』, 동문선, 2003, p.57)

결국 이 이야기는 고대 아테네 민주정이 가장 잘나가던 시절, 갑부인 키몬이 돈질로 페리클레스를 압도하려 하자, 머니 게임으로는 상대가 안되는 페리클레스가 공금을 끌어다가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전술로 맞섰다는 겁니다. 멋지죠??


기원전 5세기 말 한 소송의 피고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마지막 8년간의 공공봉사에 법정 요구액의 3배 이상, 공공봉사 임무 이행에 필요한 최소 재산 기준의 20배인 약 9.5달란트(talent)를 지출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리시아스 21.1-5) 액수의 과장 정도를 충분히 인정한다 해도 - 배심원은 우리만큼이나 그가 제시한 수치를 조사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 그 경비는 엄청난 액수였다.
봉사를 맡게 된 사람은 그 사실을 자랑하였다. 자신이 봉사 임무를 획득하고 경쟁자가 태만했다는 사실에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은 정치적 또는 법정 연설에서 표준적 관행이었다. “내가 여러분의 즐거움을 위해 경비를 부담하는 것은”이라는 표현은 기원전 4세기의 한 웅변 정치가가 대규모 연설에서 공공 봉사 원칙을 요약한 방식이다. (아이스키네스 1.11) '공공 봉사 계급'의 모든 구성원이 정치적으로 활동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무시할 만한 예외를 제외하면 모든 정치가들은 공공 봉사 계급에 속하였다. 그들의 자랑은 무어의 표현인 ‘공공 봉사를 통한 불평등의 확인’의 성공적 기능을 예증해 준다. 그것은 데모스가 정치적 지도력을 이 계급에게 위임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개별의 엘리트 구성원들이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벌이는 경쟁에서 그들이 지지를 얻도록 도와준다. 그것은 1:1의 후원-고객 관계의 결여에도 불구하고 후원제의 명목 하에 이와 같은 특이한 형태의 공동체 봉사를 실체로서 보장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고전적인 공공 봉사 체제가 정치적 유용성을 상실했을 때, 그것은 마케도니아의 정복자들이 민주정을 과두정으로 대체하기 위해 기원전 317년 아테네의 ‘섭정’으로 임명한 디미트리오스에 의해 신속히 폐지되었다.

같은 책, pp.53-54

즉 이런 공공봉사는 일종의 사회계약에 가까운 측면이 강했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기분은 좀 묘하지만, 아무래도 2천 5백년쯤 전의 이야기니까 오늘날의 기준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겠죠.
by sonnet | 2008/10/08 19:07 | 정치 | 트랙백 | 덧글(31)
포퍼의 민주주의론
칼 포퍼는 20세기의 영향력있는 철학자 중 한명으로, 보통 과학철학자로 이해된다. 그러나 그는 또한 『열린사회와 그 적들』(1945)를 출간한 이래 반세기 동안 전제정과 맞서는 민주정을 옹호하기 위한 이론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다음은 포퍼가 만년에 쓴 에세이의 일부인데, 『열린사회와 그 적들』의 생각을 충실히 발전시키고 있다. 여기서 포퍼는 민주정(democracy)이란 대중이 지배하는 것도, 대중의 의사를 충실히 따라 통치하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는 사실 민주정/민주주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봉착하게 되는 문제다. 민주정의 제도나 운영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으면, 통속적인 지식 혹은 널리 선전되는 바와는 달리, 도대체가 대중의 의사를 충실히 따라 통치하기 위해 설계되고 운영되는 제도라고 생각하기 힘든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도 예전에 비슷한 문제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지배가 아니다

민주주의가 중요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앞으로 알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가 처음 시작될 때부터 그러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러하다.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들은 도덕적 성격을 띤다.

언제나 혼란을 야기하며 도덕적 문제의 측면을 지닌 것으로 추정되는 문제가 하나 있는데, 순수하게 언어적이다. 즉, ‘민주주의’는 ‘국민의 지배’를 의미하며,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서방 세계에서 우리들이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국가 형태의 이론에 있어서 ‘국민의 지배’라는 용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다양한 국가 행정 형태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름을 붙였다. 그것은 분명히 가능한 정부의 형태들 가운데서 어느 것이 좋은지 나쁜지, 더 좋은지 나쁜지를 묻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배자의 도덕적 품성을 바탕으로 다섯 가지 명칭의 정체를 구분했다. 이것은 플라톤이 많이 활용한 구분이었는데, 그는 다음과 같은 도식으로 그것을 표현했다.

1과 2 군주제: 한 명의 선한 사람에 의한 지배. 그 왜곡된 형태가 전제군주제(한 명의 악한 사람에 의한 지배)
3과 4 귀족제: 소수의 선한 사람들에 의한 지배. 그 왜곡된 형태가 과두제(소수의 선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한 지배)
5. 민주제: 국민 다수, 군중에 의한 지배

이 가운데서 플라톤은 한 가지 형태(1과 2 군주제) 만을 확인했다. 여러 사람이 지배자가 되는 경우 언제나 나쁜 사람들도 많이 포함되기 때문에 나쁜 정치 형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도식의 바탕에 깔린 문제점들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누가 국가를 지휘해야 하는가?’. ‘누가 지배 권력을 행사해야 하는가?’라는, 어떤 의미에서는 소박한 물음으로부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소박한 물음들은 아테네의 도시 국가들처럼 작은 국가에서는 분명히 제기될 수 있다. 아테네의 도시 국가에서는 중요 인물들 모두가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정치적 논의에서도 분명히 무의식중에 이런 물음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대부분의 민주적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마르크스나 레닌,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부단히 이 같은 매우 개인적 문제를 깊이 숙고했다. 종종 그것을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도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일반 규칙을 정식화했을 때, 보통 그것은 ‘누가 지배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었다. 플라톤의 답변은 ‘가장 선한 사람이 지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분명히 도덕적인 답변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들이 지배해야 한다’(오늘날처럼 자본가들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라고 응답했다. ‘프롤레타리아들이 실제로 국가를 지휘해야 한다. 그들은 독재적인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이 답변에도 도덕적 요소들이 약간 있지만 감춰져 있다. 국가를 지배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선한 프롤레타리아들이지 나쁜 자본가들이 아니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히틀러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의 답변은 간단히 ‘나’다. 이전의 사람들처럼 그도 ‘누가 지배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기본적이라고 생각한 것은 분명하다.

약 50년 전에 나는 이 물음을 단호하게 매장시키는 작업에 착수했다. 왜냐하면 그 물음은 도덕적 명령에 상응하는 우스꽝스러운 엉터리 해답으로 우리를 이끌어가는 거짓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덕적 관점에서 보아도, 정치적인 반대자들을 도덕적으로 악한(그리고 자기 파당을 선한) 것으로 간주하는 행위는 매우 비도덕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행동은 증오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이고 권력을 제한하는 대신에 권력을 강화하는 태도로 우리를 인도한다. 증오란 언제나 나쁜 것이다.

우리가 본래 관심을 가진 것은 서로 다른 정치 형태들을 비교하는 것이지, 억지로 사람들이나 계급, 종족, 또는 종교까지도 좋고 나쁜 것으로 구분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가 지배해야 하는가?’라는 플라톤적인 물음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만한 정부 형태들이 있는가?’라는 전혀 다른 물음, 그리고 그 반대 물음인 ‘악한 정부, 또는 심지어 무능하고 해롭기까지 한 정부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자유롭게 해주는 정부 형태가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대체한다.

그러한 물음들은 부지불식간에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에 뿌리 박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지배해야 하는지 아닌지를 묻는 플라톤의 물음과는 매우 다르다. 그 물음들은 현대 서구의 민주주의에서처럼 아테네 민주주의의 바탕에 깔려 있던 것이다.

스스로를 민주주의자라고 부르는 우리는 독재 정권이나 전제 정치를 도덕적으로 악한 어떤 것 - 설명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탱하기 힘들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지탱될 수 없는 것 - 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그것을 참고 견디는 것이 바로 무언가 잘못된 짓을 하는 것이라고 느낀다. 독재 권력은 우리가 책임질 수 없으며 일반적으로 우리 스스로 변경할 수 없는 상황을 강제적으로 부과한다. 그것은 인간적으로 참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독재 정권이 도래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도덕적 의무이다.

이른바 민주주의 국가 형태들로써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며, 그런 국가 형태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는 유일한 방식이 그것이다. 그래서 민주주의 국가들은 대중적인 주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독재 정권으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서 마련된 제도이다. 민주 국가들은 독재의 지배, 권력의 축적을 허용하지 않으며 국가 권력을 제한하는 길을 찾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그 권리와 의무를 존경하는 데 실패한다고 해도 우리가 그 정책이 나쁘거나 잘못된 것으로 여긴다면 피를 흘리지 않고 정부를 제거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현안 문제는 지배자가 ‘누구’인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어떻게’ 지배하는가를 묻는 것이다. 요점은 정부가 너무 많은 지배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혹은 좀더 좋게 말하면, 국가가 ‘어떻게’ 운영되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러한 태도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이면에도 놓여 있었다. 물론 아주 명백하게 표현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들이 견지해야 하는 태도이며,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그래야 한다. 어떤 집단 - 군인, 공무원, 노동자와 피고용자, 언론인, 라디오 및 텔레비전 논평가, 작가, 테러리스트, 또는 젊은이 - 이 자신들을 국민과 동일시하든 관계없이- 우리는 그들이 힘을 갖거나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을 두려워하게 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의 강제력에 맞서서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를 원하며,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한 것이 우리 서방 세계의 정부 형태들이 목표로 하는 것이다. 언어적 애매성과 습관의 힘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르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한 정부는 단 하나의 예외, 즉 주권의 지배, 법의 지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지배 형태로부터도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피를 흘리지 않고도 정부를 물러나게 하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

정부의 형태를 논의할 때 감안할 사항 가운데 하나는 피를 흘리는 일 없이 정부를 물러나게 하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 - 그 후에 새로운 정부가 권력의 고삐를 넘겨받는다는 것 - 이다. 이러한 정부와 정권의 교체가능성이 보장된 국가라면, 새로운 선거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국민적 집회에 의한 것인지, 혹은 헌법 재판소의 재판관들 다수에 의한 것인지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실제로는 해직이었지만, 닉슨 대통령의 사임보다 더 분명하게 미국의 민주적 특성을 입증해 주는 것은 없었다.

이러한 부정적인 힘, 즉 해직의 위협은 정부의 변화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하다. 정부 또는 수상을 임명하는 긍정적인 힘은 부정적인 힘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불행하게도 이런 점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새로이 임명하는 일을 지나치게 많이 하는 것에도 상당한 위험이 있다. 왜냐하면 정부의 임명권은 유권자에 의해서 면허가 인정된 것, 즉 국민의 이름으로, 그리고 ‘대중적 의지’를 통해서 합법화된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선택된 정부에게 책임이 있는 오류, 심지어는 죄악에 대해서 우리가 무엇을 알고, 국민은 무엇을 아는가?

얼마 지나서 우리는 정부 또는 정책을 판단할 수 있으며, 아마 그것에 대해서 찬성을 하고, 그래서 그 정부를 다시 선출할 것이다. 아마 우리의 지지는 미래에도 연장될 수 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며, 아무 것도 알 수 없으며, 정부를 알지 못하고, 그래서 우리는 정부가 우리의 신뢰를 오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없다.

투키디데스에 의하면 페리클레스는 다음과 같은 아주 간단한 방식으로 자신의 이념을 표현했다.

“우리 가운데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정책을 고안하거나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라도 우리 모두가 그것을 평가할 수 있다.”

이 문구는 간명하지만 근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 문구는 국민에 의한 지배라는 관념, 심지어 대중의 주도권이라는 관념을 에누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기 바란다. 그 두 관념은 국민에 의한 평가라는 매우 다른 이념으로 대체되었다.

페리클레스(또는 투키디데스도 아마 똑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는 여타 어떤 종류의 어려움이 없을 때조차도 국민이 지배할 수 없는 이유를 매우 간단하게 말하고 있다. 이념들, 특히 새로운 이념들은 그것이 비록 소수의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으로 해서 분명해지고 향상될 수는 있을지라도 한 개인의 작품일 수 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다음에 그 이념들이 좋은지 나쁜지를, 특히 그 결과를 직접적으로 경험한 경우에야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평가, 그 같은 ‘예 또는 아니오’ 식의 판정은 보다 많은 선거인단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대중의 주도권’과 같은 표현은 오도된 것이고 선전문구에 불과하다. 주도권은 보통 소수의 주도권이다. 그 소수는 기껏해야 비판적 평가를 위해서 국민들 앞에 세워진다. 그러한 경우들에 있어서는 평가를 위해 제안된 척도들이 그 소수를 평가하는 선거인단의 능력 밖에 있는지 여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 물음에 대한 논의를 마치기에 앞서서, 자신이 대중이 지배하는 - 그것은 사실이 아니며 사실일리도 없다 - 체제 속에서 살고 있다고 국민들이나 아이들이 배우게 될 때 야기되는 위험을 경고하고 싶다. 왜냐하면 갑자기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그들은 단순히 불만을 느끼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기만당했다고 느끼고 실망을 금치 못하지만, 전통적인 언어적 혼동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들이 정치의 영역에서는 물론 세상을 보는 방식에 대해서도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테러리즘으로 이끌릴 수도 있다. 실제로 나는 그러한 경우를 알고 있다.

(본문 중 굵은 글씨로 된 강조는 원문대로, 붉은 글씨는 인용자)

Popper, Karl R., ''Lesson of this Century: With Two Talks on Freedom and the Democratic State'', Routledge, 1996
(이상헌 역, 『우리는 20세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서울: 생각의나무; 2000, pp.212-222)
by sonnet | 2007/05/29 11:32 | 정치 | 트랙백 | 핑백(1)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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