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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쿠데타
2011/02/16   이집트 사태, 1라운드 종료 [190]
2011/02/12   오늘의 단상 [260]
이집트 사태, 1라운드 종료

블로그를 오래하다보니까 써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뤄놓고 결국 손을 대지 않은 주제들이 쌓이게 되는데,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에 대한 글도 그중 하나입니다. 당시에 장난처럼 내정해놓은 제목도 있었지요. 무*라크 각하의 保에굽記라고.

글의 날자를 보니 2005년 2월이던데, 이미 만 6년 전의 일이군요. 그러나 사실 그때 쓰려던 글이나 지금 쓰게되는 글이나 문제의 핵심은 별로 변한게 없습니다. 초장기집권으로 노쇠해 가는 철권통치자의 자리를 누가 계승할 것인가 하는 점이 바로 핵심이지요.


1. 아들에게 물려줄 것인가: 이집트의 권력세습설

6년 전에도 이집트 대통령 선거(임기가 6년임)를 앞두고 무바라크 퇴진운동이 한바탕 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이름이 키파야(충분해!) 운동이었는데, 문자 그대로 '무바라크 많이 해먹었다'는 뜻입니다. 지금 30년째 집권이지만 6년 전이라 해봐야 24년이니 길기는 매한가지니까요. 또한 집권기간이 이렇게 길다는 것은 그만큼 무바라크 본인이 고령이라는 의미도 됩니다. 지금 나이가 82인데 6년 전이라고 해봐야 76이다보니 객관적으로 살아서 임기를 마칠지도 장담할 수 없을 정도의 나이였으니까요.

그래서 당시에도 호스니 무바라크가 집권 여당을 맡고 있는 아들 가말에게 대통령 자리를 물려줄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당시 언론보도를 하나 옮겨 보지요.

(카이로=연합뉴스) 정광훈 특파원 =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차남이며 유력한 후계자로 지목되고 있는 가말 무바라크(41)가 올 가을 치러지는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23일 선언했다.

집권 국민민주당(NDP) 정책위 의장을 맡고있는 가말 무바라크는 이날 NDP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항간에 나도는 부자 세습설을 공식 부인했다.

그는 NDP가 오는 9월로 예정된 대선 후보를 아직 지명하지 않았다면서 "나는 후보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야당과 국제사회의 압력에 밀려 지난달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수용했으며 의회에서는 이에따른 개헌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카이로 정가에는 무바라크 대통령의 직선제 개헌 발표 이전부터 그가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려 한다는 관측이 유력하게 제기돼왔다.

정광훈, "무바라크 아들 대선 불출마 선언", 연합뉴스, 2005년 3월 24일

사실 작년 연말까지만 해도 가말이 이번만큼은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을 것이라는 소문이 많이 돌았습니다. 이번에도 파파 무바라크가 연임하게 되면 거의 90까지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니까요. 지금도 건강이 좋지 않은 무바라크로서는 상당히 무리한 이야기거니와, 무바라크 지지세력들 입장에서도 후계자를 확실히 해놓지 않고 가다가 대통령이 급사하게 되면 정권을 지켜야 하는 입장에서 무척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거꾸로 이런 점을 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왜 가말은 "끝내 공식적으로 후계자 지명을 받지도, 사실상의 후계자 자리를 굳히지도 못했을까"

사실 독재정 하에서 부자세습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북한의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3대 세습도 그렇거니와, 같은 중동의 시리아만 해도 하페즈 아사드가 둘째아들인 바샤르에게 대통령 자리를 물려주었고, 아제르바이잔의 헤이다르 알리예프도 아들인 일함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이들은 명목상 공화국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사례들이고, 사실 중동엔 (세습이 당연하기 마련인) 왕국이 많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 부자간 권력승계는 더 많습니다.

우리는 최소한 2005년에는 무바라크 집안의 부자세습설이 유력했다는 것을 압니다. 아들을 오래전부터 집권여당의 핵심보직에 박아놓고 당을 장악하도록 했으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요. 그리고 그 때 준비가 좀 미진해서 혹은 정치적 상황에 맞추다보니 후계구도를 공식적으로 부인해야 했더라도 6년은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말이 되든 안되든 간에 명분을 쌓고, 옹호논리를 개발하고, 단계적으로 아버지가 권력을 이양하는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세습을 기정사실화할 방법은 많습니다. 그러나 이집트의 경우 실제적으로 가말의 후계자 지위는 6년 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신장되었다기 보다는 답보상태를 면치 못했다고 보는 게 옳습니다.

물론 많은 왕조사에서 볼 수 있듯이 권력은 감히 친아들과도 나누기 힘든 것이기에,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자신의 권력을 꼭 틀어쥐고 아들에게 양보하지 않았다는 해석도 가능은 합니다. 하지만 그간 행적을 볼 때 무바라크가 노욕 때문에 아들에게 승계를 하고 있지 않다고 보는 관찰자는 별로 없습니다.

그럼 또 무슨 이유를 생각할 수 있을까요?

김정일의 경우 후계자 지명이 늦어진 것은 아들이 너무 어려서였습니다. 하지만 가말은 6년 전에도 41, 지금은 47입니다.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니죠. 바샤르 아사드가 시리아를 물려받았을 때 37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가말은 충분하고도 남은 나이입니다.


2. 후계구도를 둘러싼 암투: 대통령 대 군부

자 이제 지금까지 나온 것 중에서 이 문제에 대한 가장 유력한 설명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은 무바라크의 핵심 권력기반 중 하나인 군부가 부자세습을 강하게 반대해 왔다는 설입니다.

우리의 소식통에 따르면, 이집트군 총사령관인 모하메드 후세인 탄타위 원수와 육군참모총장 사미 아난 중장이 무바라크를 찾아가 가말 무바라크의 대통령 출마에 반대한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한다. 탄타위와 아난은 군은 무바라크와 그의 전임자들, 즉 안와르 사다트와 가말 압둘 나세르, 을 그들이 우리의 일원(군 간부 출신)이기에 지지해 왔으나, 가말은 그런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무바라크는 이에 대해 두 고위 장성들에게 나는 여러분의 소망을 존중하며 따라서 대통령엔 내가 다시 나가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Complications with Egypt's Succession Plan, stratfor, 2010년 10월 11일

(최근 집권세력 내부에서 나온 부정 선거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노장파(old guard)가 보다 다원적인 정치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갑자기 품게 되어 나온 것이 아니다. 이는 무바라크에 대한 대중적 반대 여론을 도구로 이용하려는 전술이며, 집권세력 내부에서 자라나고 있는 균열을 보여주는 것이다. … 군과 여당에 포진하고 있는 이집트 집권세력의 노장파는 더 자유화된 경제 모델을 요구하는 소장파(new guard)의 주장과 가말의 대통령 승계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했다.

Another Shift in Egypt's Presidential Succession Plan, stratfor, 2010년 12월 13일

이 설은 앞서 우리가 보았던 여러가지 문제에 대한 일관성있는 설명을 제시해 줍니다. 즉 후계자는 마땅히 우리들(군 출신)이어야 한다는 군부의 요구와, 아들을 물려주면 좋겠지만 다른 장군에게 물려주느니 내가 더해야겠다는 무바라크의 반발이 부딪쳐 장군-멍군 같은 형태로 나타나다보니 후계자 문제가 미결정인 상태로 교착-표류하고 노쇠한 무바라크가 계속 집권에 나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갈등이 작금의 이집트 대중시위가 불붙기 전에 이미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중시위에 직면해 이집트 군부가 보인 묘한 태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3. 군부, 관망하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30년이라는 초장기집권을 하고있다보니 이집트 사회 내부에는 이에 대한 불만이 팽배했고. 어떤 계기만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반정부시위 내지는 무바라크 퇴진운동이 불붙을 환경이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6년 전의 키파야 운동은 그 좋은 예라고 하겠습니다.

다들 잘 아시다시피 올해 들어 튀니지 사태를 계기로 대규모 무바라크 퇴진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번엔 시위의 규모가 만만치 않아서 일상적인 시위에 맞서기 위해 사용되는 정부의 경찰 병력이 시위대에 밀릴 정도에 이르고, 이에 국가권력의 최후의 보루인 군이 1월 28일 새벽 수도 카이로 시내에 전개됩니다.

보통 사람들은 군이 대중시위 때문에 출동할 경우, 대대적인 유혈진압 가능성을 떠올리며 걱정을 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중국의 천안문 사태(1989)로, 군이 탱크와 기관총으로 광장의 시위대를 쓸어버리면서 큰 인명피해가 발생했지요. 사실 중동은 중국 이상으로 거친 사나이들이 통치하는 동네이기 때문에 이보다 한술 더 뜰 수도 있습니다. 같은 아랍 공화국인 시리아의 경우 무슬림 형제단이 주도한 하마 시 봉기(1982)을 진압하면서 도시를 포위하고 야포를 쏘며 공격한 끝에 2만 5천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고 폐허가 된 도시를 정복(!)했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반대로 시위진압이나 친위쿠데타를 위해 동원한 병력이 정권의 말을 듣지 않거나 총뿌리를 돌릴 경우, 정권이 순식간에 붕괴하는 일도 심심치 않습니다. 공산 루마니아와 소련의 붕괴에서 이런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죠. 따라서 군의 출동은 어느 쪽으로든 티핑 포인트가 될 가능성이 컸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군의 대응에 주목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출동한 이집트 군은 묘한 행동을 합니다. 출동은 했지만 시위를 진압하는 대신 사실상 방치한 것입니다. 이집트군은 경찰처럼 최루탄을 쏘고 곤봉을 휘두르며 시위를 진압하지도 않고,그렇다고 시위대 편에 서서 정권 타도에 나서는 것도 아니며, 단지 시내 요소요소를 점령하고 사태를 통제할 뿐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태도를 뒷받침하듯이, 군은 1월 31일 성명을 발표 "이집트 군은 지금까지 이집트 국민에 대해 무력을 사용해 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무력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결국 이집트군의 이러한 행동으로 인해 시위대가 기세를 타고 진격해 정부청사들을 점거하고 정권을 타도하는 것도, 반대로 정권이 물리력을 동원해 시위대를 분쇄하는 것도 불가능해집니다.


4. 개각 : 군부의 약진과 정권 내 세력균형의 붕괴

이래저래 궁지에 몰린 무바라크는 1월 29일 새벽, 사태수습 대책으로 대규모 개각을 발표합니다.

시위대의 주요 요구사항이 대통령의 즉각 퇴진이었기 때문에, 언뜻 보기에 이 개각은 면피용이라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즉 겉보기에만 바뀌었을 뿐 실제로는 전과 달라진 것이 없으며, 시위대의 시위가 멈추고 나면 모든 것이 원상태로 돌아가버릴 것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실제는 그와 정반대여서 이 개각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권 내부의 세력균형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우선 이 개각에서 외적으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그간 공석이었던 부통령에 정보부장이었던 오마르 술레이만을 임명한 것입니다.

과거 나세르 대통령이 죽은 후 부통령이던 사다트가 대통령에 올랐고, 또 사다트가 죽었을 때는 부통령이던 무바라크가 대통령에 올랐던 것처럼 이 부통령 자리는 현 대통령의 지명된 후계자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무바라크는 그간 수십 년 동안 부통령을 의도적으로 임명하지 않고 지내 왔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부통령을 임명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조치는 다음과 같은 의미라고 널리 받아들여졌습니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정보부장인 오마르 술레이만을 부통령에 앉혔다. 이런 조치는 무바라크 대통령이 권력을 자신의 아들 가말(집권 국민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에게 세습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고웅석, <인터뷰> 이집트 언론인 샤즐리 편집장, 연합뉴스, 2011년 1월 31일

이는 그간 후계자 문제를 놓고 무바라크 대통령과 군부 사이에 벌어졌던 대결에서 군부가 승리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번 개각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더 크고 폭넓은 조치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현 정부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한 패였던 기업 엘리트들을 쳐내는 방식이다. 정부는 미움받는 철강왕이자 집권 여당의 실력자 중 하나인 아흐메드 이즈, 전 무역산업성 장관인 라시드 모하마드 라시드, 전 주택성 장관 아흐마드 엘 마그라비, 전 관광장관 주하이르 가라나의 자산동결 및 출국금지조치를 발표했다.

아흐마드 샤피크 총리는 금요일 아랍 위성방송 알 아라비야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새 내각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모든 기업가들을 제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이 나라의 모든 부패를 상징하는 인물로 시위대가 지목한 이즈에 대한 정부측의 제스처다.

"희생양이죠." 이집트의 대표적인 기업가이자, 카이로 상업회의소의 전 의장인 알리 무사 씨의 반응이다.

Shadid, Anthony. “In Egypt the Discontented Confront Power of Elites.” The New York Times, 2011년 2월 4일

이들이 희생양이라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현 집권세력이 살아남기 위해 일종의 도마뱀 꼬리짜르기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이 사건을 하나의 무의미한 제스처로만 생각한다면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숙청은 이는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이집트 집권연합 내부의 동학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창문이었기 때문입니다.

분노한 시위대 앞에 누구를 희생양으로 던질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집트의 현 집권연합은 희생자를 무작위로 뽑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철저하게 한 파벌, 즉 무바라크 대통령 밑에서 기존의 집권연합을 구성하던 기득권 세력 중 특정 분파, 즉 기업가 집단을 희생시키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대통령의 아들 가말 무바라크와 연합하고 있던 소장파의 주력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위진압과 관련된 책임을 물어 내무장관을 경질합니다. 경찰병력의 철수와 이를 대체한 군부대의 진주, 그리고 경찰의 수장인 내무장관의 경질로, 대통령이 군부를 대신해 의지할 수 있는 제2의 무장력이 실질적으로 무력화됩니다. 이후 무바라크 대통령이 사임할 때까지 내무부 산하의 경찰/중앙보안군은 이집트 정치의 유의미한 세력으로 두 번 다시 등장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 같은 과정을 그림으로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중시위 이전 이집트의 권력구조: 무바라크 대통령은 군부를 배경으로 집권했지만, 다른 권력기관들을 이용, 군부의 영향력이 자신을 압도하지 못하도록 견제했다.

개각 이후 이집트의 권력구조: 군부의 영향력을 견제하던 다른 권력기관들이 대거 몰락함으로서, 대통령은 권력을 잃고, 군부의 패권이 확실한 것이 되었다.


이리하여 포스트 무바라크를 겨냥한 군부의 포석이 완료되자 이때부터 시위대에 대한 군부의 어조가 미묘하게 바뀝니다. 즉 2월 2일에 이르러서는 "시위대의 요구가 충분히 전달됐다"며 이제 안정을 위해 시위대는 집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즉 군부의 입장에서 볼 때 지금까지는 반정부시위를 대통령을 압박하는 도구이자 군대의 출동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잘 써먹었지만, 모든 목표가 달성된 이제 시위대의 가치가 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5. 마지막 남은 사안: 임기를 채울 것인가 말 것인가

2월 3일 ABC방송의 크리스티나 아만포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은 다음 두 가지 사안을 확인합니다.

1. 즉각 사임하지는 않을 것이다.
2. 다음 대선에 재출마하지 않을 것이며, 내 아들도 출마하지 않을 것이다.

이 인터뷰는 시위대를 실망시켰고, 많은 피상적인 관찰자들에게 진부한 주장의 재확인 정도로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이 인터뷰에는 분명한 공약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군부의 오랜 요구사항이던 2번을 무바라크가 공개적으로 약속했다는 점입니다. 무바라크의 공약은 시위대를 향한 것이라기보다 군부를 향한 것이었던 셈입니다.

군부는 만족했지만 시위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많은 언론 취재에서 잘 드러난 것처럼 시위대의 제일 큰 걱정은 지금 시위를 풀고 흩어지면 무바라크가 약속을 지킨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경쟁파벌을 일소하고,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군부로 모아놓은 지금, 군부는 그런 걸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또한 시위대는 다양한 구성원들로 구성된 만큼, "무바라크 즉각 퇴진" 같은 간단명료한 구호가 아니면 자신들 내부의 입장차를 적절히 조정해 단일한 대오를 유지할 수 없다는 문제도 안고 있었습니다. 새로 임명된 부통령 술레이만의 주도 하에 정부가 시위대와의 협상에 나서자, 시위대의 이러한 약점이 문제가 됩니다.

술레이만은 시위대 측이 협상에 잘 응하지 않자. 2월 8일, "대화의 대안은 쿠데타가 발생하는 것"이라며 "쿠데타는 여러 불합리한 것들을 포함하고 있는 의도되지 않은 성급한 조치로 우리는 이같은 상황에 이르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경고를 발합니다.

이 이야기는 상당한 오해를 불러일으킨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즉 적지 않은 서방 언론들이 이를 '시위대 측이 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우리들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초법적인 행동에 나설 수도 있다'라는 식으로 위협했다고 보도한 것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미 이 시점에서 무바라크나 술레이만이 쿠데타의 주도세력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들이 말하고자 한 것은 오히려 '시위대 측이 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직접 나설 위험이 있다. [그럴 경우 무력화될] 우리는 이같은 상황에 이르길 바라지 않는다'라는 이야기였던 것이지요.

군부 입장에서는 무바라크가 당장 사임하게 되면 헌법에 규정된 정치일정을 따르기 곤란하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기존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 유고시에 (부통령이 아니라) 국회의장, 대법원장 순으로 대통령의 권력을 승계한 후 60일 내 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이런 촉박한 일정으로는

1) 개헌을 통해 공정선거를 보장하여 정당성을 확보할 수도 없고,
2) 일시적으로라도 가말 무바라크의 텃밭인 국회의장과 국회에게 권력을 넘기는 것도 마뜩치 않으며,
3) 무엇보다도 군부 자신이 선거에 뛰어들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군부로서는 무바라크가 즉각 퇴진하게 될 경우, 헌정을 중단시켜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도 쿠데타가 불가피한 입장이었던 셈입니다. 이에 따라 군부는 무바라크가 지명한 과도정부의 책임자인 술레이만 부통령과 샤피크 총리가 헌정중단을 피하면서도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지 한 번의 기회를 주기로 합니다.

하지만 시위대 주류는 이에 대해 협상을 완고하게 거부하며 오직 무바라크 즉각사퇴만을 요구합니다. 이들의 태도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무바라크 즉각사퇴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쿠데타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그런 정서가 곳곳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6년전에 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무바라크와 맞섰던 알 가드 당의 아이만 누르 당수는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쿠데타뿐"이라고 받아칩니다. 하지만 평범한 일개 시민도 아니고 민주화를 책임져야 할 야당 지도자쯤 되는 인물부터가 이렇게 나오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쿠데타 가능성이 별로 없는데 정권 측이 허풍을 치고 있다고 판단했다면 심각한 오판(이미 군부의 그림자가 사방에 깔려 있었고, 게다가 실제로 곧 쿠데타가 일어났으므로)이고, 반대로 시위대 측이 자신들의 힘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기보다는 민주적이지 않아도 좋으니 군부가 초월적인 해결사(deus ex machina)로 등장해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을 일도양단으로 해결해주길 기대했다면 너무 의타적인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특이한 동향을 보인 것이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이었습니다. 이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불법단체로 탄압받아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집트의 최대 야당이라는데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강력한 반정부 정치세력입니다. 형제단은 세간의 예상을 깨고 시위대 주류로부터 욕을 바가지로 먹으면서도 술레이만 과도내각과의 정치협상에 참여합니다.

형제단은 이번 시위 내내 시위대 주류, 특히 '정당이 아니라 운동'임을 천명하는 '4월 6일' 같은 청년운동 계열과 묘하게 엇박자를 내는 행보를 보여왔는데 이번에도 그런 현상이 두드러진 것입니다. 형제단의 의사결정과정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만, 이는 무바라크 즉각퇴진이 지상목표인 청년운동 계열과 이미 무바라크 이후 정국을 고민하기 시작한 기성세력의 관점 차이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아도 좋지 않나 합니다.

결국 시위대 측이 무바라크 즉각퇴진을 끝까지 고수하게 되자 군부의 고민은 깊어집니다. 무바라크를 법정임기 끝까지 끌고가는 것이 군부에게 정치적 자산이기보다는 부채로 느껴지게 된 것입니다.


6. 최후의 곡예: 무바라크의 TV연설

(작성중)

무바라크의 "퇴임거부" TV연설 직후 시위 지도자 중 하나인 모하마드 엘바라데이의 트위터. 해결사로서의 군부에 기대하는 심리를 읽을 수 있다.


7. 앞으로의 전망

개각 이래 정부측의 소방수가 되어 지휘봉을 쥐고 정국운영의 축으로 등장했던 오마르 술레이만입니다만, 쿠데타의 발발로 인해 최고군사평의회가 초법적으로 지배하는 쿠데타 정국이 되자 그의 역할에 의문부호가 찍히게 됩니다. 그가 최고군사평의회의 일원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의문에 대해 아흐메드 샤피크 총리는 로이터 통신에 "[부통령] 오마르 술레이만이 맡을 역할은 최고군사평의회가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답합니다. 한마디로 처분만 기다리는 신세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샤피크 총리도 마찬가지로 향후 이들이 빠르게 제거될지, 아니면 한동안 군부의 지시를 받는 관리자로 남을지는 지켜보는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샤피크 내각은 포고령 5호 7항에서 당분간 유임되는 것으로 발표됨.)

향후 정국에 있어 군부가 내놓을 대민유화책으로 유력한 것은 과거 무바라크 정권 하에서 집권연합세력의 일원이었으나 군부를 견제하거나 대립해 왔던 파벌들을 숙청해 나가는 것입니다. 집권여당 국민민주당의 친무바라크파들은 지난 총선의 부정선거와 관련된 각종 책임을 묻고, 가말 무바라크와 제휴하고 있던 자산가 집단은 부정축재자로 단죄하고, 시위 초기의 많은 유혈사태에 대한 책임은 내무장관과 경찰지도부에게 돌리게 될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과정은 이미 시작되었고 한동안 계속될 것이 거의 확실시됩니다.

만약 군부가 무바라크에게 충성해왔으나 대중시위 이후 민중의 힘에 밀려 돌아섰을 뿐이라고 피상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이는 옛 동료들을 쳐내는 고통스러운 자기 혁신의 과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미담같은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며,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이 과정은 옛 경쟁자들을 정리함으로서 군부의 독주체제를 완성하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또한 군이 직접 정권을 쥐게 된 현재, 시위대는 과거 무바라크 정권과 시위대가 충돌할 때 옆에서 팔짱끼고 구경하던 그런 태도를 군이 계속 취할 것이라고 기대해선 안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 때는 남의 일이었지만 지금은 나의 일이 된 셈이니까요.

이런 징조는 군이 발표한 성명서에서 발견됩니다. 군부는 이미 포고령을 통해 향후 시위대는 경찰의 지시에 협조할 것을 요구(포고령 4호 6항)했습니다. 물론 경찰이 돌아올 때 그 경찰은 과거처럼 군을 견제하는 또 하나의 무력집단이 아니라, 군이 완벽하게 장악한 무력집단일 것이 틀림없습니다.



추기:
Foreign Affairs 인터넷판에 올라온 무바라크 없는 무바라크 주의(Ellis Goldberg, 길잃은 어린양 역)도 같이 읽어보시면 현 이집트 정세에 대해 많은 도움이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by sonnet | 2011/02/16 00:35 | 정치 | 트랙백(1) | 핑백(6) | 덧글(190)
오늘의 단상
오늘 우리가 이집트에서 보고 있는 상황은 명백한 쿠데타이다.

사실 군사정부로 그렇게 오래 고생을 한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쿠데타에 대해 호의적인 여론이 세간을 휩쓰는 것은 머리털나고 처음 본다.

지금 사람들은 "적의 적은 친구"라는 직관적인 공식에 의거, 이를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대중들의 승리, 시민혁명의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초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한 군인들이 광장의 시위대들과 동일한 이집트의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곧 두 집단 사이의 갈등이 표면화될 공산이 높다.

지금 바랄 수 있는 것은 이것이 결과적으로 선의의 "좋은" 쿠데타이기를 기대하는 것인데,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좋은" 쿠데타가 많았는지 "나쁜" 쿠데타가 많았는지를 생각해보면 "좋은" 쪽에 손을 들어주기는 영 자신이 없다.

사실 시위대가 무바라크라는 늙고 약한 늑대를 몰아내는 데 너무 정신이 팔린 나머지, 젊고 팔팔한 호랑이를 안마당에 들여놓은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자꾸 든다. 삼국지연의의 서두를 보면 하진이 지방 제후들을 불러들여 십상시를 몰아내겠다고 하자 조조가 일을 외려 어렵게 만든다며 하진의 멍청함을 비웃는 장면이 나오는데, 지금 보고 있는 일이 그런 짝일 수도 있지 않나.

좀더 자세한 의견은 정리되는 대로 다시.
by sonnet | 2011/02/12 08:32 | 정치 | 트랙백(4) | 핑백(3) | 덧글(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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