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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외교정책
2009/03/07   파워의 비교: 영향력과 잠재력 측면에서 [79]
2008/12/13   보수적 외교정책의 좌절, 급진적 외교정책의 좌절 [14]
파워의 비교: 영향력과 잠재력 측면에서

1.국제정치와 파워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을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권력(power)이 될 것이다. 보다 평범하게 말하자면 정치란 어떤 것이든 권력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점은 국내 정치이든 국제 정치이든 별 차이가 없다. 오히려 국제사회는 약소국이 강대국에게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어디 가서 하소연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의미에서 무정부상태이기 때문에 파워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국제정치에서 파워는 그 맥락에 따라 권력, 힘, 혹은 영향력 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이 모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파워는 강대국(major power)이니 초강대국(super power), 지역강국(regional power)과 같은 식으로 이런 것을 가진 나라인 강대국을 지칭하는데도 사용된다.



2. 파워에 대한 두 가지 접근법

파워는 사랑과 같이 경험하기는 쉽지만 정의를 내리거나 측정하기란 어렵다. 정치학에서는 파워를 다루기 위해 두 가지 다른 접근법을 사용한다.


접근법 1. 결과에 대한 영향력(Influence)으로서의 파워

파워란 자기의 목적이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즉 어떤 일을 할 수 있거나 다른 이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파워다. 예일 대의 정치학자인 달(Robert Dahl)은 파워를 상대방으로 하여금 권력이 아니라면 하지 않았을 일을 하게 만드는 능력[1]이라고 규정한다. 이와는 좀 다른 정의도 있다. 즉 남들이 자신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보다 자신이 남들에게 영향을 더 끼칠 수 있는 정도만큼 파워를 갖고 있다[2]고 정의하는 것이다. 입장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러한 정의들은 기본적으로 파워를 영향력으로 간주한다. 어떤 행위자가 자기 가고 싶은 방향으로 일을 많이 끌고갈 수 있다면 그 행위자는 그만큼 파워 있는 행위자라 할 수 있다.

이런 정의는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일반적인 어법에서 파워는 과정이나 결과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소유물처럼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소련은 강한 파워를 갖고 있다"는 식이다. 이 표현은 "A씨가 큰 재산을 갖고 있다"와 거의 비슷하게 사용된다. 이런 용법은 영향력을 중심으로 한 개념과 잘 맞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나의 파워가 존재하지 않을 경우 상대가 어떤 행동을 했을지를 알아내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실질적으로 미래를 예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다보니 이는 순환논리의 위험을 만들어낸다. 즉 파워가 영향력을 설명하고, 다시 영향력이 파워를 재는 잣대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원인과 결과가 뒤섞이면서 파워라는 개념을 가지고 사건의 원인을 설명하기가 힘들어진다.

이렇게 행위나 결과와 관련지어 권력을 정의하는 방법은 사후에 양 측의 폭넓은 정보를 바탕으로 과거를 재현하는데 많은 노력을 들이는 역사가에는 유용할지도 모르지만, 당면한 현안에 대해 빠른 결정을 내려야 하는 정책결정자나 분석가들에게는 실용성이 떨어진다. 또한 학자들 입장에서도 측정이 까다롭다는 점은 객관적인 학문 연구를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결점이다. 따라서 학자들도 실제 연구에는 이 접근법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접근법 2. 잠재력(capability) 혹은 자원(resource)으로서의 파워

이런 문제점들은 파워를 영향력 그 자체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능력 또는 잠재력으로 간주함으로서 해결될 수 있다. 국제관계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그러한 잠재력이 유형이든 무형이든 국가가 지닌 특정의 성격이나 소유물(예컨대 인구, 영토, 부, 군대 등과 같은)로부터 나온다고 본다. 이러한 의미의 파워는 곧 능력(capability) 또는 자원(resource)이다. 능력은 영향력보다 측정하기 쉬우며, 영향력의 경우보다 순환논리의 위험성도 적다.

하지만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능력을 측정한다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종합적인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마치 사과와 귤을 합치는 것과 같이 다양한 종류의 잠재력을 합산해야 한다. 각국이 지닌 인구·영토·군대의 크기는 다양하다. 게다가 각각의 능력은 특정 목적에만 사용될 수 있다. 기갑사단은 원유수송로를 지킬 수 없고, 잠수함은 모스크바를 점령할 수 없다. 많은 지표들 중에서 중에서 국력을 나타내는 어떤 지표를 하나만 골라보라고 한다면 인구나 영토 같은 국가의 전반적인 크기, 기술수준과 자원, 부를 어느 정도씩 반영하게 되는 국내총생산(GDP)을 유력한 지표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도 기껏해야 개략적인 지표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파워를 만들어내는 자원에는 군대나 영토, 경제력(GDP)와 같은 유형의 것도 있지만 무형의 요소도 있다. 유능한 관료 조직, 수준높은 교육, 정부를 뒷받침하는 대중의 지지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게다가 이보다 더 평가하기 힘든 심리적 메커니즘들도 있다. 예를 들어 이데올로기나 종교, 민족주의 따위는 국내의 잠재력을 동원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만약 한 국가의 가치관이 다른 국가들 사이에 널리 받아들여진다면, 이 국가는 손쉽게 다른 국가들로 하여금 뒤따라오도록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많은 국가들에게 자유시장과 자유무역을 중시하는 미국적 가치관을 전파했는데, 이런 것을 소프트파워(soft power)라 부른다.

이처럼 능력 측정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능력을 측정하려는 시도는 아주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손자병법은 제1장인 시계편(始計篇)에서 국가지도자의 정치적 능력, 날씨와 지리, 장수의 기량과 군대의 조직 등 다양한 기준으로 유불리를 따져봐야 한다고 권고하며 이를 아는 자는 이길 것이요. 모르는 자는 이기지 못한다(知之者勝, 不知者不勝)고 역설한 바 있다.[3]



3. 파워의 전환

앞서 "소련은 강한 파워를 갖고 있다"나 "A씨가 큰 재산을 갖고 있다"처럼 일반적인 용법에서 파워는 과정이나 결과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소유물처럼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고 언급했었다. 그런데 "A씨가 재산을 앞세워 B의 사랑을 얻으려 했지만 실패했다"라는 예를 생각해 보자. 여기서는 A씨의 파워(재산)은 B를 통제한다는 목적을 달성하는데 실패하였다. 그렇다면 A씨는 파워(재산)을 갖지 못한 것인가?

A씨가 가진 재산은 자원이다. 하지만 A씨는 자원을 사용해 영향력으로 바꾸는데는 실패하였다. 우리가 파워를 자원 중심으로 이해하느냐 아니면 영향력 중심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A씨는 파워를 가진 것일 수도 아닌 것일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가 권력을 자원 중심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권력의 전환(power conversion)이라는 핵심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노련한 노름꾼이라면 나쁜 패를 가지고도 이길 수 있는 것처럼, 어떤 국가는 그들의 자원을 효과적인 영향력으로 변환시키는 데 있어 다른 국가보다 더 뛰어나다. 파워의 전환이란, 자원으로 표시되는 잠재적 권력을 다른 국가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현실적 권력으로 전환시키는 능력이다.[4] 이는 다른 말로 전략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파워는 잠재역량과 영향력 중 어느 쪽에 가까운 것일까?

잠재력 혹은 자원을 전쟁수행능력으로 전환(동원)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사례를 제2차 세계대전 중 소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소련의 동원능력은 히틀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으며 이로 인해 독일은 큰 곤경을 겪게 된다.

1941년 11월 말 소련군은 후퇴하면서 막대한 영토를 상실하였는데, 이 지역들에서는 석탄 총생산의 63%, 선철의 68%, 강철의 58%, 알루미늄의 60%, 철로의 41%, 설탕의 84%, 곡물의 38%, 돼지의 60%를 담당하고 있었다.…
모든 재원에 대한 통제는 매우 엄격히 중앙집중화되었으며, 원료도 노동도 유례없을 만큼 전쟁 수행활동에 바쳐졌다. 1940년에 국민소득 중 15%가 ‘군사적 목적’에 사용되었다. 1942년에는 그 수치가 55%로 올라갔으며, 아마도 이것은 유례없는 최고치일 것이다. 지난 10년간 수행된 중앙집중적 계획입안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음은 의심할 여지 없다. …
하지만 전쟁을 치르고 있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재원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중앙집중화가 본질적이었으며, 소련은 전쟁 발발 후 처음 몇 달 동안 치명적인 손실이라고 할 만한 타격을 입은 뒤에 이 중앙집중화를 매우 효과적으로 수행하였다.
1942년 후반기에 이룩된 회복은 계속되는 군사적 패배와 퇴각의 와중에서도 필사적으로 노력을 기울인 결과였다. 그해 말 군사적 형세가 바뀌었지만, 1943년에 있었던 상황의 큰 호전 가운데 영토를 탈환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은 거의 없었다. 독일군은 너무나 철저하게 파괴하여 1943년 (소비에뜨) 우끄라이나의 총공업생산은, 그해 후반기에 소련군이 하르꼬프를 점령하고 11월에는 끼예프를 장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940년 총생산의 1.2%에 지나지 않았다. [5]

반대의 사례 또한 쉽게 찾을 수 있다. 국가의 능력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미국은 지난 60년 간 명실상부한 최강대국이었지만 쿠바나 베트남 같은 약소국을 지배할 수는 없었다. 미국은 이란이나 레바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에서도 많은 좌절을 경험했다. 소련도 분명한 힘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폴란드 루마니아 같은 위성국들을 통제하거나, 아프가니스탄을 평정하는데 곤란을 겪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약소국과 강대국 간의 협상에서 강대국이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소련과 중국의 관계를 조사해보면 “제3세계 국가들의 소련과 중국의 의도대로 양보한 경우보다는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음”[6]을 알 수 있다.

이는 파워에 대한 잠재역량-자원 접근법이 갖는 약점을 잘 보여준다.

이번에는 이런 예를 생각해 보자. 어떤 나라에 새 왕이 즉위했다. 그는 신성한 왕가의 혈통을 잇는 정당한 계승자이다. 그는 즉위 후 선왕과 동일하게 통치하려고 마음먹고 명령을 내리나 신하들을 장악한 재상은 이를 거부한다. 화가 난 왕은 재상을 해임하려고 하지만 재상의 뜻을 거슬려가며 왕에게 충성심을 보이려는 신하는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이 허수아비임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 선입견을 배제하는 데 필요하다면 왕과 재상에 대한 예를 합법적이고 공정한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과 실권자 장군의 관계로 바꿔 읽어도 무방하다. 이 예에서 왕가의 혈통이나 합법적인 당선은 왕이나 대통령의 권력의 정당성을 담보하는 '자원'이다. 하지만 이 자원은 (상대의 방해 때문에) 실질적인 영향력으로 변환되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이제 자문해 보자. 왕(대통령)은 '자원'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파워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의 상식적인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파워의 밑천이 되는 자원은 그 자체로는 파워가 아니다. 자원을 영향력으로 적절히 변환할 수 없을 경우, 자원은 그저 자원일 뿐 파워의 대용물이 될 수 없다.



4. 영향력-결과 접근법과 잠재역량-자원 접근법의 통합

지금까지 살펴본 점들을 정리해 보면, 파워를 다루는 통상적인 용법에는 숨은 가정이 하나 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그 숨은 가정이란 "한 행위자가 상대보다 우월한 잠재역량을 갖고 있다면 [평균적인 효율의 권력전환을 통해] 그에 비례하는 실질적인 영향력이 되어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이다.

만약 파워의 전환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영향력-결과 접근법과 잠재역량-자원 접근법 중 어느 쪽을 택해도 무방하다. 실제로는 잠재역량-자원 접근법에는 파워를 측정하기 쉽다는 중요한 장점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이쪽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이 숨은 가정이 잘 들어맞지 않아서 잠재역량-자원 접근법으로 측정하면 강력한 파워를 가진 것으로 나타나는데, 영향력-결과 접근법으로 평가하면 형편없는 결과가 얻어지는 경우이다. 그리고 앞서 살펴보았듯이 그런 사례는 무수히 많다. 잠재적 파워를 실질적 파워로 바꿔주는 파워의 전환은 까다롭고 신뢰할 수 없는 과정이다.

따라서 파워를 논하기 위해서는 잠재역량-자원 접근법과 영향력-결과 접근법이란 두 개념을 설득력있게 통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1) 우선 결과를 알 수 없는 새로운 상황에서는 잠재역량-자원 접근법이 우월하다. 이는 영향력-결과를 평가항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다.

2) 다음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 잠재역량-자원 접근법과 영향력-결과 접근법이 상충될 경우에는 영향력-결과 접근법을 우선해야 한다. 영향력-결과 접근법이 다루기는 까다로워도 우리가 이해하는 '실질적인' 파워의 개념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잠재역량-자원의 측정에 잘못이 있었거나, 기존에 취해진 파워의 전환 과정(전략)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양 쪽 모두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3) 끝으로 (필요시 재검토를 거쳐) 잠재역량-자원 접근법과 영향력-결과 접근법이 서로 모순없이 잘 들어맞을 경우는 이 판단에 큰 문제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만족스러운 결과이다.


5. 약소국은 강대국을 상대로 한 흥정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약소국이 강대국을 상대로 한 흥정에서 승리하는 경우는 심심찮게 일어난다. 그렇게 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는데 몇 가지만 거론해 보기로 하자.

(1) 버티기
『전쟁론』에서 클라우제비츠가 설파했던 것처럼 공격이란 방어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이는 다른 대부분의 힘겨루기에서도 나타나는데, 남으로 하여금 무엇을 하게 만드는 것 보다는 내가 그것을 단순히 거부하기만 하는 것이 훨씬 쉽다. 약소국은 홈그라운드의 문제를 갖고 멀리 있는 강대국과 다투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이 점에서 훨등히 유리하다.

(2) 집중
약소국은 한 가지 문제에 전력투구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강대국은 세계 온갖 곳에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에 동시에 여러 가지 골치아픈 사안을 다루어야 한다. 신경과 노력이 분산된 강대국이 실수와 약점을 더 많이 노출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3) 위험감수
약소국은 강대국보다 잃을 것이 적기 때문에 보다 큰 위험부담을 질 의향이 있고 주어진 목표를 반드시 성취하려 한다. 이런 점에 있어서는 빈털털이가 가장 유리한 위치일 수도 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대국은 약소국이 붕괴하는 것을 원치 않는 경우도 많다. 강대국은 기존 질서의 수혜자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약소국의 붕괴가 가져올 힘의 공백과 혼란을 좋아하지 않기 마련이다. 이런 관계는 약소국이 강대국을 상대로 자해공갈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4) 희생감수
약소국은 분쟁에서 보다 큰 희생을 감수함으로서 흥정에서 이길 수 있다. 이는 베트남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사례들에서 현지 세력은 훨씬 큰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길 때까지 무한정(?) 싸우겠다는 각오를 잘 보여주었다.

(5) 개방적 의사결정체제 공략
약소국은 의사결정과정이 다원적인 강대국의 국내체제를 공략할 수 있다. 약소국은 강대국 내부의 잘 발달한 언론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다양한 목소리 중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세력(반전운동이나 온건파 관료, 동정적인 언론인 등)을 이용해 강대국의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면 약소국의 의사결정 체제는 소규모이고, 비밀스러우며, 문화적으로도 강대국이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그같은 침투를 방어하기 쉽다.

(6) 줄타기
약소국은 흥정이 만족스럽게 흘러가지 않을 경우 다른 강대국 편에 서겠다고 위협해 흥정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 또한 상대가 여러 국가로 이루어진 연합세력일 경우 이들 사이의 이해관계 차이를 이용해 결속력을 와해시키고 유리한 정세를 조성할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다.



6. 연습문제: 북한 핵 사태

할 이야기는 다 했지만 이야기가 약간 추상적으로 흐른 감이 있다. 그러니 이제 북한 핵 사태를 예로 들어 지금까지의 논의를 한 번 적용해 보도록 하자.

평범하게 잠재역량-자원 접근법에서 보면 북한은 그냥도 남한의 상대가 되기 어렵거니와, 남한에 미국을 더하게 되면 가히 압도적인 결과를 얻게 된다. 인구, 경제력, 군사력, 영토, 기술 등 어지간한 기준은 어느 것이나 수십~수백 배의 차이로 앞서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20여 년 간 남한과 미국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권력이 아니라면 하지 않았을 일을 하게 만드는 능력"을 발휘해 북한을 굴복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핵개발(및 그 운반체인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게 만들지 못하였다. 그들의 핵능력은 그간 더욱 강화되었는데, 이는 영향력-결과 접근법에서 볼 때 파워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였음을 확인해주는 것이다.

사실 돌이켜 보면 지난 20여 년은 남한과 미국에게 있어 좌절스러운 경험의 연속이었으며 이정도로 압도적인 잠재역량-자원을 갖고도 그랬다는 것은 수치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도 "남한은 북한보다 ××한 측면에서 ○○배 앞서 있으니 이미 비교가 무의미"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 ○○배 앞서 있는" 것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권력이 아니라면 하지 않았을 일을 하게 만들어 북한을 우리의 뜻에 따르도록 만드는 효과를 발휘했나? 그렇지 못하다. 자원이 월등하다고 주장하면서도 영향력이 없다는 것은 결국 전략이 졸렬하다는 결론을 자랑스럽게 떠드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앞서 살펴 본 것처럼 문제는 우리가 자원을 잘못 측정했던가 아니면 자원을 영향력으로 바꾸는 전략이 잘못되었거나이다.(물론 3:7 혹은 5:5 같은 식으로 양 쪽에 어느 정도씩 책임이 있을 수도 있다.)

일단 양 측의 전략을 일정하다고 가정하고 나면, 지금까지의 결과를 볼 때 '양측이 선택한 그 전략에' 필요한 총 자원은 적어도 우리 편 입장에서 불충분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충분했으면 벌써 결과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나왔을 테니까 말이다.

자원 측면에서 볼 때,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북한의 실제 자원은 훨씬 클 수 있다. 예를 들어 도박을 위해서라면 전쟁 발발 위험을 더 많이 걸겠다거나 자국민의 더 큰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결의라면 북한 정권이 우리보다 훨씬 앞서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현재 '양측이 선택한 전략'이란 조합 하에서는 이런 특정한 자원의 가중치가 다른 자원에 대한 가중치보다 높을 수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양 측의 자원을 현실적으로 재평가해야 된다. 현재까지의 결과를 설명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우리 측의 자원을 더 늘리는 한 편 상대의 자원을 소진시킬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파워의 균형이 우리 측에게 충분히 유리해질 그 날까지.

자원이 문제가 아니라는 시각을 견지하게 되면 결론은 전략이 졸렬하다는 것이 된다. 충분한 자원을 가지고도 어리석은 전략을 택해 망한 공룡의 사례는 무수히 많으므로 굳이 예를 들 필요까지도 없을 것 같다. 이 경우에는 자원이 일정하게 고정되었다고 보고, 현재 우리 측이 가진 유리한 자원을 더 잘 활용하는 한편, 상대가 지닌 유리한 자원의 가치가 쇠퇴하게 하는 새로운 전략을 모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근 북한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무효화 선언(1월 30일), 비무장지대(DMZ) 육상 충돌 가능성 경고(2월 28일), 영공 및 그 주변을 통과하는 항공기 안전 위협(3월 5일) 등으로 군사적 위협을 고조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군사적 위협을 앞세워 상대의 행동 변화를 촉구하는 것은 포함외교로 상징되는 고전적인 군사력의 외교적 이용(강압 전략)이다. 파워란 "남들이 자신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보다 자신이 남들에게 영향을 더 끼칠 수 있는 정도"를 말한다는 월츠(Kenneth Waltz)의 정의를 다시 떠올려 보자. "이미 비교가 무의미"하다고? 저쪽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1] 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B로 하여금 X를 행하게 만드는 A의 능력에서 어떤 경우라도 B가 X를 자체능력으로 행할 가능성을 제외하고 남는 A의 능력"이라고 정의된다. 보다 상세한 논의는 Dahl, 『Modern Political Analysis』의 5장을 참조.
[2] Waltz, 『국제정치이론』, p.296
[3] 『孫子』 始計篇
[4] Nye, 『국제분쟁의 이해: 이론과 역사』, p.95
[5] Nove, 『소련경제사』, pp.304-309
[6] Alvin Z. Rubinstein, "Observation," in Rubinstein, ed., Soviet and Chinese Influence in the Third World (New York: Praegerm 1975), p.223. Jensen, 『외교정책의 이해』, pp.272-273에서 재인용

참고문헌
Dahl, Robert A., Modern Political Analysis, Prentice Hall, 1963
Goldstein, Joshua S., International Relations (4th ed.), Longman, 2001
(김연각 김진국 백창재 역, 『국제관계의 이해』, 인간사랑, 2002)
Jensen, Lloyd., Explaining Foreign Policy, Prentice Hall, 1982
(김기정 역, 『외교정책의 이해』, 평민사, 2006)
Nove, Alec., An Economic History Of The USSR 1917~1991 (3rd ed.), Penguin, 1993
(김남섭 역, 『소련경제사』, 창작과비평사, 1998)
Nye, Joseph S., Understanding International Conflicts: An Introduction to Theory and History (3rd Ed.), Longman, 2000
(양준희 역, 『국제분쟁의 이해: 이론과 역사』, 한울 아카데미, 2001)
Waltz, Kenneth., 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 Reading, MA: Addison-Wesley, 1979.
(박건영 역, 『국제정치이론』, 사회평론, 2000)
by sonnet | 2009/03/07 05:24 | 정치 | 트랙백(1) | 핑백(5) | 덧글(79)
보수적 외교정책의 좌절, 급진적 외교정책의 좌절

우리는 북한에 대한 관여정책을 계속하고
클린턴 행정부가 남기고 떠난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출발할 것이다.


- 미 국무장관 콜린 파월, 2001년 3월 7일 -

파월은 햇볕정책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재확인받으러 날아온 김대중 대통령과 조찬회담을 같이 한 후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파월은 부시 대통령의 대북관을 잘못 읽고 있었다. 부시는 딕 체니 부통령, 앤드류 카드 비서실장, 캐런 휴즈 공보담당관과 '파월 발언'에 대한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파월에게 명령해 이 발언을 철회시킨다. 부시 행정부는 ABC(anything but clinton)을 모토로 대북한정책을 뒤집지만, 2007년 초 2.13 핵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된 좌절과 실망을 맛봐야만 했다.


우리는 인민들 앞에서 몇 건의 성명서만 발표한 후,
이따위 곳[외무성]은 폐쇄해버릴 것이다.


- 소련 외무인민위원 레프 트로츠키, 1917년 -

소련의 첫 외무장관이던 트로츠키는 자신을 러시아 국가의 대변인이 아니라 전세계 노동자들의 대변인이라고 간주했다. 따라서 그는 그동안 있어온 [제국주의] 국가간 외교란 모두 부르주아들이 벌인 헛짓거리이며, 자신이 할 일은 제국주의적 잔재[러시아 제국이 그간 맺었던 모든 조약]를 신속히 청산한 후 이를 프롤레타리아 연대로 갈아치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후 수 년간 국제사회의 철저한 왕따 신세를 경험한 후, 1922년 소련은 국제사회의 또 다른 왕따 독일과 라팔로 조약을 맺어 외교적 고립에서 탈출을 시도하게 된다.



by sonnet | 2008/12/13 08:13 | 한마디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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