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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통상방위론
2009/07/16   물귀신 작전: 네 가지 상반된 핵전략 [92]
물귀신 작전: 네 가지 상반된 핵전략
독일 영토 내에서의 핵무기 사용에 대한 딜레마 (길 잃은 어린 양) 에서 트랙백

어린 양 대인께서 잘 지적해 주신 대로 서독에게 핵무기는 끊임 없는 딜레마를 주는 존재였습니다. 서독은 NATO의 최전방 지역이라 일단 핵무기를 퍼붓기 시작하면 남아날 게 없겠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핵무기가 없으면 재래식 전력에서 우세한 소련에게 뼈도 추리기 힘들 것 같고... 게다가 60년대 후반이 되자 서유럽에 배치된 핵탄두만 약 7,000발에 달하게 됩니다. 이 많은 핵탄두를 어떻게 써야 좋을까요?

이 핵무기 사용 전략을 놓고 동맹국인 미국과 유럽은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입니다.

당시에는 제3차 세계대전유럽의 다음 전쟁은 세 가지 형태로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1. 재래식전쟁: 핵무기가 사용되지 않음
2. 전역핵전쟁: 중,단거리 핵무기를 사용해, 전방에 해당하는 유럽 지역에서만 핵무기가 사용됨
3. 전략핵전쟁: 미국과 소련 본토도 핵공격을 받음

그리고 전쟁이 계속되면 아마도 재래식전쟁에서 전역핵전쟁으로, 전역핵전쟁에서 전략핵전쟁으로 확전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되었습니다. 문제는 NATO의 핵전쟁전략이 이 세 가지 전쟁 유형을 어떻게 수용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NATO의 핵전략이 정해져야만 소련에게 우리 전략은 이러이러하니 너희는 우리를 건드리면 안 된다라는 메시지를 오해 없이 전달할 수 있는 법입니다.


이 문제를 놓고 미국과 서독 사이에는 크게 네 가지 전략이 제기됩니다.

1. 통상방위론: 로버트 맥나마라로 대표되는 미국 정치지도자들은 재래식전쟁에서 전역핵전쟁으로, 전역핵전쟁에서 다시 전략핵사용으로 분쟁규모가 확대되는 개연성을 낮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핵무기 배치 규모를 가능한 축소하고, 선제사용도 피하려고 합니다.

2. 전역핵방위론: 한편 미 군부는 우세한 소련 지상군을 효과적으로 타격하기 위해 핵무기를 가능한 빨리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개념에 따르면 파괴력을 축소하고 정확도를 늘린 단거리 전술핵을 더 많이 배치한 다음, 재래식전쟁에서 전역핵전쟁으로 빨리 넘어갈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중거리 핵무기를 이용해 적진 깊숙히 핵공격을 가하게 되면 전략핵으로 반격을 받을 가능성이 늘어나기 때문에, 이런 무기들은 가능한 사용해서는 안 되며, 감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합니다.

3. 연결중시론: 이는 서독 좌파, 즉 헬무트 슈미트 총리가 이끄는 사회민주당의 입장인데, 단거리 핵무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서독에서 쏜 전술핵은 동독에서 터지고, 동독에서 쏜 전술핵은 서독에서 터지는 식으로 독일이 큰 피해를 입을테니, 재래식 전쟁으로 최대한 오래 버티다가, 어쩔 수 없이 핵무기를 사용할 수 밖에 없게 된다면 이때는 최대한 빨리 전략핵 사용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들은 서독에 핵무기를 배치해야 한다면, 단거리 핵무기는 줄이고 중거리 핵무기를 늘려 적진 깊숙히 핵공격을 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춤으로서 적군이 전략핵전쟁으로의 확전을 우려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4. 분쟁규모 확대지상론: 반면 폰 하셀 국방장관 같은 기독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서독 우파들은 재래식 전력으로는 소련의 공격을 감당할 수 없으므로 전쟁이 일단 시작되면 신속히 핵무기를 사용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역핵전쟁을 오래 끌면 피해가 큰 만큼, 다음 단계인 전략핵 사용으로 빨리 넘어가야 한다고 논합니다. 즉 이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어차피 서독은 X된 거니까, 최대한 빨리 전략핵전쟁까지 넘어가야 한다, 이런 입장이 분명히 전달되어야 차라리 전쟁이 날 확률이 줄어든다고 주장한 셈입니다. 그래서 내적 논리는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이들 또한 서독에는 중거리 핵무기를 많이 배치해야 한다는 데는 좌파와 의견이 일치합니다. 중거리 핵무기야말로 전략핵전쟁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이지요.

결국 이렇게 보면 미국이 주장한 ‘통상방위론’과 ‘전역핵방위론’은 (미국 본토가 얻어 맞는) 전략핵 사용사태까지 가는 일은 없도록 최대한 막아보자는 것이고, 서독이 주장한 ‘연결중시론’과 ‘확대지상론’은 일단 핵전쟁이 시작되면 (유럽만 망할 수는 없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전략핵 사용으로 빨리 분쟁규모를 확대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상황에서 핵무기의 열쇠를 꼭 쥐고 있는 미국의 뜻을 꺾고 유럽이 핵전쟁전략을 주도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 어떤 미국 지도자가 미국 본토에 핵탄두가 떨어지는 상황을 좋아하겠습니까? 하지만 여기엔 미국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소규모 핵전력을 갖춘 영국과 프랑스의 존재입니다.

프랑스는 비례억지전략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핵전략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있었습니다. 드골주의자들은 프랑스가 상대의 대도시 한두 군데를 물귀신처럼 붙잡고 지옥에 떨어질 만큼 독종이라는 것을 상대가 믿게만 할 수 있다면 상대국은 자국이 입을 손해를 고려하면 프랑스를 멸망시켜 봐야 남는 게 없다고 여겨 전쟁을 꺼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빈약한 핵전력의 위협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일단 핵전쟁이 시작되면 즉각 보유한 핵무기를 몽땅 상대의 대도시에 쏟아 부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죽일 것이라고 선언해 버립니다.

영국 또한 그 어떤 상황에서도 모스크바 하나는 확실하게 지도에서 지워버릴 수 있는 핵전력은 꼭 유지한다라는 모스크바 기준(moscow criteria)이라는 것을 자국 핵전략의 절대 명제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위해 모스크바를 둘러싼 ABM 요격망을 돌파할 수 있는 MD무력화 수단을 개발하는데 거액의 투자를 해왔습니다.

물론 모스크바가 날아가는 날엔 너흰 다 죽은 줄 알아라라는 것이 소련의 입장이었죠. 이들이 보기에 소련 대도시가 파괴되었는데, 미국 대도시는 무사한 상태에서 전쟁이 끝나버리면, 전후의 국력차가 극복불가능할 정도로 커질 것은 뻔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련은 누가 시작하건 간에 소련 대도시가 공격받으면 미국 대도시들도 날려버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변변치 않은 핵전력 때문에 수렁에 빠져들 가능성이 급등하자 미국은 이를 매우 부담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국, 프랑스, 서독의 일치된 의견은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영국의 공표된 핵전략은 이를 아주 잘 보여줍니다.

억지는 인식의 문제이다. 그것도 우리의 인식이 아니라, 우리와는 매우 다른 가치관과 태도를 가지고 있고 미래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는 잠재적 적이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중요한 점은 미국이 동맹들을 위해 기꺼이 자국의 영토와 국민들을 위험에 처하게 할 것인지에 대해 소련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소련 지도부가 [미국의] 이러한 의지를 의심하여 서유럽 민주주의에 대한 침략의 결과를 오판할 수도 있다. 영국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는 소련 지도부가 핵전쟁의 위험 없이 그러한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인지의 여부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그 계산을 매우 복잡하게 한다. 이러한 점은 NATO 동맹의 억지전략에 있어서 필요불가결한 요소이며, 미국을 비롯한 우리의 동맹들도 [우리의 핵무기가]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환영하고 있다 -1985년 영국 국방백서-

프랑스나 서독이면 몰라도 미국도 "환영하고 있다"는 거짓말이지만, 하여간 이런 논리, 즉 "영국이 보유한 핵무기가 … 소련[과 미국]의 계산을 복잡하게 한다" ( = 소련과 미국은 유럽만 희생시키는 선에서 전쟁을 끝낼 수 없다)는 영국에게 엄청나게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미래의 어떤 상황 하에서 소련 지도자들이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판단한다고 하더라도 소련 지도자들은 유럽인들의 손에 있는 엄청난 파괴력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유럽침략의 위험이 여전히 매우 중대한 것으로 인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부가적 보장의 요소-“제2의 결정권 센터”-는 지난 20여 년 동안 [NATO] 동맹 억지력의 한 측면이었다. - 1981년 영국 국방예산안 -

즉 전략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제2의 결정권 센터가 유럽에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영국과 프랑스는 자기 핵무기를 갖고 그런 역할을 하려는 것이고, 패전국이라 핵을 가질 수 없었던 서독은 미국의 중거리 핵무기를 호스팅함으로서 꿩대신 닭이라도 가져보려고 기를 썼던 것입니다.
by sonnet | 2009/07/16 10:05 | 정치 | 트랙백(1) | 핑백(3) | 덧글(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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