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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아프가니스탄
2011/11/23   만평 [17]
2011/10/13   전사와 상인, 아프가니스탄에서 [57]
2011/07/22   아프간 탈리반의 부르카 착용 강제 [108]
2011/06/15   체첸인! 체첸인!! [91]
만평
"내가 집에 가는 동안 이걸 좀 잡고 있을래?"
"돈다발로 받쳐놓는 게 어때?"
"나는 아무것도 숨기는 게 없소!"
뒤적뒤적 뒤적뒤적
'빈 라덴'
"하지만 난 다른 건 전혀 숨기는 게 없다오!"
by sonnet | 2011/11/23 11:49 | funstuff | 트랙백 | 덧글(17)
전사와 상인, 아프가니스탄에서
우리와 직접 관계가 없는 먼 나라의 사례를 드는 것은 종종 유용하다. 특히 어떤 문제가 우리 자신과 너무 깊은 관계가 있어 문제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볼 여유가 없을 때 도움이 된다. 북한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기 전에 전사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


아프가니스탄에 관한 신화 중 가장 오류가 심한 말. “그 나라에서는 돈이면 무엇이든 살 수 있다.” 이 신화는 2001년 10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시작 전후에 널리 유포되었다. 언론은 수십 명에 달하는 ‘익명의’ 미국 관리들 말을 인용한 보도를 내보냈다. 미국 정보기관원들과 군인들이 돈 궤짝을 지니고 아프가니스탄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미군 피해를 줄이고 탈레반의 패배와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충성심을 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 전직 CIA 지국장은 호기 있게 말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돈만 뿌리면 대단한 효과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충성심을 얻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돈으로는 가능하다.”

그런 말들이 자주 오르내린다. 하지만 실상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다. 그 신화의 힘이 어찌나 강한지 사람들은 그에 반대되는 증거가 있어도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는다. 밥 우드워드의 책을 다시 살펴보련다. 그는 북부동맹을 돈으로 움직였다는 여러 명의 미국 정부 관리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그 중에는 한 CIA 관리가 동맹의 고위 지도자에게 1백 달러짜리 돈 뭉치로 5십만 달러를 주면서 “더 많은 돈”을 약속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우드워드는 미국 국무장관의 말을 이렇게 인용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북부동맹이 카불에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북부동맹조차도.” 우드워드는 그 이유를 “남쪽의 종족들은 경쟁자들이 수도에 들어온 것을 보면 돌아버릴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51] 사실이 그렇다면 1피트 두께의 1백 달러 뭉치 몇 개를 사용해 북부동맹을 카불에 오지 못하도록 할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2003년 12월 13일 북부동맹군은 미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카불에 입성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언제고 돈을 받는다. 그러나 돈 없이도 하려고 했던 일만 해 준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우리와 많이 다르다. 그들은 돈을 받았어도 돈 때문에 일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하려고 했던 일도 하지 않는다. 그들이 소련에 대항하는 10년간의 지하드 기간 중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외에도 여러 나라가 현금을 포함해 수십억 달러에 해당하는 무기와 봉급, 뇌물, 장비를 지원했다. 많은 미국 관리와 정치인들은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우리 명령대로 움직인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지하드에 나선 아프가니스탄 전사들은 우리가 무슨 소리를 떠들어대든 상관하지 않고 그런 원조 없이도 했을 일만 수행했다. 소련군을 죽이는 일은 누가 하라고 할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재정지원 규모와 상관없이 우리가 지시하거나 부탁하는 공격이나 병력 이동을 끈질기게 거부했다. 마수드와 그의 자미아트 이슬람 전사들만큼 우리 지원을 열렬히 원하면서도 정작 우리 요청을 수용하는 데는 인색했던 무장 단체도 없을 것이다.

다음 일화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고집을 나타내는 훌륭한 예가 될 것이다 1980년대 말 한 고위 외교관이 히스비 이슬라미 지도자 유니스 칼리스를 만나, 소련 지도자 고르바초프가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으니 저항 세력의 전투를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칼리스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아니오. 우리는 소련군이 떠날 때까지 그들을 죽일 것이오.” 깜짝 놀란 외교관이 이번에는 미국과 서방진영이 소련군 철수를 재촉하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므로 무자헤딘이 공격을 줄이면 외교적 압력에 한층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칼리스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나직이 말했다. “아닙니다. 소련군이 떠나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죽이기 때문이고, 우리는 그들이 철수할 때까지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계속 죽이면 그들은 떠날 것입니다.

Scheuer, Michael. Imperial Hubris: Why the West Is Losing the War on Terror. 1st ed. Potomac Books Inc., 2004. (황정일 역, 『제국의 오만』. 서울: 랜덤하우스중앙, 2004, pp.88-90)


아프간 전사들을 다루는 문제는 언제나 골칫거리였다. 그건 19세기의 대영제국도, 1980년대의 소련도, 그리고 지금의 미국도 마찬가지이며, 심지어는 민족적으로 가깝고 탈리반의 후견자였던 파키스탄조차 그랬다. 특히 물질적 원조를 통해 이들을 통제하고 더 나아가 조종하려는 시도는 거의 언제나 실패했다.

지금 미국은 아프간 전쟁에서 발을 빼기 위해 자신이 세운 아프간 정부와 반정부 무장세력 사이에 일종의 권력공유협정을 만들어 놓고 떠나려고 하지만 이 계획은 틀림없이 실패하게 되어 있다. 아프간 역사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소련군이 떠난 뒤에도 그런 노력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외부의 물질적 원조는 우리와 제휴한 세력이 싸움에서 살아남는데 도움이 될 수는 있으나, 그들이 우리 말을 잘 듣게 만들어주진 못한다. 아마 상인들은 믿고 싶어하지 않겠지만.
by sonnet | 2011/10/13 18:58 | 정치 | 트랙백 | 덧글(57)
아프간 탈리반의 부르카 착용 강제

부르카 이야기가 좀 나와서 아는 대로 조금. (무슨 다른 이야기와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 사람들이 말하는 부르카 문제는 아마도 아프가니스탄 이야기일 겁니다. 1990년대 탈리반이 아프가니스탄 대부분을 정복한 다음, 여자들에게 부르카를 입지 않으면 외출을 금지하는 율법해석을 강제하면서 외부 세계에 여러 차례 보도가 되었지요.

국내 소개된 자료 중에서 이 주제에 대해 꽤 상세히 다루는 책으로는 피터 마스덴의 『탈리반』이 있습니다. 한 장을 '탈리반의 성 정책'에 할당하고 있죠. 그 외 아흐마드 라시드라든가 다른 저자들의 탈리반이나 아프간 관련 자료들에서 단편적으로 나타나는 이야기들을 취합하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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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1. 결혼 후에 집에서 현모양처로 사는 여성들이 하나의 이상형이긴 했지만, 그것은 도시 중상류층이상이라든가 시골의 부농 같은 어느 정도 사는 집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아프가니스탄은 매우 가난한 나라라서, 먹고살기 위해 온가족이 총동원되어 일을 하고 있는 경우가 흔했다. 예를 들어 도시 하류층 여성들은 행상 같은 것을 했고, 농촌 여성들 같은 경우 대부분 나가서 밭일 등을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들판에서 농사일을 하고 가축을 치는데 부르카 같은 것을 입지는 않는다.

2. 탈리반이 아프간을 정복하고 그것을 강요하기 전에도, 부르카는 아프간 여성들이 즐겨 입는 복장 중 하나였다. 아무도 안 입다가 강요해서 모두가 입게 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좀 다른 곳에 있었다. 아프간 기준으로 부르카는 꽤 비싼 옷이었고, 가난한 집 여성들은 흔히 부르카가 없었다. 돈 있는 여성들만 입을 수 있는 패션이 흔히 그렇듯이 기회만 있다면 자랑스럽게 입고 다니고 싶어한 여성들은 많았다.

3. 부르카는 기본적으로 도시 지역의 패션이었다. (앞서 설명한 것 같은 이유로 부르카는 농촌의 일상생활에 부적합한 옷이었다) 그런데 도시가 발전하고 시장이 생기고, 도농간 교류가 늘어나면서 시골 여성들이 도시 여성들을 모방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동네에선 잘 입지 않아도 읍내 나갈 때는 입어준다든가 하는 식으로 부르카 착용이 늘어났다. 물론 우선 부르카를 갖고 있어야 말이겠지만.

4. 여기 한 가지 중요한 예외가 있었다. 아프간 수도 카불은 1950년대에 벌써 미니스커트가 등장하고 왕비가 머리수건을 벗고 대중들 앞에 등장하는 등, 다른 아프간 대부분의 지역과는 달리 훨씬 국제적인 취향의 대도시였다. 따라서 카불의 패션은 시간이 갈수록 서양 스타일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방 도시들에서도 소수나마 수도의 패션을 모방하고자 하는 유행에 민감한 여성들이 있었다.

5. 결과적으로 세 그룹의 여성이 있었다. 1)돈이 없고 바깥일을 해야 하기에 부르카와 별 인연이 없는 저소득층, 2)부르카를 입을 수 있는 시골과 도시의 중상류층, 3)서구화 경향을 띤 수도의 교육받은 여성층(상당히 소수임). 시골에선 부르카 착용이 조금씩 늘어나는 반면, 도시에선 반대로 조금씩 줄어드는 경향에 있었다.

6. 지역적으로는 북부보다 남부 지역에서 부르카가 더 일반적이었다. 남부 지역은 탈리반이 속한 파슈툰족의 본거지이다.


탈리반 통치

이런 상황에서 탈리반이 동남부의 파키스탄 국경을 넘어와 아프간을 정복한 다음, 소위 말하는 복장규제를 발표하고 종교경찰인 선행증진악행방지부와 탈리반 병사들을 동원해 단속에 나섰다.


7. 탈리반의 정복은 기본적으로 시골 세력이 도시를 정복한 유형의 사건이었다. 많은 탈리반 병사들은 아프간-파키스탄 국경지대의 난민촌 등에서 자라 종교교육만 받았고, 도시 생활이나 여성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그들은 도시는 썩었고 퇴폐적인 문화로 가득차 있다고 배웠고 또 도시와 조우하여 컬쳐쇼크를 받고는 실제로도 그렇게 느꼈다. 그래서 탈리반은 썩은 도시민들에게 소박하고 건전한 (시골) 문화를 가르쳐서 네놈들을 사람답게 만들어 주마라는 식의 정책을 펼쳤다. 반대로 정복당한 아프간 도시민들 입장에서 탈리반은 무식하고 거칠기만 한 촌뜨기들이었다. 세계 어딜 가도 도시문화가 시골로 전파되는 것이지 시골문화가 도시로 전파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법이다. 탈리반은 문화의 전파를 역류시키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정복자와 피정복민 간의 갈등은 도시로 갈수록 커지는 경향이 있었고, 말을 안들으면 탈리반은 힘으로라도 관철시켰다. 또 탈리반이 정복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지역들은 한층 더 거친 통치를 받는 경향이 있었다. 파슈툰족의 본거지 칸다하르보다는 카불이나 이란 국경지역의 도시 헤라트 같은 곳에서 더 많은 충돌이 보고되곤 했다.

8.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달리 탈리반은 남녀 모두에게 강력한 복장규제를 실시했다, 여성이 부르카를 입어야 한다면 남성은 수염을 기르고 손질하지 않은 머리에 터번을 쓰고 살와르 카미즈를 입어야 했다. 과거 시리아에서 무슬림형제단의 반란이 진압된 직후 시리아 남성들은 형제단원으로 지목받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앞다투어 수염을 말끔히 깎고 다닌 적이 있었다. 탈리반 치하에선 반대의 현상이 벌어졌다. 길거리에서 종교경찰과 병사들의 단속에 걸릴 경우 몽둥이 찜질이 벌어지곤 했기 때문에 일부 남성들은 수염이 빨리 자라기만 기다리며 외출을 삼가했다.

9. 남자들의 수염은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든 자라지만, 부르카는 그렇지 않은 법. 많은 여성들이 부르카를 갖고 있지 못한데 복장단속은 갑자기 실시되었다. 부르카를 입어야 되어 불편한 것도 문제이지만, 부르카가 없어서 집 밖에 못나가는 상황은 더 큰 문제였다. 그래서 꼭 나가야 할 일이 있으면 부유한 이웃집에 사람을 보내어 부르카를 빌린 후 입고 나간다든가 하는 편법들이 종종 사용되었다.

10. 탈리반은 정책실행에 있어서, 사람들의 사정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지키는데 문제가 있는 건 네 사정일 뿐이고 우리는 원칙대로 한다는 것이 그들의 평소 입장이었다. 일례로 탈리반은 여학교를 대거 폐쇄했다. 올바른 이슬람 여성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탈리반이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탈리반 이전 정권인 무자히딘들도 세계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이슬람주의자들이었지만, 그래도 소용없었다. 탈리반은 무자히딘을 썩은 무슬림들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탈리반 식이어야만 했다. 일단 새 교육과정이 준비될 때까지만이라도 기존 여학교들을 운영하자는 제안은 거부되었다. 일단 폐쇄부터 하고 새 교육과정이 준비되면 그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복장단속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11. 부르카 착용 강제가 가져온 최대의 문제는 여성의 경제활동이 심각하게 제약받은 것이다. 온가족이 모두 나가서 일을 해야 입에 풀칠할 수 있는 많은 빈곤층 가정에 이것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였다. 엄마가 일을 못하게 되자 애들이 나가서 길에서 물건을 판다든가 구걸을 하는 일이 늘어났다. 카불이 점령된 후 5만명 이상의 난민이 파키스탄으로 떠났는데, 대부분은 여성의 수입원이 없어짐으로서 난민으로 전락한 사람들이었다. 헤라트 지역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이란으로 피신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심지어는 탈리반이 출범한 파키스탄의 난민촌에서도 귀국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여자도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12. 이처럼 부르카 강제 정책은 고등교육을 받고 사회활동을 하던 수도의 취업여성들과,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도시의 하층 여성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반대로 부르카 착용으로부터 가장 영향을 적게 받은 집단은 유산계층의 전업주부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바깥일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전업주부였던 것이니까. 농촌은 향촌자치적인 성격이 강하고 인구밀도상 단속의 손길이 적었기 때문에 도시보다 상대적으로 타격이 적었다.


대충 이런 분위기나 전후 맥락 속에서 부르카 착용이 강제되었고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을 알고 보면 보다 입체적인 이해가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by sonnet | 2011/07/22 11:25 | 정치 | 트랙백 | 덧글(108)
체첸인! 체첸인!!
2001년, 탈리반과의 전쟁에 연락과 지원을 목적으로 투입되었던 CIA 준군사요원들의 회고담입니다. 개인적인 감상과 논평은 같이 읽은 후 끝에서 다시 하기로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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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그는 SUV의 후드에 기대어 쌍안경을 고정시키고 맞은편 언덕을 향해 초점을 맞추었다. 능선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밤 전방으로 보냈던 60명의 [아프간] 무자히딘 전사들이 거기 있었고, 그는 이른 아침의 추위 속에서 그들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몇 군데 피워진 모닥불에선 맑은 하늘을 향해 가늘고 하얀 연기가 올라가고 있었으며, 각각의 모닥불 옆에는 모닝 티를 마시려고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사내들이 서너 명씩 모여 있었다. 크레이그는 전선을 살펴보곤, 어젯밤 그들이 설치한 방어진지가 빈약함을 알아차렸다. 또한 그는 그들의 장비가 진지 근처에 아무렇게나 늘어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이 노련한 고참병이 아니라 근처 마을에서 모아들인 사람들임을 감안해도 형편없는 군기였다. 그들 중 일부는 1990년대 초에 아프간 공산정권이나 소련군과 맞서 싸운 경험을 갖고 있었지만, 그들도 지금은 농부나 가게주인이었으며 마을 생활로 인해 늘어져 있었다.

크레이그는 그가 관찰하던 언덕 3백 야드 뒤에 위치한 높은 능선 꼭대기 바로 뒤에 차를 세워두고 있었다. 그는 거기서 8백 야드 앞에는 수백 명의 탈리반 전사들로 구성된 부대가 능선에 배치되어 있음을 알고 있었다. [나중에 아프간 대통령이 된] 카르자이의 부대는 미군의 강력한 항공 엄호를 받으며 지난 4일 동안 탈리반을 꾸준히 남쪽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탈리반의 손실은 심각했으며, 그들이 맞서 싸우기 위해 진지를 구축하려고 할 때마다 하늘에서 폭탄이 비 오듯이 쏟아져 그들을 죽이고 부수었다. 그러다보니 다음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카르자이의 부하들이 긴장감 없는 자신감을 품고 있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이 길고 느릿느릿한 싸움의 끝은 정해져 있었다. 탈리반은 이미 패배했다. 다만 그들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

크레이그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우리 편 방어선의 준비태세가 보이는 차이에 미소를 지었다. 이들 아프간군이 마련한 방어진지는 깊은 참호와 무거운 돌 위에 진흙으로 보강한 둔덕으로 잘 구축되어 있었다. 장비들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으며, 후방에서 모닝 티와 밥이 준비되는 중에도 각 위치에 한 명씩은 배치되어 있었다.

크레이그와 함께 와 있는 세 명의 [CIA] ECHO팀 요원들은 두 대의 SUV 주변에서 일하고 있었다. 통신장교 록키는 사령부와 아침 통신을 갖기 위해 그의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크레이그의 부지휘관인 프랭크는 또 다른 CIA 특수작전국(SAD) 소속 준군사부대 장교인 호세와 함께 현지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무기와 야전장비는 가까운 곳에 정리되어 있었다. 그들은 모두 L.L. 빈 필드 옷과 장화에 미군 캔버스 웹기어와 군용 홀스터, 탄약집이라는 기묘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CIA가 아프간에 맞춰 사준 물건들이었다. 20야드 옆에서는 미군 특수부대 ODA-574 요원들이 아침 작업에 열심이었다. 커피 끓이는 곳 주위에 모여앉아 통신을 연결하고 그날 할 일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크레이그는 프랭크를 불러 특수부대원들과 인사를 나누러 갔다. 그리고는 오늘의 근접항공지원에 대해 물어보았다. 공군의 전술항공통제관은 크레이그에게 우리 쪽에 배정된 B-52가 한 대 있으며, 30분 안에 작전위치에 도달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날 아침의 항공 패키지 중 나머지는 우선도에 따라 분배될 것이지만, 그들은 그날 중에 요청할 수 있는 충분한 화력을 갖게 될 예정이었다.

남쪽 하늘에 약간의 적층운이 보일 뿐인 쾌청한 날이었다. 공기는 차가왔지만 오후에는 5~6℃ 언저리까지는 올라갈 예정이었다. 탈리반을 폭격해 그들의 혼내주기에는 최적의 날씨라고 크레이그는 생각했다. 아침을 즐기며 걷는 동안 크레이그는 오늘 밤에 탈리반 진지를 쓸어버리기 위해 AC-130 건쉽을 확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프랭크에게 말했다. 쉬지 않고 그들을 폭격하는 것은 그들의 사기를 꺾는 데 도움이 될 터였다. 105mm 포와 40mm 개틀링 건을 갖춘 AC-130은 그날 밤 탈리반들을 생지옥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그들은 다음 언덕 꼭대기로 올라갔고 하이다르 하사의 환영을 받았다. 그는 카르자이의 이 부대에 희귀한 고참병이었다. 카르자이가 자신의 휘하에 겨우 4백 명 정도의 전사들을 긁어모은데 불과하다는 것을 감안할 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하이다르는 영어를 겨우 몇 마디 할 수 있는 정도였지만, 그와 크레이그는 문제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크레이그는 엉망진창인 방어진지를 가리켰다. “나빠. 맞아, 하지만 사람들 지쳤다.” 하이다르의 답이었다. “그들은 말해, ‘적들 도망가, 걱정 말아.’”

“그래, 적들은 도망가지. … 하지만 적은 여전히 총을 쏠 줄 안다구.” 크레이그는 팔을 들어 총을 쏘는 시늉을 했다. “힘내시오. 하이다르 하사.” 그는 왼쪽 팔을 굽혀 자기 쌍안경을 가리켰다. “힘내요.”

하이다르도 미소를 지으며 자기 팔을 굽혀 보였다. “그래, 힘내자.” 그는 돌아서서 주위를 둘러보고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는 다시 크레이그와 프랭크 쪽으로 돌아서더니 미소를 지었다. “차, 좋아해?”라면서 몇 피트 떨어진 작은 모닥불위에서 김을 뿜어 올리고 있는 검댕 투성이 주전자를 가리켰다.

그들은 모닥불을 향해 걸어갔다. 그때 반대편 언덕에서 총성이 들렸다. 그리고 몇 발의 총성이 연이어 차가운 아침 공기를 갈랐다. 그들은 모두 멈춰 서서 계곡 건너편의 탈리반 진지 쪽을 쳐다보았다. 아프간인들은 활동을 중단하고 총성이 난 건너편을 살펴보기 위해 느릿느릿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대편 언덕 위에선 움직임이 눈에 띄었다. 크레이그는 자신들이 위치한 쪽을 향해 걸어오는 검은 옷을 입은 둘, 아니 세 명의 사내를 볼 수 있었다. 세 사내는 일렬로 서서 AK-47 소총을 쥔 채 머리 위로 손을 들어올리고는 뭐라고 외쳤다. 그 소리는 그들이 있는 곳까지 전해지긴 했지만 흐릿해서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더니 세 사내는 앞으로 걸어 나와서는 그들이 있는 쪽을 향해 경사를 내려오기 시작했다. 크레이그는 쌍안경을 들어 그들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그들은 언덕을 내려오는 오솔길을 따라 걸음을 빨리 하며 유유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검은 터번에 느슨한 검은 옷을 입고, 가슴에는 검은 컨버스 웹기어와 탄창을 매달고 있었다.

크레이크는 프랭크와 하이다르에게 말했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 잘 모르겠군. 하지만 이 동네 스타일은 아닌 것 같은데.”

세 사내는 계곡 바닥까지 내려와서는, 보조를 맞춘 채 속도를 올려 크레이그와 일행이 어리둥절한 채 지켜보고 있는 바로 그 언덕을 향해 똑바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저 세 녀석은 뭘 하려는 건가? 그들은 3~4 피트 간격을 두고 횡대를 유지한 채, 크레이그와 아프간 병사들이 기다리고 있는 방향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려왔다.

그러자 방어선 아래쪽에서 개활지를 쉬지 않고 달려 건너오고 있는 세 사내를 지켜보고 있던 아프간인 중 하나가 외쳤다. “체체냐! 체체냐!” 그 외침에 다른 사람들도 호응했다. “체체냐!” 두려움과 공포의 물결이 언덕 위의 방어선에 자리 잡은 사내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공황은 너무나도 강렬한 나머지 크레이그는 몸으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탈리반과 싸운 모든 전투에서 탈리반과 함께 싸우는 일군의 체첸 전사들에 대한 소문과 보고가 있었다. 그들은 광신적이고 거친 전사들이자. 훈련수준이 높고 자신의 무기를 분신처럼 다룬다고 했다. 며칠 전에 있었던 특별히 힘든 교전에서 카르자이 부대의 여러 병사들이 머리에 저격을 받고 전사한 것으로 밝혀진 바 있었다. 이것은 아프간에선 희귀한 일이었다. 그들은 다들 자신의 무기를 잘 조준하는 대신 알라가 그들의 총알을 인도해 주실 것을 믿으며 쏘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정확한 사격은 체첸인들의 소행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크레이그는 아프간인들의 방어선을 살피며 어처구니가 없어 현기증을 느낄 정도였다. 그는 공황이 뿌리내린 것을 볼 수 있었다. 전원 무장한 60명의 사나이가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세 명의 사내 때문에 얼어붙어 있었다. 그는 하이다르 하사를 붙잡고 소리쳤다. “저들에게 쏘라고 말해, 쏴!” 그는 총을 쥐고 쏘는 시늉을 했다. 하이다르는 이윽고 정신을 차린 듯 행동에 나섰다.

하이다르는 몸을 돌려 자기 부하들에게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공포가 그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들은 몸을 날려 각자 자신의 AK-47 소총을 집어들었다. 그들이 제각기 탄창을 꽂고 사격준비를 하면서 철청거리는 소음과 움직임의 물결이 퍼져나갔다. 하이다르도 자신의 AK-47을 들고 언덕 끝으로 달려가, 쉬지 않고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세 검은 인영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다음 명령을 외치며 자신의 무기를 높이 쳐들어 보인 후 사격을 시작했다. 그의 총이 어께를 향해 반동을 전했고, 그는 점사로 서너 발의 총탄을 쏘았다.

다른 이들이 연사를 시작하자, 반동으로 총구가 하늘로 튀어 올랐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사격이 정점에 달했는데도, 지축을 울리는 총성 속을 뚫고 쉬지 않고 뛰어오는 세 사내를 보면서 크레이그는 놀람을 금할 수 없었다. 탄환이 지면으로 쏟아짐에 따라 흙먼지가 날리고 돌멩이들이 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사내는 그들의 보조를 늦추지도 대오를 흐트러트리지도 않은 채, 처음과 똑같은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사격은 몇 초간 계속되었지만, 아프간인들이 서른 발 들이 탄창을 모두 소모함에 따라 차례차례 끊기기 시작했다. 세 사나이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으며 크레이그는 하이다르를 향해 계속 쏘라고 외쳤다. 당황한 손길로 총에 새 탄창을 꽂음에 따라 들쑥날쑥한 양의 사격이 계속되었다. 콩 볶는 듯한 총성 때문에 귀를 먹을 것 같았기에 크레이그는 손가락으로 귀를 막았다, 하지만 여전히 세 사나이는 상처를 입지 않은 채 계속 뛰어 오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언덕 뿌리에 거의 도달했고, 언덕 위의 전선에 정적이 흐름에 따라 그들은 세 사내가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알라후 아크바르!” 그들은 뛰어 오면서 거듭 외쳤다. 아프간인들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다시 한번 “체체냐!”라는 외침이 튀어나왔다. 그것이 신호이기나 한 듯, 60명의 사내 모두가 몸을 돌려 전선을 버리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크레이그는 그들을 향해 멈추라고 소리 지르며, 자기 근처로 달려오던 한 사내를 붙잡았다. 하지만 그는 크레이그의 손길을 뿌리치고는,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언덕 반대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동료들을 따라잡기 위해 뛰어갔다.

크레이그와 프랭크는 언덕 기슭을 내려다보았다. 세 명의 체첸인들이 그들을 향해 올라오는 중이었다. 프랭크가 말했다. “저들은 제가 본 중에서 최고로 용감한 자들이군요. 아니면 씨팔 미친 놈들이거나요. 어느 쪽이든 간에 저는 여기서 그들과 조우하고 싶진 않은데요. 어떻게 하실 겁니까, 크레이그?”

“멀찍이 떨어져서 인사를 하자구, 프랭크.” 크레이그는 몸을 돌리고는 언덕 아래로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르는 프랭크와 함께, 그들은 전력으로 뛰어 도망가고 있는 아프간 부대를 따라잡았다. ODA-574 부대원들과 합류한 크레이그와 프랭크는 그들이 버리고 온 진지에 서 있는 세 체첸 사내들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크레이그는 공군 전술항공통제관에게 외쳤다. “B-52는 아직도 대기 중인가?”

“네, 우리가 표적 좌표를 주기만 기다리면서 8자 비행을 하고 있습니다.”

크레이그는 세 체첸인들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도주한 아프간인들이 버리고 간 물자들 사이를 유유히 거닐고 있었다. “좋아, 언덕 꼭대기 좌표를 불러주자구. 저 세 놈에게 소환장을 발부하게.”

무선 교신을 하는 동안, 크레이그는 세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크레이그 일행을 향해 외설적인 게 틀림없는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들 중 한 사내는 다리를 쩍 멀리고 사타구니 사이에 양 손을 집어넣은 채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자기 말을 표현했다. 다른 자는 뒤돌아서서 그들을 향해 엉덩이를 찰싹찰싹 두들기더니 그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비웃었다.

전술항공통제관이 말했다. “2천 파운드 폭탄 한 발이 날아가는 중입니다. 명중까지 25초.”

크레이그는 서서 반대편의 세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가 보고 들은 것 중에 최고의 용감성이었다. 60명이 미친 듯이 총을 쏴대는 속을 뚫고 대오도 흐트러트리지 않은 채 개활지 600~700 야드를 돌격한 자들이었다. 지금 그들이 거기 서서 자신들이 망신 준 상대를 조롱하고 있었다.

크레이그는 그들에게 찾아올 결과가 유감이었다. 하지만 그의 부하들은 사기를 회복해야 했다. 그들은 내동댕이치고 도망 온 긍지를 얼마만이라도 되찾을 필요가 있었다. 크레이그는 저 셋이 언덕으로 올라오는 동안 그와 프랭크가 그들을 죽일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아프간 병사들은 그 장면을 볼 수 없을 터였고, 그들의 마음 속에선 이 사건이 마무리되지 않을 것이며, 혹은 프랭크와 그에게 어떤 원한을 품을지도 몰랐다. 이렇게 해야만 세 체첸 사내에게 그들의 조롱을 되돌려주고 끝낼 수 있었다.

크레이그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20초. 그는 앞으로 나서서 오른손을 들어올려, 천천히 흔들며 커다란 원을 그렸다. 체첸인 중 한 자가 그를 보고는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올려 중지를 하늘로 치켜세웠다. 바로 그 순간 체첸인들이 자랑스럽게 서 있던 바로 그곳을 GBU-31이 강타했다. 언덕꼭대기는 거대한 불꽃과 연기로 뒤덮였다. 크레이그를 둘러싼 아프간인들이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순간적으로, 크레이그는 자신이 폭발 속에서 인영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순간적으로 사라졌고, 그는 자신의 상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Schroen, Gary, First In: An Insider's Account of How the CIA Spearheaded the War on Terror in Afghanistan, Presidio Press, 2005, ch.41(pp.279-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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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눈에 띄는건 체첸 지하드 전사들의 놀라운 용맹입니다. 기백 하나로 고지를 점령하고 있는 20배나 되는 적군을 겁줘서 쫓아버리니... 체첸 전사들은 러시아군과의 싸움에서 전설적인 전투종족(?)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아프간 원정경기에서도 그 실력을 재확인한 셈입니다. (어떤 군대도 자기 마을이나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하는 홈 경기에선 두 배는 잘 싸우는 법입니다. 진짜 강한 군대는 먼 이국 땅에 가서도 보급도 할 수 있고 싸움도 잘하는 그런 군대죠.)

또한 이 이야기는 급조된 민병대의 전투력이나 군기에 대해서 보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상황이 좋을 때는 그럭저럭 싸우는 듯도 싶지만, 조금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와그르르 무너지는 건 오합지졸들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또 맞든 안맞든 오토로 쏴서 총알만 낭비하는 형편없는 사격 군기나 분위기에 휩쓸려 패주하는 모습도 전형적이기 짝이 없지요. 이 사례에선 하미드 카르자이가 급조한 파슈툰족 민병대가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최근 벌어지고 있는 사태 중에선 리비아 반군이 이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서방이 막강한 공군으로 받쳐주지 않으면 자신보다 화력이 뛰어난 정규군과의 싸움에서 형편없이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었죠. 그로즈니에서 러시아군과 맞붙은 체첸 전사들은 러시아군이 보낸 백여 대의 탱크를 오리사냥해 보임으로서 이런 그룹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입증한 바 있습니다. (불행중 다행이라면 리비아의 경우엔 정규군의 질도 아주아주 좋지 않습니다. 오합지졸들 간의 싸움이라고나 할까요)
by sonnet | 2011/06/15 22:25 | 정치 | 트랙백 | 핑백(9) | 덧글(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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