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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정신질환
2014/09/30   정신병에 올인한 [7]
정신병에 올인한
특별히 논평할만한 내용은 없지만, 복지자금이 빈곤층에게 가듯이 정부자금이 정신병 연구에 집중된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 듯. 저자는 지나고 나서 돌이켜 보니까 뭔가 균형이 잘 맞지 않는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고 느끼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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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고 내 야망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심리학이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으며 자랑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공부한 심리학 분야인 임상심리학과 사회심리학에서는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한 성과가 하나 있다. 1945~50년까지만 해도 주요 정신병 중에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저 막막할 뿐이었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1]는 정신병을 완화하는 문제에 200~300억 달러를 투자했다 그리고 내 계산에 따르면 50년 동안 200억 달러를 투자하여 다음과 같은 큰 성과를 이루었다.

첫째는 14가지에 달하는 주요 정신병이 지금은 치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중 둘은 특정한 유형의 심리요법이나 약물로 완치될 수 있다. 완치 가능한 그 둘은 바로 공황장애, 그리고 피와 상처 공포증이다. 따라서 심리학과 정신의학이 우리 삶에 기여한 첫 번째 일은 엄청나게 많은 고통을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내 입장에서 보면 더욱 큰 성과라 할 수 있는데, 정신병의 과학이 슬픔, 알코올 중독, 정신분열증 같은 모호한 상태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을 만큼 발달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개발한 DSM(정신장애진단 통계편람)이라는 분류 체계 덕분에, 런던에 사는 사람과 필라델피아에 사는 사람이 같은 양극성 우울증을 보인다는 진단을 내릴 수 있다.

셋째는 동일한 사람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펴보는 추적 조사나 제3의 변수들을 제거하는 실험 연구를 통해 정신병의 인과적 실타래를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넷째는 약물, 심리요법 등의 치료법을 창안하여 무작위 배치 위약-대조군(placebo-control) 연구를 통해 어느 치료법이 정말로 듣고 어느 것이 듣지 않는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심리학과 정신의학은 비참한 사람들을 덜 비참하게 만들 수 있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것은 탁월한 업적이다. 그 말에 나도 전폭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이 질병 모형은 이만큼 성공을 거두기까지 세 가지 심각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말이 난 김에 덧붙이자면, 그냥 성공이 아니라 대성공이었다. 예산 확보 쪽으로 말이다. 1946년 재향군인법(Veterans Administration Act)이 통과되자, 의사들은 정신병을 연구하면 직장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곧 의학계는 정신병 연구에 뛰어들었다. 1947년 국립 정신건강연구소가 설립되고 나와 같은 학자들은 정신병을 연구하면 연구비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하여 심리학 분야의 90퍼센트는 그쪽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 질병 모형 연구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첫째는 도덕적인 것이었다. 우리는 피해자학자(victimologist)이자 병리학자(pathologizer)가 되었다. 우리는 인간이 무거운 벽돌 더미에 깔려 있는 양 정신병에 짓눌려 산다고 보게 되었고, 선택, 책임감, 선호, 의지, 성격 같은 개념들을 잊고 말았다. 두 번째 대가는 정신병만 연구하다보니 상대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람들의 삶을 더 행복하고 더 생산적이고 더 충만하게 하는 일을 잊었다. 그리고 재능에 관해서도 까마득히 잊었고, 재능이란 입에 담을 수 없는 단어가 되었다. 세 번째 대가는 병리학을 파헤치는 데 몰두하다보니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데 개입할 수단은 개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을 덜 비참하게 하는 수단만을 개발했을 뿐이다.

그것이 내가 심리학자로서 행복을 늘리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다. 그 질병 모형에는 심리학자가 사람을 오랫동안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즉 같은 종류의 과학적 방법을 누적적이고 반복적으로 개입시켜 행복을 지속시키는 데 쓸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빠져 있었다. 나는 심리학적 개입에 관심이 있지만, 약리학적 개입이 적용될 만한 사례도 분명히 있다. 이를테면 사람들을 -8에서 -5로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2에서 +6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내가 품고 있는 원대한 야심과 하나의 역할을 맡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앞으로 10~15년 안에 우리가 행복에 대해서도 비슷한 주장을 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즉, 심리학과 정신의학이 세상에서 고통의 무게를 줄여왔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앞으로 심리학과 정신의학이 세상에서 행복의 무게를 늘릴 것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도록 말이다.

[1] 사실 정신건강을 다루는 연구소였던 적이 없었다. 오로지 정신병만을 다루어왔기 때문이다.

Martin Seligman, “에우다이모니아: 좋은 삶”, John Brockman 편, 『마음의 과학』, 와이즈베리, 2012년 pp.164-166
by sonnet | 2014/09/30 07:44 | 과학기술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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