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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스탈린
2010/08/16   오늘의 한마디(김일성) [40]
2010/08/04   오늘의 한마디(Stalin) [32]
2010/06/28   오늘의 한마디(…) [56]
2010/06/25   중소관계, 한 장면 [59]
오늘의 한마디(김일성)

[제1차 북핵위기가 진행 중이던 1993년 10월, 미 하원 외교위원회 동아태 소위원장이던 애커만 의원이 이끄는 소규모 의회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을 만났다. 면담이 일단락되고 식사가 진행되던 중] 대표단 중 한 명이 구소련의 스탈린이 그에게 1950년 남침을 부추겼느냐고 물었다. 김일성은 질문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몇 분 동안 곰곰 생각에 잠겼던 그가 미소를 띄고 말했다.

“스탈린은 내 친구요. 그는 죽었소. 그가 편안하게 쉬도록 놔둡시다.”



Quinones, Kenneth. North Korea's Nuclear Threat "off the record" Memories, 미출간
(노순옥 역, 『2평 빵집에서 결정된 한반도 운명 : 북폭이냐 협상이냐』 서울: 중앙M&B, 2000. p.238)



… 1년 후 김일성은 드디어 '내 친구'를 만나러 삼도천을 건너게 되는데,
스탈린이 묻지 않았을까, "니가 내 친구냐, 엉?"
by sonnet | 2010/08/16 12:00 | 한마디 | 트랙백 | 덧글(40)
오늘의 한마디(Stalin)

(1935년, 프랑스의 새 외무장관) 라발은 러시아에 접근하는 데 있어 전임자 바르투처럼 단호한 마음가짐을 갖고 있진 못했다.하지만 이때 프랑스에는 긴급한 이유가 있었다. 프랑스의 존망을 우려하던 사람들에게는 지난 3월에 근소한 다수로 통과된 2년 병역제에 관해 거국일치의 지지를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느껴졌다. 오직 소련 정부만이 프랑스의 특정 정치세력에게 2년 병역제에 충성하도록 지시할 힘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프랑스에는 1895년의 오래된 불러 동맹 , 또는 그와 유사한 것을 부활시키기를 바라는 광범위한 소망이 있었다. 5월 2일 프랑스 정부는 새 불소 조약에 서명했다. 이 조약은 향후 5년 간 침략에 대항해 상호원조를 약속한 모호한 문서였다.

프랑스 정계에서 확실한 결과를 얻기 위해, 이번에는 라발이 모스크바를 3일간 방문하였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스탈린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그리고 긴 회담이 이루어졌다. 지금까지 공표되지 않았던 그 일부를 여기 옮겨본다. 스탈린과 몰로토프가 무엇보다도 간절히 알고 싶어했던 것은 서부전선에서 프랑스군의 세력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이었다. 몇 개 사단이나 되는가? 복무기간은 얼마나 되는지?

그런 쪽 이야기가 충분히 논의된 다음 라발은 "저기 말인데, 귀 측에서 러시아에서 종교와 가톨릭을 돕기 위해 조치를 좀 취해줄 수 없습니까? 그렇게 한다면 우리가 교황과 일하는데 참으로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만."이라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스탈린은,

"오, 교황! 교황은 몇 개 사단이나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까?"
"Oho!" said Stalin. "The Pope! How many divisions has he got?"

라고 하는 것이었다. 라발이 뭐라고 답했는지는 나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라면 열병식에서 늘 눈으로 보이는 것만은 아닌 여러 군단(legions)이 있다고 답했음에 틀림없으리라. 하지만 라발에게는 소련이 늘상 요구하는 구체적인 (상호원조) 의무들 중 그 어떠한 것도 프랑스가 확약케 할 의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5월 15일 스탈린으로부터 프랑스 군이 일정 수준의 안보를 유지하기 위해, 프랑스가 시행해야 할 국방정책을 지지하는 공개성명을 끌어내었다. 이 지시가 내려오자 프랑스 공산당은 당장 태도를 표변해 이 국방정책과 2년 병역제에 대해 요란한 지지를 보냈다. 유럽 안보라는 측면에서, 독일의 침공 시에 양 측에 참전 의무를 지우고 있지 않은 이 불소 조약은 그저 약간의 가치밖에 없었다.

Churchill, Sir Winston. The Gathering Storm : The Second World War Vol.1. Houghton Mifflin, 1948(Houghton Mifflin Harcourt, 1986). p.121 (번역은 sonnet)
by sonnet | 2010/08/04 21:42 | 한마디 | 트랙백 | 덧글(32)
오늘의 한마디(…)

[이 나라에서] 다시 내전이 발생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다시 내전이 발생한다면 민족을 멸망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이 나라: 중국

말씀하신 분:

의미: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




배경설명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자 소련은 재빨리 계산기를 두들깁니다. 그 결과 중국에서 당분간 공산당이 국민당을 무찌를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다고 판단한 스탈린은, 국민당과의 거래를 통해 러일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러시아가 일본에게서 잃었던 만주의 각종 이권을 되찾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소련이 중국에 지원하는 모든 무기와 기타 물자는 중앙정부가 유일한 대상이며, 공산당에는 무기를 제공하지 않겠다. 그리고 스탈린은 다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중국에 국민당이 있는데, 다른 세력, 즉 공산당이 정부를 전복시킬 능력이 있는가? 만약 중국과 소련이 동맹을 맺는다면, 어느 누구도 중국 정부를 전복시킬 수 없을 것이다.“(p.81)

장제스는 속이 쓰렸지만 일단 공산당을 타도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하고, 뤼순 등 만주의 부동항과 철도 운영권을 내어줍니다.


장제스로부터 이권을 챙긴 스탈린은 이제 반대편인 중국공산당과 마오쩌둥에게 압력을 넣어 이 거래를 더욱 확고한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스탈린은 전보에서 “중국에서 다시 내전이 발생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다시 내전이 발생한다면 민족을 멸망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라고 주장했다.(p.84)


마오쩌둥과 중국공산당은 이 요구에 무척 화가 났지만 대놓고 소련을 거역하기는 또 후환이 두려웠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겉으로는 그 지시를 따르는 시늉을 하면서 뒤로는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국공내전을 진행해 나갑니다.




그런데 그것이 일어났습니다.


국민당이 공산당에게 어처구니 없이 쳐발려서 타이완으로 도망가는 사태가.

스탈린은 예상 외의 급작스런 사태 전개에 무척 난감했을 겁니다. 그리고 소련과 신생 공산 중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해 마오쩌둥이 한 번 찾아뵙겠다고 하자, 공산당을 돕지 않는다는 조건과 맞바꾸어 국민당에게서 뜯어낸 만주의 부동항과 철도 같은 이권들을 도로 토해내야 하는 것이 아닌지 전전긍긍해 합니다.

이것이 앞선 글에서 스탈린과 류샤오치의 대화가 그렇게 서로 상대방을 극력 띄워주면서 상대의 속셈을 탐색해 보려고 굴었던 배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沈志華 저, 최만원 역. 『마오쩌둥 스탈린과 조선전쟁』. 서울: 선인, 2010.
by sonnet | 2010/06/28 13:14 | 한마디 | 트랙백 | 핑백(1) | 덧글(56)
중소관계, 한 장면


1949년 국공내전에서 사실상 승리한 중공은 2인자 류샤오치를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소련에 파견해, 소련과의 관계를 정돈해 스탈린-마오쩌둥 정상회담을 위한 앞길을 닦도록 했다.

[리우샤오치가 스탈린에게 제출한] 보고서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소련과 중국 간의 공고한 민족적 우애는 양국과 전세계 모두에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중국의 독립과 건설에 매우 결정적 의의를 갖고 있고, 중공도 이러한 중요성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 중공은 반드시 이러한 민족적 우애를 증진시키고 강화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리우샤오치는 중-소 양당의 관계를 언급하면서 “마오쩌뚱 동지와 중공중앙은 다음과 같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소공은 세계공산주의운동의 지휘부이며, 중공은 단지 일부 지휘부일 뿐입니다. 부분적 이익은 반드시 전체이익에 복종해야 하며, 띠라서 우리 중공은 소공중앙의 결정에 복종하며, 이미 코민테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중공 역시 유럽공산당 정보국에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부 문제에서 중공과 소공 사이에 의견의 불일치가 발생한다면, 중공은 자신의 의견을 표명한 후, 소공의 결정에 복종하고 단호하게 집행할 준비를 하겠습니다. 우리는 양당의 상호관계를 가능한 밀접하게 발전시켜야 한다고 판단하며, 이를 위해 적합한 정치대표를 상호 파견하여 양당 사이의 문제를 처리하고 상호간의 이해를 증진시켜야 합니다"라고 표명했다.

… 회담 중 스탈린은 주도적으로 과거 소련과 중공과의 관계에서 존재했었던 문제들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중 주요하게 1945년 중공에게 국민당과 협력하라고 요구한 문제에서의 자신의 실수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서, 우리는 과거 중국의 혁명에 대해 일부 불리한 제안을 했고, 이로 인해 당선들의 사업을 어렵게 하고 방해했다"고 말했다. 리우샤오치가 “별다른 방해를 받지 않았다”고 대답했지만, 스탈린은 다시 한 번 사과하면서 “중공은 이제 성숙해졌고, 정치·이론 및 국가건설의 각 부문에서 신속한 발전을 이루었으며, 중공이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선두에 서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리우샤오치는 “우리는 여전히 당신의 학생”이라고 말했고, 스탈린은 주저하지 않고 “학생이 선생을 앞설 수 있으며, 혁명의 중심이 머지않아 유럽에서 동방으로 옮겨가게 되면, 당신들의 역사적 책임은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낙후할 것이고 당신들의 진보는 매우 빠를 것이며, 반드시 선생을 앞설 것입니다. 중-소 양국은 항상 단결하기를 희망합니다”고 말했다. 그는 “승자는 심판받지 않으며, 승리한 것은 모두 옳은 것입니다. 중국 동지들은 항상 겸손하고 예의바릅니다. 우리는 당신들을 방해한 적이 있었고, 당신들도 의견이 있었을 테지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종종 당신들의 진정한 실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잘못된 발언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당신들은 반드시 우리들의 견해가 옳은지 그른지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약 잘못된 발언을 하면 당신들이 발언을 해서 우리가 주의를 기울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라고까지 말했다.

沈志華 저, 최만원 역. 『마오쩌둥 스탈린과 조선전쟁』. 서울: 선인, 2010. pp.150-151


by sonnet | 2010/06/25 10:08 | 정치 | 트랙백 | 핑백(1) | 덧글(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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