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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9   리비아 내전에 관해 몇 가지(1) [90]
리비아 내전에 관해 몇 가지(1)

0. 들어가면서

뉴스를 통해 잘 알려진 대로, 현재 리비아는 전면적인 내전의 와중에 있다. 작년 연말 튀니지를 시작으로 중동 전역을 휩쓸고 있는 대중봉기의 물결이 리비아로 옮겨붙었기 때문이다. 서구 강대국들이 연합해 군사개입을 단행함에 이르러 이제는 단순히 일국의 내부 문제가 아니라 국제분쟁의 성격까지 띄게 되었다.

하지만 리비아는 여전히 우리에게 생소한 나라다. 일단 지리적으로 멀고, 문화/종교적으로 공통점이 거의 없으며, 그렇다고 해서 유학, 관광, 취업 등을 통해 민간의 인적 교류가 많으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번 사태 이전, 우리에게 있어 리비아는 한국 건설업체가 진출해 토목 사업을 벌이고 있는 머나먼 나라라는 정도의 아주 막연한 인상을 주는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래 잘 모르는 데다가, 현재와 같은 정치적 격변의 시기에 입수되는 소식이란 불확실한 이야기들 뿐이며, 아울러 상황이 매우 빠르게 바뀌기에 애써 확보한 정보조차 곧 낡은 것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정치적 격변에도 불구하고 쉽게 변화하기 힘든 역사, 지리, 인구, 종교, 민족 같은 요소들은 혼돈 속에서 우리가 길을 잃지 않게 도와주는 견고한 발판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리비아의 현 정세에 대한 분석은 바로 이러한 인구지리적 요소를 살펴보는데서 시작하도록 하자.

하지만 우리가 이런 요소들을 고지식하고 서툴게 다룬다면, 이것은 단순히 리비아란 나라의 역사 문화 지리를 대략적으로 소개한 대중서를 한 권 읽은 것 같은 결과로 끝나버릴 우려가 있다. 우리는 현재 진행중인 리비아 사태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기에, 현 사태와 분리된 '역사책 읽기'는 불만족스러운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현 리비아 사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부분을 추려내어 그것이 현재 사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하나 하나 보이며 전진해야만 한다.


1. 권역: 이해의 틀

아랍 세계에서 리비아는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등과 함께 마그레브(Maghreb)라는 지역에 속한다. 이 말은 '해가 지는 곳' 또는 '해가 질 무렵' 등을 지칭하는 말인데, 그 뜻처럼 아랍세계의 서부, 지중해에 연한 북아프리카의 서부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중동정치를 논할 경우 마그레브는 아랍 세계의 서쪽 "변방"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무난하다.

아랍어 사용권역 중 마그레브 지역

참고로 같은 북아프리카 아랍 지역이라도 이집트는 마그레브에 속하지 않는다. 사실 이집트는 인구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아니면 정치적으로든 아랍 세계의 중심이지 변방이 될 수는 없는 곳이다. 이는 우리가 중동을 휩쓸고 있는 일련의 대중봉기를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하다. 이집트에서 혁명이 일어난 것은 세계사적 위상을 가진 사건이다. 하지만 튀니지 혁명은 그렇지 못하다. 만약 튀니지 혁명이 이집트로 이어지지 못하고 그저 튀니지 한 나라의 사건으로 끝나 버렸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변방에서 일어난 지역적인 사건으로 취급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에서 우리의 관심국인 리비아는 어떤가? 리비아는 어느 정도 규모있는 산유국이기 때문에 분명 튀니지보다는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비아는 여전히 아랍 세계의 중심에서 멀고 인구가 적으며 중요성이 떨어지는 나라다. 특히 이집트에서 이미 혁명이 일어나 버렸기에, 주변국으로의 파급효과 또한 반감된 상태다.

마그레브는 분명히 덜 중요한 지역이다. 적어도 아랍 세계의 관점에서는 그러하며, 아울러 전지구적 관점에서도 그렇다. 이는 미국이 리비아 사태 개입에 왜 그렇게 흐릿한 자세를 취하는지에 대한 한 가지 설명을 제공해 준다.

하지만 마그레브 지역의 정치불안에 민감해야 할 만한 나라들이 또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지역과 마주보고 있는 지중해 연안의 유럽국가들, 특히 이탈리아나 프랑스이다.

평소에 우리는 편의상 세계를 유럽, 중동, 아랍 하는 식으로 몇 묶음의 나라들로 나누어 생각하고 있다. 이는 대개의 경우에 유용하지만, 가끔 그 분류기준이 잘 맞지 않아 오히려 이해를 방해하는 경우가 생긴다. 즉 다른 기준으로 묶었으면 하나로 묶였을 나라들이 다른 범주에 속하게 됨으로서 멀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유럽과 아랍은 다른 범주니까 일정한 거리감을 주고 거기에 더해, 마그레브는 다시 아랍의 변방이니까 한층 더 멀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탈리아나 프랑스 같은 나라들은 지리적으로 이들과 가깝고, 역사적으로 마그레브 지역을 식민통치했으며, 현재의 경제적 관계도 깊다. 그러므로 이때는 이런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다른 분석틀이 필요하다. 이번 경우에는 '지중해 세계'정도가 보다 유용한 분석틀이라 하겠다. 이 범주를 이용할 경우 마그레브와 남유럽은 하나로 묶일 수 있고, 역내 문제는 역외 문제보다 더 큰 중요성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면서 그들의 문제를 더 잘 포착할 수 있다.

지중해권. 이렇게 보면 앞선 지도에선 잘 보이지 않았던 유럽과 마그레브 지역의 관계가 드러난다.

앞서도 소개했었지만, 이미 튀니지 난민 문제로 이탈리아와 다른 유럽 국가들이 설전을 벌이고 있는데, 이는 지중해권이라는 분석틀의 적실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한편 미국은 리비아 문제를 전지구적인 중요성을 가진 사건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유럽이 책임져야 할 지역 문제로 본다. 아랍이 아랍의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어 서방이 개입해야 한다 하더라도 유럽도 부유하고 힘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지중해 권역의 문제를 왜 대서양 저편에 있는 우리가 총대매고 앞장서야 하나? 그러니 미국은 리비아 문제라면 유럽이 앞장서서 해결하고 우리는 뒤에서 돕는 정도로만 하겠다고 꾸준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사정을 좀 더 살펴보자. 미국은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2001)과 이라크(2003) 전쟁에 뛰어들어 지난 10년 동안 막대한 비용을 썼고 커다란 인명피해를 입었으며 지금도 군사력 중 상당부분이 이 두 나라에 묶여 있다. 또한 국내정치적으로도 미국 국민들이 지리하게 계속되는 전쟁에 이미 지쳐 있기에 대외군사개입에 대한 열정을 찾기 어려운 상태다. 경제도 문제인데, 2008년에 시작된 경제위기의 후유증이 여전하고 재정이 압박받는 상황에서 새로운 전비지출을 피하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이 아무리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갖고 있다 해도, 이러한 상황에서는 전세계 이곳저곳에서 일어나는 분쟁에 모두 뛰어들 수는 없다. 덜 중요한 사안에 개입했다가 더 중요한 사안을 놓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따라서 미국은 진정 사활적인 국익이 걸린 사안으로만 대외군사개입을 제한하여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선별이 중요해진다.

이제 현재의 중동 정세를 돌이켜 보자. 중동 정변의 물결이 리비아에서 끝이 난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리비아나 이집트는 평소 중동에서 내정이 안정되어 있다고 평가되었던 나라들인데도 이 모양이며, 심지어는 경찰국가로 이름높아 중동에서 가장 혁명이 어려워 보인다던 시리아조차도 시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 마디로 말해서 현 상황에서는 그 어떤 중동 국가도 안심할 수가 없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정변이 일어나 왕정이 무너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 최대의 산유국인 만큼,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정변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세계적 사건이 될 것이다.

또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보면,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제일 큰 경쟁국은 이란이라고 할 수 있다. 1979년의 이란 혁명 이래 미국의 중동전략의 초점은 이란의 영향력 확대를 봉쇄하는데 맞춰져 있었다. 예를 들어 이란-이라크전 당시 미국은 이라크를 지원했는데, 그 이유는 사담 후세인이 좋아서가 아니라 단지 이란을 엿먹이기 위해서였다. 그렇기에 이란-이라크전이 끝나자 마자 미국은 이라크에 대한 협력관계를 중단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근 10년 동안 미국이 가장 많은 정치적, 군사적 노력을 투자한 나라는 이라크이다. 이라크는 산유국으로도 중요하고, 중동의 지정학적 중심으로도 중요하며, 미국이 그간 쏟아부은 노력의 크기로 봐도 중요하다. 게다가 현재의 이라크는 패전과 국가의 해체를 거쳐 약체화된 상태이기에 중동의 강국으로 자립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또한 바레인 사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아라비아 반도의 걸프협력기구(GCC)국가들이 쉬아파의 정치적 세력확대에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이라크의 신생 쉬아파 정권이 다른 순니 아랍 국가와 제휴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결국 이라크가 미국의 영향권에서 떨어져나갈 경우, 이 나라는 이란의 영향권에 포섭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처럼 커다란 투자를 해놓고 나서 이제와서 미국이 이라크를 잃는다는 것은 대외정책의 파탄을 의미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이렇게 세 나라를 연결하면 이제 미국의 핵심이해가 걸린 지역이 분명하게 떠오르게 된다. 그곳은 바로 페르시아만 일대이다. 이 세 나라의 산유량은 어마어마한 데다가, 여기에 쿠웨이트 UAE등 보다 작은 지역국가들의 산유량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다. 이 지역은 미국 뿐 아니라 한중일 등 동아시아 국가들에게도 에너지 수급이란 측면에서 사활적 이익이 걸린 곳이기에 진정한 세계의 지정학적 요충지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미국은 중동 전 지역에 다양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지만, 어느 한 곳을 골라 개입해야 한다면 여기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핵심이익이 걸린 중동 국가들. 지정학적 초점은 페르시아만이다.


이제 우리의 주제인 리비아로 돌아와보면, 중동 전역에 정치적 폭풍이 몰아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리비아가 지정학적 초점에서 벗어나 있음은 분명하다. 리비아는 인구, 지리적 위치, 역사문화적 전통 등 모든 측면에서 아랍 내부의 위상에서도 중요성이 떨어지고, 미국이나 아시아 국가들의 에너지 수급 차원에서도 중요성이 떨어진다. 다만 남유럽 국가들에게는 독특한 중요성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현 상황에서 리비아는 부차적이고 지역적인 문제로 취급되는 것이고, 유럽이 책임져야 할 문제로 규정되어간 것이다.


2. 인구와 지리, 교통

리비아의 국토 면적은 176만 ㎢이고 인구는 약 660만 명이다. 이해하기 쉽게 우리나라와 비교해 보면, 면적은 남한의 17.5배, 인구는 1/8정도이다. 이 둘을 곱하면 인구밀도가 우리의 140분의 1이란 이야기가 된다. 물론 어떤 나라든지 간에 인구가 전국에 고루 분포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감각에 비해 인구밀도가 낮은 것만은 확실하다.

또한 인구의 절대수로도 비교적 작은 나라(세계 101위)에 속한다. 중동-아랍 세계에서 한 덩치한다고 할 수 있는 이집트(8,200만), 이란(7,800만)에 비교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중간급 국가군을 형성하고 있는 이라크(3,000만), 사우디아라비아(2,600만), 시리아(2,250만) 등에 비해서도 현격히 작다. 냉정히 평가해 인구 1천만 이하는 중동 세계에서 힘자랑을 하기에는 너무 경량급 선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물론 중동에는 자타가 인정하는 최강의 주먹인 이스라엘(750만)이 있는데, 이 나라는 너무 유별나니까 예외로 하자) 카다피가 리비아를 40년 넘게 다스리면서 그토록 아랍의 맹주가 되고 싶어했지만 될 수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어서 국토 중 경작가능지의 비율을 살펴보자. 한국의 경우 경작가능지는 국토의 17% 정도이다. 리비아의 경우는 어떤가 하면 1%에 불과하다. 세계에서 제일 큰 사막인 사하라사막 한복판에 위치한 나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음 지도를 보자


이 지도가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는 평소 리비아를 대략 네모지게 생긴 나라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런 인식은 현 리비아 사태를 이해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리비아 국토의 99%는 경작이 불가능하며, 물도 없고 환경이 불모한 이런 곳에는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질 않는 법이다. 즉 리비아 국토 대부분이 사람이 살기 부적합한 곳이다.

그렇다면 경작이 가능하고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역은 어디인가가 문제가 되는데, 경작가능지는 해안선을 따라, 특히 [카다피군의 본거지] 수도 트리폴리 인근의 지파라 평원과 [반군의 중심지] 벵가지 인근의 자발 알 아크다르 지역에 몰려 있다. 이 점은 리비아의 야경을 한 번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이제 사람들이 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지역을 중심으로 지도를 재구성하면 리비아의 모습은 극적으로 달라진다. 이 나라는 근본적으로 해안선을 따라 동서로 길게 펼쳐진 길이 1,800km, 폭 50km 정도의 가늘고 긴 띠 모양의 나라이다.

이렇게 동서로만 한없이 늘어진 영토가 하나의 국가로 유지되기 위해선 영토를 연결하는 교통수단이 필요하다. 이렇게 긴 거리를 연결한다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철도이지만, 리비아엔 철도가 없다. 대신 해안선을 따라 놓여진 아프리카 횡단 고속도로가 하나 있다. 이 도로가 리비아의 주요 도시 전부를 연결하는 척추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과감히 단순화한다면 리비아는 1차원의 직선으로 나타낼 수 있다. 직선 위에 주요 도시들이 배치된다. 뉴스를 보면 알겠지만 현재의 리비아 내전은 이 직선 위를 옮겨다니며 다음 도시를 만날 때마다 전투를 벌이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하철 노선도 혹은 윳놀이 판처럼 보이지만…
"아제다비아: 앗, NATO군의 공습을 만났다. 뒤로 두 칸 가시오"


이번 리비아 내전의 보도사진들을 주의깊게 본 사람들은 아마 사막을 가로질러 길게 뻗은 도로 위에서 찍은 사진이 이상할 정도로 많다는 점을 느꼈을 것이다.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들이 리비아 내전을 이해하는데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한 가지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내전 초기에 반군 측의 주장을 옮긴 언론들은 반군이 리비아 영토의 90%를 장악했다고 전했었다. 그리고 그 말은 은연중에 이 나라의 9할을 차지했다는 의미처럼 사용되었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것처럼 리비아 영토는 사막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넓이는 전혀 중요하지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면적이 아니라 인구였다. 인구의 90%를 장악했다면 이 나라의 9할을 차지했을 개연성이 높지만, 면적의 90%는 그렇게 볼 수가 없었다.

반군이 영토의 90%를 장악했다는 주장이 곧 인구의 90%를 장악했다는 뜻이었다면 카다피측은 실로 절망적인 상태였을 것이다. 수도를 제외한 전국이 함락되고, 수도조차도 1/3 정도는 넘어간 채 수도 일각에 포위되어 있는 상태였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인구를 기준으로 하면 카다피측은 수도 트리폴리(105만)와 카다피의 고향 시르테(15만), 기타 몇몇 도시들을 합쳐 가장 불리했을 때도 대략 인구의 30% 정도는 장악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세계 사람들이 받은 인상에 비해 카다피측의 실제 상황은 훨씬 덜 불리한 상태였고 다시 일어나 반군을 몰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3. 역사와 세 지역, 그리고 정체성 정치

"일본은 없다"가 아니라 '리비아는 없다'고 대담하게 선언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리비아는 통일된 국가정체성이 빈약한 나라다. 미 의회도서관이 간행한 Country Profile: Libya는 이 점을 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1951년 독립할 때까지 리비아'란 곳'의 역사는 본질적으로 그 일대에 자리잡고 있던 부족, 종교, 도시들의 역사이자 그들이 속해 있던 제국의 역사의 일부였다.

리비아란 이름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알고 있던 한 베르베르 부족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이 멀리 그리스에까지 전해지게 되면서 리비아란 그리스 사람들에게 북아프리카 지역 대부분과 그 지역에 사는 모든 베르베르계 주민들을 뭉뚱그려 부르는 단어가 되었다.

이처럼 그 이름의 유래가 오래된 것이긴 해도 20세기가 찾아오기 전까지 리비아란 단어는 오늘날 우리가 리비아라고 부르는 나라의 특정 지역이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지칭하는데 사용되지 않았으며 그 지역이 하나의 정치적 실체로 뭉쳐본 적도 없었다.

그러니 현재 리비아가 자리잡은 지역의 역사가 길긴 해도, 현대 리비아국은 여전히 국민 정체성과 국가조직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인 신생국가로 간주해야만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오늘날의 리비아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이탈리아 식민지였던, 각각 독립적인 역사를 가진 세 지역이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세 지역은 서로 이질적인 면이 많다. 앞의 설명을 좀 더 참조해 보기로 하자.

지리는 각기 독립적인 역사를 가진 리비아의 전통적인 세 지역을 나눠놓는 근본적 결정요소다. 북서쪽에 위치한 트리폴리타니아, 남서쪽에 자리 잡은 페잔, 마지막으로 세 지역 중 제일 크고 리비아의 동쪽 절반을 차지하는 키레나이카가 있다. 각각의 지역은 험난한 사막으로 분리되어 있었기에, 각 지역은 1960년대까지도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했다.

트리폴리타니아의 심장부는 대도시인 수도 트리폴리다. 이 도시는 여러 세기에 걸쳐 사하라 무역로를 오가는 대상들의 종점이자 해적과 노예상인들이 웅거하는 항구였다. 이곳 문화는 마그레브의 문화와 결부되어 있다. 트리폴리타니아는 지리적으로도 마그레브의 일부고, 문화적으로도 그러하며, 역사도 공유한다. 마그레브는 북서아프리카의 서부 이슬람 세계를 가리키는 말로, 여기에는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와 트리폴리타니아가 포함된다. 트리폴리타니아는 그들의 정치의식을 외세 지배에 대한 반동에서 키워갔고, 현대 리비아국의 통일에 가장 적극적인 동력도 트리폴리타니아에서 나왔다.

트리폴리타니아와는 대조적으로 키레나이카는 역사적으로 이집트와 마시리크에 연결되어 있다. 마시리크는 이슬람 세계의 동부지역(중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 [카다피] 정권 측은 권위를 주장하지만 그들의 권위는 내륙벽지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기에, 몇몇 해안 도시들을 제외하면, 키레나이카는 상대적으로 정권의 정치적 영향력에 영향 받지 않은 상태로 남겨져 있다. 이 지역에 존재하는 부족사회를 묶어주는 내적 통합의 요소는 19세기에 사누시란 이름의 무슬림 교단에 의해 도입되었다. 그리고 많은 키레나이카 사람들은 리비아의 독립과 통일 이후에도 그들의 종교적 자율성을 수호하려는 결의를 보여주었다.

페잔은 마그레브와 마시리크 양쪽 모두와 연계가 약하다. 그 유목민들은 전통적으로 사막의 무역로 사이에 흩어져 있는 오아시스를 지배하는 부족 왕조들의 지배권에 관심이 있었다. 페잔은 해안지역 못지않게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 두 지도를 비교해 보면 쉽게 느낄 수 있지만 지금 리비아 내전은 트리폴리타니아와 키레나이카가 대립하는 형국, 즉 카다피군이 트리폴리타니아를, 반군이 키레나이카를 차지하고 맞서는 형태를 띄고 있다. 키레나이카의 중심은 벵가지인데, 그래서 벵가지가 함락되면 반군은 끝이라고들 말하는 것이고, 벵가지 입구까지 카다피군이 진출하자 개입을 망설이던 서구 열강들도 더는 미루지 못하고 참전했던 것이다.

그럼 페잔은? 이라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음직한데, 페잔은 두 가지 이유에서 대세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페잔은 다른 두 지역에 비해 인구가 월등히 적다. 페잔의 인구는 44만 명 정도인데, 전체 인구의 8% 정도에 불과하다. 둘째, 주요한 전투는 모두 해안선 상의 도시들을 따라 이루어지고 있으며, 카다피군이 이기든 반군이 이기든 간에 여기서 승리한 자가 자연히 페잔도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금까지 설명은 근거가 충분한 것인가? 카다피가 트리폴리타니아를 반군이 키레나이카를 차지하고 싸우는 것은 우연한 결과일 수도 있지 않은가. 이를 검토하기 위해 다시 리비아의 역사로 돌아가 보기로 하자.

19세기 들어 여러 부족으로 분열되어 있던 키레나이카에는 이슬람 수피즘 계열의 사누시 교단이 지배적인 세력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 지역의 지배자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사누시 교단의 자치를 인정하고 공존을 택했기 때문에 이들은 평화적으로 융성했다. 그런데 이탈리아가 리비아 일대를 식민지로 삼기 위해 침공하면서, 키레나이카는 이 사누시 교단을 중심으로 무장독립운동을 펼치게 된다. 몇십 년에 걸친 이 투쟁 중에 전설적인 사막의 게릴라전 지도자가 탄생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오마르 무크타르다.

사누시 교단의 무장독립운동은 끝내 진압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인 1951년, 트리폴리타니아, 키레나이카, 페잔을 합쳐 리비아 연합왕국으로 독립하게 되면서, 사누시 교단은 다시 한 번 정권을 잡게 된다. 사누시교단 창시자의 손자이자 교단의 최고지도자인 이드리스 1세가 국왕으로 취임했기 때문이다. 18년 후 쿠데타로 이드리스 1세를 쫓아내고 정권을 잡은 것이 바로 지금의 카다피로 그는 그 이래 42년간 리비아를 통치하고 있다. 이때 카다피는 아랍민족주의를 높이 쳐들고 친서방 노선을 걷던 이드리스 왕을 공격했었다. 그리고 집권 후 몇십 년 동안 키레나이카를 경제적으로 홀대했다.

이번 리비아 내전에서 반군 측은 키레나이카/사누시 교단과 관련된 상징을 계속 사용했다. 반군의 깃발은 이드리스 왕이 다스리던 리비아 왕국의 삼색기이고, 또 반군측 사람들은 오마르 무크타르와 이드리스 왕의 사진을 흔들며 다녔다. 이것은 반군 측의 결속을 돕고 정체성을 과시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지만, 반대로 트리폴리타니아 사람들의 경계심을 자극했고 카다피 진영의 좋은 선전거리가 되기도 했다. 히틀러의 침공을 받자 공산 소련이 '어머니 러시아'를 앞세웠던 것처럼, 카다피와 반군 진영은 공히 자기들의 전통적인 상징과 공동체 의식에 호소했던 것이다.
옛 리비아 왕국의 삼색기를 쓰는 시위대와 반군
이드리스 왕(왼쪽)과 오마르 무크타르(오른쪽)의 사진을 흔들어 보이는 반군 측



4. 경제: It's OIL, stupid!

다들 짐작하듯이 리비아 경제는 기본적으로 석유 하나만 보고 간다고 말할 수 있다. CIA The World Fact Book에 따르면, "수출의 95%, GDP의 25%, 정부수입의 80%가 석유산업에서 나온다" 그럼 석유 이외엔 또 무슨 산업이 있는가? 이 나라 제2의 산업은 놀랍게도 농업이다. 근로인구의 17%가 달라붙어 GDP의 2.6%를 생산하고 있다. 경작가능지가 1%밖에 안되는 사막의 나라에서 농업이 두번째라는 것은 이 나라에 (석유관련 이외의) 제대로 된 2차산업이 없음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이런 나라는 우리가 알고 있는 나라와 운영방식이 상당히 다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일반적인 국가들은 국민이 돈을 벌고, 국가는 국민에게 걷은 세금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리비아 같은 산유국은 그렇지 않다. 국가는 국민이 낸 세금이 아니라 땅파서 나온 돈으로 굴러간다. 오히려 국가는 땅에서 퍼올린 돈의 일부를 국민에게 나눠준다. 그 방법은 다양한데, 보조금 덕택에 국제가격보다 훨씬 싸게 석유나 식량을 사서 쓸 수 있다든가, 의료, 교육 등의 무상혜택을 준다든가, 거대한 국영부문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게다가 석유산업은 그 수익에 비해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결과적으로 산유국 정부는 국민이 내는 세금에 깊이 의존하지도 않을 뿐더러, 석유산업을 운영하는데 있어 국민의 노동에 크게 의존하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산유국 정부와 통치자들은 국민에 대해 상당히 높은 자율성을 갖고 있다. 평범한 국가에 비해 훨씬 더 자기 멋대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는 말이다. 산유국 정부가 유일하게 걱정하는 것은 국민 혹은 군대 같은 대안적 엘리트 집단이 들고 일어나 정부를 무너뜨리고 통치자를 쫓아내는 것 뿐이다. 산유국 통치자들이 석유수입의 일부를 국민에게 복지의 형태로 나눠주는 것은 국민을 회유하기 위한 것이며, 그들 식의 사회계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물론 카다피가 다스리는 리비아 같은 나라는 국민을 회유하기 위해 석유수입을 분배한다 하더라도, 그리 공정하게 하지는 않는다. 일단 내가 압도적으로 큰 몫을 챙기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나머지 자원도 내 아들딸들, 우리 일가친척, 내 친구들, 우리 부족, 우리 고향 등에 훨씬 유리하게 나눠준다. 언뜻 생각하면 문제가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사회불만계층이 형성될텐데 정권에 위협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들도 나름의 논리를 갖고 있다. 내가 무너질 경우 잃을 것이 많은 특권층을 육성해야 위기에 직면했을 때도 나를 위해 충성하고 싸워줄 것이다. 모두에게 차이 없게 뜨뜻미지근하게 대했다면 유사시에 누가 나를 위해 목숨을 건단 말인가?

이런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식의 생각은 근대적인 사회윤리관을 주입받은 우리에게는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인류 수천 년의 역사에 등장했던 엄청나게 많은 통치자들이 이런 행동원리에 입각해 나라를 다스려 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것이 우리의 이데올로기의 잣대로 볼 때 옳거나 혹은 생존전략으로 반드시 합리적이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오랜 역사와 시행착오를 통해 검증된 상당히 우수한 전략임은 틀림없다.

최근 일련의 중동-아랍 각국에서 진행 중인 정치소요를 보면, 이 지역 정권안보에는 근대적 통치전략보다 전근대적 통치전략이 우월하다는 점이 다시 한 번 입증되는 것 같다. 기성 엘리트 집단 -군부- 가 위기에 처한 현재의 통치자와 같은 배를 타고 위기를 정면돌파하길 거부한 튀니지와 이집트에서는 정권이 허무할 정도로 쉽게 무너진 반면, 친위대를 자기 아들, 자기 조카, 자기 부족사람으로 도배해 놓은 예멘이라든가, 군과 보안기관을 같은 소수종파(알라위파) 사람들로 채워 놓은 시리아, 정권을 위협할 요소를 없애기 위해 정규군을 약화시켜놓은 리비아 등이 끈질기게 버티며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예멘, 시리아, 리비아 등의 집권 엘리트 집단은 현 통치자를 배신했을 때,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보호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같은 가문, 같은 부족, 같은 소수종파 등의 딱지는 정치적 전향을 했다고 떨어져나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간 소외되어온 집단들은 수십 년간 마음 속으로 칼을 갈아왔다. 무조건 투항해 선처만 바래 볼 것인가 아니면 한 번 끝까지 싸워볼 것인가? 선택은 처음부터 크게 제한되어 있었다. 그것이 바로 그 나라 통치자들의 전략이었다.

물론 통치자들은 동요계층이나 잠재적 적대계층에도 자원을 분배하기는 한다. 하나도 분배하지 않으면 그들이 들고일어날 가능성이 너무 높아지기 때문이다. 특권층의 충성을 충분히 확보하는 한편 나머지가 반란을 일으키기에는 또 불충분할 정도의 불평등한 분배, 이 두 기준 사이에서 그들은 쉽지 않은 줄타기를 하고 있다.


한편 앞에서 리비아는 해안의 사람 사는 곳이 중요하고 내륙은 온통 사막이라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었다. 여기에 예외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유전이다. 석유와 가스는 내륙 깊숙한 곳에서 난다. 다만 이때도 해안지역의 중요성은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 채굴한 원유는 해안까지 끌고 와야만 해외에 수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유전을 빼앗기더라도 그 유전의 송유관이 연결된 항구를 장악하고 있으면 상대는 유전을 전혀 활용할 수 없다.

어찌되었든 석유는 리비아 경제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기에, 석유를 장악하고 석유수입을 얻을 수 있느냐 여부는 카다피군과 반군 모두에게 사활을 건 문제다. 특히 내전이 장기화되거나 리비아가 둘로 분할된다면 더더욱 그렇다. 자 이제 리비아의 석유 네트워크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한 번 보자.

이 그림을 보면 카다피군과 반군이 왜 라스 라누프와 브레가 사이에서 일진일퇴를 벌이며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지를 바로 알 수 있다. 그곳이 바로 석유수출항과 정유시설이 모여있는 곳이다.

현재 양 측의 재정은 모두 좋지 않다. 반군 측은 급조되었으니 별다른 비축자금이 없는 것은 당연하고 현재도 재정적으로 매우 쪼들리는 상태다. 한편 카다피 측은 수십 년의 장기독재를 통해 축적한 거액의 비밀자금이 있을 것이 확실시된다. 그리고 독재자들은 일반적으로 매우 조심스럽게 자금을 위장, 분산해 놓기 때문에, 이를 잡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제재로 동결된 리비아 자산이 의외의 거액인 32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볼 때, 카다피 측의 재정도 썩 좋지는 않으리라고 추정된다. 아울러 카다피 진영은 국제사회에서 철저히 고립되어 있고 용병에 의존하고 있으며 해당지역의 인구도 더 많아 자금수요는 반군보다는 상당히 클 것으로 보인다. 카다피군과 반군 진영 모두는 수 주에서 수 개월 내에 자금난에 봉착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는데, 이것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시간이 지나봐야만 알 수 있을 것 같다.

어찌되었든 이 지역을 확보하여 여기서 나는 수입을 챙길 수 있는지 여부가, 반군이 재정적으로 장기전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결판지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반군의 후원국들이 자금을 대야 하는데 미국·유럽이 모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중동국가 대부분은 자기 코가 석자인 상황에서 누가 그런 부담스러운 역할을 떠맡을 수 있을지 현재로는 불확실하다.




이야기가 길어진 감이 있는데, 리비아 내전 본편에 관련된 내용들, 즉 리비아 정부, 리비아군, 반군의 형성, 그간 벌어진 전투의 특징, 테크니컬(민수용 픽업트럭에 무기를 올린 것) 등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루기로 한다.
by sonnet | 2011/04/19 08:06 | 정치 | 트랙백(1) | 덧글(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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