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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진정성신앙
2014/04/08   진정성 신앙과 바른 행실 공동체 [17]
진정성 신앙과 바른 행실 공동체
이하는 이 글을 적당히 발췌번역한 것이다. 최근에 내가 국내 인터넷에서 들은 몇 가지 논점에 대해 "아 그건 그런 게 아닌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드는 게 좀 있어서, 나름 의견 대신 옮겨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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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야마 노부오(金山宣夫)가 『국제감각과 일본인』에서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일본 사회에는 두 가지의 큰 특징이 있다. 첫째는 일본의 (의사)근대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정신적 요소(시민종교)로서의 진정성(マコト)주의. 그리고 두 번째는 사회적 규범·문화적 기반으로서의 바른 행실(シツケ) 공동체라는 사고방식이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은 이야기다.

* 개인 레벨의 일본인은 “진심(성의)을 다해 노력하면 잘 풀리게 되어 있다”는 거의 종교적이라고 해도 좋은 굳건한 믿음을 갖고 있으며, 또한 그런 믿음을 고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다른 한편으로 사회 레벨의 일본인은 각자가 갖고 있는 진정성을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에게 가시적인 ‘형태’로 드러내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보여주는 방법이 바른 행실로서 단단히 주입된다. 젓가락 드는 법에서부터 회사에서의 의리잔업(*)까지 바른 행실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다.

(*) 동료가 잔업을 하게 되면 나는 일이 없어도 같이 남아 잔업에 동참함으로서 나의 진정성을 어필해야 직장에서 의리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다는 것

그런데 일본인이 형식적인 것을 중시하는 데 대해서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훈육 받은 대로 바른 행실을 하면 진정성을 보인 것이 되기 때문에 형태만 있고 내용이 없는 행동이 벌어진다는 본말전도된 일이 종종 일어난다. 그러나 실용적인 관점에서 보면 쓸모가 없는 형식일지라도, 형식을 실천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진정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리고 모두가 형태를 보여줌으로서 진정성 신앙이 유지되고 있다. 일본인의 근면함, 지나칠 정도의 착실함이 모두 진정성 신앙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사회를 이 모습 그대로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형태 중시가 필요불가결하다고 말할 수 있다.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한 가장 숭고한 행위는 자기희생이다. 합리적으로 일을 진행해서 비용을 줄이는 것보다도, 비합리적인 수법을 동원해 희생을 치르는 쪽이, 자신의 진심을 더욱 강력히 어필할 수 있다. 실제로 도움이 되는 매뉴얼의 실천만 갖고서는 합리적으로 실제 도움이 되었기에 진정성을 어필하는 힘이 약한 것이다.

어찌되었든 진정성과 바른 행실이라는 것은 수레의 두 바퀴 같은 것이어서, 한 쪽이 없어져버리면 다른 한 쪽도 제대로 동작하지 못하게 된다. 만약 바른 행실이 붕괴되면 앞서 말한 방식으로 진정성 신앙을 유지할 수가 없게 되어버린다. 반대로, 만약 진정성 신앙이 붕괴되면, 예를 들어 “진정성을 갖고 노력해도 어차피 안 되는 건 안 된다”라고 모두들 생각해버리게 되면, 형식이나 바른 행실도 돌볼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요즘 일본을 보고 있으면 어느 쪽이 먼저 무너진건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양 쪽이 무너져가면서 서로의 붕괴를 가속시키는 멜트다운 상태에 빠져든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면 최근 시끄러운 양극화사회론은 진정성 신앙의 붕괴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일본인의 마음 속에서 완전히 붕괴된 것이 아니라, 진정성과 바른 행실이 잘 기능했던 좋았던 옛날에 대한 환상과 향수는 뿌리 깊게 남아있는 것 같다. “진정성을 갖고 노력한 사람이 보답받던 시대” “부모가 자식에게 제대로 행실을 가르쳤던 시대” 등에 대한 향수 말이다. 감정적으로는 이해 못할 이야기도 아니다.

그럼 앞으로 일본은 어떻게 될 것인가?
시계 바늘을 되돌려 진정성 신앙과 바른 행실 공동체를 부활시키자는 생각도 있을 수 있다. 그것이 가능한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제2차세계대전 후의 부흥기에 진정성 신앙과 바른 행실 공동체가 커다란 역할을 했었던 것은 틀림없지만, 버블 붕괴 후의 시대에도 그것이 통한다는 보장은 없다. 시대에 맞지 않으니까 붕괴된 거다라는 지적도 있다.

그럼 진정성과 바른 행실을 버리고 새로운 일본 문화에서 희망을 찾아내야 하는 것일까? 그 경우 지금까지 일본인의 장점이라고 일컬어져왔던 근면함, 지나칠 정도의 착실함도 동시에 없어진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형식에의 집착을 버리면서 그러면서도 근면함과 완고할 정도의 착실함은 살리고 싶다는 생각은 너무나도 안일한 것 같다. 그러면 양 쪽의 중용을 목표로 해야 하는 걸까? 그것도 위험을 안고 있는 도박이다. 양쪽의 장점을 잘 합칠 수 있으면 좋기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양쪽의 단점만 합쳐 놓은 예로 가득 차 있다. “띠로는 짧고 멜빵으로는 길다”란 말이 있는데, 옛 사람들이 좋은 속담을 남긴 것 같다. 조금씩 이 방향으로 나아가다가 결국 일이 꼬여버린다는 것이 가장 일본적인 패턴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자면, 최근의 나는 “일본인의 이런 정신성이나 일본문화는 지금 이대로 세계유산으로 남겨야 하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일본인이 진정성 사상과 바른행실 공동체를 버리고 ‘보통의 서양식 나라’가 되었을 경우, 그것으로 21세기를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평범하게 끝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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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덧붙이자면 이 글의 필자는 일본은 고도성장기가 오기 전부터 "노력하면 성공한다(성공해야 마땅하다)"는 믿음이 강했다고 주장한다. 그게 단순히 고도성장기의 좋았던 경험 때문에 생겨난 게 아니고 그 전부터 일본 사회는 그랬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한국도 그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정성 사상/바른 행실 공동체의 패턴은 사실 일본처럼 철저하진 않아도, 한국에도 어느 정도는 분명히 있다/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게 일제시대에 수입된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지킬 수 있느냐에 대한 마지막 질문은 한국의 경우 그게 철저했던 적이 없으니 더 쉽게 빠져나올 수 있지 않을까 정도?
by sonnet | 2014/04/08 01:00 | 문화 | 트랙백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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