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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이라크전전비
2008/03/30   베트남전이 전하는 이라크전의 교훈 [41]
베트남전이 전하는 이라크전의 교훈
근대 역사교육은 대충해도 된다는 여러분들께. (Luthien) 에서 트랙백
(Commented by 겔라예프 at 2008/03/24 20:55 에 대한 코멘트도 겸함)

...거 비슷한 이야기를 40년 전에도 들은것 같은데. 제 착각일까요?라고 하셨는데, 사실 국가지도부 레벨에서 볼 때 베트남전과 이라크전의 삽질 사이에는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공통점이 있다. 이 글에서는 그 공통점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1. 베트남 전쟁의 11가지 실패요인

베트남전 실패의 주요 책임자 중 하나로 악명높은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사임한지 28년 만인 1995년 『회고: 베트남전의 비극과 교훈』(In Retrospect: The Tragedy and Lessons of Vietnam)이란 회고록을 내어, 베트남전에서 자신들의 실책을 자아비판하였다.

베트남전에 관한 의사결정에 참여했던 우리 케네디-존슨 행정부 사람들은 우리가 이 나라의 원칙과 전통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따라 행동했다. 우리는 이들 가치에 비추어 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다. 무서운 과오를 범했던 것이다. 우리에게는 다음 세대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할 책임이 있다.

Robert McNamara with Brian VanDeMark, In Retrospect: The Tragedy and Lesson of Vietnam, New York:Random House, 1995, pp. xx-xxi


그리고 베트남전에서 벌어진 오판과 실책을 11가지로 정리하며 베트남전의 교훈은 냉전 이후의 세계에도 여전히 적용될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때때로 냉전 이후의 세계는 과거의 세계와 너무 달라져서 베트남전의 교훈이 적용될 수 없다거나 21세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가 베트남에서의 경험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으려면, 먼저 우리의 실수를 정확히 짚어낼 수 있어야 한다. 베트남에서 우리가 맞은 재앙에는 11가지 주요 원인이 있다.

1. 우리는 적들(북베트남과 베트콩, 이들은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았음)의 지정학적 의도를 줄곧 오판했고, 그들의 행동이 미국에게 가져오는 위협을 과대평가했다.

2. 우리는 남베트남 민중들과 지도자를 우리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보았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갈구와 그를 위해 싸우겠다는 결의를 보았다. 우리는 그 나라의 정치세력들을 완전히 오판했다.

3. 우리는 민중(이 경우 북베트남과 베트콩)에게 그들의 신념과 가치를 위해 싸우다 죽어가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민족주의의 힘을 과소평가했고, 우리는 오늘날까지도 세계의 곳곳에서 계속 그러고 있다.

4. 친구와 적에 대한 우리의 오판은 한결같이 현지인들의 역사, 문화, 정치, 그리고 현지 지도자들의 됨됨이나 성향에 대한 우리의 뿌리 깊은 무지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베를린, 쿠바, 중동 등을 둘러싸고 종종 벌어진 대결에서, 토미 톰슨, 칩 볼렌, 조지 케난 같은 사람들의 조언을 얻을 수 없었더라면 우리는 소련을 상대로 비슷한 오판을 저지르고 말았을 것이다. 이 노련한 외교관들은 소련이란 나라, 그 나라 민중, 그 지도자들에 대해, 그리고 왜 그들은 그렇게 행동하며 그들이 우리의 행동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연구하는데 수십 년을 보내왔다. 그들의 조언은 우리의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데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것으로 증명되었다. 베트남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고위공직자들에게 그러한 조언을 제공할 [중량급] 남아시아 전문가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5. 우리는 비정규전으로 싸우는 결의에 찬 민족운동과 맞부딪치게 될 경우, 근대적 하이테크 군장비와 부대, 교리가 갖는 한계를 인식하는데 실패했고, 그 후로도 줄곧 그랬다. 또한 우리는 완전히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민중의 감정과 생각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우리 군사전술을 적응시키는 데도 실패했다.

6. 우리는 남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이 대규모 군사개입에 나서기 전에, 그런 행동의 장단점에 대해 의회와 미국 대중을 완전하고 솔직한 토론의 장으로 끌어들이는데 실패했다.

7. 그러한 개입에 나서고 예기치 못한 사태전개가 계획을 어긋나게 만든 뒤에도 우리는 대중적인 지지를 획득하는데 실패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왜 우리가 일을 그런 식으로 처리했는지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직면한 복잡한 사건들에 대해, 그리고 생소한 환경과 해도 없는 바다에 직면해 방향을 바꾸어야 하게 된 나라가 어떻게 이 문제를 건설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대중들을 이해시킬 준비를 하지 않았다. 한 나라의 가장 근원적인 힘은 그 나라의 군사적 강대함이 아니라, 국민의 단결에 있는 법이거늘, 우리는 그것을 유지하는데 실패했다.

8. 우리는 미국 지도자와 미국 시민들 모두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안보가 직접적인 위험에 처하지 않았을 경우, 무엇이 다른 민족 혹은 다른 나라에게 최선인지는 국제적 포럼에서 공개적 토론이라는 시험을 거쳤어야만 했다. 우리는 이 세상 모든 나라를 우리 자신이 생각한 이미지대로, 또는 우리가 선택한대로 만들 신이 주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9. 우리는 우리나라의 안보가 직접적인 위협에 처한 경우가 아니라면, 국제사회에 의해 완전한 (즉 단순히 요식행위가 아닌) 지원을 받는 다국적군과 공동일 경우에만 미국이 군사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지 않았다.

10. 우리는 국제문제에 있어서도 인생의 다른 측면들과 마찬가지로 당장 좋은 해결책이 없는 문제들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데 실패했다. 모든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을 품고, 직면한 난제들을 해결하면서 평생을 보낸 한 사람에게 있어서 이는 특히 인정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불완전하고 엉성한 세상에 몸을 맞추어 살아가야만 하기도 한다.

11. 이들 많은 오류들의 기저에는 장기간에 걸쳐 상당한 제약 하에서 군사력을 사용하는데 따르는 막대한 위험과 비용 -다른 무엇보다도 인명손실- 과 맞물린 지극히 복잡한 일련의 정치 군사적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행정부 최고위층을 조직하는데 실패한 우리의 잘못이 깔려 있었다. 이것이 대통령과 그 보좌관들이 직면한 유일한 과제였다면, 그러한 조직의 약점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해결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것은 우리가 직면한 다른 광범위한 국내적, 국제적 문제들과 공존하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남아시아에서의 우리 행동 -목표, 대안적 정책의 위험과 비용, 실패가 명백해 졌을 때 정책을 변경할 필요성 등- 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행정위원회에서의 논쟁으로 대표될 수 있는 강도와 철저함을 갖고 분석하고 논의하는데 실패했다.

이들은 근본적인 우리의 주요 패착이었다. 개별적으로 나열해 놓긴 했지만, 이들은 모두 어떤 형태로든 연결되어 있었다. 한 분야에서의 실패는 다른 실패의 원인이 되거나 실패를 심화시켰다. 각각은 끔찍하게 얽혀 들어갔다.

McNamara, 같은 책, pp.321-322



2. 교훈은 오늘날의 이라크전에도 유효

이는 남아시아와 베트남이란 단어를 중동과 이라크 정도로만 바꾸면 지금의 상황에 아무 차이 없이 맞아들어가는 내용들이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 바꾸어 보자.

3. 우리는 민중(이 경우 북베트남과 베트콩중동 무슬림)에게 그들의 신념과 가치를 위해 싸우다 죽어가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민족주의[와 종교]의 힘을 과소평가했고, 우리는 오늘날까지도 세계의 곳곳에서 계속 그러고 있다.

4. 친구와 적에 대한 우리의 오판은 한결같이 현지인들의 역사, 문화, 정치, 그리고 현지 지도자들의 됨됨이나 성향에 대한 우리의 뿌리 깊은 무지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베트남이라크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고위공직자들에게 그러한 조언을 제공할 [중량급] 남아시아중동 전문가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럴듯하지 않은가? 그리고 다른 항목들은 심지어 그런 걸 바꿀 필요가 없이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5. 우리는 비정규전으로 싸우는 결의에 찬 민족운동과 맞부딪치게 될 경우, 근대적 하이테크 군장비와 부대, 교리가 갖는 한계를 인식하는데 실패했고, 그 후로도 줄곧 그랬다. 또한 우리는 완전히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민중의 감정과 생각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우리 군사전술을 적응시키는 데도 실패했다.

9. 우리는 우리나라의 안보가 직접적인 위협에 처한 경우가 아니라면, 국제사회에 의해 완전한 (즉 단순히 요식행위가 아닌) 지원을 받는 다국적군과 공동일 경우에만 미국이 군사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지 않았다.


여기 예를 들지 않은 다른 요소들도 현 이라크전 상황에 잘 맞아들어가기는 매한가지이다. 이렇듯이 남아시아의 베트남과 중동의 이라크라는 문화, 민족, 종교가 모두 다른 극히 이질적인 두 나라에서 벌어진 사태에서 발견되는 기묘한 일치는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준다.


3. 문제는 미국 자신에게

그것은 맥나마라가 지적하는 실패의 원인이란 베트남이나 이라크라는 나라 때문에 생긴 것이라기 보다는 기본적으로 두 전쟁의 공통점이었던 미국이라는 나라에 내재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도록 하자.

2. 우리는 남베트남이라크 민중들과 지도자를 우리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보았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갈구와 그를 위해 싸우겠다는 결의를 보았다. 우리는 그 나라의 정치세력들을 완전히 오판했다.


이러한 맥나마라의 지적은 이라크전의 실패요인을 분석했던 패트릭 랭의 결론과 완전히 동일하다.

하지만 어떻게 잘 교육받고, 부유하며, 강력한 미국인들이 (이라크 전쟁이라는) 그렇게 끔찍하고 파멸적인 일련의 실수를 저지를 수 있었을까? … 우리, 미국 대중들이 문제의 원천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외교 정책은 모든 사람들은 미국인처럼 되고 싶어한다는 관념을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 소위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라는 것은 외계에서 날아든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이는 모든 사람들은 다 똑같다라는 널리 퍼진 미국인들의 신념에 대한 자아회복 선언에 불과하다.

미국인들은 우리의 세계관에 맞춘 상상 속의 이라크를 쳐들어갔다. 우리는 모든 이라크인들 안에는 낡은 허물을 벗고 빠져나오려는 미국인이 들어앉아 있다고 확신하며 이라크에 쳐들어갔다. 우리가 꿈꿔왔던 이라크에서 우리는 폭군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그들의 구식 삶으로부터의 해방자로 환영받을 터였다. …

우리에게도 불행하고 그들에게도 불행한 일이지만 그것은 진짜 이라크가 아니었다. … 잘못된 이라크 속에 뛰어든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서도, 미국인들은 진짜 이라크인들은 우리 꿈 속의 이라크인들처럼 행동해야 하며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 고집스럽게 우겨댔다. 그 결과는 좌절과 낙담, 그리고 이라크인들의 '광기'에 대한 분노였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 꿈을 따라 행동하면서, 이라크 총리 누리 알-말리키의 시아 종파 정부가 국가를 '단결'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말리키가 만인을 위한 공공선을 추구하는 이라크의 조지 워싱턴 같은 사람이라고 상상하고 있다.

Patrick Lang, 이라크 전쟁은 우리에게 우리 실체에 대해 말해준다, Foreign Policy, 2007년 2월


미국이 이런 특성을 갖고 있다는데는 전쟁의 비판자들 뿐 아니라 주도세력인 네오콘들도 동의한다.

미국을 그 팽창주의의 오랜 역사로부터 탈선시키려고 노력해온 사람들의 문제는, 전세계적 변혁의 가능성에 대한 미국인들의 신념 -메시아적 충동- 이 예나 지금이나 이 나라의 보다 지배적인 개성이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 나라의 건국 원칙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미국의 정력적인 야심과 그들의 정당성에 대한 압도적인 인식의 결합이 낳은 건강한 자식이기도 하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이라크에서의 어려움이 미국인들로 하여금 세계에 대한 메시아주의와 야심에 반대하도록 만들 것으로 믿고 기대한다. 역사는 그들의 편이 아니다.

Robert Kagan, 우리의 '메시아적 충동' , 워싱턴포스트, 2006년 12월 10일


그리고 이것은 맥나마라가 자기 책의 서문에서 밝혔던 점이기도 하다.

베트남전에 관한 의사결정에 참여했던 우리 케네디-존슨 행정부 사람들은 우리가 이 나라의 원칙과 전통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따라 행동했다. 우리는 이들 가치에 비추어 결정을 내렸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다. 무서운 과오를 범했던 것이다.


민주당 정권이었던 케네디-존슨 행정부에서도 이러한 메시아적 충동미국의 원칙과 전통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사실은 이라크전 또한 단순히 네오콘의 문제라든가 정권이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넘어가면 해소된다고 속단할 문제가 아님을 시사한다.


물론 맥나마라가 지적한 다른 오류들도 이러한 사고방식과 깊이 결부되어 있다.

미국인들은 "모든 사람들은 미국인처럼 되고 싶어한다"고 고집스럽게 믿기에, 다른 나라 사람들도 미국인들 못지 않게 고집이 세고 그들의 신념과 가치 수호에 단호할 수 있다는 것을 납득하기 힘들어 했고,

3. 우리는 민중(이 경우 북베트남과 베트콩중동 무슬림)에게 그들의 신념과 가치를 위해 싸우다 죽어가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민족주의[와 종교]의 힘을 과소평가했고, 우리는 오늘날까지도 세계의 곳곳에서 계속 그러고 있다.


첨단기술과 문명으로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으며,

5. 우리는 비정규전으로 싸우는 결의에 찬 민족[및 종교]운동과 맞부딪치게 될 경우, 근대적 하이테크 군장비와 부대, 교리가 갖는 한계를 인식하는데 실패했고, 그 후로도 줄곧 그랬다. 또한 우리는 완전히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민중의 감정과 생각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우리 군사전술을 적응시키는 데도 실패했다.


이 세상에는 강대한 미국의 힘으로도,

8. 우리는 미국 지도자와 미국 시민들 모두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 우리는 이 세상 모든 나라를 우리 자신이 생각한 이미지대로, 또는 우리가 선택한대로 만들 신이 주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낙천적이고 진취적인 개척자 정신으로도 안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10. 우리는 국제문제에 있어서도 인생의 다른 측면들과 마찬가지로 당장 좋은 해결책이 없는 문제들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데 실패했다. … 때때로 우리는 불완전하고 엉성한 세상에 몸을 맞추어 살아가야만 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점은 극복하기 불가능한 것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보통의 미국인들이 가진 상식이나 신념, 윤리도덕관의 굴레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 강인한 의지력과 신중함, 유연한 사고방식 같은 비범한 자질이 필요하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대의민주정 하에서 선출된 권력인 정치지도부가 국민 다수가 가진 상식이나 신념, 윤리도덕관과 상반되는 정책을 밀고나가야 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를 말이다.


4. 성공 사례의 검토: 걸프전

그렇다면 이런 실패사례와는 상반되는 제3의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

쿠웨이트를 침공 점령했던 이라크를 격퇴한 걸프전(1991년)은 널리 성공한 전쟁으로 알려져 있다. 이라크전(2003년)은 전혀 다른 환경에 위치한 베트남과 아주 유사한 경로를 밟아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진 반면, 동일한 중동 지역에서 동일한 상대인 이라크와 싸웠던 걸프전은 어떻게 성공으로 마무리지어진 전쟁으로 끝날 수 있었을까?

걸프전 당시 미국 지도자들 또한 당시 자신들의 정책판단에 대한 견해를 남겼다.

많은 아랍 동맹국들이 예상했고 우리 자신도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사담의 패배가 그의 권좌를 무너트리지 못한 것은 실망스러웠다. 부시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의 운명은 이라크 민중에게 달렸다고 여러 차례 선언했었다. 종종 그는 사담의 제거가 환영받을 것임을 시사했지만 아주 실질적인 이유에서 봉기를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민중 반란이나 쿠데타가 사담 정권을 전복시키길 기대했지만, 미국이나 현지 국가들은 모두 이라크란 국가가 쪼개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우리는 페르시아 만 지역 한복판의 장기적 세력균형에 대해 우려했던 것이다.
사담 제거를 시도하려고 지상전을 이라크 점령으로 확대하면, 일을 진행하는 도중에 목표를 변경하지 않는다는 스스로의 정책지침을 어기고, 욕심을 부리다 수렁에 빠져들게 되어(mission creep), 예측 불가능한 인적 정치적 비용을 유발하게 될 것이었다.
그를 체포하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파나마에서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던 노리에가도 찾아낼 수 없었다. 우리는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실질적으로 이라크를 통치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연합군은 즉시 붕괴되고, 분노한 아랍 국가들이 전열에서 이탈하며 다른 동맹국들 또한 철군하게 될 것이었다.
게다가 그러한 상황 하에서 우리는 냉전 이후 세계에서 침략행위를 다루는 패턴을 정착시키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 오던 중이었다. 그대로 밀고 들어가 이라크를 점령함으로서 일방적으로 UN 결의를 뛰어넘게 되면, 우리가 정착시키기를 희망했던 침략행위에 대한 국제적 대응 관례를 파괴하게 될 것이었다.
우리가 그러한 침공 코스를 밟는다면, 생각건대 미국은 아직도 극도로 적대적인 땅에서 점령세력으로 남아있을 것이며, 이는 극적으로 다른 -그리고 아마도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George H.W. Bush and Brent Scowcroft, 왜 우리는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지 않았는가, Time, 1998년 3월 2일

이들의 논리는 아주 간단하다. 더 좋은 결과를 노릴 수도 있었겠지만, 잘못될 가능성이 있어보이는 것은 최대한 피하고 필요최소한의 일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이런 생각 배후에는 이전에 마지막으로 해 본 대규모 전쟁이었던 베트남전이 어떻게 망했는지가 강하게 깔려 있었다. 언론은 8년간의 전쟁으로 단련된 역전의 용사 백만 이라크군이라며 적을 과장했으며, "모병제 군대의 평화는 첫 총성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같은 극도로 비관적인 여론이 분분했다. 심지어는 후에 이라크전의 열렬한 지지자가 된 리처드 체니나 폴 월포위츠 등도 이 당시에는 이라크를 완전히 점령하는 후의 이라크전 같은 작전을 지지하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미국 사회가 풀이 죽어있었던 것이다.

냉전의 종식과 걸프전의 (제한적이지만) 완벽한 승리는 이제 위축되어 있던 미국 시민들의 기를 살리고, 잠복해 있던 전통적인 메시아적 신념을 부추기는 계기가 되었다. 성공의 역설이 찾아올 환경이 갖추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러는 와중에 걸프전의 승리의 비결이 그 목표를 엄격히 제한한 데 있었음은 깨끗하게 잊혀지고 말았다. 결국 걸프전의 설계자들이 우려하던 사태는 이라크전에서 몽땅 터져나오고야 만다.


5. 국민을 속이다

다시 맥나마라의 회한으로 돌아가 보자. 베트남전은 또 무엇이 잘못되었던가?

6. 우리는 남아시아중동 지역에서 미국이 대규모 군사개입에 나서기 전에, 그런 행동의 장단점에 대해 의회와 미국 대중을 완전하고 솔직한 토론의 장으로 끌어들이는데 실패했다.


이라크전의 개전과정을 곰곰히 돌이켜보면, 누구나 이 전쟁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가 매우 불명확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원래 이라크전의 개전 명분은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1. 이라크는 알-카이다와 연계, 협력하고 있다.
2. 이라크는 비밀리에 대량파괴무기(WMD)를 개발하고 있다.


이러한 명분은 진지한 관찰자들을 코웃음치게 만들었다.

부패한 세속 독재자 사담 후사인은 순니 이슬람 원리주의 집단인 알 카이다가 지독하게 미워하는 존재 중 하나였고, 사담 후사인의 입장에서도 알 카이다는 자신의 정권안보를 위협하는 악질 반체제 집단에 지나지 않았다. 사담과 오사마가 서로 협력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중동정치에 정통한 전문가 집단 사이에서는 극히 의문스러운 이야기에 불과했다.

WMD개발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라크 침공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이라크에서 니제르에서 천연우라늄 500톤을 구매하려 했다는 증거는 엉성한 위조문서로 드러났고, 이라크 망명자(암호명 Curveball)가 제공한 생물무기 개발 정보 또한 정보원의 신빙성이 의심스럽다는 것이 이 정보원을 보호하고 있던 독일 정보기관의 정식 입장이었다.

다만 엄청난 예산을 쓰는 CIA를 비롯한 수많은 정보기관과 무시무시한 첩보위성을 부리는 미국인 만큼 뭔가 믿는 구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느낌은 있었다. 화학무기 개발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고 과거에도 제조 사용한 적이 있었던 만큼, 이라크를 점령하고 샅샅이 뒤지면 꿍쳐놓은 화학무기 비축시설 하나쯤 나올지 누가 알겠는가. 많은 전문가들은 그런 가능성까지 무시했다가 틀려서 자신의 명성을 위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목소리를 낮추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신통찮은 화학무기 약간이 진정한 개전사유가 되기는 힘들었다. 무엇보다 WMD개발이 진정한 문제라고 한다면 공격의 순서가 완전히 잘못되어 있었다. 악의 축 3개국의 WMD개발 진도는 북한>이란>이라크의 순서일 것이라는 것이 WMD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WMD가 임박한 위험이라면 왜 가장 진도가 더딘 나라부터 공격해야 한단 말인가?

결국 이 모든 명분은 엉터리로 드러났다.

사실 미국 행정부 최고위층이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근거가 있다. 이라크 침공 9개월 전, 영국의 토니 블레어 내각에서 회람된 한 극비 메모를 보자.

C[영국 대외정보부(SIS) 부장; 역주]는 최근에 가진 워싱턴 회담에 대해 보고했다. [워싱턴 측에서는] 상당한 태도의 변화가 있었다. 군사행동은 이제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부시는 테러리즘과 WMD로 엮어 군사행동을 통해 사담을 제거하고자 한다. 하지만 정보와 사실들은 이 정책에 짜맞춰지고 있다. NSC는 UN을 통할 참을성도 없고 이라크 정권의 기록에 대한 증거들을 공개할 열의도 없다. 워싱턴에서는 군사행동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거의 논의되고 있지 않다.

C reported on his recent talks in Washington. There was a perceptible shift in attitude. Military action was now seen as inevitable. Bush wanted to remove Saddam, through military action, justified by the conjunction of terrorism and WMD. But the intelligence and facts were being fixed around the policy. The NSC had no patience with the UN route, and no enthusiasm for publishing material on the Iraqi regime's record. There was little discussion in Washington of the aftermath after military action.

Downing Street Memo, 2002년 7월 23일


부시 대통령이 그러한 결심을 한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적어도 내걸린 대의명분은 진짜 이유가 아닌게 확실하다. 그러니 적어도 미국 의회와 대중들에게 진정한 전쟁의 목적에 대해서 완전하고 솔직하게 설명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아마 이라크 침공이 걸프전처럼 수월하게 끝났더라면 이 모든 문제는 "좋은게 좋은거다. 어쨌든 사담 후사인은 악당 아닌가? 우리는 그들에게 자유와 민주주의를 주었다"라는 말로 덮이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좋게좋게 끝나지는 못했지만.


다시 맥나마라의 요점으로 돌아가 보자.

7. 그러한 개입에 나서고 예기치 못한 사태전개가 계획을 어긋나게 만든 뒤에도 우리는 대중적인 지지를 획득하는데 실패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왜 우리가 일을 그런 식으로 처리했는지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직면한 복잡한 사건들에 대해, 그리고 생소한 환경과 해도 없는 바다에 직면해 방향을 바꾸어야 하게 된 나라가 어떻게 이 문제를 건설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대중들을 이해시킬 준비를 하지 않았다. 한 나라의 가장 근원적인 힘은 그 나라의 군사적 강대함이 아니라, 국민의 단결에 있는 법이거늘, 우리는 그것을 유지하는데 실패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라크전의 개전사유는 진짜 이유가 아니었다. 맥나마라의 교훈에 따르자면 계획이 어긋난 것이 분명해졌다면 지금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왜 우리가 일을 그런 식으로 처리했는지"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물론 부시 행정부는 그렇게 나오지 않았다. 부시 행정부 2기 들어서는 물타기 세 번째 명분이 소리높여 천명되었다.

3. 민주주의를 확산시킨다.

민주주의의 확산, 물론 좋은 이야기이다. 성공할 수 있을 때만.
그런데 많고 많은 후보국 중에 왜 하필 이라크인가? 왜 처음 침공 때는 그 이유를 분명히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는가? 지금까지는 일을 왜 그런 식으로 처리했는가?

전혀 설명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즉 부시 행정부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왜 우리가 일을 그런 식으로 처리했는지"를 의회와 국민에게 설명해줄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음은 명백하다. 베트남전의 악습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전쟁비용 문제에서도 반복된다.

부시행정부가 집권하기 전부터 네오콘들, 예를 들어 폴 월포위츠는 사담 후사인의 이라크를 봉쇄하는데 끊임없이 비용이 들어가므로 너무 값비싸다고 비판하며, 사담 정권을 값싸게 전복시킴으로서 결과적으로 이러한 지출을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전쟁이 개시될 당시 백악관은 약 500~600억 달러의 전비가 들 것이란 추정치를 제시하였다.

실제는 어떤가? 이라크전 5주년인 현재, 국방성이 지출한 전비만 6천억 달러가 넘어가며 장기적으로 총 전쟁비용 추정은 1조 2천억~1조 7천억 달러(의회 예산국), 2조~3조 달러(Stiglitz 외) 등의 수치가 제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백악관의 추정치는 비정상적으로 작다는 의견이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있었다. 예를 들어 예일대 경제학과 교수인 윌리엄 노드하우스는 1조 9천억 달러쯤 들수도 있다는 견해를 제시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그의 비관적인 예상이 맞은 셈이지만, 이런 문제는 의회와 대중들의 눈 앞에서 결코 진지하게 토론된 적이 없었다.


6. 적에 대한 오판

사실 사담 후사인과 알 카이다가 손을 잡고 있다는 설득력 없는 명분이 국민들에게 먹혔다는 사실은 의회와 오피니언 리더, 국민들도 이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뜻한다.

9.11 테러의 충격에 얼이 빠지고 겁먹은 미국민과 의회는 그들은 알 카이다가 왜 그들을 공격했는지,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이 중동 및 제3세계에서 어떤 명성을 쌓아왔는지 등에 대해 객관적이고 심도깊은 분석을 통해 대응책을 세우지 못했다. 그 결과 시덥잖은 이유를 붙여 부시행정부가 벌인 중동에서의 커다란 모험을 효과적으로 저지하지 못한 것이다.

이 점은 다시 한번 맥나마라의 자아비판을 떠올리게 한다.

1. 우리는 적들(북베트남과 베트콩, 이들은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았음알카이다, 이라크, 이란)의 지정학적 의도를 줄곧 오판했고, 그들의 행동이 미국에게 가져오는 위협을 과대평가했다.


물론 적의 사고방식과 의도에 대한 가장 큰 오판이 부시 행정부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7. 결론: 앞으로의 이라크전에 대한 교훈

자 이제 마지막으로 아직 진행중인 이라크 전쟁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마지막 교훈을 살펴보자.

주어진 이러한 "명백한" 사실에 근거할 때, 나는 우리가 디엠 대통령의 암살로 들썩이던 1963년 말이나, 남베트남에서 정치 군사적 취약성의 증대에 직면했던 1964년 말에서 1965년 초 사이에 철수할 수 있었고 철수해야만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 표에 정리해 놓았듯이 철군이 정당화될 수 있는 최소한 세 번의 기회가 더 있었던 것이다.

McNamara, 같은 책, pp.319-320


맥나마라는 돌이켜 보건대 베트남전에서 발을 빼야 함을 시사하는 판단근거가 명백히 나타났고, 그것도 몇 차례에 걸쳐 그랬다고 회고한다. 맥나마라를 위시한 케네디-존슨 행정부 지도자들은 그 때마다 어떻게든 성공시킬 수 있으며, 그래야만 한다는 하면된다(can do) 정신으로 계속 판돈을 올려가며 확전의 길을 걸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종국에는 미국에 뼈아픈 상처를 남겼을 뿐이다.

한편 윌리엄 오덤 장군은 이라크 전에 있어서도 비슷한 현상이 발견된다고 지적한다.

2003년 여름에 전쟁이 꼬이기 시작한 이래, 시아, 수니, 쿠르드 간의 합의가 이라크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신화가 떠올랐다. 맨 처음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그러한 돌파구를 열어줄 것으로 기대되었다. 선거가 끝나도 평화와 안정이 찾아오지 않자 헌법 승인 국민투표가 만병통치약이라고 주장되었다. 그것도 실패하자 우리가 그저 쓸만한 총리감을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지금도 이라크 연구반(ISG)은 이러한 성배를 찾고 있다. 그러나 성배는 존재하지 않는다.

William E. Odom, 이라크에 대한 여섯 가지 잔혹한 진실, 허드슨 연구소, 2006년 12월 11일

어떤 작전이나 이벤트를 완수하면 지금까지의 실패가 성공으로 바뀌는 전환점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국회의원 선거, 국민투표, 새 내각 구성 등에 매달렸지만, 그 기대는 번번히 오판으로 드러났고, 그때마다 한번 더를 외쳐왔다는 것이다.

현임 대통령 조지 W. 부시가 자기 임기 끝까지 이라크전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이상, 선택은 아직 미정인 다음 미국 대통령의 손에 달리게 되었다. 현 미국 대선 예비후보 중에 당선 후 즉각적이고 전면적인 철수를 내거는 인물은 아직 없기 때문에 새 미국 대통령이 들어와도 전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손절매란 것은 언제나 고통스럽고, 또한 그 시점에서는 불확실한 것이기 마련이다. 게다가 잘못된 시점에 손을 털게 되면 그나마 건질 수 있는 몫까지 다 날려버릴 수가 있다. 자원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지금 중동은 함부로 손털고 나올 수 있는 곳이 못된다. 불안한 균형이라도 재건해 놓고 빠져나오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끝으로 한 가지 불안요소가 더 있다.

11. 이들 많은 오류들의 기저에는 장기간에 걸쳐 상당한 제약 하에서 군사력을 사용하는데 따르는 막대한 위험과 비용 -다른 무엇보다도 인명손실- 과 맞물린 지극히 복잡한 일련의 정치 군사적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행정부 최고위층을 조직하는데 실패한 우리의 잘못이 깔려 있었다. 이것이 대통령과 그 보좌관들이 직면한 유일한 과제였다면, 그러한 조직의 약점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해결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것은 우리가 직면한 다른 광범위한 국내적, 국제적 문제들과 공존하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남아시아에서의 우리 행동 -목표, 대안적 정책의 위험과 비용, 실패가 명백해 졌을 때 정책을 변경할 필요성 등- 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행정위원회에서의 논쟁으로 대표될 수 있는 강도와 철저함을 갖고 분석하고 논의하는데 실패했다.


대개의 유권자는 국내경제문제를 외교안보 문제보다 중요시한다. 걸프전에 승리하고서도 경기후퇴의 유탄을 맞아 재선에 실패한 조지 H.W. 부시 대통령의 전례는 그 좋은 예이다.

이제 미국 경제는 심각한 경기후퇴에 직면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든지 간에, 부시 대통령처럼 이라크 문제를 최대의 국정현안으로 붙들고 있을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경제문제와 씨름하는데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라크 전쟁이 다른 현안에게 우선권을 빼앗긴다면 그만큼 그 정책의 성공 가능성은 낮아질 것이다.

by sonnet | 2008/03/30 16:27 | 정치 | 트랙백(1) | 핑백(3) | 덧글(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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