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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식량원조
2009/11/06   WFP 북한 구호 예산안(2009) [14]
2009/10/24   garry's comments(1) [83]
2009/10/20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정책의 원칙 [111]
WFP 북한 구호 예산안(2009)
WFP의 행정비용 (sprinter) 에서 트랙백

다음은 WFP의 2009년도 북한 긴급구호 사업계획서(WFP_NK_plan.pdf)입니다. 여기에는 두 장의 예산구성표가 첨부되어 있는데, 위 글에서 궁금해하는 경비의 규모나 각각의 명세가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이건 이대로 집행되었다는 의미는 아니고, 목표금액이 모금된다는 전제 하에 이렇게 쓰일 것이다라는 그런 뜻입니다.(실제로는 글로벌 경제위기로 기부 자체가 위축된 데다가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으로 올해 모금 실적은 형편없습니다.)
전체 프로그램 구성은 크게 나누면 곡물 구입비(59%), 운송(29.5%), 직접경비(5%), 간접경비(6.5%) 쯤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직접경비의 세부명세는 다음과 같습니다. '월급' 항목에 대한 궁금증을 푸는 데는 이쪽이 참고가 될 겁니다.
간접경비(7%쯤)의 세부명세는 없습니다만, 제 추측으로는 WFP라는 기구의 경상운영비, 각종 홍보 및 모금 활동 등에 드는 비용 같은 것들이 아닐까 합니다. 즉 여기도 월급 성격의 비용이 들어 있다고 봐야겠지요.
by sonnet | 2009/11/06 13:17 | 정치 | 트랙백 | 핑백(1) | 덧글(14)
garry's comments(1)
최근 제 블로그를 방문해 수 없이 많은 덧글을 남겨주고 계신 분이 계신데, 여기저기 덧글로 답하기에는 너무 산만해서 좀 모아서 답해볼까 합니다.


북은 식량을 수입할 외환이 원래 없어요. 만성적인 무역적자국으로 그 차액은 중국이 원조로 매꿔주고 있습니다. 중국의 원조 중에는 현물인 식량도 상당히 포함됩니다. 현물 식량을 기준으로 북에 가장 식량을 많이 원조한 나라는 중국이네요. 그러니까 외환으로 중국에서 식량을 구입할 필요가 그만큼 줄었겠지요. 사안을 입체적으로 봐야지, 선별된 단 한가지 통계만을 가지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소설이 됩니다. (출처)

통계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소설을 쓴다라. 흐.
적어도 두 연구(정광민, 2005:150~154, Haggard&Noland, 2007:80~89)가 북한이 수입을 원조로 대체했다고 평가한다는 점을 이미 보여드렸습니다. 필요하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연구자 몇 명을 더 들어 줄 수도 있구요. 저는 이 점에 관해서 별로 고립된 입장이 아닙니다.

어쨌든 북이 식량을 수입할 외환이 없다는 주장을 하시는 분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지요.

북은 미사일을 중동에 팔아 연 5억~15억 불 정도를 번다고 합니다. … 미사일 판매 자금만으로도 핵 개발 비용의 충당이 가능할 것입니다. (출처)

["금강산 여행경비로만 북한이 받은 돈은 4억3천877만달러"라는 반박에 답하며] 금강산 관광사업은 북 군부가 관리하고 그쪽 자금으로 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쓸데없이 관광객을 사살해서 중단시켰다고 후회한다는군요. 지금은 통일전선부로 소속이 바뀌였다고 합니다만.
한 나라를 꾸려 가는데에는 여러모로 외환이 많이 필요하겠지요. 북은 만성적인 무역적자국입니다. 국내 생산기반이 무너져 버렸기 때문에, 공산품의 80%를 중국에서 수입해서 사다 쓴다고 합니다. (출처)

이런 저런 경로로 외환이 확보된다는 것을 별 거리낌없이 인정하지만 "한 나라를 꾸려 가는데에는 여러모로 외환이 많이 필요"할거라는 말로 넘어갑니다. 이건 결국 "북이 식량을 수입할 외환이 없다"란 굶어죽는 사람이 나와도 식량을 수입하는 일 따위에 쓸 외환은 없다는 말인 거죠.

어디 그런가 한 번 볼까요?

북은 어짜피 남과 상대도 안되는 재래식 군비 확장에는 관심도 없는 것이고 유사시 남을 군사력으로 점령하겠다는 야심도 없는 것입니다. … 어짜피 핵 무기가 있으면 미국이 공격 못한다고 보고 거기에만 집중하는 것이지요. (출처)

여기에 대해선 다음 논평이 충분한 답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북한] 정부는 인도주의적 원조를 국내 생산과 교역을 통한 공급원에 추가하기보다는 국제수지를 보충하는 데 다량 사용했으며, 수입 감소 때문에 절약된 외화를 다른 우선순위, 군수용이나 상류층을 위한 사치품 수입 등에 할당했다. 예를 들어 1999년 교역을 통한 곡물 수입을 20만 미터톤 이하로 줄였던 시점에 정부는 외환을 미그 21 전투기 40대와 군용 헬리콥터 8대를 카자흐스탄에서 구매하는 데 할당했다. 더구나 이 시기는 실제로 북한의 안보 상황이 크게 개선되었던 시점이다.
첫 번째 핵 교착 상태를 종결시킨 북미기본합의서가 거의 5년 동안 정착되어 온 시점이었고, 북한은 더디기는 하지만 많은 잔여 현안, 특히 미사일 관련 문제에서 미국과의 협상에서 진전을 보이고 있었으며 이는 외교적 경제적, 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조절 실패, 원조가 늘어나자 교역을 통한 수입을 줄인 점, 굶주려 죽는 사람들이 속출하는데도 군사 지출과 사치품 수입을 계속한 사실은 기근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평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다. (Haggard&Noland, 2007:91)

즉 "관심도 없"다는 재래식 군비도 사실 곡물 수입보다는 우선권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런 입장은 반복적으로 제기됩니다.

모든 체제는 자체의 유지가 지고의 가치입니다. 이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황장엽 선생의 지적에 따르면, 북의 경제체제는 당 경제, 군 경제, 인민경제로 3분되어 돌아간다고 합니다. 북의 경제난이 심화되더라도 핵무기 개발 등을 담당하는 당 경제, 군경제는 덜 위축됩니다. 결과로 경제난의 대부분이 인민경제에 집중되는 지렛대 효과(leverage effect)가 발생해서 사람이 대량으로 굶어죽고, 그럼에도 당경제, 군경제가 담당하는 핵무기 개발에는 아무런 지장이 초래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는 매우 잔혹하고, 경제의 각 부분의 섹터화로 인해 비효율이 초래되는 방식이지만, 동시에 북 체제 유지를 위한 안전판 역할을 하는 것도 부정하기 힘든 사실일 것입니다.
힘의 우위를 통해서 외부에서 북 내부의 자원 배분의 순위를 바꿀 수 없습니다. (출처)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북한 경제가 특권경제와 나머지 인민경제로 나뉘어 있고, 모든 면에서 우선권이 없는 인민경제가 경제난의 피해를 집중적으로 입게 된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겁니다. 그것은 당연히 북한 정권의 책임일 뿐만 아니라, 북한이 진정한 개혁(개방은 둘째 치고)의 의지가 있다면 제일 먼저 손대야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별다른 개혁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북한에 개혁 의지가 있는지를 의심케하는 대목입니다. 사실 김일성 사후 북한은 선군정치라는 형태로 이 특권체제를 공식화하고 강화했지, 단 한 걸음도 개혁의 방향으로 움직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이에 대해 북한이 변명하는 것이 있긴 합니다.

더 나아가 보자면, 북 입장에서의 식량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개방을 통한 경제발전으로 식량을 수입할 외환을 충분히 버는 것이며, 그럴려면 미국의 적대적 무시를 깨야 합니다. 이를 깰 수단은 핵 확산을 도저히 방치할 수가 없는 미국을 협상장으로 나오게 만들 핵무기 개발입니다. (출처)

이건 최대한 좋게 봐줘도 북한이 생각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고, 냉정하게 말하면 근본적인 개혁을 하지 않는 책임을 외부에 전가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왜냐면 이건 북한이 오래 전에 제맘대로 써놓은 희망사항일 뿐 이 각본이 북한의 경제발전을 전혀 담보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핵포기가 걸려 있어서 쉽지 않겠지만, 예를 들어 미국과 북한이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한다고 해 봅시다. 그런다고 미국이 북한에 대거 투자할 것도 아니고, 북한 상품이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소련과 미국이 외교관계가 없어 냉전을 했던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미국과 북한 간의 외교관계는 미국-시리아 관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별볼일없이 냉랭하거나 아니면 미국-베네수엘라에서 보듯이 끊임없이 사소한 시비가 계속되는 그런 관계로 곧 전락해 버릴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미국과의 공식외교관계가 없더라도 북한의 경제규모나 수준으로 볼 때 중국을 무역파트너로 삼아 1990년 이후 개혁개방 노선을 취하는 것은 가능했을 터이며, 20여 년간 계속된 중국의 빠른 성장에 편승해 커다란 이익을 누릴 수 있었을 겁니다. 북한은 이런 방향으로는 별 노력을 취한 게 없습니다.

북한이 미국에 대해 취했던 태도와 그 귀결은 다음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간에 온 세상이 나에게 적대적이라는 주장이 옳음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는, 두 말할 나위 없는 특권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어떤 이가 온 세상이 다 나에게 적대적이라는 주장을 충분히 자주 외치고 다니며 그 주장을 자기 행동의 근본으로 삼고 살다 보면 그는 결국 자신이 옳았음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

- 「소련 행동의 원천The Sources of Soviet Conduct」(1947), George F. Kennan -


김정일의 나이나 건강으로 볼 때, 그에게 아주 긴 시간이 남았다고 보긴 힘듭니다. 북핵문제 또한 최고로 잘 풀려도 4~5년 정도로 해결되진 못할 겁니다. 최소한 미북수교 이후에야 개혁 개방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라면, 결국 김정일이 천수를 누려도 그의 살아 생전에 개혁개방이 제 궤도에 오를 가능성은 희박하며, 사실 그 이후는 김일성-김정일의 기존 노선에서 얼마나 이탈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김정일이 김일성을 계승했던 것과 비슷하게 강한 연속성을 유지한다면 여전히 개혁개방은 요원할 것이며, 반대로 새 정부가 과거와의 단절을 택한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북한을 갖고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일 뿐입니다. 그건 그 때 가서 상대의 행동을 봐가며 판단할 수밖에 없지요.


한편으로 원조가 (추가 경비가 들더라도) 분배 모니터링을 통해 북한의 취약계층에게 전달되건, (특권계층이 우선적인 이익을 누리는 것을 감수하고) 압도적인 물량을 퍼부어 포화상태를 야기해 취약계층에게까지 물량이 전달되건 간에, 둘 다 성공한다면 굶어죽는 사람을 구제한다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런데 왜 모니터링에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할까요?

앞서 나온 이야기들을 보고 있으려면, 저는 garry씨께서 여기 오셔서 원조가 적절히 분배되는지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데 극렬히 반대하며 그 대신 묻지마 원조를 줘야 한다고 역설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다음 주장에 있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북의 김정일은 건강도 안좋고 언제인가 죽을테인데, 그래도 북의 관료체계는 그대로 유지될 겁니다. 그러니 그들[북의 현 지배층]의 신뢰와 환심을 사두어야지요. (출처)

기근에 처한 북한 소외계층을 돕고 그들의 신뢰를 얻는다는 것은 분명히 우리 사회에서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부분일 겁니다. 하지만 북한의 현 지배층이 원하는 대로 해먹을 수 있게 판을 깔아준다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제가 앞에서 지적했듯이 이런 입장은 끊임없는 논란과 분쟁의 소재일 뿐입니다. 이런 입장을 무리하게 끼워팔려고 들수록 인도적 원조 전체가 정치적 환경에 따라 흔들리게 될 수밖에 없지요.



반박만 계속하면 좀 지겨우니까 새로운 논거를 하나 제기해 보겠습니다.

남한과는 달리 북한이 자력갱생식 자립경제를 목표로 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식량의 자급자족 또한 김일성이 누누히 강조해 온 핵심 사안이죠. 북한의 전형적인 곡물무역 패턴이 잘 드러나는 1975~80년도의 통계를 가져와 이런 자력갱생 정책의 특징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이 시기에도 무역수지는 10억 달러의 적자였지만, 곡물무역만 놓고 보면 약간의 흑자를 거둡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금액기준과는 반대로 물량기준으로는 적자라는 것입니다. 즉 균형을 유지하되 상대적으로 비싼 곡물(쌀)을 팔아 싼 곡물(밀)을 사옴으로서 양을 불린 것입니다. 이석은 이런 패턴이 (북한 농업 문제가 심각해지는) 1985년 이전까지 이어지는 북한 곡물무역의 기본 패턴이라고 지적합니다.

이는 우리나라처럼 농업의 자급자족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대신 공산품을 수출해 농산품을 수입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접근입니다. 북한이 시도한 것은 자급자족 원칙을 고수하되, 농업 부문이 교역을 통해 자체해결을 강화하는 정도까지는 허용한다는 것이지요.

북한의 그 다음 대책은 상황이 나빠질 때마다 배급량을 10%씩 10%씩 줄여나가면서 소비를 억제한 것입니다. 결국은 더 줄일 수 없는 지점까지 줄어든 다음에는 배급 자체가 잘 나오지 않게 되지요.

다음은 후방공급사업입니다. 이것은 기관과 기업소가 부식류를 자체해결하게 하자는 계획이었습니다. 북한이 기대한 대로 잘 풀리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사실상 후방공급활동이란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공장 부속지 등에서 직접 농업노동에 참가하여 식료를 획득하는 시스템"(정광민, 2005:132)으로 동작합니다. 잘 알려진 텃밭이나 뙈기밭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기근이 심화되자 김정일은 지방정부나 기업소가 외국과의 직거래로 식량을 조달할 수 있게 허용하는 소위 '외화벌이' 방식으로 이 문제에 대응합니다. 별로 내키진 않지만 장마당 등을 암묵적으로 용인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련의 대책들에는 일관된 측면이 있습니다. 식량문제에 있어서 골치아픈 문제가 생길 때마다 북한의 중앙정부는 중앙이 보유한 힘을 이용해 다른 분야에 있는 자신의 자원을 끌어다 해결해 주는 것을 극력 피하고, 자체해결 혹은 자력갱생을 강조하면서, 해결의 책임을 남들에게 떠넘겼던 것입니다.

북한이 자신이 보유한 외환을 식량수입에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외국 원조에 부담을 떠넘긴다는 평가는 이런 관점에서 지지될 수 있습니다. 이건 과거 수십 년 동안 북한 정부가 해왔던 행동의 연장선으로 보면 너무 자연스러운 행동이니까요.

북한이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업적이자 딴에는 자신들의 자기정체성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자주, 자립, 자급자족, 자력갱생, 자체해결 등이 사실 북한의 실패와 직접적으로 결부되어 있습니다. 북한의 개혁 의지가 얼마나 쓸만한 것인지는 이런 것들과 결별했다는 근거가 있는지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북한 농업문제 연구자인 김운근의 논평으로 마무리를 짓도록 하지요.
문제는 김일성시대의 농업정책을 하나하나 변화시켜 나가는데는 여러 가지 제약이 가로놓여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각종 농업정책들이 김일성 교시에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함부로 수정하거나 폐지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 북한이 안고 있는 딜레마이다. 이것이 북한의 헌법이요 농업기본법이기도 하다.

어디 농업 뿐이겠습니까. 김일성의 유산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어디건 본격적인 개혁은 어렵습니다. 그리고 김정일은 태생적으로 아버지의 유산을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인물이죠.
by sonnet | 2009/10/24 18:08 | flame! | 트랙백 | 핑백(4) | 덧글(83)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정책의 원칙
다소 불필요한 이야기들이 반복되는 느낌이어서, 제 개인적으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정책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한 번 정리해 볼까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견고한 자기 입장을 확립한 소위 '보수'나 '진보' 외에, 우리 사회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부동층이 존재한다. 그런데 사람이 굶어 죽는 것을 의도적으로 방치한다는 생각은 어지간한 사람의 도덕적 직관에 심각하게 어긋나는 것이기에 어떤 장황한 설명을 붙이건 간에 "어찌 되었건 사람은 살려 놓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를 꺾을 수는 없으며, 민주정 하에서 부동층에게 이런 입장을 성공적으로 전파해 다수를 형성한다는 것은 무리다.

또한 앞서 말한 것과 비슷한 이유 때문에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자"는 제안을 팔기도 어렵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불우이웃돕기 모금함을 들고 돌아다니는 이들 중 반 쯤은 가짜라는 이야길 들었다고 하자. 그럼 조금 있다 만난 모금함에 돈을 내고 싶어지겠는가? 좀 더 일반적인 표현으로 바꾸자면 인도적 원조에 대한 빈번한 협잡이나 전용 사례는 원조 그 자체의 의도된 효과를 잠식할 뿐만 아니라 원조를 지속하기 위한 정치적 의지를 손상시킨다. 심지어 그것이 훌륭한 인도적 목적을 가진 것이라 할지라도.

혹자는 이것을 단순히 다른 정치적 동기에 의한 반대를 정당화하는 편리한 명분 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북한에서 활동하던 잘 알려진 국제 NGO 단체들 - 세계 의사회, 국경없는 의사회, 기아퇴치운동, 케어 인터내셔널, 옥스팜 등 - 이 북한의 악질적인 농간을 비난하면서 철수했다는 것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이 분야에는 국제적으로 많이 논의된 일련의 원칙이 있다. 예를 들면 도움이 가장 절실한 주민에게 인도적 원조가 도착함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하고, 사전검토(assessment), 모니터링, 결과평가(evaluation)가 가능해야 하고, 이를 위한 접근이 허용된 지역에만 원조가 배급되어야 하고, 주민의 인도적 관심사를 보호해야 하며, 현지의 역량 구축을 지원해야 하며, 프로그램 계획과 실행에 수혜자를 참가시켜야 하고, 국제기구 요원의 정원이 충분해야 하며, 국제 인도주의 단체의 건강과 안전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등이 바로 그것이다.

다만 이 점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원조 전용과 맞서 단호하게 싸우는 이유는 전용을 차단하고 인도적 원조를 성공시키기 위함이지, 단순히 그것을 핑계로 사업을 걷어치우기 위함이 아니다. 그리고 원조 전용 문제와 맞서 단호하게 싸우는 입장을 고수해야만 원조 전용이 근절되지 않은 환경에서 계속 일해 나가는 데 대한 정당성을 적절히 방어할 수 있다. 문제는 개선되고 있으며 싸워서 문제를 해결할 전망이 있기 때문에 남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생각을 정리하자면 정권 교체에 관계 없이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정책이 견고하고 연속된 공통 기반을 갖기 위해서는,

(1)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즉 북한 취약계층의 필요에 적절히 대응하면서도
(2) 의도치 않은 국외자들(북한 정권과 당정군 집단)이 지원을 가로채 이익을 누리는 일이 없도록 효과적으로 배제

해 나간다는 두 조건을 동시에 추구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때 이 두 가지 목표는 동등하게 중요한 것이며, 또한 어느 한 쪽에 집중하는 대신 다른 한 쪽을 배제하는 선택은 용납될 수 없다. 그것은 원래 대립하던 두 입장 사이의 타협의 파기를 의미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 두 목표는 원칙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며, 또 두 목표가 동시에 성취될 때 최선의 결과가 도출됨은 명백하다. 따라서 대립하는 양 진영 모두에게 이것을 원칙으로 삼을 것을 요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공통의 원칙이 받아들여지고 뿌리내린 후라면 자신이 지지하는 입장이 집권 중이거나 아니거나에 관계없이 (공개적 논쟁에서 부인할 수 없는) 공통의 원칙에 호소함으로서 정책논쟁에서 서로의 관심사를 보다 잘 보호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공동의 기반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상태에서는 지금 보듯이 정부나 의회 다수당이 바뀔 때마다 정책의 요동은 훨씬 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by sonnet | 2009/10/20 07:35 | 정치 | 트랙백 | 핑백(2) | 덧글(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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