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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아리스토텔레스
2009/05/04   토머스 쿤과 종교적 체험 [26]
토머스 쿤과 종교적 체험
원래 하던 이야기와는 동떨어진 것이지만 쿤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그의 이론은 기본적으로 과학이라는 학문의 인식적 틀이 바뀌어 본 적이 있는 자신의 준 종교적 체험을 해설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점은 쿤 스스로가 개종(*)의 경험담을 털어놓고 있는 데서 잘 나타난다.

나는 1947년 여름에 물리학과 관련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 중 일부를 처음으로 읽었는데, 그 당시 나는 물리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으로서 과학자가 아닌 사람을 위한 자연과학 수업에 이용하기 위해 역학의 발전에 대한 사례 연구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연히 나는 이전에 읽었던 뉴턴 역학을 똑똑히 염두에 두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에 접근했다. 내가 대답하고 싶었던 물음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과학 혁명 이후의) 역학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알고 있었으며, 갈릴레이나 뉴턴이 발견할 수 있도록 얼마나 많은 것을 남겨 두었나 하는 것이었다. 이런 공식을 갖고 접근하자마자, 나는 곧 아리스토텔레스가 역학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모든 것들은 그 이후의 과학자들에게, 그 중 대부분은 16~17세기의 과학자들에게 남겨져 있었다. 이러한 결론은 표준적인 것이었고 원칙적으로는 옳을 수도 있는 결론이었다. 하지만 이런 결론은 나를 불편하게 했다. 왜냐 하면 그의 저술을 읽다 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역학에 대해서 무지했을 뿐만 아니라 형편없는 물리학자였던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운동에 대한 그의 기술은 그 논리나 관찰 모두에서 명백한 오류들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결론은 그럴 듯하지 않았다. 어쨌든 아리스토텔레스는 고전 논리를 정초한 사람으로 추앙받아 왔다. 그의 사후 거의 2천 년 동안 그의 저작은 유클리드(Euclid)의 교과서가 기하학에서 했던 것과 같은 역할을 논리학에서 했다. 게다가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자신이 자연에 관하여 비상할 정도로 날카로운 관찰자임을 자주 입증하였다. 특히 생물학에서 그의 기술(記述)은, 16~17세기에 이르러 근대적인 생물학 전통이 등장하기까지 중심적인 모형을 제공해 왔다. 어떻게 그의 남다른 능력이 운동과 역학에 대해서는 그토록 철저하게 내버려질 수가 있었을까? 마찬가지로 만약 그가 역학 분야에서 그렇게 무능했다면, 물리학에 관련된 그의 저술이 사후에도 그토록 오랫동안 진지하게 평가된 것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이러한 의문들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부분적으로 실수를 했다는 것은 몰라도 물리학의 영역에서 완전히 실패했다고는 쉽게 믿을 수 없었다. 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라 내게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반문해 보았다. 아마도 그의 말들이 그와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의미했던 바는 나와 현재의 사람들이 그 말들을 이해하는 방식과는 달랐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원전에 대한 탐구를 계속했고 결국 나의 의심은 근거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어느 날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physics』 원전을 앞에 펼쳐 놓고 색연필을 손에 쥔 채로 책상에 앉아 있었다. 나는 눈을 들어서,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내 방 창문 너머의 풍경을 막연하게 바라보았다. 갑자기 내 머리 속의 단편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분류되어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얼이 빠질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일순간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정말로 대단히 훌륭한 물리학자라고 느껴졌고, 그것도 내가 여태껏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그러했다. 그제야 나는 왜 그가 자신의 저술에서 그렇게 말했는가와 그가 누려 왔던 권위가 어떤 것이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전에는 터무니없는 오류라고 여겨졌던 진술들이 이제는 강력하고 대개의 경우 성공적이었던 한 전통 내의 사소한 실수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와 같은 종류의 경험 -조각들이 갑자기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되는- 은 내가 사례들을 더 잘 생각해 본 다음에 끄집어내려는 혁명적 변화의 특징들 중 첫 번째 것이다. 비록 과학 혁명이 단편적인 마무리 작업거리들을 많이 남겨 두기는 하지만, 중심적인 변화는 결코 한 번에 하나씩 단편적으로 경험될 수 없다. 그 대신, 혁명적 변화는 어느 정도 갑작스럽고 구조화되지 않은 변환을 동반하는데, 이 과정에서 부단히 변화하는 경험의 어떤 부분은 그 스스로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분류되어 그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양식들을 드러낸다.

토마스 쿤, 「과학 혁명이란 무엇인가」, 조인래 편역 『쿤의 주제들:비평과 대응』, 이화여대 출판부, 1997, pp.190-192


이것이 소위 쿤의 '아하! 체험'이라는 것인데, 가족들이나 주위 사람들에게도 이 경험담을 여러 번 되풀이해 이야기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Physics』를 원전으로 읽고 또 읽으면서 뜻이 통할 때까지 반복하다가 잠깐 쉬면서 창 밖의 풍경을 멍하니 보던 중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나는 석가불 같은 사람들도 이와 흡사한 전환(conversion)의 과정을 겪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러다보니까 쿤의 책은 필연적으로 장황한 책이 된 것이 아닐까? 개종의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말로 개종의 순간을 설명하다보니까 전달이 잘 안되는 것이다. 쿤은 개종한 사람과 안한 사람이 말이 안통한다(incommensurable)고 하는데 일단 자기 책부터가 그렇다. 아마 『과학혁명의 구조』가 종교적이든 아니든 어떤 전환의 경험을 해본 사람들만 대상으로 한 책이었으면 아주 쉽지 않았을까 싶다.


* 쿤은 스스로 패러다임 쉬프트를 게슈탈트 전환(gestalt switch) 또는 개종(conversion)에 비유한 바 있다. 개종은 반영구적 변화인 반면 게슈탈트 전환은 그렇지 않아서, 게슈탈트 전환 비유는 즉각 공격을 받게 되고 쿤은 '아 그럼 그게 아니고' 식의 좀 구차해 보이는 해명을 늘어놓게 된다. 반면 개종은 과학을 종교처럼 다뤘다는 인상을 주어서 이건 이거대로 대차게 까일 소지를 제공하는데...
by sonnet | 2009/05/04 08:00 | 과학기술 | 트랙백 | 덧글(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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