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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파타
2010/06/16   여론의 한계: 아랍, 이스라엘, 그리고 전략적 균형 [108]
여론의 한계: 아랍, 이스라엘, 그리고 전략적 균형
* 필자: 조지 프리드먼
* 일자: 2010년 6월 8일

지난주 이스라엘 해안에서 일어난 사건의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터키-이스라엘 관계는 완전히 무너지진 않았지만, 이스라엘 건국 이래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다. 미국-이스라엘 사이의 갈등이 부각되고, 이스라엘에 대한 유럽의 부정적 감정은 강도를 더해하고 있다. 문제는 이 사건으로부터 의미 있는 결과(substantial consequence)가 뒤따를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달리 말하자면 문제는, 이것이 여론의 영역을 넘어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가장 심각한 위협은 물론 군사적인 것일 터이다. 국제적인 비난여론은 중요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들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직접적인 위협이 가해지지 않으면 진로를 바꾸지 않는다. 하지만 중동 지역 외부의 세력들이 이스라엘에 대해 군사력을 행사할 성 싶지 않으며, 심지어는 강력한 경제적 혹은 정치적 제재도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외부 세력들이 자국의 개입을 억제하려는 소망은 제쳐놓고라도, 이는 이 지역 내부로부터도 유의미한 행동이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는 사실에 기초를 둔 것이다.

이스라엘의 제1세대는 이웃나라들의 재래식 군사력에 의한 패배의 위협 속에서 살았다. 그 이후 세대들도 여전히 위협에 직면해 있지만, 이런 성질의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은 여론의 향배와 외교 관계, 이란 핵무기를 둘러싼 의혹을 지키는 데 있어 유리한 전략적 맥락 하에 있다. 이 모든 이슈들은 중요하지만, 그 어느 것도 재래식 전쟁 패배의 망령 같은 즉각적인 위협은 아니다. 이스라엘의 지역 내 적수들은 자기들끼리 너무나도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고 이스라엘과의 관계도 제각각이어서 이스라엘에 대항한 실질적인 연합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그런 일이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상황이 이러니만큼, 이 지역 외부 세력들의 행태가 수사가 아닌 실질적인 입장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 모든 각도에서 이스라엘의 아랍 이웃국가들은 이스라엘에 대항해 심지어 부분적인 연합조차 형성할 능력이 없다. 이스라엘이 지역적 영향을 고려해 자국의 행동을 조정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지 않다는 점이 이스라엘이 가진 광범위한 국제적 비난을 감수하고자 하는 의지를 설명해준다.


팔레스타인의 분열

아랍이 얼마나 깊게 분열되어 있는가를 이해하려면, 팔레스타인 내부의 분열을 살펴보면 된다. 팔레스타인은 현재 두 개의 매우 다르고 적대적인 분파로 나뉘어 있다. 한 파벌은 파타(Fatah)로 요르단강 서안 지역을 지배하고 있다. 또 다른 파벌은 하마스로 가자 지협을 지배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영토의 지리적 분열은 차치하고라도 -이는 팔레스타인이 실질적으로 두 개의 독립된 그리고 적대적인 국가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만들고 있다- 두 집단은 완전히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다.

파타는 세속주의 사회주의, 아랍 민족주의, 그리고 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둘 나세르가 1950년대에 일으킨 군국주의 운동으로부터 태어났다. 1960년대에 창설된 이래, 파타는 소련과 밀접하게 손잡고 있었다. 파타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지배적인 정파였지만 유일한 정파는 아니었다. PLO는 깊이 분열된 팔레스타인 운동을 한 데 묶어놓은 우산 조직이었다. 야세르 아라파트는 오랫동안 파타를 지배해 왔는데, 그가 죽고 나자 파타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를 잃고, 점점 더 응집력 있는 이데올로기나 전략이 결여된 완고한 관료주의로 흘러갔다.

하마스는 이슬람 운동으로부터 태어났다. 이들은 파타와는 이질적인 종교적 동기에 의해 추동되고 있었으며, 파타에 적대적이었다. 하마스에게 있어 팔레스타인의 해방은 단순한 민족주의적 동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종교적 필요조건이기도 했다. 하마스는 또한 파타의 세속주의는 물론이고, 그들이 보기에 아라파트가 팔레스타인 운동에 가져온 재정적 부패에도 비판적이었다.

하마스와 파타는 제로섬 게임을 벌이고 있다. 연합을 맺지 못하는 그들의 한계와 상대편이 망하기를 바라는 서로의 열망 때문에 한 편의 승리는 반대편의 패배가 되었다. 이는 파타가 공개성명을 통해 무슨 소리를 하건 간에 가자지구와 하마스에 대한 현재 국제사회의 관심은 파타를 약화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는 적당한 시점이 되면 구호선단 사건이 하마스에게 준 정치적 이익을 파타가 물타기하려고 시도할 것임을 뜻한다.

팔레스타인의 깊은 지리적, 이데올로기적, 역사적 분열은 주기적으로 폭력사태로 비화하곤 했다. 팔레스타인 운동은 언제나 분열되어 있었고 그것이 그들의 제일 큰 약점이었다. 혁명 운동이란 것은 흔히 분파주의로 골치를 앓곤 하지만, 이들 사이의 갈등은 너무 깊어서 설령 이스라엘이 손을 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에 가하는 위협은 약해졌다. 그리고 손을 쓰게 되면, 이스라엘은 파타를 하마스에 맞서 싸우도록 몰아넣을 수 있다.


아랍 국가들과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내부의 분열은 또한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소위 ‘대치 국가’들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사이에 존재하는 견해의 불일치를 반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집트는, 기본적으로 세속적인 아랍 국가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는 하마스를 정면으로 반대하고 있다. 하마스의 뿌리는 이집트에서 제일 큰 이슬람 운동인 무슬림 형제단인데, 이집트 정부는 전통적으로 이들을 가장 큰 국내적 위협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이집트 대통령인 호스니 무바라크의 정권은 이집트 이슬람주의자들을 적극적으로 탄압해 왔으며, 하마스의 이데올로기 또한 그것이 이집트로 역류해 들어올 수 있다고 보아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와 또 다른 이유 때문에, 이집트는 자체적으로 가자지구에 대한 봉쇄를 수행하고 있다. 이집트는 이집트 세속주의로부터 파생된 이데올로기를 가진 파타와 훨씬 가까우며, 이 때문에 하마스는 이집트 정권을 깊게 불신하고 있다.

요르단은 파타를 깊이 불신하고 있다. 1970년, 아라파트가 이끌고 있던 파타는 요르단의 하심 왕가에 대한 반란을 획책했다. 이 때문에 벌어진 검은 9월이라고 불리는 학살로, 약 1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목숨을 잃었다. 파타는 검은 9월 사건을 진정으로 용서하지 않았으며, 요르단 또한 그 이래 파타를 진심으로 믿어본 적이 없다. 요르단 강 서안에 독립된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운다는 구상은 요르단 인구의 주류가 팔레스타인인이기 때문에 요르단 왕가를 불안하게 한다. 한편 이슬람주의 이데올로기를 가진 하마스 또한 요르단의 두통거리이다. 요르단은 요르단 나름으로 무슬림 형제단과 골치 아픈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입에 발린 소리를 제외한다면 요르단은 팔레스타인과 잘 해봐야 거북한 관계일 뿐이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적대관계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르단(과 이집트)은 팔레스타인 영토를 차지하고 있는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었다.

시리아는 팔레스타인보다는 레바논에 훨씬 더 큰 이해관계를 갖고 있고 있다. 시리아는 (이란과 함께) 히즈불라를 공동 후원하고 있는데, 이는 반 이스라엘 세력으로서 히즈불라의 역할보다는 레바논을 지배하고자 하는 시리아의 열망과 훨씬 더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히즈불라와 이스라엘 사이에 싸움이 벌어질 때마다 시리아는 전전긍긍해 하면서 이란과의 긴장이 증가된다. 그리고 물론 히즈불라가 반 이스라엘이긴 하지만, 히즈불라는 팔레스타인 운동이 아니라 레바논 쉬아파 운동이다. 대부분의 팔레스타인인은 순니파이며, 그들이 공동의 목표 -이스라엘의 파괴- 를 공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히즈불라가 하마스나 파타 어느 쪽이 바라는 것 같은 팔레스타인 정권이 서기를 바라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므로 시리아는 팔레스타인 운동의 양 파벌과의 관계를 개별적으로 관리하면서, 팔레스타인이 아닌 반 이스라엘 운동을 데리고 측면 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전선 국가’ 이외의 경우, 사우디아라비아와 다른 아라비아 반도의 정권들은 나세르와 PLO가 그들 정권에 가한 위협을 기억하고 있다. 그들은 쉽게 잊어버리지 않으며, 파타에 대한 그들의 지원은 팔레스타인이 가진 잠재적으로 파괴적인 영향력을 충분히 염두에 두면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란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란은 1천 마일 이상 떨어져 있다. 때때로 이란의 무기가 팔레스타인에 전달이 된다. 하지만 파타는 이란을 믿지 않으며, 하마스는 종교적 운동이기는 하지만 순니파로서, 쉬아파인 이란과 다르다. 따라서 하마스와 이란은 일부 전술적인 이슈에 관해서는 협력할 수 있지만, 그들이 같은 비전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이스라엘이 누리는 단기적 행동의 자유와 그들이 직면한 장기적인 도전

주어진 환경이 이렇다 보니, 유럽이나 다른 지역에 존재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이 이스라엘에 대한 의미 있는 지렛대가 되기란 극히 어렵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이스라엘은 아랍과 나머지 세계에서 끓어오르는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이 가져올 결과는 가자지구의 통제권을 잃는 것보다 더 위험할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더 독립적인 가자지구야말로 이스라엘에 더 큰 위협을 가하게 된다. 가자지구의 제압이란 이스라엘에게는 더욱 안전하고, 결국은 파타가 지지하는 입장일 것이며, 이집트는 한 몫 거들고, 요르단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시리아는 결국 이러나저러나 상관없는 그 어떤 것이다.

국가들은 리스크와 보상에 그들의 행동의 기초를 둔다. 팔레스타인과 아랍 간의 관계는 이스라엘의 단호함에 보상을 주는 반면, 신중함에는 거의 보답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에 대한 세계의 여론이 그들에게 의미 있는 위협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아랍의 현실이 그것을 무력화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마스에 대한 압력을 늦추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굴다가는, 말하자면 스웨덴 사람들을 만족시키려다가 파타나 이집트를 엿 먹이게 될 공산이 크다. 이스라엘에게 있어 스웨덴은 이집트나 파타만큼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일은 그렇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과 가자 봉쇄 집행부대에 대한 이야기는 문제의 요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해군 함정을 위협하기 위해 발진한 이집트군 비행기는 한 대도 없으며, 시리아 군함이 차단지점을 향해 항진한 적도 없다. 이스라엘은 아무런 도전을 받지 않은 채 완벽한 제해권과 제공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점은 아랍 국가들이 더 이상 이스라엘에 도전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런 군사력을 갖는데도 더 이상 흥미가 없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1973년에 이집트와 시리아군은 이스라엘군에게 엄청난 위협을 가했었지만, 오늘날 그런 위협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이 지역에서 군사적으로 완전한 행동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들은 군사적 반격을 계산에 넣을 필요가 없다.
인티파다, 자살폭탄, 레바논과 가자지구에서 날아드는 로켓탄, 그리고 히즈불라 전사들이 가하는 위협은 진짜이지만, 한 때 이집트와 시리아가 가했던 것처럼 이스라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그리고 이스라엘은 가자 봉쇄와 같은 행동이 실질적으로 인티파다, 자살폭탄, 로켓탄 위협을 줄여준다고 보고 있다). 비국가행위자들은 쉽게 말해서 그런 수준에 도달할 능력이 없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행동의 배후에 존재하는 이유를 탐색해보았을 때, 이런 단일한 군사적 현실이 이스라엘의 의사결정을 설명해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터키와 이스라엘의 갈등은 실질적인 것이지만, 터키 혼자서는 이 지역의 엄청난 분열 양상 때문에, 대중 여론이나 외교의 범주를 넘어서는 충분한 압력을 이스라엘에게 가할 수 없다. 터키는 이스라엘과의 협력관계를 축소하거나 중단하는 선택지를 갖고 있지만, 터키는 아랍 세계 내부에 이스라엘에 대항하는데 필요한 잠재적인 동맹자를 갖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터키의 반발에 대해 충분한 완충장치가 있다고 느끼고 있다. 터키와의 관계가 이스라엘에 중요하기는 하지만, 봉쇄를 포기하고 가자지구에서의 위험을 받아들여야 할 만큼 충분히 중요한 것은 분명히 아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미국에 대해서도 동일한 관점을 취하고 있다. 1967년 이래 미국은 이스라엘 안보에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되었지만, 오늘날 이스라엘은 미국에게 훨씬 덜 의존적이다. 이스라엘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미국이 이스라엘에 제공하는 원조의 양은 중요성이 크게 줄어들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과의 결별은 중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나, 흥미롭게도, 단기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매우 효과적으로 버텨나갈 수 있다.

이스라엘은 그러나 전략적인 문제에 봉착해 있다. 단기적으로 그들은 행동의 자유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장기적으로 보아 그들이 활동하고 있는 전략적 틀을 바꿔놓을 수 있다. 이스라엘에게 가장 큰 위협은 세계의 여론이 아니다. 그게 시시껄렁한 것은 아니어도, 세계 여론은 결정적인 힘이 없다. 이스라엘에 대한 위협은 그들의 행동이 아랍 세계에서 만들어낼 반동이 끝내는 세력 균형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여론의 정치-군사적 귀결은 핵심적 문제이며, 이스라엘은 터키와의 결별을 이러한 맥락에서 평가해야만 한다.

이스라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변화는 팔레스타인 세력들 간의 단결이 아니라, 이집트의 정책이 캠프 데이비드 협정 이전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다. 이집트는 아랍 세계의 힘의 중심지로 덩치도 제일 크고 과거 아랍의 단결을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이집트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이스라엘이 우려하던 세력이었다. 하지만 무바라크 통치 하의 이집트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뒤집었고, 이집트의 군사력이 쇠퇴하도록 방치했다.

무바라크의 후계자가 이들 세력과 손을 잡고 이집트의 군사력 재건에 나설 것인지를 선택하게 되면, 이스라엘은 전혀 다른 지역 구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집트와 손잡고 적대적이 된 터키는 이집트의 군사적 회복을 가속화시킬 수 있으며, 이스라엘에게 중대한 위협을 가할 수 있다. 시리아의 군비 확장에 대한 터키의 후원은 더 큰 압력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집트, 시리아, 터키가 동맹을 맺고 이스라엘에 대한 아랍의 위협을 부활시키는데, 미국은 물질적으로 이스라엘을 돕지 않던 1950년대의 태도로 돌아가 버린 세계를 한 번 생각해 보라. 터키의 떠오르는 세력이 아랍 세계의 정치적 변혁과 합쳐지게 되면 이스라엘에게 무지막지한 위협이 될 것임은 명백하다.

세력 균형이 없는 곳에서, 지배적인 세력을 국가는 얼마든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행동이 이웃 나라들로 하여금 세력균형을 만들어내려고 시도하도록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집트와 시리아는 과거 이스라엘이 무시할 수 없는 위협이었다. 그들이 수동적으로 남아있게 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이익에 부합한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행동이 이 나라들로 하여금 과거의 행태를 바꾸게 만드는 원인이 되는 정치적 과정을 발동시킬 수 있다는 위협을 무시할 수 없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이집트와 시리아를 우습게보다가 1973년에 어떤 꼴을 당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 사건은 군사력이 얼마나 빨리 부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좋은 예였다. 이집트군은 1967년에 박살이 났다. 그러나 1973년이 되자 그들은 이스라엘을 깜짝 놀라게 만들 정도로 위력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을 회복했다.

이스라엘은 단기적으로 볼 때 압도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서 있다. 그들이 계산해야만 하는 것은 그들이 계속 이렇게 행동할 경우 그 유리한 입지를 계속 지킬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내부의 분열을 포함해 아랍 세계의 분열은 하룻밤에 치유될 수 없으며, 전략적 군사 위협을 형성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아랍 세계의 형세는 확고불변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현재 위기의 신관을 제거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스라엘의 행동은 지역적으로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여론과 외교관계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행동이 아랍 세계의 전략적 태세에 장기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지 않을 것이라고 계산하고 있다. 만약 그들의 계산이 틀린 것으로 드러난다면, 최근의 행동들은 심각한 전략적 실수가 될 것이다. 반대로 만약 그들이 옳다면 이번 사건은 그냥 또 하나의 스쳐지나가는 사건일 뿐이다. 결국 아랍 세계의 뿌리 깊은 분열은 이스라엘을 보호하는 동시에 이스라엘의 도전에 대한 외교적 해법을 만들어 내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 그렇게 분열된 세력과 싸울 필요는 없지만, 통일된 목소리랄 만한 것이 완전히 결여된 집단과 포괄적인 협상을 벌이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한 줄 요약: 전세계가 뭐라 하든 아랍이 단결하지 못하면 이스라엘은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 것이다.
by sonnet | 2010/06/16 13:28 | 정치 | 트랙백 | 덧글(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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