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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유연반응전략
2009/03/09   억지(deterrence): 어떤 기사와 관련해서 [37]
억지(deterrence): 어떤 기사와 관련해서

다음은 벌써 5년 전인 2004년 가을에 공개했던 글을 그대로 옮겨 온 것입니다. 엊그제 올렸던 파워의 비교라는 글에 대해 주신 의견들(예를 들면 teferi, sprinter)에 대해서 논의하자면 우선 배경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조금 소개하고 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어서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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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주장이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이 어떠한 도발도 할 수 없도록 단념시키고(dissuade), 실패할 경우에는 억지(deter)에 나서고, 억지에 실패하면 패배시킬(defeat)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북한은 도발을 시도하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는 ‘단념’ 상태다. 주한미군 재배치와 관련, 가장 시끄럽게 불만을 제기하는 것도 북한 아닌가.”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위 발언을 국내 관료나 정치인 누군가가 했다면 아마 여러 곳에서 벌떼 같은 반론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도발을 시도하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는 단념 상태라니!!!” 북한의 변함없는 남침야욕에 대한 설교부터 시작해서, 서해교전, 강릉 잠수함 사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증거들이 나열되겠지요.

그런데 이 발언은 15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美국무부 東亞太담당 롤리스 부차관보 인터뷰”[1]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국내정치문제와는 무관한 동맹국 미국의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관료[2]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을까요?
그도 빨갱이 혹은 노빠?

사실 놀랄 것도 없는 것이 이 발언에서 롤리스 부차관보가 언급하고 있는 것은 억지(deterrence)라는 개념입니다. 이 개념은 오해하기가 쉬워서, 일반인, 혹은 군사안보문제에 상당한 관심이 있는 일반인이라 하더라도, “억지” 혹은 “억지력”이란 말을 실상 정치가나 관료, 군인, 학자들이 쓰는 의미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실은 예전에도 어떤 토론을 하다가 상대가 “억지력”이란 단어를 저와는 전혀 다른 식으로 사용하는데 질려서, 토론을 포기해버린 경험이 있습니다. 단어 개념설명부터 상대에게 해주자니 피곤하고, 귀찮고 그런 거지요. 여기서는 간단히 이 기사와 관련해서 억지의 몇 가지 특징만 짚어보기로 합니다.



1. 억지와 억지가 아닌 것

우선 글렌 스나이더의 설명을 보겠습니다. 여기서는 앞서의 롤리스 발언에 등장하는 단어들이 그대로 다시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억지란 어떤 의미에서는 단지 정치력의 부정적 측면일 따름이다. 억지는 강제 혹은 강요하는 힘과는 반대로 단념시키는 힘(the power to dissuade)이다.”[3]

즉 억지(deterrence)란 dissuasion이란 단어에 가장 잘 표현되어 있는 바와 같이 상대방에게 어떤 행동을 포기케 하는, 설득해서 그만두게 하는 의미지 '억압해서 포기케 하는' '이쪽의 행동'(보복)에 중점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억지전략이란 필연적으로 현상유지(status quo)를 목표로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억지력을 갖고 있으면 현재와 같이 북한의 전면전 혹은 비정규전 시도를 단념시킬 수 있는데, 이는 바꾸어 말하면 현재의 휴전협정의 유지를 목표로 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 억지력은 북한을 개방과 개혁으로 나오게 만드는 목적으로는 작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군사력을 포함한 위협(threat)을 그러한 목적으로 확장하면 (다른 목적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기존 억지전략의 신뢰성(credibility)은 약화된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억지전략은 기본적으로 나의 진정한 관심사항을 “좁고 명확하게 정의해서” “상대가 확실히 알아듣고 어기지 않도록”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냉전 당시 미국이 (핵)억지전략을 발표하자 소련도 이에 대응하여 악명 높은 비밀주의를 깨고 자신의 군사 독트린을 공개하기 시작한 것은 이러한 배경에 따른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억지상황과 대응수준을 명확하게 규정하게 되면 반대로 규정되지 않은 행동은 억지력이 작용하는 한계의 밖이 됩니다. 억지상황에 규정되지 않은 행동에 대해서도 동일하거나 그 이상의 보복이 가해진다면 상대로서도 “억지조건을 특별히 염두에 둘” 이유가 없어지니까요.

아울러 억지에서는 “무엇을 하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보복하겠다.”는 것은 있지만, 반대로 “무엇을 해라. 그렇지 않으면 보복하겠다.”는 것은 성립하기가 힘듭니다. 억지는 기본적으로 심각한 사태에 대해 심각하게 대응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리고 억지의 한 축을 이루는 보복은 보복을 감행하는 측도 나름대로 심각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무엇을 하지 마라”에서는 미래의 시점에서 위반사항이 발생할 때까지는 보복을 현실화하지 않아도 됩니다. 편하죠. 그런데 “무엇을 해라”에서는 위반사항이 당장 있기 때문에 보복도 바로 혹은 조만간 들어가야 합니다. 만약 보복을 차일피일 미루면 상대로 하여금 억지조건이 허풍이라고 판단하게 만들 가능성만 높아집니다.

따라서 “무엇을 해라. 그렇지 않으면...”은 단순한 최후통첩이나 공갈일 뿐이지 억지전략이 될 수 없습니다.



2. 억지의 신뢰성

냉전 시대를 풍미했던 미국의 핵억지전략 중 하나인 유연반응전략에 대한 분석에는 이런 설명이 있습니다.

“이 핵전략이론의 현실성, 즉 신뢰성은 도시상호파괴의 회피노력에서 구체화된다. 즉 '도시가 파괴되기 전에 종결시킨다'고 하는 분쟁조기종결방식은 설득적(보상적) 억지이론에 입각하고 있는 것이다.” [4]

유연반응전략 이전의 억지전략은 사소한 도발에도 핵탄두를 퍼붓겠다는 위협을 가하는 대량보복전략이었습니다. 그런데 소련이 핵개발을 성공시킨 이후에는 미국 내에서 과연 우리도 핵보복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사소한 도발에 대해 핵탄두를 퍼부을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도 의문시하는 행동을 적에게 믿으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됩니다.
즉 대량보복은 말은 호탕하지만 억지전략으로서는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즉 보복의 내용을 현실적으로 그럴듯한 수준으로 제한하고 궁극적 파국을 회피하려는 노력과 일치하게 함으로서 상대에게 더 신뢰성 있게 들리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 보면 북한의 몇몇 도발에 대해 훨씬 강력한 보복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을 접합니다. 서해교전 같으면 저쪽에서 포를 쏘면 우리는 미사일을 쏴서 한방에 날려버리자든가 그런 식이죠. 감정적으로는 그렇게 말하는 것도 이해는 갑니다만, 이는 억지전략 측면에서 보면 매우 어리석은 의견인 셈입니다.
한국이 전면전을 피하고자 하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하기 때문에 그러한 ‘한국판 대량보복전략’을 억지의 조건으로 내건다면 오히려 억지의 신뢰성이 손상되는 결과를 피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위 설명을 한국에 맞게 약간 바꾼다면 이렇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의 군사적 억지력의 신뢰성은 전면전을 회피하려는 노력에서 구체화된다. '즉 분쟁이 전면전으로 확대되기 전에 종결시킨다'라고 하는 분쟁조기종결방식은 설득적(보상적) 억지이론에 입각하고 있는 것이다.”



3. 롤리스 발언으로 돌아와

위의 롤리스 발언으로 돌아와 보면, 우리는 그가 1)억지 개념을 설명했을 뿐 아니라, 2)억지전략이 미국의 대북정책의 일부이며, 3)미국 정부가 현재 한반도에 그러한 억지가 성립되어 있다고 보며, 4)주한미군 감축 이후에도 이러한 억지는 계속 성립할 수 있다고 평가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억지전략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정책의 전부는 아닙니다. 한국과 미국의 주요한 입장 차이는 한국에게 있어서는 전면전 억지가 1순위인데, 미국은 핵 비확산이 1순위라는 점에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롤리스 부차관보는 적어도 전면전 억지에 대해 미국이 충분한 고려를 하고 있음을 한국인들에게 전달하려는 의도를 갖고 인터뷰를 진행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두 목표를 같이 달성할 수 있기를 양국 당국자들에게 기대해 봅니다.



[1] 강인선, 美국방부 亞太담당 롤리스 부차관보 인터뷰, 조선일보, 2004년 10월 17일
[2] 그는 한미동맹 정책구상회의(FOTA)의 미측 최고 책임자로 용산기지이전, 주한미군감축 등 한미간 안보현안에 중요한 역할을 맡아 오고 있다.
[3] Snyder, Glenn H., Deterrence and Defense, Princeton University Press,, p.9
[4] 최영, 『현대핵전략이론』, 일지사, p.13
by sonnet | 2009/03/09 19:54 | 정치 | 트랙백(1) | 덧글(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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