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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체스터쿠퍼
2008/06/23   나라 이름만 한국으로 바꿔 읽으면 되는 이야기 [63]
나라 이름만 한국으로 바꿔 읽으면 되는 이야기
1997년에 역사재평가를 위해 베트남전 당시 미국과 베트남의 정책담당자들이 모여 학술회의를 개최한 적이 있다. 이 때 실무자 중 한 사람이 미국이 세계를 보는 방법에 대해 재미있는 증언을 하였다.


체스터 쿠퍼(당시 미 국무성 베트남 전문관)

나는 지금 여러분 앞에 앉아서 이렇게 얘기를 하면서 깊은 감개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베트남 측에 앉아 계신 몇 분과는 1954년 제네바 회의에서 만났고, 또 몇 분과는 1962년 라오스 회의에서 얼굴을 마주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아마 같은 생각을 가슴에 품고 여기에 앉아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미국과의 교섭에 일생을 바치신 것처럼, 나 역시 엄청나게 긴 세월을 베트남과의 교섭에 소모했기 때문입니다.

우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미국과 베트남의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 주셨으면 하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미국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시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중국과의 사이에 증오와 애정이 뒤섞인 복잡한 관계를 150년 정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필리핀과도 관계를 가졌습니다만, 우리는 필리핀도 거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에는 아시아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도, 아시아에 가본 경험이 있는 사람도, 그리고 실례를 무릅쓰고 말씀드리자면 지도에서 베트남을 찾을 수 있는 사람도 불과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유럽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관심 또한 늘 유럽에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국무장관들 대부분은 보스턴이나 뉴욕, 필라델피아 출신입니다. 그러니까 모두가 동부 해안 지역 출신입니다. 나도 보스턴 출신으로 유럽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만, 아시아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나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중국에 갔는데, 그것은 대단한 문화 충격이었습니다. 나는 중국에 대해 무엇을 모르는지 - 통역이 잘될지 걱정입니다만 - 자신이 중국의 무엇을 이해하지 못하는지조차 몰랐습니다. 이것이 베트남 문제를 생각하는 데도 매우 커다란 장애였습니다.

나는 중국에 대해 거의 아무 것도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 대전 때 병사로서 중국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사이엔가 아시아 전문가로 간주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전문가 말입니다! 그리고 나는 CIA에 들어가 아시아 전체의 정세를 분석하는 부서에 배속되었습니다. 나는 결코 아시아 전문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인의 아시아에 대한 지식이 너무나 적었기 때문에, 내가 전문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무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당시 미국의 현실이었습니다.

지금 베트남의 출석자로부터 1945년 호치민 주석이 미국에게 독립을 지지해달라고 제의했을 때의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알아주셨으면 하는 것은, 당시 미국 정부는 그것 말고도 달리 현안이 무수하게 산적해 있어서, 베트남 정도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우리가 관심을 가진 것은 독일과 일본이지 베트남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여러분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은 이해해 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의 자손도 역시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945년 호치민의 메시지가 미 국무성에 도착했을 때, 국무성에서 “뭐야 이 펀지는? 우리는 베트남 같은 곳에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아”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오히려 현실로는 당시 미 국무성에 호치민 주석은 물론이거니와 베트남이라는 국가조차 알고 있던 사람이 없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아마 그것은 긴급한 메시지였겠지요. 만약 그 때 뒤에 다가올 비극을 알 수 있었다면 미국의 대응은 틀림없이 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워싱턴은 혼돈 상태였습니다. 베트남에 대한 확고한 정책 같은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東 大作, 『我々はなぜ戦争をしたのか―米国・ベトナム 敵との対話』, 岩波書店, 2000
(서각수 역, 『우리는 왜 전쟁을 했을까: 미국·베트남 적과의 대화』, 역사넷, 2004, pp.97-100)


이런 현상은 아주 오래된 것이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다. 이 점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서 한국 현대사에서 미국의 역할을 논할 때 아주 고질적인 왜곡을 일으키는 한국중심시각이 등장한다. 그것은 "미국이 XXX하려 했다" 내지는 "미국이 XXX할 수 있었는데 안했다"란 식으로 미국의 적극적이고 다양한 행동이 가능했다는 가정을 암묵적으로 깔고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불가능했다. 왜냐. 모르고 관심도 없었으니까.

한국에서 아주 특별한 사건, 예를 들어 공산군의 침공 같은게 터지지 않는 이상 미국은 관심이 없었다. 베트남과 한국에 대한 거의 모든 관심은 공산권과의 세계적 투쟁의 일환, 혹은 더 직접적으로는 전쟁이 벌어질 때만 일시적으로 높아졌을 뿐이다.

사실 이 문제는 한국이나 베트남 정도에 끝나지 않는다. 심지어 미국은 중국에 대한 관심도 부족하다.

예를 들어 요즘 미국은 중국이 뜨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할 정도로 러시아를 괴롭히는데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데, 이것은 어느 정도 관성의 영향이라고 생각된다.

최대한 공정하게 말하자면 최근의 미국 학계는 중국 붐이 불어서 일본 연구가 (상대적으로) 크게 위축되고 중국 연구가 그 빈자리를 메우고 있긴 하다. 하지만 중국 문제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 워싱턴의 상층부에 많으냐 하면 그렇지 않다. 여전히 유럽통 혹은 소련통이 많다. 콘돌리자 라이스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다. 다음번 미국 대통령이 맥케인이 되건 오바마가 되던 간에 각료급에 중국통이 들어갈 가능성은 난 0%라고 본다. 그럴만한 캐리어를 가진 인물이 없다.

냉전 초기에 미국은 소련 전문가가 극히 부족해서 지독하게 고생을 했는데, 결국 무지막지한 노력을 퍼부은 끝에 수십 년 걸려서 소련 전문가들을 많이 키워내는데 성공했다. 아마 중국이 더 성장해 진정 미국의 위협으로 자리잡는다면 시간은 많이 걸리겠지만 중국 전문가들이 워싱턴의 상층부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중국 붐이 시작된지 얼마 안 되었으니 현재의 소장파가 장관급까지 가려면 한 20년?

그나마 러시아는 준 유럽문명권이지만, 중국은 완전히 다른 문명권이기 때문에 몇 배로 고생을 할 게 뻔하다. 무지막지한 자원과 역량을 가진 강대국이라 하더라도 문명권의 벽을 넘어 정책판단을 하는 것이 아주 힘들다는 것은 이미 중동에서 잘 증명된 바 있다.
by sonnet | 2008/06/23 00:03 | 정치 | 트랙백 | 핑백(1) | 덧글(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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