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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외화벌이
2009/11/04   북한의 앵벌이, 또는… [134]
북한의 앵벌이, 또는…
Garry's comment(3).

북의 배급체계에 관계된 북 인원들은, 외부식량을 주민들에게 배급된다고 월급을 더 받는 것은 보통아닙니다. 그러니 이 경우 차 기름값 등 식량 수송 비용 정도만 추가하면 광범위한 주민들에 대한 효율적인 배급이 가능하지요. 그러나 세계식량계획 등을 통해 외부 모니터링을 하면서 배급하는 경우, 그 서구인 직원들 꽤 월급이 쎄나 봅니다. 평양에서 호텔에 머물면서 골프 치면서 일하던데, 그들이 소비하는 행정비용이 지원금 전체의 1/4에 육박합니다. (출처)

WFP는 행정비용으로만 지원액의 25~30%를 써요. 도대체 뭘 했길래 그 많은 돈을 쓴거지요? 평양 호텔에 머물고 골프치러 다니고 평양 호텔에 가끔있다는 여자를 사는데 썼나? (출처)

묻지마 원조를 지지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굶어죽어가는 사람들을 도우러 북한 같은 나라에까지 찾아간 사람들을 원색적으로 비방하는 건 참 보기 뭣한 일입니다. 저렇게 반복해서 주장하는 걸 보니 외국 구호요원들이 평양에서 여자를 샀다거나 골프를 쳤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근거라도 있는지 궁금해지는군요.


우선 호텔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것부터 다뤄보지요. 외국 구호요원들이 평양을 방문할 경우 호텔에 묵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실 시골도 아니고 한 나라의 수도를 방문했는데 호텔에 묵는 게 뭐 대단한 일은 아니긴 하지만 말입니다. 제가 그들이 호텔에 묵었을 거라고 보는 이유는 우선 북한 측이 그렇게 하도록 요구하고, 외국 방문자들로서는 별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1995년에 제네바 핵합의 후속작업의 미국 측 실무진으로 평양을 방문했던 케네스 퀴노네스의 회고입니다. 평양의 고려호텔에서 묵었는데 세부 묘사가 비교적 상세해서 골라 봤습니다.

북한의 공산주의는 평등주의 따위 안중에도 없다. … 사회적·직업적 지위나 연령, 정치적 영향력에 따라 서열사회 안에서 지위가 정해진다. 우리들 일행은 풍요로운 자본주의국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전원 숙박요금이 비싼 방이 할당되었다. 1박 220달러 미 달러화에 의한 현금지불로 한정된다. 크레디트 카드도 달러 이외의 통화도 받아 주지 않는다. 아침이 포함된 요금이지만 점심과 저녁은 별도요금이다. 사우나나 수영 풀, 가라오케 바 등 호텔 안에 있는 각종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 내부의 디자인과 비품은 일본의 전형적인 중급 관광호텔을 연상시켰다. 실제로 욕실 내의 모든 것이 일본에서 들여온 수입품이었다. … 실내의 쾌적한 온방은 오후 11시에 스팀이 끊어짐과 동시에 끝이 났다. 대개 오후 11시경까지는 뜨거운 물이 나왔다. 그러나 그 후 북한을 방문했을 때는 온탕도 온방도 거의 경험할 수 없게 되었다.[1]

이건 북한에서야 일류인지 몰라도 서방 사람들이 묵어서 지탄받을만한 그런 수준의 호텔은 아닙니다. 난방과 급탕이 안들어 올 때가 많았다고 하면, 지내기 편하진 않았겠죠.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호텔에 묵을지에 대해서 외국 방문자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이런 외국인 방문자들을 철저히 감시합니다.

북한 정부는 철저하게 외국인 요원까지 광범위하게 통제했고 감시하여 허가 없이 접촉할 가능성을 제거하려고 했다. 2000년 4월이 되어서야 평양 외 지역의 WFP 사무소 직원들이 동행인을 수반하지 않고도 호텔 밖으로 출입이 허가되었다. 현재 우리는 외교관과 북한에서 일한 외국인의 시각에서 쓰인 북한 생활에 관한 여러 가지 개인적 진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개인 물건을 일방적으로 뒤지고, 전화를 도청하고, 개인적인 이동이나 접촉이 감시받았던 사건들을 때로는 재미있게 때로는 분노에 차서 들려준다. 북한 정부는 지역과 인력을 제한하고 허가받지 않은 접촉을 막는 것을 넘어서서, 원조활동에도 다양한 제한을 가해 만족스러운 모니터링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2]

북한에서 당국의 눈길을 피해 일반인들과 접촉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됩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외국인들을 몰아놓고 감시하는 장소인 평양의 외국인 전용 호텔에 여자를 끌어들인다? 그런데도 여자가 접근해 온다면 그건 공작일 가능성을 제일 먼저 의심해봐야 할겁니다. 2004년 상하이 주재 일본 총영사관 직원이 미인계에 걸려 자살을 선택했던 것처럼, 이런 것은 영화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니까요.


북한 주재 시의 각종 경비에 대한 퀴노네스의 이야길 좀 더 들어보기로 하지요.

평양과 영변에서의 주거조건에 관해서는 세세한 것까지 협의했다. 평양으로부터 영변까지의 이동, 또한 영변의 숙소인 초대소로부터 연구센터까지의 이동은 자동차를 이용하기로 하고 하루 당 80달러로 정했다. 여기에는 운전수의 일당과 연료비도 포함된 것으로 1주일치를 모아 지불하기로 했다. 고려호텔의 숙박요금은 1박 220달러로 식비는 별도로 했다. 영변의 구룡초대소는 식비를 포함해 1일 100달러를 상한으로 한다. 지불은 현금으로 일주일에 한 번 각 개인이 지불한다. 세탁비는 별도 요금으로 고려호텔 요금에 준한다. [미국으로의 국제]전화비는 1분 8달러지만 미국에 의한 경제제재가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이용가능하게 된 것은 1995년 여름부터였다. 그에 따라 팩스도 이용가능하게 되었지만 첫 장은 35달러, 둘째 장부터는 각 30달러였다.
가장 다투었던 것은 디젤 연료의 가격설정이었다. 결국 북한외무성 사람이 북경의 북한대사관에 전화를 해서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에 게재된 당일 국제가격을 물어보는 사태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게 북한에서 쓰는 리터 단위 가격도, 미국에서 쓰는 표준 갤런 당 가격도 아니고, 영국 갤런 단위였기 때문에 이야기가 한층 복잡하게 되었다. 최종적으로는 미국측 과학자들이 리터 환산치와 미국 갤런 환산치를 계산해 거기에 기초해 미국 달러로 지불하는 방식으로 낙착되었다. 국제가격의 변동에 따르지 않고 이 날 정해진 고정가격으로 합의한 것이다.[3]


아주 세세한 것까지 협상하고 기록을 남기는데 이게 다 그럴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자동차 렌트를 둘러싼 다툼 이야기입니다.

국내이동 경비에 대한 교섭에서 미국 측은 차량 1대 당 북한 측 운전사와 미국인 3명이 탑승한다고 계산했었다. 북한 측은 뒷좌석에 미국인 2명, 그리고 앞좌석에는 운전사와 「안내원」 1인이 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계산 차이가 판명된 것은 [출발 당일 아침] 우리들이 평양에서 영변까지 경비가 얼마냐고 물어봤을 때였다. 우리들은 2대니까 160달러라는 말을 들었다. 우리들은 한 대에 타면 되니까 80달러면 된다, 또 한 대 분은 따라오는 북한인들이 지불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반론했지만 “안 됩니다”란 답이 돌아왔다. … 우리들은 그렇다면 차비는 그렇게 할 테니 「안내원」과 운전사의 숙식비는 그쪽이 부담하라고 요구했다. 한동안의 실랑이 끝에 북한 측은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 그 후 몇 개월이 지나도 자동차대, 식비, 숙박비, 세탁료, 전화요금 등을 둘러싼 교섭으로 다툼이 끊임없이 재발했다. 합의를 적은 문서를 갖고 있어도 오해방지책이 되지 못했다.[4]

감시원안내원을 붙이는 데 드는 경비도 북한 측은 외국인들에게 물리려 했다는 점에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본적으로 북한은 말이 되든 안 되든 간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덤탱이 씌워 보려고 꾸준히 시도해서 손해볼 건 없다는 태도를 견지합니다.

차량 렌트비 다음은 전화비입니다. 바로 그 전해(1994년)에 북한이 청구한 전화비 때문에 미 의회에서까지 말이 났던지라 국무부 직원인 퀴노네스로서는 예민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리처드슨 지사는 한편 자신이 1994년 12월 북한을 방문했다가 미군 헬기 조종사 2명의 송환 협상을 벌였던 일을 회고하면서, 북한을 떠나기 하루전 북한측이 국제전화료로 1만달러를 요구했는데, 그 돈이 한국으로부터 "불가사의하게(mysteriously)" 북한으로 송금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송금 경로가 최근 미 재무부로부터 대북 불법 거래 혐의로 제재조치를 받은 마카오의 북한 주거래 은행인지 아니면 다른 경로인지는 이 책에 설명되지 않았다.[5]

존 맥케인 상원의원은 리처드슨 의원의 출장보고서를 보고 왠 전화비가 이렇게 많이 나왔냐고 하고 북한이 미국으로 하여금 “체조”를 하게 했다고 불평했다.[6]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말하면 리처드슨의 회고록 Between Worlds에는 북한의 일단 질러 보는 청구서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

북한은 1996년 간첩죄로 억류했던 한국계 혼혈 미국인 에번 헌지커 석방 협상 때도 벌금으로 10만달러를 요구했었으나, 인질 몸값은 지불하지 않는다는 미 정부 방침에 따라 현지서 가택연금에 든 '호텔비'조로 5천달러에 낙착봤다고 리처드슨 지사는 말했다.[7]

이것도 전형적으로 일단 바가지 씌우고 보는 행태임을 이제 쉽게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자들은 처음부터 만나지 않는 게 상책이지만, 어쩔 수 없이 상대해야 할 경우 그나마 좀 덜 당하려면 처음부터 아주 깐깐하게 되는 건 되고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태도를 고수하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들이 함께 일하는 북한인들은 미국은 풍요로우니까 북한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간단히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언제나 그렇게 말했다. 나는 이것을 「모스크바 증후군」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북한인들은 과거 반세기 동안 필요한 것의 목록을 만들어 그것을 관료기구를 통해 입수하는 방식에 익숙했다. 최종적으로 그 목록은 모스크바에 도달해 그곳에서 곡물이나 석유, 군사물자, 기타 등등이 이 작지만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 잡은 동맹국에게 보내졌다. 요컨대 북한인들은 필요한 것을 사기 위해 특별히 외화를 획득하는 것보다도 「빅 브라더」로부터 그것을 제공받는 데 의존하는 체질에 젖어 있었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1995년 시점에서는 사용후 핵연료 프로젝트가 필요한 물품의 새로운 공급원이 될 수 있는 듯이 보이는 행동을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기기에 관해서도, 장래의 약속에 대해서도,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을 주의 깊게 억제해나간다면 마찰과 욕구불만도 억제할 수 있을 터였다.[8]

퀴노네스는 한 번 뭔가를 쉽게 주는 듯이 보이면 요구가 끊임 없이 들어오게 되고, 그제서야 뒤늦게 거절하기 시작하면 사소한 일로 괴롭히면서 어떻게든 원하는 물건을 짜내려고 드는 일을 겪게 된다고 경고하면서 실제 겪은 사례들을 소개하는데 다 비슷한 이야기들이니까 생략하기로 하지요.


북한의 외화 앵벌이가 겨우 호텔 대금이나 렌트카, 전화비 정도면 좀 짜증나지만 액수로는 그리 크지 않으니 그렇게 심각하게 논할 거리는 못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북한의 청구서 놀이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등장합니다.

북한은 IAEA 사찰단이 영변에서 샘플을 채취하거나 재처리시설에서 감마 매핑을 수행하도록 허용하지 않았는데, 이는 [1994년] 2월 15일 가장 마지막으로 합의된 사항이었다. 게다가 북한은 추가 시설에 대한 샘플 채취를 허용하기 전에 3십만 달러를 요구했다. IAEA 본부가 “전례 없는 비용”이라며 불평을 한 후 북한은 이를 취소했다.[9]


그리고 진짜 황당하게도 북한에 기근 구호차 찾아온 단체들에게도 돈을 뜯으려 시도합니다.

북한 외교부는 NGO들에게 그들이 기증하기로 약속한 물자가 북한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북한을 방문할 수 없다고 통보하였다. NGO들은 북한이 원하는 대로 들어주어야 했으며, NGO들은 북한을 방문하기 전에 물자들을 지원하기로 약속하고 북한을 입국하기 전에 물자들이 정확히 언제 도착하는지를 조정해야 했다. 기아 초기발생시 북한이 필요로 하는 식량과 의약품을 제공하기 위해서, NGO가 현장답사를 기본적으로 요구한다는 것을 북한당국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최대한의 물자를 얻어내기 위해 NGO의 접근을 통제하였다. 예를 들어, 북한이 요구하는 입국비자 수수료는 단순한 수속료 차원을 넘어서는 비싼 가격이었다. NGO 보고에 의하면, 북한당국은 각각의 비자 신청을 승인하는 대가로 50만불의 현금이나 이에 상응하는 물자를 요구하였다고 한다. 아이러니칼하게도 구걸하는 북한체제에 구호활동을 제공하는 NGO들과 UN기관들은 주는 입장이 아니라 북한에 들어가기를 간청하는 신세가 되었다.[10]


이건 외국 뿐 아니라 한국 측 NGO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지원사업을 벌이는 22개 민간단체 회원 9265명이 다음 주부터 10월 하순까지 북한을 방문한다. 북측이 체제 선전을 위해 제작한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서다.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굿네이버스 등 민간단체들은 1박 2일의 짧은 일정 동안 공연 관람 외에 대북지원 실태 조사를 위한 현장방문과 평양지역 문화유적 답사도 할 예정이다. … 1인당 100만 원 선인 요금도 공연관람료(특석 300달러∼C석 50달러)에 전세기 항공료가 포함됐다고는 하지만 터무니없다. 당일치기 개성관광 비용은 19만5000원, 2박 3일의 금강산 관광 요금은 39만∼54만 원 선이다. 결국 북한은 이번 행사로 체제도 선전하고 100억 원대의 현금도 챙기는 셈이다.[11]


대북협력사업의 추진을 위해 민간단체가 다양한 창구를 통해 북한에 접근하고 있으나 북한은 오히려 이를 전략적으로 이용, 민간단체로부터 좀더 많은 지원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즉 북한은 여러 민간단체들에게 계약재배, 그것도 대규모 형태의 계약재배 혹은 협력사업을 제의하면서 비료, 종자 등 영농자재의 선투자를 요구하고 그것에 대한 반응여부에 따라 계약서 체결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 또한 민간의 농업협력사업 추진과정에서 사전 타당성 분석이 미흡하고 계획수립에 필요한 정보 및 전문성의 부족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이 우리 민간단체와 이미 체결한 계약서를 일방적으로 변경하고자 하고 선투자를 요구하는 등 사업추진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12]

이 정도면 제가 왜 이 현상을 '앵벌이'라고 부르는지 다들 이해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구호활동과 관련해 북한 현지에서 발생하는 경비의 적지 않은 부분은 이런 북한의 행태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게 좋을 겁니다. 북한이 뭐 좋고 놀거 많은 곳이라고 거기서 사치를 부려서 돈이 다 나갔겠습니까?


참고자료

[1] Quinones, C. Kenneth., Beyond Negotiation: Implementation of the Agreed Framework, 미출간
(山岡邦彦, 山口瑞彦 역, 『北朝鮮II: 核の秘密都市 寧邊を往く』, 中央公論新社, 2003, pp.92-93)
[2] Haggard, Stephan, and Marcus Noland. Famine in North Korea: Markets, Aid, and Reform. 1st ed.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7. (이형욱 역,『북한의 선택』, 매일경제신문사, 2007, p.155
[3] Quinones, 같은 책, pp.106-107
[4] Quinones, 같은 책, p.108
[5] 윤동영, "2차 북핵위기 후 첫 북미대화는 백악관 냅킨서 시작", 연합뉴스, 2005년 11월 21일
[6] Witt, Joel S., et al, Going Critical: The First North Korean Nuclear Crisis, Brookings Institution, 2004 (김태현 역, 『북핵위기의 전말: 벼랑 끝의 북미협상』, 모음북스, 2005, pp.424-429)
[7] 윤동영, 같은 글
[8] Quinones, 같은 책, pp.145-146
[9] Witt, et al, 같은 책, p.175)
[10] Natsios, Andrew S. The Great North Korean Famine: Famine, Politics, and Foreign Policy. Institute of Peace Press, 2002. (황재옥 역, 『북한의 기아』, 다할미디어, 2003, p.195)
[11] 사설, "비싼 돈 내고 北 선전劇 박수 치러 가야 하나", 동아일보, 2005년 9월 24일
[12] 김운근. “남북한 농업협력의 필요성과 한국의 대북지원.” 통일문제연구. 11.2 (1999): pp.24-25
by sonnet | 2009/11/04 15:16 | 정치 | 트랙백(2) | 핑백(5) | 덧글(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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