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т Ильича до Ильича
by sonnet 2006 이글루스 TOP 100 2007 이글루스 TOP 100 2008 이글루스 TOP 100 2009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 100 2011 이글루스 TOP 100
rss

skin by 이글루스
태그 : 정치전략
2011/08/25   미테랑이 시라크 다루듯 [74]
미테랑이 시라크 다루듯
빌 클린턴의 정치 참모였던 딕 모리스가 쓴 『파워 게임의 법칙Power Plays』은 세계적인 지도자들이 구사한 대표적인 정치공학전략들을 알기 쉽게 풀어서 해설한 책이다. 이에 따르면 1994년, 야당인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하게 되자, 클린턴은 향후 정치전략에 대해 모리스의 조언을 구하게 된다. 이때 모리스의 처방은 '미테랑이 시라크 다루듯 하라'는 것이었다.

--
사회당 출신의 미테랑은 대통령이 되자마자 "다국적 기업의 횡포"로부터 프랑스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며 대대적인 기간산업 국유화를 단행했다. 그런데 이 국유화 계획을 밀어붙인 결과는 참패였다. 막대한 자금을 소모하기만 하고, 경제상황은 한층 나빠졌던 것이다. 그 결과 국민은 1986년 선거에서 사회당을 응징했다. 여소야대 정국이 출현한 것이다.

이 여소야대는 프랑스 정치에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게 된다.

프랑스는 제4공화국 시절 쉬지않고 벌어지는 정권교체에 따른 정치불안으로 단단히 고생을 했다. 그러다 결국 드골의 컴백과 함께 내각책임제를 버리고 강력한 직선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정치체제를 수립한다. 그런데 프랑스의 새로운 정치체제는 일반적인 대통령중심제와는 달리 직선제 대통령과 의회에 책임을 지는 총리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 제도 하에서는 이원집정부의 약점, 즉 야당이 하원을 지배하게 되면 대통령과 총리의 정치적 견해가 충돌해 교착상태가 벌어질 위험성이 있었다. 그러나 새 제도가 도입되고 한동안은 프랑스 대통령이 하원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한 번도 실험해 본 적이 없는 이론상의 문제에 가까웠다.

그러나 사회당의 선거 패배로 인해 이런 실험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된다.

당시 프랑스 우파는 전 대통령인 지스카르 데스텡이 이끌던 온건파와 파리 시장 자크 시라크가 이끄는 강경파로 나뉘어 있었다. 시라크는 자기가 총리가 되면 미테랑의 국유화 정책을 홀랑 뒤집는 대대적인 민영화 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었다. 따라서 많은 이들은 미테랑이 상대적으로 가까운 온건 우파 중에서 누군가를 총리를 지명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미테랑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정적 시라크를 총리로 지명한다.

시라크는 총리가 되자 평소 소신대로 작은 정부와 민영화를 외치며 미테랑이 국유화했던 기업들을 열심히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아직도 시라크의 행동을 방해할 몇 가지 수단이 남아 있었지만, 미테랑은 이를 사용하지 않은 채 시라크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정책을 펼치도록 방조했다.


그렇다면 미테랑은 무엇 때문에 자신의 국유화 조치를 시라크가 완전히 허물어뜨리도록 방치했을까? 그가 미치광이가 되었던 것일까? 실제로 그는 여우처럼 교활한 미치광이가 되었다. 미테랑은 시라크가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둠으로써 그의 핵심적인 이슈를 빼앗아가버렸다. 밥 돌은 클린턴 행정부에 의해 복지제도가 개혁되고 범죄가 줄어들어 예산적자가 축소되면서 아무것도 주장하거나 내세울 것이 없게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민영화를 이룬 뒤 시라크에겐 마땅히 내세울 것이 없었다. 자신이 벼르던 것을 모두 이뤄놓고 나니, 이제 잔여 임기 동안 무엇을 해야 좋을지 막연해진 셈이었다.
시라크를 총리로 임명해 정부를 꾸리게 하고 다시 그의 계획대로 민영화를 추진하게 했던 미테랑의 결정은 우파의 추진력이 소진되면서 소기의 성과를 충분히 거두게 되었다. 시라크로서는 미테랑과 사회당에 대한 유권자의 실망과 좌절을 활용해 권력욕을 한껏 충족시켰지만 정작 그런 성공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셈이었다. 밀고나갈 중심적 이슈가 사라지자 결국 시라크는 패배하고 말았다. 취임 후 몇 달간은 결단력 있고 과감한 조치로 큰 성공을 거뒀지만 그 이후는 일관성 있는 아젠다 없이 그때그때의 사태에 휘둘리며 연속적인 위기에 시달렸다.
[…]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자 미테랑은 느긋하게 선거운동을 펼쳤다. 시라크가 자신의 무덤을 파고 있어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 이런 전략은 성공을 거뒀다. 미테랑을 계속 지지해온 프랑스의 전통적인 좌파 외에도, 갈팡질팡하는 시라크에 실망한 온건세력과 일부 우파 유권자들도 미테랑 지지로 돌아섰다. 그에 따라 1986년 중간선거 대패 이후 불과 2년 만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미테랑은 대승을 거뒀다. 득표율 면에서 시라크를 무려 14퍼센트 포인트나 앞선 승리였다.

미테랑이 재선에 성공한 것은 자신의 역할을 새롭게 설정했기 때문이다. 그는 일상적인 국정 수행을 총리에 맡긴 뒤에도 권위 있는 위치로 올라설 수 있었다. 즉 복잡하고 요란한 정치문제를 라이벌에게 밀어놓은 채 자신은 사뭇 고상한 영역의 임무를 떠맡음으로써 권위를 유지하고 인기를 드높일 수 있었던 것이다. 기업체나 다른 조직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미테랑의 이런 처신에서 값진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절대적 권한 행사는 언제든지 절대적 자멸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또한 자신은 한 발 비켜선 채, 그르치기 쉬운 일에 다른 사람이 뛰어들게끔 내버려두는 것이 최상책일 때도 있다.(pp.75-76,79)


--
내가 보기에 근래 오세훈이 직면한 문제의 본질은 급식도 아니고 교육감과의 갈등도 아니며 포퓰리즘은 더더욱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지난번 지방 선거의 패배로 성립된 자신의 아젠다에 반대하는 시의회라는 제약 하에서 분점 정부를 어떻게 꾸려갈 것인가 하는 데 놓여 있었다. 오세훈은 중요할 수도, 아니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작은 문제를 키워 큰 판으로 만든 후 거기 자신의 정치생명을 거는 도박을 했고 실패했다. 아마 미테랑도 오세훈처럼 살았더라면 틀림없이 낙선했을 것이다.
by sonnet | 2011/08/25 01:28 | 정치 | 트랙백 | 핑백(2) | 덧글(74)
<< 이전 다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