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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인도
2009/08/01   인도의 핵실험 준비 탐지, 북한의 고폭 실험 [33]
2007/12/30   파키스탄의 민군관계 [42]
2004/11/02   인도를 찾아서 [5]
인도의 핵실험 준비 탐지, 북한의 고폭 실험
정보 비공개의 필요성 (김우측) 에 보충 트랙백


1. 인도의 핵실험 준비 탐지

1996년 7월 Vipin Gupta과 Frank Pabian은 공개출처 첩보, 즉 기밀해제된 과거의 첩보위성 사진과 상업위성 사진을 조합해 인도의 핵실험 시도를 분석한 인상적인 보고서 Investigating the Allegations of Indian Nuclear Test Preparations in the Rajasthan Desert[1]를 공개합니다.


이 보고서는 이런 공개출처 자료를 갖고 핵실험을 어떻게 찾아내고 평가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을 상세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 후의 민간 연구자들에게 큰 자극을 줍니다. 이들은 관련 언론보도를 바탕으로 위성사진으로 검증할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 비교하면서 지그소 퍼즐의 바깥 조각에서 출발해 점차 안쪽으로 들어가는 수법을 흥미진진하게 제시합니다. 물론 당시에는 이런 사진을 봐도 일반인들은 손가락만 빨아야 했지만 이제는 구글 어스 같은 좋은 프로그램이 있지요. 관심 있는 분들은 이 지역을 구글 어스로 직접 보실 수 있습니다. ( KhetolaiMilitaryRange.kmz )

사실 미국은 인도의 핵실험을 저지하기 위해 1994년에도 이런 식으로 각종 증거를 들이대며 인도를 압박해 핵실험을 중단시킨 바 있었습니다.[2] 하지만 인도도 바보가 아니어서 실험 준비를 할 때마다 이런 식으로 들여다보고 압박을 가하자, 다음 번에는 정교한 기만술을 구사합니다.[3] 중장비들은 위성이 없을 때만 작업을 하고, 다음 위성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원래 있던 장소로 되돌려 보낸다든지, 각종 케이블들은 흙을 잘 덮어 위장한다든지 하는 식의 트릭을 구사해 대응수단을 강구해 냅니다.

그 결과 미국 정보기관들은 국가지도부에 1998년 5월 강행된 인도의 핵실험[4]에 대한 사전 경고를 주는 데 실패했고, 이는 미국의 중대한 정보실패 사례 중 하나[5]로 남아 있습니다.


2. 북한의 고폭 실험

2차 북핵위기가 터진 후인 2003년 7월, 국정원은 북한이 "평북 용덕동에서 97년 12월부터 2002년 9월까지 모두 70여차례의 핵고폭실험을 실시" 했음을 국회에 보고[6]합니다. 이는 햇볕정책이 추진되던 동안에도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계속 진행했으며, 게다가 남한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당시 야당은 이 문제를 강하게 비판했지만, 이 사건은 좀 생각해 볼 구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당연히 국민에게 알려야 할 것을 감추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신호정보(SIGINT)나 영상정보(IMINT)의 경우, 상대가 누군가 엿보고 혹은 엿듣고 있음을 확실히 안다면 이를 회피하는 대책을 세우는 것은 쉽습니다. 또한 구체적으로 얼마나 정밀하게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느냐 등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정보도 중요합니다.

결국 이런 정보는 범죄조직 조직원의 전화를 도청하고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어느 정도 범죄 혐의가 포착되더라도 대어가 걸려들기를 기다리면서 좀 더 지켜보는 게 좋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무한정 기다리다 보면 앞서 포착한 정보의 유효성이 상실되어버릴 수도 있지요. 따라서 꼬투리가 잡히기 시작했을 때 바로 터트려도 안 되지만, 더 기다려 봐야 별로 건질 것이 없고 오히려 가진 패의 가치가 상실되거나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는 행동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너무 오래 지켜본 끝에 일이 커진 사례로는 파키스탄의 핵 밀거래 조직 칸 네트워크 사건을 꼽을 수 있습니다. 10년 간 국무부의 비확산 부서를 책임졌던 로버트 아인혼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 알고 있는 이상 언제든지 칸 네트워크를 중단시킬 수 있었습니다. … 논쟁거리는, 우리가 이걸 지금 중단시킬 것이냐, 아니면 더 지켜보다가 그들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을 때, 일망타진하느냐 하는 것이었고 결국 기다려 보자는 쪽이 논쟁에서 승리했었습니다."[7]

따라서 북한이 고폭실험을 계속하고 있다는 정보는 2차 북핵위기가 터지기 전까지는 좀 더 지켜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기다린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제가 생각할 때 문제는 일단 북한의 고폭실험 사실을 공개한 뒤의 처리입니다.

국민들은 그간 이런 정보들이 비밀이었기 때문에 북한이 제네바 기본합의 이후에도 비밀 핵개발을 계속해 왔다는 것을 잘 몰랐습니다. 따라서 북한의 우라늄 농축 시인이 계기가 되어 2차 북핵위기가 터졌을 때, 미국-북한 관계가 잘 굴러가는 듯 싶더니 내지는 북한은 그간 잘못한 게 별로 없었는데, 갑자기 대북관계가 나빠졌다는 인상을 품기 쉬웠습니다. 우리 정부는 이 때 국민들에게 그간에도 북한이 비밀 핵개발을 계속해 왔음을 납득시키기 위한 용도로 고폭실험 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랬다면 우리는 북한을 상대로 한 미국과의 공조를 유지하는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겁니다.

우리 정부가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서, 과거 북한의 고폭실험 사실을 비밀에 붙였던 동기 자체가 의심을 살 수밖에 없어졌습니다. 즉 후에 적절한 시점에 북한을 다그치기 위해 아껴둔 것이 아니라, 햇볕정책 추구에 방해가 될 것 같았기 때문에 숨겼다는 의혹을 피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1] 다른 가능성이 있음을 언급해 두자면, 이들은 미국의 핵무기 개발을 맡고 있는 에너지부 산하 주요 국립 연구소 중 하나인 Sandia National Laboratory 소속이기 때문에, 실은 기밀첩보를 보고 답을 알아낸 후 공개출처 자료를 갖고 그 결과를 재구성해서 공개한 것일 수도 있음. Lawrence Livermore(LLNL)에는 Z division이라고 불리는 인텔리전스 부서가 있는 것이 알려져 있고, 언론보도에 따르면 Sandia에도 비슷한 부서가 있는 것으로 생각됨.
[2] 'India aborted nuclear bomb plans in 1994', PTI, 2008년 4월 2일
[3] How the CIA was Fooled, India Today
[4] 1998년 인도의 핵실험 일반에 대한 간명한 요약으로는 Pokhran-II을 참조.
[5] CIA searching for answers behind its India-Nuclear failure, AP, 1998년 5월 16일
[6] 김용출, 高국정원장 "北 용덕동서 70여회 고폭실험", 세계일보, 2003년 7월 10일
[7] Frantz, Douglas., A High-Risk Nuclear Stakeout, LA Times, 2005년 2월 27일
by sonnet | 2009/08/01 12:05 | 정치 | 트랙백 | 핑백(1) | 덧글(33)
파키스탄의 민군관계

아니, 이것은 군의 정책입니다. (부토) 총리님

- 1988년 라지브 간디 인도 총리와 베나지르 부토 파키스탄 총리 간의 정상회담 중 총리의 말을 끊으며,
파키스탄 외무장관 야유브 칸 -


군부의 동의가 없으면, 나는 핵프로그램에 어떠한 제동도 걸 수 없습니다.

- 1991년 미국이 프레슬러 수정안에 의한 제재를 풀어주는 대가로 우라늄 농축 동결을 제안하자,
파키스탄 총리 나와즈 샤리프 -


결정권은 내 손에 있지 않습니다.

- 1998년 인도의 핵실험 직후, 클린턴 대통령이 파키스탄의 대응 핵실험 자제를 당부하자,
파키스탄 총리 나와즈 샤리프 -



파키스탄의 민군관계는 이와 같다. 현 대통령인 무샤라프는 육군참모총장과 대통령을 줄곧 겸직해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의 동료와 후배들)의 눈치를 보느라 여념이 없다. 그가 노골적인 군부통치라는 비난을 쓰면서도 육군참모총장 자리를 깔고앉아 내놓지 않으려 했던 것은 군의 수장인 그 자리가 없으면 군을 통제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군출신 대통령이 오래 통치했다고는 하지만 이들이 군에 남아있는 동료나 후배들의 눈치를 보느라 자기가 하고 싶은 중요한 일을 못한 적은 전혀 없다. 이런 것이 군부통치로 통칭되는 한국과 파키스탄의 중요한 차이이다.
by sonnet | 2007/12/30 01:31 | 한마디 | 트랙백 | 덧글(42)
인도를 찾아서
"비프 카레 같은 것은 원래 인도에 있을 수가 없어"
"아니 그 이전에 원래 인도에는 카레라는 요리가 없어"
"생각해보면 인도인은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 살고 있다. 따라서 인도에는 인도인이 살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인도 요리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내릴 수 있지."
"즉 인도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가?"
"인도의 서쪽은 카리브해다. 그렇다면 인도는 대서양의 밑바닥에 있는 게야."

- 友人 Y모씨의 언행록 중에서
by sonnet | 2004/11/02 15:59 | 만담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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