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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자주국방
2010/08/03   답변 [57]
답변
앞선 글에 붙은 두 개의 코멘트에 답하는 글입니다. 상당히 긴 인용을 하게 된 관계로 별도 포스팅으로 돌립니다.

이러한 운신의 한계가 미국과의 북핵문제에 대한 여러 충돌이 이어지면서 자주국방이라는 형태로 해결점을 찾은게 아닌가 싶습니다 . 하지만 막대한 예산을 추가로 국방비에 소모면서 군비를 증강할때는 북한, 중국등의 자극을 생각해야만 했고, 여기에 미국의 대이라크전 문제와 연계되어 결국 전작권이양논의가 추진되었다 보는게 타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SKY樂)


이 이야기는 자주국방을 위한 군비증강 → 한미연합사 해체/전시작전통제권 단독행사라는 전개를 상정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전개과정은 이와 반대입니다.

김종대의 『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에 이와 관련된 서술이 상당한 분량으로 실려 있기 때문에 이를 좀 옮겨보겠습니다. 저자는 노무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2002-2003)에서 국방전문위원으로, 이어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2003-2005)으로 들어가 일했습니다. 즉 그는 아래 묘사한 일련의 사태가 전개되던 시기에 사건이 일어난 조직에 몸담고 있었던 셈입니다.


--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노 대통령은 이종석 차장에게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구상해 온 ‘자주국방’에 대해 관련자들을 모아 토론 자리를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 이 지시의 이면에는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한국에서 일방적 군사행동을 하려는 조짐을 견제하려면 한국은 스스로 자주국방을 구현할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 미국에 의존하지 않아도 한반도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이 차장은 대통령이 몇 번 자주국방에 대해 언급했음에도 이를 뒷받침할 만한 후속 조치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다. 급기야 5월의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노 대통령은 자주국방 추진과 관련하여 아무런 보고도 올라오지 않는 것에 대해 이 차장과 김 보좌관을 질책했다.

모름지기 한 국가는 스스로의 안전과 생존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하고 그 바탕 위에서 비로소 국가의 꼴을 갖춘다는 강렬한 문제의식, 그것이 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줄곧 주장해 온 ‘자주국방론’이었다. 특히 지금과 같이 미국에 끌려 다니며 안보위기를 겪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미국의 전략에 종속되는 ‘의존적 국방태세’의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했다.(pp.36-37)


그래서 어전회의가 열리게 되었는데,

“오늘 이 자리는 대통령님을 모시고 참여정부의 자주국방에 대한 비전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토론회입니다."

서주석 NSC 전략기획실장이 말했다. 2003년 6월 중순, 대통령 집무실에서는 노 대통령을 중앙에 두고 조영길 국방장관, 라종일 안보보좌관, 김희상 국방보좌관, 이종석 NSC 사무차장이 서 실장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서 실장의 모두 발언은 우리나라 국방의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촉구하는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한국 대통령이 안보의 모든 것을 미국에 의존하는 것이 현재 한미연합방위체제입니다. 한반도 유사시에 작전지휘를 미군이 주도하는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인수위 시절부터 저희는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으로부터 환수하고 자주적 억제력을 갖춘 자주 군대로 가야 한다는 철학과 비전을 다듬어 왔습니다. 자주국방의 핵심 의제라 할 수 있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강한 자주군대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 참여정부 국방정책의 중심이라고 볼 때 그 시기와 방법, 그리고 전략을 수립해서 체계적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하고, 여기에 국방부를 비롯한 유관기관의 협조가 요구되고 있기에 이에 대해 논의하고자 합니다.” (p.46-47)


대통령 측에서는 '미국과의 연결고리를 끊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가 인수위 때부터 기획되어 온 핵심안건임을 분명히 합니다.

한편 주무부서인 국방부는 청와대로부터 자주국방에 관한 자체안을 요구받자, 처음에는 군비증강에 초점을 진부한 자주국방안을 내놓으면서 '전시작전통제권' 문제는 피해가려고 했습니다.

이 토론회가 열리기 한 달 전인 5월에 조영길 국방장관은 육·해·공군 참모총장들과 함께 노 대통령에게 ‘자주국방 비전’ 구상을 보고한 바 있다. 여기에서 조 장관은 향후 10년 이내에 한국 단독으로 대북 억제가 가능한 역량을 구비하는 수준으로 국방력을 발전시키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리고 목표달성을 위해 ▲미국에 의존하는 핵심전력을 우선적으로 확보하여 대북 억제력을 완비하고 ▲한국군 독자적인 작전수행 체제를 구축하고 군 전력구조를 개선하며 ▲현행 한미연합지휘체계를 발전시키겠다는 자주국방 추진 방향을 설정했다.

… 5월 대통령에게 보고한 자주국방 비전에는 한국군의 대북 억제력을 확보하기 위해 F-15K 전투기, 핵추진 잠수함, 대형 구축함, 조기경보기 등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무기도입 목록이 들어 있었다. 노 대통령은 최소한 1997년 외환위기 이전 수준인 GDP의 3% 수준으로 국방비를 증액할 용의가 있었으나 조 장관은 이미 3.5~4% 수준으로 국방비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수립해둔 터였다. 당시 국방비는 GDP의 약 2.6% 수준으로 3% 수준까지 맞추려면 두 자릿수 국방비 증액율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자주국방 비전에 담긴 한미연합지휘체계의 발전이 구체적으로 언제 미국으로부터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받겠다는 것인지는 없었다. 조 장관은 아예 전시작전통제권이라는 용어 자체를 공식 문서에 표기하지 않았다. 대신 막연하게 ‘한·미 군사지휘체계 발전’이라는 모호한 용어로 정치적 논란을 피해 가려 했다.

한국군 발전에 대한 의지를 고양시키면서도 한편으로는 미국에 계속 의존하려는 이중적 태도가 조 장관의 보고서에서 서로 모순되고 충돌하는 것에 대해 노 대통령과 NSC는 불만을 가졌다.(pp.47-48)


따라서 이 토론회에서 국방장관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합니다.

서 실장의 모두 발언이 끝나자 조 장관이 전작권 문제에 대해 먼저 의견을 내놓았다.

“서 실장은 한미연합사를 해체하고 전시작전권을 환수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이 주장에는 몇 가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연합사는 한반도 유사시에 한·미 양국 군의 지휘를 통일하기 위해 구성된 것입니다. 한국과 미국의 합작회사, 일종의 컨소시엄이라고 보면 됩니다. 상호 동등한 지분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 지휘 기구는 가장 성공적인 협력의 표상이지 주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의 대상은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가 능력을 발전시켜서 자주국방을 해야 한다는 대통령님의 뜻에 따르면서도 동맹인 미국과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까지 겪어 가면서 이 문제를 처리하게 되면 안보가 어려운 시기에 국익이 침해받을까 우려됩니다.”(p.49)


그래서 논쟁이 결론이 안나는 대치가 계속되자,

참모들 간의 자주국방 토론회는 점점 난장판이 되어 가고 있었다. 자주파와 동맹파로 양분된 참모진 간에 서로 양보란 없었다. 한쪽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도모하기 위한 국가주권의 확립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고, 또 다른 한쪽은 한반도 안보의 기축인 한미동맹을 사수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무래도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여러분 의견은 잘 들었습니다. 대통령으로 오늘 토론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언젠가 전시작전권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은 맞습니다. 그것은 대통령 선거 전부터 내가 가져왔던 생각이고요. 다만 그 시점이 언제냐, 어떤 조건에서 하는 것이 적절하냐가 문제가 됩니다. 정 전작권 문제를 풀기가 어렵다면 대체적인 원칙만 잡아놓고, 예컨대 전작권은 환수되어야 한다는 방향만 잡아 놓고 환수 시기는 2010년이 될지, 2020년이 될지 적절한 시점을 검토한다는 것으로 오늘 토론을 정리합시다.”(p.51)


대통령이 자신의 의중을 밝힙니다. 해야되냐 말아야 하냐는 해야 하는 것으로 결론이 이미 나 있으며, 어떻게 할 건지만 결정하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이에 반대하는 의견이 멈추지 않자, 대통령은 호통을 칩니다.

“들어보세요. 청와대 참모가 가져야 할 자세가 무엇인지 알려 드리지요. 참모는 대통령이 처한 정치적 좌표와 역사관을 이해하고 그것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가진 의견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에 대해 여러분의 견해를 듣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국방보좌관이 마치 이러한 논의 자체를 반대하는 듯이 나서게 되면 토론이 안 됩니다. 이것으로 마무리합시다.”(p.52)



이제 국방예산과 전력증강사업의 확대에 대해서,

[2003년 6월 21일] 노 대통령은 육·해·공군 본부가 있는 계룡대를 방문하여 군 고위 장성들과 간담회를 하면서 “국방비를 외환위기 이전 수준인 GDP 3%대 수준으로 회복하겠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2004년 국방비로 지난해보다 9% 이상 증액된 GDP 3.2%인 22조 원을 기획예산처에 요구한 상태였다. 노 대통령은 군비를 확장함으로써 자주국방에 대한 군의 지지를 확보함과 동시에 자신의 좌파 이미지도 불식시키려 했다.(p.60)


7월 국방부와 NSC의 자주국방 계획이 노 대통령에게 보고되고 8월에 자주국방 선언이 나오자 ‘국방 예산을 과연 어디까지 증액할 것이냐’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졌다. …

이러한 때 노 대통령이 “국방비를 외환위기 이전 수준인 GDP의 3% 수준으로 회복하겠다”고 공언하자, 국방부는 무기도입 팽창을 필두로 한 자주국방 계획 수립과 함께 2004년도 국방 예산으로 2003년 대비 무려 28.3%, 즉 4조 9231억원이 늘어난 22조 3495억 원을 기획예산처에 요구했다. GDP의 3.2%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이 수치는 대통령의 전시작전권 환수의지를 국방부가 계량화된 수치로 반응을 보인 것이자, 노 대통령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기도 했다.

한편 국방부는 일제히 국방비 증액의 필요성을 역설하기 시작했다. 유보선 국방차관은 “내년도 GDP 3.2% 보장은 안보 불안감 해소, 북한에 대한 메시지, 자주국방 의지 표현 등의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언뜻 보면 유순한 표현 같지만 자주국방 하려거든 예산을 파격적으로 증액하는 의지를 보이라는 통첩성의 뜻을 담고 있었다. 여기에 원장환 획득정책관은 “국방예산 GDP 3.2% 보장은 국민적으로 합의된 사항”이라며 청와대를 압박했다.

국방부가 요구한 예산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전력투자 비용이었다. 1998년 이후 2~4%의 완만한 증가율을 보이던 전력투자비는 2004년도 예산안에서 갑자기 42.1%로 껑충 뛰어올랐다. 2003년도 5조 7328억 원보다 무려 2조 4137억 원이 늘어난 8조 1465억 원을 요구한 것이다. 냉전이 절정기에 달했던 1980년 47.0%의 증가율 이후 최고 수준이었다.(pp.73-74)


자주국방으로 전환하는데 노 대통령은 기꺼이 그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문제는 현 연합방위체제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더 많은 예산을 요구하는 국방부의 태도였다. 그러한 국방부의 태도는 군이 예산만 늘리고 변화하려는 노력은 기피하겠다는 의사표현처럼 비춰졌다.

… 미 국방부와 주한미군은 노 대통령이 자주국방을 주장하기 시작한 2003년부터 한미군사위원회를 통해 주요 임무의 한국군 이전과 연합방위력 증강 소요를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국방 예산이 GDP의 4%는 되어야 한다고 압박해 들어왔다. 미군이 감축되는 상황, 주한미군이 더 이상 ‘인계철선’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한국군의 전쟁 초기 대응 능력의 공백을 메우라는 요구였다. 이 때문에 역설적으로 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 미국으로부터 가장 많은 무기도입을 결정한 대통령이 되었다.

한편 국방 예산의 팽창이 한국군이 현대적으로 변환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국방 효율화’라는 개혁의 취지를 크게 훼손한다는 점이 두 번째 역설이다. 이 점이 노 대통령으로서는 가장 불만스러웠다. 그러나 국방체제를 자주적으로 변혁하는 데 군의 협조를 받아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군의 기득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정치논리가 노 대통령을 감아올렸다. 결국 비대한 군 장성과 초과인력 운영으로 군의 인력구조가 심하게 왜곡되고 뒤틀려 있는 것에 대해서 노 대통령은 거의 지적하지 않았다.(pp.79-80)

이 이야기들은 국방예산 증대 요구가 노무현의 국방정책 이니셔티브가 나온 후 이에 반응하는 형태로 등장했음을 보여줍니다.


이제 두 번째 이야길 살펴보지요.

균형자로서의 "국력" 에 가장 중요한 부분인 군사-국방 분야쪽에서 "만류하는게 당연한 이런 기조"들이 오히려 방조 혹은 동조한 점이 있지 않나 싶거든요. 처음에는 군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서 추진된 것이 국방개혁 2020이나 균형자론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서 출발했는데, 찾아볼수록 되려 군이 영향력 확대와 예산획득, 혹은 국방부 내에서의 각 군간 지분확대의 결과인것 같습니다. (maxi)

위에서도 지적되는 점이지만, 군은 처음부터 비교적 수동적이었고 오히려 청와대 쪽이 분명한 목적의식 하에 군을 회유하기 위해 예산증대라는 떡밥을 이용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또 제가 보기에 이러한 군의 반응은 다음 이야기와 일맥상통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합참은 실행하고 싶지 않은 작전을 요청받을때마다 사용하는 전형적인 대답을 갖고 있었다.

* 이 작전은 대규모 병력이 필요하다.
* 이 작전은 위험하고 실패할 가능성도 높다. 그러면 미군이 포로가 되거나 전사해 대통령을 곤궁에 처하게 만들 것이다.
* 합참의 '군사 전문가적 의견'에 따르면 이 작전을 시행해서는 안 된다.
* 하지만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문서로 명령을 내리면 물론 작전에 들어갈 것이다.
* 덧붙여 군사 문제 전문 변호사는 이 작전이 국제법에 위반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플래처 스쿨(Fletcher School)의 교수인 리처드 슐츠(Richard Shultz)도 9.11 테러 이전에 미군이 테러리즘과 싸움을 거부하는 방법에 대해 합참의 대답과 비슷한 결론에 이르렀다. 그의 연구는 2004년 1월 24일자 <위클리 스탠더드(Weekly Standard)>에 실린 "명배우(Show Stoppers)"에 요약되어 있다.

Clarke, Richard A. 『모든 적들에 맞서』, 서울, 휴먼앤북스, 2004. p.227

다들 잘 아시겠지만, 저런 식의 관료적 저항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널리 쓰이는 수법이 바로 예산을 놓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수법은 절충이 쉽습니다. 예산이 할당되지 못하면 그것을 이유로 행동을 거부할 명분이 되는 것이고, 저항에 실패하더라도 증가된 예산을 획득하여 조직의 이익을 챙길 수 있지요. 일종의 황금 낙하산인 셈.


끝으로 이 책에 대한 개인적인 감흥을 하나 말하자면, 제목이 『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가 아니라 『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였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문턱에 걸려 넘어지는 일만 없기를….
by sonnet | 2010/08/03 15:41 | 정치 | 트랙백 | 덧글(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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