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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제2세계
2007/11/09   좌파답지 못한 좌파 [53]
좌파답지 못한 좌파
남한 사회에서는 종종 어떤 정치인, 정당, 정권이 좌파냐 아니냐에 대해 논쟁이 벌어지곤 하는데, 거의 모든 경우에 그 잣대는 경제정책 혹은 대북정책의 강온을 기준으로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기준은 한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언제나 좌파답지 못한 집단을 좌파로 규정해버리는 문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번 생각해 보자.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 티토, 호치민, 카스트로 ...

대국과 소국을 막론하고, 전통적으로 제2세계에서 명함 좀 내밀어본 좌파지도자들 중 파워폴리틱스를 대성하고 국제정치판에 올라 힘과 대결의 정치를 화려하게 구사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스탈린을 상대로 삿대질을 했던 티토나, 미국을 상대로 결전하게 핵탄두를 불출해달라고 요구해 흐루쇼프를 뒤로 넘어가게 만들었던 카스트로는 물론이요, 크렘린 기준으로 소인배에 속한다는 브레즈네프 조차도 조직의 배신자 두브체크를 단호히 쓸어버림으로써 자신이 강골임을 증명해 보였다.

까놓고 말하자면 대인배스러움은 제2세계에서 존경받는 지도자의 기본소양 중 하나였던 것이다.

레닌이나, 마오, 호치민이 한반도 남반부에 자기 정권을 세웠다고 상상해보라. 그들이 햇볕정책이나 평화번영정책 같은 걸 내세웠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마오가 그런 사람이었으면 양자강 이남에는 지금도 국민당 왕국이 버티고 있었을 거다. 호치민이 남베트남을 어떻게 상대했던가? 레닌이 백군에게 햇볕을 쬐어 주었다고 생각하는가?

더 이상한 기준은 남한에서는 (일방적이고 과감한)군축평화 노선을 지지하는 것이 좌파의 당연한 입장인 것처럼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힘, 특히 강한 군사력의 보유와 활용은 제2세계 국가들의 변함없는 덕목으로 한번도 도전받은 적이 없는 기준이었다. 제2세계에서 누가 감히 그런 이단적인 군축노선을 지지했단 말인가?

좀 다른 사례도 있다.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 같은 인터넷 언론을 가끔 보면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같은 인물을 [제2세계 몰락 후] 대안적 사회주의의 선봉으로 띄워주는 걸 볼 수 있다. 그러나 차베스는 미친듯이 러시아제 무기를 사들이며 남미에서 가장 열심히 군비를 증강하고 있는 지도자이기도 하다. 남미처럼 중무장한 정부군이 많지 않고,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신통찮은 지역에 차베스가 하듯이 소총으로 무장한 막대한 민병대를 깔아버리는 정책은 통제불능의 대재앙으로 연결될 위험성이 크다. 오마이나 프레시안은 늘 군축평화노선을 지지해 왔는데,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눈이 없는 건지, 알고도 침묵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한번도 문제삼은 적이 없다.

비핵군축평화노선은 전형적으로 집권경험이 일천한 비정통 좌파, 특히 서유럽의 사민당이나 일본의 사회당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우리의 운동권 주류 좌파는 계보상으로 볼때 서유럽 사민주의보다는 제2세계 쪽에 훨씬 가깝다. 그런데도 국방안보분야 정책에 있어서만은 제2세계의 정통노선을 전혀 따르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기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내가 말한 강한 군사력과 힘을 적극적으로 구사하는 정책을 덕목으로 삼는 정통주의 좌파의 입장이라면 차베스의 정책을 지지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비핵군축평화노선을 지지하는 비주류 좌파이면서 차베스의 정책을 옹호하는 것은 상당한 자기모순을 피할 수 없다.


돌이켜 보면 제2세계는 경제정책의 실패로 몰락했지, 국방안보정책의 실패로 몰락한 것은 아니다. 제2세계 정통주의 좌파정권들에게서 뭔가 건져서 참고할만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경제정책이기 보다는 작은 이익을 위해서 큰 대결도 불사하는 무모한터프한 국방안보정책에서 찾아야 하는게 아닐까?

대북정책이 온건이면 좌파고 강경이면 우파라는 건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는 기준이다.
by sonnet | 2007/11/09 17:57 | 정치 | 트랙백(1) | 덧글(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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