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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어청수
2008/09/06   배후세력을 찾아서: 우리 정부의 정책결정과정에 대한 "무모한" 설명 [123]
배후세력을 찾아서: 우리 정부의 정책결정과정에 대한 "무모한" 설명

이 글은 앞선 글 "정보평가와 정책검토"의 2부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앞의 글을 읽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가능하면 그쪽을 먼저 읽고 보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들어가면서

앞선 글에서는 「분석 패러다임」(analytic paradigm)의 입장에서 볼 때, 이명박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에는 적지 않은 약점이 보인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지난번 글의 설명을 조금만 반복해 보기로 하자.

어떤 의사결정문제가 있을 경우, 분석 패러다임은 일련의 대안을 상정해 각각이 가져올 잠재적 결과들을 고려한 후, 의사결정의 본질적 과정의 일부로 관련된 상충되는 목표들을 통합한다. 이러한 통합 과정 중에 판단의 근거가 될 정보들을 수집해 평가에 반영하는 과정이 포함되며, 끝내는 의사결정자의 여러 목표들에 대한 종합적 관점에서 볼 때 이해득실을 따져 가장 큰 이익을 줄 것처럼 생각되는 대안을 선택하게 된다. 즉 분석 패러다임에 따른 의사결정이란 주어진 객관적 상황 하에서 개인 혹은 조직은 주어진 목표달성을 극대화하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그런데 앞선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의사결정에 참고가 될 정보가 충분히 입수가능한데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거나, 검토과정 자체에 소홀한 끝에 이를 제대로 의사결정에 반영하지 않는다면 분석 패러다임은 급속히 그 효력을 잃게 된다.

이것이 현 대한민국 정부가 안고 있는 의사결정과정의 중요한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는 이야기였다.


이처럼 지난번 글에서 우리는 이명박 정부의 행동을 분석하기 위해, 가장 널리 쓰이는 이론인 분석 패러다임이란 돋보기를 들이대어 관찰한 후, 그에 따른 진단과 처방을 내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우리는 과연 적절한 도구를 사용해 관찰했던 것일까? 우리 정부는 돋보기 대신 현미경이나 망원경으로 관찰해야 더 적절한 상대일 수 있지 않을까?

이번 글에서는 「분석 패러다임」과는 다른 패러다임으로 접근했을 때, 이명박 정부의 행동 중 몇몇 부분을 더 잘 설명할 수 있음을 보이고, 그러한 결과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2. 사이버네틱 패러다임

의사결정과정 중 분석 패러다임이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되는 유력한 이론 중 하나로 메릴랜드 대학의 정치학자 John Steinbruner가 제시하는 「사이버네틱 패러다임」(cybernetic paradigm)이란 것이 있다.

이 패러다임이 묘사하는 의사결정과정은 「분석 패러다임」이 묘사하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사이버네틱 패러다임」이 묘사하는 의사결정과정이란 의사결정자가 복잡한 문제의 단순화된 이미지에 입각해 늘 하던 익숙한 방법으로 행동하며, 단순화 그 자체가 함축하고 있는 범위를 제외하고는 그들의 노력의 결과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 듣는 사람이라면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의사결정을 하는데 노력의 결과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니? 이게 무슨 황당무계한 소리인가?

이 패러다임을 쉽게 이해하려면 비유를 통하는 것이 좋다. 현실 세계에는 사이버네틱한 방법으로 움직이는 장치가 많이 있는데, 이런 방식으로 움직이는 장치를 통틀어 서보메커니즘(servomechanism)이라고 부른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서보메커니즘으로는 주택의 자동온도조절기를 들 수 있다. 이 외에도 항공기의 자동조종장치, 열추적 미사일, 꿀벌이나 개미가 길을 찾는 방법, 염색체의 DNA 등이 모두 서보메커니즘에 속한다.

이런 장치들은 「분석 패러다임」이 하듯이 모든 정보를 종합해 결과를 계산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들은 단순히 몇 개의 피드백 변수만 확인하면서 오직 그 변수가 가진 한정된 정보에만 반응한다.

주택의 온도조절기를 떠올려 보자. 온도조절기는 온도센서에 감지된 실내온도가 설정된 온도보다 낮으면 난방 밸브를 열어 집을 덥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실내온도가 목표한 수치에 도달하면 밸브를 닫아 난방공급을 중단한다. 그러면 집이 도로 서서히 식을 것이고 너무 많이 식게 되면 온도센서가 이를 감지해 다시 난방 밸브를 열게 된다.

온도조절기 같은 서보메커니즘들은 정해진 일련의 과정을 수행한 끝에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이 결과는 「분석 패러다임」이 상정하고 있는 사전에 내려진, 결과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에 의한 것은 아니다.

온도조절기는 지금 집에 사람이 없어도, 심지어는 주인이 멀리 여행을 가 한 달 내내 돌아올 예정이 없어도, 눈금만 맞춰져 있으면 끝까지 집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즉 온도조절기가 확인하는 피드백 변수에는 집에 사람이 있느냐 내지는 가까운 시간 안에 들어올 가능성이 있느냐가 포함되어 있지 않고, 온도조절기는 이런 정보가 있더라도 깨끗이 무시한다.

서보메커니즘은 이처럼 현재 처한 환경의 복잡함을 대부분 무시하기 때문에, 「분석 패러다임」이 갖는 제일 큰 약점 중 하나인 계산부담, 즉 어떤 의사결정을 했을 때 얻어질 미래의 결과를 추정하기 위해 가용한 정보를 융합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을 피할 수 있다. 이것이 「사이버네틱 패러다임」이 갖는 최대의 장점이다.

앞서 든 기계적 혹은 생물학적 예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단순한 「사이버네틱 패러다임」은 제대로 사용되면 놀랄 만큼 탁월하고 적응력 있는 결과를 가져다주곤 한다.

예를 들어 열추적 미사일을 생각해 보자. 열추적 센서라는 단순한 서보메커니즘을 탑재한 공대공 미사일은 값비싼 전투기를 높은 확률로 격추할 수 있다. 그 전투기에는 비싼 돈을 들여 오랜 기간 훈련시킨 최고의 전문가인 전투기 조종사들이 타고 있고, 단 하나뿐인 자신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이리저리 회피기동을 하겠지만 그래도 살아남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사이버네틱 메커니즘에도 특유의 약점이 있다. 사이버네틱 메커니즘의 성공여부는 명백히 주변 환경이 적절한가에 달려 있다. 주어진 환경의 편차가 사이버네틱 메커니즘의 허용범위를 넘으면 이 장치는 더 이상 제대로 동작할 수 없다.

열추적 미사일의 예로 돌아와 보자. 국경을 넘어온 괴 비행물체를 쫓아 긴급 발진한 전투기는 이것이 어느 무모한 아마추어가 몰고 있는 경비행기라는 것을 육안으로 확인한다. 무전으로 착륙을 요구하지만 붉은 광장에 착륙하겠다는 야심을 품은 이 아마추어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투기 조종사는 위협사격을 가하고자 하는데…….

멍텅구리 기관포라면 앞으로 똑바로만 날아가기 때문에 조종사가 눈치껏 겨냥한다면 간단히 위협사격을 가할 수 있다. 하지만 열추적 미사일은 미사일의 머리를 무조건 열원 방향으로 고정시키는 서보메커니즘, 일단 불붙으면 끝까지 타버리며 가속하는 로켓 모터, 격추시킬 수 있는 거리에 어떤 물체가 들어오면 그대로 폭발하는 근접신관이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런 장치로는 위협사격에 활용한다는 비상히 예외적인 시나리오를 적절히 수용할 수 없다.

이같은 사이버네틱한 의사결정은 인간 개인 혹은 조직에서도 흔히 이루어진다. 업무 매뉴얼이 잘 정립된 회사나 공공조직의 일상적인 운영은 많은 부분이 사이버네틱한 의사결정에 따라 진행된다.

자 이제 「사이버네틱 패러다임」이라는 새 현미경을 갖고 우리의 정부를 관찰해 보기로 하자.


3. 명박산성™의 사이버네틱한 이해

촛불시위가 절정의 위세를 구가하던 2008년 6월 10일, 서울 세종로 한복판에는 시위대의 진출을 차단하기 위한 거대한 컨테이너 장벽이 세워졌다. 이것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시민들 사이에서 속칭 명박산성™이란 별명을 얻게 된다.

2008년 6월, 광화문 네거리에 설치되어 일약 명물이 된, 속칭 명박산성™

명박산성™을 보는 시민들의 눈은 차가왔다. 일단 생긴 것이 흉물스러웠고, 서울의 상징적인 한복판에 자리잡았다는 점도 일조하였다. 이는 대화와 소통을 거부한다는 이명박의 명백한 정치적 메시지라는 해석이 큰 공감을 얻었다. 당시 많은 신문 만평들도 정부와 대통령을 조롱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런데 이게 과연 대화와 소통을 거부한다는 이명박의 명백한 정치적 메시지였을까?

10일 촛불집회 행렬의 청와대 진출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서울 세종로에 설치된 ‘컨테이너 박스 차단벽’은 어청수 경찰청창의 아이디어인 것으로 알려졌다.

어 청장은 부산경찰청장과 경기경찰청장으로 있을 때 대규모 시위나 집회 때마다 컨테이너 차단막을 동원해 시위대의 진입로를 봉쇄하고 시위대와 경찰 간의 충돌을 막아 톡톡히 효과를 보았다.

2005년 11월 부산 APEC 반대 시위 당시 부산경찰청장으로 있던 어 청장은 시위대의 회의장 진입을 막기 위해 회의장으로부터 1㎞ 떨어진 수영교 위에 모래를 담은 컨테이너 90여개를 2층 높이로 쌓아 차단벽을 설치했다. 시위대가 컨테이너 10여개를 넘어뜨리는 과정에서 전경과 시위대 수십 명이 다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컨테이너벽 설치가 실질적인 시위대 차단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어 청장이 경기경찰청장으로 있던 2006년 여름엔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집회에서 대추리로 진입하는 도로폭 5m의 마을 농로 수십 곳에 컨테이너 박스와 전경 버스로 이중 차단벽을 만들어 시위대의 진입을 봉쇄하는 데 성공했다.

`컨테이너 바리케이트`는 누구 작품?, 중앙일보, 2008년 6월 10일

즉 이러한 대응은 처음이 아니며, 시위대응의 책임을 진 경찰 총수는 지금까지 늘 이 방법을 써서 재미를 보면서 승진을 거듭해 왔다는 것이다. 임기 초, 전혀 예상치 못했던 국민의 대규모 반발에 직면해 당황하고 있던 우리의 정치지도부가 대책을 내놓으라고 실무자를 다그쳤을 때, 이런 경력의 사나이가 '그 기술 다시 한번'을 제시했다는 설명은 무척 자연스럽다.

적어도 이명박이 대화를 거부한다는 정치적 상징으로 그런 벽을 세웠다는 해석보다는 말이다.

이런 사건은 수도 서울의 한복판을 상징하는 세종로 사거리에 이런 컨테이너 바리케이트를 쌓았을 때, 그것이 상대방의 눈에 어떻게 비치겠는가를 헤아릴 시각적이고 입체적인 상상력, 정치적인 상상력이 그저 단순히 결여되어 있기만 해도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상상력의 결여는 사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 대부분에게도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회사에서 신제품의 개발에 관여해 본 사람은 그런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제품이 시장에 나가자마자 커다란 문제를 일으켰는데, 실은 아주 단순한 문제이고, 게다가 정작 그 제품을 만들기로 한 기획회의에서 그런 문제는 아무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든가 하는 것 말이다.

그 정치적 둔감함이 빈축을 사는 것까지는 이해할만하지만, 그것을 굳이 가장 악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대중이 그저 자신의 꼬인 심사를 가장 편하게 하는 해석을 취했을 뿐이 아닐까? 아예 선동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사이버네틱 패러다임이란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았을 때, 명박산성™의 논리는 매우 간명하다.

(1) 전경 스크럼이나 차량 바리케이트 같은 다른 수단으로 저지가 쉽지 않다고 예상될 때 설치된다.
(2) 시위대의 규모가 커지는데 비례해 더욱 커다란 벽을 쌓고 더 튼튼히 보강한다.
(3) 지난번 전개 때의 경험을 살려 취약점을 보강한다
(4) (1)로 돌아간다.

보도사진 등을 검토해 보면 과거 APEC 등에 세워졌던 구버전 성벽에 비해 명박산성™이 확실히 개선되고 보강된 존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2)(3)의 피드백 논리는 착실히 동작했던 것이다.

또한 사이버네틱한 논리는 흉물스러운 외관과 정치적 이미지 손실에도 불구하고 왜 명박산성™이 건립되었는가도 설명해줄 수 있다. 시위대의 규모나 차단작전의 위상은 결과에 정확히 반영되는 피드백 변수이지만, 시민의 눈에 비친 흉물스러움 등은 사이버네틱한 명박산성™의 논리가 모니터링하는 피드백 변수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명박산성™의 논리는 잘 생각해보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 이명박 정부를 위한 논리라기 보다는 경찰을 위한 논리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명박산성™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정치적으로 점수를 좀 잃는다 해도 그것은 경찰이 직접 책임지거나 뒷처리를 맡아야 하는 요소는 아니다. 하지만 저지선이 무너졌을 경우엔 경찰이 모든 독박을 쓸 수밖에 없다. 저지업무는 경찰의 핵심과업(critical mission)인 반면 이명박의 정치력 관리는 본업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사실 경찰의 눈으로 볼 때 명박산성™은 어렵고 힘든 과업, 잘못되는 날엔 된통 깨질게 뻔한 위험천만한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도와주는 유용한 도구로 비치지, 시민의 앞길을 가로막는 가증스러운 장벽일 수는 없다. 그것은 적진의 시각이지 우리편의 시각이 아닌 것이다. 이러니 경찰이 정치적 마이너스 요소에 둔감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처럼 하위기관인 경찰이 사이버네틱한 행태를 보이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관료조직의 행동이론(혹은 관료정치이론)은 대개 사이버네틱한 논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완고한 관료행태에 대해 우리들이 느끼는 불만 대부분은 사이버네틱한 논리와 충돌한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다.

문제는 고위층의 의사결정과정이다. 내각이나 청와대에서 이루어졌을 대책회의에서는 경찰 이외의 시각이 다양하게 등장할 수 있고, 또한 그래야 마땅하다. 예를 들어 청와대 정무수석이나 대통령 본인은 대통령과 정부의 정치적 이미지를 우려하는 시각을 제기하고 토론에 붙였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경찰 같은 하위기관이 놓치고 지나간 요소들을 「분석 패러다임」을 통해 보완할 수 있는 것이다.

명박산성™이 이러한 토의 끝에 그래도 약간의 정치적 이미지 손실 정도는 시위대 저지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해 건립된 것이라면 그 결정은 충분히 납득이 간다. 그러나 이 글의 1부에서 살펴본 청와대의 회의 모습은 과연 그러한 검토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하기에 충분하다.

여러 언론 기사에서 등장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방사형 업무 스타일, 즉 대통령이 회의를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지 않고, 대통령 자신이 중심에 서서 각 기관 담당자들을 개별적으로 관리하는 식의 업무 스타일에서는 대통령이 시위저지업무를 맡은 경찰의 의견만 중점적으로 듣고 균형잡힌 조언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업무추진을 승인했다고 볼 여지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명박산성™은 큰 인명피해 없이 대규모 시위를 성공적으로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의 사이버네틱한 대응 치고는 낙제점은 면한 케이스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후에 거론하게 될 다른 사례들은 이보다 더 나쁘긴 하지만 말이다.


4. 프레이크 사건과 인상지워진 판단

앞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이명박이 대화를 거부한다는 정치적 상징으로 그런 벽을 세웠다는 식의 감성적 인상은 인상지워진 판단을 낳는데, 이러한 판단은 종종 큰 문제를 낳곤 한다.

이 문제를 조금 짚고 넘어가기 위해서, 역사재평가를 위해 베트남전 당시 미국과 베트남의 정책담당자들이 모여 학술회의를 개최했던 1997년으로 돌아가 보기로 하자.

체스터 쿠퍼(당시 미 국무성 베트남 전문관)

여러분 나는 프레이크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965년 초 워싱턴에서는 아직 전쟁을 해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의견이 갈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존슨 대통령은 대통령 보좌관이던 맥조지 번디씨에게 베트남에 가서 상황을 살펴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권고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번디씨와 기타 수 명의 국가 안전 보장 회의 멤버와 함께 숙명적인, 그렇습니다. 뒤에 숙명적이라고 생각하게 된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번디 대통령 보좌관은 베트남으로 출발하기 전에 3개의 가능성에 대해 검토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나는 미국의 군사 개입의 확대, 또 하나는 현상 유지,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단계적인 철수였습니다. 이 3개가 당시 나의 직속상관이었던 번디씨에게 주어진 선택지였습니다.

3개의 선택지 중에서 두 번째의 ‘현상 유지’는 아무런 성과도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이 이미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선택지 ‘단계적 철수’에 대해서는, 미국 내에서도 65년 2월 시점에는 이미 그런 선택지는 있을 수 없었다고 주장하는 지식인도 있습니다. 존슨 정부는 이 시점에 이미 베트남에 대한 본격적인 개입을 결심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나는 이들의 의견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 때 번디 대통령 보좌관이 ‘단계적 축소’를 권고했더라면, 존슨 대통령이 그것을 채용할 가능성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우리가 사이공에 있던 바로 그 때 프레이크 공군 기지가 당신들에게 공격을 받아 많은 미국 병사가 사망했습니다.

1965년 2월 6일, 맥조지 번디 대통령 보좌관과 체스터 쿠퍼씨 등 조사단 일행을 태운 특별기가 사이공에 도착했다. 번디씨는 안전 보장 문제 담당 보좌관으로, 베트남 전쟁 수행에 맥나마라 장관과 함께 대통령에게 영향력을 갖고 있던 인물이다. 64년 말의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존슨 대통령은, 베트남 문제에 본격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가장 신뢰하는 부하 중 한 사람인 번디 대통령 보좌관을 사이공에 파견하여 권고안을 내라고 명령한 것이었다.

조사단의 사이공 도착이 2월 6일. 그 다음 날인 7일 새벽, 아직 장거리 여행의 피로도 채 가시지 않은 번디 조사단 앞으로 베트남 중부에 있는 프레이크 공군 기지가 공격을 받았다는 보고가 날아들었다. 프레이크 공군 기지는 베트남 중부 지역에 있는 남베트남 정부군과 미 군사 고문단의 최대 거점의 하나였다. 이 공격으로 남베트남 정부군의 헬리콥터가 대량으로 파괴되었고, 미국인 병사 8명이 사망했으며, 1백 명 가까이가 부상을 입었다.

번디씨 등 조사단은 프레이크 공군 기지로 직행해서 상황을 시찰했다. 파괴된 헬리콥터, 사망자, 그리고 야전 병원에 수용된 1백 명 가까운 부상자. 조사단은 이 공격을 번디씨가 사이공에 있다는 사실을 안 북 베트남 정부의 도발 행위로 단정했다.

실은 이때 조사단에게는 또 하나의 판단 재료가 있었다. 그 때 소련의 코시긴 수상이 하노이에 체재하면서 북 베트남 정부 수뇌들과 회담을 했던 것이다. 번디씨 등 조사단은 북 베트남 정부가 코시긴 수상에게 “미국에 굴종할 생각은 없다”는 자세를 과시하기 위해 공격을 감행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프레이크 공격이 북 베트남정부의 명령에 따른 공격이라고 확신했다.

번디씨 등 조사단은 즉시 북 베트남 본토에 대한 보복 공격을 권고하는 전보를 워싱턴으로 발신했다. 북폭 권고를 받은 존슨 대통령은 국가 안전 보장 회의를 열었고, 온건파 맨스필드 상원 의원을 제외한 회의 멤버 전원이 북폭 개시를 지지했다.

다음 날 급거 귀국한 번디씨가 출석하여 재차 국가 안전 보장 회의가 열렸다. 번디씨는 쿠퍼씨 등 스텝들과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작성한 ‘북 베트남에 대한 계속적인 폭격’을 권고한 문서를 제출했다. 존스 대통령은 이를 기본적으로 승인했다. 미국은 북폭과 그에 이은 베트남에 대한 직접 참전을 결정한 것이다.

……

우리는 실제로 프레이크에 가서 이 두 눈으로 참상을 봐버렸습니다. 이 체험은 우리에게 엄청나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습니다. 당선들은 도대체 프레이크를 공격한 뒤에 우리가 어떤 반응을 하리라 생각하고 그런 공격을 했습니까? 실제로 우리 조사단 중에 워싱턴에 돌아가 “베트남에 있는 미군 병사를 줄입시다”고 말한 사람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프레이크 공격이 바로 미국의 본격적인 개입을 결정적으로 만들었던 겁니다. 이미 전쟁으로 나아가는 길을 되돌아 나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당선들은 왜 그때 프레이크 공격을 감행했습니까?

왜 가장 미묘한 시점에 베트남은 프레이크 공격을 감행했는가?

분명히 이것은 미국에서 오랫동안 수수께끼로 여겨져 왔다. 쿠퍼 씨는 실제로 그 현장을 목격한 사람으로서 이 공격의 동기를 물으려고 했던 것이다.

이 질문에 대답한 것은 당시 베트남 중부 지역의 제5군관구 사령관 중 한 사람이었던 단 부 히에프 장군이었다. 미군에 대한 수많은 기습 작전을 성공시킨 베트남 전쟁 영웅의 한 사람인 히에프 장군은 북 베트남 군에 의한 프레이크 공격의 전모를 알고 있었다.

* 단 부 히에프(당시 북 베트남 중부 방면 사령관)

나는 그때 제5군관구에 있었습니다. 프레이크 바로 옆에 있습니다. 그 공격은 실은 제5군관구의 한 사령관이 독단으로 명령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불과 30명밖에 되지 않는 부대의 공격으로, 지금이니까 말씀드립니다만, 그다지 대단한 공격은 아니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프레이크에 주둔하고 있던 미국의 괴뢰군, 즉 남베트남 정부군의 제2 군단 사령부를 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같이 있던 미군이 부상당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아무래도 여러분들은 미국 조사단이 체재하는 때를 노려 하노이 총사령부가 공격 명령을 내린 것으로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사실은 그것이 아닙니다.

* 조지 헤링(미국 켄터키 대학 교수)

히에프 장군, 당신은 그때 번디 조사단이 사이공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 단 부 히에프

아뇨, 몰랐습니다. 맥나마라씨의 책을 읽고 비로소 번디씨가 사이공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코시긴 수상이 하노이에 있었다는 사실은 웨스트멀랜드 장군의 책을 읽고나서 알았고. 당신들은 북 베트남 정부가 번디씨와 코시긴씨가 베트남에 있는 때에 맞춰 미국을 도발하기 위해 프레이크를 공격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우리들 현장의 지휘관들은 그런 생각을 못합니다.


쿠퍼씨와 히에프 장군의 경악

프레이크 공격이야말로 미국이 베트남에 본격 개입하는 중대한 요인이 되었다고 주장한 체스터 쿠퍼씨. 그는 베트남 전쟁 초기에는 맥조지 번디 대통령 보좌관의 측근으로 일을 했고, 전쟁이 본격화한 후에는 비밀 평화 협상의 책임자였던 해리먼 특사의 오른팔로서 미국의 대 베트남 외교를 몸소 경험했다.

하노이 대화로부터 약 1년이 경과한 1998년 6월 나는 쿠퍼씨에게 장시간의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그는 워싱턴 교외에 있는 자택에서 흔쾌히 취재에 응해 주었다. 쿠퍼씨는 히에프 장군에게서 프레이크 공격의 진상을 들었을 때의 충격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프레이크 공격이 하노이 정부의 명령이 아니라 지방에 있는 일개 사령관의 명령이었다는 말을 듣고 나는 자신도 모르게 다시 한 번 말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통역이 오역을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들어보아도 이어폰에서 같은 대답이 흘러나왔습니다.

당시 사이공에는 대통령 보좌관인 맥조지 번디씨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프레이크 공격을 하노이 중앙 정부가 명령한 미국에 대한 도발 행위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것은 아마 아침 6시였을 겁니다. 사이공의 사령부 본부에서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미 육군 장교가 깨우는 겁니다. 그는 ‘긴급한 미팅이 열리고 있습니다. 급히 참가해 주십시오!’라고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바로 미팅 룸으로 내려갔더니, 그곳에는 웨스트멀랜드 남베트남 미 원조군 사령관과 번디씨 등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나는 프레이크 공군 기지에 대한 공격 소식을 들었습니다.

만약 그 공격이 프레이크 부근에 있던 한 지방사령관의 독단에 의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았다면 우리의 대응은 달라졌을지 모릅니다. 우리가 북 베트남에 대한 보복을 결심한 것은 북 베트남 정부가 공격 명령을 내렸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남베트남의 게릴라 부대에 의한 단독 행동이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남쪽의 게릴라 부대에 대한 보복만으로 끝낸다는 판단도 있을 수 있었을 겁니다.

우리들 미국인은 베트남 인들이 어떻게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며, 생각하는지에 대해 전혀 무지했습니다. 한편 베트남의 지도자도 미국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고 인정했습니다. 우리들은 마치 상대방을 눈앞에 두고도 눈가리개를 하고 빙빙 돌아다닌 것 같은 꼴입니다. 쌍방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을 몰랐던 겁니다.

우리들은 다른 한편의 당사자인 베트남의 단 부 히에프 장군에게도 취재를 시도했다. ……

“처음 미국 측으로부터 프레이크 공격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1945년에 18세로 독립 전쟁에 참가한 이래 30년 가까운 전투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만, 프레이크 전투는 거의 잊어버린 아주 작은 공격에 지나지 않았기 때 문입니다.

하노이 대화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하노이 정부는 그런 작은 공격에 일일이 명령을 내리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때 하노이 정부가 내린 명령은 1964년부터 급속하게 약체화하던 남베트남 정부군에 대한 공격을 서서히 강화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노이 정부가 어디서 누구를 공격하라고 자세하게 지시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현장의 지휘관이 판단하는 겁니다.

전장에 있는 우리들은 웨스트멀랜드 미 원조군 사령관이나 테일러 통합 참모 본부 의장 등 적의 장군의 동태에는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외교관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런 것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습니다.

東 大作, 『我々はなぜ戦争をしたのか―米国・ベトナム 敵との対話』, 岩波書店, 2000
(서각수 역, 『우리는 왜 전쟁을 했을까: 미국·베트남 적과의 대화』, 역사넷, 2004, pp.143-152)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 결정이 이 사건 하나로 결정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확실히 과장일 것이다. 미국은 그 전부터 베트남 전쟁에 깊게 개입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조사단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고 철수론자들의 입을 효과적으로 봉쇄해 본격적으로 베트남전에 뛰어들게 하는 데 일조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진짜 문제는 같은 문제를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 측이 그리는 상황이 판이하게 달랐다는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수준이 열악하고 정보가 제한된 상황에서 판단을 하게 되면 이런 문제가 쉽게 발생하게 된다.

체스터 쿠퍼는 미국이 저지른 오판의 원인에 대해 "우리들 미국인은 베트남 인들이 어떻게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며, 생각하는지에 대해 전혀 무지"했다고 말한다.

쿠퍼의 말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고민을 하게 만든다. 우리들 한국인은 우리의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며, 생각하는지 잘 아는가? 우리가 뽑은 대통령과 그의 정부, 우리가 뽑은 국회의원들이 임명을 동의한 장관들이 어떤 식으로 일을 하는 사람인지 얼마나 아는가?

우리는 아주 쉽게 오판을 저지를 수 있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보좌관들도 우리만큼 쉽게 오판을 저지를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동일한 논리를 이용해 6절에서 다시 검토하겠다.)


5. 모든 문제가 경제로 통하진 않아, 바보야
빌 클린턴의 선거구호 "It's economics, stupid!"에서 따왔으며, 물론 특별한 의미까지는 없다.

촛불시위가 한참 기세를 올리고 있던 6월 초, 전 국민의 시선은 곧 나올 청와대의 대응을 향하고 있었다. 이정도로 압력을 가한 이상 그에 상응하는 대책이 나올 것이라 예상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청와대에서 흘러나온 기상천외한 대응책이란 것은 시위대 뿐 아니라 친여세력들조차도 당황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틀째 외부 일정을 삼간 채 국정쇄신 방안을 찾기 위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류우익 대통령실장이 주재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도 민심수습을 위해 열띤 토론이 이어졌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청와대는 일단 선 민심수습, 후 인적쇄신이라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성난 민심의 기저에는 어려워진 서민경제가 깔려있다는 판단에서입니다. 따라서 유류세 인하와 같은 고유가 대책과 끊임없이 오르고 있는 서민 물가를 잡기 위한 단기 방안이 제시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국정의 머리인 청와대를 쇄신하는 차원에서 우선 공석인 사회정책수석을 임명하고, 수석비서관급의 홍보특보를 신설하는 방안 등이 추진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최근의 사태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현재 근본원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고, 앞으로 원인진단 결과를 토대로 처방전을 내 놓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단순 감기약으로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종합감기약 처방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태진, 靑, '선 민생대책, 후 인적쇄신', YTN 2008년 6월 1일

누구의 눈에도 이 시위는 물가가 올라 격분한 서민들이 나와 "빵값을 내려라"라고 벌인 시위가 아니었었다. 그런데도 정작 대응은 딱 그런 시위를 겨냥한 처방이 내려진 것이다. 이 점은 이 시점에서 청와대 내부에 사태에 대한 정보를 종합해 적절한 판단을 내릴 능력이 있는지, 즉 「분석 패러다임」이 기능하고 있는지를 심각하게 의심하게 만드는 사태였다.

당시 이 보도를 본 사람들은 대개 이건 단순히 우리를 무시하는 행위("고민 끝에 결론이 저거냐!")라거나, 뭔가 좋지 못한 꿍꿍이속이 있거나, 그도 아니면 우는 아이를 상대로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는 식의 대응이라고 받아들여 크게 화를 냈다.

하지만 다음 글을 보면 어떨까?

"이를 통해 우리 군이 국가경제의 신성장동력의 일익을 담당하는 경제군(經濟軍)의 훌륭한 선례를 만들어 줄 것을 당부합니다."라니. 돈 쓰는 조직의 전형인 군대에 대해서도 저런 당부를 할 정도라면 상대에게 있어 경제라는 '마법의 주문'의 위상이 어떤 것인지는 익히 짐작이 간다.

이것은 시외버스 터미널 한 구석에 놓인 커피자판기에 비유하면 좋을 것 같다. 버튼이 여섯 개쯤 달려 있지만, 어느 것을 눌러도 설탕프림커피가 나오는 바로 그런 것 말이다. 이명박은 그 어느 버튼을 누르더라도 경제가 거기 같이 담겨나오는 데, 이런 현상은 사이버네틱 로직으로 아주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이런 데 무슨 꿍꿍이 속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


6. 배후세력을 찾아서, 또는 도둑 맞은 편지

이명박 대통령과 여당으로부터 촛불 시위에는 배후세력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은 아주 많다. 1부에서 소개했던 청와대 회의 동정을 전하는 기사(조선일보) 외에도, 대통령과 불교지도자들과의 간담회(오마이뉴스), 좀 더 후에는 한나라당의 이명박계 최고위원인 공성진 의원의 발언(한겨레) 등을 꼽을 수 있으며, 이 외에도 100분 토론이라든가 여러 채널을 통해 비슷한 이야기가 제기된 적이 있다.

이러한 주장들은 근거가 빈약해 번번히 반박되곤 했지만, 끝없는 생명력을 갖고 다시 제기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이러한 배후세력을 찾아 나서는 노력 또한 사이버네틱 패러다임으로 잘 설명할 수 있다.

애드거 앨런 포는 자신의 대표작인 「도둑맞은 편지」에서 이와 같이 숨겨진 무엇인가를 찾아 나서는데 발휘되는 불요불굴의 노력이 왜 거듭되는지를 절묘하게 묘사하였다. 좀 길지만 따라가 보도록 하자.

“수색했던 이야기를 자세히 말씀해주시지요.”
내가 경찰국장에게 말했다.
“사실, 시간을 들여 모든 곳을 뒤졌네. 나는 이런 일에 오랜 경험이 있지. 집 전체를 뒤지고 차례로 방을 뒤졌네. 일주일 밤을 꼬박 새웠다네. 우선 각 방의 가구를 조사했네. 모든 서랍을 열어 보았고, 추측하겠지만 잘 훈련 받은 경관에게는 비밀 서랍 같은 것은 없다네. 이런 종류의 수색에서 그런 경관을 피할 수 있는 비밀 서랍을 허락하는 사람이야말로 멍청이이지.
일은 아주 단순하네. 모든 캐비닛에는 어떤 일정한 용적이 있네. 우리에게는 세밀한 자가 있지· 1라인(약 0.2센티미터)의 50분의 1도 우리를 비껴 갈 수 없네. 캐비닛 다음으로 의자를 뒤졌네. 길고 날카로운 바늘을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텐데 그것으로 쿠션을 엄밀히 검사했네. 테이블은 윗판을 뜯어보았네.”
“왜 그렇게 했지요?”
“어떤 물품을 숨기려 하는 자들이 종종 테이블이나 그와 유사하게 만들어진 가구의 판을 뜯어낸다네. 그리고는 다리에 홈을 판 뒤 그 속에 물품을 넣고 다시 판을 덮네. 침대 다리 끝과 윗부분도 같은 방법으로 사용되지.”
“홈이야 소리로 찾아낼 수 있지 않습니까?”
내가 물었다.
“절대 그렇지 않다네. 그 주변에 솜을 충분히 넣어 두지. 게다가 우리 경우는 소리 없이 일을 진행해야 하네.”
“그렇지만 말씀하신 방법으로 물품을 넣어 두었을 수 있는 가구를 모두 분해할 수는 없었겠지요. 편지는 얇게 말면 모양이나 부피가 큰 뜨개바늘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모양으로는 의자 다리 속에도 넣을 수 있었겠지요. 모든 의자를 다 분해하지는 않았을 테지요?”
“물론 그렇게는 하지 않았네. 하지만 더 치밀했는데, 저택에 있는 모든 의자의 틈새와 가구의 이음 부분을 위력적인 확대경의 도움을 받아 조사했다네. 최근에 뜯은 자국이 있으면 그것을 즉시 찾을 수 있지. 예를 들어 톱밥 하나도 사과만큼 분명하게 보이네. 아교가 떨어졌거나 틈에 이상한 간격만 있어도 충분히 찾을 수 있었겠지.”
“거울도 판과 유리 사이를 보셨겠지요. 커튼과 양탄자뿐 아니라 침대와 침구도 엄밀히 조사하셨겠지요.”
“그건 물론이지. 이런 방법으로 모든 가구를 완전히 철저하게 조사한 다음 집 자체를 조사했네. 전체 표면을 부분으로 나누어 어떤 것도 빠뜨리지 않도록 변호를 매겼네. 그리고 난 뒤 확대경을 가지고 바로 옆집 두 채까지 포함해 그 저택을 각각 1제곱인치씩 조사했네.
“바로 옆집 두 채라니요! 대단히 수고하셨겠군요.”
나는 놀라 소리쳤다.
“그랬다네. 제공되는 보수가 엄청났으니까.”
“집 주위의 바닥도 포함되었겠지요?”
“바닥은 모두 벽돌로 포장되어 있었네. 상대적으로 거의 번거로움을 끼치지 않았지. 벽돌사이의 이끼도 조사했는데 손댄 곳은 찾지 못했네.”
“물론 서재에서 D장관의 서류와 책갈피도 찾아보았겠지요?”
“물론이네. 포장과 소포도 다 열어보았네. 그냥 흔들어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우리 경관들이 하는 방법대로 책도 모두 펼쳐보았을 뿐 아니라 책갈피 한 장 한 장까지 다 넘겨보았네.
책표지도 모두 정확하게 두께를 재고 확대경으로 철저하게 조사했네. 최근에 제본한 것이라면 우리의 관찰을 피할 수는 없었을 거네. 최근 제본된 대여섯 권의 책은 위로 바늘을 넣어 주의 깊게 조사했네.”
“양탄자 밑바닥도 찾아보았습니까?”
“그렇고 말고. 양탄자를 모두 걷어내고 확대경으로 바닥을 검사했지.”
“벽지는 조사했습니까?”
“했네.”
“지하실은 보셨습니까?”
“보았네.”
“그렇다면 착오를 하셨나보군요. 국장님이 생각한 대로 편지는 저택 안에 없나봅니다.”
내가 말했다.
“자네 말이 맞는지도 모르지. 자 뒤팽,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충고 좀 해주게.”
“그 저택을 철저히 재수사하는 겁니다.”
“그건 전혀 필요 없는 일이네. 편지가 집 안에 없다는 건 너무도 분명하네.”
경찰국장이 대답했다.
“저에게는 더 좋은 의견이 없는데요. 그 편지가 어떤 것인지 물론 정확히 설명할 수 있겠지요?”
“물론이네.”
경찰국장은 수첩을 꺼내어 잃어버린 편지의 내용과 특히 겉모양에 대해 큰 소리로 자세히 설명해나갔다. 설명을 마치자 그는 곧 떠났다. 그 선량한 신사를 알고 지낸 이후로 그렇게 낙담한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파리 경찰국장 G씨는 유능하고 꼼꼼한 인물이었지만, 숨겨진 편지를 찾는 데는 실패하였다. 그리고 명탐정 오귀스트 뒤팽은 그가 실패한 원인을 정확히 짚어낸다.

그가 가버린 후 내 친구는 설명하기 시작했다.
“파리의 경찰은 그런 데에는 아주 유능하지. 인내심 있고 교묘하며 교활하네. 그리고 직무에 있어서 특히 요구되는 지식에도 완전히 능통하네. G씨가 D장관 저택을 수색한 방법에 대해 자세히 우리에게 이야기했을 때, 나는 그의 힘이 닿는 한 만족스런 조사를 했다고 전적으로 믿었네.”
“그의 힘이 닿는 한이라니?”
나는 물었다.
“사용된 측정 방법은 최상이었을 뿐 아니라 매우 완벽하게 진행되었을 테니까. 편지가 그들 수색 범위 내에 있었다면 그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편지를 찾았겠지.”
나는 그냥 웃었다. 그러나 뒤팽은 그가 말한 모든 것에 대해 꽤 심각한 모습이었다.
“방법은 좋았고 잘 실행되었네. 그들의 실수는 방법이 이 경우와 당사자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네. 경찰국장의 아주 교묘한 방법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은 것으로, 그 침대에 그는 자신의 계획을 맞춘 것이지.
그는 가까이 있는 문제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거나 너무 얕게 생각해 늘 실수를 범하지.
[…]
“추리가의 생각과 상대방의 생각이 일치하는 것은 상대방의 생각을 정확히 젤 수 있는 것에 달려 있군. 내가 자네 말을 바르게 이해했다면 말일세.”
“실질적인 가치는 거기에 달려 있지. 그리고 경찰국장과 그의 부하들이 그렇게 자주 실패하는 것은 첫째, 이 일치가 되지 않았고 둘째, 그들과 관련된 상대방의 생각을 잘못 쟀거나 아예 재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들은 자신들 생각의 교묘함만 고려하고, 어떤 감추어진 것을 찾을 때는 그들이 감추었을 방법에만 몰두하지. 그들 자신의 교묘함은 많은 사람들 중에서 믿을 만한 대표라는 것은 물론 맞네. 그러나 각각의 악한의 교활함이 그 성질에 있어 그들의 것과 다를 경우, 물론 악한은 그들을 물리치네. 악한의 교활함이 그들보다 위일 때, 또 그들보다 아래일 때, 일반적으로 늘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그들에게는 조사에 있어서 원칙의 변화란 것이 없네. 기껏해야 막대한 보수가 주어지는 어떤 이례적인 긴급 상태에서는 원칙은 건드리지 않은 채 그들의 해묵은 실제 방법을 확대하거나 과장하는 정도이지.
예를 들어 D의 경우에, 행동 원칙에 무슨 변화가 있었단 말인가? 구멍을 파고, 쑤시고, 소리 내고, 확대경으로 조사하고, 건물 면적을 제곱 인치로 나누는 것, 이것은 모두 오랜 업무 방식에 따라 경찰국장에겐 정해진 것이네. 그것은 사람들의 생각에 근거한 수색 원칙을 적용하여 과장한 것이 아닌가? 모든 사람들이 의자 다리에 구멍을 파지는 않더라도,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는 동일한 생각의 연장선에서 그는 보이지 않는 구멍이나 틈 같은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겠나? 감추는 데에 그런 성가신 구멍을 사용하는 것은 일반적인 경우일 뿐이며, 일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이 사용하는 것이네. 그리고 이런 모든 경우에 이런 성가신 방법으로 감춘 물품은 즉각 들킬 수 있고 결국 들키고 마네. 그러므로 찾아내는 것은 수색가의 날카로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의 인내력 그리고 결단에 달려 있네.
그리고 경찰의 눈에는 같은 것으로 보이겠지만, 중요한 사건일 때 그리고 보수가 굉장할 때에는 문제의 특징이 나타나지 않는 적이 없네. 도둑맞은 편지가 경찰국장의 수색 범위 내에만 있었다면, 다시 말해서 은닉 원칙이 경찰국장의 원칙에 포함되었다면 편지는 분명히 발견되었을 것이라는 내 말을 이제 자네는 이해할 것이네. 그러나 그는 완전히 불가사의에 빠져들고 말았네.

“[…] 경찰국장과의 첫 번째 대화에서, 이 미스터리가 그를 몹시 성가시게 하는 것은 그것이 너무 분명하기 때문일 수 있다고 제안했을 때 그가 호탕하게 웃었던 것을 자네는 기억할 것이네.”
“맞아. 그는 몹시 유쾌해 했었지.”
“[…] 자네는 혹시 가게 위에 걸려 있는 거리의 간판 중 어떤 것이 가장 주의를 끄는지 알아차린 적이 있나?"
“그런 문제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지도 위에서 하는 퍼즐 게임이 있네, 한쪽이 다른 한 사람에게 주어진 지명, 도시 강 주 혹은 나라 다시 말해 지도 위의 잡다하고 복잡한 어떤 지명을 묻네.
게임 초보자는 일반적으로 세세한 지명을 제시함으로써 상대방을 당황시키려 하지만 익숙한 사람은 지도 한끝에서 다른 한끝까지 크게 쓰인 글자를 택하지 이러한 것은 지나치게 크게 쓰여진 거리의 간판이나 광고처럼 너무 분명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사선에서 비껴가네. 그리고 이러한 물리적인 간과는, 지나치게 명백한 생각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가버리는 정신상의 부주의와 정확히 닮은 것이네.
그러나 이것은 경찰국장의 이해 이상의 혹은 그 이하의 것으로 보이네.
그는 장관이 세상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세상 사람들 코 바로 밑에 편지를 숨겼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네.
D장관의 대담하고도 저돌적인, 뛰어난 교묘함을 깊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렇게 확신하게 되었네. 즉 장관은 편지를 감추기 위해서는 그것을 감추려 애쓰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영리함을 확신하게 되었네. 그의 교묘함은 그가 유용한 목적으로 그것을 사용하고자 할 때 늘 수중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과, 편지가 경찰국장의 의례적인 수색 범위 내에 숨겨지지 않았다는 경찰국장 자신의 결정적인 증거에 기반을 두고 있네.

[*]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강도 붙잡은 사람을 침대에 눕혀 놓고 몸이 침대보다 길면 잘라 버리고 짧으면 몸을 늘여 죽였다-역주.

이 글을 읽어온 분은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듯이, 파리경찰국장 G씨의 수사방법은 아주 전형적인 사이버네틱 패러다임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그가 처한 문제의 성격이 경찰의 사이버네틱 패러다임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자 그는 끊임없는 실패와 좌절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이 점은 2절에서 사이버네틱 패러다임의 특징을 요약하면서 지적했던 "사이버네틱 메커니즘의 성공은 명백히 주변 환경이 적절한가에 달려 있다"라는 명제를 다시한번 확인시켜 준다.


그렇다면 경찰국장 G씨는 왜 자신의 실패에서 배워서 자신의 사이버네틱 패러다임을 개선하지 못했을까? 한 가지 답은 그 일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케네스 보울딩은 이에 대해 통찰력있는 해답을 제시하였다.

경험은 전부터 갖고 있던 관점을 강화하거나 약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그러한 관점을 부정하거나 보강하는 증거가 드러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잘못된 아이디어가 수정되거나 옳은 아이디어가 강화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케네스 보울딩의 비유를 빌리자면,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산 사람을 제물로 바쳤던 아즈텍인들은 어떤 한 해의 수확이 나빴다고 해서 인신공양을 중단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흉년이이야말로 신들이 기존에 바친 제물에 만족하지 못했음을 “입증”했다는 믿음에 입각해, 제물로 바칠 사람의 수를 더욱 늘릴 수도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이데올로기적 교리가 어떤 사건이나 상황들을 적절히 설명하고 다루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날 경우, 이데올로그들은 자신들의 교리를 현실에 더 잘 맞도록 수정할 수도 있고, 교리에 들어맞는 방식으로 현실을 묘사함으로서 명백해 보이는 상충관계를 조화롭게 바꿀 수도 있다.

Armstrong, J. D., Revolutionary Diplomacy: Chinese Foreign Policy and the United Front Doctrin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7, pp.11-12

배후세력이 발견되지 않는 것은 놈들이 꼭꼭 숨어 있기 때문이다. 번번히 허탕을 치는 것은 놈들이 교활하기 때문이다. 제기랄! 이런 식으로 한번 생각을 끌고 나가면 사람은 아주 손쉽게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배후세력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사실 흔한 것이다. 세계 정치 경제를 뒤에서 장악하고 있는 유대인 세력이라든가, 우리 사회는 친일 기득권 세력이 꽉 쥐고 있다든가 하는 그런 믿음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게다가 모든 계층이 공유하고 있는 일종의 포위공포증이 있어서 이런 생각을 강화하게 된다.

일단 판단이 내려지고 나면, 아니 좀 더 강한 표현으로 말해서 믿음이 형성되고 나면 그 믿음을 깨는 것은 아주아주 어렵다. 케네스 보울딩의 비유는 그런 점을 우리에게 환기시켜 줄 뿐이다.


7. 사이버네틱 패러다임이 갖는 정치적 함의

이제 사이버네틱 패러다임이 정치적 의사결정에 채택될 경우 발생하는 의미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치킨 게임(chicken game)은 합리적 행위자를 신봉하는 게임이론가들이 좋아하는 예제이다. 이 게임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많은 구경꾼들이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텅 빈 고속도로 양 쪽에서 시속 100km로 내달리는 두 대의 자동차가 서로를 향해 달려온다. 어느 한 쪽이 핸들을 꺾어 피하지 않는 한 충돌은 필연적이다. 충돌을 피하기 위해 먼저 핸들을 꺾는 쪽이 게임에 지게 되며, 겁쟁이(chicken)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이와 같이 치킨 게임은 한 편에는 생존이, 반대편에는 명예가 달려 있는, 고전적인 가치 절충(value trade-off) 문제이다.

치킨 게임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게임이론의 대가 Thomas Schelling은 치킨 게임에서 두 경기자가 모두 분석 패러다임을 구사한다고 가정할 경우 최선의 전략은 명백히 되돌릴 수 없는 결의를 먼저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핸들을 자물쇠로 잠그고 크루즈 컨트롤을 고정시킨 후, 자신은 아예 뒷좌석으로 물러나 몸을 묶어버리는 식으로 행동하고 그 사실을 최선을 다해 상대에게 알리는 게 이기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한 쪽이 먼저 이렇게 나와 버리면, 반대편에 아직 핸들을 잡고 있던 상대방은 경기를 계속하면 확실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고, 지금 물러나면 명예는 잃겠지만 목숨은 건질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어진다.

이런 정보를 입수한 합리적 행위자라면 새 정보를 분석에 적용해 자신의 행동전략을 업데이트할 것이다. 단 상대방이 분석 패러다임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는 합리적 행위자라면. 그렇지 않고 상대방이 사이버네틱 패러다임에 따른 의사결정을 하고 있을 경우, 이와 같은 전략은 재앙을 부를 수 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몇 가지 선택된 변수에 반응하는 것 이외에는 환경의 변화나 새로 입수되는 정보를 무시하는 것이 사이버네틱 의사결정의 특징이다. 그러니 상대방은 단호한 결의를 보여준답시고 핸들과 몸을 묶어 배수진을 친 행위를 인지하지 못하고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또한 사이버네틱한 의사결정은 정해진 일련의 과정을 수행한 끝에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뿐이며 사전에 결과를 예측하거나 가치 절충(value trade-off)을 시도하려 들지 않는다. 이 말은 설령 배수진을 친 행위를 인지는 했더라도 그것이 결과에 반영되지 않고 그대로 무시될 거라는 의미이다.

앞선 예로 돌아가 보자.

사이버네틱한 상대방을 향해 핸들을 고정시키고 몸을 뒷좌석에 묶은 “필승의 전략”을 구사한 후 희희낙락하던 합리적 행위자는 곧 자신의 단호한 결의를 보고도 조금의 변화도 없이 기존 차선을 따라 거침없이 접근해 오는 상대방 차를 보며 공포에 질리게 된다.

상대 차의 운전석에는 (나와 같은 합리적 행위자가 아니라) 사람의 탈을 쓴 자동온도조절기가 앉아있었던 것이다. 그는 차가 오른쪽으로 쏠리는 것 같으면 핸들을 왼쪽으로, 왼쪽으로 쏠리는 것 같으면 핸들을 오른쪽으로 약간 꺾고, 속도가 떨어지는 것 같으면 악셀을 밟고 속도가 충분해지면 떼는 규칙적 과정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 합리적 행위자는 새로운 정보에 입각해 전략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만, 이미 몸이 묶여있어서 다른 선택은 불가능하다. 두 대의 차는 빠르게 서로를 향해 다가간다…….

이 예는 조금 과격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것은 상대가 지금 분석 패러다임을 따르고 있는지, 아니면 사이버네틱 패러다임을 따르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야말로 대응전략 수립을 위해 제일 먼저 알아야 하는 종류의 정보란 것이다.


또한 사이버네틱한 행위자의 존재는 정치의 게임 규칙을 크게 바꾸게 된다.
사이버네틱한 행위자가 정치를 하게 되면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협상(bargaining)의 역할은 급속히 퇴조된다. 협상은 참여하는 행위자들이 타협에 도달하는 과정에 상충되는 목표를 조정해 나갈 의향과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의향과 능력은 곧 「분석 패러다임」에만 있는 목표와 가치의 통합 과정이다. 그러니 사이버네틱한 행위자가 분석적 행위자만큼 심도 있는 절충의 자세를 보여주지 않으며, 분석적 가정에 따르자면 당연해 보이는 협상을 건너뛰어 더 일방적인 행동에 나서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가능하다. 「사이버네틱 패러다임」 특유의 결과에 대한 제한된 계산, 단일 가치에의 집중, 선택된 피드백 채널에 대한 의존 등은 모두 타협의 과정을 방해한다. 이러한 의사결정과정의 특징들 때문에 사이버네틱한 행위자가 끼어 있는 행위자들 간의 분쟁은 보다 격렬해지고, 상호 합의에 의한 결론 도출은 힘들어진다.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 포기에 대한 여진을 보면 이런 점이 잘 느껴진다.

집권 초 대대적인 촛불시위로 곤욕을 치룬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6월 19일 대국민 특별기자회견을 갖고 담화문을 발표하였다. 이때 대통령은 “대선 공약이었던 대운하 사업도 국민이 반대한다면 추진하지 않겠습니다.”란 언급을 하였고, 대부분의 언론과 국민은 이 발언을 대운하 포기선언으로 받아들였다. 여기서 ‘국민이 반대한다면’이란 조건은 정치적 체면치례를 위한 약간의 모양새 갖추기 정도로 이해한 것이다.

이 담화문은 문면으로 보면 「분석 패러다임」을 채택하고 있음이 거의 확실하다.

시위대의 요구사항은 다양했지만 그중 제일 핵심적인 요구사항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재협상이었다. 이 담화문에서 대통령은 과거 중국과의 마늘 협상 파동을 예로 들며, 그러한 재협상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한 후, 미흡하다는 의견도 있는 추가협상에 더해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의 개편, 그리고 한반도 대운하 사업의 중지를 약속하였다.

청와대 비서진의 일괄사퇴라든가 한반도 대운하 사업의 중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과 직접 맞물린 이슈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시위대 측에서 이런 결과들도 얻어내길 바랐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는 “꿩(쇠고기 재협상) 대신 닭(대운하 중지)이라도 주겠다”는 식의 거래를 제안한 것이고, 이것은 별개의 이슈와 가치를 통합해 절충시킨 패키지 협상을 도출한다는 의미에서 전형적인 「분석 패러다임」식 결론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얼마 전인 9월 2일,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요건이 조성되고 국민이 필요하다고 할 때 다시 할 수도 있다”며, 대운하 재추진 가능성을 시사해 많은 사람들을 분개하게 하였다.
기술적으로 말하면 정 장관의 발언은 대통령의 약속을 어긴 것은 아니다. 그는 “현재 상태에서는 걱정하는 국민도 많고, 반대 여론도 많아 당초 민자사업으로 대운하를 추진하겠다는 것은 중단했다”며, “차분하게 이 문제에 대해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분석 패러다임」에 따른 패키지 딜의 일부로 대운하 사업의 관에 못을 박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화를 내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럼 「사이버네틱 패러다임」의 시각에서 보면 이 사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이 사건이 사이버네틱한 메커니즘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고 가정하고 분석해 본다면, 대운하 논란은 다음과 같은 흐름을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 탐색: 대운하 추진에 대한 운을 띄운다.
(2) 피드백: 반대가 너무 강하면 임의의 기간 동안 보류한다.
(3) 반복: (1)로 돌아간다.

이 과정은 사이버네틱 패러다임 특유의 결과에 대한 제한된 계산, 단일 가치에의 집중, 선택된 피드백 채널에 대한 의존을 아주 잘 보여준다. 또한 복합적인 이슈들이 통합된 정부의 그랜드 플랜 대신 각각의 이슈가 자체적인 사이버네틱 로직에 따라 굴러가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제 분석가는 두 가지 가능성 중 어느 것이 가능성이 더 높은지 판단해야 한다.
첫 번째는 「분석 패러다임」에 따른 것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과의 약속을 깨고 자기가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을 하나하나 밀어붙이고 있으며, 그 배후에는 이명박이 꿈꾸는 세계를 만들기 위한 잘 조율된 어떤 그랜드 플랜이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이버네틱 패러다임」에 따른 것으로 패키지 딜은 허상이었으며,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하는 논란이 많은 정책들은 서로에 상관없이 각각 자체적인 논리와 추진력, 각 사업에 이해관계가 걸린 당사자들의 후원 하에 각개약진과 정체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자 여러분들께서는 어느 쪽 의견에 더 끌리시는가? 두 가지 의견은 일장일단이 있으며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는 결국 이명박 정부의 내적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더 많은 증거를 수집하여 밝혀내야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우리 언론이 거둔 이 부문에서의 성과는 매우 실망스러운 상태이다. 노력은 계속해야겠지만 이 면은 당분간 많은 부분을 추정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본 필자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관한 한 현재로서는 사이버네틱 패러다임이 우세하다는 판단을 견지하고 있다. 여러분들도 각자 판단해 보시기 바란다.


8. 끝으로

이 글에서 사이버네틱 패러다임의 약점을 꽤 강조해 왔지만, 형평을 위해 우선 한 가지를 먼저 밝혀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떤 개인 혹은 정부를 막론하고 의사결정과정에 분석 패러다임과 사이버네틱 패러다임은 공존하기 마련이다. 그 어떤 정부도 분석 패러다임만 갖고 의사결정을 하지는 않는다. 또한 사이버네틱 패러다임에는 분석 패러다임이 따라올 수 없는 고유한 장점이 많이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버릴 수 없다.

이제 현 이명박 정부가 취해야 할 방향에 대해 검토해 보자.
이명박 정부를 관찰하고 있으면 사이버네틱한 행동양태가 너무 많이 표출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 원인으로는 이 글의 1부에서 지적했었던 정보평가와 정책검토과정의 난조를 꼽을 수 있다. 이로 인해 정부의 의사결정에 있어 「분석 패러다임」적인 접근이 심각하게 약화되고, 그 빈자리를 「사이버네틱 패러다임」이 메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절에서 언급했듯이 「사이버네틱 패러다임」은 적절히 사용되면 고도로 효율적인 의사결정방식이며 그 자체가 나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데나 쓰일 수 있는 종류의 의사결정방식도 아니다.

「사이버네틱 패러다임」을 제안한 스타인브루너는 정책결정에는 세 가지 패턴이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 고위 정책결정자들은 보다 많은 융통성을 가지기 때문에 “미정(未定)형 사고방식”(uncommitted thinking)을 가진다. 반면 전문가들은 그들 전문분야에서 통상 통하는 “이론형 사고방식”(theoretical thinking)을 가진다. 하위 관료들은 좀 답답하기까지 한 “판에 박힌 사고방식”(grooved thinking)을 가진다.

관료조직의 중간이나 하부는 잘 나눠진 고유 업무가 주어져 있고 그 업무를 늘 수행하기 때문에 경험으로 쌓아올려진 정형적 업무처리방식이 정착되기 쉽다. 즉 「사이버네틱 패러다임」이 활약하기 좋은 환경인 것이다. 하지만 국가의 최고지도부는 그렇지 않다.

국가 최고지도부는 여러 행정부처에서 올라온 일들을 분석하고 통합하는 일을 하며, 여러 부처의 업무에 걸쳐진 사안을 조정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예외적인 일이 끊이지 않아 「사이버네틱 패러다임」 같은 방식으로는 일을 잘 해내기가 매우 힘들다. 즉 「미정형 사고방식」은 곧 「분석적 패러다임」에 의해서만 제대로 수행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 글의 1부에서 정책검토과정의 정상화를 그렇게 강조했던 이유이다.


이어서 양식 있는 대중의 입장에 대해서도 검토해 보자.

우리는 우선 우리 정부가 언제나 「분석 패러다임」에 따라 치밀한 전략을 갖고 뭔가를 진행하고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사이버네틱 패러다임」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상대에게, 내 마음대로 분석 패러다임을 따르는 합리적 행위자의 심상을 투영한 후 분개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일 뿐 아니라, 프레이크 사건이나 치킨게임의 예에서 보았듯이 종종 아주 위험하기까지 하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언제나 상대 행동의 기반이 되는 논리가 무엇인지를 알아맞히기 위해 신경을 써야 하며, 상황이 불확실할 경우에는 우리가 사이버네틱한 반응에 직면해 있을 가능성을 충분히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그 다음에 정부가 「사이버네틱 패러다임」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 사이버네틱 로직이 모니터링하는 피드백 변수를 찾는데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과거에 있었던 이명박 정부의 피드백 변수에 대한 논의는 다음을 참조하라) 사이버네틱 패러다임은 한정된 수의 피드백 변수 이외의 변화는 무시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적절한 피드백 변수를 통해 영향을 끼치지 않는 모든 노력은 헛수고이다. 온도조절기에 다음달 내내 여행 갔다 오니까 난방하지 말라고 입 아프게 설교를 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일 아니겠는가.

우리 정부의 피드백 변수를 찾는다는 것은 우리도 정부와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뜻이다. 우리 정부가 아주 똘똘해서 우리가 가만있어도 우리에게 눈높이를 맞춰 소통해 준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팔짱끼고 상대가 그 사실을 깨우칠 때까지 기다리다간 그게 언제가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어떤 정부가 임기 끝날 때까지 참고 기다릴 게 아니라면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대화를 시도해 보는 노력이 절실하다.


[비고] 이 글의 제목은 Paul Romer의 선구적 논문인 "Crazy Explanations for the Productivity Slowdown," NBER Macroeconomics Annual 2, Stanley Fischer (ed.), Cambridge: MIT Press, Cambridge, 1987. 을 기념한 것이다.
by sonnet | 2008/09/06 23:26 | 정치 | 트랙백(4) | 핑백(4) | 덧글(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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