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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지미카터
2010/01/03   정치인과 지역구 관리 [24]
2009/01/23   오바마 취임: 장기 추세 전환의 서곡인가 [46]
정치인과 지역구 관리

[북핵 관련] 브리핑 중 잠시 쉬는 동안에 비서가 펩시콜라를 한 쟁반 들고 들어왔다. 카터는 아틀란타에서 왔고 아틀란타는 코카콜라 본사가 있는 곳이었다. 전직 대통령과 모든 수행원들은 정중하게 사양했다. 그렇지 않아도 어색하던 분위기가 더욱 어색해졌다.

Witt, Joel S., et al. Going Critical: The First North Korean Nuclear Crisis, Brookings Institution, 2004
(김태현 역, 북핵위기의 전말: 벼랑 끝의 북미협상, 서울, 모음북스, 2005, p.254)

by sonnet | 2010/01/03 14:04 | 정치 | 트랙백 | 덧글(24)
오바마 취임: 장기 추세 전환의 서곡인가

1896년 이후, 현대 미국 정치는 약 40년을 주기로 공화당 주도기와 민주당 주도기를 왕복하는 패턴을 보여 왔다. 따라서 신임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을 보면서 내가 흥미를 갖고 있는 소재 하나는 이번 사건이 미국 정치의 장기 추세가 전환되는 계기인가 하는 것이다.

1. 미국 정치 장기 추세의 전이

일단 대략적인 모양을 살펴보자.

1897년 - 1932년(36년): 공화당 주도기
총 9임기 중 공화당 7회(맥킨리, 테오도어 루즈벨트, 태프트, 하딩, 쿨리지, 후버), 민주당 2회(윌슨)

1933년 - 1968년(36년): 민주당 주도기
총 9임기 중 공화당 2회(아이젠하워), 민주당 7회(프랭클린 루즈벨트, 트루먼, 케네디, 존슨)

1969년 - 2008년(40년): 공화당 주도기
총 10임기 중 공화당 7회(닉슨, 포드, 레이건, 大부시, 小부시), 민주당 3회(카터, 클린턴)

(미국의 역대 대통령과 임기는 Wikipedia에 도표로 잘 정리되어 있으니 필요하신 분은 이 곳을 참조)


물론 나는 섣부른 예언을 쏟아놓으려는 것이 아니거니와, 그냥 단순히 40년쯤 지났으니 추세가 뒤집힐 것이다라고만 말하면 부채도사와 아무 차이가 없는 짓일 터이다. 그러나 과거 추세 전환이 일어났을 때의 주요 변화를 짚어 보게 되면, 근래 일어났거나 진행중인 대형 사건들은 과거 추세 전환을 만들었던 주요 사건들에 비해 손색이 없는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에는 상당한 근거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 견고한 남부: 인민당 타도를 위한 적과의 동침 (1897~1932)

1873년의 농업공황을 계기로 1880년대 후반에서 1890년대에 걸쳐 미국에는 인민주의 운동이라고 불리는 급진 농민운동이 기세를 올렸다. 이들은 미시시피 강 서부의 농업지대가 주요 근거지였는데,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농작물 가격하락을 완화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금본위제를 반대하고 은화 자유주조를 정강으로 내걸었다. 단기간에 기세를 올린 이들은 콜로라도, 캔사스, 네브라스카, 오레곤, 네바다 등에서 주지사를 배출하고 주의회를 장악했으며, 연방의회에도 수십 명의 의원을 진출시켰다. 이들의 세력이 정점에 달한 것이 1896년으로, 이 해 민주당 대선후보인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인민당 정강을 따른 대선 공약을 내세우고 민주당-인민당의 공동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임했다.

인민주의자들이 서부와 남부에서 기세를 올리자 기성 정당인 공화-민주 양 당의 보수파들은 경악한 나머지 인민주의자들을 확실히 묻어버릴 대전략을 실행에 옮기기에 이른다. 그것은 남북전쟁으로 대표되는 해묵은 지역-인종 갈등에 다시 불을 질러, 농업세력과 산업세력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을 무력화한 것이었다. 즉 남북갈등을 일으켜 동서갈등을 덮어버린 것이다.

이 결과 민주당은 남부 주들에서 몰표를 받는 대신 북부를 위시한 기타 지역을 다 내어주고 견고한 남부를 지키는 지역정당으로 주저앉아 버린다. 민주당은 텃밭인 남부를 꽉 틀어 쥐고 인종 문제를 자기들 식으로 요리하는 권리를 확보한 대신 공화당에게 전국정치를 내어준 것이다. 이 결과 공화-민주 양 당에 존재하는 소수파들, 특히 (인민주의자들에 가까운) 서부 기반의 세력들이 일거에 몰락하게 되었다.


3. 대공황과 뉴딜 연합(1933 ~ 1968)

이런 상황은 앞서 언급했던것처럼 약 40년간 계속된다. 그러나 대공황을 정통으로 얻어맞고 신음하던 미국 사회는 대안을 찾다가 소외되어 있던 민주당에 권력을 쥐어주게 된다. 대공황 수습과 2차세계대전을 거치며 미국 정부의 역할이나 크기는 비약적으로 변화하고, 프랭클린 D. 루즈벨트가 무려 4선을 거듭하는 기엄을 토하면서 미국 사회에는 새로운 정치질서가 수립된다.

이러한 질서가 다시 40년 정도를 굴러가지만 1960년대 들어 중요한 변화가 두 가지 일어난다.

첫째는 민권운동의 대두이다. 시대가 흐르면서 트루먼, 케네디, 존슨 같은 중앙의 민주당 지도부들은 민권운동에 점차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1964년에 민주당 주도로 민권법이 통과되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견고한 남부와 민주당의 밀월 관계는 해체의 길을 걷게 된다.

둘째는 베트남전 이슈이다. 베트남전의 전황이 악화 일로를 걷게 되면서, 국민들은 민주당의 대외정책에 대해 신뢰를 잃고, 민주당 내에서는 그 책임 소재와 향후 대책을 놓고 보수파와 진보파 간에 분열이 가속화된다. 현직 대통령인 존슨이 출마를 포기하기에 이르러 민주당은 그간의 주도권을 공화당에게 넘겨주게 된다.


4. 신보수주의의 득세(1969 ~ 2008)

1972년 선거는 민주당이 지리멸렬한 상태이며 당내 분열을 가속화하는 진보적 후보로는 전국정치에서 승리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을 재확인시켜 주는 결과를 낳았다. 이 선거에서 공화당의 닉슨은 520-17이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승리를 거둔다. 이어 워터게이트 사건의 여파에 힘입어 참신한 이미지를 앞세운 카터가 잠깐 정권을 잡지만, 혼란스러운 국내 정책들과 함께 이란 혁명과 맞물린 무기력한 이미지, 주한미군 철수 논쟁에서의 패배, 아프간 침공 등은 역시 안보 문제에 있어서는 민주당을 믿을 수 없다는 견해를 다시 한번 강화하게 된다. 이러한 와중에서 점차 여피화되는 민주당의 경향에 불만을 느낀 민주당 강경 보수파 일부는 공화당 지지로 말을 갈아타기도 하는데, 레이건 행정부에 입각했던 진 커크패트릭이나 후에 유명해진 네오콘 인사 리처드 펄 등이 대표적이다.

LA Times 기자인 제임스 만은 이 시대 분위기를 잘 요약하고 있다.

사실 클린턴이 승리한 주요 요인 중 하나는 냉전이 끝남에 따라 미국 유권자들이 민주당에 다시 돌아가도 되겠다고 판단할 정도로 충분히 안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과거 민주당의 대외정책 성적표는 베트남전 이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줄곧 민주당 후보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 제임스 만, 『불칸집단의 패권형성사』 -


이 시기의 끝에 해당하는 小부시 행정부 8년은 다들 잘 아실 터인 고로 생략하겠다.


5. 그리고 앞으로(2009 ~)

이렇게 살펴보면 아프간, 이라크 양 전쟁에서 드러난 대외정책의 난조와 대형 경제위기로 인한 국민들의 인식 변화는 그 영향력 면에서 볼 때, 과거 주요 추세 변화를 일으켰던 사건들에 비해 손색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외적 조건은 충분하다.

이것이 실제의 추세 전환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변수가 될 것이다.

1) 오바마가 성공적으로 두 임기를 마치고 과거 루즈벨트가 했던 것처럼 새 시대의 추세를 굳힐 수 있을 것인가
2) 연이은 두 번의 선거 패배를 겪은 공화당 주류가 어떤 방향으로 전열을 정비하고 정치 노선을 잡아 나설 것인가.

어느 쪽이든 간에 오바마가 제2의 카터가 될 것인지 제2의 루즈벨트가 될 것인지는 그의 첫 임기를 지켜봄으로서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by sonnet | 2009/01/23 17:33 | 정치 | 트랙백 | 핑백(1) | 덧글(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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