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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전문가
2006/12/27   민주주의, 전문가, 여론형성 [22]
민주주의, 전문가, 여론형성
군국주의(히요)에서 트랙백
이 논쟁은 군국주의적 사고방식의 극치(히요), 허, 군국주의라고?(sonnet), 군국주의(히요)
현실주의, 군국주의(sonnet) 등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0. 들어가기 전에

그게 무슨 주의냐에 대한 싸움이 이리 지리하게 갈릴 줄 예상 못한 것도 제 책임이라면 제 책임이겠습니다만, 사실 지금 하고자 하는 얘기는 작통권을 받느냐 마느냐에 대한 얘기 아닌가요? 군국주의란 말이 못내 걸려서 절대 못넘어가고 그 이상의 논의에 대해선 일언반구 하지 않겠다는 자세라면, 그걸 철회해야만 이야기가 되는 건가요.

그렇게 치면 저도 멍청하다느니 삐딱하다느니 하는 말들을 철회 안하면 이야기 안하겠다고 버텨도 바람직한 걸까요? 토론은 오기싸움이 아닙니다. (히요)

아니, 꼭 그것을 철회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전 글에서 두 사람 모두 동의했던 대로 "제3자로 하여금 자기 판단을 내리는 데 더 많은 자료를 제공"한다는 목적을 달성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다.

토론을 할 때 앞으로 내가 토론을 어떻게 할건지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은 사족이라 보통 하지 않지만 "~란 말이 못내 걸려서 절대 못넘어가고"라는 식의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앞으로 어떻게 논쟁을 이끌어갈 것인지 간단히 설명을 하겠다.

우리는 각자 자기 주장이 있고, 그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이런 저런 근거들을 나열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유지, 강화하려고 하고 있다. 그 근거들은 자신의 주장을 둘러싸고 주장이 무너지지 않도록 방어하는 성벽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토론에는 순서가 필요하다. 상대의 주장을 무너트리려면 우선 그 주장을 보호하고 있는 근거들부터 무력화하여야 한다. 적당한 양의 근거들을 무력화하여 상대의 성벽에 구멍을 내고 나면 직접 핵심 주장 자체를 논박해 토론을 끝낼 수 있다. 아니면 근거들을 충분히 많이 무력화하고 나면 상대의 주장은 그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저절로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상대방이 올라가 있는 나무 밑둥에 도끼질을 한 후 나무가 넘어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한 쪽이 자신의 주장이 무너졌는데도 끝끝내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그 때는 토론을 지켜본 제3자들이 누가 벌거벗은 임금님인지를 수근거릴 것이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끝까지 고집을 피우며 우길 가능성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damage control을 중시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난감한 상황에 빠지기 한참 전에 백기를 들 것이 틀림없다. 어차피 질 싸움인 게 분명해진다면 패배에 따른 망신이라도 줄여야 하지 않겠는가.

숨겨진 가정이란 것도 있다. 말로 꺼내진 않았지만 당사자에겐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설명하지 않은 근거나 전제이다. 그러나 상대방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것이 전혀 당연하지 않기 마련이다. 토론 중간에 토론이 헛돌거나 할 경우 숨겨진 가정이 그 원인인 경우가 많다.

같은 학문을 전공한 전문가 동료들 사이에서는 용어의 정의에서부터 읽어본 책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숨겨진 가정을 대량으로 공유하게 된다. 따라서 짧은 이야기로도 많은 논점을 검토해 토론을 빨리 진행할 수 있다. 이번 토론처럼 전혀 모르던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 두 사람 간의 논쟁은 숨겨진 가정을 밝혀내는데 종종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숨겨진 가정 한 가지를 건드려 보기로 한다.


1. 국민의 의사를 따르는 것이 민주주의인가?

히요씨가 말하는 군국주의(?)가 실은 국제정치학의 주류를 이루는 이론인 현실주의라는 점을 설명했던 것은 단순히 단어정의가 잘못되어 있어 토론이 어렵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설명에서 더 중요한 요점은 이렇다.

소위 정규교육을 받은 안보전문가집단에게 있어 "국제사회란 냉혹한 무법천지이고 국가는 자기 보전을 위해 일단 무력부터 챙기고 볼 수 밖에 없다"란 현실주의적 사고는 많은 경험으로 뒷받침되는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특별한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인들의 경우에 그런 사고방식은 좀 생소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전문가들과 일반인들의 인식 차이는 민주주의 정치체제 안에서 종종 갈등의 요소가 된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국민감정 대신 '독립된 국가로서의 주권' 이라고 말을 고치면 될까요? 독립된 국가로서의 주권이니 당연히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는 얘기고, 국민감정이란 건 왜 우리가 미국에게 통제권까지 쥐어주고 전쟁시 말을 들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국민들이 반발할거라는 점을 들어 쓴 말입니다.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의사를 따르는 것일텐데, 국민들이 한국이 미국에게 설설기는 것에 반감을 느끼는 지금 (비전투원 파병까지 파병했다고 욕하는데) '북의 위협' 을 과장하며 미국에게 주권을 양도하는 것은 또 얼마나 올바른 일이 될 수 있을까요. 국민들이 뭐라 주장하든 직책 앉은 사람들이 결정하면 그만인 상명하복의 국가도 아닌데 말입니다. (히요)

깨놓고 말하자면 현대 민주주의는 "그런" 국민의 의사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투표에 의한 선출과 의사결정, 다수결 원칙 같은 것은 현대 민주주의의 한 요소에 불과하지 현대 민주주의 그 자체는 아니다. 거기에는 이 문제에 타협점을 찾아내기 위한 대의민주주의, 절차적 민주주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 등 많은 고려가 숨어 있다.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정에서는 전문가라는 것이 없었다. 그리스 시민은 정치, 군사, 사회, 경제, 예술에 모두 일정한 소양을 갖춘 교양인일 것을 요구받았다. 이들은 광장에 모여 긴 시간 토론하고 시민들 중에서 지도자나 장군을 뽑아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사회에서는 토론을 주도하는 웅변술이야말로 시민의 중요한 자질이었다.
그러나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리스 직접민주정은 일반 국민은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전문가가 모든 의사결정을 하는 체제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리스 도시국가의 시민들은 누구나 정치가, 장군, 외교사절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폭넓은 교양을 훈련받은 전문가들이었다. 그리고 시민들 밑에는 그런 교육을 받지 못하고 참정권도 없는 다수의 노예가 사회를 떠받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많이 흘러 유럽의 중세가 끝나고 유럽과 북미에서 근대적인 의미의 새 민주주의가 태동하였다. 민주주의란 이름은 같았으나 그 실제를 살펴보면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일단 도시국가 대신 국민국가가 형성되면서 권리를 가진 시민의 수가 훨씬 많아졌다. 따라서 이들이 모두 일상적인 토론과 정책결정이 참여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또한 사회가 훨씬 복잡해졌기 때문에 각 부문의 의사결정에 전문지식을 연마한 전문가들의 필요성이 폭증하였다. 따라서 이들은 대표를 뽑아 대표들에게 의사결정 권리를 위임하는 대의민주주의 체제를 만들었다.

대의 민주주의는 시민이 모두 매일매일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만든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사실 작은 이유랄까 명분에 불과하다. 현대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으면 그런 문제는 극복 못할 것도 없다. 국회를 없애고 전 국민이 핸드폰을 들고다니다가 아무 때나 "10분 안에 투표하세요. 보기1..." 문자가 오면 답문을 보내 의사결정을 한다고 해보자. 그게 궁극적인 직접 민주주의겠는가?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에는 주권자인 시민이 사회를 위한 의사결정에 필요한 다양한 배경지식과 수준높은 판단력을 교양으로 갖고 충분한 시간 토론을 거쳐 장단점을 밝히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의 시민은 그게 가능했지만 현대민주국가의 시민은 그것이 불가능하다. 현대사회가 필요로하는 수준은 너무 높은데 반해 현대시민의 역량은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대의민주주의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권재민 원칙과 전문가의 필요성을 타협해 명분과 실리를 적당히 살려 만든 것이다.

1) 입법부
국민이 선출하는 국회의원은 유권자들의 여론을 수렴해 국민을 대신해 옛날 그리스 시민들이 하던 토론과 의사결정 과정을 모방할 수 있게 만든 일종의 협상전문가이다. 또한 산하에 예산정책처 같은 관료기구를 두어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도록 해 놓았다.

2) 행정부
현대 민주주의 행정부의 구성원 대부분은 민주적 원칙에 따라 선출되지 않은 많은 전문가들로 이루어진다. 시민들이 선출하는 것은 대통령밖에 없다. 장관 및 주요 공직자들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국민이 선출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근대국가의 핵심요소인 직업관료와 상비군이 있다. 이들이 숫적으로는 절대 다수이고, 대부분의 정책 개발이나 집행을 담당한다.

3) 사법부
국민들이 뭐라 주장하든 직책 앉은 사람들이 결정하면 그만인 상명하복의 국가도 아닌데 말입니다.라고 하지만 민주주의 체제에도 그런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의 사법부이다. 국민은 선거로 판사를 뽑지 않는다. 사법부는 3권중 유일하게 직접선거가 없는 부문이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은 선거를 위해 국민의 눈치를 보아야 하지만 판사는 그런 것도 없다. 원칙적으로 말해 사건에 대해 국민이 뭐라고 주장하든지 간에, 재판은 전문가인 재판관이 법과 법관의 양심에 따라 판결을 내리게 되어 있다. 국민은 입법부를 통해 간접적으로 법을 만들고, 대통령과 국회가 추천하는 대법관임명과정 등을 통해 오랜 시간이 걸려 간접적으로 사법부에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개별 사건에 대해서는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건 영향을 줄 방법이 없다. (배심제를 택하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4) 국민투표
국민이 갖는 직접민주주의 수단 중 중요한 것이 국민투표이긴 한데, 실제로 보면 국민투표는 일상적인 의사결정에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중요한 의사결정은 진작에 다 이루어진 후, 국민의 동의를 받았다는 형식을 갖추기 위해 최종적으로 찬반투표를 한번 해보는 것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자 이렇게 보면 상당한 의문이 들 것이다.

이게 진짜 국민의 의사를 따르기 위해 설계된 정치체제인가? 왜이렇게 겹겹히 제약과 장벽이 있고 몇 다리에 걸친 전문가들을 통하는 간접적인 절차를 거치도록 정해져 있는 것일까? 이렇게 하면 국민의 의사를 따르도록 하기 힘들지 않은가?

답은 처음부터 사안을 잘 알지 못하거나 감정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변덕스러운 국민의 의사에 휘둘리거나 하는 일이 적도록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민주정를 위협하는 두가지 위협은 독재정과 중우정치이다. 3권분립 같은 견제와 균형 장치는 독재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면, 대의민주주의나 관료제는 중우정치의 영향을 걸러주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 체제에서 전문가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같은 선출된 권력이 상황을 적절히 평가 판단해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조언을 제공하기 위해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전문가는 선출된 권력이 아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조언을 하는 것이지 이들을 대신해 의사결정에 나설 수는 없으며 나서서도 안된다. 다만 전문가는 자신이 적절한 조언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선출된 권력이 자신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아 문제가 야기된다고 생각할 경우 이 문제를 밝히고 사임해야 한다. 전문가나 관료의 항의성 사임은 시스템의 경고 메시지이기 때문에 국민들은 여기 무슨 문제가 있는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권자인 국민의 경우 언론/출판의 자유 등을 통해 정부, 의회 및 기타 민간 전문가의 조언을 얻을 수 있으며 이를 조언을 받아 여론을 형성해 나간다.

문제는 이러한 이야기는 성숙한 현대민주주의 체제에서만 잘 돌아가며, 완전하지 못한 현대민주주의 체제의 경우 부분적으로 잘 동작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 문제로 돌아가 보자.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의사를 따르는 것일텐데, 국민들이 한국이 미국에게 설설기는 것에 반감을 느끼는 지금"(히요)

“왜 미국 사람이 하자는 대로 해야 하는가 예예 그러고 따라와야 되는가, 바짓가랑이를 왜 붙들어야 되느냐”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바짓가랑이 붙드는 것도 없고 예예 하면서 따라가는 것도 없습니다.(김재창)

일반인과 전문가 사이의 인식의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별로 좋지 못한 징조이다. 여론형성이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잘 이루어지고 있다면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적어야 한다.

사실 위 논점은 주관적인 부분이 많아서 인식의 차이를 좁히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러면 좀 더 객관적인 논점을 생각해보자. 앞선 토론에서 우리는 안보전문가들이 현실주의라고 부르며 외교안보의 대원칙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히요씨와 laystall씨는 아주 나쁜 군국주의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진짜 위험신호이다. 쟁점에 대해 일반인이 전문가의 조언을 거의 듣지 못하고 있다는 산 증거이기 때문이다.

일반인이 중요한 쟁점사안에 대해 전문가의 견해를 충분히 듣고 이해한 다음에도 "당신 이야기는 잘 알겠소. 이러저러한 이야기 아니오. 정확하지? 그러나 난 내 생각을 바꿀 생각이 없소. 나에게는 이러저러한 점이 더 중요하거든"라는 식으로 반대의견을 굽히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다. 전문가는 조언을 해주는 것이지 의사결정을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는 전문가들끼리 골방에 모여서 궁시렁거리는 동안, 일반인들은 일반인들끼리 부정확한 정보에 입각해 여론을 형성해 나가고 있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장님 두 사람이 손을 꼭 붙잡고 걸어가고 있다. 둘은 옆 사람은 눈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이 가는 길 앞에는 낭떠러지가 보인다. 앉은뱅이에 벙어리는 그 두사람에게 손을 흔들어 경고를 하려고 하지만...


사실 전문가가 틀리고 일반인이 맞을 수도 있다. 전문가의 의견이 여러 갈래로 갈려 있을 경우 그럴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그러나 전시작전통제권 문제의 경우 전문가들은 거의 일치단결해서 반대하고 있다. 예비역 군인들 뿐 아니라 전직 외교관들도 집단행동에 나섰다는 점을 기억하자. 난 평생 외교관들이 정책문제에 대해 저런 식으로 나서는 것은 처음 본다.
by sonnet | 2006/12/27 10:01 | flame! | 트랙백(4) | 핑백(5) | 덧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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