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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유럽옵션
2006/08/27   NPT와 서독이 내건 '유럽의 옵션' [6]
NPT와 서독이 내건 '유럽의 옵션'
들어가면서
NPT가 체결될 당시, NPT가 표적으로 삼던 잠재핵무장국 No.1은 서독이었다. 따라서 서독은 NPT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기를 썼고, 미국과 소련은 공동의 이해를 위해 손을 잡고 서독을 압박하게 된다.

서독이 더이상 NPT를 거부할 수 없음을 각오했을 때 한 행동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사찰 등의 제약을 가능한 최소화하려는 것이었고, 둘째는 NPT 내부에 미묘한 개구멍(loophole)을 만들어 유사시에 활용하려고 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NPT 2조에 있는 미묘한 개구멍을 서독이 어떻게 활용하려고 했는지를 간단히 설명하기로 한다.

서독의 NPT가입과 '유럽의 옵션'
NPT2조는 비핵무기국이 핵무기를 제조 보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나, 비핵무기국이 핵물질을 핵보유국에 넘기거나 핵보유국의 추가핵무장을 돕는 것을 금지하지는 않고 있다.
(즉 북한이나 이란이 핵개발을 포기하고 확보한 핵물질을 미국에 넘기려 할 경우 아무런 법적 장애가 없다는 뜻이다)

이것은 유럽의 옵션(European Option)이라고 해서 서독이 NPT협상에서 매우 중시한 조건 중 하나였다. 왜 그랬을까?

프랑스나 영국은 핵실험을 마친 증명된 핵기술과 무기설계를 갖고 있지만 미국이나 소련의 핵전력에 맞먹는 전력을 건설할 비용이나 역량은 없는 나라들이었다.

따라서 서독은 미국이 유럽 방위로부터 철수하게 되는 비상 상황이 올 경우, 자신의 막대한 플루토늄 보유량, 고도의 핵기술과 훈련된 인력, 풍부한 자금을 들고 프랑스나 영국을 찾아 공동의 유럽핵전력을 건설하자고 제안할 경우, 영프가 거절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을 하게 된다.
(또한 다른 비핵 유럽국인 이탈리아 등을 꼬드기면 이들도 유럽에서 핵 없이 외톨이가 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동참할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비용을 분담시킬 수 있다는 분석도 이미 해 두었다.)
이를 위해 NPT 비준 과정에서 서독 지도자인 빌리 브란트와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NPT가 유럽 통합을 방해하는 방향으로 해석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아 가입을 하게 된다. 언뜻 보면 그게 뭐가 중요하나 싶지만,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유사시에 NPT를 지키면서도 서독이 핵무장에 참여할 수 있는 뒷 길을 열어 둔 것이다.


유럽통합과정과 핵무장의 관계
그런데 유럽통합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서독의 핵무장에 어떤 도움을 주게 되는 것일까?
이 점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약간의 설명을 필요로 한다.

핵무기에 대한 가장 중요한 권한은 뭘까?
그것은 바로 표적을 정하고 사용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이다.
얼마전 화제가 되었던 미군 전시비축탄약(WRSA) 논란을 놓고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이 경우, 전시에 한국군은 미군의 전시비축탄을 사용하고, 나중에 사용량을 계산해 갚으면 된다.
자 이제 전술핵을 생각해 보자. 전시에 미군의 전술핵포탄을 한국군이 꺼내 쏘고 전쟁이 끝난 후 사용량을 계산해 돈으로 갚을 수 있을까?
당연히 말이 안되는 이야기이다.

NPT에서 핵보유국은 비핵보유국에게 핵무기를 양도하거나 관리권을 넘기면 안 된다(제1조). 그러나 핵보유국이 비핵보유국 영토 안에 자신의 핵무기를 배치하는 것을 금지하지는 않고 있다.
실제로도 미국이 서독, 이탈리아, 남한 등에 핵무기를 배치하였고, 이들의 통제관리 권한은 100% 미국이 틀어쥐고 있었다.

자 이제 서독이 핵물질과 인력과 돈을 왕창 대서 프랑스 명의로 된 핵탄두를 수백발 제조했다고 치자. 프랑스는 "도와준 건 고맙지만" NPT 1조의 규정에 따라 서독에게 핵무기 관리권(사용권)을 줄 수도 없고, 그 권리를 공유할 수도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우리 프랑스가 알아서 니네 서독을 잘 지켜줄 터이니 믿그라잉?!"

이것은 전적으로 NPT 조약에 따른 합법적인 행동이지만, 서독 입장에선 사기당한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유럽통합의 최종적인 목표는 정치적 단일 실체인 유럽합중국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적 단일 실체이기 위해서 유럽합중국은 반드시 대외적으로 단일한 외교정책과 국방정책을 가져야만 한다.
(예를 들어 전라도는 중국과 동맹, 경상도는 일본과 동맹. 이런 식으로 지역별로 독자적인 외교/국방정책을 갖는다면 그것은 각각 독립국가지 하나의 국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유럽합중국이 어떤 한 나라가 나머지 유럽국가를 몽땅 정복해서 만든 것이 아닌 이상, 각 지역이 일정한 대표권과 공동의 정책결정을 위한 의결권 지분을 갖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영국 30%, 프랑스 30%, 서독 25%, 이탈리아 15% 뭐 이런 식이라고 쳐 보자.

이제 유럽합중국은 영국 혹은 프랑스의 핵보유국 권한을 승계했으므로 NPT상의 핵보유국이 된다.(소련 붕괴 후 러시아가 소련의 권한을 승계한 것과 동일) 그런데 유럽합중국에는 독일의 의결권이 25% 반영되어 있고, 이것은 공동의 국방정책인 핵무기 관리권에도 적용될 수 있다.
자 이렇게 해서 NPT상의 비핵무기국인 서독이 유럽통합을 이용해서 합법적으로 핵무기 관리권에 일정한 지분을 소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세!

......
...
이렇게 해서 끝이 아니다.


위 논의는 이론은 좋지만 한 가지 중대한 결점이 있다.
유럽 각 국가들은 서독이 NPT에 서명한지 35년, 냉전이 끝난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확고한 공동의 외교/안보 정책을 갖는 유럽합중국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아직 유럽합중국이 완성되지 않았으므로" 핵보유국 권한은 개별국가 영국과 프랑스에게만 있고, 따라서 서독은 핵보유국 권한에 지분을 가질 수 없다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된다.
(실제로 미국이 이렇게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렇게 되면 처음에 말했던 대로 서독은 닭쫓던 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서독이 내건 조건이 바로 "NPT가 유럽 통합을 방해하는 방향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즉 "유럽 통합이 완성되어 유럽합중국이 탄생하기 전 단계, 유럽통합이 진행되는 중에도 서독은 핵무기 관리권의 지분을 가질 수 있다. 그러지 않다면 NPT는 유럽통합을 방해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해석이 용인된다면 법적으로는 아직까지 영국/프랑스 명의의 핵탄두지만, 유럽 통합이 진행중이므로 서독은 프랑스의 핵표적 선정과 핵탄두 발사권한에 대해 25%의 지분을 가져도 NPT를 위배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즉 서독은 유사시에 교묘하게 NPT를 깨지 않고도 핵무기를 가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려고 했던 것이다.


옵션의 비교: 서독과 일본
자 이제 유사시에 일본과 서독이 핵무장이란 선택을 취할 경우 갖게 되는 차이를 비교해 보도록 하자.

일본은 위에서 설명한 서독의 "유럽의 옵션"에 대응하는 "아시아의 옵션"을 가질 수 없다. 일본 주위에 입증된 핵기술을 가진 나라는 미국, 러시아, 중국이지만, 미국/러시아는 이미 충분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의 지원을 받아 단시간 내에 핵전력을 확충할 이유가 없다. 중국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일본의 주요한 가상적국이므로 협력이 가능할 리 없다.
따라서 일본은 죽으나 사나 자력으로 핵전력을 건설하지 않으면 안된다.

서독은 이에 비하면 단시간 내에, 증명된 핵기술을 이용해 핵무장에 참여할 수 있으며, 비용도 여러 나라가 분담하게 되기 때문에 일본에 비해 훨씬 적은 부담으로 핵무장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어떤 국제조약을 맺을 때 협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자국을 위한 단서조항을 만들어 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by sonnet | 2006/08/27 23:15 | 정치 | 트랙백(1)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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