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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4   일본을 무릎꿇린 자원 외교 [26]
일본을 무릎꿇린 자원 외교
(제4차 중동전 당시 석유수급을 논의하던) 각료회의 석상, 다나카 총리가 (자원에너지청 장관에게),

「야마가타 군. 석유의 비축은 어느 정도 있나?」
「49일분 정도입니다.」
「2개월분도 없나?」
「그렇습니다. 그 중 45일분은 산업계를 이미 돌고 있는 상태입니다. 소위 유통 스톡이기 때문에, 그것을 빼면, 완전한 비축은 4일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중략)
4일분이라고 들은, 다나카 씨는 「」이라고 말하면서 팔짱을 끼고, 천정을 노려봤다. 같이 자리한 각료들도 한결같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제아무리 세계 유수의 경제대국이라도 4일치 재고로는...

1973년 10월 6일, …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일본에서 보면, 아득한 저편의 전쟁이 일본인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전쟁과 동시에 개시된 아랍 여러 나라의 「석유전략」의 결과, 일본 열도는 흔들리게 되었다. 10월 16일,OPEC(석유수출국기구)은, 석유 공시가격을 21.22% 인상하고, 평균 1배럴당 3달러 65센트로 할 것을 발표하여, 일본의 석유 관계자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더욱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다음날 10월 17일에 OAPEC(아랍석유수출국기구)이 행한 다음과 같은 결의였다.

이스라엘이 1967년에 점령한 모든 지역에서 철수하고, 팔레스타인 인민의 권리가 회복될 때까지, 원유의 생산을 9월 수준기준으로 매월 5%씩 삭감한다. 우호국에게는, 생산 삭감 이전과 동량의 석유 공급을 보증한다. 적대국인 미국과 네덜란드로의 석유수출을 전면 중지한다. (柳田邦男, 『일본은 불타고 있는가(日本は燃えているか)』上)

결국 적대국인 미국과 네덜란드에 대해서는 석유를 수출하지 않고 비우호국에 대해서는 석유 수출을 매월 5%씩 삭감한다는 것이었다. 우호국이란, 아랍 여러 나라에 군사원조를 하고 있는 나라와, 이스라엘과 단교하거나, 처음부터 국교가 없는 나라였다. 일본은 비우호국의 범주에 속하게 되었다.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태는 악화되었다. 10월 25일, 엑슨 등 국제적 석유기업은 일본에 약 10%의 원유 삭감을 통고해 왔다. 당초 전쟁에서 우세였던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의 반격에 의해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아랍 여러 나라는 더욱더 강경한 조치를 취했다. 11월 5일에는 OAPEC 가맹 10개국이, 11월의 원유 생산을 9월에 비해 25% 삭감한다고 결정했다.

당시 자원에너지청 장관 야마가타 에이지(山形榮治)의 회상이다.

각료회의 석상에서, 다나카 총리가,
「야마가타 군. 석유의 비축은 어느 정도 있나?」
「49일분 정도입니다.」
「2개월분도 없나?」
「그렇습니다. 그 중 45일분은 산업계를 이미 돌고 있는 상태입니다. 소위 유통 스톡이기 때문에, 그것을 빼면, 완전한 비축은 4일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중략)
4일분이라고 들은, 다나카 씨는 「음」이라고 말하면서 팔짱을 끼고, 천정을 노려봤다. 같이 자리한 각료들도 한결같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일의 심각성을, 새삼스럽지만 재인식한 것이다.
(山形,「격동의 나날(激動の日日)」)

당시 일본은 석유의 99.7%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고, 그 중 88%가 중동에서의 수입이었다. 더욱이 이 시기는 석유위기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다나카 내각의 적극적 재정정책과 열도 개조붐 등의 영향으로, 물가가 급속하게 상승하고 있었다. 거기에 석유위기가 엄습한 것이었다.
……
11월 14일, 키신저 미 국무장관이 중동 여러 나라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일본을 들르게 되었다. 키신저는 「중근동 여러 나라에 대한 대응은 미국 정부에 맡기길 바란다.」고 말하며, 일본의 방향 전환에 반대했다. 그러나 국내의 압력을 실감하고 있던 다나카 수상은, 키신저에게

「만약 일본이 미국이 말한 대로 자세를 취해, 아랍 여러 나라로부터 적대시되어 석유가 수출금지(禁輸)될 경우, 미국은 일본이 필요로 하는 석유를 대신 제공해 줄 것인가?

라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대한 키신저의 대답이, 「아니다. 그것은 할 수 없다.」라고 했기 때문에, 다나카는 「그렇다면 일본은 독자적인 외교방침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柳田,『일본은 불타고 있는가(日本は燃えているか)』下)


최종적으로는, 오히라나 외무성도, 아랍정책의 방향 전환을 꾀할 것을 결단한다. 다만 오히라는, 이 일본의 방향 전환에 대해서 미국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3번에 걸쳐 미국의 양해를 구했다. 결국, 「일본 정부의중근동정책 수정에는 찬성할 수 없지만, 이러한 수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일본 정부의 입장은 이해할 수 있다.」라는 성명을 미국으로부터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방침 전환을 선언한 정부 성명안은, 11월 22일, 각의에서 결정되어, 니카이도 스스무(二階堂進) 관방장관 담화 형태로 발표되었다.
……
무력을 최초로 행사한 것이 아랍 여러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성명은 이스라엘에 대해서만 요구를 들이대는 일방적인 것이 되었다. 이전 정책과의 정합성이라는 관점에서 말하자면 매우 큰 정책 전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친 아랍의 자세를 천명하였다. 얼마나 석유위기의 충격이 컸는가, 얼마나 이러한 사태에 대한 준비가 미흡했는지를 보여 주는 증거였다.

또한 정부는 12월 10일부터 부총리인 미키 타케오(三木武夫)를 특사로 아랍 8개국에 파견해 굽신굽신정책 전환을 설명하는 동시에 각국에 여러 가지 경제협력을 할 용의가 있음을 전했다. 아랍 여러 나라가 일본을 「우호국」이라고 인정한 것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였다. 일본에 대한 석유 공급의 단절은 일어나지 않았다.

田中明彦, 『安全保障: 戦後50年の模索 』, 読売新聞社, 1997
(이원덕 역, 『戰後 일본의 안보정책』, 중심, pp.260-265)


by sonnet | 2008/04/24 20:23 | 한마디 | 트랙백(1) | 핑백(1) | 덧글(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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