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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찰스프리처드
2009/12/26   BENS 방북 관련 요약 [41]
2009/12/02   미국의 한 북핵 관여(engagement) 정책 지지자의 견해 [27]
2009/07/11   『실패한 외교』에 그려지는 부시1기의 대북정책 [47]
2009/04/25   통역 최선희 [33]
BENS 방북 관련 요약
최근 미국의 민간단체인 '국가안보사업이사회(BENS)'가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왔는데, 여기서 미국이 북한에 대한 기존 입장의 급선회 가능성을 점치는 주장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이 대표단에 AIG의 전 CEO인 모리스 그린버그, 페로 시스템스의 로스 페로 등 이름 있는 기업인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추측을 하는 모양이더군요. 여하튼 실제로 언론에 알려진 내용들을 모아 보도록 하지요.


찰스 보이드 미국 국가안보사업이사회(BENS)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를 단장으로 한 미국 기업가대표단이 14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 북한의 경제부문 일꾼(간부)들과 "투자환경을 마련하는 데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진지하게 토의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7일 보도했다. 중앙통신은 `미국 기업가대표단 평양 체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방북 기간 이 대표단이 "김일성종합대학, 주체사상탑, 인민대학습당, 평양지하철도, 평양방직공장, 평양326전선공장 등을 참관했다"며 이같이 밝혔다.[1]

우선 북한측 보도는 이것이 미국이 북한에 투자하는 데 관심이 있는 것처럼 묘사를 하려고 시도합니다.

하지만 미국 측(BENS) 입장은 다릅니다.

클리프 에인스워스 BENS 대변인은 `미국의소리'(VOA) 방송과 전화통화에서 "대표단은 북한 당국자들의 견해를 파악하고 북한 및 인근 지역의 안보 문제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는 교육적 목적을 갖고 방북했다"며 "이번 방북은 지난 몇년간 BENS와 연락을 취해온 북한 당국의 초청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2]


무엇을 교육하는가?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미국 기업가 대표단은 22일 방북 기간에 북측에 외국자본의 투자를 원한다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 보이드 회장은 북한 관리들이 이 같은 기업가 대표단의 메시지에 거부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북한에 대한) 경제적 개입 가능성을 핵문제와 관련한 (대북제재) 결의와 직접 관련을 맺는데 대해 그들은 전혀 만족해하지 않았다"고 전했다.[3]

또 다른 보도를 볼까요?

보이드 회장은 “북한 당국자들은 BENS 대표단을 잠재적인 투자자로 생각하는 것 같았으나 우리는 투자를 위해 북한을 방문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구체적인 투자 기회보다는 북한의 투자 환경에 대해 전반적인 얘기를 나눴다는 것입니다. …

BENS 방북단은 이에 대해 해외자본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우선 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보이드 회장은 밝혔습니다. 그러자 북한 당국자들은 투자와 핵 문제 해결을 연계하는 것에 실망하는 듯 했다는 것입니다.[4]


"북한 관리들은 우리 일행이 투자문제에 대해 전혀 논의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아연실색했다(dumbfounded)"고 말했다. 보이드 회장은 '북한경제워치'라는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관리들은 우리가 북한에 몇 달러도 투자할 생각이 없으며, 북한 핵 문제를 논의하러 왔다는 것을 알고는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으며 불쾌해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처음부터 어떤 종류의 대북 투자에도 관심이 없고, 국제 제재 탓에 할 수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지만, 북한 관리들은 우리가 기업인들과 함께 갔기 때문에 북한 투자에 관심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5]



이는 보스워스 방북 이전인 11월 21일 평양을 방문했던 미 외교협회(CFR) 대표단에게 벌어졌던 일과 판박이입니다.

북한이 ‘2012년 강성대국’ 목표를 위해 새로운 외국인 투자 확대 방안을 마련했다고 잭 프리처드 한미경제 연구소 (KEI) 소장이 8일 밝혔습니다. … 그러나 프리처드 소장은 북한 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외부 기업들이 대북 투자에 나설 것 같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가 계속되고 있는데다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북 투자에 나설 기업이 없을 것이란 얘기입니다. [6]

스나이더 소장에 따르면 북한은 잭 프리처드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을 비롯한 미국 측 대표단에게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새로운 방안들을 공개했다. 스나이더 소장은 새롭게 창설된 외국투자위원회의 소장이 이 같은 계획을 공개했다면서 이들 방안에는 외국 투자기업이 북한에서 거둔 이익의 본국 송금 문제에서부터 각종 세제 혜택까지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한 방안이 포함돼 있었다고 전했다. 스나이더 소장은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 1874호가 북한에서의 새로운 투자를 금지하는 조항을 두고 있다는 우리들의 언급에 북한 무역성 관리들이 정말 놀라고 실망을 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7]

이런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북한은 핵도 갖고 해외투자도 받는, '둘 다 가지겠다' 노선을 끈질기게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미국은 그건 안 된다. 핵을 갖고 그냥 그렇게 살든지,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에 합류해 경제적 혜택을 누리든지 택일하라는 이야기를 북한이 알아들을 때까지 귀에 못이 박히게 이야기해주려는 것이구요.


참고자료

[1] 김두환. “北통신 "美기업가대표단과 투자환경 조성 논의".” 연합뉴스, 2009년 12월 17일
[2] 같은 글.
[3] 황재훈. “방북 美기업가대표단 "핵포기 선결 강조".” 연합뉴스, 2009년 12월 23일
[4] 조은정. “BENS ‘북한 해외자본 유치는 핵 폐기 후 가능’.” VOA, 2009년 12월 22일
[5] 이하원. “北, 미국에 투자 적극 요청… 못하겠다 했더니 충격받더라.” 조선일보, 2009년 12월 26일; 인용의 원 출처는 Rank, Michael. “US academics and businessmen visiting DPRK.” North Korean Economy Watch. Web. 25 Dec 2009.
[6] 최원기. “프리처드 KEI 소장 ‘북한, 외국 투자유치에 안간힘’.” VOA, 2009년 12월 8일
[7] Snyder, Scott. “Dispatch from Pyongyang: An Offer You Can't Refuse!.” GlobalSecurity.org 2009년 12월 7일; 한국 언론에 의한 이 글의 소개는 “北, 임금 30유로로 외국투자 유치중.” 연합뉴스, 2009년 12월 8일
by sonnet | 2009/12/26 07:52 | 정치 | 트랙백 | 핑백(1) | 덧글(41)
미국의 한 북핵 관여(engagement) 정책 지지자의 견해
프리처드는 클린턴-부시1기 행정부 기간 동안 북핵협상을 담당했던 전직 국무부 관리다. 관여정책에 대한 지지는 요즘 미국에서 그리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내놓는 정세분석은 어떤지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북한, 관대한 무시와 적극적 개입 중 어느 쪽을 택해야 하나?
* 필자: 잭 프리처드(KEI 소장)
* 출처: National Journal blog
* 일자: 2009년 5월 11일

북한은 지난 여름 북한의 지도자 김정일의 병과 관련해 현재 상당한 내부적 문제를 겪고 있다. 그 결과 북한 정권은 부시 행정부에서 오바마 행정부로의 전환에 따른 이익을 누릴 기민성이나 통찰력을 갖지 못했다. 이는 전략적 실책이다. 그러는 대신 북한의 최근 행동은 상당히 민족주의적이고, 지도자의 건강과 정권의 장기적 생존에 관한 불확실성에 직면해 국내 세력들에게 힘과 자부심을 과시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었다. 이런 북한의 도발적인 행태에 직면해서, 아직 아시아 담당 진용이 채 다 짜이지 않은 오바마 행정부는 비범한 침착성과 자제력을 갖고 대응하였다.

새 행정부가 직면한 도전은 사려 깊은 협의(변형된 관대한 무시)와 북한 핵 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그런 게 있다고 가정하고)의 다자적 본질을 해치지 않는 적극적인 개입 간의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이다. 만약 북한이 핵확산 능력을 시연(시리아에 대한 북한의 핵기술 지원)해 보이지 않았더라면, 미국은 상황이 저절로 “무르익을” 때까지 내버려두어도 되었을 것이다. 또 한 차례의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은 북한을 중국으로부터 더욱 고립시킬 뿐이며 그렇게 심각한 불안정요인이 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자업자득으로 고생하게 너무 오래 내버려두는 것은 가장 중요한 우리의 우려사항들과 우리 동맹국 남한과 일본에 대한 부수적 피해를 해결하는 방향에 가까워지게 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미국이 북한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진행되어온 지난 십수 년 간의 불행했던 구도를 변화시키기 위해 마침내 행동에 나설 때까지 북한의 모든 도발에 매번 대응하지는 않는 절제된 정책을 계속해 나갈 것을 권고하고 싶다. 6자회담이 열리지 않는 이 휴지기(영원히 재개되지 않는 것으로 판명될 가능성도 다분하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우리 파트너들과 긴밀한 협의를 계속하여, 비확산, 미사일, 고농축 우라늄, 그리고 북한의 플루토늄 기반 핵 프로그램에 대한 검증 가능한 폐기를 포함한 보다 광범위한 의제들을 위한 실용적인 선택지들을 구축해야만 한다. 보스워스 대사는 적합한 방법을 통해 다자 틀을 재구축하려는 의도를 깔고 양자 접촉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너무 서둘러서도 안 되며 이는 또한 강자의 입지를 고수하며 이루어져야만 한다.

미국은 또한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돕게 될 이니셔티브들을 뒤에서 지지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이 그들의 핵무기를 남기고 사라지게 될 때, 긴장이 조성될 것이다. 우리는 성공의 기회를 늘려줄 조건들을 창출해야만 한다. 그런 구상 중 하나로 행정부가 평양 교향악단의 미국 답방을 지원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북한은 아주 성공적이었던 뉴욕 필하모니의 작년 평양 공연 후 이 사업이 실현되지 않자 화를 냈었다. 이 조율 작업은 일종의 신뢰 구축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며, 단순히 준비와 방문 기간 동안 북한의 미사일과 핵 실험 가능성을 줄여 주기라도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어떻게든 시간을 버는 것이 오바마 행정부로 하여금 문제를 어떤 식으로 풀어나갈 것인지에 대해 핵심 행위자들 간에 인센티브와 디스인센티브의 공감대를 구축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며, 아마도 평양의 뒤꽁무니를 쫓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정리: 오바마 행정부는 단기적으로 변형된 ‘관대한 무시’ 정책을 추구하면서 적극적 관여 정책을 간접적인 방법으로 곁들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이는 다단 로켓 발사 후 제2차 핵실험이 아직 강행되기 전(그러나 예상은 되던) 시점의 논평이다.

그리고 다음은 동일 인물의 핵실험 후 좀 지난 8월 초의 논평 일부이다.

대화에 나선다면, 북한의 입장은 어떠할까.

"북한은 2006년 핵실험 후 한 달도 채 안 돼, 유엔 안보리 제재가 흐지부지된 것을 재현하려고 할 것이다. 핵을 포기하기보다는, 시간을 벌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미국이 북한의 유화 제스처에 또 속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큰데.

"이미 두 차례나 그런 선례(先例)가 있어, 오바마 행정부는 매우 신중하다. 나는 이번에는 다르다는 것을 확신한다. 북한이 회담에 복귀하는 것만으로 제재가 중단되는 것 아니다. 약속한 비핵화를 분명히 이행해야 제재가 중단된다."

미북 협상이 재개되면 출발점은.

"단순히 영변 핵시설의 활동 중단으로는 안 된다고 오바마 행정부는 생각한다. 검증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 또 새로운 증거가 나오는, 고농축우라늄(HEU) 문제도 함께 다뤄져야 한다."


프리처드의 관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북한의 올해 도발(장거리 로켓/핵 실험)은 국내정치적 동기에서 기획된 것이다.
2) 방치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므로 다시 관여정책을 준비해야 한다.
3) 그러나 관여는 서두르지 말고 강자의 입장에 서서 이루어져야 한다.
4) 이번 대북제재는 간단히 해제되지 않을 것이다.(그리고 그게 맞는 방향이다)

즉 미국에서 북한과의 협상을 지지하는 협상파라고 해도 3, 4항의 관점은 동의한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앞서도 충분히 이야기했지만 현 시점에서 이 입장은 미국의 대북정책 서클 안에서 거의 컨센서스라고 불러도 무방하지 않나 싶다.

한편 협상파의 제일 중요한 논거는 '방치나 고립만으로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 말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들도 협상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즉 '협상의 가능성은 높지 않으나 혹시 남은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니 그래도 한 번 더 확인해보자'라는 입장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관심있으신 분은 북핵협상에 관여한 경험을 가진 또 다른 전 국무부 관리 조엘 위트(그도 관여파라고 할 수 있음)의 논평과 비교해 가며 읽어보시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by sonnet | 2009/12/02 13:40 | 정치 | 트랙백 | 덧글(27)
『실패한 외교』에 그려지는 부시1기의 대북정책

sonnet님의 '2차 북핵위기를 돌아보며'에 대한 단상 (udis)에 트랙백

일단의 열기를 식힐 만큼은 시간이 지난 것 같으니 이제 이 견해를 한 번 검토해 보지요.

들어가기 전에 하나 지적해두고 싶은 것은 제 글을 "sonnet님은 불카누스라는 그룹이 주로 북한에 대한 전쟁을 주장했고, 부시는 상대적으로 북한에 대해 온건한 입장이었던 것처럼 묘사하고 있지만"이라고 받아들인 것은 심각한 오독이라는 점입니다. 이 점은 shaind씨께서 잘 정리해 주셨기 때문에 별도로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위 글에서 거론되는 우드워드의 부시 인터뷰는 한 가지 사실을 보여줍니다. 부시가 개인적으로 북한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는 겁니다. 이는 부시의 생각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자료이긴 합니다만, 그 자체는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왜냐면 북한 정권에는 그런 비판을 받아 마땅할 만한 이유가 산처럼 쌓여 있기 때문이지요. 샤란스키 등에 공감하는 이상론적 성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북한에게 그정도 불쾌감을 표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은 몇 차례에 걸쳐 북한과의 전쟁을 단단히 결심한 바 있다"(udis) 같은 주장처럼 부시가 북한을 공격하려 했다는 것을 뒷받침하지는 않습니다. sprinter씨가 잘 지적했듯이, 미국의 국가지도자가 1)개인적으로 북한을 싫어한다는 것과 그 국가지도자가 그런 동기 때문에 2)북한과의 전쟁을 정책으로 추진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후자를 설득력있게 보여주려면 북한과의 전쟁을 선택하고 추진했음을 보여주는 다른 근거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 추진과정에 대해 엄청난 양의 자료를 갖고 있고, 1994년 클린턴 행정부가 협상과 병행해 준비했던 영변폭격안에 대해서도 믿을 만한 근거를 갖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전쟁 추진 과정에 대해서는 그런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런데 udis씨는 프리처드의 책 『실패한 외교』가 그에 대한 분명한 근거를 제공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책을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용도로 쓸 수는 없습니다. 프리처드의 책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그 책은 그런 이야기 대신 전혀 다른 이야길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우라늄 농축의 길로 들어서서 기본합의의 정신을 어긴 것은 북한이었다. 그러한 결정에 대한 책임은 북한이 져야 한다. 평양이 얼마나 부시 행정부를 싫어하고 불신했는지와 관계없이, 기본합의문의 파기 결정을 부시 대통령 책임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 다른 한편 부시 행정부가 하는 일 없이 평양으로 하여금 향후 핵무기 프로그램의 진전 선언을 하도록 내버려두고, 예고된 조치들을 하나하나 행동으로 이어갈 때도 지켜만 보고 있었던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가 했던 것에 비해 확실하게 온건했다. 1993년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이 사용후 연료를 재처리해서 플루토늄을 추출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전쟁을 준비했었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사용후 연료를 재처리하고 플루토늄을 두 번 추출해 추가적으로 8기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을 얻을 때에도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1]

여기서 "확실하게 온건"은 significantly softer를 옮긴 것인데, 이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당근을 주었다는 의미에서 온건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클린턴 행정부와는 반대로] 채찍을 휘둘러야 할 순간에도 채찍을 휘두르지 않고 물렁하게 대했다는 의미라고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부시 행정부 1기의 대북정책은 실로 당근도 없고 채찍도 없는 상당히 이상한 정책이었던 것이지요.

이 책을 번역했던 역자들도 같은 방향으로 프리처드의 말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부시 행정부의 양자대화 거부는 무시정책을 배경으로 한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의 재처리에 나서도 미국은 대응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저자가 클린턴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를 비교할 때, 그 차이는 온건과 강경이 아니라 바로 ‘관심의 차이’였다는 지적은 주목할 만하다. 북한이 재처리에 돌입하자 클린턴 행정부는 군사적 공격 가능성까지 모든 선택지를 고려했고, 결국 1994년 제네바 협상을 선택했다. 부시 행정부는 관심이 없었고 무시했으며, 북한의 핵 보유 과정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무시정책은 결국 무능으로 드러났다.[2]


그리고 이것은 제가 앞선 글에서 지적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부시 행정부 1기 대북정책에서 나타난 주요한 문제는 강경한 위협과 대결을 택한 데 있지 않았다. 진정한 문제는 미국이 북한을 진지하게 상대 -그것이 전쟁이던 협상이던 간에-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의 태도는 엉거주춤한 것이 문제였지, 단호해서 문제가 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sonnet)


여기서 "매우 중요한 시기에 부시를 보좌한 인물"(udis)이라고 묘사되는 저자 찰스 프리처드에 대해 잠깐 짚고 넘어가기로 하지요.

프리처드는 클린턴 행정부 당시에 백악관 NSC에서 아시아국 선임국장으로 일하다가, 부시 행정부 들어서는 곧 국무부로 옮겨가(2001년 4월) 대북협상특사를 맡아 약 2년간 더 일한 후 제1차 6자회담이 열린 2003년 8월에 사직합니다. 즉 그는 클린턴 말기~부시 1기 사이의 대북협상에 대해 폭넓게 논평할 수 있는 경험을 갖고 있는 주요 실무자입니다. 반면 그는 부시의 의도나 의사결정과정을 관찰하고 논평하기에는 백악관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 프리처드가 묘사하는 부시 행정부 1기의 대북정책은 어떤 것일까요?
대북정책과 관련해 「부시팀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사람은 누구인가」란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의 3장을 보도록 하지요. 여기서 그는 한국에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한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부시 대통령이 2001년 1월 20일에 취임했을 때, 이 [정권인수]팀에 참석했던 주요 인사들이 대부분 행정부에 들어왔다. 그중 한 명이 로버트 조지프(Robert Joseph)로, 그는 반확산 선임국장이 되었다. 국가안보보좌관인 라이스와 부보좌관이었던 해들리와 친했고, 정권 인수기와 행정부 초기에 그가 추진한 업무 때문에 그는 NSC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였다. 조지프는 아시아 업무에 별로 경험이 없었지만, 북한을 자신의 전문 영역으로 삼았다.
과거 행정부에서 NSC의 반확산(이전에는 비확산) 부서와 아시아 부서는 부서 간에 공감할 수 있는 대북 정책이 실행되도록 보장했다. 지역 부서로 NSC 아시아국은 기능적 부처인 반확산 담당 부서에 비해 정책 발전을 주도해 왔다. 동맹국들과 지역 내 나라들과의 더 폭넓은 관계를 고려해서 NSC 아시아국이 인도주의적 관심사, 위조지폐, 안보 등의 현안을 주도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1기에서는 조지프의 영향력 때문에 그렇게 될 수 없었다. 조지프의 영향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지프가 반확산 담당 선임국장이었던 부시 1기 내내 NSC 아시아국 선임국장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해졌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조지프는 북한에 대한 경험이 없었지만, 자신이 명명한 대북 정책 조정회의의 공동의장이 될 수 있었다. 사실상 이는 그가 대북 정책의 방향키를 움켜쥐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 국가안보 대통령 명령 1호에 따르면, 동아시아 정책조정회의는 의장을 국무장관이 결정하고, 차석급 회의와 각료급 회의에서 검토하는 북한 관련 의제에 대해 ‘정책 분석’을 하는 것이 임무였다. 그러나 실제는 전혀 달랐다. 국무부가 아니라 조지프가 이끄는 NSC 반확산 부서가 정책 문서의 작성을 담당했고, NSC 아시아국이 그중 극단적인 견해나 그것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합리적 조정을 시도했다.

NSC의 봅 조지프, 국방부 정책 담당 부장관[sic, 차관] 더글라스 페이스, 국무부 군비통제 및 국제안보 담당 차관보[sic, 차관] 존 볼턴, 부통령실의 에릭 애들먼, 국제안보정책 담당 차관보 크라우치를 포함한 비공식 네트워크가 공식적으로 또는 막후에서 부시 행정부 1기의 대북 정책을 만들었다. 볼턴을 제외하고 이들은 국가적 견해나, 그들의 상관인 부통령·대통령(국가안보 보좌관과 부보좌관을 통해)·국방장관의 심정을 대변했다. … 내가 참석했던 몇몇 혼란스러운 회의에는 조지프, 애들먼, 볼턴과 페이스의 부하 직원들이 참석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상관의 견해를 대변했지만 합의할 수 있는 권한(아마도 능력)은 갖고 있지 않았다. 이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하기 위해 활용했던 돌아버릴 논리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도덕적 순수성’(Moral Clarity)인데, 이 말은 조지프의 부하 직원인 존 루드가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것이었다. 특정 논리 -혹은 예상되는 결과- 에 직면했을 때에 루드는 왜 그것이 정책이 되어야 하는지, 바로 ‘도덕적 순수성’을 근거로 내밀었다. 나도 도덕성이나 순수성에 대해 박수를 치지만, ‘도덕적 순수성’은 특정한 요소가 왜, 그리고 어떻게 특정한 정책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부적절한 개념이었다. 정책의 변경을 위해 고위급 논의인 차석급 혹은 각료급 회의를 활용하기보다 이 부하 직원들은 ‘도덕적 순수성’을 일상적인 발언 자료나 연설에서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는 이유로 자주 사용했다. 이것은 하위 직원들이 미국 정부의 정책으로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도 하다.[3]


이 견해를 또 다른 자료와 맞춰 보기로 하지요.

부시 정권의 대북 정책 혼란은 파월·아미티지와 체니·럼즈펠드의 대립 때문에 일어난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매일 매일의 정책 결정 과정은 “국무부 대 국방부의 대립이라기보다 지역 전문가와 비확산 전문가 간의 싸움이었다”고 정부 고위 관리는 지적했다.
지역 담당 그룹과 비확산 그룹은 켈리 방북 여부, 방북 전략, 기본합의의 평가, 대북 중유 공급 지속 문제, 나아가 2003년 봄이후 3자회담과 6자회담의 전 과정에서 모든 쟁점을 놓고 대립했다. 양쪽의 투쟁은 백악관의 NSC에서 가장 격렬한 긴장과 대립을 일으켰다.
비확산 그룹의 대표 격은 로버트 조셉과 존 볼턴이었다. … 조셉은 또 북·미 기본합의와 6자회담은 본질적으로 핵 문제를 다루는 것이므로 자신이 그 문제를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동아시아 담당의 토컬 패터슨, 제임스 모리아티, 마이클 그린 등은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전략적 입지 강화와 북한의 핵 포기 두 가지를 동시에 목표로 삼고 있는 대통령의 대북 정책 재검토를 방패로 저항했다. …
“네오콘은 담당 업무가 아닌 일도 저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들의 의견이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언론에 흘리거나 막후에서 공작을 했다. 그 덕분에 일이 헛돌고 18개월이나 허비했다. 18개월이나”라고 국무부 고위 관리는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2003년 여름 무렵의 일이었다. 18개월은 부시 정권 출범에서부터 켈리 방북까지의 약 1년 반을 가리키는 것이다.
미국의 6자회담 대표단 구성은 관여파와 비관여파(또는 지역 그룹과 비확산 그룹)가 같은 택시에 합승한 것과 같았다. 비관여파는 볼턴 사무실, 백악관 NSC 비확산 부서, 체니 사무실, 국방부 등에서 나온 중견 간부들이었다.
“과거 소련이 서방에 보낸 무역 대표단 같았다. 대표를 감시하는 사람이 있고, 그를 감시하는 사람이 또 있고…”라고 아미티지가 쓴웃음을 지어 가며 말한 적이 있다.[4]

후나바시가 취재한 관련 인사들의 견해도 프리처드가 말한 것과 잘 맞아들어갑니다.

그런데 여기엔 주목할 만한 특징이 있습니다. NSC에는 정책 결정을 위한 수석 회의(장관급)와 차석 회의(부장관급)가 있고, 그 밑에 각 부처의 실무진들이 모여 갖는 정책조정회의가 있습니다. 그런데 프리처드나 후나바시가 묘사하는 바에 따르면 대북정책을 둘러싼 노선 투쟁과 상호 견제는 주로 이 실무진 회의를 축으로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그건 그만큼 고위층들은 [뭔가의 이유로] 북한 문제에 충분한 관심을 쏟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최고위층에 의한 지속적인 관심과 정치적 결정이 충분히 주어졌더라면, 실무진들 사이에서 그렇게 18개월씩 교착상태가 장기간 지속될 수는 없는 법이지요.

대북정책에 대한 파월 국무장관의 역할을 묘사하면서 프리처드도 이런 관점을 따릅니다.

나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대북 정책의 발전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특히 강경파들이 그토록 심하게 그의 구상을 음해하기 위해 뛰어다닐 때 그가 왜 그들을 제어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곤 했다. 나는 파월이 우리의 주요 동맹국인 한국의 지지를 지속시키고 유도할 미국의 정책을 만들어 내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했다고 믿는다. 파월이 하지 않은 것. 그것은 바로 대북 정책의 조정자 역할이었다. 국무장관으로서 그의 책임감은 대단했다. 나는 파월을 막대기 위에서 돌고 있는 여러 접시의 평행을 유지하려는 ‘접시 돌리는 사람’으로 비유한다. 접시 하나의 속도가 떨어지고 비틀거리면 달려가 균형을 잡고, 다시 그 다음 흔들거리는 접시로 달려갔다. 대북 정책은 파월의 많은 접시 중 하나일 뿐이었다. 파월이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관심을 돌리면, 강경파들은 부시 행정부의 고위층에게 그가 북한이라는 접시를 잘못된 방향으로 돌리고 있음을 납득시키려고 노력했다.[5]


결론적으로 말해 부시 대통령이 군사력으로 북한 정권을 작살내겠다는 결의가 분명했으면 이런 결과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그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북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자연스럽게 NSC 수석회의(장관급)이 정책논쟁을 주도해 나갔을 것입니다.

이는 앞선 글에서 제가 소개했던 "불카누스들은 북한문제만 만나면 미봉책으로 대처"했다는 설명과 잘 부합합니다. 이 그룹(체니 부통령, 럼스펠드 국방장관, 월포위츠 국방 부장관, 파월 국무장관, 아미티지 국무 부장관,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은 부통령, 장관 세 명와 부장관 두 명으로 이루어진 부시의 안보 내각 그 자체입니다. 대통령의 정책추진이 이들과 따로 놀 수 있겠습니까?



[1] Pritchard, Charles L., Failed Diplomacy: The Tragic Story of How North Korea Got the Bomb, Brookings Institution Press, 2007
(김연철, 서보혁 역, 『실패한 외교: 부시, 네오콘 그리고 북핵위기』, 사계절, 2008, p.84)
[2] 같은 책, p.13 (역자 서문)
[3] 같은 책, pp.89-92
[4] 船橋洋一, 『ザ·ペニンシュラ·クエスチョン 朝鮮半島第二次核危機』, 朝日新聞社, 2006
(오영환 외 역, 『김정일 최후의 도박』, 서울:중앙일보시사미디어, 2007, pp.222-225)
[5] Pritchard, 같은 책, pp.28-29
by sonnet | 2009/07/11 07:03 | 정치 | 트랙백(2) | 핑백(1) | 덧글(47)
통역 최선희
1. 다음은 중국이 주최한 중국-미국-북한 3자회담 만찬 석상(2003년 4월 24일)에서 벌어진 북한의 핵보유 통고 사건에 대한 묘사이다. 이 글을 잘 보면 재미있는 인물이 눈에 띈다.

(미국이 주의깊게 회피해서) 만찬장에서 북·미 양자 협의를 주선하려고 했던 중국의 트릭은 불발로 끝났다. 식사가 끝났을 때 옆 테이블에서 어께 너머로 이근을 바라보고 있던 통역 최선희가 이근에게 매서운 시선을 보냈다. 이근은 할 말이 있다고 하면서 켈리를 붙잡았다. 주최 측과 손님이 거의 만찬장 밖으로 나간 것을 지켜본 뒤에 이근은 켈리에게 영어로 말했다.
“북한은 핵무기를 갖고 있다. 이를 물리적으로 보여 주는 것, 국외로 이전하는 것도 가능하다.” 켈리는 미측의 통역 통 킴(한국명 김동현)을 시켜 이근에게 방금 말한 것을 다시 한번 한국어로 반복할 것을 요구했다. 이근은 이번에는 한국어로 했다. 그것을 최선희가 통역했다. “미국은 알고 있는가. 우리는 핵 능력을 갖고 있다. 그것을 물리적으로 보여 주는 것도, 국외로 이전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게 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어디까지나 미국의 행동에 달렸다.” “우리는 1994년에 이미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미국에 명확히 했다. 미국은 거기에 보다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북한이 미국에 ‘핵 보유’를 선언한 것이다. (p.469)

일전에도 지적한 바 있지만, 북한 협상단은 전형적인 소련식으로 "대표를 감시하는 사람이 있고, 그를 감시하는 사람이 또 있고" 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리고 이 최선희라는 통역은 통역은 간판이고 본업은 (중앙의 신뢰가 두터운) 감시역인 것이 거의 확실하다.



2. 또 다른 사례를 보자. 2002년 10월 4일, 평양을 방문했던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북한 외무성의 강석주 제1부상으로부터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HEU) 계획을 갖고 있다는 "그럼 어쩔래?" 풍의 시인을 듣고 돌아오게 된다. 제2차 북핵위기가 발발하는 순간이었다.

강석주는 고농축 우라늄(HEU)에 대해 언급했다.
“우리가 HEU 계획을 갖고 있는 게 뭐가 나쁘다는 건가. 우리는 HEU 계획을 추진할 권리가 있고, 그보다 더 강력한 무기도 만들게 돼 있다.”
켈리는 눈앞의 메모지에 무엇인가를 서둘러 적고는 그것을 옆 자리에 있던 찰스 잭 프리처드 대북 협상 담당 특사에게 건했다.
“들었지? 방금 이야기, 틀림없이 말했지?”
강석주는 자기 쪽에서 먼저 HEU에 대해 언급했다. 이 대목에서 켈리가 끼어들었다.
“방금 말한 것에 대해 우리가 오해하면 안 된다. 지금 발언을 한 번 더 되풀이해 달라.”
강석주는 계속했다.
“부시 정권이 이처럼 우리들에 대해 적대시 정책을 취하는 이상 우리가 HEU 계획을 추진한다 해서 무엇이 나쁜가. 그것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 대한 억지력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p.149)


당시 미국 측 참석자들은 이 발언이 너무도 중요했기 때문에 당시 한국어를 할 줄 아는 관계자 전원의 합의 하에 본국에 보고했다고 전한다.

켈리 일행은 (영국)대사관에 방 한 칸을 얻었다. 거기서 통역을 포함해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세 사람이 작성한 메모를 서로 대조하고, 그것을 북한 측 통역의 영어 번역을 기록한 메모와 맞춰 보면서 전보를 작성했다. 그리고 비밀 장치가 걸린 통신 회선을 통해 워싱턴으로 보냈다. (p.153)

8명의 대표단 중 5명은 한국말을 못 했고, … 우리는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그 중 하나는 미국 대통령의 통역이었다)들을 별도로 모아 북한 통역이 영어로 말한 것 말고 강석주 제1부상이 한국말로 말한 것을 그들이 기억나는 대로 정리하게 했다. 세 사람은 합의에 이를 수 있었고, 강석주의 말을 정확하게 반영한 문서를 만들었다. ([Pritchard] p.78)


그런데 이 때 북한 측 통역 또한 최선희였다.

강석주의 발언은 북한 측 통역인 최선희가 영어로 옮겼다. 켈리의 발언은 미국 측 통역인 통 킴이 한국어로 번역했다. (p.163)

이 고농축 우라늄 보유 시인 발언은 그 이후 북한이 말을 얼버무리며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물러섰기 때문에 (북한에 호의적인) 일각에서는 미국측 통역의 실수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단순한 통역의 실수였다면 이 때 대미관계를 파탄에 빠트린 단순 통역이 목이 붙어서 그 다음 해의 3자회담에 버젓히 통역으로 다시 나타날 수 있을 리가 없다. 이 발언은 잘 조율된 발언이라고 보아야 한다.



3. 최선희는 제1차 북핵위기(1994년) 당시에도 대미협상에 참가했기 때문에 북한의 대미협상팀의 베테랑이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는 다른 기묘한 이야기들도 전해진다.

최선희는 북·미 교섭에 관여해 온 미국 측 담당자들 사이에서는 명물로 알려졌다. 프리처드는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의 교섭 상대가 김계관이었을 때 최선희가 미국 측 통역의 번역에 대해 “틀렸다, 틀렸다”며 고개를 저었다. 행동 자체도 이상했지만 그녀는 “이런 곳에서 바보처럼 일할 수 없다”는 듯이 도중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하지만 김계관은 아무 말도 않고 그녀가 하는 대로 내버려 뒀다. 남은 시간 북한 측은 미국 측 통역에 의지하게 됐다.
그녀는 그 후의 6자회담에서는 북한 대표단 ‘외무성 연구원’이란 직함으로 출석했다. 통역이지만 다른 나라의 통역과는 일절 대화하지 않았다. 자신을 통역이라고 간주하지 않는 듯했다. (p.163)

이 정도면 이 여자가 감시역이고 중앙의 신뢰도 두터울 거라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싶다.



출처:
船橋洋一, 『ザ·ペニンシュラ·クエスチョン 朝鮮半島第二次核危機』, 朝日新聞社, 2006
(오영환 외 역, 『김정일 최후의 도박』, 서울:중앙일보시사미디어, 2007)

Pritchard, Charles L., Failed Diplomacy: The Tragic Story of How North Korea Got the Bomb, Brookings Institution Press, 2007
(김연철, 서보혁 역, 『실패한 외교: 부시, 네오콘 그리고 북핵위기』, 사계절, 2008)
by sonnet | 2009/04/25 22:47 | 정치 | 트랙백 | 핑백(1) | 덧글(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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