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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선교
2007/09/07   마키아벨리의 교훈 [35]
2007/08/31   소중화 모델 [29]
2007/07/22   피랍 관련 국내 입장들(한기총 입장 추가) [34]
2007/07/21   아프간 납치 사태에 대해 [30]
마키아벨리의 교훈

0. 들어가면서

"최근의 일들이나 지난 날들의 사건을 살펴보면 누구든지 같은 욕구와 같은 욕정이 여기 저기 존재하는 모든 정치체제와 모든 인민을 지배해 왔으며, 또 현재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과거의 사건들을 규명하는 사람에 있어서는 그 지식에 의해서 앞으로 어떤 나라에도 반드시 일어날 사건을 예지하고 고인들이 사용했던 대책을 여기에 펼쳐서 또는 지금까지 선례가 없다면 유사한 사건을 생각해 내서 새로운 대책을 강구해 내는 일 등은 아무런 수고가 들지 않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아무래도 이와 같은 관찰을 태만히 하고 있으며, 간혹 이것을 행하는 자가 있어도 중요한 정책을 펴는 자가 전혀 그것을 모르는 채 지나가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에 결국 똑같은 소동이 어느 곳에서나 반복되는 것이다." - 니콜로 마키아벨리, 『로마사론』


1. 선례

"1919년 3월 27일 소비에트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 군주국의 독립과 주권을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먼저 공식적으로 승인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은 이 이후의 이 나라 인민의 운명에 압도적인 역할을 수행했으며, 전 세계 특히 제국주의 영국에 대해서 아프간 인민이 결코 고립된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의 노동자, 농민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 『소련-아프간 관계: 1919-1960』

"실패로 끝난 전쟁은 모험이라고 불린다. 1979년 하반기에 시작되어 이제야 겨우 끝난 아프간 사업은 모험이었다." -레오니드 쉐바르신(KGB)

바보들은 아프가니스탄을 "용기의 학교"라고 이름지었다. 바보들은 현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 자신은 이 학교에 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국제적인 의무", "조국의 남방국경에서의 제국주의 주구들과의 싸움", "지역의 반동세력과 손을 잡은 침략자들에 대한 결정적인 반격" 등등 이런 저런 말로써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나아가 나라까지 납득시켜서, 아프가니스탄은 "의식이 낮은 젊은이들을 우리 공산주의의 진리를 위한 확고한 투사로 변화시켜 준다"고 말했다. - 아르쬼 보로비크(언론인)


사실 건국되어 붕괴하는 그날까지 70여년 간, 아프가니스탄이란 나라에 가장 많은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외교적 지원을 제공한 나라는 다름 아닌 소련이었다. 혹자는 소련이 세계 적화의 욕심을 품고 조건이 붙은 원조를 제공한 것에 불과하다고 폄하 비방하지만 독실한 볼쉐비끼라면 그 누구도 공산주의의 궁극적 승리와 세계 공산화의 대의를 부정할 수는 없는 법이다. 볼쉐비끼에게 있어 제3세계의 압제받는 국민들에 대한 원조와 연대의 국제적 의무와 공산주의의 전파는 떼어놓을 수 없는 동전의 양면인 것이다.

독실한 볼쉐비끼로서 소련 지도자들은 아프간 인민들이 그들의 사회주의 근대화로의 비전과 형제애적 지원을 그토록 격렬히 거부할줄은 차마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제3자의 눈에 실패가 명백해진 이후에도, 오랫동안 그들은 결코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2. 더 전의 선례

불행하게도 저는 체첸 전쟁이 벌어지기도 전인 1994년, 故 알렉산드르 레베드 장군이 제게 말했던, 다음과 같은 태도가 (워싱턴의) 정책결정자 레벨, 그리고 씽크탱크들의 세계에서 너무나도 자주 보인다고 말해야겠습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근무했던 소련군 장교였습니다. 저는 (아프간) 무자헤딘 측에 선 영국 기자였지요. 따라서 우리는 나눌 이야기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물었습니다.

"장군. 19세기에 우리 영국인들이 그곳을 점령하려다가 숱하게 어떤 꼴을 당했는지 익히 아시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소련이, 소련군이 똑같은 실수를 저지를 수가 있습니까? 즉 당신들은 왜 영국이 당한 경험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습니까?"

그러자 장군은 썩은 미소를 날리며 대꾸했습니다.

"아, 그러나 당신은 이해를 못하고 있소. 당신네는 자본주의자, 제국주의 침략자 아니오. 우리는 아프간 인민의 해방을 가져다 줬소. 어떻게 우리가 당신네들에게 뭔가 교훈을 배울 수 있었겠소?" - 아나톨 리에븐(언론인)

삽질은 계속된다. 쭈욱...


3. 오늘의 메뉴

피랍사태 관련 자료집 "한국교회와 선교에 주어진 새로운 도전" ( AFGHAN_2007.pdf )
이 자료집은 치졸한 변명에서 상당한 수준의 자기반성까지 꽤 다양한 주장이 실려 있기 때문에 까댈 거리를 찾느냐, 아니면 칭찬해줄 구석을 찾느냐는 읽는 사람 마음인 것 같다. 적어도 내게는 교회 내부의 다양한 입장을 확인할 수 있어서 충분한 가치가 있었던 것 같다.

다만 내가 볼 때 이들은 아프간 사업에서 볼쉐비끼의 실패는 자신들에게 아무런 교훈이 되지 못한다고 굳게 확신하는 것 같은데, 그 생각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한 마디로 틀린 생각이다. 아프간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대규모로 사업을 했던 자들이 볼쉐비끼이다. 그들은 아프간 내에 자생적 공산주의 정당이 생겨나 정권을 탈취하는 단계까지 가도록 키웠던 사람들이다. 지금 아프간에서 교회가 자라나 기독교도가 정권을 접수할 날이 오려면 도대체 몇 년이나 투자를 해야 할까?

볼쉐비끼는 대영제국 자본주의자들의 실패는 자신들과 아무 관련이 없으며 그들의 실패는 자신들의 정당성을 더 확고히 해줄 뿐이라고 믿었다. 한국의 개신교회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볼쉐비끼가 뭘 했는지 알아봐야 한다는 생각도 못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인질들은 한과 증오의 역사의 희생물이다. 그들은 도덕적 파렴치가 아니라 역사의 질곡으로 망가진 자들이다. 그들은 소련이나 미국과 같은 세계 최강 괴수들과 싸우다가 괴수가 되어버린 자들이다. … 이런 점에서 우리 한국의 젊은 23명의 인질들은 아프가니스탄의 비극과 불행, 한과 증오로 가득찬 그들의 역사적 상처에 한층 더 깊은 공감적 이해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김회권 목사(숭실대 기독교학과)

사실 아프간 인들은 백여 년에 걸친 투쟁에서 대영제국과 소련이라는 세계적 제국을 차례차례 꺼꾸러뜨리면서 자신들은 어떤 강대한 세력도 물리칠 수 있다는 엄청난 자부심을 키워 왔다. 그들이 꺾은 제국은 모두 몰락했다. 이제 유일 초강대국이란 타이틀을 가진 미국만 손봐주면 전 세계에 그들의 적수는 감히 나타나지 못할 것이라는 게 그들의 신념이다.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에 와 있는 미국은 겉으로 보이는 힘 때문에 착각에 빠져 있다. 미국은 자신들의 운명이 이전 침략자들과는 다를 것으로 상상한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를 제대로 읽지 않은 것 같다." - 탈리반 총수 물라 오마르(2002년 9월 13일)

그들이 보기에 영국, 소련, 미국의 뒤를 이어 나타난 한국 선교사들이란 자기네들끼리 자기네 방식으로 천년만년 살아가려는 비전에 대한 최신의 도전 중 하나에 불과하다. 싸움이 안 날 수가 없는 것이다.


4. 정리하자면

"정책의 궁극적 결과에 의해서 그 정책의 어리석음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잘못된 통치행위는 장기적으로는 자기이익에 반하지만, 당시로서는 체제의 강화에 공헌할 것이다. 따라서 그것이 잘 듣지 않는 정책, 뿐만 아니라 역효과를 초래하는 정책이라는 점이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지속할 때 그 정책은 어리석은 행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바바라 투크먼, 『바보들의 행진: 트로이에서 베트남까지』


5. 더 읽어보기

by sonnet | 2007/09/07 16:28 | flame! | 트랙백(3) | 핑백(3) | 덧글(35)
소중화 모델
어떤 문물이 원산지에서 해외로 전혀진 후, 오랜 시간이 흘러 본국에서는 변형되거나 소멸되었지만 그 문물을 받아들인 곳에서는 원형 그대로 잘 보존, 계승, 발전되어 세상 사람들의 찬탄을 금치 못하게 되는 일이 가끔 있다. 상국의 도가 쇠함에 편벽한 육왕을 따르는 무리들이 일어나니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더란 말인가?


19세기 방식을 따르는 한국 기독교계(Koreans followed 19th-century model)

전반적으로 말하자면 아프가니스탄에 갔던 한국인들은 주로 미국에서 만들어진 19세기 선교 방식에 따라 활동했다고 시카고에서 발행되는 「크리스챤 센추리」의 편집장 데이비드 하임은 말한다. "미국 교회들은 전세계로 진출해서 다른 사람들을 개종시키려고 하다가 한 세기 동안 비판을 받은 후 대부분 그러한 비판에서 교훈을 얻었습니다. … 남한 교회들은 독자적으로 일을 벌이는 오래된 독립 선교사 방식에 따라 활동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날 이런 식으로 일하는 미국의 주류 교회는 별로 없지요. 현지의 교회와 현지 신도들과 파트너쉽을 맺고 작은 팀을 파견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보다 협력적입니다."
50년대와 60년대에 서방의 주류 개신교계는 개발도상국의 다양한 독자적 운동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해외에서의 사회-정의란 대의명분 하에 활동했다. 그러나 오직 초청을 받고, 현지인들과 대등한 파트너쉽을 맺은 곳에서만이었다.

Robert Marquand, With Taliban's release of Korean Christian hostages, caution for missionaries, Christian Science Monitor, 2007년 8월 31일

사실 19세기식 미국 선교사업의 산물이 한국 교회들인지라 뭔가 배운 것을 소중하게 원형 그대로 잘 지켜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당금 천하의 형세를 보건데 우리를 제하고 소중화는 달리 없을진저.


그건 그렇고

요즘 보면 기독교 교단 측의 반응이라는 것은 일단 여론의 분위기가 심히 안 좋으니 비가 그칠 때까지 좀 수그리고 있자(일단모면파), 와 어려울 때일수록 기죽지 말고 더 가열차게 단합해 내적 단결 재고와 반격의 기회로 삼자(즉각역습파) 두 가지 견해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번 기회에 외국 교회의 해외활동 기법을 벤치마킹해 실질적인 체질개선을 하려는 실용적인 움직임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것 같다.

실질적인 개선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개혁은 사건의 충격이 남아 있을 때 칼을 뽑아들고 달려들어도 될까말까한 일이다. 이 시점에도 중요한 변화를 이끌어낼 만한 위기의식과 움직임이 관찰되지 않으면 1,20년 정도로 뭔가를 기대하긴 힘들 것이다.

예컨대 이 정도 거국적으로 욕을 먹었으면 내부적으로 지금까지의 한국 기독교계의 선교활동의 장점과 단점을 솔직하게 재검토한 뒤, 향후 선교활동의 개선방안 로드맵 같은 것을 제시해 개선의지와 평가기준을 밝혀야 마땅하지 않을까? 그래야 나중에 비슷한 문제가 다시 터졌을 때, 개선하겠다는 것 중 얼마나 변한 게 있고 어떤 게 미진한지, 또한 교회 입장에서는 어떤 게 바꾸기 쉽고 어떤 게 바꾸기 어려운 근본적인 요소인지를 당사자의 시각을 충분히 반영해 평가할 것 아닌가?

문제는 결국 또 터질 것이다. 다음에 문제가 터졌을 때, 아 조직이란게 쉽게 바뀌지 않는데 교회가 그나마 그동안 노력을 꽤 했구나라는 호의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기를 희망한다.

사실 한국 교회가 믿음을 강조하는 방식은 황군에서 정신력을 강조하는 유형과 흡사해 보인다. 예를 들어 황군에서는 항공어뢰 사정거리가 짧아 피해가 우려되니 무기를 개선해야 된다는 참모의 건의를 "천황이 하사하신 무기를 받았는데도" 감투정신이 부족해 변명을 늘어놓는다고 질타하며 깔아뭉개는 식의 반응이 흔했다.
한국 교회가 모든 문제를 믿음으로 돌파할 수 있다고 늘 부르짖는 것과 뭐가 다른가?

적어도 교회는 합리적으로 업무 기법과 기술을 개선한다고 해서 믿음이나 정신력이 약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뭔가 근본주의적 도그마가 있어 19세기에 사부가 전수해준 기술을 손대면 사문난적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지금 문제의 핵심은 남한의 선교단체들이 최선의 조치를 취해왔는데도 불가피하게 희생이 난 것이 아니라, 그동안은 단지 운이 좋아서 넘어가다가 드디어 큰 사고가 한번 터진 것이라는 점이다.

어찌되었든 조잡한 일처리가 누적되다가 희생자가 난 것을 거룩한 순교로 포장한 다음 내부적 책임소재와 개선의 필요성을 덮으면 곤란하다. 이번에 죽은 사람들이 개죽음한 것인지 가치있는 순교를 한 것인지는 교회 외부에서 뭐라고 떠들건 향후 개신교 선교단체들의 자기개조 노력에 달렸다.

전에도 지적한 바 있지만, 교회의 선교활동 전반을 공격하는 것은 역효과만 난다고 본다. 그건 그 종교의 본질에 해당하는 문제라 없앨 수 없는 것이다. 사회적 문제가 발생해 세속사회가 종교단체에 압박을 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더라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열어주고 몰아야 한다. 세속사회가 바래야 할 것은 상황의 개선이지 이때구나 하고 특정집단을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다만 한국교회는 외국 교회들도 포기한 촌스럽고 시대착오적인 전술에 집착하고 있다는 세간의 비웃음은 내부의 개혁파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데 조금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효과가 없다면 소중화가 달리 소중화가 아니라고 체념할 수밖에.


disclaimer. 이 글은 조직으로서의 남한 교회와 선교단체의 조직운영방법에 문제가 있음을 공격하는 것이지만, 종교로서의 기독교나 신도로서의 기독교인을 공격하는 것은 아니다. 즉 니버 목사 말대로 도덕적인 개인들이 모여도 비도덕적인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식의 관점이다. 그러나 독자가 교도로서 자신이 속한 교회의 무오류성과 한 배를 타겠다고 자발적으로 결정하면 그것은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
by sonnet | 2007/08/31 18:16 | 정치 | 트랙백(3) | 핑백(2) | 덧글(29)
피랍 관련 국내 입장들(한기총 입장 추가)
강경파의 기죽지 말고 더 굳세게 가야 한다는 견해
마지막으로 한국교회는 이번 2007년을 1907again으로 기념하며 올해를 한국교회 선교부흥의 원년으로 선포하면서 10만 명의 선교사를 최전방지역에 보낸다는 비전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6월에는 전국적으로 도시들마다 연합집회를 하였다. 이러한 헌신의 열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발생한 이번 사건은 영적으로 보면 분명 한국교회에 대한 사단의 도전이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영적 컨텍스트를 이해하고 오히려 전심으로 헌신하며 신속한 지구촌복음화를 위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단기사역팀 피랍사건 어떻게 볼 것인가?, 인터넷선교신문 GMNnews, 2007년 7월 21일

10만 최전방투입은 역시 호언이긴 하겠지만, 쪽수가 곧 실적이라는 마인드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쪽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테러에 취약하게 된다는 것과 동의어인 셈.

봉사단 초청한 한민족복지재단 사과 성명 발표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한국인 의료봉사단을 초청한 한민족복지재단은 22일 성명을 발표하고 "지구촌 여러 오지에서 묵묵히 땀흘려 봉사하는 자랑스런 한국인들의 봉사와 수고를 매도하는 일이 없도록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재단 김형석 회장은 이날 오후 성명을 통해 "이번 사태로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치게 돼 죄송스럽기 그지없다"며 "그러나 지금은 누구의 잘못을 따지거나 책임을 묻기보다 피랍 봉사단원들의 신변안전이 최우선이며 가족들의 아픔을 헤아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봉사가 매도되는 일 없길", 연합뉴스, 2007년 7월 22일

책임을 따지지 않았을 때 현행 프로세스가 어떻게 테러위협에 대해 개선될 것인지 솔직히 의문. 한 고비 넘기고 나면 원래 하던 대로 하겠다는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아보임.

비주류파의 견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총무 권오성 목사)는 22일 분당 샘물교회 봉사단원들이 아프가니스탄 무장세력에 납치된 것과 관련해 "위험지역에서 교회의 여러 활동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며 아프간내 모든 선교활동을 중지하고 신중하게 사태추이를 지켜볼 것을 촉구했다.

KNCC는 이날 'KNCC 총무 서신'을 통해 "세계 곳곳에는 전쟁과 종교간 갈등으로 신변 안전과 생명을 위협받는 곳이 많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한국교회는 선교지에서 대규모 인원 동원 집회나 이벤트 식 행사를 중지해야 한다"면서 "그 대신 현지 종교에 대한 이해와 선교지 문화를 존중하는 자세를 갖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봉사와 나눔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KNCC "아프간 선교활동 일단 중지해야", 연합뉴스, 2007년 7월 22일

제가 바라는 것은 이정도 입장이 주류가 되었으면 하는 정도.

정부의 대응
분당 샘물교회 봉사단원들의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을 계기로 종교단체가 해외 위험지역에서 선교나 봉사활동에 나설 때 정부와의 사전 협의가 강화될 전망이다.

문화관광부는 21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국세계선교협의회 등의 책임자들과 회의를 갖고 외교통상부의 여행경보 중 여행제한 및 여행자제 지역을 방문할 계획인 종교단체에 대해 소속교단을 거쳐 문화부와 사전협의를 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고 밝혔다.

문화부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이를 강제할 수는 없지만 협의를 통해 이처럼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종교단체 위험지역 선교.봉사 사전협의 강화, 2007년 7월 21일


다수파의 견해(추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이용규 대표회장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인질로 붙잡힌 봉사단원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무사귀환하기를 마음졸이며 기도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한기총 소속 교단과 교회는 해외 봉사활동시 정부가 지정한 해외여행 제한지역 조치에 대해 적극 협조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회장은 특히 "이번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된 한국인들은 선교 목적이 아니라 순수하게 의료봉사활동을 위해 간 것"이라며 이 사건이 종교문제로 확대 해석되는 것을 경계했다. 피랍된 한국인들이 다니는 샘물교회는 한기총 소속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예장 고신)에 속해 있다.

개신교 단체, 위험지역 활동 자제 촉구(종합), 연합뉴스, 2007년 7월 22일

여러분이 예상하셨던 것보다는 일단 전향적인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임. 장기적으로 약속이 잘 지켜지느냐는 물론 지켜봐야.



기업이나 정부에서 중대한 사고가 발생한 경우 대개 사과, 조업중지, 사태조사, 원인규명, 조사결과발표, 재발방지대책 수립, 조업재개 같은 일련의 프로세스가 따르게 된다.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외부전문가 등을 초빙해 도움을 받는 경우도 많고, 이런 프로세스를 통해 신뢰성을 회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주왕복선 첼린저호나 아리안 로켓 사고 후 조사와 대책마련이 될 때까지 발사를 중단시킨 바 있고, 전투기 추락 사고 등이 발생해도 비슷한 조치를 취하곤 하였다.

그렇다면 선교단체들이 위험해도 종교적 사명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같은 위험지역에 계속 가야겠다고 고집한다면, 최소한 이것 하나는 따져 물어봐야 한다.

"이런 사태를 겪고 당신들의 업무계획을 경호나 인력의 안전이란 기준에 맞춰 철저하게 재평가해서 새로 짰는가? "

나는 만약 제로베이스에서 출발해 외부 전문가들이 설정한 일정 안전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프로젝트는 폐기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재검토할 경우 지금과는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남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by sonnet | 2007/07/22 21:45 | 정치 | 트랙백 | 덧글(34)
아프간 납치 사태에 대해
이번 사태는 예견되던 것이다. 작년 이맘때 나도 경고한 적이 있을 정도니까. 그리고 선교나 순교에 대한 저 사람들의 사고방식으로 볼 때 이런 사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사실 납치는 일단 발생하면 이미 진 것이다. 칼자루는 상대가 쥐고 있고 이쪽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시하기와 굽실거리기 정도밖에 없다. 게다가 탈리반의 정치적 성향으로 볼 때 목숨을 구할 전망은 상당히 어둡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노력은 한번 해봐야겠지만 큰 희망을 갖지 않고 임하는 게 좋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번 사태에서 중요한 것은 이미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기회를 살려 예방, 재발방지, 피해감소 등을 겨냥한 제도나 정책, 대국민홍보 등의 기회로 삼는 것이다. 그것만이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길이다.

그것은 꼭 출입국정책 같은 것일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지금 전반적인 여론은 저런 위험하고 공격적인 선교활동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편이다. 이런 비판적인 여론을 잘 활용해 그들의 행태변화를 유도하는 정치적 압력으로 조직할 필요가 있다.

위험지역에 대한 선교 사업을 기획하는 단체들의 활동이 위축되고 그런 활동에 동참할 생각이 있는 잠재적 자원봉사자들과 후원자들을 고갈시키거나 다른 보다 안전한 지역에 대한 선교로 전환을 유도할 수 있다면 실질적인 피해감소를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정부와 여론이 뭐라고 하던 귀를 틀어막고 내 갈 길을 가는 확신에 찬 극단적 단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건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얼마간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런 집단들을 고립시키고 위축시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덧붙여서 (2007-07-21 20:16 추가)
조심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선교 전반을 공격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신도를 확대재생산해야 하는 것은 종교가 살아남기 위한 기본 속성이다. 새 신도를 만들지 못하면 기성 신도가 다 늙어죽으면 그것으로 멸망 아니겠는가? 그러니 종교를 금지할 것이 아닌 이상 선교를 원칙적으로 막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 무리한 조건을 내걸고 압박하면 온건한 종교단체들도 반발할 수밖에 없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인명피해가 예상되고 국가 정책을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특정한 일부 선교활동임을 분명히 해야만 극단주의자들을 성공적으로 온건주류에서 분리해낼 수 있을 것이다.
by sonnet | 2007/07/21 19:13 | 정치 | 트랙백(1) | 덧글(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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