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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인도적원조
2009/10/20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정책의 원칙 [111]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정책의 원칙
다소 불필요한 이야기들이 반복되는 느낌이어서, 제 개인적으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정책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한 번 정리해 볼까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견고한 자기 입장을 확립한 소위 '보수'나 '진보' 외에, 우리 사회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부동층이 존재한다. 그런데 사람이 굶어 죽는 것을 의도적으로 방치한다는 생각은 어지간한 사람의 도덕적 직관에 심각하게 어긋나는 것이기에 어떤 장황한 설명을 붙이건 간에 "어찌 되었건 사람은 살려 놓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를 꺾을 수는 없으며, 민주정 하에서 부동층에게 이런 입장을 성공적으로 전파해 다수를 형성한다는 것은 무리다.

또한 앞서 말한 것과 비슷한 이유 때문에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자"는 제안을 팔기도 어렵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불우이웃돕기 모금함을 들고 돌아다니는 이들 중 반 쯤은 가짜라는 이야길 들었다고 하자. 그럼 조금 있다 만난 모금함에 돈을 내고 싶어지겠는가? 좀 더 일반적인 표현으로 바꾸자면 인도적 원조에 대한 빈번한 협잡이나 전용 사례는 원조 그 자체의 의도된 효과를 잠식할 뿐만 아니라 원조를 지속하기 위한 정치적 의지를 손상시킨다. 심지어 그것이 훌륭한 인도적 목적을 가진 것이라 할지라도.

혹자는 이것을 단순히 다른 정치적 동기에 의한 반대를 정당화하는 편리한 명분 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북한에서 활동하던 잘 알려진 국제 NGO 단체들 - 세계 의사회, 국경없는 의사회, 기아퇴치운동, 케어 인터내셔널, 옥스팜 등 - 이 북한의 악질적인 농간을 비난하면서 철수했다는 것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이 분야에는 국제적으로 많이 논의된 일련의 원칙이 있다. 예를 들면 도움이 가장 절실한 주민에게 인도적 원조가 도착함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하고, 사전검토(assessment), 모니터링, 결과평가(evaluation)가 가능해야 하고, 이를 위한 접근이 허용된 지역에만 원조가 배급되어야 하고, 주민의 인도적 관심사를 보호해야 하며, 현지의 역량 구축을 지원해야 하며, 프로그램 계획과 실행에 수혜자를 참가시켜야 하고, 국제기구 요원의 정원이 충분해야 하며, 국제 인도주의 단체의 건강과 안전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등이 바로 그것이다.

다만 이 점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원조 전용과 맞서 단호하게 싸우는 이유는 전용을 차단하고 인도적 원조를 성공시키기 위함이지, 단순히 그것을 핑계로 사업을 걷어치우기 위함이 아니다. 그리고 원조 전용 문제와 맞서 단호하게 싸우는 입장을 고수해야만 원조 전용이 근절되지 않은 환경에서 계속 일해 나가는 데 대한 정당성을 적절히 방어할 수 있다. 문제는 개선되고 있으며 싸워서 문제를 해결할 전망이 있기 때문에 남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생각을 정리하자면 정권 교체에 관계 없이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정책이 견고하고 연속된 공통 기반을 갖기 위해서는,

(1)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즉 북한 취약계층의 필요에 적절히 대응하면서도
(2) 의도치 않은 국외자들(북한 정권과 당정군 집단)이 지원을 가로채 이익을 누리는 일이 없도록 효과적으로 배제

해 나간다는 두 조건을 동시에 추구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때 이 두 가지 목표는 동등하게 중요한 것이며, 또한 어느 한 쪽에 집중하는 대신 다른 한 쪽을 배제하는 선택은 용납될 수 없다. 그것은 원래 대립하던 두 입장 사이의 타협의 파기를 의미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 두 목표는 원칙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며, 또 두 목표가 동시에 성취될 때 최선의 결과가 도출됨은 명백하다. 따라서 대립하는 양 진영 모두에게 이것을 원칙으로 삼을 것을 요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공통의 원칙이 받아들여지고 뿌리내린 후라면 자신이 지지하는 입장이 집권 중이거나 아니거나에 관계없이 (공개적 논쟁에서 부인할 수 없는) 공통의 원칙에 호소함으로서 정책논쟁에서 서로의 관심사를 보다 잘 보호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공동의 기반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상태에서는 지금 보듯이 정부나 의회 다수당이 바뀔 때마다 정책의 요동은 훨씬 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by sonnet | 2009/10/20 07:35 | 정치 | 트랙백 | 핑백(2) | 덧글(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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