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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신보수주의
2009/06/01   신보수주의의 태동 [39]
신보수주의의 태동
로버트 니스벳은 conservative의 관점에서 미국 사상계에서 네오콘의 태동을 68운동에서 찾는다.

그에 따르면 신좌파(new left)가 자신들이 태동할 수 있는 배경과 보호막을을 제공했던 온건 자유주의자(liberal)을 공격해 타격을 줌으로서 커다란 공백을 만들고, 그 뒤 신좌파의 과격함에 질린 사람들이 가져온 반동과 함께 그 빈자리를 신보수주의가 메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는 1960년대에 태어났다. 신보수주의는 그보다 앞서 일어난 신좌파의 부상 및 학생 혁명의 발발과 분리되어 생각될 수 없다. 이러한 사태 전개에 핵심인물이었던 어빙 크리스톨Irving Kristol은 한때 신보수주의자를 학생 혁명에 의해 뒤통수를 얻어맞는 자유주의자로 묘사했다. 신좌파는 적어도 미국에 있어서 애당초 1차적으로는 대학의 캠퍼스에 국한된 현상이었으며, 신보수주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책의 시각에서 볼 때, 일종의 역사의 간지(奸智)historical cunning의 작용을 신보수주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신보수주의는 버크의 『성찰』에서 시작된 보수주의와 정치적 혼란간의 반작용 관계의 가장 최근의 발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전에 자유주의자이거나 사회민주주의자였던 대학의 교수진 중 상당수가 1960년대 말에 이르러 정치적 우익으로 전향해야 했다는 사실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결국 캠퍼스에서의 혁명적 격정의 대부분은 보수주의자나 반동주의자가 아니라 자유주의자를 겨냥한 것이었으며, 적어도 당시에는 그렇게 보였다. 버클리, 코넬, 위스콘신, 하버드, 예일, 미시간 및 여타 주요대학에서의 극적인 봉기는 거의 예외 없이 자유주의적 총장과 아마도 자유주의적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교수협의회 및 위원회에 도전한 것이었다. 보수주의적 학자들 -소수였으며, 단순히 무시되는 듯했다- 은 대학의 신좌파 운동에 의해 거의 박해를 당하지 않았다. 신좌파가 전개한 가장 완강하고 지속적인 공격은 광범위한 면책 및 사면, 교리의 함양 및 피난처의 제공에 뒤이어 진행되었다. 그것은 학생 혁명가들이 마치 원초적 정념을 프로이트식으로 발산시키는 과정에서 바로 캠퍼스에서 자신들의 운동의 아버지들 -곧 애초에 학생들을 키우고 보호했던 교수진- 을 살해하고자 선택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 학생 혁명은 이제 미국에서 충분히 진척되었다. 즉 학교 공동체 -교과 과정에 대한 권위와 강의실 및 사무실에서의 박해로부터의 자유를 포함해- 에 대한 파괴가 충분히 진척되어 결정적으로 보수주의적인 반동을 태동시키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권위’ ‘시민적 질서’ ‘전통’ ‘사회 계약’과 같은 단어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논문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Nisbet, Robert., Conservatism: Dream and Reality,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6 (강정인,김상우 역,『에드먼드 버크와 보수주의』, 문학과지성사, 1997, pp.193-194)
by sonnet | 2009/06/01 10:04 | 정치 | 트랙백 | 덧글(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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