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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페그제
2008/03/07   고정환율(제) 논란 [32]
고정환율(제) 논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기자간담회에서 "전문가들은 고정환율이 최선이라고 주장"이라는 발언을 해서 연일 씹히고 있는 모양이다. 이 일 자체는 기획재정부 대변인이 적극 진화에 나서는 등 얼간이가 저지른 일개 해프닝으로 귀결되는 모양이지만 뒷맛은 쓰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강만수를 공격한다고 나선 사람들이 강만수보다 조금이라도 잘 아느냐. 그건 전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다음은 이오공감에서 가져온 글 중 하나이다.

고정 환율제는 중국이 선택하고 있는 체제입니다. 후진국들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97년 700원대로 묶은 사실상의 고정 환율제때문에 헤지 펀드들의 집중공격을 받고 쓰러진 이후 사라진 개념입니다.

강만수 장관의 한국은행 공격에 대하여......, (FELIX)

말을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저렇게 말하면 책임이 고정환율제에 있다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가.

우리가 태국에서 시작된 동아시아 외환위기 때 휩쓸려 당한 이유는 우리가 고정환율제를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외환위기 때 중국은 왜 무사했는가? 한국은 정실자본주의가 판을 치다 벌을 받았는데 중국은 깨끗해서? 그들이 굳건한 외환통제(즉 고정환율)을 유지하고 있어서 투기꾼들이 공격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즉 우리도 1997년에 중국과 똑같이 외환통제를 견지하고 있었으면, IMF사태를 피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1997년에 외환위기가 동아시아 각국을 돌림병처럼 강타하자 그 직전까지 중국에게 외환자유화를 하라고 압력을 넣던 소위 "글로벌 스텐더드"파, 내지는 "시장" 친화 세력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중국이 역시 자신들의 독자적인 판단이 옳았다는 결론을 내렸음은 물론이다.)

내가 보기엔 지금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강만수를 욕할 깜냥이 못된다고 본다.

다만 이런 것은 말이 된다. "환율안정이 힘든 지금의 외환자유화(변동환율제) 상태에서 환율을 고정(안정)시켜 놓으려고 무리한 시도를 하게 되면 위험하다"는 말은 충분한 타당성이 있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자유변동환율제는 세 가지 좋은 것 중에서 환율안정을 포기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에서 고정환율제=IMF사태, 고정환율제=중국을 이야기한 사람들은 거의 다 사태를 엉터리로 설명했다고 보면 된다.

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다음 글을 추천한다.

주: 이 글은 원래 Independent지에 실렸던 컬럼 A Monetary Fable을 저자가 단행본 수록용으로 약간 수정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단행본판에서는 빠진) 원래 컬럼의 마지막 한마디에 깊은 인상을 받았음을 밝혀 둔다.

언젠가 세계가 단일통화를 가진 적이 있었다. 그 이름은 글로보(glovo)였다. 관리체계도 매우 훌륭했다. 글로벌 준비은행 - Global Reserve Bank, 줄여서 ‘글로브’(glob)라고 불렸다 - 은 의장 앨런 글로브스펀 아래에서 세계가 경기후퇴 국면으로 들어설 위험성이 높으면 글로벌 통화의 공급을 늘렸고, 인플레이션 징후가 보이면 공급을 줄이는 등 직무를 멋지게 해냈다. 훗날 글로보의 시대를 황금기로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특히 기업인들이 그 체제를 좋아했다. 어디서든 별 어려움없이 장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낙원에도 문제는 있는 법이다. 글로보의 사려 깊은 관리로 ‘세계 전체적으로는’ 경기의 파도를 막을 수 있었지만 개별 지역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통화정책을 놓고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경우도 있었다. 유럽과 아시아가 경기후퇴에 직면했을 때 글로보에서는 돈을 푸는 정책을 취했지만, 그 풀려난 돈이 북아메리카에 엄청난 투기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 북아메리카의 인플레이션을 잠재우기 위해 돈을 묶어야 할 필요가 있었지만 이미 불경기였던 남아메리카는 진퇴양난이 되었다. 게다가 대륙별 통화가 없었기 때문에 각 대륙의 정부들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결국 혼란이 극심해지면서 이 체제가 깨지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고 각 대륙은 글로보 대신 독자적인 통화를 도입했다. 그리고 각자의 필요에 따라 통화정책을 펴는 쪽으로 나아갔다. 유럽 경제가 과열되면 유로의 공급을 줄였고, 라틴아메리카가 불황에 빠지면 라티노(latino)의 공급을 늘였다. 억지로 하나의 기준에 맞추는 통화정책의 불합리성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대륙 통화들 사이의 환율이 심하게 변동하는 것이 그 문제의 원인이었다. 환율, 예를 들어 라티노와 유로의 환율이 무역상의 수요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아 수 있다. 유럽 상품을 사려는 라틴아메리카 사람은 라티노를 유로로 바꾸어야 했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시장이 주로 투자자 - 주식과 채권을 사기 위해 통화를 사고파는 사람 - 들에 의해 지배되기 시작했다. 또한 투기 요소가 큰 이런 투자 수요는 변동이 매우 심했기 때문에 통화 가치 역시 불안해졌다.
상황이 더욱 악화되려니 사람들이 통화 자체의 가치마저 투기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그 결과 환율이 널뛰기를 했다. 이로 인해 기업환경이 불확실해졌고, 기업의 해외자산과 부채가 실제로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잘 모르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에 일부 대륙에서는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유럽 대륙은 아프로 화 대비 유로 화의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외환시장에서 바삐 움직였고, 다른 대륙들도 각자 자신의 통화를 방어하기 위해 정신이 없었다. 한편 중앙은행들은 필요에 따라 목표 환율을 바꿀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실업 해소를 위해 필요하다면 자국 통화의 가치를 절하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변동 고정환율제(available peg system)가 투기꾼들의 입장에서는 목표를 손쉽게 많이 얻을 수 있게 했다. 한 대륙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 평가절하를 고려 중인 것으로 여겨졌고, 따라서 투기꾼들은 그 대륙의 통화를 미리 팔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 대륙의 중앙은행을 이자율을 올리든가 즉각 평가절하를 단행해야 하는 입장으로 몰아갔다. 그러나 이자율을 올리는 것은 불황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가 될 터였다.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투기꾼들에게 직접적 공격을 가하는 것, 즉 자본 이동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었다.
이제 대륙들은 세 가지 ‘통화제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입장에 몰렸다. 그러나 이 세가지는 저마다 심각한 결점을 갖고 있었다.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고수하면서 환율변동을 감수하는 것이 쉬운 길이었다. 그러나 그 방법에는 경기후퇴와 맞서 싸울 일이 없어지는 대신 기업 환경의 불확실성이라는 부작용이 있었다. 아니면 환율을 고정시켜 절대가 평가절하가 없을 것임을 시장에 확인시키는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기업 활동은 더 편해지고 안전해지는 반면 억지 춘향이식 단일통화정책의 문제가 다시 불거질 게 뻔했다. 그것도 아니면 변동 고정환율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방법도 있었다. 즉 환율은 고정시키되 그것을 변동시킬 권리를 그대로 유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책은 자본 이동에 대한 통제를 유지할 때만 유효한 것이고 강제하기 어려웠다. 또한 기업에 추가비용을 떠안기는 일이었고 -이익이 있는 거래에 대해 어떤 금지를 내리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부패의 원천이 되었다.
그러나 실제 글로보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글로보에 가장 가까운 것은 1930년 이전의 금본위제였다. 그러나 그것은 불운하게도 적절히 관리되지 못했고, 결국 범세계적인 경기변동을 예방하지 못했다. 그러나 앞의 상상의 역사는 무엇이 삼각의 딜레마를 일으켰는지 그 복잡함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지금 글로벌 경제 속에서 각 국가들이 그 딜레마에 부딪히고 있지는 않은가?
이렇게 생각해보자. 거시경제의 관리자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갖고 있는 세 가지 물건이 있다. 그들은 경기후퇴를 막고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는 통화정책에서의 재량권을 원한다. 그들은 안정된 환율을 원한다. 그래야 기업이 불확실성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 또한 국제적인 기업 활동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어 한다. 특히 돈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게 해주길 원한다. 민간 부문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글로보와 그 소멸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세 가지 소원을 다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두 가지를 이룰 수 있을 뿐이다. 먼저 환율의 안정성을 포기할 수 있다. 그것은 곧 미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처럼 변동환율제를 택한다는 뜻이다. 아니면 통화정책의 재량권을 포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르헨티나가 취하고 있듯이 환율을 고정시키는 것이고, 유럽대륙의 나라들처럼 자국 통화를 포기할 가능성까지 있다. 그것도 아니면 완전자유시장의 원칙을 포기하고 자본통제를 가하는 방법도 있다. 이것은 1940년대와 1960년대 사이에 대부분의 나라들이 택했던 길이고, 중국과 말레이시아는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이 세 가지 불완전한 대답 중에 최선은 어느 것일까?

Krugman, Paul., The Return of Depression Economics, W. W. Norton, 1999
(주명건 역, 『폴 크루그먼의 불황경제학』, 세종서적, 1999, pp.164-167)


크루그먼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 제도가 있다고 했다. 자유변동환율제, 페그(peg), 외환통제.
최선은 무엇일까? 여기에 정답은 없다.

우선 페그의 강점은 인플레이션이 아주 심하고(1년에 수십에서 수백 %) 고질적으로 재발하는 나라들에서 단시간 내에 인플레이션을 확 잡는데 특효가 있다는 것이다. 남미의 몇몇 나라에서 이 처방으로 큰 재미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외환위기에 대해서는 상당히 취약하다. 한국은 그런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나라가 아니라 페그를 채택할 이유는 별로 없다고 보면 된다.

자유변동환율제와 외환통제는 둘 다 한국이 해 본 제도이고, 상반되는 장단점을 갖는다.

자유변동환율제는 평소에 아주 잘나가지만 안전장치가 미비해서 실수로 한번 박으면 사고도 크게 나는 자동차에 비유할 수 있다. 97년의 IMF 사태는 이를 잘 보여준다. 반면 외환통제는 평소엔 좀 비효율적이지만, 제1세계 선진국이 아니어서 경제의 안정성이 떨어진다든가, 국제경제가 개판이고, 투기자본이 만만한 중견국가들을 하나씩 거꾸러트리고 돌아다닌다든가 하는 상황에선 매우 든든한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반대로 평소에 느리고 기름도 많이 먹지만 안전한 게 장점인 자동차라고 해두자.

국제경제에서 위기는 때때로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 위기가 계절마다 새로운 감기가 유행하는 정도라고 판단한다면, 자유변동환율제에 배팅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반면 계절마다 새로운 흑사병이 유행한다고 판단된다고 해보자. 그럼 외환통제가 아주 좋은 처방일 것이다. 결국 어떤 제도를 선호하느냐는 미래에 대한 전망에 달려 있다.

역사를 돌이켜보자. 과거 금본위제는 외환거래가 매우 자유로웠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세계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3연타 콤보를 맞고 나자 불안정과 위기에 진절머리가 난 국제사회는 전반적으로 외환통제를 가하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몇십 년 이상 호경기가 지속되자 세계 각국은 다시 자유변동환율제를 해보고자 하는 용기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국제사회가 선호하는 대안은 자유변동환율제이다. 그러나 이것은 영구불변한 결론일 수는 없다. 앞서 말한 3연타 콤보 같은 게 덮치면 생각은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IMF가 다시 올지도 모른다고 겁주면서 고정환율를 비난하고, 그게 중국이 택하고 있는 제도라는 지리멸렬한 이야길 들으면 짜증이 안 날수가 있겠는가?
by sonnet | 2008/03/07 20:14 | 정치 | 트랙백 | 핑백(1) | 덧글(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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