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т Ильича до Ильича
by sonnet 2006 이글루스 TOP 100 2007 이글루스 TOP 100 2008 이글루스 TOP 100 2009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 100 2011 이글루스 TOP 100
rss

skin by 이글루스
태그 : 안상수
2010/03/29   안상수, 허지웅, 신자유주의 비판 [159]
안상수, 허지웅, 신자유주의 비판
나는 좌파가 아니라는 말에 대하여 (허지웅) 에 트랙백

위 글은 반면교사로서의 교훈을 주는 재미있는 글이다. 그리고 한 가지 팁을 제시하자면 '좌파' 자리에 '신자유주의'를 넣고 읽으면 몇 배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블로그에 "신자유주의"란 검색어를 주어 Google검색을 해 보면 274건이 등장한다. 여기 등장하는 허지웅의 '신자유주의'론은 아무데나 갖다붙일 수 있다는 만능성에서 안상수의 '좌파'론과 충분히 자웅을 겨룰 만하다고 생각된다.


나는 한국 사회 전체로 보면 좌파가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정당활동, 언론이나 출판물 같은 공적인 채널 또는 사적인 자리에서 자신이 좌파임을 밝히는데 당당하거나 적어도 별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좀 적을 지는 몰라도 있기는 있는 셈이다.

반면 "나는 신자유주의자요.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은 신자유주의 이외에 없소"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여러분은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우리 사회에서 신자유주의의 깃발을 들고 우뚝 선 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아마 제대로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누구를 겨냥하는 것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신자유주의 비판은 넘쳐나는 데 정작 비판을 받아야 할 신자유주의자(?)는 없는 기묘한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는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등장하는 '공공의 적' 엠마누엘 골드스타인을 생각나게 한다.
윈스턴: [골드스타인과] 형제단은 실존합니까?
오브라이언: 음, 윈스턴, 자네는 결코 알 수 없을 걸세.

안상수 같은 사람들이 말하는 '좌파'란 쉽게 말해서 그때그때 내 맘에 안드는 사회의 트랜드 대부분을 쓸어넣고 씹을 수 있는 편리한 블랙박스 같은 것으로 우리 사회에 실재하는 좌파와는 별 관련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허지웅 같은 사람이 말하는 '신자유주의'나 '파시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굳이 말하자면 신자유주의 비판에서 어느 정도 실체가 있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그것은 소위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불리는 일군의 경제정책 패키지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을 이유로 '그게 왜 신자유주의냐'하는 방어는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 허지웅 본인이 지적한 대로 "그런 방어는 애초의 구질구질한 주장을 무력화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끝없는 사상검증의 악순환을 부채질"할 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안상수 같은 사람은 왜 그러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서라면 이미 반 세기 전에 마루야마 마사오가 탁견을 제시한 바 있다. 전에도 소개한 적이 있지만 다시 살펴보도록 하자.

게다가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이라는 것은, 사회가 방대해짐에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거대한 세력을 가지게 되는 것도, 그 집단 자체의 눈에는 아주 작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곳에서는 각자의 그룹이라는 것이 각각 자신들을 마이노리티(minority)로 의식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각자의 그룹이 각각 일종의 소수자의식, 아니 과장해서 말하면 강박관념 -자신들은 무언가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압도적 세력에 둘러싸여 있다는 식의 피해의식을, 각 그룹 특히 집단의 리더가 각각 지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 그런 사람들의 현대일본에 대한 이미지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아마도 자신들이 일본에서 압도적인 힘을 가진 진보적 세력에 둘러싸여 있다. 우리는 지금이야말로 도도하게 흐르는 속론(俗論)에 맞서서 폭풍우 속의 등불을 지키고 있다는 그런 기분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반대의 입장에서 보게 되면 완전히 사태는 거꾸로 여서. 그런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각이나 그것을 떠받쳐주고 있는 세력 쪽이 압도적으로 강하고, 또 적어도 현재는 적극적 의견으로서는 아닐지라도 소극적인 동조로서 다수 국민의 ‘지지’를 기대할 수 있는 상태에 있습니다.
(…) 이런 식으로 보수세력조차 피해자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니, 진보적인 문화인들에게는 한층 더 그런 마이노리티로서의 피해자의식이 있었습니다. 보수세력도, 진보주의자도, 자유주의자도 민주사회주의자도, 코뮤니스트도 모두 정신의 깊은 곳에 소수자의식 혹은 피해자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전체 상황에 대한 퍼스펙티브(perspective)가 서로 어긋나 있는 것입니다.

여러 사회집단들이 "자신들이 … 압도적인 힘을 가진 … 세력에 둘러싸여 있다. 우리는 지금이야말로 도도하게 흐르는 속론(俗論)에 맞서서 폭풍우 속의 등불을 지키고 있다는 그런 기분"으로 전전긍긍하며 사는 것은 참 우스꽝스럽게 느껴지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는 일이다.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피해자의식은 충만한 반면 느긋함이 부족하다. 내가 서 있는 입장이 옳고, 내가 서 있는 입장이 다수와 함께 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더더욱 그렇다. 자신의 강점에 보다 자부심을 갖고 강자의 여유와 느긋함을 보여주기 바란다. 역사는 당신의 편 아닌가?
by sonnet | 2010/03/29 12:20 | 정치 | 트랙백 | 핑백(1) | 덧글(159)
<< 이전 다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