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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8   엄마가 어디론지 갔어 [9]
엄마가 어디론지 갔어
엄마가 어디론지 갔어


발렌틴 그레고리예비치 라스푸틴 (1937-)

사내아이가 눈을 떴을 때, 천정에서는 파리 한 마리가 기어가고 있었다. 아이는 눈을 잠깐 깜빡거리고 나서 파리가 어디로 기어가는지를 살피기 시작했다.
파리는 창문이 있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멈추지 않고 달렸는데, 그 속도가 아주 빨랐다.
아이는 파리가 길을 달려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다른 파리가 그 길에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것이 정말 길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렇지만 더 이상은 파리가 없었다. 아니 있기는 했지만, 천정을 달리는 파리는 없었다. 그런 이유로 아이는 빠른 속도로 파리에 대한 흥미를 잃고 말았다. 아이는 침대에서 몸을 조금 일으키고 소리를 질렀다.
“엄마, 나 잠 깼어!”
하지만 그 누구의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엄마!”
다시 아이는 불렀다.
“나 착한 애야, 나 잠 깼단 말야!”
조용했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전히 조용했다. 그래서 아이는 침대에서 뛰어내려 맨발로 큰 방으로 달려갔다. 큰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이는 소파와 탁자와 책장을 차례로 살펴보았지만, 그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그저 제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아이는 주방으로, 다시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러나 거기에도 숨어있는 사람은 없었다.
“엄마!”
아이는 소리를 질렀다.
아이의 소리를 정적이 삼켜버렸다. 아이는 그 정적을 믿지 않고 다시 자기 방으로 달려갔다. 페인트칠을 한 방바닥에 나타났던 맨발 자국이 식으면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엄마.”
사내에는 될 수 있는 대로 나직하게 불렀다.
“나 잠 깼는데, 엄만 어디 있어.”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엄마 없는 거야?”
아이는 묻는 투로 말했다.
대답을 기다리는 아이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아이는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 보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끝내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이는 울면서 방을 나가 문을 당겨 보았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아이는 처음에는 손바닥으로 문을 때렸다. 그 다음에는 맨발로 찼다가 발을 다치고는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사내아이는 큰 방의 한복판에 섰다. 아이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굵고 따뜻한 눈물방울이 페인트칠을 한 방바닥에 떨어졌다. 조금 지나서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은 채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주위의 모든 것이 아이의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며 잠자코 있었다.
금세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 느낌에 기다려 봤지만, 헛일이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아이의 마음은 놓이질 않았다.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었다. 그러나 얼마나 지속되었는지는 아이도 몰랐다.
기다리다 못한 아이는 방바닥에 누운 채로 울었다. 아이는 얼마나 지쳤던지 감각을 잃었고, 이미 자기가 운다는 사실조차 느끼질 못했다. 울음은 호흡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서 이미 아이의 의지와는 별개였다. 오히려 울음이 아이보다 더 강했다.
그런데 갑자기 사내아이는 방에 누군가 같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는 냉큼 일어나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이를 일어나게 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아이는 다른 방으로 달려갔다. 이어 주방과 화장실에도 달려갔다. 하지만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아이는 흐느끼면서 되돌아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랬다가 손바닥을 떼고 다시 한번 방을 둘러보았다. 변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소파는 여전히 비어있었고 탁자는 혼자 서있었으며 책장에는 여전히 책들이 꽉 차 있었다. 여러 가지 빛깔의 책등들이 먼눈으로 그를 쓸쓸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는 생각에 잠겼다.
“나 이제 안 울 거야.”
이렇게 아이는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곧 엄마가 올 건데, 뭐. 난 착한 애잖아”
아이는 침대로 가서 이불로 눈물투성이의 얼굴을 문질렀다. 이어 아이는 산책이라도 하듯 서둘지 않고 온 집안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바로 이 때 좋은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엄마, 나 요강에 앉고 싶어.”
아이는 나직이 말했다.
사실 아이는 요강에 앉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 말은 엄마가 집에 있기만 하다면 즉시 자기한테로 달려오게 하는 신호였던 것이다.
“엄~마”
아이는 다시 불렀다.
엄마는 집에 없었다. 결국 아이는 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무슨 일이든 해야 할 것 같았다.
‘좀 놀고 있으면, 엄마가 돌아올 거야’
이렇게 생각한 아이는 자기의 장난감이 쌓여있는 구석으로 가서 토끼를 손에 들었다. 그 토끼는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 인형이었다. 토끼한테는 발이 하나 없었다. 아빠가 그 발을 풀로 도로 붙여 주마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지만, 아이는 끝내 동의하지 않았었다. 두 발이 다 성한 토끼라면 어떻게 그토록 사랑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도로 붙이지 않은 발은 방구석에서 따로 뒹굴고 있었다.
“나하고 놀자, 토끼야”
사내아이는 이렇게 제의했다.
토끼는 말없이 동의했다.
“넌 발이 아프니까 환자잖아. 지금 내가 널 치료해줄게.”
토끼를 침대에 눕힌 아이는 못을 가져와서 토끼의 배에 주사를 놓아주었다.
주사에 습관이 된 토끼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한참이나 무슨 생각인지를 하는 눈치이더니, 무엇인가를 생각해 낸 듯 침대에서 물러나 큰 방을 살짝 엿보았다. 하지만 방에는 아직 변한 것이 없었다. 여전히 정적이 이 구석에서 저 구석으로 넘실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사내아이는 한숨을 포 내쉬고 침대로 돌아와서 토끼를 보았다. 토끼는 베개에 잠자코 누워 있었다.
“안야, 이젠 바꿔야 돼.”
사내아이가 말했다.
“인젠 내가 토끼 할 테니까, 네가 꼬마애 해, 네가 날 고쳐봐.”
아이는 토끼를 의자에 앉히고 자기는 침대에 누워 한 발을 구부려서 올리기 시작했다.
의자에 앉은 토끼는 푸른빛을 한 큰 눈으로 아이를 놀랜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토끼야. 난 발이 아파.”
사내아이가 토끼에게 설명했다.
그러나 토끼는 말이 없었다.
“토끼야, 울 엄마 어디 갔니?”
토끼는 대꾸하지 않았다.
“넌 안자고 있었으니까, 알잖아? 엄마 어디 갔어?”
사내아이는 토끼를 손에 들었다.
토끼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아이는 전에는 자기가 두 가지 역할을 다 하면서 언제나 토끼 대신에 대답했다는 사실을 잊고, 지금은 토끼한테서 진짜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아이는 토끼가 장난감 속의 장난감, 하나하나 쌓아올려야 쌓여지는 조립식 장난감들 속의 장난감, 끌어야 움직이는 차들 속의 장난감, 누가 대신해서 으르렁거리거나 대답해야 으르렁거리고 말도 하는 짐승들 속의 장난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아이는 이 모든 사실을 잊었다.
“말해, 말해!”
아이가 요구했다.
토끼는 여전히 잠자코 있었다.
아이는 토끼를 방바닥에 내던지고는 침대에서 뛰어내려 달려들어서 발로 막 차기 시작했다.
토끼는 방바닥을 뒹굴기도 하고 깡충깡충 뛰기도 하고 한자리에서 맴돌기도 했다. 아이도 깡충깡충 뛰기도 하고 토끼의 주위를 돌아치기도 하면서 “말해! 말해! 말해!” 하고 자꾸 되풀이했다. 하지만 토끼는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발이 하나 밖에 없었으므로.
이 사실을 불현듯 알아차린 사내아이는 동작을 멈췄다. 아이는 서서 토끼가 방바닥에 얼굴을 박고 소리 없이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이에게는 토끼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는 토끼 위로 허리를 숙이고 두 팔을 펼쳐들며 죄지은 듯이 말했다.
“엄마가 어디론지 갔어.”
갑자기 사내아이는 누가 층계로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엄마!”
소리 지르면서 문이 있는 데로 내달려가던 아이는 소파에 걸려 넘어졌다. 아이는 얼른 일어나서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문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내아이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아이는 아파서 울고 외로워서 울었다. 이미 아이는 아프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외로움은 처음으로 겪는 일이었다. 문에서 열쇠소리가 났다…….
by sonnet | 2014/03/08 14:10 | 문화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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