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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선전선동
2010/04/24   오늘의 한마디(Upton Sinclair), 그리고 여러 마디 [57]
2010/03/20   신문기사 제목 바로 짓기 [31]
오늘의 한마디(Upton Sinclair), 그리고 여러 마디

모든 예술은 선전이다. 그것은 보편적으로 그리고 불가피하게 선전이다.
때로는 무의식적이지만, 대개는 의도적인 선전이다.

All art is propaganda. It is universally and inescapably propaganda;
sometimes unconsciously, but often deliberately, propaganda.


- 『배금예술 Mammonart』, 싱클레어(Upton Sinclair) -


이 선언은 정작 저자의 모국인 미국에서는 거의 무시당했으나, 태평양을 건너 중국에 와서는 혁명(좌익) 문예계에 깊은 영향을 주게 된다. 그 결과 궈모뤄의 유성기론(문학은 혁명 이념을 전파하는 유성기가 되어야 한다) 같은 위험천만한 주장들이 대거 양산되면서, 거의 반 세기에 걸쳐 중국문예계에 파괴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문화대혁명 시기의 삼결합 창작론 등은 이런 사고방식이 극단화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지도자(=마오쩌둥)은 사상을 제시하고, 인민대중(=프롤레타리아)는 소재를 제공하고, 작가는 글쓰기 기교를 제공해 3자합작으로 창작을 하면 된다고 한다. 그 결과, 작가는 자기 사상을 작품에 표현할 수도, 자신의 경험을 소재로 삼을 수도 없게 되어 철저한 글쓰기 기계로 전락하게 된다.
이를 지키지 못한(설령 노력했더라도!) 작가들은 반동학술권위 등으로 지목되어 타도된 후, 시골에서 강제노동을 하며 생활경험도 노동자·농민처럼 개조하고, 마오쩌둥사상 학습을 통해 머리 속도 개조할 것을 요구받게 되는데... 그런데 그런 걸 무자비하게 갈군다고 창작이 잘 될 리가 없지 않겠나.


여기에는 크게 보아 세 가지 입장이 있었다.
첫째는 공산당과 그 영도를 따르는 주류 좌익 문인들의 관점이다.


그대들의 부숴진 나팔을 불지 말라. 잠시 유성기가 되어야 한다.
유성기가 된다는 것 - 이는 문예청년들의 가장 좋은 신조다.


- 궈모뤄(郭沫若), 「영웅수英雄樹」 『창조월간創造月刊』 제1권 8기(1928년 1월) -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문학 예술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혁명사업 전체의 일부분이며, 레닌이 말한 바와 같이 혁명이라는 기계 전체 속의 '톱니바퀴와 나사못'이다. 따라서 당의 문예 공작은 당의 혁명활동 전체에서 할당된 일정한 위치를 차지하고, 당이 일정한 혁명시기에 규정한 혁명의 임무에 복종한다.

- 마오쩌둥(毛澤東), 『옌안 문예좌담회에서의 강연』(1942년 5월) -



두번째는 비주류 좌익 문인들의 관점이다.

나는 문예가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그것을 다른 면 - 예컨대 ‘선전’ - 에 적용하려고 한다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싱클레어는 모든 문예는 선전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혁명적 문학가들은 그것을 보배처럼 여겨 큰 활자로 찍어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엄숙한 비평가들은 또 그를 ‘천박한 사회주의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 역시 천박합니다 - 싱클레어의 말을 믿습니다. 일체의 문예는 오직 남에게 보이기만 하면 그것은 선전이 됩니다. 글을 쓰지 않고 말을 하지 않는다면 몰라도 개인주의적 작품이라 해도 써내기만 하면 선전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혁명에 적용하여 일종의 도구로 삼는 것도 물론 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내용을 충실히 하고 기교를 높여야지, 간판을 내걸기에 급급해할 필요는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 내가 보기에는 ‘황태후 신발 가게’가 ‘황후 신발 가게’의 손님보다 더 많은 것 같지 않습니다. 혁명적 문학가들은 ‘기교’란 말만 하면 짜증을 냅니다. 그러나 나는 모든 문예는 물론 선전이지만 모든 선전이 죄다 문예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마치 모든 꽃은 다 색깔이 있지만(나는 흰 것도 색으로 칩니다) 모든 색깔이 다 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혁명이 구호, 표어, 포고문, 전보문, 교과서…를 제외하고도 문예를 이용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문예이기 때문입니다.


- 루쉰(魯迅), 「문예와 혁명文藝與革命」『삼한집三閑集』 수록 -


먼저 ‘선전’이라는 커다란 글자의 제목이 있고 그 다음에야 논의를 전개하는 문학작품은 어색하기 그지없다. 직접적인 토로가 없이 부엉이처럼 교훈을 외워대는 문학은 문학이라 할 수 없다.

- 루쉰 -


예술이 비록 ‘최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최하’도 아니다. 예술을 정치적 유성기로 타락시키는 자들은 예술의 반역자이다. 예술가가 비록 신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의 뒤나 따라다니는 발바리는 결코 아니다. 하찮은 이론으로 문학을 유린하는 것은 예술의 존엄에 대한 용서할 수 없는 모독이다.

- "자유인" 후츄위엔(胡秋原), 「주구문예론阿狗文藝論」, 『문화평론』 1931년 제1기 -


작가를 유성기로 보지 말아야 한다. 좋은 음반(추상적 개념) 한 장을 그 위에 얹어야 책을 외우듯,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작가 역시 자신이 창조한 인물을 유성기로 만들지 말아야, 작가 대신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이해는 작가를 생활 속으로 밀고 들어가, 생명이 없는 공허한 외침 속에서 문학을 구해내어 혁명적 작가로 하여금 문예 작품 속의 사상이나 의식 형태란 싼 값에 자기 마음대로 빌려 올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 후펑(胡風), 「고리끼 단편M.高爾基斷片」『밀운기의 풍습 소기密雲期風習小紀』-

이 중 루쉰은 공산당이 대륙을 통일하기 전에 죽었고, 후펑이나 펑쉬에펑 처럼 대륙에 남아 문예의 상대적 자율성을 주장한 문인들은 차례차례 숙청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마지막은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살아남은 공산당 간부들과 문인들의 관점이다.

우리는 문예가 정치에 종속된다는 이러한 구호를 계속 제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구호는 문예를 간섭하는 이론의 근거가 되기 쉽고, 오랜 실천을 통해 문예의 발전에 이익보다는 해가 더 크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 덩샤오핑(鄧小平), 「당면한 상황과 임무目前的形勢和任務」(1980년) -


나는 문학에는 선전효과가 있지만 선전은 문학을 대신할 수 없으며, 문학에는 교육효과가 있지만 교육이 문학을 대신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문학 작품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감화를 일으키고 영혼을 정화시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정신을 썩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모두는 독자의 생활경험, 그들이 받은 교육에서 벗어날 수 없다.

- 바진(巴金), 「문학의 효과文学的作用」, 『수상록隨想錄』수록 -


당은 국민경제계획의 수립을 담당한다. 당은 농업정책을 이끌어야 하며 공업정책의 집행도 관철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당이 밭에 씨를 어떻게 뿌리고, 걸상을 어떻게 만들며, 바지를 어떻게 마름질하고, 야채를 어떻게 볶을 지까지 영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작가가 글을 어떻게 쓰고, 배우가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까지 일일이 영도해야 할 필요는 없다. 문예, 그리고 문예가에게는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 있는 법이다. 만약 당이 문예의 너무 세세한 것까지 간섭하려 든다면 문예에게는 전혀 희망이 없으며 끝장나고 말 것이다.

‘사인방’은 문예에 지독하게 간섭한 끝에 연기자가 몸에 걸친 허리띠 하나, 천 쪼가리 한 장까지 참견했다. 그 결과 8억 인민이 즐길 수 있는 문예라고는 겨우 8편의 혁명모범극이 남았을 뿐이다. 이런 꼴을 보고서도 우리들은 깨달음을 얻지 못한단 말인가?


- 영화배우 자오단(趙丹)의 병상 유언, 「너무 구체적으로 지도하려 들면, 문예는 희망이 없다管得太具體, 文藝沒希望」, 『인민일보』 1980년 10월 8일 -

이처럼 문화대혁명이 끝난 다음, 죽도록 고생해 본 문예계 인사들이 이구동성으로 토로하는 견해는 문학예술이 선전효과가 있긴 해도 엄연한 한계가 있으며, 너무 그 효과를 우려먹으려고 쥐어짜면 파괴적인 결과가 초래된다는 것이다. 외양간에서 가축 취급을 받으며 10년 동안 같이 굴렀던 당 고참 간부들도 그 점에는 동감이었다. 이것은 결국 앞서 소개한 루쉰의 입장을 고통스럽고 "오랜 실천을 통해 … 증명"한 셈이라 하겠다.

혁명모범극 『沙家浜』 : 문화대혁명이 만들어내려고 했던 새로운 무산계급 문화의 '예시'.
옛문화를 무자비하게 때려부수긴 했지만, 그것을 대체할 새 문화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예술가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더 그랬다. 결국 몇 편의 '예시' 이상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by sonnet | 2010/04/24 12:16 | 한마디 | 트랙백(1) | 핑백(1) | 덧글(57)
신문기사 제목 바로 짓기
수십 년 동안 마오쩌둥의 비서를 지낸 후차오무(胡喬木)는 최고지도자의 비서인 동시에 신문출판을 감독하는 부서인 신문총서 서장을 겸직했다. 이에 따라 매일 오전 8시에 인민일보 대표가 당일 신문을 들고 후차오무의 집에 찾아와 후가 신문을 읽으며 논평한 내용을 메모해 즉각 시정조치를 취하고 향후의 편집방향에 반영을 했다고 한다.

국가의 모든 일에 대해 당이 일원적 영도를 시행하는 것은 공산당 체제에서는 당연한 것이지만, 그래도 최고지도자의 비서가 직접 이를 관장하는 것은 꽤 특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마오쩌둥이 언론의 선전선동 기능을 얼마나 중시했고, 자신의 의도가 철저하게 언론에 반영될 것을 요구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와 관련된 일화 한 가지.

“평론이 따분한 감을 주는 것은 우선 그 내용이 평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평론을 보고서는 필자가 제창하는 것이 무엇이고 반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고, 사람들더러 어찌하라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날 인민일보 제3면에는 개명소년(開明少年)이라는 잡지의 글을 전재한 것이 있었다. 그 내용은 히말라야 산맥의 최고봉을 외국사람들처럼 에베레스트 산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주무랑마봉(珠穆朗瑪峰)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목은 ‘우리의 위대한 조국에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이 있다’이다. 아주 불만스럽게 생각한 호교목은 서한에 자기의 의견을 다음과 같이 논술하였다.

“제목에 주의를 돌립시다. 이건 내가 인민일보에 제기하려는 한가지 요구입니다. 오늘 제3면에 실린 글을 한 편 보았는데 제목이 ‘우리의 위대한 조국에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이 있다’로 되어있습니다. 이 제목은 신문에서 흔히 보는 좋지 않은 제목 중의 하나입니다. 이 제목을 보고는 글의 내용과 관련되는 그 어떤 암시도 받을 수 없고, 글을 읽어 보려는 흥미도 가질 수 없습니다. 이 제목이 전하는 뜻을 누구나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글에는 아래에 열거하는 것과 같은 정확한 제목을 달아야 합니다.

‘에베레스트 산이라는 명칭은 전부 시정되어야 한다’,
‘에베레스트산의 이름은 조국의 원명을 회복하여 써야 한다’,
‘외국인의 이름으로 우리나라 최고봉을 명명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나라 지리상 명칭의 엄중한 착오’,
‘세계 최고봉은 누가 발견한 것인가’,
‘세계 최고봉의 발견자는 외국 사람이 아니라 중국 사람이다…”


이 예를 자세히 지적하는 것은 인민일보에 유사한 흠집이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거의 매일 매 면마다 이처럼 내용과 맞지 않는 제목, 요령부득한 제목, 생기가 전혀 없는 제목을 보게 됩니다. 이런 현상을 확실히 시정할 것을 나는 편집부에 요구하고 싶습니다.

섭영렬 저, 최재우 역, 『모택동과 그의 비서들』. 서울: 화산문화, 1995. pp.81-82

인민일보 사설은 왜 하나하나가 격문인지, 또 인민일보에 표적으로 오르는 것이 그처럼 높은 확률로 높으신 분의 뜻인지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하겠다.
by sonnet | 2010/03/20 09:39 | 정치 | 트랙백 | 핑백(1) | 덧글(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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