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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에드워드사이드
2011/10/30   폭정의 반대말은? [45]
폭정의 반대말은?
카다피 정권의 몰락은 중동에서 처음 맞는 진정한 체제전환(regime change)의 문을 열었다 할 수 있다. 튀니지와 이집트가 있지 않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집트의 경우 체제의 몸통은 군부이고 머리가 무바라크인 그런 관계에 가깝다. 따라서 여전히 군부가 멀쩡히 살아 있는 상태에서 점진적인 전환은 가능해도 혁명적인 전환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유력하다. 튀니지는 이집트보단 좀 덜하지만 리비아와는 비할 수 없이 구체제의 요소가 많이 남아 있다.

하여간 중동-아랍 세계에서 체제전환을 맞는 나라가 하나든 셋이든 간에, 체제전환이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 하는 것은 미지수인 부분이 많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 나는 버나드 루이스의 주장이 얼마나 통찰력을 보여줄지 흥미를 갖고 있다. 그는 10여 년 전에 출간한 한 책에서 서구 세계와 이슬람 세계는 폭정을 이해하는 방법이 좀 다르다는 주장을 펼쳤었다.

For traditional Muslims, the converse of tyranny was not liberty, but justice

맥락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관련 설명을 좀 더 길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러한 새로운 인식은 전통적인 정치적 가치 체계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무슬림들은 항상 정치학이라든지 헌법과 같은 서구의 정치 용어들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무슬림들은 통치자의 역할과 통치자와 그의 백성들의 관계를 명시하는 것이 성스런 이슬람법이라고 믿고 있다. 서양 사람들이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전제와 자유라는 개념을 생각하는 반면, 중동 사람들은 자유를 정치적인 개념이 아닌 사회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즉, 서구와는 달리 자유를 노예 상태가 아닌 상황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처럼 무슬림들은 노예 상태와 자유라는 개념을 정치적인 용어로 사용하지 않았다. 전통적인 무슬림들에게 전제의 반대되는 개념은 자유가 아닌 정의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의는 궁극적으로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통치자는 찬탈이 아닌 적법한 과정을 통해 지위에 올라야 한다는 것과, 둘째 통치자는 하느님의 법, 또는 적어도 승인과 납득할 수 있는 도덕적․법률적 원칙에 의거해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의미는 대부분 중동 국가들이 군주제를 폐지하면서 정권 계승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두 번째 의미는 전제 정부와 협의 정부를 구별하는 기준으로 적용되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중요한 사안으로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전제적 정부는 통치자가 독단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행하는 것을 의미하며, 협의 정부는 현명하고 공정한 통치자가 다른 관료 및 국민들과 협의를 거쳐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꾸란』을 위시한 이슬람 경전들은 ‘협의’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협의와 관련된 개념과 실행 방법에 대해서는 이론적으로 정립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적용된 사례도 없다.

Lewis, Bernard. What Went Wrong?: Western Impact and Middle Eastern Response. 4th ed. Oxford University Press, 2001.
(서정민 역, 『무엇이 잘못되었나 : 서구와 중동, 그 화합과 충돌의 역사』. 1st ed. 서울: 나무와 숲, 2002. pp.88-89)


루이스도 이번 '아랍의 봄'을 예상하고 한 말은 아니겠지만, 사태의 전개가 이렇게 되고 보니 그가 아랍 세계의 정치적 지향성을 제대로 짚었는지가 중동의 미래를 전망하는데 중요하게 되었다.

자유와 정의는 둘이 꼭 상호배타적이어야 할 이유도 없지만,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점 정도는 분명하다. 폭군을 타도한 아랍인들은 조국에서 폭군의 통치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에 힘을 기울일 것인가? 강조점이 자유의 실현에 주어지는가 아니면 정의의 실현에 주어지는가에 따라 새로운 정치가 지향하는 방향은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루이스는 대영제국 시절 영국의 동방연구의 맥을 직접 잇는 최후의 거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학파는 이런 저런 비판도 많이 받은 바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이란 이름을 붙여 공격했던 표적 중 하나가 바로 루이스다) 과연 루이스는 국외자의 날카로운 눈으로 아랍-무슬림 세계의 독특한 특징을 잘 포착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사이드가 말했듯이 제국주의적 편견의 표출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by sonnet | 2011/10/30 16:12 | 정치 | 트랙백 | 덧글(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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