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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안전보장이사회
2009/07/05   국제연맹, 국제연합, 북핵 [44]
2007/03/03   오늘의 한마디(Mahmoud Ahmadinejad) [12]
국제연맹, 국제연합, 북핵
요즘 헨리 키신저가 북핵문제를 논평하는것을 들어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모든 주요 강대국들이 그런 행동은 "용납할 수 없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무기를 실험하고 핵을 실어나를 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군사행동을 위협하며 강대국들의 면상에 장갑을 집어던졌다. … 이런 도전은 지역 안보 문제를 훌쩍 뛰어넘는다. … 궁극적인 문제는 지역적인 것이 아니라 세계 질서의 앞날에 관한 것이다. … 비확산 보다는 강대국간의 공조에 어울리는 문제 말이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이해한 대로 이 이야기를 좀 풀어서 해설해볼까 한다. 일부 관점은 키신저의 박사학위 논문이자 첫 단행본이었던 a world restored와 후기 저작인 diplomacy에 등장하는 시각으로 보강하였다.



1. 국제연맹과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

제1차 세계대전 후 세계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염원을 담아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 LN)이 설립된다. 하지만 국제연맹이 제공하는 집단안보체제는 1930년대 들어 잇따른 시련을 겪게 된다. 첫번째 시련은 일본의 만주 침략을 저지하지 못한 것이었다. 더 큰 시련은 에티오피아에서 일어났다.

1935년 10월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하자. 연맹은 침공 후 일주일 만에 50개국이 참가한 결의를 통해 이탈리아에 대한 제재를 성립시킨다. 1)모든 군수물자의 수출금지, 2)대출 금지, 3)수입금지, 4)고무 등 몇몇 전략자원에 대한 수출금지, 그러나 여기에는 더 중요한 철강, 석탄, 석유에 대한 수출금지는 빠져버렸다. 외교관계도 단절되지 않았으며, 영국은 이탈리아가 전쟁터로 물자를 수송하는 통로인 수에즈 운하를 봉쇄하지 않았다.

국제연맹은 왜 더 강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가? 당시 국제사회는 경제제재의 힘을 과대평가하였다. 이탈리아의 수출은 전년 대비 1/3로 줄어들었고, 화폐가치가 떨어지며 금보유고가 감소하였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무솔리니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당시 독일이 다시 힘을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과 프랑스는 이탈리아를 완전한 적으로 돌리는 것을 꺼렸다. 1934년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하려고 하자 무솔리니가 군대를 보내어 히틀러를 물러나게 한 적도 있었다. 유럽 한복판에 우환이 자라나고 있는 상황에서 변방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일 때문에 주요 국가 하나를 적으로 돌리는 일은 어리석은 일처럼 생각되었다. 이듬해 3월 히틀러가 로카르노 조약을 무시하고 라인란트를 재점령하자 영국과 프랑스는 몸이 달아 이탈리아와 협상을 재개했다. 두 달 후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의 승리를 마무리지었고, 7월에는 제재도 해제되었다.

국제연맹의 완연한 실패가 아닐 수 없었다. 당시 국제연맹의 제재 조치에 참여했던 아이티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크거나 작거나, 강하거나 약하거나, 가깝거나 멀거나 백인이나 흑인이나, 언젠가는 우리가 누군가의 에티오피아가 될 것임을 절대로 잊지 말자.” 7년 안에 유럽 전역이 히틀러의 손에 떨어지면서 이 예언은 현실화되고 만다.

어쨌든 이 사태 이후 국제연맹은 연이은 국제위기에서 종이호랑이 취급만 받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그 역할을 다하게 된다.



2.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강대국 기득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이런 국제연맹의 뼈아픈 실패를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국제연합(UN)이 출범하게 되었다.

UN의 새로운 집단안보 체제에서 제일 중요한 변화는 안전보장이사회에 있었다. 국제연맹처럼 모든 나라가 평등한 권리를 갖는 대신, 5대 강대국(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에게 영구적인 의석과 거부권이라는 특권을 쥐어준 것이다. 이를 통해 전 세계는 강대국과 약소국의 불평등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단점을 받아들였다. 왜 그랬던가? 그것은 집단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강대국들에게 인센티브를 주자는 생각에서였다. 즉 UN이 몰락하면 강대국들의 기득권도 날아가게 되므로, 강대국들로서는 UN 안전보장이사회를 굴러가게 만들 동기가 있다는 것이다.

UN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의 특권은 이것 뿐만이 아니었다. 국제사회는 핵비확산조약(NPT)를 통해 이 다섯 나라에게만 합법적으로 핵무기를 가질 권리를 주고 나머지 나라들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도록 UN의 위임을 받아 감시하는 임무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맡겨 이들의 특권을 영구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다만 UN안보리는 거부권 때문에 상임이사국들 간의 분쟁에는 거의 힘을 쓸 수 없었다. 이는 세계 주요국가들이 두 진영으로 나뉘어 대결한 냉전시기 전 기간에 걸쳐 UN안보리의 기능을 반신불수로 만든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당시 전 세계에서 오직 한 나라, 대한민국만이 UN안보리의 집단안보를 통해 중대한 침략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었는데, 이는 소련의 불참이라는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가능하였다.

하지만 냉전체제는 기타 국가들에게 다른 방법으로 안전보장을 제공했다. 미국 혹은 소련 중 어느 한 진영에 줄을 서게 되면 UN보다도 더 확실한 지원을 약속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소련은 비공산국가도 후원했으며, 미국도 민주국가가 아니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진영에 대한 충성심이었다.

소련 붕괴 이후 강대국들 간의 장기간에 걸친 경직된 대립이 상당부분 해소되면서 UN안보리는 과거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 냉전의 종식은 많은 국가들에게 과거만큼 확실한 안전보장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는 문제를 던져 놓게 되었다. 과연 UN안보리는 그 공백을 얼마나 메울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답이 정해지지 않은 질문이었다.



3. 북핵 해결 실패와 강대국 기득권의 미래

북핵문제를 다루는 기본틀인 6자회담에는 세계 3대 강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가 직접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두 상임이사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지구 반대편에 있기 때문에 6자회담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어떤 결의도 적극적으로 지지할 것이 확실시된다.

북핵문제에는 UN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의 두 가지 중요한 기득권이 걸려 있다. 하나는 강대국 클럽인 UN안보리 결의의 권위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의 핵무기 독점권이다. 이 점에 동의하기 때문에 모든 강대국들은 북한의 핵 보유를 용납할 수 없는(unacceptable) 사태라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 보유가 기정사실화되면 어떻게 되는가?

UN의 권위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UN은 원래 권위가 없었으며 국제사회의 일탈자들이 UN 그 자체를 무서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문제는 북한과 같이 허약하고 고립된 나라를 상대로 UN 안보리 상임이사국, 즉 국제사회의 기성 강대국들이 뭉쳐도 자신들의 공동 기득권 -핵무기 독점권- 도 지키지 못할 만큼 무력하다는 것이 만천하에 폭로되고 여러 해에 걸쳐 재확인되는 것이다.

국제연맹이 제공하던 집단안보는 일본의 만주 침략이나,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 같은 변두리에서 일어난 비교적 작은 사건들이 계속되면서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당대의 시각에서 볼 때, 그 사건들 하나하나는 그렇게 치명적이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강대국들이 안정된 국제체제를 떠받칠 능력 혹은 의지가 없다는 것이 드러나자 국제사회의 제일 무자비한 무리들 앞에서 더 이상 세계의 평화는 유지될 수 없었다.

우리는 그런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by sonnet | 2009/07/05 23:04 | 정치 | 트랙백 | 덧글(44)
오늘의 한마디(Mahmoud Ahmadinejad)

Iran's nuclear program is an unstoppable train without brakes

- 이란이 안보리의 요구에 맞추지 못했다고 UN이 발표하자, 이란 대통령 아흐마디네자드 -
by sonnet | 2007/03/03 01:21 | 한마디 | 트랙백 | 핑백(2)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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