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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칼라데크
2006/11/17   익숙한 편지 [3]
익숙한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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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대통령 각하에게 올리는 이 재단사의 편지는 나로 하여금 우리가 예전에 많이 받아보던어떤 편지들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저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큰 기쁨은 대원수 각하가 이 세상에 존재하신다는 것이고, 또 저의 가장 절실한 소망은 각하께서 오래오래 장수하는 것입니다. ...

저는 중앙위원회가 즈베즈다 지와 레닌그라드 지에 대해 내린 포고령 때문에 말 그대로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 모든 사람들이 죠스셴코를 그토록 좋아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고르키, 티호노프, 쿠즈네초프, 마리에타 샤기니안, 마이스키 등 모두 그를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그가 레닌그라드를 떠나리라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습니다. ... 그는 1944년 겨울에도 부지런히 빨치산에 대한 책을 펴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책에는 모욕이나 악의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

죠스센코는 극히 신경과민이었고 ...... 이상한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고골과 마찬가지로 그는 미치는 것에 대해 유별난 두려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자기분석을 통해서 치료하기 시작하였고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러한 병이 그에게 풍자의 재능을 준 것이며 또한 그는 타인의 의지에 복종하는 능력이 없어서 명령에 따라 행동할 수 없는 것입니다.


(숙청된 레닌그라드의 풍자작가 미하일 죠스센코의 부인 베라가 대원수 각하께 올리는 편지. 이 편지에는 강철의 대원수가 붉은 색 연필로 그은 강조가 남아 있다)


1937년 1월 30일 저의 아버지가 사형 선고를 받은 후 1년 후에 저와 저의 어머니는 5년 동안 아스트라한으로 유배되었습니다. 아스트라한에서 저의 어머니는 다시 한 번 체포되었으며 북부의 템니코프 수용소에서 8년 징역을 선고받았는데 그곳에서 돌아가셨습니다. ... 저는 다시 1941년 11월에 그곳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유배되었습니다 ...

저도 역시 인간입니다. 인민의 적의 딸이라는 이유 때문에 저 역시 인민의 적이란 말입니까? 저는 아버지가 1937년에 사형을 언도받았을 당시 열일곱 살이었는데 그때부터 인민의 적이라고 불려왔습니다. 교육을 받았지만 첼카르에서는 제 지식을 써먹을 만한 곳이 전혀 없습니다. 저는 아직도 국내통행증이 없습니다. 첼카르의 NKVD 총책임자 이바노프 동지는 제 물음에 답을 주지 않고 계십니다. 아버지의 죄를 속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대숙청 당시 처형된 국제 볼셰비키 칼 라데크의 딸 소피아의 편지. 강철의 대원수는 베리야에게 알아서 잘 처리하도록 지시했다)


보내지 않았던 답장 같은 사례도 참조.
by sonnet | 2006/11/17 16:10 | 정치 | 트랙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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